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썽을 피우고 그러세요. 나이도 드신 분들이...”

 

관리사가 와서 두 사람의 눈에 든 멍을 보고는 혀를 찼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팔을 걷으라고 말했다.

 

왜 주사를 맞아야 하노?나는 멀쩡한데.”

 

그 사람의 말에 관리사가 피식 웃었다.

 

항상 멀쩡하다고 그러시잖아요. 그걸 누가 믿는다고.”

 

니네들이 그렇다고 의사는 아니잖야. 내가 나가는 걸 막는다면 너희들도 콩밥을 먹어야 할걸.”

 

그의 협박에 관리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불쌍한 영감님. 벌써 몇 번째 그 말 반복하는지는 아시나요? 그래봤자 안되잖아요. 아무리 멀쩡하면 뭘해요. 영감님 자식들이 퇴원에 동의하지 않는데...”

 

“.....”

그 사람은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 드러누워버렸다.

 

, 원장님이 그러시던데요. 한번만 더 말썽을 피우시면 독방으로 보내드릴 거랍니다. 선생님 약도 돌려주시지 않을거래요. 왜 심장약 있잖아요...선생님이 매수하신 감시원들은 다 내보냈어요. 그러니까 아시겠죠? 최대한 아주 최대한 조용히 계셔야 한다는 거.”

 

호로새끼!”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한 후 이불을 뒤집어썼다. 관리사는 안됐다는 듯이 보더니 이내 길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도 여기 계실려면 조용히 계셔야지요. 저분 자극해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답니다. 저분은 원래 저렇게 생겨먹었는걸요. 20년이 넘게 갇혀 있으면서 혼자서 별의 별 망상을 다 하죠. 그래도 재산은 많은지 20년 넘게 가족들에 의해서 갇혀 있으니...”

 

길준은 처음으로 그 남자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안정제를 맞고 난 후 천천히 그 남자에게 질문할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단순한 졸부도 아니고, 정신 병자도 아니며, 그저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닌 ,가족에 의해서 버림 받은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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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 오시게

어여 오시게

흰 옷에 꽃달고 어여 오시게

마냥 아이인 듯 웃으며 그리 오시게

 

흐린 날씨에 갈모를 쓰고

맑은 날씨에 깔깔한 모시옷 깔끔히 다려 입고

그리 오시게

손님인 양 웃으며 문 열고 오시게

 

언제나 오려나

문열고 기다리는 내 심정 그대 아는가.

오래 전 남남지간이 되었건만

그래도 나는 문 열고 그대를 기다리네.

 

낮이든 밤이든

혹독한 여름이건 얼어붙는 겨울이건

나는 문열고 그대를 기다리네

 

첫째가 불평하네

어찌 그리 기다리십니까.

제가 안 보이시는가요.

 

그 불평을 왜 난들 모르겠는가.

부모자식간 인연을 끊고 나간

그대가 그래도 보고 싶어

문열고 밖을 내다보네

 

그대 재산을 탕진했다 이야기 들었지.

그래도 언젠가 집에 돌아오고 싶어서

갈모 따로 챙겨놓고

모시옷 따로 챙겨놓았다는 이야기 들었지.

 

짐꾸러미 한켠에 놓인 그 갈모, 모시옷

깨끗이 입고 오는 날.

나는 소를 잡고 잔치를 벌리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돌아오거라.

흰 옷에 흰 민들레를 달고 그리 오거라.

 

불평하는 이 있으면

내 이렇게 말하리.

내게는 죽은 사람이었던 아들이

돌아왔는데 어찌 소를 아끼리.

 

어여 오시게 어여 오시게

아드님 어서 오시게

그동안 고생해서 마른 몸에

기름진 것을 먹여 살을 찌우고

거친 머리에는 아주까리 기름을 발라

다시 보지 못한 내 아들의 얼굴을 보겠네.

 

어여 오시게 어여 오시게

집 문 앞을 서성거리는 마음 붙잡고

어여 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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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평야의 소녀.

귀걸이가 달랑달랑거리고, 웃음을 매단채 술달린 옷을 나풀거리네.

아버지 태양을 향해 손을 내밀고

어머니 달을 향해 뛰어오른다.

술달린 옷 끝에 희망을 달고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강한 힘을 반지마냥 조롱조롱 끼웠네

 

소식을 전하는 까막새야

소녀에게 내 연가를 전해다오

그의 아리따운 연인은 저 먼 전쟁터에서

소녀의 춤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연인마냥 잘 뛰어오르던 청년은

잘생긴 해골이 되어서

강가에서 쉬고 있다네

 

까막새야 까막새야

전해다오.

해골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평야를 지배하던 청년의 이야기를.

잘생긴 해골이 아니라 청년의 이야기를.

 

아무리 잘 생겨봐도

해골은 해골인 것을

희망은 없고 절망만이 남은 이 골짜기의 이야기를

싹 다 빼버리고

연인의 이야기를 전해다오.

 

그 잘생긴 젊은이는 또 다른 골짜기를 향해서

가다가다 하다보니 그냥 까맣게

돌아오는 길을 잊었다고

그렇게 전해다오.

 

소녀여

눈물 짓지 말아다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땅에 반해

널 잊은 것이라고.

 

청년은 언젠가 돌아오리라.

