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학교, 학생이 주도하는 교실
이보람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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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자신의 이상과 포부를 마음 놓고 펼치는 인재로 자라나려면, 아마도 그 학교는 교사나 그 외 당국자보다는 학생 본인이 교육 커리큘럼 중 상당 부분을 주도하는 시스템이라야만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의 소질을 뽐내며 잠재력대로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은 어른들이 상상해 봐도 매우 뿌듯합니다. 물론 희망과 비전이란 그의 참된 포텐셜에 합당한 내용이라야 하며 터무니없는 욕심이나 환상에 기반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거품이 안 낀 바른 미래상도 결국은 자기 주도 학습을 통해서야 자리할 수 있는 것이며 이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라도 학생의 권리 보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과거처럼 일정 지식을 학생에게 주입하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p60을 보면 교사는 학생이 해 놓은 과제, 성취를 좀 더 다듬는, 주도가 아닌 보조 역할에 그칩니다. 책의 설명을 보면, 학생이 제출한 계획서(자기배움 과정)을 면밀히 검토한 후 국가 수준의 교과 과정과 접점을 찾은 다음, 이를 교사 수준에서 체계화한 교육 과정으로 정립한다고 나옵니다. p61 하단에 그 예시 문서가 나오는데, 관심 있는 교사분들은 확대 인쇄해서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p101을 보면 IB라는 게 설명됩니다. 국제공인교육과정이라고 번역되는데, 원어는 International baccalaureate입니다. 원래 프랑스의 대학 학부 입학 자격 시험 바카로레아도 석사 학위자를 뜻하는 bachelor하고 그 어원만큼은 같습니다. 이런 교육과정은, 앞으로 전개될 세계는 불확실성, 변동성, 복잡성, 모호성 등으로 특징지워지니 만큼, 어떤 기계화하고 정형화한 지식만 장착해서는 변화의 추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는 진단을 전제로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느닷 자신 앞에 전개되는 상황에 침착하고 융통성 있게 대처하되, 무작위나 충동, 운에 맡기는 요행 심리가 아닌 시스템적인 사고를 갖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자질을 갖춰야 합니다. IB는 이런 자질을 학생들에게 함양하는 모범적인 커리를 제시합니다. 

p120에는 지철이와 규빈이(아마도 둘 다 가명이겠지만)의 우화, 사례가 나옵니다. 투표를 하는데 여학생줄과 남학생 줄로 나누어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학생 줄이 더 빠르게 줄어서, 일부 남학생들이 볼평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선생님이 지철이에게 의견을 물으니 얘는 그저 웃으면서 자기 줄에서 묵묵히 기다리더라는 것입니다. 착한 학생이죠. 그런데 선생님은 약간 걱정이 들더라고 하네요. 분명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지철이는 상황을 개선할 생각보다는 무기력한 순응을 선택한 것 아닌가. 글 말미에도 나오지만 지철이가 꼭 잘못이라는 건 아닙니다. 이런 학생들이 일선에서는 대부분이고 또 기존의 커리큘럼에서는 이런 모범생으로의 교육을 지향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효율을 찾을 수 없을 때, 부조리를 과감하게 지적하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제시하거나, 찾으려 노력하는 건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물론 어설픈 공명심이나 주목 욕구가 주된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되며 공동체의 앞날을 개선하려는 진지한 자세와 마음가짐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죠. 규빈이는 이 이야기 안에서 "남자애들이 여자 줄로 옮겨가서 서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은 여학생들의 편익(현재 혹은 미래의)을 해치는 바도 없고, 남학생들의 편익은 그것대로 증가시키는, 말하자면 파레토 효율을 달성하는 아주 합리적인 방안입니다. 

