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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
오브리 파월 지음, 김경진 옮김 / 그책 / 2017년 12월
평점 :
그동안 많은 음반 애호가들에게, 앨범의 컨텐츠를 창조하고 연주하는 뮤지션 본인들만큼이나 레전드로 추앙받았던 앨범 커버 디자이너 그룹 힙노시스에 대한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판 수집하는 동네 형 누나들 집에 놀러가면, 사실 겉치레 폼으로 남들 하니까 따라서 모으는 분들도 있고(그런 유행도 한때 있었거든요. 요즘 애들은 모르겠지만) 컬렉션은 그들에 비해 좀 양적으로 빈약해도 내공이 그윽한 "진짜 수집가" 형들이 또 따로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들어야 배울 게 생기는데, 이런 분들이 항상 폼 잡고(아니지만) 꺼내는 이야기가 힙노시스의 커버 타령이었습니다.
힙노시스 하면 핑크 플로이드 이야기가 또 자연 따라나옵니다. 요즘은 컨텐츠 믹스, 퓨전 미디어를 아예 치밀한 기획 하에 줄줄 엮어내는 게 대세이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그 예전부터도 공연, 음반 포맷 등이 하나하나가 정성이 깃든 총체적 기획자들에 가까웠죠. 역설적이지만 참 상업적이라는(죄송합니다) 느낌도 들 만큼 말입니다. 허나 예술적 감각도 없으면서 팬들(호갱) 지갑만 노리고 별 필연성도 없는 타이-인 매체를 마구 찍어내는 것과, 핑크 플로이드처럼 내 예술은 이런이런 미디어들에서 이 정도 완성도로 동시 구현, 제작되어야 미학적으로 떳떳하게 완성된다며 분명히 선언하는 경우는 물론 구별되어야 합니다. 여튼 한국에서는 핑크 플로이드 팬들도 많았고, 레드제플린(소개가 필요하겠습니까?), 스콜피언즈(이분들이 인지도는 한국에서 더 높았겠죠?), 데프 레퍼드(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많이 사랑받았습니다),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 AC/DC(지금은 많이 잊혀졌죠) 등의 지지자, 추종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그룹들의 앨범에 모두 힙노시스가 간여했으니 음악을 건성으로 듣지 않고 레코드판 표지까지 꼼꼼히 보고 어루만지고 말 그대로 완상하던 열성 팬들은 사실 디자인의 최소공배수(어쩌면 최대공약수?)가 무엇인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던 형편입니다.
왜 이제서야 나왔을까? 이런 만시지탄에 가까운 느낌보다 더 절실한 건, 토머스&헛슨의 하드커버 초판이 나오고 불과 몇 달 되지도 않아 한국에서 이처럼 빨리 번역서가 출간되었다는 반가움입니다.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상업성이나 당장의 수익을 보지 않고 오로지 컨텐츠의 가치만을 보고 가겠다는 다짐은 많은 출판사들에서 표현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곳은 매우 드뭅니다. 가격도 이 정도면 딱 적정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 가격차별화 원리라는 게 있죠. 대중적으로 엄청 많은 판매고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면 아예 강한 수요(소장 욕구)를 가진 층(어쨌든 사고야 말 사람들)을 겨냥하여 확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게 하나의 전략인데, 제 느낌으로 자신들의 청춘 낭만 한 자락을 소중히 추억하며 souvernir를 챙기고 싶은 분들에게는 십만원대를 불러도 기꺼이 구입하지 싶거든요. 그런데 누구에게나 이 가격이라니.
