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기적을 창조하는 상상의 힘 - 네빌 고다드, 《전제의 법칙》 읽기
슈카이브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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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정신의 가장 강력한 힘은 상상력에 있습니다. 기존의 지식을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삶의 질이 다른 단계로 도약하려면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인류의 삶을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린 모든 과학적 발전, 기술 혁신은 풍부한 상상력을 지녔던, 도전 정신 가득한 인재들에 의해 가능했고, 그들은 한결같이 현상에 만족하지 않고 나와 이웃의 삶을 개선, 개혁해 보려는 의지가 충만한, 자유로운 영혼들이었습니다. 

사람은 비록 갖가지 한계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원시 단백질 덩어리로부터 진화한 결함 많은 육신에 갇혀 어리석고 비천한 욕구에 시달리며 살지만, 그 정신과 영혼만큼은 신과 영원에 통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게 네빌 고다드의 견해입니다. 저자 슈카이브는 그의 저서 <전제의 법칙>의 깊은 뜻을 새기자는 뜻에서 이 책을 썼고, "현생을 살며 우리의 근원이자 영적인 부모인 창조주, 이 창조주로부터 받은 신성을 마음껏 발휘해야 한다"는 철학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어떤 영원, 궁극의 선과 통하는 무엇이 있어 이를 계발하고 마침내 어떤 깨달음에 도달하자는 제언은 매우 긍정적이며 건설적입니다. 

이 책에는 I AM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p10, p14 등). I AM은 기독교의 구약 출애굽기 등에, 무엇인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뚯에서 쓰이기도 합니다. 네빌 고다드는 나의 상태, 처지. 잠재력, 성취를 결정하는 건 나 자신(I AM)이며 내가 우선 내 마음에서 일체의 부정적 요소를 제거해야 내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의도하는 일도 술술 잘 풀린다고 주장합니다. "나에 대한 관념이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p17)." 

우리가 우리 마음에 품는 이상은 그저 헛된 꿈이 아니라,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그런데 왜 이상이나 꿈, 잠재 가능성만으로 남은 것일까요? 네빌 고다드는 이상(理想)에 인간의 혈통(human parentage)를 부여해야만 그것이 현실로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p30). 이 인간의 혈통이란, 네빌 고다드 고유의 논리에 의하면 우리가 이미 창조주로부터 받은 신성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아들딸처럼 가능성을 부여했고,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의 내면에 이 존엄을 투사하여 위대한 가능성을 가꿔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해 내 자신이 아직 확신을 못 갖는데, 어느 누가 그것을 인정해 주겠습니까? 나는 이러이러한 존재가 되어야 함은, 무엇보다 누구보다 내가 내 자신에게 단언하고(p43) 납득을 시켜야 합니다. 이미 소원은 성취가 되었다, 나는 이미 100%의 가능성으로 무장되었다,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모든 성취, 성과, 성공의 전제가 됩니다. 네빌 고다드가 말하는 "전제의 법칙"에서 전제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상상력은 가장 힘이 세다(p52)고 저자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억지로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자신이 바라는 게 이미 성취된, 그런 상상을 할 줄 알아야 한다(p56)." 

육신은 일종의 감옥입니다. 언젠가는 이를 벗고 모든 게 자유로운, 영혼이 불멸로 화한 그런 세계와 합일해야 합니다. 이걸 두고 저자는 일종의 차원이동이라고 표현합니다(p62). 상상으로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다만 그 주의력이라는 게 내면을 향해야 한다(p63)고 저자는 말합니다. 

p70에는 신약 요한복음 한 구절이 인용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일이 일어날 때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이다." 이 구절을, 저자는 우리들의 마음,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소중한 정신 안에 내재한, 엄청난 가능성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가능성을 꽃피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으로 열렬히 바라고, 또 소망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아버지의 집에 거할 "자격"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가꿔나갈 때, 모든 꿈과 이상, 희망이 현실로 되고 나와 내 이웃 모두 행복해질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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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하나 옮김 / 코너스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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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고전 <인간실격>은 일본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참 꾸준히 읽히는 듯합니다. 작가와 그의 피조물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밀접하게 교감하는 듯 착시까지 부르기에, 우리 독자들도 이 작의 주인공 오바 요조 못지 않게,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생애에 대해서도 많이들 압니다. 이 코너스톤판에는 담백하게, 소설의 본문과 작가 연보만 실렸습니다. 

