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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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
작가의 이름은 장은진.
책 제목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이상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진 기본 정보였다.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은 아무런 선입관이 없다는 뜻이고, 그마만큼 이 책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뜻이리라.

그 판단은 정확했다.
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메마른 땅이 촉촉한 단비를 탐욕스럽게 흡수하듯 책에 몰두해 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왜 이 책을 진작에 읽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독특함

소설의 형식은 독특하다.
행간 띄움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그것은 1에서 152번까지의 숫자이다.
그래서 난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번호를 보면서 영화의 한 씬마다 붙어 있는 번호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난 자연히 두 사람과 한 마리를 따라 내내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문장에서도 독특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건 현재형의 문장과 과거형의 문장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형과 과거형이 뒤죽박죽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지훈)이 여행을 하다가 751을 만나면서 그들의 여정 자체가 모두 현재형으로 표기된다.
여행의 시작, 친구와의 일, 가족간에 있었던 일,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과거형으로 서술된다.
현재형 문장은 아직 우리에게 좀 낯설긴 하지만, 현실감이 있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생각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이야기하다

소설의 화자인 나(지훈)은 벌써 3년째 여행중이다.
여행 동지는 전직 안내견이자 지금은 맹인견이 된 와조.

나(지훈)와 와조는 3년간 여행을 다니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들의 주소를 받아 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매일매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지만 편지는 오지 않았다.

나(지훈)는 왜 집을 떠나 여행을 하게 되었을까.
집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요, 가장 따뜻한 곳이 되어야 함이 틀림없는 사실이나, 나(지훈)에게 집은 발작을 일으키는 장소이다.
그래서 나(지훈)는 나에게 편지가 도착하면 발작 증세도 없어질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소설가 여자.
(본문에서는 여자 혹은 751이라고 나온다)
우연히 여행에 그녀와 동행하게 된 나(지훈).
나(지훈)는 여전히 편지를 쓰고, 751는 소설을 쓴다.

나(지훈)와 여자의 공통점.
나(지훈)는 와조라는 개를 데리고 여행을 하고, mp3와 소설을 가방에 넣고 여행을 한다.
여자는 소설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
그렇다.
둘 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어려워 한다.

나(지훈)는 어릴적 말 더듬는 버릇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는 것에 극도의 두려움을 가졌고, 여자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에 거부감을 가진다. 그게 무엇이든. 시나리오 작가로도 잠시 활동했던 여자는 결국 공동작업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대인관계에 극히 서툴렀던 나(지훈)와 소설가 751.
둘은 여행을 함께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대인관계가 서툴고 특히 초등학교때는 발표 시간이 죽도록 싫었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한 지금 세상이 참 살기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휴대전화로 메세지를 보내거나, 이메일을 주고 받고, 웹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귄다.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릴 필요도 없다.
적당한 선의 나의 정보로 그리고 상대의 정보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는 인터넷선으로 연결된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해결한다. 물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조만간 집에서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대체할 순간이 오겠지.

그런 시대에 편지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소설이 있다.
바로 이 책.
편지, 특히 손으로 쓴 편지는 이제 보기 드물다.
우편함에 꽂혀 있는 건 대부분 세금 고지서일 뿐.
고등학교 아니 대학시절까지도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휴대 전화 문자 메세지나 이메일로 대체되었다.
오히려 말보다 글씨가 더 편안함을 주지만, 정성을 기울이는 편지의 존재는 어느새 퇴물이 되어 버렸다.

현대인들의 고독은 더 깊어진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 세계에서 인간들은 북적이는 대도시에 살아도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을 향해 있고, 자신만을 쳐다 본다.

소설의 주인공 나(지훈) 역시 책을 읽고, mp3들 듣는다.
완벽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지훈)는 편지를 쓴다.
편지는 상대가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이다.
딱 하나 나(지훈)가 사람들과 소통의 길을 열어 놓은 것, 그것이 바로 편지인 것이다.
그러나 편지는 오지 않았다.

행복한 눈물

나(지훈)이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이 외로운 사람들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엄마를 둔 여고생, 자살 시도를 하려던 남자, 남이 버린 껌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 20년전 사고로 친구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남자, 고시원에서 사는 남자, 편의점을 좋아하는 남자 등등은 어떻게 보면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이다.

