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쯤이었을까... 정확하게 세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몇 번쯤 구급차를 탔다. 그 몇 번 중의 한번은 나를 위해 탄 것이고, 나머지 경우는 내가 부모라 부르는 이들을 위해 탄 것이다. 목숨을 앞에 두고 절실한 순간에 찾게 되는 생명줄이 구급차라니... 그런데 항상 죽음을 얘기하는 사람이, 죽을 거라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막상 당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구급차를 부르라 한다. 그러니까 죽을 거라는 말은 다 거짓말인 거다. 숨이 막히고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지니 살기 위해 바동거리는 거다. 그 목숨이 아까워서, 놓기 싫어서...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정말 가기 싫은 곳 중의 하나가 병원이다. 그중에서도 응급실은 정말 싫다. 별일 아니라고 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정말 별일이면 심장도 두근거리고 몸의 기운이 쭉 빠진다. 의사나 간호사, 환자나 보호자 사이에서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갈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혹스러움에 놀라는 것은 기본인 곳. 미리 접수하고 진료 받는 외래가 아니고서야 갑자기 닥치는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움을 만든다. 침착하자고 다짐하고 애쓰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상주하듯 대기실에 있다 보면 금방 지친다. 수도 없이 왔다갔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고 치료가 끝난-아니면 치료를 더 받기 위해 입원실로 올라가는- 환자가 나가고, 시장 속 같은 상황에 어지럼증과 두통이 밀려온다. 늘 한밤중과 새벽에 기다렸다는 듯이 몰리는 곳...

 

 

 

 

 

 

 

 

 

병원을 경험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의사는 최악의 상황을 아주 상세하고 정확(?)하게 미리 말해주는데, 정작 병원비에 대해서 미리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납처에서도 경과된 정산에 대해서만 말해주지 앞으로의 비용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는다. 모두가 모르쇠로 일관한다. 예를 들면,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몸은 현재 이런 상태이며, 이런 치료, 시술(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며,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될 것 같으며, 그걸 시행했을 경우 이런 (아주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각종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동의서는 결국, 이 모든 치료에 대해 보호자가 허락했으니 어떤 변수가 발생하더라도-그게 사망이라 할지라도-병원은 책임지지 않는다, 라는 말로 정리된다. 그런데 그러한 치료(혹은 수술)를 하면서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환자나 보호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의 침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요한 것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말이다.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 이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상품을 구매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가며 구매해야 하는 것처럼, 치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100원의 치료비용이 든다면, 그 100원 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치료에 대한 단가가 적용되는지, 그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치료를 선택해야 하는지의 여부를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산할 때만 말해준다. 100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가 500원의 비용이 청구된다면, 그 500원이 상당히 부담이 되는 금액이면서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의 금액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주치의가 뭔가를 한참 설명하고 사인해야 할 것들을 말하고 있다. 응급 상황의 일이라 설명을 들으면서도 정신이 산만해진다. 외래 진료에만 특진료가 있는 줄 알았는데, 치료나 시술(수술)에도 특진료가 있나 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의사만이 할 수 있다는데 누굴 선택하란 말인가. 그러니까 특진료는 선택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선택이란 단어를 지워도 될 만큼...

 

치료를 받다가 병원을 옮길 경우, 소견서와 검사서 같은 서류를 발급해주기는 하는데, 거기에 또 사인이 필요하다. 자기네 병원에서 치료를 중단하고 가는 것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퇴원 혹은 전원(병원을 옮기는)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곳이었구나... 새삼 알게 되는 사실에 대해 허무한 웃음만 흘리고 있는 시간이다.

 

요즘 의사들 참 잘생겨 보이는 사람이 많더라. 응급실이라는 상황도 그렇지만 지금껏 응급실에서 경험한 의사들 대부분이 오동통 너구리 면발 같은 몸이거나 아주 떡이 진 머리로 무뚝뚝 불친절한 말투이거나 했는데, 이번에 본 의사들은(아마도 인턴이나 레지던트인 듯하다.) 외모가 참 훈훈하더라. 키 180cm는 보통인 것 같고, 얼굴도 평범하면서 눈길이 가더라. 어떤 이는 공유를 닮았고, 어떤 이는 아주 댄디한 스타일로 깔끔해 보이기도 하더라. 제법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응급실이나 의사를 경험하면서 가졌던 편견이 살짝 누그러졌다.

