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통치성을 넘어서 : 제도적 측면 다층적 통치성 총서 5
이동수 엮음 / 인간사랑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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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여 전인 2월 12일에 다층적 통치성 총서 제6권, 정책적 측면 편을 리뷰했었습니다. 이 5권이 조금 뒤에 출간되었는데, 사실 독자로서 약간 의아하기도 했으나 여튼 당초의 계획대로, 체계를 잡아 계속 출간되는 모습에 매우 안도가 됩니다. 계속하여 힘들면서도 뜻 깊은 작업을 이어 주시는 이동수 교수님, 그리고 인간사랑 출판사 측, 특히 여국동 대표님과 이국재 부장님께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정치학 서적들을 읽어 보면 한국의 정치학이 이제 얼마나 높은 수준에 도달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예전에는 한국어로 된 정치학 전문서 중 읽을 만한 게 별로 없었으며 대부분은 한스 모겐소나 조셉 나이 등의 원서를 힘들여 짚어 나가야만 했습니다. 영어로 된 전문서 중 가장 문장의 난도가 높은 분야가 신학, 정치학 등입니다. 이제 한국 학자들의 유려하고 심도 있는 문장으로 정치학 이론의 높은 경지를 엿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너무도 큰 기쁨입니다. 

중근세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국세가 극성(極盛)에 달했을 때 세계 최강의 군대는 합스부르크의 심장 빈을 포위했었습니다. 이때 빈이 함락되었다면 그 여파로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은 모두 무산되거나 심각하게 지연되었겠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유럽발 혁신과 진보 요소가 상당 부분 거세된, 여전히 중세를 닮은 답답한 모습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때 투르크의 빈 포위를 방해하여 결정적인 도움을 합스부르크에 준 쪽이 폴란드 군대였는데, 이 나라의 융성함과 활기참이 이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나라가 불과 백 년도 안 되어 자신이 은혜를 끼친 오스트리아 등 세 열강에 의해 분할되어 정치적 단위가 지도에서 사라진 비참한 운명을 맞았는데, p15를 보면 이동수 교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1989년 <역사의 종언>을 논하여 크개 유명해졌던)의 "실패한 과두제" 이론을 들어 왜 폴란드 같은 나라가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 못했는지를 분석합니다. 논문 중반에 나오는 헝가리도 한때 마찬가지였으나 여튼 19세기에 이른바 Ausgleich 등 대타협을 합스부르크 측과 이뤄 중흥을 도모했습니다. 논문에 나오듯이 헝가리는 한때 투르크에 의해 망했고,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에 의해 속국 신세가 되었으나 지도층이 적절한 타협책을 펴서 민족 말살 단계까지 이르지 않고 높은 수준의 자치를 수백 년 간 유지했습니다. 

북유럽의 스웨덴 역시 본디는 부족 사회에 불과했고, 30년 전쟁 당시 유럽 본토에까지 군사적 영향력을 끼쳐 제국으로 성장하는 듯했으나 막판에 일격을 맞았고, 이어 표트르 대제와의 긴 전쟁에서 기어이 패배하여 국가 차원의 위기를 맞았으나 지도층이 지혜를 발휘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산업적 격변기에도 잘 대처하여 경제적 풍요를 유지한 게 성공 요인이었습니다. 왕-귀족-평민 세력이 결국은 제도적 타협을 통해 절멸의 투쟁으로 치닫지 않은 게 생존을 위한 그들의 슬기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듯 덴마크는 한때 전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든 강국이었으나 스웨덴이 독립해 나간 후에는 오히려 그로부터 존립의 위협을 당했으며, 남으로부터 프로이센이 치고올라오고부터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뺏기는 등 나라가 완전히 기우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내부부터 추스려 제도적 안정을 이루고 본연의 강점인 낙농업을 정비하며 무역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키우는 등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한 끝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불안 요인 없는 나라를 유지해 갑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자포자기 상태로 극단 폭주하지 않고 자제하며 나머지 자산을 잘 추린 게 생존 번영의 비결입니다. 

