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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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아남은 자의 몫


가즈오 이시구로 저, '남아 있는 나날'을 다시 읽고


밤늦게 책을 덮고 먹먹한 심정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스탠드 불빛에 비친 내 모습만이 흐릿하게 어려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훑을 수 있었다. 놀라운 건 그게 내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처럼 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어떻게 해도 완독 후 내 감정을 텍스트로 완전히 포착할 수 없을 테지만, 긴 잠을 자고 깨어난 듯한 기분이었다고 하면 조금은 설명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아, 나는 이런 책들을 사랑한다. 읽고 나서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지는 책. 책이 던져주는 무언의 아우라가 나를 가뿐히 압도하여 나로 하여금 스스로 내 껍질을 뚫고 나오게 만드는 책. 그리고 내가 살지 않은 인생, 그러나 마치 내가 산 것 같은 인생을 맛볼 수 있는 책. 이런 소설이 아니면 어떻게 내가 나와 무관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까. 소설은 타자의 인생을 읽다가 어느새 나의 인생 중심으로 곧장 진입하게 만드는 웜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나의 인생을 한 걸음 떨어져 조망하며 내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조금 더 깊고 풍성하게 가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이야기 선생님이다. 


‘남아 있는 나날’은 마지막 장에 다다라서야 마침내 작품 중심을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으며, 동시에 제목의 의미가 단박에 이해되는 소설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바닷가 마을 웨이머스 선창에서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곧 빛을 발할 저녁 시간을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는 인파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주인공 스티븐스 집사와 5미터 정도 떨어져 사그라드는 박명에 경계가 희미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이미 저녁을 맞이한 그의 육체를 뒤에서 바라보는 나는 애잔함을 느낀다. 해가 저물 때 느껴지는 특유의 정서 때문만은 아니다. 마지막 장에 다다르기까지 그가 줄곧 회상했던 과거의 복잡 미묘한 추억들 때문도, 켄턴 양을 직접 만나고 확인한 그녀의 상황이 그의 예상과 달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그가 곱씹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아마도 나는 그런 스티븐스 집사의 축 처진 어깨에서 나의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이미 지나가버린 내 과거에 대한 깊은 한숨 어린 회한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구차할 정도로 먼저 내놓게 되는 내 과거 행위들에 대한 이런저런 변명과 합리화들,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스스로 느끼는 나의 이율배반성과 모순됨이 영사기가 돌아가듯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켜지는 바로 그 시간, 그 황홀한 마법 같은 시간,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스티븐스 집사와 하나가 되었다.