물론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편협한 인간이라면 앞뒤를 따지지도 않고 일단은 구태의연한 성별 장벽을 지키려 들겠지만, 이 사례에서 선생님은 주저없이 "그렇게 해!"라며 승인을 내립니다. 승인을 할 뿐 아니라 규빈이의 유연한 사고를 칭찬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경우 무질서가 초래되면 안 되므로, 오래 기다린 순서대로 일정 인원만큼만 이동시켜, 두 줄의 끝이 같아지는 선에서만 변동을 허락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자기 주도 학습 습관이 몸에 밴 학생은, 자신뿐 아니라 모두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친구들을 이끌 줄을 압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TV보다 스마트폰을 더 자주 사용하는 세상입니다. 이에 대해 걱정만 할 게 아니라 기왕이면 스마트폰을 자기 주도적으로 활용하게끔 지도와 교육을 베푸는 게 낫겠습니다. p140을 보면 "덜 가르치고 더 배우게 하기"란 말이 나오는데, 아이들을 어른이 가르치려 드는 것보다, 아이가 스스로의 생각과 결단에 의해 배우게 돕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는 뜻이겠습니다. 아이들은 이 예화(실제)에서 템플릿 폼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들춰 보고, 마음에 드는 걸 써도 되냐며 선생님께 허락을 구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에 맞춰 ppt를 개성적으로 제작하고, 어떤 단계에서는 교사보다도 더 높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기어이 멋진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학교라기보다 놀이동산에 가까운 곳에서 길러지는 창의력(물론 남에게 보여 주가 위한 가짜나 흉내, 구실, 핑계가 아닌)을 갖춘 인재라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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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여행 중국어 [핵심 표현 정리집 PDF + 테마별 단어 정리집 PDF] - 급할 때 바로 찾아 말한다!
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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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휴대가 편한 여행중국어책입니다. 여행 다닐 때마다 상황에 합당한 표현을, 잠시 책 참조해 가며 접객원, 안내자, 식당 주인, 역무원, 호텔 데스크 등에 내 입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훨씬 즐겁고 편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다른 책에는 잘 안 나오지만 실제 여행시에는 꼭 필요했던 표현이 많아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여행외국어책은 목차도 목차지만, 목차와는 별개로 가나다순 색인이 따로 있어야 상황이 발생할 때 바로바로 찾아서 참고할 수가 있습니다. "필요한 문장과 단어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한 색인이, 목차, 책 특징 소개 페이지 바로 뒤에 나옵니다(책 맨뒤가 아님). 아무리 책 내용이 좋으면 뭐하겠습니까? 필요할 때에 책 어디엔가에 있는 그 정보가 내 눈에 바로바로 들어와야 그게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책의 컨텐츠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부터 접근이 가능해서 좋았습니다. 

모든 단원 앞에는 긴 문장 표현 말고, 개별 단어를 중국어로 뭐라 하는지 생각이 안 날 때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도록 별도로 항목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공항 편에서는, 게이트, 환승, 탑승, 연착 등을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32개 단어를 앞부분에 따로 모아 놓았습니다. 카트는 중국어로 뭐라고 할까요? p42에는 手推车(셔우투이처)라고 나옵니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손으로 미는 차(車. 수레)지요. 우리말로도 堆는 밀 퇴라고 읽기도 합니다. 퇴고라고 할 때의 그 글자입니다. 책에는 셔우투이처라고 한글로도 적어 주고, 병음기호에는 성조도 표시해 두었습니다. "제일 가까운(the nearest)"은 最近的인데, 뭐 우리말로 하면 "최근적"이니 대충 뜻이 짐작 가능하죠. 역시 병음으로 주이 찐 더 라고 대략의 발음이 나오며 성조에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이 最近的은 간체와 정체 구분이 없어 한국인 눈에도 바로 들어옵니다. 

거리에서 쓸 수 있는 표현들이 p66 이하에 죽 나옵니다. 일단 "~가 어디 있어요?"라는 기본 문형을 알아야 하겠는데, 在哪儿(짜이날)이 그것입니다. 짜이날 앞에다가, 내가 알고 싶은 장소를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이 레스토랑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하려면, 這個飯館짜이날이라고 하면 되죠. 물론 간체자로 제대로 적으면 这个饭馆在哪儿입니다. 레스토랑이 饭馆이며, 관형사 "이(this)"가 饭馆입니다. 한국식으로는 반관이지만 중국어로는 판관 비슷하게 읽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조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교통수단, 특히 택시 등을 이용하고 나서 영수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영수증은 發票(발표)라고 쓰는데 물론 대륙식 간체로는 发票이며 그 발음은 p86에 나오는 대로 파피아오 비슷합니다. 역시 이때에도 병음에 표시된 성조를 최대한 살려 발음해야 하겠습니다. 여튼 영수증이 파피아오이며,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給我發票吧(급아발표파), 간체로는 给我发票吧(게이 워 파피아오 바)입니다. 버스 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려면 車票多少錢(차표다소전)이며, 간체로는 车票多少钱(츠어퍄오 뚜어샤오 치엔)이라고 책에 나옵니다. 