헌법에서는 이미 헌정사 초기부터 지자제를 규정하고 있었으나 그 실행이 대단히 느려서 아직은 한국 지방자치 역사가 일천한 편입니다. 김태영 교수는 p75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지방정부 집행부만" 지방자치단체로 파악하는 오류가 만연하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신문 방송에서의 사용례를 봐도, 지자체라고 하면 집행부만을 가리키는 듯한 경우가 많습니다. 광의의 정부에 입법부인 국회가 포함되는 것처럼, 지자체도 지방의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당연하며, 거꾸로 영미에서는 local council=지방의회=지자체로 이해하는 관행마저 있다고 합니다. 왜 집행부보다 의회가 우선하는지에 대해, 김태영 교수는 왕권에 대항하여 오랜 동안 민의를 관철하는 수단이 의회였던 그들 역사 고유의 특징 때문이라고 추론합니다. 

예전에 동사무소라 불리던 기관이 지금은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로 바뀌어 호칭됩니다. 이 배경에는 지방자치가 읍면동 수준에까지 정착되어야 한다는 1998년 정부 이후의 기조 변화가 깔려 있습니다(p123). 3년 전인 2021년에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소속의 한병도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읍면동 주민자치회를 신설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단까지 관철하려는 시도를 했었으나, 특정 정치인에 의해 사조직화하여 악용될 우려 때문에 좌초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 채진원 교수는 해당 법안의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며, 주민이 아니라 위원이 주체가 되는 시스템(p127)이 주민 자치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관제화의 위험이 다분하다며 그 모순을 통박합니다. 

조석주 교수는 한국 정치의 제도화와 자율성 사이에 큰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규정하며, 한국 정치의 균열은 첫째 이제는 보수-진보의 일차원으로 설명되지 않고 젠더, 계급, 안보 이슈에 따라 다차원의 동인을 가지며, 둘째 일어난 균열이 한 모습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고 그 균열상이 계속 바뀐다는 점에서 동적(dynamic)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지적합니다. 51%의 승리, 49%의 패배로 언제나 소모적으로 귀착되는 선거를 지양하고, 다당제가 정착함으로써 (정파 간 수시 이합집산에 따라)선거에 참여한 모두가 승자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3의 길"을 설파했고 우리 나라에도 여러 번 방문했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여러 정치 실험을 시도했는데 이 책의 6장에서 임상헌 교수가 분석하는 연계 정부, joined-up government입니다. 부처 할거주의를 극복하고, 연계 유닛을 설치하며(한국에도 국무조정실 같은 게 있기는 합니다), 결정뿐 아니라 정책의 집행 단계에서도 연계성이 담보되도록 개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연계유닛이 분절화하며 오히려 통합 조정이 더 힘들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신 노동당을 표방했던 블레어의 실험이 꼭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유익한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까지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화용 교수, 이기호 팀장 공저의 마지막 8장은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룹니다. 이주는 짧은 시간에 한국이 워낙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바람에 일어난 현상인데, 출생률까지 급감한 상황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역할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위치에까지 가까워졌습니다. 두 필자는 이주 노동자들의 권익과 고용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그들을 제도 내로 단단하게 통합하고 산업의 체질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주는 이미 21세기 들어 전지구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국민국가의 낡은 굴레를 넘어 화합과 포용, 구조연결을 기해야만 이 격변 속에서 살아남는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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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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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에 이어 한국과 프랑스에서 큰 히트를 쳤던 <타나토노트(1994)>에 거의 바로 이어졌던 후일담입니다. 그렇기에 발표된 지 오래된 작품이며 베르베르 초기의 풋풋함이 곳곳에 살아 있는 게 느껴집니다. 이 리커버판은 이세욱씨 번역 텍스트 그대로이며 다만 (제 기억으로) 몇 개 용어가 개정된 것 같기는 합니다. 타나토노트의 세계관을 그대로 계승했으며, 젊은 자신의 재능을 화끈하게 증명이나 하려는 듯 기발한 상상력과 치밀한 세팅이 빛납니다. 원래는 <개미>도 "개미들의 제국"이라 제목이 붙었기에 이 작은 어느 정도 제목 전통을 이어가는 형식입니다. 

