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내의 환영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손가락은 벽 저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고, 아기는 그녀의 품에 안긴 채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바랐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서 요양원에 갇혀 있는 것보다 그게 더 괴로웠다. 어차피 부부는 남이라곤 하지만, 그에게 아내는 남 이상의 존재였다.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반쪽.

 

그는 요양원 침대에 누워서 도대체 사건이 얼마나 어떻게 진행되었었는지 머리로 복기했다.

그 당시 상처로 본다면 심장 관통, 복부 관통.

태아는 유산, 아내는 심장관통으로 즉사.

시체에 나타난 시반은 병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손가락은 도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가.

무엇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가. 그것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병률을 찌르려고 했던 칼은 어설픈 솜씨로 인해서 엉뚱한 곳을 찔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자신은 아내의 손가락을 보면서 계속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자신이 요양원에 들어와서 약을 먹으며 멍한 정신으로 지내고 있던 날이었다. 사는 게 귀찮아져서 달력의 날짜도 세지 않던 것이 그때쯤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었다. 의사를 계속 만나게 해달라면서 접수부에 성가시게 매달려 있었던 그의 눈이 묘하게 번쩍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계속 관찰하기 시작했다. 보통 안정제나 신경정신과 약을 먹을 경우 정신이 멍해지고 약기운으로 인해서 혀가 꼬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발음도 정확했고 가끔 의사와 만나서 농담따먹기까지 하는 걸 보면 약을 전혀 복용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곧 깨달았다.

어느 날은 복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의사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복용하라고 하면서 약을 [그 사람]에게 억지로 먹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혀 사이에 약을 끼워놓았다가 의사가 사라지자 약을 그대로 뱉었다. 그리고는 얼른 창가에 있는 화분에 약을 묻어버렸다.

 

의사 선생님이 아시면 뭐라고 하시겠는데요?”

 

그의 말에 [그 사람]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놈은 의사가 아냐. 그러니까 안다고 해도 상관없지.”

 

하지만...”

 

자네도 공범이야. 만약 자네가 이야기를 흘린다면 난 자네가 더 미쳐서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만이거든. 나야 그놈들이 알아주는 똑똑한 정신의 사나이니까 말이야.”

 

선생님은 아프신게 아니로군요.”

 

당연하지. 내가 아프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저놈들도 의사는 아니지. 그리고 자네도 미친 게 아니고 말이야.”

 

그는 차라리 미친 것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미치지 않았다면 어째서 20년지기를 향해서 칼을 뽑을 수가 있으며, 그 손가락에 의해서 분노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남자는 자신을 향해서 손가락을 까닥까닥 해보였다.

 

하지만 제 눈에는 아내의 유령이 보입니다.”

 

그럼 살짝 미쳤을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 사람은 아주 돈이 많은 것 같았다. 감시원 각각을 돈으로 구워삶아서 요양원 뒷문을 알아냈고, 그 다음에는 두 사람이 각각 쓰던 방을 2인실로 바꿨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감시원을 유유히 따돌리고 요양원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고, 면회온 가족의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부었다고 했다,

 

왜 내꼴이 우습냐?”

 

마침 같은 날 면회가 잡혀 있어서, 어머니를 뵙기 위해서 나온 그를 향해 그 남자가 내 뱉은 말이었다.

 

딸년이라고 해서 다를 줄 알았더니...유산 상속을 해주지 않으면 내보내지 않겠다고!”

 

“......”

 

날 이런 곳에 가둬놓고 그런 말을 할 배짱이 있다는 게 웃긴 것들이야.”

 

그날이었다. 그 남자의 딸이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가벼운 상처가 크게 덧나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 남자는 울지도 웃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러길래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고 했는데...”

 

아내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그 남자]에게 향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안녕하세요. 태인입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이제 인터넷 연결이 가능해서 자주 연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의외의 곳에서 인터넷이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남자는 버스에서 내렸다. 길함동에 있는 성당에 찾아가는 길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초췌했지만 검은 선글라스에 가린 눈만큼은 살아있었다.

양복에 잘 싸인 몸은 그가 그렇게까지 약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새 양복이라서 미처 떼지 못한 레테르가 붙어 있었다.

남자는 잘 벼려진 칼같았다.

남자는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이건만 단 몇 번의 눈움직임으로도 길을 다 파악한 것 같았다.

길을 잃어버리지도 않고 주저하지도 않은 채 남자는 길함동 제2433길에 위치한 성당을 찾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젊은 신부 하나가 그를 향해 온화하게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래 전에 맡겨놓은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신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성경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성경을 조심스럽게 들고서 넘겨보았다. 성경책안에 세공이 잘 된 칼과 총이 각각 하나씩 들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남자의 말에 신부가 대답했다.

 

부디 원하시는 대로 되지 않기를 빕니다.”

 

“......”

 

남자는 볼일이 끝나자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 친구는 그 친구의 하나님과 수호천사가 돌봐주시겠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그의 이름은 함길준. 지금 막 요양원에서 도망쳐나온 길이었다.

팀장님 큰일났습니다.”

 

부하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병률을 찾았다.

 

왜 그래?”

 

방금 S요양원에서 2명의 요양자가 도망쳤답니다.”

 

그래?”

 

병률은 느긋한 어조로 대꾸했다. 막 점심을 마치고 커피 한잔을 들고 있던 셈이었다. 한가한 시간을 방해받았지만 그의 어조는 평안하기만 했다.

 

그쪽 관할들 말로는 이쪽 구역으로 도망쳤다고...둘다 위험인물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뭔데.”

 

한 사람의 이름은 함길준. 또 하나는...”

 

길준의 이름을 들은 병률은 피식 웃었다.

 

귀에 익은 이름이군.”

 

귀에 익은 것만큼이나 진절머리 나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면서 병률은 손가락으로 두둑 소리를 냈다.

 

걱정하지 마. 별일 아닐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안녕하세요. 울새를 누가 죽였나?를 쓰고 있는 태인입니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곳으로 가게되어 미리 말씀드립니다.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이고, 가끔 2주에 한번쯤은 인터넷 연결이 가능해서 거의 격주로 연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봐주셔서 감사드리고, 뜸하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연재중단은 아니고, 하루에 한페이지씩 쓰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연재주기가 늦어진다고 해서 양까지 줄어드는 건 아니고요.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리고 그 전에 현관에서 들어오던 한 남자가 이내 몸을 던졌다. 피가 천정쪽으로 솟구쳤다.

 

길준씨...”

 

길준아.”

 

으으으...”

 

아내의 환영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잖아?”

 

병률은 칼을 맞고 정신을 잃은 노인을 보고 외쳤다.

아버지 정신 차리시면 큰일 나겠다. 길준아, 넌 그냥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조만간 어머니하고 셋이서 이야기 좀 하자.”

정신을 잃은 노인은 이내 작은 방으로 옮겨졌다. 사건의 증거물인 식칼은 깨끗이 다시 씻겨져서 한쪽으로 윤희가 치웠다. 길준은 버스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닌 밤중에 아들 집에서 칼침을 맞은 노인이 깨어나서 난리를 피웠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길준은 얼마 뒤에 어머니와 조심스럽게 통화한 병률의 전화로 도시 외곽의 외진데에 있는 요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