저는 개인적으로 힙노시스의 모든 작품이 하나하나가 높은 예술성을 지녔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여튼 그들의 재능과 천재성은 크리에이티브와 컨셉 창조 쪽이었으며, 개별 작품은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해당 아티스트들과 제작사 쪽과의 어떤 타협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이런 지존들에게는 제작사가 노터치라고는 해도 말입니다). 앨범 커버는 어디까지나 커버일 뿐이며, 대중(미술 팬들도 아니고 팝 뮤직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overture(좀 심한가요?)이며, 힙노시스 자신들의 "솔로 엑서비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며 핑크 플로이드의 "위 돈 니드 노 에듀카이션(다들 아시다시피 문법적으로 틀린 영어죠)"를 흥얼거리던 분들, 운 좋게 공연 영상의 한 자락까지 함께 구경할 수 있던 분들은 이게 단지 노래 한 곡 듣는 체험이 아닌, 영화 같은 종합 예술의 감상, 나아가 일종의 제의(祭儀)에 참가하는 양 어떤 포괄적인 정화, 전율을 체험했을 겁니다. 일종의 영혼 씻김굿이나 한 양 멍한 느낌을 맞고, 이 감정의 상태를 혹 사진 한 장으로 찰깍 찍어둘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감성의 자락은 일기장에 개인적으로 자기 언어로 포착할 수 있습니다. 허나 그걸 구상으로 캡처한다면 이건 다른 재주를 부려야만 가능할 텐데 그걸 대신해 주는 게 앨범이면 자켓 디자인이고 공연이나 행사면 포스터입니다. 그게 일종의 당위이고 그걸 못 하면 해당 디자이너가 무능한 거죠.
이걸 거의 한 번의 실망도 없이 "사전(事前)" 시각 독후감샷을 대신 만들어 준 게 (누구누구의 팬들에게는) 바로 힙노시스였습니다. 그러니 그 세대에 속하는 분들 중, 힙노시스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고 하는 이들은 벌써 불행하게도 성장기의 결핍 진한 한 줄 상흔이 마음을 긋고 지나간 셈이라고까지 한다면 어떨까요, 좀 지나칠까요? 사실 진짜 딱한 분들은, 해당 음반을 모았으면서도 거기 힙노시스 이름자가 박혀 있는 줄도 모르고 넘어간 분들입니다. 커버는 그냥 포장지인 줄 아는, 선물 할(받을) 때도 포장지까지 함께 정성을 들이는(간직하는) 생의 묘미를 모르는 나무토막 같은 무정함이죠.
일단 저자 명의는 오브리 파월입니다. 서문은 피터 게이브리얼이 따로 쓴 게 실려 있고요. 이런 책에서 그냥 그들의 그 장구한 세월 빛나는 작품들만 구경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음반 디자인을 이루는 방법"까지 니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초보자도 따라하다 30일만에 도사되는 노하우!" 같은 천박한 상업적 눈속임과는 천양지차이며, 어떤 점에서 이 역시 그들의 회고록 편린에 가깝습니다. "우린 이런 식으로 했다." 재능도 없고 남의 재능을 싼 값에 카피할 헛된 욕심만 가득한 비천한 정신이 감히 따라할 수도 없는 경지, "노닒".
저는 예를 들어 니노 로타라든가, 엔니오 모리코네라든가, 존 윌리엄스, 한스 지머 같은 이들이 영화 제작에 참여할 때 과연 해당 작품을 꼼꼼히 보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후에 작곡을 하는지, 아니면 그저 평소에 떠올랐던 근사한 악상, 멜로디에 적절히 재가공, 재활용 작업만 부가해서 내놓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거장이라고 해도 모든 프로젝트에서 그 태도나 자세가 일관되지는 않을 겁니다. 헌데 이 책을 보면서 놀란 건, 힙노시스(중에서도 오브리 파월)의 작업(크리에이션) 마인드는, 여튼 음반을 완전 몰입 완전 통독(?) 한 후에 자기들끼리의 난상 토론을 거쳐서 작품을 뽑아낸다는 겁니다. 오히려 겸손하게도 파월은 "앨범 커버는 해당 앨범의 일부일 뿐 우리 자아의 반영, 고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취지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작업이기에, 우리 팬들은 커버에서 "같은 팬, 감상자의 자격으로" 힙노시스와 공감하며 때로는 감상의 가이드라인까지 시각적으로 제공 받는 겁니다. 마치 영화 테마 음악이 그 작품의 잔향을 압축 요약하듯이 말입니다. (이런 앨범 커버 디자인과는 방향성이 정반대인 셈이죠. 시각을 청각으로 치환, 요약하는가, 반대로 청각 체험을 시각으로 압축하는가)
왜 음악인들의 정규 작업 결과물을 "앨범"이라고 부르는지 깊이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유력한 근거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힙노시스 같은 예술가들의 참여와 기여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앨범은 동시에 우리 팬들의 추억 구축에도 힘차게 아름답게 이바지하는 셈이고요. 이 "힙노시스 전집"은 이제 그들이 한 시대를 마무리하며 팬들(어느새 그들의 팬까지 되어 버린 우리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