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인은 환을 손에 꼬옥 쥐고 남편의 방문 앞 틈으로 말을 걸었다. 남편은 단지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관아로 끌려가 매를 맞았다. 그 이후로 사람이 변해 식사도 거르고, 뭔가를 계속 연구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면 요리를 해서 기분을 푼다던 남편이 객잔의 업무도 멈추고 계속 뭔가를 계산하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숫자계산? 그건 딱히 나쁜 일은 아니지만, 객잔 업무도 멈추고 할 계산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더더군다나 관아에 끌려간 지 6일만에 풀려난 남편의 얼굴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차 있었다.
어둡고 음습한...

“여보. 사관님이 오셨어요.”

그건 복수심이 아니었다.
단지 조련된 짐승의 눈빛.
오부인은 아비가 투계와 투견으로 큰 돈을 벌어들이던 자라서 그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심했다.

아비는 돈 밖에 모르던 작자였기에 어느날 투계를 제때 받지 못했던 지금의 남편에게 팔려왔다.
그때 아비의 눈빛이 그랬던가?
하지만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관아에 끌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 선단을 받아왔소?”

남편이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문틈으로 그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주구려. 이걸로 몸이 좀 한결 나아지겠군.”

“제가 상처를 좀 봐드...”

“아니오. 됐고. 가...가보시오.”

남편이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항상 능변이었던 남편이었기에 이 변화도 오부인에게는 낯설었다.
자신이 알던 남편이 아닌 듯 했다.
오부인에게 항상 등을 주물러달라고 했던 나이 많고 유쾌했던 남편은 더 이상 없는 듯 했다.
문틈으로 본 바로는 쉰이 넘은 그의 몸이 어째 관아를 나서면서 갈수록 탄탄해진 듯 했다.
확인을 할 수 없도록 그가 막고 있기에 그녀는 그의 몸의 변화를 확실히 알 순 없었다.

“그 환단이 효과가 좋으니 다음에 2개를 갖다달라고 이야기 좀 전해주구려. 피곤할텐데. 당신도 아랫것들한테 봐달라 하고 쉬고...잘 쉬시오. 여보.”

“여보...정말 정말 괜찮으신거죠?”

오부인은 이제 풀린 어깨를 만지면서 그에게 물었다.

“아, 이제 괜찮소. 그 선단을 마저 먹으면 더 나아질게요. 근데 관아에 날 데리러 오다가 당신 좀 다친 것 같던데...상처는 괜찮소?”

남편이 다정하게 말을 걸자 오부인은 눈물이 날 것처럼 기분이 풀렸다. 보통때의 남편같았다.

“사관님이 상처를 봐주셨어요. 점혈을 풀어주셔서 뭉친 부분은 풀렸어요...”

“잘 됐구려.”

남편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토닥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안하오. 남편을 제대로 못 만나서...당신까지 그런 곤욕을 치르게 하다니...당신같이 어여쁜 여인을 그렇게 심하게 때리다니...”


“아니에요. 정말 사랑해요.여보...나중에 다 나아지면 모습 보여주세요...기다리고 있을 게요.”

오부인은 그렇게 말하고 남편의 방문앞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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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희는 도착했는가?”

왕은 초조하게 집사를 불렀다.

“아직...입니다. 전하.”

“왜 아직 입국했다는 말이 없는가? 이틀 전에는 도착해야!”

“전하. 잠깐...전화가 왔습니다. 나다희양이라는데 받으시겠습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이 전용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왜 입국을 안 하는가! 간택을 그대때문에 멈춰야겠나!”

“...전하. 지금 전 입원 중입니다.”

나다희가 딱딱한 어조로 대꾸했다.

“저 없이 간택을 진행하셔야겠네요.”

“그대 없이는 하지 않는다!”

왕의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어전이 뒤흔들릴 지경이었다. 사관이 기록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는 하마터면 애정사때문에 왕권을 흔들 왕으로 기록될 뻔 했다.

“전하. 전 지금 총에 손이 관통당했습니다. 붕대를 감고 있어서 간택에 어울릴 상황이 아니에요.”

“다리가 아니라 손이라 다행이군. 그대. 다리라 할지라도 휠체어를 타고 오도록 하려고 했는데 다행이지 않은가.
손을 다친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그대는 비로 오진 않을 거 아닌가? 그대를 위해서 왕립 극단을 다시 꾸릴텐데...그대도 알지? 간택에 들어온 여인은 절대 궁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과분한 관심이십니다.”

다희가 냉랭하게 대꾸했다.

“전 그딴 집단 있던지 없던지 상관없...”

“아니 그대를 빛나게 하려면 오로지 그것이 필요해. 난 빛나지 않은 사람은 필요치 않소.”