 

하지만 거기까지... 병원은 병원이고, 현실은 로맨스소설이 아니다. 로맨스 소설에서 만났던 병원의 풍경과 의사, 혹은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로맨스는 소설일 뿐이라는 것. 이야기로의 재미는 충분히 즐길 수 있기에 만나도 좋은 소설들이지만, 현실 속 병원에 대입하기는 상당히 거리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틀 만에 집에 잠깐 들렀다. 급하게 나가느라 정리되지 않은 집이 어수선하다. 제날짜에 반납하지 못한 도서관의 책은 연체가 되었고, 하려고 했던 뭔가는 바로 포기를 하게 한다. 갑작스러운 일에 뒤죽박죽 엉망이 된 상황이 두통과 위염을 불러온다. 잠은 잔 것 같지만 잔 느낌은 없다. 보호자 대기실에서의 하룻밤은 멀쩡한 사람도 환자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틀 동안 병원에 있는 보호자들의 표정과 한숨소리를 지켜보면서 거울을 보는 듯했다. 상당히 긴, 장기전이 될 듯한 상황에 몸과 마음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냥, 너도 바로 아파버려.’ 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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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7-0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병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요.. 고생 많으십니다. 음식 잘 챙겨드시구요. 힘 내십시오~

구단씨 2014-07-09 22: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꼬마요정님. ^^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뭐, 그냥, 그럭저럭, 버티고 있습니다.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고 있어서 좋아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웃음도 나고요. ^^
 

 

내일 새벽에 일어나려면 잠을 좀 자야하는데, 누웠다가 일어났다가 몇 번을 반복하는지...

졸린데 잠이 안 온다는 이 어이없는 말을 또 하고 있다.

 

제대로, 여름인가보다.

이른 아침부터 덥더니 하루종일 덥고, 지금도 살짝 덥다.

선풍기를 틀면 춥고, 끄면 아쉬운 상태.

 

술을 많이 마시지도 못 하고, 다른 술도 못 마시고, 그나마 즐기는 게 맥주인데...

한여름의 시원한 캔맥주 진짜 좋은데...

치료 받는 게 있어서 당분간 맥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게 딱 2주 전이다.

그런데 하지 말라면 또 하고 싶은 게 이 못난 심보라서...

맥주를 마시지 않아야 하는데 정말, 정말, 정말, 딱 한 개만 마시고 싶어서 목구멍이 근질거린다.

그래도, 꾸....욱, 참고 있는 중. (그래서 잠을 못 자나?)

 

 

얼마 전에 알라딘 15주년 이벤트 한다고, 우수고객 설문조사 메일을 받았다.

14주년이라고 이벤트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주년? 참, 빠르구나, 생각했다.

나는 알라딘과 함께 2,789일 동안 만났단다.

어라? 이상하다. 나는 매일 알라딘과 인연이 오래 되었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왜 그러지?

아하, 가족 아이디를 사용해서 그렇구나.

오래 전에는 동생이 가입한 아이디로 모든 인터넷서점을 이용했었다.

그러니 그 시간이 자동으로 빠지겠구나...

그래도 내 이름으로 인연 맺은 8년 가까운 시간이, 길긴 길구나...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알라딘... ^^

 

 

이쯤되는 어김없이 알라딘 자체 사은품이 나올 때다.

파우치의 기운이 사라질 때가 되었고, 15주년이라니 뭔가가 새로 등장할 때가 되었잖아.

뭘까, 궁금하면서도 여름을 겨냥한 그 어떤 게 아닐까 예상했더랬다.

와우~ 보틀~이라네. 쵝오~! 뭐니뭐니해도 용량이 너무 맘에 들어서 화들짝 놀랐다.

