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홍은 설한과 한빙이 자는 걸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자...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패설사관은 황제의 명을 받드는 직속 수하다. 하지만 황후의 명령도 거부할 수 없다.
황후는 그에게 빙궁의 사람을 보는 즉시 죽이라고 명했다.

“자아...이젠 황제궁에 까마귀를 보내야 하는 건가...”

그는 검을 뽑았다 넣기를 반복했다. 그 둘이 자는 순간부터 새벽이 올때까지 계속 그걸 반복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죽은 궁주와 그는 각별한 친구 지간이었다. 남녀를 떠나,검을 나누는 그 순간만큼은 둘은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살고 죽고는 운명일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홍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다. 수많은 고난을 겪고,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은 그가 강직하게 자신의 길을 달려왔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대세를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왜 자신을 이 위치에 올린 황후가 그 명령을 내렸을까?

알 수 없었다.
그가 황후의 은인이라서?
아니면...

“안가이. 그대가 부럽군.”


미홍이 처음에 극북으로 향했던 것은 과거 그의 전임이었던 안가이가 현 황제의 첩과 정을 통했기 때문이었다.
패설사관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그는 황제가 알기 전 잽싸게 극북으로 향했고...
기실, 극북으로 정복한 자라는 칭호는 미홍이 아니라 안가이였어야 했다.
안가이는 제 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전 빙궁주의 호위이자 친척이었던 여자와 다시 연분을 맺었다.

빙궁은 치외법권의 지역.
미홍은 빙궁주의 묵인 하에 안가이의 여인을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밖으로 끌어낸 후 그를 쳐죽였다.

안가이의 여인은 울지 않았다.
차분하게 그 시신을 얼음관에 넣고 빙궁주위를 떠도는 유빙에 그 관을 넣어 보냈다.
그녀는 임신해 있었고, 황제는 아이의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고 해서 이날 이때를 지나왔다.
안가이의 아이는 둘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살아있고, 하나는 죽었다.

“둘 중 하나는 안가이의 자식들인가?”

그는 더 이상 칼을 뽑지 않고 설한과 한빙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황후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는 주머니에 있던 주사위를 꺼내 높이 던졌다. 패설사관의 전통.
알 수 없는 상황에 떨어졌을 때 주사위 놀음으로 결정하는...
주사위가 손바닥위에 떨어졌을 때 그는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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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즐친 감사드려요.
복 많이 받으세요~~

태인 2017-12-30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순님.감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해도 잘 부탁드려요.즐친 감사합니다.
 

시길은 자신의 방으로 건너 온 미나 공주에게 당황했다. 공주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다면서 구진이 데려온 그녀는 마치 조각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바로 시길 자신이라는 조각품을!

“왜 피그말리온이라고들 하는 지 알겠어...”

그녀는 살짝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고 그의 뺨에 손을 갖다댔다. 시길은 성격상 능글맞게 받아넘길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손은 시길의 거칠고 딱딱한 손에 밀려 그의 뺨에 닿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오라버니가 저 여배우를 맘에 들어하니...”

그러나 그녀는 주저하지 않았다. 왕에게는 솔직했지만 다른 남자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까칠하다고 알려진 그녀가 마치 사냥감이라고 탐색하듯 그와 거리를 두지 않고 다가왔다.

“나는 ...그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대와...”

다시 그녀의 손이 다가왔다.

“...그대는 충성명령을 했잖아?”

썩은 냄새가 날 정도로 달달한(아마 향료를 입에 넣고 다니는지...)그녀의 체취가 후욱 하고 그의 뺨에 와 닿았다.

“잘 하면 왕가와 친척관계가 될지도?”

“...유감입니다.”

시길이 될 수 있으면 그너에게서 조금만 더 떨어지려 노력하면서 말했다.

“저는 정혼자가 있습니다. 2주 뒤에 결혼할 겁.니.다.”

“어머나?”

“그러니까...”

“정혼자가 있다고 바뀌지 말란 법 없지?”

그녀가 다시 말했다. 물론 손은 그에게서 멀리 한 상태였으나 포기는 하지 않은 듯 했다.

“난 공주. 그대의 정혼자는 평민.”

“......”