스티븐스 집사가 홀로 떠난 자동차 여행의 외형적 목적은 지극히 공적인 차원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최근 스티븐스는 주인이 바뀐 달링턴 홀 운영 중 발생한 자잘한 문제점들의 원인이 인원 부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예전에 달링턴 홀에서 총무로 완벽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결혼 때문에 떠났던 켄턴 양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마침 얼마 전 켄턴 양으로부터 편지가 배달되었고, 스티븐스 집사의 눈에 그 편지는 켄턴 양이 마치 현재 결혼 생활에서 불행을 느끼는 동시에 옛날을 그리워하는 듯해 보였고, 다시 달링턴 홀에서 일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충분히 착각일 수 있고, 또 충분히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것일 수도 있는,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내기까지 했었다. 여행을 빌미로 켄턴 양을 직접 방문하여 그녀의 의중을 묻고 자신이 생각해 낸 해결책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외형적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켄턴 양은 나름대로의 지난한 과정 끝에 마침내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달링턴 홀로 갈 수도, 갈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스의 여행을 실패라고 할 수 없는 까닭은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은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스티븐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나날에 대한 작은 소망의 씨앗을 손에 넣게 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스티븐스가 일주일간의 자동차 여행에서 얻은 것은 켄턴 양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과거가 아닌 미래였다. 켄턴 양이 합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스티븐스 집사의 합리적인 계획과 사적인 미련이 좌절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회환과 변명과 합리화를 치열하게 거친 그에게는 더 이상 자신의 눈을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두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스티븐스 집사는 이번 여행 덕에 비로소 과거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두 팔 벌려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여행 중 시종일관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지, '품위'란 무엇인지 묻고 스스로 답하는 지난한 여정을 거쳤다. 나치에 부역한 셈이 되어버린 달링턴 경의 몰락 과정을 한 순간도 빠짐없이 바로 곁에서 지켜본 장본인으로서 스티븐스는 집사라는 직분에 자신이 얼마나 합당했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그가 묻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건 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위대함에 대한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위대한 집사로서 품위를 지켰다고 볼 수는 있으나 그것보다 더 근원적으로 보이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지켜내지 못했던 것이다. 달링턴 경의 충견이었던 그는 해적선에서 가장 성실한 해적이었고, 자신의 충직함으로 결국 나치에 부역하는 꼴이 되어버려 한나 아렌트로부터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도출하게 만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같은 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집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먼저 물었어야 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할 줄 아는 품위, 자신이 몸담은 직장이 불의를 행하는 곳인지 따져볼 줄 아는 품위, 그리고 아무리 상관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이라면 스스로의 냉철한 판단으로 거절할 수 있는 소신과 용기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품위 말이다. 그가 자꾸만 자신이 위대한 집사였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도 그가 이미 스스로 더 중요한 차원의 품위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인지했으나 그것을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행한 변명과 합리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 지나간 일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지만 스티븐스는 어쨌거나 살아남아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돌이켜보며 반성과 성찰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앞에는 인생에서 가장 좋고 기다려지는 저녁 시간이 놓여 있다. 모든 게 만족스럽고 떳떳한 과거를 지닌 사람이 우리 주위엔 과연 얼마나 될까. 한때 가졌던 투철한 신념도,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신봉했던 사상도 모두 지나가버린 과거에 속하게 된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모순되고 이율배반 투성인 우리의 삶을 그러나 우린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남아 있는 나날을 가장 좋은 시간으로 만드는 것.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스티븐스의 앞길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와 우리의 앞길도. 이왕이면 유머와 농담을 동반하면서. 


#민음사 

#김영웅의책과일상 


* 가즈오 이시구로 읽기

1. 남아 있는 나날: https://rtmodel.tistory.com/855

2. 클라라와 태양: https://rtmodel.tistory.com/1308

3. 나를 보내지 마: https://rtmodel.tistory.com/1318

4.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https://rtmodel.tistory.com/1354

5. 창백한 언덕 풍경: https://rtmodel.tistory.com/1359

6. 우리가 고아였을 때: https://rtmodel.tistory.com/1368

7.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https://rtmodel.tistory.com/1369

8.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386

9. 파묻힌 거인: https://rtmodel.tistory.com/1433

10. 녹턴: https://rtmodel.tistory.com/1457


* 가즈오 이시구로 다시 읽기

1. 남아 있는 나날: https://rtmodel.tistory.com/2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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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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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과 떠남의 경계에서


줌파 라히리 저, '내가 있는 곳'을 읽고


줌파 라히리가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는 삶을 살던 시절 썼던 세 번째 책이다. 첫 책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와 두 번째 책 '책이 입은 옷'이 산문집이었다면, 이 책 '내가 있는 곳'은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목소리는 한층 더 뒤로 물러나 있다. 이탈리아어에 조금 자신이 붙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소설가로서 이탈리아어 소설 한 편을 꼭 써보고 싶기 때문이었을까? 형식은 달라졌고, 화자 뒤에 숨어 목소리를 아꼈지만, 세 번째 책인 이 소설에서도 앞의 두 산문에서 보였던 존재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은 그대로 이어진다.


