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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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된 욕망

오노레 드 발자크 저, ‘영생의 묘약‘과 ’미지의 걸작’을 읽고

단편소설을 즐기지 않는다. 급작스런 이야기 전개로 말미암아 증폭되는 주해와 해석의 간극 앞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현대소설을 즐기지 않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재치와 기발함보다는 진부할 정도로 상투적인 (뻔한) 주제와 이야기 전개를 선호하는 나는 빛바랜 상투성에서 감춰진 보석과도 같은 진리를 재발견하고 독자의 마음과 생각을 환기시키는 것이 문학이 해낼 수 있는 힘이라 믿는다. 

이런 나로서는 이 책에 담긴 두 단편을 읽긴 했으나 제대로 읽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맥락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단편소설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고야 마는 사건이 과연 무엇을 상징 (의미)하는지 나는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 할지도 모르겠다. 나완 달리 단편이 주는 그 끊김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고 즐기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녹색광선에서 2019년에 출판한 첫 책에 담긴 발자크의 ‘영생의 묘약’과 ‘미지의 걸작’은 모두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다룬다. 전자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생에 대한 욕망을, 후자는 살아 숨 쉬는 미술 작품에 대한 불가능한 욕망을 보여준다. 영생에 대한 욕망은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 숨 쉬는 회화에 대한 욕망은 예술가만이 공유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러나 발자크는 예술가가 아닌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이 작품에서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감상문에서는 한 작품씩 짧게 살펴보고자 한다. 

1. ’영생의 묘약‘
주인공 돈 후안은 호화로운 저택에서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부잣집 아들이다. 어느날 파티가 한창일 때 임종을 맞이하게 된 아버지 옆에서 돈 후안은 아버지로부터 최후의 부탁을 듣는다. 마지막 숨을 거두자마자 작은 천연 수정 병 안에 든 물로 온몸을 닦아달라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돈 후안은 한참을 망설였다. 시간이 흐르고 장례를 준비하러 온 모든 사람들을 내보내고 돈 후안은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실행에 옮겨보기로 한다. 온몸이 아닌 눈 하나만 닦아보자고 생각했다. 시체의 오른쪽 눈꺼풀을 살짝 닦자마자 아버지의 눈이 뜨였다. 돈 후안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하셨던, 계속 살 거라는 둥, 자신이 신이라는 둥,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수정 병 안에 든 물은 영생의 묘약이었던 것이다.

약삭빠른 돈 후안은 부활한 아버지의 눈을 리넨 천으로 짓이겨 죽여버린다. 이후 효심 깊은 아들로 추앙받게 되었고, 영원히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돈 후안은 지혜가 생겼는지 세상의 모든 원리를 꿰뚫게 된다. 예순 살이 되고 스페인에 정착한 그는 결혼하고 아들 펠리페를 갖는다. 시간이 지나고 돈 후안도 노쇠해진다. 임종을 맞이할 즈음이 되어 아들 펠리페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다. 언젠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바로 그 부탁을 말이다. 물론 펠리페가 자기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수사들과 거짓말을 동원하면서.