또 지금 보는 대로, 이 책은 1948년 초판본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 와서 출간했습니다. "인간실격"이라는 글자(한자)가 나뭇잎 도안과 함께 명랑하게(?), 발랄하게 배열된 중, 정자체로 큼직하게 太宰 治(태재 치), 즉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이 찍혔습니다. 당시의 디자인 감각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디자이너가 작품을 다 읽고 그 나름대로 떠오른 느낌을 표지에 충분히 담은 결과물이겠다는 추측도 하게 됩니다. 2021년에 코너스톤에서 나온 벨벳 양장본을 읽고 리뷰를 올린 적 있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번역본이라서 본문 텍스트는 거의 같습니다. 

"봄바람 속에는 백일해를 유발하는 세균이 수십만, 이발소에는 탈모를 일으키는 세균이 수십만...(p97)" 선천성면역결핍증(CIDS) 환자인 주인공이 평생 멸균 캡슐 안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The Boy in the Plastic Bubble>라는 1976년작 영화도 있었지만, 이 작의 오바 요조는 몸이야 멀쩡해도 정신이 아픈 청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특별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아니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남들보다 유리한 여건에서 혜택을 받고 성장했다면서, 사회와 외부환경에 대해 이처럼이나 신경증적이고 부적응스러운 태도라니,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밖에서 보는 이들마저 당황스럽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비상식적이고 병적인 주인공의 넋두리에 대해 왜 우리 독자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을 보내는 걸까요? 장폴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잘 알려진 언명도 있었지만, 우리는 대개 나만의 자아와 취향과 고집과 쾌락 안에 머물고 싶지, 타인의 의견과 이해 앞에 나를 희생하고 양보하고 맞춰주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저 설익은 자아를, 그나마 끝까지 지키고 싶었으면 저런 병적인 반응이 나올까? 저런 병적인 케이스를 보면서 까딱 길을 잘못 들었으면 나 역시도 저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도감에 젖는 것입니다. 

오바 요조는 무작정 자기 세계 안에만 머물려 들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마음에도 없는 광대 놀음을 하면서 반대로 사회와 타인들에 과잉적응하려는 기태까지 보였습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란 것도 남들 보기에 부러웠으면 부러웠지 불리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친 행운은 면역을 올바르게 못 갖추게 방해한다는 점에서 기이한 불운이 될 수도 있으며, 독자들은 이 점에서도 은근히 뭔가 위안을 얻는 것입니다. "저것 봐라. 복(福)이 꼭 복으로 구르는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 이러면, 남의 불운을 즐긴다는 이른바 schadenfreude(샤덴프로이데)인 셈이므로, 그에 대한 미안풀이인지 또다시 이상한 동정을 요바 요조에게 보내고... 아마도 이런 선순환(?)이, 이 고전에 유지된 오랜 지지와 선호 그 비결이 아닐까 제 멋대로 짐작합니다. 

본인도 인간이면서 다른 인간의 심리, 이기심, 위선 등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라... 어쩌면 우리 모두들도, 태어났을 때엔 나쁜 재주를 양심 때문에 쉽게 부르지 못하고 머뭇대다, 마지못해 사회의 타락한 물결에 휩쓸리고 똑같은 검정 때가 묻어 그렇게그렇게 떠내려갑니다. 오바 요조의 저런 병적인 몸부림과 표백을 보며, 나 역시도 과거에 저런 순수에의 집착으로 고민하며 부끄러워하던 때가 있지 않았나 하는 회한과 자괴감, 이런 느낌이 독자를 휩싸고 도는 것 아닐까요. 