“전하.”

비서가 말렸지만 왕은 계속 강조점을 찍었다.

“노구진은 어디에 있소? 총을 쏜 건 그 작자일테지.”

“제 손을 쏘고는 유치장에 갇혀 있다는군요.”

“방해감이 저절로 일을 쳤군. 하긴 충격이 컸을테지. 제 손으로 키우겠다고 데려갔는데 후원이란 후원은 다 끊겼으니...내가 뒷 손질을 너무 잘 해서...”

“전하께서 너무하신거죠.”

다희가 구진의 역성을 들었다.

“난 다만 강제로 여자를 취했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았을 뿐이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대는 나도 구진도 아닌 민부마를 선택했을 테니.”
  
“그 이야긴...”

“됐으니 대사를 찾아가서 노구진을 데려오라 하시오.”

“네?”

“그에게 기회를 주는 거요. 같이 입국하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거요. 그대와 노구진은 더 이상 연인이 아니라고. 그리고 간지용 살해 혐의를 그에게 씌우시오. 그대를 고발한 여경인도 무고로 고소하고.”

“전하...노구진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소. 그대가 내게 전화했던 그 순간 결정났던 거요. 법은 지엄하오. 그대는 무죄하고 구진과 경인은 그렇지 않으니 내 말 대로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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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유산했다지?”

구진이 서스펜더를 올리면서 다희에게 물었다.

“응.”

그의 얼굴에 수심이 낀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이제 완벽하게 그들 둘 사이를 가로막는 사람은 없는데, 어째선지 어제부터 줄곧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 그건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상관없었다.이제부터 그녀와 그는...

“너 어제 뭐 받았지?”

“응?”

뭔가 곧 빼앗길 것 같은 기분.

“왕실에서 누군가 온 거 아냐? 내가 없는 사이에.”

“......”

“그건 내가 당신한테 할 말인데?”

다희는 전신거울을 보면서 몸을 체크하고 있었다. 적당하게 근육이 잡힌 몸에는 너무 균형이 잘 잡혀서 살이 얇게 보일 정도였다.

“어제 내가 연습 나간 사이에 왕실 집사가 왔다갔다고 들었어. 뭐 들은 거 없어?”

“공주가 유산했다는 이야기.”

“어머. 신문에도 실리는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러 굳이 왕실 집사가 와야 해?”

“...시시한 이야기라고?”

“그럼 일반 신문에도 실리는 이야기. 시시하지 않아?너도 시시한 남자야.시시한 사람한텐 시시한 이야기밖에 없지.”

“...나다희. 솔직히 말해봐.”

구진이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다희의 팔을 잡아당겼다. 덕분에 조명을 받아 어슴프레했던 그림자가 갑자기 진해졌다.

“너, 이번에 왕실 간택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대체 어떻게 나온 거야?”

“...어머, 그걸 이제 알다니 너도 참 느려. 노구진.”

나다희는 팔을 뿌리쳤다.

“어제 온 왕실 집사가 그러더군. 간택 명단에 올랐다고.”

“...이제사 진심이 나오네?”

다희는 긴 손가락으로 화장대의 물담배를 집어들었다.
후~하고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래. 왕실에서 간택 명단에 들었다고 귀국하라고 그러더라고.”

“...너!”

구진은 늘 가지고 다니던 단도를 손에 들고 다희의 목에 갖다댔다.

“너! 절대 못 가!”

“왜?”

“너 나하고 세계를 뒤흔드는...”

“내가 왜?”

다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왕 집착 장난 아냐. 절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어.”

“...못 간다고. 내가 널...”

구진은 이제는 그녀의 목을 팔로 감은 후 꺽꺽 소리를 내면서 울음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했다.

“널 보낼 바에야...”

“너도 집착 장난 아니고.”

아이를 타이르듯 그녀는 천천히 구진의 손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그리고 살짝 뒤로 밀었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던 그는 그대로 침대쪽으로 밀려나갔다.

“내가 당신들 하는 일을 모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 너나 왕이나 시길백작이 거슬렸던 거고...
제거를 한 다음에는 서로에게 좋도록 일을 꾸민 거지. 넌 백작을 제거해서 좋았을 거고. 왕은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안돼. 절대로 못 보내...”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집으면서 그가 손이 풀리면서 떨어뜨린 단도를 주워올렸다.

“포기해. 어차피 왕은 날 비로 간택할 생각은 전혀 없을 테니까.”

“거절해.왕을 거절해. 난...”

구진의 애타는 말에 그녀는 그에게 얼굴을 갖다댔다.

“왜?”

“......”

“난 널 용서 못해.”

나다희는 또박또박 말하면서 검정 드레스를 입었다.