젖병 소재로 만들어져서 친환경이란다.

기분이 좀 찜찜하다 싶으면 끓는 물에 그냥 소독해도 된다.

 

진짜 탐난다. 생수병 들고 다니자니 쉽게 버리게 되고,

텀블러 들고 다니자니 뚜껑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망설이게 되고 그랬는데...

보틀이래잖아.

작가 이름 아무거나 새겨줘도 좋으니 득템하고 싶다.

 

이거 보자마자 하는 짓이 장바구니에 책을 넣었다가 뺏다가 하는 거...

알라딘의 새로운 사은품이 나올 때마다 반복해서 하는 짓...

이러니 자신을 알라딘의 노예라고 스스로 부르지... (내 주변에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사람, 많더라...)

 

 

당장 사야할 책은 여기서 딱 한 권만 고르면 됨... ^^

 

 

 

 

 

 

 

 

 

 

 

투명인간을 구매하려고 했다가 5만원을 채우려고 잠깐 멈췄다.

5만원을 채우기는 어렵지 않으나(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잖아!!), 우선 구매해야 하는 목록을 찾느라 바쁘다.

지금은 정바비의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읽고 있는데, 이 사람 말하는 거 시원시원하다.

좋아질 것 같다.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은 제목에 확 꽂혀서 살펴보다가 슬며시 장바구니에 넣었다.

투명 책파우치도 준다고 하고, 내용도 궁금해서 얼른 읽어보고 싶어진다.

 

 

 

 

조카아이에게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를 계속 보내줬다.

그런데 그 사이에 8번이 나왔나? 신간알림 보고 조금 놀랐다. 얼마 전에 6권을 보낸 것 같은데???

뺑덕은 내 관심 목록이어서 구매에 넣었고,

100층짜리 집은 이미 읽었는데 조카에게 주려고 넣었다. 재미있다. 

 

 

 

 

 

이미 구매한 책도 있어서 알뜰살뜰 잘 챙겨보고 결제 완료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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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2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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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랑’이란 단어 뒤에 ‘타령’이란 단어를 하나 더 붙여, 사랑이란 것이 어떤 노랫가락처럼 들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참으로 진중하고 아름다울 그 ‘사랑’이 ‘타령’을 만나니 이상하게도 내 귀에는 가끔 그 사랑이 하찮은 느낌으로 들려올 때가 있다. 흘러가는 일상에서 기분 좋을 때 흥얼거리는 허밍처럼,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그 값어치가 달라질 것만 같은, 살아가는데 1순위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대상으로 보인다. 아주, 부정하지는 않겠다. 속된 말로 사랑이 밥 먹여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사랑은 밥을 굶게 하기는 한다. (웃음) 내가 경험한 이별의 아픔에서 밥맛이 떨어지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다이어트가 저절로 된다는 공식도 성립한다. (엄청나게 웃음)) ‘오직 사랑’이 아닌, 그 사랑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나를 둘러싼 주변의 것들도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으니까. 그런 환경 앞에서 사랑이 선택되지 못하는 결과를 보면, 분명하다.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무조건 1순위는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사랑은 빠지지 않는다. 빠질 수가 없는 화두이자 일상과 밀접하게 붙어 있다.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부터 완전한 타인이 만나 기적처럼 인연을 만드는 이성 간의 사랑까지. 삶을 주는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사랑은 떨어져 나가지 않은 신체 일부처럼 가깝다. 한 사람의 인생과 함께 간다. 육체적인 죽음으로 그 생명을 다하는 순간 사랑도 같이 끝난다. 그래서 살아가는 순간에 온전한 사랑을 바라게 된다. 그 사랑을 저절로 알면 좋겠지만, 또 그러지 못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사랑이 어렵다고 말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이 책 『사랑의 역사』의 저자는 우리가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 어렵고, 좀 더 일찍 사랑을 알 수 있다면 삶이 더 쉽게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탐구해야 할 학문이자 중요한 공부라고. 정말, 그럴까?