p29를 보면, 요조는 다케이치라는 급우에게, 체육 시간 일부러 광대짓을 하느라 미끄러진 자신의 의도를 읽혔음을 알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합니다. 사실 다케이치인지 뭔지하는 꼬마가 특별한 통찰력이 있었던 건 아니겠습니다. 우리들도 어렸을 때 다 그런 경험이 있죠. 아이들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제 상태를 지적하듯, 권위나 맥락 등을 고려치 않고 팩트를 바로 직시할 때가 있습니다. 요조 역시 내면의 동기와 의도를 들키고 마치 국부를 노출한 듯 극한의 수치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별난 건 광대짓이라기보다(이런 건 요조 아니라 누구라도 한 번 정도 하며,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도 합니다) 그의 순수한 수치심입니다. 수치심을 애저녁에 잊은 다른 사람들이 문제인 거죠. 

p99를 보면 질 떨어지는 만화를 연재하며 할 일을 가까스로 찾은 요조가 자신의 작품에 중세 페르시아의 시인 우마르 하이얌(책의 표기에 따릅니다)의 시구를 인용하곤 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마르 하이얌의 작품 세계는 요조 같은 이가 쉽게 공감하기엔 꽤나 이지적인데, 그래도 그 특유의 허무주의, 회의적 구절들이 그의 마음을 끌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p111에 나오듯 요조의 의식과 자아를 평생 동안 괴롭혔던 건 선과 악, 죄와 더렵혀짐에 대한 강박이었습니다. 이 모든 고뇌를 한 번에 떨치려면 시니시즘만한 특효약이 없겠습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처방은 부작용이 너무 심하죠. 진정한 악인은 아예 가책이 없고 요조는 따지고보면 남의 책임을 자신이 대신 고뇌한 셈이니 이런 불쌍한 이가 또 있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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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나를 괴롭힐 때 지금당장 3
데이비드 A. 카보넬 외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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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을 하며 사는, 이성적 존재입니다. 세상사가 항상 내 뜻처럼 풀릴 수는 없기에, 내 생각이 만약 자신의 (불리한) 현실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그 생각이 괴롭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도피하는 게 답일 수는 없고(예: 술, 마약, 향락 추구), 어떻게든 마음을 잘 다스려 그 괴로움을 떨쳐 내고, 나아가 현실을 타개해 나가야 합니다. 내 것인데도 내 의지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마음, 불안과 걱정을 잘 다독이며 내 존재를 좀먹어들어가게 하지 않는 방법 44개가 이 책에 담겼습니다. 

"원치 않는 생각은 계속 반복해서 떠오르고, 점차 강렬해진다. 이 과정에서 내 통제력에 대해 의심도 가고, 나중에는 내가 제정신인지도 확신이 안 설 수 있다.(p21)" 정도의 차이만 있다뿐이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문장입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과거의 추억은 아마 효과가 그만큼 강하지는 못하겠죠. 어쩌면 사람은,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설계되었을까요? 이때 저자들의 처방은, 그런 생각을 애써 억누르거나 부정하여 들지 말라는 겁니다. 그냥 그 생각이 마음 속을 배회하도록 허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생각이, 마음이, 그 불청객을 또 알아서 다스리고 잠재우는 방법을 알아낸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많은 생각, 불안, 걱정은 지나고 보면 과장되거나 별것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루스벨트의 말처럼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p60을 보면 우리의 편도체라는 곳은 본래부터가 위험에 대해 과잉반응하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에서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그로부터 살아남으며 적대적인 환경에 적응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따라서 위험에 과잉 경보, 혹은 false alarm이 울리는 건 대체로는 생존에 유리한 것입니다. p61을 보면, 위험이 아닌데 경보가 울리는 건 false positive, 반대로 위험인데도 경보가 안 울리는 건 false negative라고 한다네요. 다시 강조하지만 불안이 엄습할 때 호들갑부터 떨지 말고, 불안감은 불안감대로 그대로 놔 두고 자신의 감각만 믿어 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I'll see(한번 두고 보자)라고 하죠. 