이 책은 46개의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묘사와 서사를 동원해 들려주는 작품이다. 각 꼭지의 제목만 봐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이 '내가 있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저자는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일상을 이루는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어떤 감정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그 어디를 가도 온전히 정착할 수 없고, 동시에 늘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하는 자신의 존재론적 불안감을 여러 평이한 문장들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화자가 처한 상황이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 나아가 모든 인간이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나는 45번째 꼭지에서 이 책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 '아무 데서도'라는 제목의 꼭지이다. 화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방향 잃은, 길 잃은, 당황한, 어긋난, 표류하는, 혼란스러운, 어지러운, 허둥지둥 대는, 뿌리 뽑힌, 갈팡질팡하는. 이런 단어의 관계 속에 나는 다시 처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사는 곳, 날 세상에 내려놓는 말들이다."


조금만 진지하면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여러 군데에서 보여줌으로써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기법이 의외로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고, 평이하지만 결코 평이하지 않은 인간의 존재, 그것이 가진 원초적인 불안을 이렇게 조명할 수 있다는 게 아름답게 느껴졌다. 언제 어디서나 정착과 떠남의 경계에 서서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음산책 

#김영웅의책과일상 


* 줌파 라히리 읽기

1.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https://rtmodel.tistory.com/2035

2. 책이 입은 옷: https://rtmodel.tistory.com/2055

3. 내가 있는 : https://rtmodel.tistory.com/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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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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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으로 숨길 수 없는 정체성


줌파 라히리 저, '책이 입은 옷'을 읽고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인도 벵골 출신이자 미국 이민자로서 평생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전성기를 누리던 2012년, 그녀는 돌연 이탈리아 로마에서 2년간 거주하며 벵골어도 영어도 아닌 이탈리아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삶을 선택한다. 이 책은 이탈리아어로 탄생한 그녀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이탈리아어로 쓴 첫 번째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 '책이 입은 옷'은 말 그대로 책의 표지를 뜻하지만 단순히 표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옷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이 가중되었다고 고백한다. 미국으로 이민 후 다른 미국 아이들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옷 때문에 더더욱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책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평생을 벵골 고유 의상만을 고집했던 어머니와의 갈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마도 줌파 라히리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여러모로 마음의 상처가 깊었던 것 같다. 그녀는 콜카타에서 사촌들이 입는 교복을 부러워하기도 했다고 쓴다. 교복은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동시에 익명성을 보장하는 이중 효과를 내는데, 그녀는 바로 그것의 혜택을 누리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교복이란 제도가 없었고, 각자 입고 싶은 대로 입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 이 자유가 싫었다." 


줌파 라히리는 어릴 적 옷으로 인한 갈등과 스트레스 때문에 옷이 옷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통찰을 책의 표지에 적용한 글이 바로 이 책이다. 표지는 내용을 보호하고 담아내고 전달해야 하는 고유한 사명을 띠지만,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때론 표지는 내용과 독립적인 가치를 띠고 책의 상품성을 좌우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내용이 말하는 것을 말해야 하는 표지의 정체성은 내용과 별개의 무엇인가를 말하는 정체성까지 띠게 되는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마치 줌파 라히리가 어릴 적 옷 때문에 겪었던 것처럼 말이다. 


표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줌파 라히리는 기본적으로는 발가벗은 책, 즉 표지가 표지만의 개성을 내뿜지 않고 아무런 포장 역할을 하지 않는 책, 그 어떤 보조 설명도 덧붙여지지 않은 채로 텍스트의 신비를 그대로 전달하는 책이야말로 텍스트와 독자와의 진정한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물론 표지의 상업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대두된 21세기 현재에는 불가능한 바람으로 그치게 되지만 말이다. 


나 역시 내 책의 표지들이 모두 맘에 든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표지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설사 그럴 자격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방면으로 아는 지식이 미천하기에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책의 표지는 디자이너와의 만남이 잘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만 대체된다. 표지의 중요성을 알지만, 저자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표지와 상관없이 텍스트만으로 그 책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독자들이 존재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표지가 그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내용을 깎아먹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표지로 독자들을 낚는 상업주의는 작가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이다. 저자나 작가는 이런 것들에 적당히 무심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또한 책의 진정한 정체성은 텍스트에 있지 표지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익명성이 보장되는 것 같은 발가벗은 책이 진정한 책의 정체성과 더 맞닿아 있다고 믿는다. 