 

나와 같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사랑이 정말 탐구해야 할 학문이자 공부인 게 맞느냐고.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사랑의 본질을, 사랑의 본질을 모른 체하는 백 번의 사랑보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하는 한 번의 사랑이 더욱 아름답다고 말한다. 1597~2012년까지, 거의 40여 년의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서른네 편의 문학을 통해서 그 사랑을 연주하게 한다. 사랑을 명작으로 만들어준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시작한다면 그 사랑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음을 얘기한다. 우리가 만나는 문학, 그 문학을 통해서 배우는 타인의 삶과 성공, 실패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사랑의 연습으로 삼게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와 많이 닮았다. 그 소설을 포함하는 문학이 들려주고자 하는 의미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그 문학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찾아온다. 《소나기》를 통해 비밀스럽고 순수했던, 처음 사랑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던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오직 사랑 하나만 보이게 했던 그 짧은 순간이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높고 두꺼운 장벽보다 절절하고 슬픈 사랑을 보여준다.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게 된 사랑을 그린 《진주 귀고리의 소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고받았던 눈빛으로도 사랑이 가능함을 말한다. 문학에서 녹아든 그런 사랑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나면 우리는 그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그 사랑을 잘 만들어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살짝 숨겨놓듯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들춰냈던 《오만과 편견》은 요즘 말로 ‘밀당’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실상은 사랑 앞에서 솔직해지는 것이 그 용기의 기본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춘향전》의 춘향이가 변학도의 수청 요구에 목숨을 걸고 거절한 것은 기다리는 자신의 사랑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과 사랑이 같은 맥락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사랑이 음식이라는 인생을 채우고 있음을 말한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인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87페이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사랑이 만들어주길 바라는 또 하나의 로망은 ‘너 때문에’ 내가 달라졌다면, ‘너’로 인해 나의 오늘과 내일이 그려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건 뚜렷한 어떤 목적을 가진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으로 이어진 시간이 만들어낸 어느 한순간의 모습일 수 있다. 지나고 보니 현재의 내 모습이 상대에 인해 완성된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때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한 여자의 꿈을 이루어낸 《연인》이 그렇고, 자신이 가진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뀌게 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어긋나고 실패한 사랑 역시, 사랑이라고 말한다. 도덕의 잣대에 비추어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들려준다. 아내의 불륜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인생의 베일》은 두 번째로 찾아온 사랑을 인정하게 한다.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 푸념하다가도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담담하게 바라보게 하는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갖고 싶었다는 욕망에 가슴 속의 뜨거움이 꿈틀거리게 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그 사랑이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폭풍의 언덕》의 부서진 사랑은 곳곳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관계의 어긋남이 어떤 모습인지 보게 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마담 보바리》는 사랑을 몰랐던 그녀의 시행착오를 분명하게 보게 한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사랑과 결혼이다. 사랑했고 결혼했으나 그게 행복과 동의어가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시선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랑이 만들어낸 소유, 당연한 과정처럼 여겼던 결혼. 그게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상대에게 관심 가질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결혼이며, 결혼을 유지하는 길인 것 같다. 물론 그 결혼생활을 위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랑일 것이다. 《오피스 와이프》를 통해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고, 육체가 나이를 먹어가듯 사랑도 시간과 함께 늙어가고 있음을 《위기의 여자》를 통해 말한다. 나에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배우자가 과연 있을까 싶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했던 《결혼의 변화》였다. 사랑과 결혼이 함께 가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버리게 하고 있었다. 결국은, 만들어가는 그 과정과 자세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이 가지는 가장 부정적인 면이, 그 사랑의 실패에 인해 다시 사랑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시작도 하기 전에 돌아서게 만드는 불안과 절망이 아닐까. 이번 사랑이 또 실패하면 어쩌나, 어차피 끝날 사랑인데 시작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시행착오가 시간 낭비가 아닐까, 싶은 여러 가지 우려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 그에 인해 나에게 다가온 사랑 앞에서조차 주저하게 하고 뒷걸음치게 하는 것,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사랑을 자신의 인생에서 빠진 단어로 고정하는 것.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말들은,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결핍된 것이 그러한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랑의 실패에 인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랑에 인해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결국에는 나를 사라지게 할 순간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순간을 바꿀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 사랑에 인해 나를 발견하고 찾는 것일 테다. 이건 저자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를 사랑함으로써 알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 결핍을 채워주면서 갖게 될 성장. 결국은 내 안의 그 부족함으로 이해 다시 찾게 되는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사랑에 주어진 임무이자 사랑이 가진 힘이 아닐까.