아들 펠리페는 돈 후안과 달리 효심 깊고 순종적이었다. 아버지의 부탁대로 실행에 옮긴다. 밝은 달빛 아래 충실히 시체의 얼굴을 닦았고, 이어서 오른팔을 적시자마자 젊고 억센 아버지의 팔이 펠리페의 목을 졸랐다. 유리병이 떨어졌고 액체는 다 증발해버렸다. 돈 후안은 얼굴과 팔 하나만 부활한 불완전한 영생체가 된 것이었다. 머리 좋은 사람답게 산루카르 수도원장은 이 기적을 이용해먹기로 결심했고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소문을 듣고 예식을 보러 온 모든 사람들 앞에서 무신론자 돈 후안의 머리는 조롱과 저주의 말을 쏟아내며 몸에서 툭 떨어져나와 신부의 머리를 물어뜯는다. 수도원장이 숨을 거두는 순간 돈 후안의 머리는 외친다. “바보 같은 놈. 자, 말해보시지, 신이 있다고?” 그리고 책은 마무리된다. 영생을 욕망했던 자의 최후는 우스꽝스럽고 괴기스러운 머리와 한쪽 팔, 즉 불완전한, 아니 어쩌면 존재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법한 존재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2. ‘미지의 걸작’
이 작품에서 초점이 맞춰지는 인물은 프렌호퍼 선생이다. 그는 다른 두 인물, 포르뷔스와 푸생과는 달리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발자크가 예술가의 내재된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창조한 천재 화가이다. 프렌호퍼 선생은 이미 노인이며 세상에서 아무 화가도 할 수 없는, 회화 속 인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기법에 능통한 자였다. 그는 십 년 전부터 그려왔던 한 여인에 대한 그림이 있다고 했다. 그 그림은 그림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그리고 프렌호퍼의 애인이자 프렌호퍼 자신만의 창조물이자 소유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는 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오랜 기간 애를 썼고, 그러면서 그 작품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하는 비밀 (미지의 걸작)이 되었다. 그는 끝내 만족하지 못했다. 여전히 생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프렌호퍼에게 부족한 것은 실제 모델이었다.

어쩌다 프렌호퍼와 포르뷔스 사이에서 끼게 된 푸생은 애인에게 프렌호퍼 선생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그냥 모델이 아니라 누드 모델이었다. 다른 남자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었다. 푸생과 그의 애인 질레트는 헤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지했고 그것을 감수해야 했다. 질레트는 푸생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도 생각했다. 프렌호퍼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푸생과 질레트는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

질레트를 보고 프렌호퍼는 십 년간 숨겨오며 은밀한 관계를 가졌던 그림 속의 여인 카트린 레스코를 공개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포르뷔스와 푸생은 잔뜩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프렌호퍼가 아끼는 여인이 그려진 그림이라 하는 화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실물처럼 그려진 한쪽 발을 제외하고는 여러 선들과 색들만이 빈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프렌호퍼는 혼자서 광기에 찬 채 ‘무’에서 ‘완전’을, 그리고 ‘생’을 마음 속에서 그려내고 그것을 실제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그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을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했던 어느 한 천재 화가의 환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프렌호퍼는 다음날 자신의 모든 그림을 불태우고 자기 자신마저도 죽음으로 내몬다. 

이 두 작품의 공통된 소재이자 주제는 인간의 내재된 욕망이지만, 발자크는 단지 그것을 드러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부질없고 불가능한 것임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쩌면 발자크는 이 두 단편소설을 통해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에 대해 일종의 경고를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돈 후안도 프렌호퍼도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 후안과 프렌호퍼는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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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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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의 힘

은유 저, ‘쓰기의 말들’을 읽고

본인을 평범한 생계형 주부라고 하는 은유 (본명 아닌 필명) 작가는 글 좀 쓴다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은유 작가는 스스로를 국문과나 문창과나 신방과 출신이 아니며 별도의 창작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위에 언급한 전공 출신이 아닌, 숱한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도 그랬다. 나 역시 상황만 다를 뿐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작가 중 하나였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이 책을 사놓고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다가 마침내 다 읽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 시작해서 버스 안에서 끝낸 나의 첫 책이기도 하다.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작은 판형이라 늘 메고 다니는 가방 안에 쏙 들어갔고,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아무 데나 펼쳐 읽고 싶은 데를 읽어도 되었기 때문에 출퇴근 버스에서 읽기에 적당했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글쓰기를 어떻게든 시작했고 앞으로도 지속하려는 의지를 가진 미래의 작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에는 글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내용보다는 글쓴이의 고뇌와 현실, 글쓰기에 대한 사랑과 한이 적나라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곳곳에 쓴 많은 문장들을 나는 구구절절 공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쓴다는 것에 대한 절박함과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이 내 삶을 그대로 도려내어 써놓은 것 같았다.  