만약에 천국이 실재함이 확증되었다면 지상의 질서가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지금도 일부 종교의 광신도들은 순교(?), 목적사에 주저함이 없는데 현생의 괴로움을 천국에서 보상 받겠다는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상인들은 과연 죽어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릴지 확신이 없고, 혹여 이 죽음과 함께 나의 모든 것이 무(無)로 화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무슨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죽음(자살)을 결행한다든지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 작품 p29에서 대천사들이 말하는 대로, 천국의 비밀이 누설되면 "관광 목적의 자살자들"이 속출하겠기에, 로즈, 아망딘, 그리고 1인칭 주인공 미카엘 팽송 들은 강력한 견책을 받는 중입니다. 

2000년 초판에서도 그랬습니다만 풍부한 역주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건 열린책들 출판사의 문학서 공통된 특징입니다. 베르베르 이전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번역했던 이윤기씨가 그러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베르베르 역시 작품에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지 때문에 풍부한 역주가 동원됩니다. 저승, 아니 천계에서 에밀 졸라를 만난 팽송은 그의 입에서 또다시 "나는 고발한다"를 듣는데 우리의 주인공 팽송이 천사들로부터 그릇된 심판을 받았음을 고발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졸라가 드레퓌스를 변호했던 역사적 사건을 환기하려는 의도인데 일종의 유머입니다. 이세욱 역자는 혹시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봐 p35 하단에 긴 역주를 달고 있습니다. 

<상대적이며... 백과사전(p164)>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몽 웰스가 p42에 등장합니다. 수호천사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지도천사라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독자뿐 아니라 팽송도 마찬가지인지, 상대에게 그게 뭐냐고 되물어 봅니다. 원어로는 ange instructeur인데,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지만(영어로 옮기면 instructor angel), 불어건 영어건 그런 표현은 없고 베르베르의 신조어입니다. 수호천사는 불어로 ange gardien(영어로는 가디언 엔젤)라고 합니다. 웰스는 천사로서의 권능과 그 특유의 지혜를 동원하여 1에서 6까지에 담긴 신성한 의미를 팽송에게 코칭(=인스트럭팅)하는데 7에 대해서는 끝내 언급을 자제합니다(저 뒤 p144에서도 대답을 회피합니다). 베르베르 작품의 공식대로라면 이 부분이 후반부에서 어떤 복선 구실을 해야 합니다. p60에서 팽송은 라울 라조르박을 뜻밖에 해후하며 긴 모험을 함께하게 됩니다. 