우리나라, 특히 수원 등에 소재한 여러 노래방은 중국인들도 자주 이용하는지 간판에다 練歌廳이라고 써 놓기도 합니다. 물론 저렇게 정체로 쓰면 중국인들이 모르므로 练歌厅이라고 간체로 써야 합니다. 련가청, 풀면 노래를 연습(수련)하는 홀이라는 뜻인데(ㅋ), 廳이라는 글자가 본래 영어의 hall 정도의 방을 뜻하게끔 중국어에서 뜻이 확장되었습니다. 따라서 厅이면 괜히 한국식 한자를 거쳐 관청 같은 걸 번거롭게 떠올리지 말고 hall로 바로 번역하면 거의 안 틀리더라는 게 저 개인적 노하우입니다. 이 책 p106을 보면 호텔에서 로비가 어디냐고 물을 때 大厅在哪儿이라고 하면 됩니다. 즉 로비가 대청(大厅. 따팅)인 것입니다. 짜이날 문형은 이미 앞에서 배웠습니다. 

이 책의 또하나 장점은, 모든 페이지 하단에, 지금 이 단원이 책 전체에서 어느 파트에 해당하는지 표시를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다른 파트로 가고 싶으면, 구태여 맨 앞 차례로 돌아가서 해당 내용이 몇 페이지에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그 페이지 맨밑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책 옆면에 thumb index가 다 나오기 때문에, 손으로 페이지를 후루룩 넘기면서도 내용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접근성이 좋아서 더 효용이 컸던 책이었네요. 

*시원스쿨에서 책을 제공받고 활용해 보며, 솔직하게 또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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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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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은 마포구 소재이니 한강 벨트에 (크게 봐서) 속합니다만 아직도 개발이 미진한 구역이 많아서인지 서울 북부 같는 느낌이 드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일산까지의 거리도 매우 멀지만, 느낌상으로는 일산도 금방 갈 것만 같습니다(제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은원이 성이연을 찾아가는 길이 대흥동에서 버스를타고 일산으로 가는 건데, 개발 초기와는 달리 현재는 매우 침체된 분위기인 일산이 목적지라는 점도 그렇고 뭔가 좀 다운되고 약간은 어둡기까지 합니다. 현재 은원은 집을 비워, 자신의 공간을 "은원 없는 은원의 집(p16)"으로 만든 상황, 여튼 기어이 백석역에 도달해 호수공원 근처 약속한 찻집을 찾은 은원. 이미 성이연은 장소에 나와 있습니다. 