이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유명인이 남긴 문장들 중 은유 작가가 고른 한 문장 (곧 쓰기의 문장들, 즉 쓰기의 말들)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문장으로부터 흘러나온 그녀의 산문이 실려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방법이 아주 효과적이라는 점에 나도 동감한다. 책을 읽다가 훅 하고 들어오는 문장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문장들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수집해놓으면 그 수집함은 글쓰기 보물단지가 되기 때문이다. 책에 밑줄 긋거나 형광펜을 칠하는 것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노트에 옮겨놓는 것. 글쓰기를 지속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습관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나 역시 이 습관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104개의 문장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나에게 꽂힌 딱 한 문장을 골라봤다. 존 플랭클린이 했던 (혹은 썼던) 문장이다. 

“상투성은 문장에서 발휘되면 민망하지만 주제가 되면 핵심 요소로 변화한다.”

2년 전부터 조금씩 쓰고 있는 소설의 주제는 상투적이다. 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루는 나의 문장들을 나는 상투적이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능력을 나는 소설가의 가장 큰 재주라고 생각한다. 존 플랭클린의 저 문장이 내 마음 깊숙한 곳을 조망한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다. 그리고 나는 평생 숙원일지도 모르는 내 소설을 위해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어떤 문장은 쓰기의 시작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이처럼 쓰는 사람의 마음을 조망하기도 하고, 앞길을 비춰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쓰기의 말들’의 힘일 것이다.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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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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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을 훔치는 글: 황홀하도록 반짝이는 에세이

알베르 카뮈 저, ‘결혼’ 중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읽고

5년 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무더운 여름날, 캘리포니아에서 전철을 타고 일터를 향하고 있었다. 커다란 창으로 웅장한 산가브리엘 산맥이 보였고, 내 손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러나 황홀할 정도로 반짝이는 문장에 압도된 채 나는 열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을 가득 메운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 아, 그 묘했던 기분이란! 그 글은 카뮈의 에세이, ‘결혼’의 첫 꼭지, ‘티파사에서의 결혼’이었다. 나는 금세 상상 속에서 아프리카 대륙 북단에 위치한 알제리로 날아갔고, 그곳의 태양에 눈부셔하고, 그곳에서 강렬하게 풍기는 압생트 풀 향에 취했으며, 그곳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가 온몸을 자연에 노출시키고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을 훔치는 글이 있다. 그 글이 새로운 번역가와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 새 옷을 입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고, 이 글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동은 그대로였다. 아니, 증폭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번엔 조각난 순간들이 아닌 화자의 동선을 따라 온전한 한나절을 치열하게 보내고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음은 나에게 해석된 ‘티파사에서의 결혼’이다. ‘티파사에서의 결혼’은 아무래도 이 책의 백미일 것이고, 이렇게 따로 조그맣게 기념이라도 하는 의미에서 감상문을 남긴다. ‘결혼’의 나머지 꼭지들과 ‘여름’까지 읽고 나면 모두 모아 감상문을 한 번 더 쓸까 한다. 

1. 티파사에서의 결혼

뜨거운 태양과 강렬한 압생트 풀 향으로 가득한 티파사는 자연과 폐허의 왕국이다. 눈부신 빛과 야생의 향기에 취한 나는 과거의 교훈과 인간의 철학조차도 가소롭게 느껴지는 장엄한 자연과 바다의 세계가 내뿜는 숨결에 호흡을 맞춘다. 듬직한 슈누아 산이 보이고 마을 전체가 조망되는 티파사의 폐허에서 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봄에 티파사에 머무는 신들은 하객일 뿐이다. 나는 인간을 대표하여 자연과 폐허의 왕국에서 세계와 결혼을 한다. 세계와 하나가 되기 위해 마침내 나는 벌거벗고 바다에 뛰어든다. 여름이 오기 전 바닷물은 아직 차갑지만, 태양의 뜨거움과 바다의 차가움 속을 오가면서 나는 내 삶을 무제한으로 사랑할 권리를 깨닫는다. 아, 이 영광스러운 순간이란! 세계와 하나 됨으로써 나는 내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사랑하게 된다. 영겁과 같은 찰나의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나는 항구 근처의 작은 카페에 앉아 초록색 아이스 민트티를 큰 컵으로 한 잔 마시고, 베어 물면 과즙이 턱까지 흠뻑 적시는 복숭아를 먹는다. 먹고 마시는 이 피로연에서 나는 또다시 삶의 기쁨을 즐기고 행복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신들과 마찬가지로 티파사도 하객일 뿐이다. 오늘 나의 결혼을 증언해 줄 듬직한 존재들. 인간과 세계의 결혼을 목격한 산 증인들. 저녁이 찾아오고 피로연도 끝이 나면 나는 국도 근처에 위치한 공원 한구석을 찾는다. 선선해진 대기에 차분해진 정신으로 나는 충족된 사랑에서 비롯된 내면의 침묵을 음미한다. 인류를 대표해 치렀던 세계와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나는 내 배역을 훌륭히 수행했음을 깨닫고, 밀려드는 기쁨에 몸을 떤다. 내 몸은 사랑으로 인해 세계로 가득 차고 세계와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곧 밤이 오고 다른 신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내 그랬듯이 침묵할 것이다. 두 발을 대지에 딛고 있지만, 입가엔 만족스럽고 초월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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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조주관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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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덕분에 더 깊고 풍성해지는 글