사랑하는 소녀가 늙어 죽어

역시 예쁜 해골되면

그 해골 옆에 묻히기 위해서

달그락 달그락 뼈 울리는 소리를 내며

소녀의 뼈옆에 묻힐 것이라고.

 

지극하신 달 어머님이 지켜봐주시겠지.

그러니 소녀야, 울지 말고

오늘도 평야에서 하늘을 향해 뜀뛰기를 해다오.

전쟁은 마냥 없는 이야기.

연인은 언젠가 돌아올 것이고, 그때까지 너는

반지를 조롱조롱 낀채로 하늘을 향해 뛰어다오.

 

나의 사랑.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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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루 꼬박 진통 끝에

아이는 태어나지만

태어난다고 다 끝은 아닌 것처럼.

젖을 물린 후 요람에서 잠이 든 아이를 하루 진통보다 더한 고통과 싸워가며

키운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외로운 일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되도록 키운다는 것.

그 모든 고통은 손끝으로 온다.

아이는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해 어머니 주위를 뱅뱅 돌고

아쉬운 마음에 차라리 아이 때 모유를 더 먹일 걸, 하고 걱정하는 어머니.

당신이 그런 광경을 보았다면

차라리 아이 낳지 말았으면 하였을 걸.

그 아이가 어머니에게

왜 낳았냐고 비명처럼 내뱉을 때

당신은 도대체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괴로워하였으리라.

그래서 고통이 온 손끝을, 색깔이 바래가는 손끝을

봉숭아 꽃물로 물들이려 했겠지.

하지만 그것뿐이었겠는가.

그 수많은 고통 끝에 겪는 채머리질에

철없는 자식조차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 유일한 위안일까.

아니 위안이 아닐 것이다.

어미란 자식을 키우며 제 살을 깎아먹고 있는데

자식은 그 중 일부만 보고 있을 뿐이다.

말로 종합병원 가라고 이야기하는 자식.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병이 온 몸에 온 당신은

그저 웃기만 할뿐이네.

오늘 오후부터 내일 오후까지 진통했던 당신에게

나 낳기 전 시간을 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나이 먹어가고.

당신께서도 나이를 먹어가네.

부디 건강하시고

함께 같이 또 20년을 살아계셨으면.

어머니.

 

 

20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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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범인을 붙잡던 그로서는 살인범과 같이 있는 것이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어쩌면 이 요양원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알고 있지만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 아니 그 복수해야 할 원인에 대해서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걸 물어봐야했다.

 

선생님.”

 

최대한 어조를 상냥하게 하면서 의사에게 약을 받고 오는 그에게 그렇게 접근해보았다.

 

뭔놈의 얼어죽을 선생님.”

 

[그 사람]은 냉랭하게 대꾸했다.

 

자네 답지 않구만. 그 눈빛은 자주 보던 눈빛이야.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이해타산적인 눈초리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야.”

 

실패했다.

하지만 한번 더 시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다가갔다. 물론 나쁜 쪽으로 질문하는 거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렇게 물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만.”

 

그의 말에 [그 사람]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

 

어떻게 해서 따님을 살해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리고 왜...”

 

그 말에 [그 사람]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짭새라서 뭐가 달라도 달라요. 그렇지. 그렇게 질문하는 게 정석이겠지. 자신의 궁금한 건 숨기고, 알아낼 건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마음에 들어. 그 질문 말이야.”

 

“......”

 

하지만 이건 어떤가. 나는 그 날 요양원 밖을 나가지 않았어. 자네도 알지 않나. 요양원 문은 항상 닫혀 있다는 거.”

 

하지만!”

 

문제는 돈이야. 자넨 복수하기 위해서 친구의 아버지를 설찔렀지. 그리고 전직은 경찰이고. 내가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않나? 결론은 돈. 무슨 짓거리를 해도 무조건 돈 덕분이지. 알리바이를 어떤 걸 대더라도 돈이 최우선이라네.”

“......”

 

길준은 할 말을 잃었다.

 

돈은 세상의 신이야. 모든 걸 지배하지. 자네가 왜 독방에서 2인실로. 그것도 나하고 같이 쓰게 된건지 아나? 바로 내가 돈을 주고 여기 놈들한테 부탁했기 때문이지.”

 

“......”

 

난 사람을 안 믿어.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돼. 그렇다고 내가 조폭이나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진 말게.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돼. 딸네미는 별 거 아냐. 그 앤 커피를 뒤집어쓰기만 한 건 아냐. 내가 흉도 지도록 좀 해놨지. 사인은 아마도 파상풍일거야. 설마하니 죽을 줄은 몰랐지만. 안 나가도 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가능하지. 살인은 아니더라도 살인 교사범은 될 수 있을 거야. 자네 친구 말이야.”

 

뜬금없는 폭탄 발언에 함길준의 목에 핏줄이 솟았다.

 

어떻게...”

 

왜 모르겠나. 내 인맥은 보기보다 넓어. 경찰에게 돈 쥐어준 게 한번 두 번인줄 아나. 특히나 여자문제 꼬이면 더 문제가 생기지. 임신한 상태로 괜히 죽은 게 아니야. 자넨 자네 마누라만 보이지? 생각보다 여자는 복잡하다네. 남자랑은 달라.”

 

길준이 멍하게 있자, [그 사람]은 길준의 어깨를 툭 쳤다.

 

자네 부인은 생각보다 깨끗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길준은 이내 이성을 잃고 [그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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