p73에서 <...백과사전> 인용 형식으로 소개되는 태아 접촉법은, 요즘 이른바 후생유전학이라 해서 각광받는 학문분야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p75, p76, p244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 미지의 세계" 등은, p62에 나왔던 라틴어 표현 "테라 인코그니타"와 같은 뜻입니다. p77에서 태아 비너스가 겪는 체험은 이른바 vanishing twin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2000년에 지수원씨(<투캅스>에서 박중훈 여친으로 나온 배우)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도 나왔더랬습니다. p82에서 팽송은 이른바 "파스칼의 내기"를 언급하는데, 사실 <팡세>의 그 서술은 일종의 농담이지, 정말로 보험 든다고 생각하고 종교를 믿는다면 그런 불경스럽고 부정직한 믿음에 대해서는 거꾸로 신이 벌을 내릴 가능성이 크죠. 영화 <대부 3>에서도 람베르토 추기경이 비슷한 이야기를 깡패 두목 마이클 콜레온에게 꺼내죠.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뭔가 느낌이 쎄해서, 하려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었는데 용케도 예감이 맞아서 악운을 피했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대개,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주변 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하는 허풍쟁이, 사기꾼들의 수법이긴 합니다만, 베르베르는 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수호천사들이 자신의 의뢰인(영어로 불어로 모두 client입니다. 불어 발음은 "클리양". 여기서는 베르베르가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쓰입니다)에게 슬쩍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알려 주는 거라는 식입니다. 꿈이나 영매를 거치는, 혹은 징표(원어는 signe)를 통해서인데, 베르베르다운 유쾌한 상상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사들은 인간사에 아주 간접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p105에는 모성애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통념에 대해 백과사전 저자인 웰스가 반론을 제기합니다. 19세기 프랑스의 부르주아들은 시골 출신의 유모에게 육아를 맡기고 애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글쎄 19세기 부르주아의 행태를 누가 대표하며 어느 정도 일반화가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19세기 부르주아 100%가 육아를 방기했다 쳐도, 그들이 과연 인류 어머니층 모두를 대표한다 할 수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본 항목에서도 "시골에서 올라온 유모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나오는데, 그들은 그럼 누구한테 모성 발휘를 학습했단 말일까요? 그저 월급 받고 수행하는 노동? 사실 육아 방기의 가장 전형적인 행태는 중세 유럽 귀족들이나 근세 영국 젠트리층에게서 찾아야 하며, 구태여 내적 동질성도 탄탄치 못한 부르주아를 예거할 건 아닙니다. 모성애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면 우리 인류는 오래 전에 멸종했습니다. p109 맨 윗줄 "체호프으로"는 "체호프로"가 맞겠습니다. 여튼, 카르마가 정말 악착같은 것이라는 팽송의 말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p72를 보면 "임신 중지 수술"이란 말이 나오는데 과거 같으면 낙태, 중절 같은 말이 쓰였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 붙은 부정적 뉘앙스, 또 여성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함의 때문에 요즘은 이 말을 잘 안 쓰는 추세이며 이 리커버판이 그 점만큼은 확실하게 반영한 듯합니다. p225를 보면 역시 베르베르는 페미니스트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다만 "성신"이라는 용어는 이미 한국 천주교에서 "성령"으로 개정한 바 있으므로 기왕 고치는 거 여기도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고 개인적인 아쉬움을 표현해 봅니다. 神도 원래 한자에서는 ghost, spirit(鬼, 靈)의 뜻이었으니 무리가 없었는데, 21세기 현재 한국인이라면 神에서 그런 뜻을 떠올리는 이는 아무도 없고 모두가 god만 생각하므로 저런 개정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p99에서는 다섯 개의 개입 수단이 설명되었습니다. p145에서는 세 가지 설득 수단이 나오는데 마치 현대인을 위한 베스트셀러 자계서에 나올 법한 그럴싸한 이론이라서 흥미롭습니다. p207을 보면 매릴린 먼로가 등장하는데, p153을 보면 비너스 시선에서 리즈 테일러가 언급됩니다. 베르베르가 성장기에 보고 자란 성적 우상들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사실 <클레오파트라>에서 보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관리 안된 중년 여인의 몸 그대로라서 보기 민망한 장면이 있습니다. 시저 역 렉스 해리슨의 중후한 연기가 일품이죠. 

p220을 보면 이른바 메타정신분석 이야기가 나오는데, 베르베르 소설에서 독자가 갑자기 찡!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대목이 바로 이런 곳입니다. 왜 이고르, 비너스, 자크 등을 팽송이 의뢰인으로 두게 되었을까? 답은 그들이 각각, 채 실현되지 못한 팽송 자신의 염원을 대변하는 존재, 영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카르마라는 녀석은 악착같지 않습니까? 상상력, 용기, 매력이야말로 우리들 평범한 인생이 가장 갖고들 싶어하는 자질이기 때문입니다. p223에는 "자기 반성의 계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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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투자 완전 정복 - 높은 시세 차익과 공실율 제로, 임대 고수익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빌딩 브랜딩 전략서
조해리 지음 / 라온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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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불경기에 설령 자가건물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라고 해도 기회소득까지 감안한 적정 이익을 올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또 건물주라고 해도 공실률이 높아서 여러 모로 고충이 많습니다. 반면, 불경기에도 여전히 높은 매상을 올리는 곳도 있고, 이런 가게가 입점한 빌딩, 혹은 공실률 낮은 건물은 불황의 공포를 모르고 힘든 시기를 넘깁니다. 저자 조해리 대표는 학창 시절 오랜 시간 동안 법학을 연구한 분이기도 한데,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힌 도심 내 부동산의 권리 관계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신뢰가 가는 포인트입니다. 이 책도 그저 경험담이나 단기 트렌드 소개에 그치지 않고, 보다 체계적인 부동산학 입문도 겸한다는 점에서 더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 독자에게 "공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독자에게 권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 수밖에 없는 "좋은 목"의 조건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좋은 목은 어떤 특정 좌표에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조건, 여건은 어느 정도까지는 정해진 법칙이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 독자들이 염두에 두고 공부해야 할 포인트가 이 부분이겠습니다. 