 

결국 사랑이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너를 통하여 나를 알아가는 과정. 너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 나의 오만과 편견, 네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몰랐을 깨진 그릇같이 날카로운 질투와 분노, 너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발현되지 않았을 나의 허영심. 너는 나의 거울. 그러므로 사랑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서정주의 ‘누님의 거울’이다. (346페이지 에필로그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더 잘하기 위해 저자가 차려놓은 밥상에 열심히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해야 할 것 같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꼭꼭 씹어야 함은 기본일 테지.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리 인생에서 연습을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 만나게 되는 많은 인생과 사랑 앞에서 연습이라 불러도 좋을 배움은 가능하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도 그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조금은 배우고 시작할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것. 문학에 담겨 오랫동안 이어져 온 그 사랑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갈 사랑이 더욱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들려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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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멈춰라! 그림책이 참 좋아 12
김영진 글.그림 / 책읽는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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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상황을 떠올렸다. ‘싸움을 멈춰라.’라는 제목에서 나는, 아이의 눈으로 보는 어른들의 큰 싸움을 말하려고 하는 줄 알았다. 최근 내전이 일어난 어떤 나라를 떠올리기도 했다. 끊임없는 분쟁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도 하니까 아주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이의 눈으로 보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부터 했다. 어른의 입장에서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난감한 마음이 앞서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더 중요한 싸움이 있다. 바로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들. 왜 그럴까. 같이 놀기에도 바쁜 시간일 것 같은데 싸울 시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도 났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보니 심각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염병처럼 갑자기 나로의 반에 몰아닥친 이 분위기는 뭘까? 친구 사이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친구가 뭔가를 뺏어가기도 하고, 내 마음을 몰라주기도 하고, 뭔가 불만이 가득해서 싸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나로의 반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뭔가 수상하다. 요즘 나로네 반에서는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나로와 미르, 미르와 그린이, 그린이와 예원이, 예원이와 은비, 은비와 가원이, 가원이와 나로... 끊임없는 그 싸움이 만들어낸 것은 친구들 사이의 절교다. 서로가 말을 섞지 않았고, 교실 안에서는 찬바람이 쌩쌩. 나로는 그런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집에 혼자 있어도 재미가 없고 지루했다. 놀이터에 나가도 친구가 한 명도 없고 여기저기에 서로 헐뜯는 낙서만 가득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펄럭이. 아, 펄릭이를 모르겠다고? (이미 1편 <엄마를 구출하라>에서 나왔잖아. ^^) 상상 세계 이루리아에서 온 특수 요원 펄럭이가 나로를 끌고 간 곳은 이루리아의 조금 이상한 바다였다. 웅성웅성 뭔가 시끄러운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꿀꺽 선장이 아이들을 잡아다 놀이터 섬에 가두었다는 것. 그래서 바다가 험악하게 변하고 어둠의 해적단 선장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뭐든 꿀꺽 삼켜버리고는 한다는 것. 아이들을 찾으러 간 아빠들도 소식이 없고, 바닷가에는 온통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뿐이었다.

 

바로 지금, 나로의 상상 에너지가 필요한 시간이다.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구석구석 상상하고 안 되면 계속 상상하면서 상상 에너지를 끌어 올려야만 했다. 나로와 펄럭이가 배를 타고 바다 숲을 지나 놀이터 섬으로 들어가자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꿀꺽 선장이 아이들을 가두고, 아이들한테서 미움 에너지를 키워서 현실 세계로 쏘아 보내려는 속셈을 알게 됐다. 그렇게 되면 현실 세계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서로 미워하며 싸우게 되는 것이지. 당장 아이들을 구출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나겠다.