조주관 저,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을 읽고

예술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걸까. 어떤 작가가 음악 혹은 미술을 좋아했다거나 거기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것도, 곡을 쓰는 것도, 미술작품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도 모두 창조의 행위에 속하며 그것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고뇌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쓰는 작가의 음악과 미술에 대한 사랑은 텍스트로 그 흔적이 남게 된다. 수많은 소설에서 음악이나 미술에 관계된 재료들 (이를테면 예술작품이나 예술가)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작품 ‘황야의 늑대’, ‘유리알 유희’, ‘게르트루트’에서 음악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로스할데’에서는 미술을 적극 활용하여 내러티브를 살려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녹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서 음악을,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 미술을 주재료로 삼아 그의 문체를 녹여냈다. 

도스토옙스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음악보다는 미술작품을 감상, 비평하는 (그림을 글로 번역해 내는) 일에,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작중인물을 노트에 직접 스케치하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한 미술품을 언급하며, 그 미술품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해석을 통해 그 작품들을 재방문하여 여태껏 몰랐던 숨은 의미를 알려주고, 가볍게 넘어갔던 부분들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안내자다. 특별히,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으며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어리석음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 ’백치’, 악령과도 같은 이념과 사상의 환상을 보여주며 러시아의 회복을 소망하는 작품 ‘악령’,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정수가 녹아있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소개되는 숱한 미술작품들을 보며 나는 내 안에서 다시 이 모든 작품들이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작품은 동일하나 또 다른 렌즈를 장착한 독자에겐 재독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학생 때 교양으로 배웠던 세계미술사 시간을 나는 사랑했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감명 깊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듣던 클래식 음악은 지금도 가장 즐겨듣는 음악 장르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미술관에 들러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은 내겐 소중한 삼찰의 시간이 된다. 나 역시 미천한 수준이지만 작가로서 음악과 미술작품을 대하면서 그것들로부터 영감을 얻곤 하는 것이다. 헤세도, 이시구로도,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나는 그들의 예술 사랑도 사랑하게 된다.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를 이해하고 그들의 작품을 더 깊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도스토옙스키 읽기
1.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811
2.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815
3.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879
4.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928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rtmodel.tistory.com/1068
6.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087
7.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153
8.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159
9.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171
10.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174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https://rtmodel.tistory.com/1077
1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177
13.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병훈): https://rtmodel.tistory.com/1194
14.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58
15.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62
16.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by 도제희): https://rtmodel.tistory.com/1388
17.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396
18.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429
19. 악몽 같은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1435
20. 악어: https://rtmodel.tistory.com/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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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렐란드라 C. S. 루이스의 우주 3부작 2
C. S. 루이스 지음, 공경희 옮김 / 홍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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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이 아닌 낙원의 이미지를 금성에서 구현하다

