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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소설, 아주 길고 긴 만큼 사연이 풍성하기도 하지만 두 줄로 요약하면 이럴 것 같습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결국 주인공은 나야 나"
요즘
소설은 작위적으로 불행한 주인공을 만들어 내어, 삶이 순탄치 않은 일반 독자들에게 진통제나 투여하듯 불건전한 처방을 내리는 수가
많습니다. 반면, 우리가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에서 그 발랄한 재주의 일면을 이미 맛 본 것처럼, 스위스인 조엘
디케르는 소설의 본령, 본연의 사명에 매우 충실한 작가입니다. 전하는 말들이 밝고 따스하며, 그렇다고 억지로 밝아지려고
발버둥치지 않는, 유쾌하면서도 현실감 있는 사연을 직조해 냅니다. 사연에 사연이 꼬리를 무는 것도 어쩌면 전통적인 이야기꾼들이
청중을 앞에 두고, 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며 그 예전부터 의존하던 방식에 가깝지요. 주인공들 역시, 세상을 향해 막무가내로
안기려 들거나, 반대로 투쟁의 시선으로 일관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정은 인정대로 받고 싶되(솔직히 좀 속물이 아닐까 싶게),
아니다 싶을 때는 무모한 싸움을 서슴없이 걸죠. 다만 그 과정에 균형감각과 현실적인 지혜가 필요 합니다. 재능이 뛰어나되 이
순간적인 절제, 센스가 결여된 이들은, 바로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내 신중하고 관계 속에서의 현명함을 발휘하며
살아 온 이가, 단 한 번 한순간의 실수(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로 모든 것을 잃고 말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부모가 반 팔자"라고도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법칙의 예외를 만드는 생이 너무도 많죠. 반면 성장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거의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고 들어가지 않나 싶습니다. 성장기를 불행하게 보냈거나, 불건전한 영향만 가득 받고 자란 사람은
커서도 결국 실패자가 되거나, 망상만 가득한 채 허언과 허세로 가득한 연극(그 연극이 즐겁기나 하면 좋을 텐데) 같은 삶을 살게
되죠. 이런 사람은 감정의 기복이 극과 극입니다. 한순간 악몽("난 모든 관계로부터 버림 받았구나!")을 맞았다가, 자기 의지가
아닌 우연한 요행으로 "가짜 목표"가 손에 들어왔으니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얼마 안 가 자기 생의 실체가 눈 앞에
들어 오면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겁니다. 현실 도피가 답이 될 수는 없는데, 여튼 당장 감정의 지옥을 면했으니 억지로 기분을
띄우고 돌아다닙니다. 과거로부터 뭔가 배우는 바가 있으면 그 인생이 이처럼 단순반복의 땜질로 점철되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주인공
마커스("마키") 골드먼은 현재 베스트셀러 한 편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띄워 놓아, 아직 젊은 나이에 모두의 선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비극적인 사건은 7년 전에(11년 후에) 벌어졌(진)다."란 문장이 하도 반복되기에, 이 사람 저
<미저리> 같은 데 나오는 중노년 은거 작가라도 되나 싶었지만 아직 꽤나 젊기에, 옆집에 사는 진짜 은퇴 노인(법학
교수)가 가끔 놀러 와서 체스도 두고 시비도 거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죠(거의 아들뻘이라서 무람없이 대하는 듯한....). 자기
입으로 이야기를 안 해도 젊다는 게 눈치채어지는 대목은, 여자 마음을 너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웃 노인 레오 교수가 혀를 찰
정도죠. 우리 독자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이 마커스는 이미 셀럽의 위상이라는 겁니다. 누구하고 썸을 타도 그 상대까지 다
셀럽이며, 웃기는 건 세상이 좁다고 어렸을 적 아주 진한 감정을 공유하기까지 했다네요. (나중에 나오지만 아는 누나 겸 과외선생 겸
동아리 겸 이웃 겸 좀 복잡합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인생이지만 우리는 1부(총 4부로 나뉘어졌습니다)가 다 끝나갈 때까지, 이 마키를 그저 루저인 줄 압니다. 과거를
회고하며 내내 징징거리고, 심지어 현재에도, 사춘기 시절부터 가장 아끼던 여인을 "막강한 위너"에게 선점당했으며, 대놓고 퇴짜
맞고 푸대접 받는 등 아주 깝깝한 인생이나 된 듯 우는 소리를 합니다. 그러니 독자들은 나중에 뒤통수 맞지 마시고(근데 이런 말이
스포일러일까요? 좀 우려되는군요), 마키의 신분과 처지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좀 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어떻다고, 과민성 대장증상이 갑자기 당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 눈높이를 잔뜩 낮춘 채, 1)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시샘하지 말고, 그렇다고 2) 터무니없는 헛물을 켜지도 말고, 3)
저처럼 나아져야지 하는 자극만 받고 자신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까요? 1)과 2)가 압도적으로 흔할망정, 3)의 예는 좀처럼
보기 드물 겁니다. 1부 내내 어린 소년, 영 애덜트 시기를 보내는 마키가 3)의 자세를 유지하는지는 우리 독자로서 알 수
없습니다. 1)과 2) 사이에서 끊임없이 위태한 줄타기를 하는 듯만 보이는데, 사실 우리는 1인칭 관찰자로 머무는 마키한테 시선도
안 줍니다. 무대를 압도하는 주인공은 힐렐과 우디이기 때문입니다.
