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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거 좋아해?

난 잠자는 걸 좋아해.

그리고 꿈꾸는 것도 좋아해.

근데 왜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는걸까?

가끔씩 묻고 싶어.

왜 다들 자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난 서늘한 나무그늘 밑에서 쭉 뻗고 자는 게 좋은데.

그 사람들은 어째서 뜨거운데서 뭔가를 하는 게 더 좋은 건지.

뜨거운데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뭔가 굉장히 불쌍해.

꿈꾸는 건 다른 거 아니잖아.

좋아하는 일이라면 잠자는 대신에 웃으면 되잖아.

하지만 다들 인상 쓰고 있지.

꿈꾸는 시간이 아깝다고.

왜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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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 멀리서 비구름을 몰고 온 바람 끝에 비가와.

떼구르르 첨벙. 비가 오고 있어.

개구리가 풀잎사귀 위로 살짝 고개를 들었어.

퐁퐁 샘물이 솟아나.

바삭 말라있던 샘물이 솟아나서 토끼도 물을 마셔.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면 말랐던 땅도 좋아해.

뻐끔뻐끔 붕어와 송사리가 입을 열어서 즐거워해.

비가와.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와서 예삐도 꼬리를 흔들고 기뻐해.

비가 와서 몸이 씻겨진 풀들도 좋아해.

비가왔어. 오고 다시 비구름 타고 떠난다고 해.

안녕. 안녕. 비야. 만나서 반가웠어. 다음에 또 다시 만나.

개구리도,토끼도, 붕어,송사리도, 예삐도 그렇게 인사해.

또 다시 만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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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두들기는 건 인상적인 일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한번 정도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니까. 하지만 그 아이가 두들기는 건 단순한 피아노 건반은 아니었다.

감정이 실리는 피아노 건반에는 하나의 묘미가 있다. 단순히 화가 나서 두들기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치는 곡에 도취되어서 치는 것인지, 혹은 그저 감흥없이 빠르게만 두들기는 것인지.

나는 피아노를 별로 좋아해 본적은 없지만, 사람들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 건 좋아한다.

피아노를 치는 손끝에서 물고기가 튀어나온다는 말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짜라짜라라라라라 쨘쨘.

행진곡 끝을 살짝 뭉개버리는 중학생, 혹은 아라베스크의 미묘함을 마치 이제 풋풋한 여성의 골격을 갖춘 것처럼 그 등을 살짝 보이는 것으로 해결하는 초등생.

, 나는 어째서 어린 시절에 그 피아노의 속살을 깨끗이 바라보지 못했던가.

이제 와서 피아노를 치면 무엇이 튀어나올까 두렵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어린 시절의 그 서투름 혹은 피아노에 대한 미움과 사랑을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아이가 치는 젓가락 행진곡을 건너방에서 들으면서 나도 어설프게나마 피아노 건반에 손을 대어본다.

딴딴딴딴 딴딴 딴딴 딴딴따...

누군가가 이 피아노를 듣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까.

설사 어설프다 느끼더라도 나는 피아노를 칠 것이다. 마치  황량한 땅에 꽃씨를 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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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동료들의 위로를 받으면서도 그는 어쩔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그건 그가 아내에게 지나치게 애정을 쏟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문제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 대낮에 아내의 배를 향해서 총을 쏘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 나라에선 총기 금지법이 있지 않나. 그런데 어째서 범인은 선량한 시민이면서 한 사람의 훌륭한 아내이자 곧 모성애 넘치는 아이의 어머니를 쏘았단 말인가.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그는 잘 풀리지 않는 결과에 절망했다.

가능하다면 그 범인을 자신의 손으로 잡고 싶건만, 모두들 그의 절망보다는 법에 의지하라고들 말했다. 그의 훌륭하기 짝이 없는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집필하는 시간동안 늘 앉아있는 그의 서재에서 친구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마치 형님이 그러듯이 천천히 말하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있어. 그 마음. 나도 잘 알지. 하지만 제수씨가 자네에게 뭐라고 할 것 같은가. 이 어리석은 사람아. 복수는 자신을 망치기만 할 뿐이야. 조금만 참게.”