#마음산책 

#김영웅의책과일상 


* 줌파 라히리 읽기

1.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https://rtmodel.tistory.com/2035

2. 책이 입은 : https://rtmodel.tistory.com/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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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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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의 이면


프랑수아즈 사강 저, '패배의 신호'를 읽고


양은냄비처럼 쉬이 뜨거워지는 사랑, 한동안 꺼질 줄 모르는 굶주린 호기심,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환상과도 같은 착각. 풋풋하고 솔직한 젊음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이 작품의 제목은 '패배의 신호'다. 승리처럼 보이는 젊음에 대한 찬사만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 안 된다는 저자의 암묵적인 메시지일까. 내게 이 제목은 불꽃같은 젊은 사랑의 이면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읽혔다. 이상보다 현실을 보는 저자의 시선도 느껴졌다. 그렇다면 패배란 어떤 패배였을까. 한 계절에 모든 것을 불태우고 사그라드는 사랑의 종국을 말하는 건 아니었을까. 루실의 처음과 마지막 위치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루실과 앙투안의 첫 만남부터 불꽃이 튀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봄에 시작해서 여름에 절정을 이루고 가을에 소멸했다. 샤를 곁에 잡히지 않는 공기처럼 있던 루실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떤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결혼을 하면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있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있다. 서로의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역할도 부여된다. 사랑은 공중에 붕 떠서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체이고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루실을 바라보면, 루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에 소유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 어찌 보면 자유로운 영혼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또 어찌 보면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기생하는 인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녀가 가슴에 가지고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열정이었을까? 아니면, 공허함 혹은 허무함이었을까? 루실과 결국 결혼하게 되는 샤를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루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루실을 향한 배려와 존중과 사랑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모두 현실세계에서의 어떤 역할을 모두 배제시켜야만 가능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것들은 모두 돈이 없으면 유지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이쯤에서 루실이라는 인물이 과연 실재하는 인물이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기도 할 정도다. 사회부적응자 같은 이미지도 겹쳐지면서 말이다. 어쩌면 저자 사강은 의도적으로 현실에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사랑을 그려내보이면서 인간의 어떤 감정과 심리를 파헤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물론 문화적으로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경솔하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 생겨날 수 있는 미세한 감정의 탄생과 발전과 소멸을 섬세한 문장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톡톡 튀는 천재 작가 이미지의 문체 때문인지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선으로 감정을 포착했기 때문인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도 느꼈지만, 사람 심리를 그려내는 기술이 예사롭지 않았다. 문화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도스토옙스키보다도 사람의 본성을 깊숙이 통찰한 것 같기도 했고, 인간의 다채롭고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보기 드문 기술을 구사하는 작가로 보였다. 


#녹색광선 

#김영웅의책과일상 


* 녹색광선 읽기

1. 감정의 혼란 (by 슈테판 츠바이크): https://rtmodel.tistory.com/1608

2. 결혼, 여름 (by 알베르 카뮈): https://rtmodel.tistory.com/1646

3. 미지의 걸작 (by 오노레 드 발자크): https://rtmodel.tistory.com/1650

4. 눈보라 (by 알렉산드르 푸시킨): https://rtmodel.tistory.com/1682

5. 보통 이하의 것들 (by 조르주 페렉): https://rtmodel.tistory.com/1735

6. 낯선 여인의 키스 (by 안톤 체호프): https://rtmodel.tistory.com/2034

7. 패배의 신호 (by 프랑수아즈 사강): https://rtmodel.tistory.com/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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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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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으로 보여준 소중한 가치


보후밀 흐라발 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다시 읽고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형용모순적인 상황은 한탸의 존재와 삶 모두를 잠식한다. 독서모임 ‘인생책방‘ 덕에 5년 만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층위의 모순적 상황에 대해 주목할 수 있었다. 이 글은 그것들에 대한 나의 보잘것없는 분석이다.