C. S. 루이스 저, ‘페렐란드라’를 읽고

‘우주 3부작’의 1부 ‘침묵의 행성 밖에서’가 1938년에 출간되고, 5년 뒤인 1943년에 2부 ‘페렐란드라’가 출간된다. 그 사이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1942년 출간)’를 출간했고, ‘페렐란드라’와 같은 해에 ‘인간폐지’를 출간한다. 5년간 그는 3권의 책을 쓴 셈이다. 루이스의 첫 저서, ‘순례자의 귀향’이 1933년에, 마지막 저서, ‘폐기된 이미지’가 1964년에 출간되었으니, 30년 남짓 루이스는 3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으며, 평균 1년에 적어도 1권을 출간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주 3부작’의 1부와 2부 사이인 5년간 3권의 출간은 평균 이하라 볼 수 있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하고 살짝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마침 그 시기가 제2차세계대전 기간과 대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알고 나의 염려는 이내 감탄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알고 보니 같은 시기에 루이스는 나중에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으로 묶일 라디오 방송까지 했다. 그러므로 5년간 3권밖에 못 낸 게 아니라, 그 와중에도 3권이나 냈구나!,라고 반응해야 적절할 것 같다.


루이스도 밝히고 있지만, 2부 ‘페렐란드라’는 1부 ‘침묵의 행성 밖에서’를 읽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야기를 가진다. 굳이 순서를 바꿔서 읽겠다거나, 3부작 중 2부만 읽겠다는 고집만 부리지 않는다면, 1부를 읽고 2부를 읽는 게 훨씬 매끄러울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나 보군’으로 대충 넘어갈 것들이 ‘그래서였군’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부의 주요한 공간적 배경은 ’말라칸드라’, 즉 화성이었다. 2부의 제목이기도 한 ’페렐란드라‘는 금성이라는 뜻으로써 2부의 공간적 배경이 된다. 주인공은 랜섬, 악역은 웨스턴으로, 비록 다른 악역이었던 드바인이 빠졌지만, 1부와 같다. 즉, 2부에서 랜섬과 웨스턴의 대립구도는 공간만 바뀔 뿐 1부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리고 그 대립구도는 랜섬이 선, 웨스턴이 악으로 뚜렷하게 그려진다. 랜섬은 창조주이자 기독교의 하나님에 해당하는 말렐딜에게 순종하여 쓰임 받는 인물로서 화성에서처럼 금성에서도 타 생명체들을 존중하며, 언어학자답게 예부터 존재했던 태양계 언어로 그들과 소통한다. 한편, 1부에서 똑똑하고 무모한 물리학자이자 냉혈한이었던 웨스턴은 2부에선 악에게 몸을 내주어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매개체, 다시 말해 성경에서 ‘귀신 들린 자’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일개 귀신이 아니라 그들의 우두머리이자 악마라고 불리는 영적 존재를 담아내는 육체로 등장한다. 그 악마가 랜섬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했던 말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선은 지키려 하고 악은 파괴하려 한다,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이 작품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랜섬은 말라칸드라에서 했던 것처럼 페렐란드라에서도 지키는 역할을 감당한다. 1부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1부에서는 드바인과 웨스턴에 의해 강제로 말라칸드라에 잡혀가서 그 일을 감당했고, 2부에서는 말렐딜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함으로 페렐란드라에 가서 그 일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전제가 되는 건 말라칸드라든 페렐란드라든 모든 게 말렐딜에 의해 창조된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랜섬이 지킨 건 단순히 말라칸드라 혹은 페렐란드라가 아닌 창조세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랜섬은 강제로 말라칸드라에 끌려가서 타 생명체를 접하고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꼈지만, 자발적으로 페렐란드라에 와서는 경이의 눈으로 타 생명체를 맞이할 수 있었다. 1부에서도 결국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2부에서 랜섬은 전혀 몰랐다. 누구를 만나게 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그저 말렐딜의 뜻에 자기 몸을 맡기고 순종한 것이었다. 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나게 하는데, 나는 루이스가 의도적으로 랜섬이 어떤 사람인지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이런 패러디를 이용한 거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랜섬은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랜섬은 이 작품 속에서 예수님과 비슷한 역할도 감당하게 된다. 페렐란드라를 악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악마가 들어앉은 웨스턴을 결국엔 물리쳐 악마에게 승리했으며, 웨스턴에게 발목을 붙잡혀 죽음을 상징하는 지하 깊숙한 곳으로 함께 떨어진 지 사흘 만에 가까스로 빛이 있는 곳으로 나와 마치 부활을 경험한 것처럼 죽었다가 다시 사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웨스턴과 싸우다가 온몸에 상처를 입게 되는데, 가장 치명적인 상처이자 가장 나중에 치유되는 부위가 발꿈치라는 점 또한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온 ‘여자의 후손’이 금성 버전에서는 바로 랜섬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루이스의 의도라 생각된다. 참고로, 랜섬을 영어로 쓰면 우리말로 몸값에 해당하는 Ransom이다. 루이스의 치밀한 설계에 나는 또 한 번 감탄한다.