힐렐은
그 부친(마키의 백부) 사울 골드만(이 책의 표기를 따릅니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천재소년입니다. 우디는 그 힐렐과 서로 긴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골드만 씨의 "또다른 아들"이며, 운동신경이 빼어나고 모든 여성이 선망할 만한 건장한 체구를 지닌 위너입니다.
이런 멋진 아들(들)을 둔 골드만 씨 곁에는, 최고 평판을 얻은 의사인 아니타 여사가 그 아내로 머물며, 서로 순도 높은 교감과
사랑(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을 나눕니다. 골드만 씨는 의료기기 판매업으로 큰 돈을 번 부친 밑에서 순탄한 성장기를 보냈으며,
현재는 백전백승의 민완 변호사입니다. 이건 뭐 말도 안되는 사기 인생이죠. 적어도 우리에게 이 얘기를 들려 주는 마키는 그렇게
표현합니다. 마키는 이 가족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만 바라보는, 별 재능도 매력도 없고(적어도 스스로의 확신이 매우 부족한)
그저그런 집안에서 자라난 평범한 아이겠고 말이죠.
비범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은 성장기 내내 화려한 경력으로 자신의 십대를 장식하거나, 반대로 그 빼어난 재능이 타인(어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며 자초한 큰 시련에 부딪힙니다. 힣렐은 여튼 머리가 좋고 복잡한 사태를 간명히 파악하는 능력이 있으며, 언변이
무척 뛰어납니다. 반면, 체구가 매우 왜소하고 운동신경이 둔합니다. 이 힐렐을 미러링하듯 비슷한 약점을 가진 아이가 이웃 패트릭
씨의 아들 스콧인데, 다만 스콧은 힐렐처럼 빼어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면서 난치병까지 앓고 있습니다. 패트릭 씨는 사울 골드먼
씨보다 더 부유하면서, 외모까지 빼어난 상류층 신사입니다. 아버지의 좋은 점만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는지, 스콧의 누나인 알렉산드라는
어려서부터 빼어난 미인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위에서 다섯번째 문단 끝, 마키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누나, 여친이며,
나중에 유명 가수가 되어 다시 사랑에 빠지는 셀럽이 바로 이 알렉산드라입니다)
우디는
머리가 단순하긴 하지만, 못하는 운동이 없습니다. 흔히 미국에서 십대시절에는 이런 애가 모두의 스타로 군림하지만, 우디는
주위에서 띄운다고 본분을 잊는 허황된 성품이 전혀 아닙니다. 아주 착하고 의리로 뭉쳤지만, 감정에 이끌려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만다는 게 흠입니다. 하긴 우리 중 누구라도 이 함정에서 자유롭겠습니다까만.... 아, 우디에게는 또 하나 약점이,.. 큰 상처가
있습니다. 순탄치 않은 과거 때문이었는데, 그건 책을 읽으면서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머리가
아주 좋거나, 혹은 만능 스포츠맨이거나, 이 모두가 자라나는 청소년에겐 나도 저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유형들입니다. 이런 압도적인 재능의 자력, 자장 속에서, (우리가 까맣게 잊은) 주인공 마키가 영 엇나가거나 의기소침한 아이로
자라나지나 않아야 할 텐데요. 마키는 소설 속에서 줄곧 이들을 우상화합니다. 우리 독자가 살짝은 피곤해질 만큼요. 마키는 물론
동등한 신분의 "골드만 갱단" 멤버입니다만, 간혹은 멤버십을 잃었는지 다른 멤버(예를 들면 알렉산드라나 스콧)에 그 자리를 내어
주고 겉돌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신 없는 마키를, 코어 멤버(우디와 힐렐)은 결코 잊을 수 없는(혈연 이전에) 뭔가의 매력
때문에 붙들어 두고 싶었는지, 떨어질 만하다가도 결국은 도로 결합을 이룹니다. 마키 버전의 설명만 듣는 우리들은 이 점이 사실 좀
납득 안 되기도 합니다.