 

 

나로는 얼른 상상 에너지를 떠올리고 자신이 타고 온 배를 키웠다. 그제야 정신이 든 아이들을 모두 배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직 포기하지 않은 꿀꺽 선장과 해적들이 해적선을 타고 와 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꿀꺽 선장은 나로가 가진 상상의 힘을 예상하지 못했지. 나로는 비눗방울 대포를 떠올려서 발사했고, 비눗방울에 해적들을 가둬버렸어. 계속해서 테이프 대포를 쏴서 해적들을 꽁꽁 묶어버리고, 엄청나게 큰 혀를 내민 꿀꺽 선장을 돋보기로 물거품을 만들어 물리쳤지. 나로와 이루리아 아이들은 처음 만났지만, 위험한 고비를 함께 넘기고 나니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이루리아에서는 나로에게 이루리아 특수 요원임을 증명하는 황금 배치를 줬고, 나로는 다시 현실 세계의 놀이터로 돌아왔다. 미끄럼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르와 그린이, 예원이, 은비, 가원이... 텅 비어있던 놀이터에 친구들이 가득했고,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웃음 폭탄이 터져버렸지. 아, 이렇게 단순한 것을, 그냥 마음이 통하고 웃어버리면 그만일 것을 왜 그렇게 싸우고 미워하고 그랬는지. 이제라도 서로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손에 흙 묻히고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일은 너무 흔했다. 해가 저물고 엄마가 밥 먹으라고 찾으러 오기 전까지 놀던 기억도 있다. 학원이나 과외보다 방과 후의 생활은 그렇게 친구들과 노는 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의 시설은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그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주말에나 가끔 몇몇 아이들이 보이는 정도일까. 평일은 그렇게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그것에 맞게 발맞추어야 하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삭막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느낌이 나로네 반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서로가 많은 얘기를 하고 친해질 기회, 친해질 시간이 없는 것이다. 서로서로 잘 모르니, 알아갈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이해보다는 미움이 먼저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뭔가를 배우는 시간에서 나쁜 것은 참 빨리 습득하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이루리아의 못된 꿀꺽 선장이 아이들에게 보내려 애쓴 미움 에너지가 활동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상상이란 것이 만들어낸 미움, 그 미움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것도 상상. 나로와 펄럭이의 활약이 기대되고 믿을 수 있는 건, 오늘날의 삶에서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상상력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많은 것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움이 생겨나기 전에 그 상상으로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미움이 점점 자라서 누군가와의 싸움도 만들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전쟁 같은 것도 만들 수 있기에 그 시작을 잠재우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가능한 일을 어른이라고 못 할까.

 

많은 것을 상상하고 꿈을 꾸고... 세상의 위험하고 불안한 많은 일을 그 상상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나로와 펄럭이가 이 시리즈를 통해 계속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그러하니까. 공부만큼이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꿈을 꾸는 것과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마음껏 뛰어놀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때로는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해도 그 상상력이 보여주는 힘을 믿어보는 것도 아이가 행복해지는 길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서로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던 사이가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미끄럼틀에서 내려와서 부딪혔는데도 웃지 않았는가. 조금은 더 놀고 뛰고 친구들과 어울려도 좋을 시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서, 고맙다.

 

작가가 이루리아로 가는 입구 열 곳을 찾고 있다고 했는데, 세 번째 입구(<꿈 공장을 지켜라>)까지 찾았으니 나머지 일곱 가지 입구는 어떻게 그려질지 많이 궁금해진다. 더 아름답고 멋진 상상력과 꿈을 꾸는 이야기로 계속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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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정말 뜨거웠다.

어딘가에서는 조금 무섭게 소나기도 내렸다는데, 여긴 아직...

 

비를 좋아하지 않으니 장마를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더위에 소나기도 한번쯤은 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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