또, 남들이 다들 좋다고 해도 과연 내가 내 적성, 성향, 미래 전략에 맞게 가꿔 나갈 수 있는 건물인지도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유망한 부동산, 빌딩이라는 게 한 가지 유형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수익은 물론 좋지만 내가 관리하기에 사소한 스트레스가 은근히 쌓이는 조건이라면 그건 나하고는 잘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120을 보면, 저자는 "나에게만 특화된 매우 귀하고 고급진 정보"라고 파악된 부동산의 예를 드는데, "주변을 걷다 보면 지금의 이 시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심지어 그 가치와 가격이 창문마다 숫자로 표시까지 되는 느낌도 든다고 합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센스가 조 대표님의 사업 감각에 근접한다는 건 당연히 어렵겠지만, 우리도 나만의 관점과 확실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거래와 임장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관심있는 지역만 떠올려도 머리에 3D 지도가 그려질"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이 책을 읽으며 저자님이 너무도 부러웠던 대목이고, 또 저렇게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 책은 단지 투자 요령과 지식을 알려 주는 의의를 떠나서, 저자 개인의 추억이라든가 사연도 책 곳곳에 엿보여 그 점도 독서의 매력 포인트였다고 생각합니다. p86에 보면 타임스퀘어의 W호텔을 말씀하시는 대목이 있는데, 저는 처음에 착각하여 영등포 타임스퀘어(!) 말씀인 줄 알고 아니 영등포에도 W가 있나, JW 매리엇 이야기인가 하고(ㅋㅋ) 순간 헷갈렸는데, 그게 아니라 국내 광장동(광진구) 그랜드 워o힐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었기에, 뉴욕 타임스퀘어를 방문해서도 일부러 같은 체인인 W를 골랐다는 말씀이더군요. 사실 요즘 호텔 체인은 품질 관리가 일관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특정 지역의 명소에서 받은 좋은 인상만 갖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름만 갖고 찾았다가 실망하기도 합니다. 워o힐은 그렇지 않았다니 참고해야 하겠습니다. 

저자님은 책 전체를 통해 건물의 외관, 디자인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합니다. 이게 유일한 법칙이자 진리는 아니겠습니다만, 책을 통독하며 참 다양한 사례와 저자의 관점이 강력하게 관철된 케이스 스터디가 나오기 때문에, 솔직히 독자로서 좀 압도되는 느낌으로 주눅들어가며(?) 읽었습니다. 빌딩 투자에 대한 책을 그래도 몇 권 읽었는데 이 책은 저자만의 참신하고 독특한 견해가 강력한 논거와 함께 제시되어, 독자의 부족한 식견을 수시로 자각하며 읽게 되는, 약간은 자괴감이 수반한 독서였습니다. 빌딩 안에 자연이 들어가야 한다(p105)는 신조는, 비단 건축가나 건물주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지분 투자자 포함)들도 좀 마음에 새겨야 할 대목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빌딩을 매입하면, 임대수익이 꾸준히 발생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노동소득이 아니라 자본 소득의 가치라는 것은 실로 매혹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심으로 정말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임대 수익률로만 보면, 이 운영이 과연 안정적인 사업인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p170)." 저자의 말입니다. 어차피 자본소득이라는 것도 당사자의 과거 근로소득 잔여분이 축적되어 그에 기반하여 창출되는 것인데,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면 이는 개선되어야 마땅합니다. "리모델링과 신축 허가가 까다로워지고 금리가 높아서" pf가 매우 저조하며 분위기마저 흉흉한 게 요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와중에서도 어떤 희망를 봅니다. 언제나 매도자 위주로 돌아가던 부동산 시장이 그야말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매수자 위주로 분위기가 바뀔 국면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빌딩을 골라야 후회없는 투자일까요? 책 전반부에 저자만의 유익한 원칙과 관점이 상세히 나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역시도 하나의 관점일 뿐 절대적인 지침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독자가 볼 때 매우 흥미롭게 참고하고 채택할 수 있는 원칙들이 많았습니다. 책 말미에는 실제 건물을 매입했을 때, 이제 소유자로서 주의해야 할 여러 실무상의 포인트, 노하우 등이 또한 자세히 실려 부주의하게 유출될 금전 손실 등을 막을 수 있게 배려합니다. 인사이트와 디테일이 모두 포함된 매혹적인 투자서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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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 탐구 - ‘좋아요’와 구독의 알고리즘
올리비아 얄롭 지음, 김지선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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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여느 전문직, 학자, 기업주보다도 인플루언서가 학생들 사이에서 장래 희망으로 인기 직종입니다. 실제로도 사람들 사이에 끼치는, 말그대로 영향력(influence) 면에서, 여러 인기 소셜미디어 계정을 운영하고 컨텐츠를 제작하는 인플루언서의 힘이 매우 큽니다. 심지어 정치의 영역에서도, 많은 구독자, 시청자들을 거느린 인플루언서들이, 유력 정치인들의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바야흐로 그들의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 평범한 시민들도 인플루언서가 어떤 경로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어떻게 팬덤과 구독자층을 만들어 가며, 이들 인플루언서 뒤에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따로 있다면 그들은 누구이며, 산업과 경제는 어떻게 재편되어갈지 공부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들의 그런 공부에 도움을 줍니다. 