은원은 제 생각에 주위 사람들에게 다소 걱정을 끼치는 타입인 듯도 합니다. 연락이 안 되니 한차연은 안달복달하며 걱정할 만도 합니다. 소설 초두는 차연이 은원을 걱정하며 기어이 그 집에까지 와서 부재를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제주도 여행이 기어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었다는 말인가. p91에서 은원의 어머니는 차연에게 전화를 해 그녀만이 해 주었던, 앞으로 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부탁합니다. 차연의 답은 남자답게 흔쾌하고 단호합니다. 어머니의 전화가 아니었어도 이미 그럴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차연은 성격답게 "무조건 아이스아메리카노(p127)"를 읊습니다. 그러나 은원은 따뜻한 라떼를 마시겠다며 약간은 뜻밖으로 다른 의견(?)을 냅니다. 이 순간 은원은 아마 아아를 마실 수가 아마 없었을 겁니다. 머리 속에 아카이브처럼 기억을 저장해 두는 게 "변태" 짓일까요? 은원이 하필이면 그 말을 꺼낸 걸 갖고 차연 본인도 아니고 밖에서 보는 독자가 뭔가 위화감을 느낄 필요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뭔가 아슬아슬해진다는 예감은 은원이 갖는 것 같습니다. 생리 이야기를 꺼내다 "이렇게 편해도 되나?"며 스스로 겸연쩍어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잔잔한 소통과 약간은 수상쩍은 로맨스가 기대되던 초반의 분위기는 이후 급변합니다. 다소곳이 어느 시인(이름은 진이정이라고 합니다)을 여느때처럼 토의할 것 같던 차연과 은원. 물론 차연은 우리가 눈치챈 대로 시인 같은 토픽을 즐길 사람은 아닙니다만 이상하게도 이때 차연은 은원의 말머리를 급히 자릅니다. 평소답지 않죠. 그런데 은원은 오히려 후련함을 느낍니다. 이 후련함은 감정상의 유쾌함이 아니라, 그저 예감만으로 취급했던 불안, 불길 같은 게 여튼 현실임을 깨닫고 느끼는 시원섭섭, 허탈, 체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은원의 운명은 급하게 진로를 잡는데... 남 보기엔 날벼락이겠으나 은원 같은 이가 그리 충동적으로 뭘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집착이 문제였어요. 관계에 대한 집착이 우리를 괴물로 만들었지요.(p204)" 소현정과 이인태 부부는 둘 다 전문의입니다. 기술, 특정 순간과 상황에서 그들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특정 기술에 대해 이해를 갖춘 사람들입니다. 초4인 딸 서인이가 크게 다쳤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천공렬 회장이 제안한 놀라운 내용, 유전자 복제를 통해 예전의 딸을 다시 만나라는 게 차분한 이성으로 그 당부가 판단되지 않는다는 다소의 회한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배반당했고, CL바이오 측은 다른 속셈을 감추고 있었던 거죠. 차연은 이미 기술의 위험함을 감지했었으나 다만 현정 부부가 내적으로 어떻게 그 정도의 단단한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을 뿐입니다.  

p244에 다시 언급되는 마포구 대흥동은 은원이 다니는 회사 소재지입니다. 차연은 기어이 은원과 다시 연락이 되었고 전화로 접촉이 된지 40분만에 은원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상황이 잠시 fade-out되고, 이제까지 oo로 알았던 ooo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차연의 목에 칼을 들이댑니다.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 어디쯤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끌려간 차연과 은원은 거기서 ooo와 ooo를 만납니다. 심하게 구타까지 당한 듯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다소 생뚱맞은 상황에서 oo은 oo에게 고백 비슷한 걸 합니다! 물론 oo의 생각이 뭐였는지 정도야 우리 독자들이 진즉에 다 눈치챘습니다만 그 상황과 시점이 생뚱맞다는 겁니다. 다만 은원의 생각이 무엇인지가 여전히 아리송한데... 이제 차연과 은원은 천 회장의 비정하고 위선적인 표백을 들으며 그와 맞서는데 다만 이 와중에 약간은 낯설어진 모습을 은원에게서 차연은 느낍니다. 막판까지 결말이 과연 어떻게 될지 예측이 안 되어 더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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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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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기 전부터 입소문이 자자해서 기대를 잔뜩 가졌는데, 막상 받고 읽어 보니 마음이 무척 답답해졌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사회구조, 평균적인 사람들의 심성 몇 측면이 닮았다 보니,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사회상이 꼭 일본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 한국의 여느 싱글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마지리 다카요 씨는 못난 남편을 만나 재산상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 영향이 친정에까지 미쳐 거의 살림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입니다. 딸 아야나까지 혼자 힘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 궁핍함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읽으면서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렇게 친절한 사채업자가 있다는 게 말이 될까? 과도한 친절은 뭔가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채업자는 기어이 다카요의 집에 찾아오려 들고, 하필이면 남편에게 받을 빚이 있다는 불량한 사내도 같은 날 찾아오겠다는 기세라서 다카요는 극도로 불안해집니다. 다카요는 이른바 헬스딜리버리라는 준 성매매업소에까지 다닐 뻔했으나 직전에 다르게 진로를 틀었기에 우리 독자들은 더욱 불안해졌다가 잠시 안도하게 됩니다. 지금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건 간에, 칼까지 손에 쥔 상태에서 괜히 경솔한 판단은 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예전부터 일본 미스테리물은 서술 트릭을 교묘히 잘 쓰는 걸작들이 많았습니다. 이 작품은 서술 트릭, 나아가 사건의 배치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트릭인 셈이어서 구성 트릭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칼을 쥔 다카요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이 생략된 채, 누마지리(p225에 누미지리라고 오타난 부분 있습니다)가 그 마음 좋은 사채업자 밑에 들어가 사부님으로 모시며 일을 돕고 배우는 장면으로 바로 넘어갑니다(그렇게 보입니다). 누마지리는 (기대대로 사람 좋아 보였던) 사부님 밑에서 특유의 순진함도 드러내며 경제적 곤궁도 벗어나고 있는 듯해서 독자는 그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다만 딸 아야나를 어떻게 할지가 문제인데, 배우자에게서 "딸에게 학대를 가한 적 있다"는 공격까지 받는 판이라서 양육권을 둘러싼 다툼이 불리해질 듯도 합니다... 