편도체는 아기와도 같습니다. 야생의 원숭이들을 보면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 온갖 소리를 내고 난리를 칩니다. 어떻게 대처할지를 모르니 막연한 공포감으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런 갑작스러운 위기에 더 효과적으로, 세련되게 대처하는 기제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편도체라는 아기도 우리지만, 성숙한 이성과 계산 능력도 우리 것입니다. 책 p75에는 "두려움과 의도적으로 마주치는 기술"을 노출(exposure)라고 명명하며, 머리로 아는 걸, 마음-뇌-몸으로 아는 것으로 바꿔 준다고 합니다. 이는 "뇌의 신경 경로를 변경하는 과정"이라고도 하는데, 어른들은 어린이, 청소년과 달리 위기에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만 봐도 이 점 확인 가능합니다. 

특히 p75에, 연습을 통해 불안감을 잠재우는 방법 여럿이 나옵니다. 막연하게, 불안에 신경 쓰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둬(que sera, sera)라고만 하지 말고, 몸으로 마음으로 잠재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기분 좋은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 보고, 뭔가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 때마다 들여다봅니다. 또 유쾌한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자기만의 노래도 만들어 봅니다. 사람 감정이나 심리는 참으로 단순하여, 간단한 자극에도 조건반사처럼 기분이 확 바뀌곤 합니다. 요즘 ASMR이라는 것도 이런 장치의 일종입니다. 

p109에서는 마술적 사고의 함정을 강조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버릇이 병적으로 번지면 사서 근심걱정을 하는 상태까지 떨어지고,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지경까지 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고를 떠올렸다는 이유로 실제 그게 일어난다는 법은 없어(p111)." 이 논리로 확실하게 자신을 설득해야만 합니다. 예전에 마르틴 루터는 쉴새없이 떠오르는 죄악에 대한 상념 때문에 그런 사악한(?) 자신에 대해 과도한 죄의식을 느꼈는데, 어느날부터 "머리 위로 새가 날아가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새가 내 머리 위에 집을 짓는 건 막을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러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고도 하죠.   

"애쓰면 결과는 더 반대로 간다.(p163)" 걱정이 나를 완전히 좀먹기 전에 제어하는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농담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어 p165에는, A라는 걱정이 나에게 찾아올 때 대처 방법이, A를 완전히 코믹한 난장판으로 바꿔 상상하여 전체를 웃음판으로 만드는 법이 제시됩니다. 상황이 어이없을수록 치유 효과는 더 확실합니다. 사실 불안은 상황 자체보다 상황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비롯한다는 점을 저자들은 또 강조합니다. 사건, 해석, 감정(p185)의 배합 비율을 조절하여, 내가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상황을 주도할 만큼 침착 냉정 유능해질 때,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비로소 거듭납니다. 불안은 오히려 기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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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머물다 떠난자리 들꽃같은 그리움이 피어난다
탁승관 지음 / 미래와사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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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표지를 보면 말 그대로 "노을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 정말로 "들꾳 같은 그리움"이 피어날 것만 같은 풍경입니다. 시집의 모든 작품들에는 창작 일자가 적혔는데, 아무래도 작품을 짓게 된 계절(적어도)을 알면 그 시의 분위기와 주제가 더 속깊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p63의 <단풍잎>을 보면, 추수의 계절, 페이브먼트나 오솔길 구분 없이 노오란 단풍잎이 깔린 정취가 그대로 독자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가을의 빗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다분히 허무감에 젖게 하는데, 결실의 철에 부족하든 넉넉하든 그 나름의 몫을 챙기는 내 손을 들여다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을 베고 누운/길 잃은 수많은 낙엽들이/빗물 속에 잠긴 조각배가 되어." 낙엽은 어쩔수없이 때가 되면 가지에서, 나무에서 떨어져 부엽토가 되어야 할 운명입니다. 게다가 빗물은 조각배처럼 낙엽을 띄우기는커녕 (위 시행에 나오듯이) 오히려 낙엽을 물 아래로 잠기게 합니다. 그래도 낙엽은 불만이 없는 것이, 물 아래 토양과 합류하여 썩더라도 뿌듯한 일을 해 냈다 여기기 때문이겠습니다. 