기독교의 상징과 알레고리는 이것만이 아니다. 랜섬이 페렐란드라에서 처음 만난, 이성을 가진 생명체는 초록 여인인데, 창세기 1-2장에 등장하는 에덴동산 속 하와에 해당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웨스턴이 우주선을 타고 날아와 페렐란드라에 착륙하고 악마에게 몸을 내어준 뒤 끊임없이 유혹의 말을 건네는 대상도 바로 초록 여인이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장면과 겹치는 대목이다. 랜섬은 창세기 1-2장의 에덴동산을 지키기 위해 3장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뱀의 유혹으로부터 하와를 보호하려는 역할이 자기의 사명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는 목숨을 걸고 그 사명을 달성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랜섬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엘딜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사명이라 믿고 말렐딜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록 의심 속에 빠지는 순간이 간간이 있었지만, 신뢰했다는 사실이다. 랜섬이 혼자서 했던 수많은 생각 중에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자기 자신이 실패해도 멜렐딜의 뜻은 결국 성취될 거라고 믿는 것. 이 대목에서 나는 이해하지 못해도, 때론 버려진 것처럼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이 느껴져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 창세기 1-3장의 배경인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사실을 알게 되면 17세기에 써진 밀턴의 ‘실낙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읽지 않은 루이스의 작품 중 ‘실낙원 서문’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된 해가 ‘페렐란드라’가 출간되기 1년 전인 1942년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작품을 쓰기 전 루이스는 이미 실낙원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마친 상태였다. 또한, 루이스가 그의 첫 소설 ‘순례자의 귀향’을 쓸 때 17세기 존 번연의 작품 ‘천로역정’을 패러디했던 것처럼, 이 작품을 쓰면서 밀턴의 ‘실낙원’을 패러디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루이스 버전의 실낙원, 페렐란드라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루이스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즉 금성에서 실낙원이 아닌 낙원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제 ‘우주 3부작’ 중 가장 긴 3부 ‘그 가공할 힘’이 남았다. 화성도 금성도 아닌 지구를 다룬다고 한다. 돌고 돌아 다시 지구인 셈이다. 1, 2부를 모두 읽어서 그런지 더욱 기대가 된다. 

* 루이스 읽기
1. 예기치 않은 기쁨: https://rtmodel.tistory.com/682
2. 고통의 문제: https://rtmodel.tistory.com/695
3. 헤아려 본 슬픔: https://rtmodel.tistory.com/699
4.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https://rtmodel.tistory.com/822
5. 천국과 지옥의 이혼: https://rtmodel.tistory.com/852
6. 순전한 기독교: https://rtmodel.tistory.com/911
7. 시편 사색: https://rtmodel.tistory.com/942
8. 순례자의 귀향: https://rtmodel.tistory.com/1164
9. 순전한 그리스도인 (by 김진혁): https://rtmodel.tistory.com/1176
10. 세상의 마지막 밤: https://rtmodel.tistory.com/1629
11. 침묵의 행성 밖에서: https://rtmodel.tistory.com/1633 
12. 루이스가 메리에게: https://rtmodel.tistory.com/1635
13. 페렐란드라: https://rtmodel.tistory.com/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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