"직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그들의 작업이다.(p63)" 사실 기성 세대의 눈으로 보면, 이들의 뉴미디어 소통이 대체 어떻게 수익을 가져다 주는지부터가 이해가 안 되며, 과연 저런 활동을 직업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조차 혼란스러워합니다. 같은 페이지에 보면 "스타와 고객 사이의 중간 지대를 차지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사실 요즘 어린 세대에게 물어 보면 인플루언서는 그냥 인플루언서일 뿐 그게 뭔지에 대한 설명이 왜 필요하냐고 되묻습니다. 그나마 저자 올리비아 얄롭이, 나이 든 독자들이 알아 듣는 언어로 풀어 써 준 문장들이 저렇습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으나, 저자 얄롭은 서른을 채 넘길말락한 아까운 나이에 불행한, 갑작스러운,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 한 해 전, 이 발랄하고 영감어린 책이 츨판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합니다. 여튼 본인도 엠지(한국식 용어지만)면서 저자는 새로운 세상의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는 세대를 위해(?), 때로는 분석적 언어를 쓰면서 어떤 논리적인 해명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주제가 주제이니만치, 이 책은 대체로 발랄하고 경쾌한 필치가 지배적입니다. 

이제 미디어의 경계는 허물어진지 오래이며 어느 쪽이 과연 메인스트림이며 주류인지 쉽게 판가름하기도 어렵습니다. 요즘 TV를 보면 고령자, 취약한 청각 보유층을 의식해선인지 아주 높은 톤의 광고 문구를 단순반복하는 촌스러운 보험 광고가 커머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레거시미디어의 주 시청층이 노년층으로 축소되고 엠지들이 TV를 안 본다는 소리입니다. 