와... 지나고 보니 이 부분도, 작가가 노골적으로 힌트를 준 셈이었는데, 독자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많은 사회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 하나가 있습니다(뭔지는 이 리뷰에서 말할 수 없고요). 이 요소 때문에, 이 소설은 한국을 배경으로라면 도저히 그 트릭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이 소설은, 라디오극이나 영화로 절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지면(紙面) 소설이 담을 수 있는 트릭의 극한까지 몰고갔다는 점에서 저는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소설은 여태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입소문이 과연 그렇게 날 만했습니다. 

소설은 2부로 구성되었는데, (앞에 말했듯이) 2부에서도 딱히 다카요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진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적응, 안정을 찾아가는 듯해서, 작품의 긴장은 감소해도 차라리 독자는 마음이 좀 놓입니다. 뭐 별것없고, 그냥 착한 사채업자도 세상에 있긴 하고, 현행법(우리 나라나 일본이나)이 워낙 강하게 규율하기 때문에 요즘은 저런 패턴의 사업도 나오나 보다(이른바 소프트사채)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업계의 실태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면 곤란하겠습니다. 별일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소설은 좀 밍숭맹숭하다, 이렇게 착각하고 책을 덮...을 뻔했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사건의 진상을 잘못 파악했습니다. 마지막에 인물 간의 대사가 바뀌었나 싶은 대목이 있긴 했는데, 둘이 이야기가 잘 안 되어서 ooo가 xxx을 죽이고 비극으로 끝났나 보다 하고 독서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지금 사회고발 소설인가, 아니면 미스테리물인가? 분명 걸작 미스테리라고 해서 읽었는데 뭐가 이렇게 심심하지?" 싶어서 양윤옥 역자의 후기를 읽었는데, 엄청난 반전이라고 해서 뭐지 싶어 (좀 이상했던) 마지막만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는데 한동안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속을 수도 있구나! 

반전인 줄 알고 다시 읽어 보니, 소설 곳곳에 빤하게 힌트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두눈뜨고 속은 셈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제목, 차례에까지도 힌트가 대놓고 주어졌는데 그걸 몰랐다니! 자세하게 짚으면서 여기, 여기, 여기가 암시, 복선이었다고 썰 좀 풀고 싶지만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자제하고 후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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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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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중후반부에 고아원에 버려진 소년 이고르가, 국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장군에게 입양되기 불과 몇 시간 전, 표트르와의 살벌한 다툼 때문에 장밋빛 꿈이 사라지고 소년원에 수용되는 비극을 맞았었습니다. 저는 소설에서 이 대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영화 <백 투 더 퓨처 2>를 보면 주인공 마리(마티)가 "치킨"이라는 조롱을 끝내 참느냐 마느냐로 미래가 바뀌고 말고의 기로에 서는 설정이 있죠. 이런 세팅 자체는 매우 흔하지만, 베르베르는 어린 이고르에게 상황을 냉철하게 살필 이성을 충분히 부여하여, 표트르의 어떤 도발에도 불구하고 "참아야한다!"를 내면에서 끝없이 되뇌는 장면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고르는 실패하지만, 그의 고뇌를 충분히 어필하면서 진부함도 피하고, 수호천사의 구원 시그널을 방해하는 건 외부의 악마 같은 게 아니라 당사자 내면의 못난 고집이라는 주제도 더 선명히 부각합니다. 