평소같으면 해실거리면서 넘어갈 시길이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멍청할 정도로 단순한 그인지라 어떤 해결책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대에게 관심이 생겼어. 무대에서 그렇게 뛰어노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충성맹세보다는 연기라는 가면을 쓰는 걸 즐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하고. 막상 보니 당신은 기린 같아. 휘청거리는 발로 돌아다니는...
안주하지 못하는 불안한 기린. 그대는 기린같이 아름다워.”

공주가 살짝 그의 어깨를 안았다. 공주는 여자치고는 큰 키였기에 시길과 어깨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당신이 내게 와 준다면...”

공주가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그의 귀에 갖다대고 말했다.

“당신은 영생하는 조각이 되어 전국에서 당신의 이름을 칭송할텐데...”

“...공주님!”

선실밖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길에게 말했다.

“다희 누나!”

“저 여자에게 돌아가라고 말해.”

공주는 아예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공주님! 시길군은 배우에요. 배우에 맞는 대접을!”

다희의 날카로운 명령조에 공주가 다시 그에게 말했다.

“다시 이야기하겠어. 저 여자에게 돌아가라고 말해.”

“......”

시길은 눈을 감았다...

“공주님...”

“저 여자가 죽어도 좋아?”

“......”

공주가 다시 말했다.

“다시 말하지 않게 해.”

“...누나...”

시길이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그 순간에야 그는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거 같았다.

“누나 방으로 돌아가요. 이건 내 일이니까...”

“시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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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미나는 일본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미나! 그녀는 현 왕의 사촌 여동생이었으며, 엄밀히 따지자면 왕위 계승 2순위였다.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야심이 많았다면 그녀와 왕 사이의 계승 다툼이 치열했을 터였다.

“공주님.”

“왜 또 따라오는 거죠?”

공통점은 있었다. 왕과 그녀는 유희를 꽤나 즐겼다. 두 사람만의 농담이나 난잡하게 쓴 소설이 왔다갔다 하기도 했는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전하께서는...”

“오빠와 나 사이에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추악한 일 따위는...”

왕이 적당한 스캔들을 즐긴다면, 그것도 악취미스럽게 사촌 여동생과의 스캔들을 꾸며댄다는...
그녀는 정말 치열한 순간들을 즐기며- 그녀에게 한번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기에-공부 외에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에게 말을 걸 던 사나이가 신문을 하나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그 신문에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희롱하던 사촌 오빠가, 드디어 사랑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가 그 감정을 자각하자마자 상대에게 뻥!하고 차인 것...

“훗.”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깔깔할 정도로 거친 오라버니가, 자신 외에는 주고받지 않는 그 시시껄렁한 감성을 발휘한 것이다.

한 여배우에게.

“디아길레프라도 되나 이 사람은?”

그녀는 웃으면서 기사를 읽었다. 앞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고.

“그럼...공주님께 소개를 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말이죠?”

공주는 앞의 상대를 다시 노려보았다. 자세히 보니 남자의 모자로 깊숙이 가린 볼에 살짝 긁힌 자국이 있었다.

“아무래도 최고의 배우를 손에 넣었지만, 후원이 떨어져서 말입니다. 겨우 1인극이나 할 수 있을...”

“아, 디아길레프!”

그녀는 그제서야 신문에서 그 요란한 배우의 후견인을 맡았다는 사람을 알아보았다.

“당신은 그, 우리 왕에게서 여배우를 빼앗았다던 그 사람이군요! 노구진씨 맞나요?”

“...황송하게도...”

간지용의 죽음이 살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나, 그 도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몸에 어떤 자국도 남지 않았기에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뒤 진상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다희의 유모가 정체불명의 열병을 심하게 앓았고...
그 뒤에 그녀는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나이가 많았고, 설마하니 농아가 되리라 생각한 적도 없기에 그녀는 수화도 배운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목격자로 지목할 사람도 없었기에...
그녀는 입을 다문 채 다희를 모셨다.