먼저 이 작품의 심장을 가르는 주제, ‘책을 향한 사랑‘에 대한 두 겹의 점층적인 모순적 상황에 대해서다. 한탸는 폐지 압축공이다. 한탸는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한낱 종이 쪼가리로 취급받게 되는 책들을 파기하는 장본인인 동시에 그 책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겸비한다. 그는 파기되는 책들 중 일부를 선별하여 모으기도 하고, 읽고 온몸으로 흡수하기도 한다. 그 자신의 표현으로는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다. 마치 살인자가 인간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마치 백정이 동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첨예한 모순 속에서도 한탸는 책 애호를 넘어 책을 수호하고 구원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폐지 압축기라는 기계로 책을 파기하면서도 책이 상징하는 인간의 고유성을 지키는 존재. 이것이 한탸의 정체성이고 그가 처한 가장 근원에 깔린 모순적 상황이다.


사회주의 체제와 발달된 기술의 여파로 한탸가 사용하는 구형 압축기 시대는 저물고 그것보다 스무 배 효율을 낼 수 있는 신형 압축기가 도입되어 한탸는 필연적으로 직업을 잃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문명화, 기계화로 인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더욱더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이에 따라 책은 점점 더 전통적인 가치를 상실해 간다. 구형 압축기를 사용하던 한탸는 비록 모순적이었지만 그나마 책을 수집하고 읽고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는 여유라도 있었다. 그러나 신형 압축기의 도입은 곧 한탸의 존재 자체를 근원에서부터 지워버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책을 파기하면서도 수호하고 구원하는 모순적인 역할을 감당하던 한탸는 종국에 가서는 더 이상 책을 파기하는 자가 아닌 파기되는 책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책 파기자이면서 책 애호가, 수호자, 구원자의 위치를 넘어 결국 책 자체가 되어버리는 한탸의 강화되고 심화된, 그리고 비극적인 모순적 상황이다. 


