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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마음 - 썩어빠진 교육 현실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풀어낸 성장소설
호우원용 지음, 한정은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교육. 나에게는 꼭 필요하겠지만 결국에는 있으나 마나해버린 것이다. 이 교육이란 무엇일까? 뒤바뀌어버린 사회의 모습을 대만작가 호우원용이 냉철하게 집어낸다.
무척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아이 서에정지에. 문제있는 교육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려 했던 유일한 중학생이다. 이제는 신수학이라 하여서 그 간단한 구구단조차 외지 못하게 하고 편리한 것은 버리고 더 복잡한 것만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이렇게 계속 지속되는 문제는 이제 사회의 숙제로 남게 되었다. 새로운 젊은층 세대는 원래의 세대와 맞지 않아 덜커덕 거리며 새로운 것만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은 하나같이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거나 형식적인 교육, 아니면 불법 행위들을 저지르고 있다.
과외를 받으면 괜찮고 받지 않으면 차별받는 그런 것이 바로 이 사회의 모습이라니 내 마음속에 갑자기 컴컴한 두려움이 가득 찼다. 이 공부란 것이 무엇이길래, 사람도 죽일 정도였을까 되새겨보게 해주는 장면이 아침해는 영원히 볼 수 없는 지속적인 밤처럼 막막하게 만들었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단체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교육부 장관을 사람들의 단합을 통한 시위 한번으로 잘라버리다니 참 파리 목숨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란 것이 중요하지만, 한 사람이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나, 대학까지 받는 교육을 생각해보자면 적게는 11년에서 많게는 18년 이상을 받는 것이 교육인데, 우리는 늘 앞을 보지 않은 채 당장 현실만 생각하고, 잘못을 지적하기 바쁜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볼 때라고 함께 읽은 어머니은 아주 언잖게 말씀하신 것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나는 좀 생각이 달랐다. 아이들 다그치고 때려잡는 것이 교육이란 말인가? 정말 그렇게밖에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란 말인가?
"학생들은 자신들이 인권이 있다고 주장하지요? 그런데 우리 선생들도 인권이 있어요. 누구는 즐겁게 가르치고 싶지 않은 줄 아나요? 다 주위 선생들때문에 성적이 낮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나가는 것 뿐이니..."
선생님들의 대표적인 변명이다.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즐겁게 가르치고 싶다면 바꾸면 되지 않는가? 하나를 하는데에도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만큼 즐겁게 공부하면서도 성적이 좋아지는 방법은 있다는 것이다. 창의력 교재, 버그박사의 창의력 교구는 그런 대표적인 예이다. 재미있게 장난감을 만들면서도 창의력을 상승시켜주는 것이 재미있을 수 있다. 또 사회만 해도 골든벨이나, 만들기를 통한 게임같은 공부가 훨씬 재미있고, 기억에도 남는데, 그런 것을 보면 재미있게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한다.
교육이란 것이란 정말 어떤 것일까? 사람의 목숨도 왔다갔다 만드는 이 교육이란 것은 아이들의 숨을 얼마나 조이는가? 웃음이 넘쳐나야할 곳에서는 단지 침묵과 선생님의 읽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따름이니 교육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건지 의문을 갖게 한다.
"공부해라! 게임 좀 집어치우고!"
이제는 당연한 듯한 부모들의 말이 되어버린 한마디. 어쩌면 이 말 속에서 수십만명의 아이들의 시체같은 얼굴을 만드는 계기가 생겼을 것이다. '쿠니미츠의 정치'라는 책을 보면서 교육도 정말 정치의 일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정치조차도 교육에 관여해야 하고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4x는 얼마느니 하는 말들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실생활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들이 정말 필요할까? 교육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역시나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제는 교육 문제가 인권 문제에까지 들어섰다. 하루하루가 쉬는 틈도 없이 1교시에서 이어지는 끝교시까지 학교에서 보내고 그 이후 학원에서 새벽까지 있어야 한다. 교육이란 중요한 문제이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미친 듯이 공부하고, 정작 전문인으로 공부해야할 대학에서는 내내 노는 우리나라 풍토는 이제 좀 개혁되어야 할 것이 아닐까? 세계 유수하고 좋은 대학 중에 서울대가 100위 전후 왔다갔다하는 후진국형 대학이란 사실은 듣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다. 맞지 않는다면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세대의 임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