한편, 이 2권 p26을 보면 중국 고사 새옹지마가 언급되는데, 우리한테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설화일 것입니다. 1권, 소년원에서 절치부심하던 이고르가 얼마 후 그 장군이 추악한 범죄를 저질러 파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안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저뿐 아니라 한국 독자 누구라도 새옹지마 고사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다만 새옹지마 항목 소개가 왜 한참 뒤인 이 2권 116번 꼭지에 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고르가 형벌 부대에 징병되어 체첸과의 전쟁에 끌려가는 운명이, 마치 새옹지마 고사에서 아들 또래들이 맞는 상황과 닮아서일 수도 있죠. 

이 2권 p33을 보면 "관념권"을 설명하면서 리처드 도킨스 등의 입장을 재미있게 풀어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페이지 중간쯤에 보면 자크 모노라는 저자의 <우연과 필연>이 소개되는데, 이 책은 우리 나라에 이미 번역이 되어 있는 인문 명저입니다. 정말 내용이 좋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37을 보면 비너스가, 1권에서 그리 노래를 부르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입상하여 소감 중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p44에서 이고르도 수훈 후 상관에게 마땅히 둘러댈 말이 없어 어머니에 대해 공치사를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동기는 생판 다른 것인데, 이고르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서는 이미 1권에서 우리 독자들이 다 알았습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지난세기에 꽤 유명했던 페전트인데, 현재 젊은 세대에는 지명도가 떨어져서 어떤 사람은 "베르베르가 지어낸 행사임?"이라고 제게 묻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한국에서도 열려 기념우표도 발행되었습니다. 

p65를 보면 이고르가 낙담하며 스탤론의 영화를 보고 시름을 달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생각할 것도 없이 테드 코체프 연출의 <First Blood>, 우리가 람보 1편으로 알고 있는 그 영화입니다. 와 그러고 보니 람보하고 이고르가 닮았네 라며 감탄할 필요까지는 없겠는데, 당연히 람보에서 영향을 받아 베르베르가 이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스탤론은 이처럼 비주류, 억울이(?) 배역을 자주 맡아 1980년대 백인 일부층에 큰 호응을 얻었는데, 반면 슈워제네거는 그런 배역을 맡은 적이 없는지라 이고르가 뭘 보고 공감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스탤론에게는 현재의 루저로서 울분을, 슈워제네거에게는 자신이 전쟁터에서 누린 승자의 영광을 투사했을 듯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그의 자유입니다. 

여튼 이고르는 딴에는 대단한 자제력을 발휘합니다. 경찰서장으로 출세한 바냐를 보고 그의 도발(이고르는 그렇게 해석하는데,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에도 꾹 참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마 한때 폭력으로 제 주변을 제패한 자가, 싸움 실력으로는 한참 밑인 자들과 대등하게 살아간다는 자체가 엄청난 굴욕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고르에게 부당한 도발을 일삼는 자들도 있으나, 상당수는 그저 사회 통념에 따라 그를 대할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p97에 나오는, 어떤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그 결합이 오랠 수 있는지에 대한 웰스, 아니 베르베르의 지론이 무척 재미있고, 이 원칙은 저 뒤 p241에 구체적인 사례(뭘까요?)에다 적용이 됩니다. 