[이하 내용 누설이 있으니 주의해서 읽으십시오]
마키의
시선으로 힐렐은 내내 천재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그의 말에 현혹되지 않고 객관적 팩트를 날카롭게 체크한 독자들은 좀 아리송한
대목을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입 전형에 대해 "... 과거의 지식을 열심히 토해 놓기만 하는 정신을,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정신 앞에 둔다는 건 너무도 어리석지." 이런 말은, 한번 듣고 보기만 하면 모든 걸 이해한다는 천재의 입에서 나오기에 다분히
자기합리화성 발언(일 뿐 아니라 열등생들의 말버릇)입니다. 어차피 우수한 두뇌는 사회에서 뭘 규칙으로 놓아도 승자가
되기에(창의력이든 지식이든), 저런 불평을 할 필요가 없죠. 창의력이고 지식이고 모든 게 빵점이면서 남의 생각과 말만 베끼는
실직자도 아니고 말이죠. 힐렐은 또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떤 불편한 결과가 닥친다는 걸 예상 할 만큼 머리가 좋지는 못한가
봅니다. 그 중학교 교장 선생 헤닝스 씨(이 사람은 냉혹하고 무정한 게 아니라, 매사에 터무니없이 판에 박힌 관료적 대응 방식이라
오히려 코믹하기까지 하더군요. 인공지능? ㅋ)가 하는 말대로, 정신은 육신에 앞서는 위상이니 니가 그렇게 머리가 좋다면 니
머리를 써서 그 곤경을 탈출할 것이지 왜 맞고 있냐고 비꼬는데, 이게 딱히 틀린 말도 아닙니다.
나중에
뭐 옷도 잘 입고 사교계에서 세련된 말빨로 여자들의 시선도 모은다고는 하나, 제 생각에는 마키가 열광해대는 것처럼 탁월한 지성은
아닌 듯합니다. 고교 풋볼 팀에서 힐렐은 자신의 허약한 체력, 체격 때문에 선수로 뛰지 못하는 한풀이를, 뛰어난 전술 수립
능력과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 파악으로 커버하는 코치 노릇을 하며 푼다는 말도 나옵니다.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아무리 고교
리그라고 해도 현대 풋볼에서 뭐 새로운 전술이 개발될 여지가 남았을까 싶어서 좀 고개가 갸웃해지더군요. 마키, 혹은 작가 디케르
씨가 좀 더 연구를 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화자가 아직 젊으니까 독자들이 봐 주고 넘어가는 거죠.
[이 부분은 절대 읽지 마십시오]
마키는
내내 힐렐과 우디를 부러운 눈으로 보지만, 끝에 가서 위너가 되는 건 별 장점도 없이 무난한(적당히 똑똑하고 적당히 잘생긴)
자신이었습니다! 결국 ㅎㅎ 이 장편 소설은, 내가 그들 모두를 이기고 승자가 되었다는 자기 자랑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결국 그 얘길 할 걸 내내 "난 장점이 없어, 난 평범하고 불행해. 남들은 근데 왜 저렇게 다들 뛰어나지?"로 내내 징징거리던
화자가 꺼내드는 결론이니 독자는 순간 "어, 루저가 위너 되는 이야기네? 감동!"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쩜
이 소설은 내내 서술 트릭을 채용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알렉산드라가 왜 그 잘나신 우디와 힐렐을 다 제쳐
두고 마키를 찍은 후 무려 월도프 아스토리아에 가서 뜨거운 밤을 보내겠습니까. 그저 만만해서? 아니죠. 아니 작중에서 알렉산드라
대사로 "내가 널 택한 게 벌써 니가 승자라는 소리야."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이건 워낙 마키가 징징거리니까 독자들이 그저
흘려 듣고 넘어가죠.