p79를 보면, 영국 ITV 짝짓기 예능 <러브 아일랜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국으로 치면 에덴,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비슷한 프로그램이며,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의 어느 출연자는 "TV 출연을 통해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라며 목적을 밝히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저자 얄롭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게 놀랍지 않냐?"며 독자들에게 묻기까지 합니다. 이들에겐 소셜미디어에서의 성공 여부가 더 중요하게 다가오며, 실제 영향력 면에서도 이미 뉴미디어가 레거시를 추월한지 오래입니다. 나이 든 세대가 모르는 새 완전히 새로운 세상 하나가 다른 대륙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이란 시대에 따라 수시로 바뀝니다. 요즘 인기 있다는 연예인들을 나이 든 세대에 보여 주면, 왜 이런 얼굴을 예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꽤 나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며 어떤 연예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만 그마저도 지난 시대의 장점, 미덕을 반영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 시대에는 소셜 미디어나 뉴미디어(인방 등) 인플루언서로 적합한 얼굴형과 개성이 따로 있다고도 하는데, p154를 보면 (저자 얄롭과 비슷한 또래인) 작가, 언론인 지아 톨렌티노의 말을 빌려 "인스타그램 얼굴"이라는 게 있다고도 합니다. 또 이른바 배디(baddie)라고 해서, 우리식으로 말하면 "쎈언니"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잘 통하는 개성, 캐릭터 유형도 영리하게 고안된다고 합니다. 빠른 출세를 원하면 이런 공식에 맞춰 자신을 세팅, 보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꼭 괴짜스럽고 고립적이거나 반사회적인, 혹은 퇴폐적 분위기의 캐릭터나 컨텐츠만 있는 건 아닙니다. 가족 중심의 전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채널도 있고, 육아 포커스의 키드플루언서(p203)도 있습니다. 이런 뉴미디어가 무슨 외계인들에 의해 생산, 소비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가족의 화목과 육아는 사람들의 영원한 관심사이기 때문에 레거시, 뉴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수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p239를 보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고 허버트 사이먼이 1970년대에 창안한 "관심경제"라는 개념이 소개됩니다(경제수학 교과서를 쓴 칼 사이먼과는 물론 다른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정보가 희소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과잉이었는데 사회의 정보화가 촉진되면서 그 반대가 되어버린 현상을 예리하게 지적했던 이론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맹견에게 물린 심각한 사고는 오히려 뉴스가 안 되고 반대로 사람이 개를 무는 해프닝성 소동은 뉴스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는 거죠. 뉴미디어에 미친 헛소리 같은 과장, 허위요소가 썸네일로 판을 치는 풍조를 두고 많은 이들이 개탄하는데, 사실 이들은 사이먼이 일찍부터 알아낸 원리를 잘 이용하여 소셜미디어 성공 공식에 충실하게,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플루언서는 앞에서도 말했듯 대중과 스타 중간에 서 있는 이들이므로 스타만큼 힘이 있지도 않고 트롤링, 악플 세례에 시달리기도 하고 상처도 받지만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보면 그들은 우리와 별다를 바 없는 그저 한 사람의 직업인이며, 인플루언서의 별반 특별할 것 없는 처량한 처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인플루언서를 집중 취재하고 그들에 대한 평판을 퍼뜨리거나 만드는 이른바 메타 인플루언서라는 직종도 있습니다. 캐럴라인 캘러웨이는 하찮은 소동으로 말미암아 원치도 않았던 유명세를 타고 고생도 많이 한, 일종의 인플루언서인데 실세계의 자신과 별 관계도 없을 어떤 허상이 인터넷 세계에 돌아다니는 걸 보고 깊은 회의에 빠졌다고 합니다(p315).    

팬데믹으로 인해 이른바 록다운이 일상화하자 이런 흐름을 타고 록다운 인플루언서들이 새로 등장하여 대중으로부터 환호를 받았습니다. 경제 불평등이 심화하자 시대의 저편에 잊혀진 걸로 간주되었던 마르크스 사상 해설가들이 인터넷에 다시 등장하여 관심을 받습니다. 온갖 정치적 극단주의자들도 계정을 개설하여 정반대의 입장을 설파하며 판매하는 행태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인플루언서는 어설픈 스타, 셀럽을 능가하며 우리들 일상에 침투하고 명시 혹은 묵시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바꿔 놓으려 "영향력"을 행사 중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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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갈게
임태운 지음 / 북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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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정말 기발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활약과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 반전, 배후에 깔린 감동적인 주제 같은 건 둘째치고라도 일단 소재부터가 너무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물론 악몽도 곧잘 꾸지만, 어쩌다가 달콤한 꿈, 평소에 좀 이뤄졌으면 하는 바가 그대로 투영된 꿈을 혹 꾸기라도 하면 깨기가 아쉽고(이 과정에서 자각몽이란 것도 체험합니다), 깨고 나서도 그 줄거리를 억지로 되새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겪어 봤을 경험을 장대한 소설로 만들어서 그 안에 심오한 주제까지 담아낸 작가님의 역량이 너무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누구의 꿈에 다른 사람이 참여하거나 하나의 꿈을 모두가 공유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고 한 작가의 말씀을 읽고 나니 소설의 울림이 더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분량이 긴데 이 정도로 재미를 내내 유지하는 게 정말 쉽지 않기에, 읽으면서 소설이 끝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니 남의 꿈에 침투하여 어떤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럴 때에는 공권력이나 그 유사한 인력이 어쩔수없이 투입되어 공정한 상태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팀장 황수현은 성지후에게 어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며 진짜 숨은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추궁합니다(p46). 그러나 몽주(夢主)인 지후도 그 정도의 공격에 곧바로 무너지고 모든 걸 털어놓을 만큼 허술한 내면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대거리 끝에 지후는 수현이 괜히 지금 이 정도 자리에 있게 된 됨됨이가 아님도 확실히 깨닫습니다. 동시에 지후 자신과 수현이 의외로 많은 걸 공유하는 처지임도 눈치챕니다. 이 소설에서 꿈, 즉 남들이 꿈는 무대에서 우리들이 참여하여 모험을 즐기는 모습은 현대 게임 산업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어떤 꿈에서는 공간 이동이 자유롭고 때로 괴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우리들은 심지어 꿈에서조차 별 힘을 못 쓰고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한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만, 지후는 큰 전신주를 마치 수수깡처럼 뽑아올려 휘두르고(p41), 빈민가에서 온갖 동물로 변신하여 지후를 괴롭혀 온 예니도 마침내 그 무기력한 실체를 드러내고 포기하게 됩니다. 1970년대 SF 영화 <슈퍼맨>을 보면 조드 장군 등 우주를 떠돌다 운 좋게 지구에 착륙한 이들이, 이 행성에서만큼은 자신들이 물리 한계를 넘어선 초능력자들이 되어 있음을 알고 스스로도 놀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여러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부터 능력자들이었다면 능력 발휘가 당연할 뿐 스스로 신기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능력에 걸맞은 자제력, 감정적 적응 따위가 아직 안 갖춰졌다는 뜻이며 경우에 따라 큰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황수현 등은 이 점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영화 <스파이더맨>에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라는 명언이 나오죠. 