“넌 시길을 공주에게 팔았어. 그래서 난 반대로 한 거야. 네가 공주에게 시길을 보냈다면 난 내 스스로 왕에게 가는 거야. 찔러 죽이려면 해봐. 네가 날 찔러죽인다고 해서 내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아? 너도 간지용이랑 같은 부류라는 걸 이제서 알았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야.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지고 싶을 뿐이지.”

그녀는 킬힐을 신었다. 이제 그녀의 키는 쪼그라들고 패닉 상태에 빠진 구진보다 훨씬 더 당당하고 커보였다.

“부탁해. 제발. 나랑 결혼해줘.”

구진은 숫제 바닥에 누워 그녀의 발을 붙들었다.

“이제사 말해서 미안해. 결혼해줘. 제발.”

“비굴한 짓은 그만둬.”

그녀가 나직하게 말하면서 그의 손에 단도를 다시 쥐어주었다.

“차라리 날 죽여. 그게 당신한테 훨씬 더 어울리니까.”

그리고 나다희는 그의 손을 구두에서 떼낸 후 호텔룸의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내 총성이 울려퍼졌다.

타앙! 타앙!

그리고 그녀는 피를 흘리며 문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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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 1 The Great Couples 5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자세한 도판과 설명은 감사하지만 이사벨라 데스테가 시집간 곳은 페라라가 아니고,본인도 나폴리왕의 딸이 아님, 곤차가에 시집갔음,그리고 바쿠스 도판의 설명에 오류있음.개정판이 나온 걸로 아는데 수정되어 나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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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님!”

시길은 초조한 얼굴로 공주의 주치의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빨랐다. 모든 것이 너무 빨랐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송합니다. 노력했지만...”

“공주님은?”

시길이 실내복을 정장으로 갈아입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공주님은...지금 상태가 위독하십니다. 지금 가셔서...좀...”

시길은 꼼꼼하게 커프스 단추를 채웠다.조금은 성가신 일이었지만 위치가 위치인만큼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의례대로 하다보면 조금 늦을지 모릅니다.”

시길은 그렇게 말한 후 자켓을 입고 공주의 방으로 걸어갔다. 뛰면서 안되는 것이 법도이다보니 그는 천천히 무게감있게 걷는 수 밖에 없었다. 급박한 상황인데도 지켜야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 그를 옥죄였다,

“내가 왔습니다. 상태는...?”

침대에 누워있는 공주는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이 와서 괜찮아요.”

“...결국.”

“태어날 운명이 아니었겠죠.”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시길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맡에 있는 물수건으로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어차피 당신의 아이가 아니었으니까요.”

공주의 말에 시길이 조용히 그녀의 손을 매만졌다. 손질이 잘 된 손톱도 아까 전 진통때문인지 금이 가 있었다.


“벌받나봐요.”

공주의 말에 시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여보. 기운차려요. 다음 번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테니까.”

“...죽을 거 같아요.”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시길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요즘 의학기술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요. 공주. 당신이 너무 마음이 약한 거니까...”

“그래도 당신을 남편으로 맞은 건 잘 한 일 같아요.”

공주가 고통으로 찌들린 얼굴을 조금씩 펴면서 그의 손을 만졌다.

“당신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당신은 정말 선한 사람이에요.”

“......”

“오빠가...”

공주가 말을 이었다.

“내가 회복이 되면 당신과 날 다시 궁으로 부를 거에요.”

“?”

시길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곧 비를 들일 모양이에요. 간택심사를 당신과 내가 봐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시길은 이제 긴장이 좀 풀렸는지 정장 베스트를 드러내었다. 공주는 이제 긴장과 공포가 좀 가라앉았는지 얼굴에 홍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하여간 알아두세요. 내가 잊을지도 몰라서 미리 이야기하는거에요.”

“...집사에게조차 안 알리신건...”

“극비에요. 방계로 왕정이 넘어간 이래 처음있는 간택이에요. 그러니 아무 에게나 알릴 수도 없는 거죠.”

“...여자가 보는 게 아니고?”

시길의 말에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악녀같은 얼굴을 지어보였다. 지금은 그녀의 마음을 잘 아는 그라서 그것이 위악적인 표현이라는 걸 금방 알아보았다.

“당신들 뭔가 꾸미고 있군.”

시길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쁜 버릇이에요. 미나 공주.”

“...당신도 조금 뼈가 아플지도 몰라요.”

그녀가 조용히 대꾸했다.

“왜냐하면 그 간택 심사 명단에 나다희가 올라가 있거든요.”

순간적으로 시길은 사랑하는 아내의 목을 조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난 당신의 그런 얼굴이 좋아요.”

공주가 천천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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