이러한 두 겹의 모순적 상황은 작품 속에서 수차례 언급되는 상반된 운동법칙, 즉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 (미래로의 전진)과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근원으로의 후퇴)이 점점 혼재되면서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미래로의 후퇴)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 (근원으로의 전진)도 모두 가능하며, 마침내 이 둘은 같은 것이라는 인식에 다다르는 한탸의 의식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한탸가 만지는 압축기에는 초록색과 빨간색의 단 두 개의 버튼이 있다. 기계를 앞뒤로 움직이게 하는 단순한 조종 장치다. 한탸에게도 처음에 미래는 전진하는 것이고, 근원은 후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을 파기하고 구원하는 모순적 상황 속에 자신을 계속 잠식시키면서 한탸에게 미래는 단순히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는 것이기도 하며, 근원 또한 후퇴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진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책을 파기하는 것은 인간에게 남아 있는 소중한 가치, 이를테면 인간성, 인간다움, 고상함, 고결함 등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책을 파기하는 행위는 후퇴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문명화와 기계화에 추진력을 얻어 효율이 증가하게 된다는 면에서는 미래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미래로의 후퇴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책을 더 빨리, 많이 파기하라는 소장의 고함소리와 함께 들리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시시포스 같은 기계적 반복이 아닌 폐지 더미 안에서 활자가 담고 있는 인류의 지적, 정신적 유산을 흡수하는 행위는 미래가 아닌 근원을 향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또한 이 행위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후퇴가 아닌 전진이라 할 수 있다. 즉, 근원으로의 전진인 것이다. 한탸가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책이 가진 가치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백과사전 의미를 거뜬히 초월하여 인간이란 무엇인지 묻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이외에도 모순을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들이 작품 속에는 많이 등장한다. 이것들을 찾아내어 생각해 보니 작품 이해를 위해 큰 도움이 되었다. 재독 하면서 내가 발견한 예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지상과 지하. 지상은 문명, 물질, 전쟁, 소란을 상징한다면, 지하는 낭만, 정신, 평화, 고독을 상징한다. 한탸가 구형 압축기로 작업하는 공간이 지하인 반면, 무미건조한 신형 압축기로 젊은이들이 효율 충만한 방법으로 책을 폐지 처리하는 공간은 지상이다. 우유와 맥주의 대조 역시 각각 지상과 지하에서 일하는 자의 양식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 우유는 책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유니폼 차림의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젊은이들의 양식인 반면, 맥주는 한탸의 정신적인 고양을 부추기고 디오니소스적인 낭만을 유지하는 인간 고유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맥주라는 알코올은 지하 작업장에서 한탸의 고독하면서도 은밀한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탸의 지하 작업장에는 한탸 말고도 다른 생명체가 한탸와 동고동락하고 있다. 바로 쥐다. 일견 불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쥐는 한탸가 일하는 작업장의 의미, 혹은 ‘근원으로의 전진‘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한탸의 작업장이 지상으로 대변되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작은 지하 공간이라고 볼 때 그곳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쥐가 들끓을 만큼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고 배제되고 소외된 공간이라는 의미를 띠게 만들기 때문이다. 근원으로의 전진이라는 형용모순적인 행동법칙은 다수가 아닌 극소수에게만 참인 진리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백미 중 하나는 작품 마지막 장면에서 묘사되는 한탸의 비극적 운명일 것이다. 책을 파기하는 자가 아닌 파기되는 책으로 자신을 스스로 던져 넣는 한탸. 이 끔찍한 자살 장면을 통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정답은 묘연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한탸의 심정이 온전히 반영된 행위였다는 점이다. 7장 마지막 부분에서 한탸는 손목을 칼로 그어 자살을 행한 세네카의 환상을 보게 되면서 세네카의 사고가 정확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했다고 쓴다. 그리고 세네카의 자살은 자신의 저작인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를 쓴 것이 헛일이 아님을 입증했다고도 쓴다.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에서 말하는 마음의 평정은 타자와 세상의 시선에 맞춘 공허한 삶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아낌없는 삶이 제공하는 만족이다. 그렇다면 세네카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마음의 평정에 다다랐다는 말인가. 한탸 역시 세네카의 뒤를 이어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되었다는 말인가. 


8장 도입부에서 한탸는 카페 ‘검은 양조장’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홀로 세상을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땅에 발붙이고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한탸는 수심에 가득 찬 원들만 소용돌이치는 환상을 보며, 전진이 곧 후퇴라는 말을 하며 자신의 뇌는 압축기에 짓이겨진 한 꾸러미의 사고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한다. 한탸는 홀로 세상을 맞서지 못할 거라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던 걸까. 그래서 더 이상 이 땅에 발붙이지 않기를 결정했던 것일까. 자신이 늘 사용하던, 은퇴한 이후에도 구입해서 집으로 가지고 가려고도 계획했던 구형 압축기 안에 자신의 뇌뿐만이 아닌 몸뚱이 전체를 던져 넣음으로써 궁극적으론 포기를 선언한 것이었을까.


한탸는 그렇게 압축기 안으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 과정 모두를 기록한 저자 보후밀 흐라발 덕분에 한탸는 이렇게 오늘날에도 우리 곁에 살아있다,라고 나는 믿고 싶다. 인간의 고유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책 속의 인물이 된 한탸 덕분에 우린 책이 가진 소중한 가치를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은 나머지 상징들은 독서모임 ‘인생책방’에서 마저 나눌 계획이다. 각자의 고유한 생각을 나누는 풍성한 모임 덕분에 이 책에 대한 이해는 물론 우리 삶 또한 깊어지리라 확신한다. 또한 책은 나에게 무엇인지, 나는 왜 책을 읽는지, 나아가 내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질 계획이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 초독 감상문: https://rtmodel.tistory.com/1020

* 재독 감상문: https://rtmodel.tistory.com/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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