꿈에 자주 나오는 모든 형상은, 내 마음, 내 무의식 중에 남아 있는 어떤 감정, 상처, 강박, 열등감, 트라우마 같은 걸 상징합니다. p170을 보면 지후는 자신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 얼룩말에 대해 때늦은 설명을 하는데, "마치 나를 둘러싼 전체 세계와 싸우는 느낌이었다"며 익숙한 무기력감을 고백하고 또 동료들에게 사과합니다(미리 몽주가 설명을 해 줘야 남의 꿈에 들어와 생고생하는 팀원들의 수고가 덜어지므로). 이 소설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성숙, 훈련 같은 말들입니다. 마뜩지 않은 꿈이 자주 꾸어지는 건 그 당사자(이 소설에서라면 몽주)가 과거의 체험에서 모종의 상처를 입었고, 아직 그것으로부터 아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남의 심리나 정신적 성숙도를 잘 알아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텐데, 이걸 보면 여기 몽재진압반 팀원들은 나이는 어려도 참 지능이 높고 정신분석학 전문가 못지 않게 성숙한 이들입니다. 

용꿈은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길하게 여겨졌으나 서양에서 dragon은 그저 인간의 앞길을 가로막는 흉물, 악의 상징일 뿐입니다. 새로운 꿈 안에 들어와, 감당이 힘든 어떤 용을 마주한 팀원들은 이 꿈이 악몽, 비극(p216)으로 마무리되리라는 직감에 몸을 떱니다. 수현은 이 와중에도 자신의 소신을 안 바꾸는 확고한 리더의 결기를 보이는데 뭐 어느 조직이건 우두머리가 이 정도 강단이 있어야 합니다. 드림캐스터 오재욱 박사가 확실히 정교하게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예니의 꿈 캐스팅 중 "트라우마 수치가 적정선을 초과했으므로 업로드할 수 없다"는 메시지(p257)가 적절하게도 드림넷에 뜹니다. 그러나 우리가 봐 왔듯 예니도 결코 단번에 의지를 꺾을 호락호락한 애가 아닙니다.  

최장순 조사관과의 대화를 통해 그간 숨었던 내력이 더 자세하게 드러나고 팀장 수현은 마침내 자신의 부친인 황 회장과 살벌한 대면(p372)을 합니다. 모든 자녀는 이처럼, 어떤 신적인 아버지의 존재를 극복하고 비로소 독립적인 영혼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붙잡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지옥이 꼭 지옥이 아닐 수도 있지(p395)." 드디어 팀원들과 수키는 남편이기도 했던 오 박사를 만나며(p460), 예상대로 그의 입에서 나온 진실들은 너무도 충격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나오듯, 인간 존엄의 극치는 절망적인 운명의 파국을 빤히 맞이하고도 그를 용감히 맞서는 데서 드러납니다. 인간은 본디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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