 

조금만? 어떻게?

 

그는 친구의 손을 놓아버렸다.

친구는 몇마디를 더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천장에 장난감처럼 매어놓았던 나무총을 꺼내들었다. 물론 총으로서의 본래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 물건이었다. 쏠 수 없는 장난감인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그 총을 집어들어서 반대편 벽에 훌륭히 장식되어 있던 박제를 향해서 집어던졌다.

 

챙그랑.

 

유리벽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그의 마음도 깨어져나갔다.

 

쯔쯔. 불쌍한 친구같으니...”

 

그의 친구는 그가 집어던진 나무총을 들어다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유리 부스러기가 그의 손에 닿아 까끌거렸지만 그는 그 감촉조차 느낄 수 없었다.

 

힘들면 나한테 말해. 내가 자넬 도와주지...”

“......”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뭐든지?”

 

그래, 뭐든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범인에 대한 복수라도?”

 

친구는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공적으로는 안되지만 사적으로는 도와줄 수 있어. 언제건 이야기하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집필실을 나갔다.

 

얼마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할 수만 있다면.

복수를.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보, 내 눈에는 아직 당신이 보여.”

 

 

친구가 나간 그 자리에 그의 아내가 그를 향해서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그 날의 피묻은 옷자락에 미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안고서.

그 손가락은 정확하게 집필실을 나간 친구의 발자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발자국 하나하나에 그녀의 피가 묻어서 너무나도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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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란 얼마나 큰 축복이란 말이냐. 그는 그렇게 흥얼거리면서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었다.

남자가 임신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만은, 그는 가끔 톰 크루즈처럼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그에게는 그의 이런 사소한 결점에 대해서 지적해주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오늘같은 때에는 그 친구조차도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동의해 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처럼, 그가 자신의 아내와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는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경찰같은 직업이 어디 짬을 잘 낼 수가 있는가 말이다.

그런 친구 하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었다.

그는 경찰이지만 동시에 로맨티스트였다. 짭새니 뭐니 불려도 그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남들이 뭐라고 부르건 뭔 상관인가, 그 사람들은 아마 사랑하는 가족이 없거나, 불평쟁이들일 것이다. 그는 철두철미한 복고주의자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필을 잘 깎아놔야 하고, 그 연필이나 혹은 만년필이 미끄러지듯이 종이위를 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좋은 종이도 있어야 했다.

거기다가 한 점 더 ! 타자기.

요즘은 타자기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원의 말에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구한 구형 타자기.

어차피 오래 가지 않을 건 알고 있지만.

톡 톡 톡 톡 토독.

 

타자기를 두들기면서 그는 앞일에 대한 자신의 희망사항을 소설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세에 살고 있고, 집필실도 좁아터진 방 한간 뿐이지만, 곧 아이가 태어나면...태어나면...

월급도 더 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세에서 자가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대필소설도 대박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는 예쁜 여자아이일 것이고, 땡땡이 옷을 입은 그 아이는 무당벌레처럼 귀여울 것이다.

화단에는 커다란 접시꽃과 무궁화가 피고, 가을에는 수줍은 듯이 수수한 들국화가 피어날 것이다. 아름답고 예쁜 꽃들. 내 팔안의 아내와 아이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껏 망상에 빠져 입가가 실룩거리고 있던 그가 알아차린건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던 그 소리가 온 집을 떠내려가게 할 듯이 크게 되고 나서였다.

 

무슨 일이야?”

 

집필실 문을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까지 올릴 수 있는 습관을 가진 건 친구 뿐이었다. 그는 문을 급하게 열었다.

 

자네 부인이...”

 

친구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 얼굴만으로도 일어난 일을 알아차렸다. 아내는 이 시간에는 늘 장을 본다. 그렇다면...

친구가 내민 휴대폰을 받으면서 그는 모든 꿈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타자기도, 아이도, 아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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