겨울에 내린 눈은 도시에서야 출근길 발목을 잡는 지긋지긋한 훼방꾼이지만 산길과 시골길에서는 꽃과도 같이 마음을 포근히 만드는 풍경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눈[眼]에 눈[雪]은 눈꽃(p113)입니다. 그 꽃들은 새벽녘 산책길에 숲길을 밝히는 영롱한 광원입니다. 이 눈꽃과 걸음걸음 교감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시인은 비로소 시간의 깊은 의미를 되새깁니다. 눈은 이제 모두에게 꽃시계가 되어 태엽소리 없이 진로를 알립니다. 

세월의 강을 건너는 나그네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자신의 시간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고 또 곱씹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며 오는 사람 마다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습니다. 시인이 이 가는 길가에 바라는 건 눈치없이 앞을 환히 밝히는 가로등이 아니라, 보일 듯 말듯 방향만 알려주는 수줍은 달빛 같은 동무입니다. 시인은 나아가, 자신 역시 누군가의 갈 길을 넌지시 알려 주는 노을(p132)이 되고 싶다고까지 합니다. 그 같이 가는 강물이, 물오리도 근심 없이 노니는 평안한 자연의 손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호기심(p150)이 아닙니다. 사랑에 빠진 당사자라 해도, 처음에는 이 격랑 치는 내 감정이 사랑인지 치기어린 호기심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이 감정이 그리움으로, 설렘으로 발전하여 가슴을 후벼판다 싶으면 그때서야 내가 지는 게임임을 직감하고 사랑이라는 전쟁에서 을이 겪는 달콤한 패배감을 (피할 수 없으니)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그리움은 그 나름의 향기를 풍깁니다. 그래서 작은 낌새만 풍겨도 그(녀)는 쪼르르 달려갈 채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은 꽃망울처럼 가볍지만 마음에 영원한 흔적을 남기며 다가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모든 생명체는 숨가빠합니다. 태양은 우리로부터 1억 6천만 km 떨어져 있는데도 지표에 미치는 위력이 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메마른 대기 속에서도 훈풍은 불어오며, 에어컨의 인위적인 냉풍보다 우리의 땀을 더 시원하게 씻어 줍니다. 결과가 빤히 예상되는데도 우리는 바람에 감사하고, 지표 위를 번잡하게 오가는 작은 생명체로서의 한계도 새삼 절감합니다. 세상에 알고보면 감사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나그네에게는 잠시 숨을 돌릴 길가의 벤치마저 기다립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면 현대 한국의 도시화, 목가 풍경, 산과 물의 자분한 세(勢)가 파노라마(p142)처럼 펼쳐집니다. 풍경을 지나고 나면 차 안에서 터미널과 쉼터를 마주칩니다. 터미널은 번잡하지만 시인은 놀랍게도 그로부터 매연의 독기가 아니라 고유의 향내를 맡습니다. 이는 사람의 냄새이며 동시에 친지와 동기 사이에 얽힌 추억의 자취입니다. 오랜만에 사람과 자연이 하나됨을 포근히 맛보게 된 시집을 만났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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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입문을 위한 최소한의 동양 철학사 : 인물편 - 요즘 세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동양 대표 철학자 17인
신성권 지음 / 하늘아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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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신성권 선생님의 <서양 철학사(인물편)>를 읽고 리뷰를 올렸습니다. 지금 이 책은 자매편인 <동양 철학사>인데, 모두 17분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우리 한국 성현들도 여덟 분이 포함되었습니다. 동양 철학은 서양의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과 방향성과 깊이를 자랑하며, 우리들도 모두 동양인인 만큼 그 최소한의 내용이라도 공부하여 내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동양 철학의 정수, 핵심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되 그 주창자들을 깊이있게 분석하므로, 이 책만 잘 읽고 공부해도 교양인으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소불욕이면 물시어인." 공자의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중에도 골든 룰이라 하여 이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p21에서 저자는 "서(恕)"의 개념을 소개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나와 같이 생각하라"는 게 그 핵심이라고 요약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이를 절묘하게 <장자>의 해조(海鳥) 이야기와 연결시켜, 동물조차도 그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유리한 환경에서도 죽어버리는 이치를 설명합니다. 내가 아무리 상대를 생각하여 그런 행동을 했더라도, 상대가 그 호의를 마뜩지 않게 여긴다면 이는 내가 그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맹자는 공자-증자-자사로 이어지는 유가 적통의 대현인입니다. 그런데도 p35를 보면 이른바 폭군 방벌론을 주장하여 한때 문묘에서 초상화와 글이 제거되었다고 나옵니다. 당시에는 저런 주장이 불온시되기도 했겠으나,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눈으로 다시 보면 차라리 시대를 앞서 간 혁신의 사상가가 아닐까 싶게, 그 기개와 정의감이 새삼 위대하기까지 느껴집니다. p37을 보면 '하늘이 장차 큰 일을 맡기려는 인재에게 의도적으로 곤궁과 시련을 부과한다"는 고자장의 구절,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是故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나옵니다. 