이고르는 (악착같기 짝이 없는 카르마 때문인지) 그 생부(이 양반은 이고르가 누군지도 모르죠), 바냐, ooo까지, 전혀 예측 못했던 상황에서 차례로 만납니다. 특히 ooo은 이미 1권에서 죽은 줄 알았기에 독자의 충격은 더 큽니다. 저는 이고르의 편은 아니지만, ooo가 이고르에 대해 그토록 깊은 한을 내내 간직했다는 게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자들은, 폭력의 논리에만큼은 철저하게 맹종하고 언젠가는 폭력으로 파멸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그 운명의 방향을 일단은 (작품 안에서) 정리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말입니다. 

타티야나의 치료에 힘입어 배꼽에 생긴 암이 나은 이고르. 베토벤도 재능이 곧 저주라고 여겼었는지 가장 축복받은 신체 부위인 "귀"에 말년에 탈이 생겼습니다. 이고르는 아마 출생이, 또 모친과 자신을 연결했던 그 흔적 부위가 그리 저주스러웠나 봅니다. 사실 마지막에 이고르가 그런 선택(p181)을 한 게 납득이 인 된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고르 입장에서는 운명의 신, 수호천사(그로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으니)가 자신을 높이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반복을 도저히 더 참을 수 없었겠고, 타티야나라는 "마지막 엄마"를 또 잃느니 차라리 자신이 먼저 그녀로부터 상실되자며 일종의 복수를 한 셈입니다. 물론 타티야나 입장에서는 뭔 날벼락인지 전혀 몰랐겠고 말입니다. 

자크 넴로드... 팽송은 1권에서 세 의뢰인이 고루 자신의 숨은 욕망을 대변한다고 했으나 이 자크는 팽송, 나아가 베르베르 본인을 너무도 닮아 있어서 어떤 대목은 독자가 읽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p194에서 메리냐크는 성공한 작가로 등장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자크를 표절했다며 조롱인지 리스펙트인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알듯이 베르베르는 성공한, 그것도 글로벌리하게 크게 성공한 작가이며 그래서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서 이처럼 번역본 개정판까지 나온 작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발한 아이디어의 과잉이라는 특징적 요소는 베르베르를 사랑하는 독자들마저 아쉬움을 느끼게 하죠. 자크는 아마 다른 평행우주에 사는, 실패한 버전의 베르베르일 수 있습니다. 사실 베르베르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좀 아껴 두지 않고, 마치 아무 피자에나 최대의 토핑으로 보답하는 인심 좋은 주인마냥 지금 집필 중인 작품에다가 모든 기발한 착상을 다 때려박기 때문에, 독자는 나중에 가서 작품들이 잘 구별이 안 되는 곤란함을 겪기도 합니다. 하긴 이 역시도 그만의 창의력이 빼어난 탓이긴 합니다. 

이 작품은 예상을 비껴가 하르마게돈의 대회전을 거쳐 엄청난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나중에는 하나의 공식이 되긴 합니다만). 딱히 악인이나 빌런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특정 선역 캐릭터가 기어이 흑화하여 참극이 빚어지는 결말이 충격입니다. ooo는 주어진 운명이 부과한 시련을 매번 극복했기에 독자들은 그를 좋게 보았는데, 사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매번 뒤로 미루었기에 마지막에 크게 곪아 터진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게 그의 잘못이며,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100m 세계 신기록을 세우라고 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는 성숙함은 누구에게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는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한편 1권에서도 우리가 봤고, 2권 p67에서도 재확인한 그 업보 때문에, 결말에서 ooo 부부가 그토록 참혹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숫자 7에 얽힌 비밀(p169)은 이 작품에서는 끝내 완전한 해명이 안 되고, 독자들은 14년을 다시 기다려 <신(神. nous les dieux)>에서야 해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천사들의 제국> 1권 p82, p110에 보면 엘로힘, 신들이라는 복수형(plural)에 대해 언급이 있는데, 이른바 존엄의 복수형(pluralis majestatis)이란 것이며 기독교나 유대교나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복수형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저 작품 <신>도 원래 프랑스어 원제로는 "우리들, 신(동격)" 정도의 뚯입니다. 베르베르는 이처럼 엄청난 지식을 통해 후속편에 대해서도 제법 깊은 복선을 미리 깔아둔 셈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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