다만 짐작과는 데가 없지 않았던 왕은 노구진과 나다희, 그리고 민시길에게 해외로 나갈 것을 명령했다.
시길의 약혼녀, 경인에게는 전혀 배려가 없었다.
여소장은 평민에서 겨우 올라온 터라, 왕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젊은이 그룹에게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젊은 것들이 지위만 믿고 오만하다며 부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고, 그녀 역시 생각이 같았기에 부부는 오래간만에 오붓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여기서 초조한 것은 그저 경인 한명뿐으로...
그녀의 미모에 반한 소그룹의 청년이 접근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기는 힘들었다.
겨우 상대를 설득해 왕에게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왕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 그저 참으라고만 했을 뿐이었다.

“기다리라. 그대.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내는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아니면.

그녀가 돌아간 후 빈 알현소에서 왕은 중얼거렸다.

“모든 게 다 허사가 되리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촌 여동생이 탄 배에 그 배우들과 연출가를 태워 귀국하게 했다.
귀국까지는 3일. 크루즈 여객선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지...그로서는 재미있는 일이었다.
사촌누이도 이런 유희는 제법 즐길 것이다...

“내 여자를 빼앗아갔으니 그 놈들도 벌은 좀 받아야지.”

#배우의옆얼굴 #소설 #도스토예프스키 모사 #백치 #오마쥬 #디아길레프와니진스키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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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주님이 돌아가셨다고요?”

난동을 피운 자들에게 요금을 물린 객잔주인은 채미홍을 알아보고 그와 설한, 한빙에게 방을 내주었다.
황제에게 하사받은 황금검을 가진 자는 어디를 가던, 어떤 일을 하던지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사관으로서는 분에 넘치는 호사겠으나, 사관 중의 사관인 채미홍에게는 결코 호사가 아니었다.

“까마귀가 옥반지를 물고 왔더구나.”

“아, 이런...”

인가를 받으러 가다가 인가 대상자가 사망했으니, 설한과 한방은 어쩔 줄을 몰랐다.
설명들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한때 극북, 극서, 극남, 극동의 최고 무공을 지닌 자들을 일러 극북의 빙궁주, 극서의 모래성주 극남의 열도주
극동의 일화교주라고 칭했다.
그리고 몇년 간의 간격으로 노쇠, 반란, 행방불명 등의 사유로 각각 사라지거나 교체되거나 하였다.
빙궁주의 자리는 요행히 노쇠를 이유로 자리가 1번 바뀌었는데, 바뀌자마자 빙궁주가 죽었다는 소식이 궁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럼 다시 빙궁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한빙의 물음에 미홍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돌아가지 않는 게 좋겠다.”

그리고 미홍은 원래 그의 성격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빙궁주는 살해당했다.”

“......”

둘은 경악했다. 입조차 떼지 못하는 그 둘에게 미홍이 말했다.

“빙궁은 불에 타고, 궁주를 시해한 자가 직접 편지를 황궁의 내명부로 보냈다더구나. 지금쯤 극북으로 황제의 병사들이 가고 있을 게다.물론 멀쩡하게 도착이야 하겠느냐만은...”

“...어째서 빙궁에 황제의...”

설한의 말에 미홍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조항아가 스스로 궁주를 살해했다고 보내면서, 반란의 소지가 있어 자신이 제거했노라고 하였더구나.”

“......”

“너희도 알고 있겠지? 극동의 일화교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너무나도 똑같아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황제를 섬기지 않고 태양으로 얻은 불을 신으로 섬기는 일화교는 언제나 황제치하의 골치거리였다.
일대 천을 자랑하는 일화교주 백지련은 한때 황제를 넘볼 정도의 무리를 거느렸으나, 어느날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잠자는 사이에 목이 베여 효수되었다.
그리고 그의 강함을 흠모하던 일화교는 단단한 구심점이 사라지자 하나 둘 사라져 지금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화교는 백지련이 죽어서 사라졌지만, 빙궁은 설녀들의 근거지. 일반인을 공격할 우려가 있으니 다 죽이자는 말이 나왔단다.”

미홍이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그럼 죽겠군요.”

한빙이 말했다.

“죽어야 하는군요...단지 설녀라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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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집이라곤 하지만 통찰이 잘 보이는 모음집이랄까.
개인적으로는 하루키가 음악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해줄 때가 제일 좋았다.
특히 재즈...
담배냄새 나는 것이 재즈라고 생각했던 내게 사야마 마사히로와 웨인 쇼터의 연주를 소개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
하루키 선생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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