그 백부 사울도
마냥 부러운 인생은 아닙니다. 3, 4부에 집중 폭로되지만, 학생 시절에는 운동권이었고, 그 앞선 시기에는 인생 진로의 갈피를 못
잡고 내내 부친과 충돌한, 눈 밖에 난 아들이었죠. 반면 마키의 부친이야말로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엄친아였습니다. 이랬던 게
가업인 의료기기 판매 회사가 도산하고 집안 전체가 핀치에 몰렸을 때, 말썽쟁이 아들 사울이 유망기업 하나를 눈여겨 봐 뒀다 주식이
대박을 치는 바람에 그때까지의 우열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죠. 마키는 태어나면서부터 내내 이렇게 굳은 모습만 봐 왔기에, 자기
부친은 태생의 루저고 백부는 인생의 승자라고 잘못 여긴 겁니다. 백부가 부친에게 그리 냉랭히 대한 것도, 워낙 동생에게 성장기
내내 쌓인 열등감을 풀기 위해서였고, 조부모가 백부한테 편애하는 듯 보인 것도 일종의 미안풀이라고 봐야죠.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있고)
이 소설의 올바른 진상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겉보기에 완전한 인생의 승자였던 사울 골드먼 씨의 내면을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는 자기
동생에게 열등감을 품었고, 성공하고 나서도 이웃인 패트릭 씨를 내내 질시했으며(이게 큽니다. 제 생각에는 이걸 계기로 이분 인생이
망조로 접어든 겁니다), 자기 아들들을 패트릭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무리수를 두었고, 끝내는 아내까지 잃게 됩니다. 아내를 잃은
것도 자신이 먼저 바람을 피워서인데, 외모도 더 월등한 아내는 정작(끝에 가서야 드러나지만) 아무 외도를 안 했음에도 이 남편이
자격지심에 일을 저지른 거죠. 그 역시 "여전히 자기 분야에서 잘 나가고, 십대 아이들에게까지 성적인 영감을 주는" 아내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습니다. 보육원 고아인 우디를 구태여 양자로 들인 것도, 유일한 직계비속인 힐렐에 대해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사울 골드먼 씨가 질시의 눈으로
바라봤던 패트릭은 그럼 어땠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는 오히려 골드먼 씨가 선망의 대상이었죠. 아름답고 유능하며 지혜로운
아내를 두었으며, 그 친아들은 매우 명석하고, 어디서 데려왔는지 떡대 좋은 스포츠 유망주까지 양아들로 들인 잘나가는 변호사, 반면
자신은 돈만 많았지 인생에 정열을 쏟을 만한 낙이 없고, 마누라는 바가지를 긁어 대며,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녀석은 난치병
환자니 신세가 깝깝하게 느껴질 밖에요. 제 생각에 패트릭 씨의 가장 큰 잘못은, 보물 같은 딸인 알렉산드라에게 정성을 안(덜)
쏟은 겁니다. 생에 끼어든 모든 사소한(?) 불운을, 이 딸의 성장이 상쇄해 주고도 남았을 텐데 말입니다. 여튼 패트릭 씨가 하나
잘 한 건, 설령 기분이 울적해져도 덜컥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경솔함은 피했던 겁니다. 반면 골드먼 형제들(사울과 네이튼)은,
99를 잘 하다가 마지막 1에서 덜컥 감정으로 치닫습니다. 그리고 모든 걸 망치는데 이건 집안 내력인 듯합니다.
힐렐은
왜, 고마운 우디의 인생을 망쳤을까요? 우디의 단순한 머리로는 죽을 때까지 생각해 봐야 답을 못 찾았을 겁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적었습니다. 부친 사울이 아들의 대용품으로 우디를 곁에 두고 모든 정성을 쏟는 그 속내를 영리한 두뇌로 알아채곤, 이를
일생의 상처로 키웠던 겁니다. 사실 이는 우디도 마찬가지인데, 중학생 때 농구로 전향하려 했던 게 순전히 아버지 핀 씨의 인정을
얻기 위해서였지 않습니까. 결국 아이에게 영구적인 상처를 안기거나, 반대로 발전의 동력을 선사하는 건 다 부모입니다. 재능도 없는
아이한테 과도한 부담을 줘 가며 키운 부모는 그 자녀를 망상과 허세와 자존감 부족에서 헤어날 수 없는 실패자로 만드는 거고,
반대로 (이 소설에서 티 안 나지만) 은근 알토란처럼 좋은 영향만 주며 정서를 균형잡히게 가꾼 부모는 마키처럼 진짜 엄친아를 두는
거죠. 행복 속에 엄청난 비극과 운명의 급전직하가 롤러코스터처럼 재주를 피우는, 그 와중에도 인생을 향한 여전히 긍정적인 시선이
거두어지지 않는, 재미있으면서도 슬프고, 안타까우면서도 유쾌한 장편이었습니다. 처음에 별 네 개만 주려고 했는데, 뒷맛이 계속
흐뭇하고 좋아서 한 개를 더 늘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