p50을 보면 노자의 가르침에 대해 우리가 갖는 선입견과는 달리, 원래는 제왕의 통치술에 관한 저술이 <도덕경>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무위이치(無爲而治. p56)라든가 소국과민(小國寡民. p59) 같은 구절을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또 도가 자체와, 현세지향적 종교였던 도교를 구분해야 하며, 사람들이 그 각자 태어난 바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도록 도울 뿐 어떤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가 본연의 가르침을 유가와 선명히 대비시킵니다. 

법가는 현실이고 유가는 이상인데, 어째서 유가인 순자 밑에서 법가인 한비자가 나왔는가? 이런 의문이 누구에게나 들 만합니다. p85 이하에서 저자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순자의 독특한 입장, 한비자 사상의 도가 상통성을 들며 이 두 사람이 원래부터 잘 맞는 성향이었음을 시사합니다. 한비자는 너무나 현명했기에 이사(李斯)에 의해 참소(p86)당했지만, 이사 역시 환관 조고에 의해 비참하게 죽었으므로 너무 애달파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천도가 본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한편 p89 이하에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심원한 불교 사상이 등장합니다. 해탈과 열반, 고집멸도의 사성제, 12연기설 등이 설명되는데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심오하면서도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이어 신라 시대의 고승인 원효 스님의 사상이 설명되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해골물의 가르침, 정토(靜土) 사상, 화쟁과 일심 등 그의 사상 정수들이 알기 쉽게 이해됩니다. p115에 나오듯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자체는 馬鳴(마명) 대사가 지은 경전인데, 이에 주석을 단 분이 7세기의 원효이며 그 책이 <대승기신론소(疏)>입니다. 동아시아 전체에서 명저로 통했다고 하니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이어, 지금까지도 한국 불교의 대종을 이루는 조계종의 창시자 지눌 스님이 설명됩니다. 

주자는 유학에 불교적 형이상학을 접목시켜 그 철학적 깊이를 더한, 공자 이후 거의 이천년 만에 등장한 대학자입니다. 저자는 서양 플라톤 철학에서 현실과 이데아가 대립하는 이원론 요소를 지적하며, 주자학에서도 理(이)와 기(氣)가 대립한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지적합니다. 주자 역시 다른 유학자처럼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라는 두 가지 방법론을 강조했다(p136)고 합니다. 한국에서 이 주자학을 받아들여 대성시킨 유학자가 이황, 이이인데, 퇴계는 주리론이라서 기(氣)를 천하다(p144)고 본 반면, 구도장원공 이이는 기발이승일도설(p173)을 주장하여 둘의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북인의 태두인 남명 조식은 과단성 있는 행동가(p165)로 평가받으며, 애민정신으로 유명한 18세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원시 유학(p189)의 질박함을 복구하여 국태민안을 위정자들이 추구할 것을 주창했습니다. 

무려 1000권의 책을 써서(p197) 한국형 경험론의 토대를 놓은 최한기의 업적은 <명남루총서>에 잘 나옵니다. 수운 최제우는 한국형 종교인 동학(p209)을 창시하여 농민들을 각성시켰는데 20세기 들어 3대 교주 손병희의 손에 의해 천도교로 정립됩니다. 이렇게 동양의 철학 거인들, 그 중에서도 한국이 낳은 사상가들의 행적을 공부하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바르게 사는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한 대성현들의 가르침을 읽으니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초보자도 쉽게 접근하도록 잘 읽히는 문장이 최고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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