본문의 내용처럼 사람이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혼자이기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중에서 자신이 혼자 동떨어진 존재라고 느끼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한 외로움은 현대 사회의 풍요로움이 만들어낸 결락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듯 하다.

왠지 고독하고 외롭고 슬픈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는 것 같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마지막에 가서 큰 반전을 가져온다.

나는 주인공 나(지훈)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발작의 원인을 떠올리는 장면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 쉬어야 했다. 그제서야 왜 나(지훈)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행을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또한 그 부분에서야 나(지훈)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편지는 나(지훈)가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소통하지 못했던 마음이었던 것이었다.

와조의 죽음에서는 눈물이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나(지훈)의 완벽한 여행의 동지이자 동반자였던 와조의 역할은 나(지훈)을 집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와조가 없었더라면 나(지훈)은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을까. 와조를 정원에 묻고, 나(지훈)이 와조를 보내는 장면에서 끝내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그리고, 난 그 다음에 연이은 눈물 폭탄 세례에 또다시 펑펑 울어 버렸다.
옆집 아줌마가 가져다 준 택배 박스.
그 내용물의 정체를 알게 되고 난 나 자신이 주인공 지훈이 된 것처럼 기뻤고, 행복했다.
행복한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되었다.

외로운 사람들의 슬프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
추운 겨울 바람이 부는 저녁, 내 가슴속은 따뜻한 봄바람으로 넘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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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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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일에 발송된다던 책이 생각보다 일찍 내 손에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배송에 선물같은 느낌을 준 로스트 심벌 1.

난 기대감과 흥분감으로 첫장을 펼쳤다.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내 입에서는 '역시 댄 브라운이야'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로스트 심벌의 무대는 미국의 워싱턴 D.C.
좀더 압축하면 국회의사당이다.
그곳에 감춰진 수많은 상징과 비밀, 그리고 그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프리메이슨의 피라미드.

이 책은 로버트 랭던이 워싱턴 D.C로 오기전까지의 과정을 빼고 본다면, 약 세시간에 걸쳐 발생하는 이야기이다.
즉, 오후 7시부터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까지 숨막힐 듯한 추격전과 두뇌 싸움이 벌어진다.

그 중간중간에는 피라미드를 둘러싼 10여년 전의 사건, 그리고 피라미드를 통해 인류의 감춰진 보물을 손에 넣으려는 말라크의 과거사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보물의 정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느냐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다만, 프리메이슨 최고 등급에 있는 피터 솔로몬과 그의 여동생 캐서린 솔로몬이 연구하는 학문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는 점이 넌지시 언급되고 있다.

말라크는 왜 그 피라미드에 얽힌 비밀을 풀고, 그것을 손에 넣으려는 것이며, 그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CIA 소속 사토는 피라미드에 얽힌 비밀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녀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인물이 어느 정도까지 개입되어 있으며, 로버트 랭던의 아군이 되어 줄 인물과 적군이 될 인물은 누구누구일까...
등등의 수많은 의문점을 갖게 만든 로스트 심벌.
그러나 1권에서는 아직 로버트 랭던의 특기인 기호학과 관련한 그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아직은 피라미드에 감춰진 비밀과 그 힘에 대해 의문만을 가지고 있는 로버트 랭던이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푸느냐와, 말라크에게 잡혀 있는 피터를 어떻게 구출해내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1권을 압도할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밀려 온다. 사실 1권의 내용만으로도 이 책은 내 심장을 강렬하게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비밀 단체라 일컬어지는 프리메이슨은 어둡고 음울하며 폐쇄적인 단체의 상징이지만, 여기에서는 그에 대한 관점을 많이 비틀어 놓았다. 비밀에 싸여 있는 조직이지만, 프리메이슨의 긍정적인 면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또한 국회의사당에 감춰져 있는 여러가지 상징들의 비밀과 그 이면에 감춰진 미국이란 나라의 비밀, 그리고 국회의사당의 지하에서부터 도서관, 강당 등등 국회의사당의 구석구석을 모조리 훑고 지나가는 서술 방식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은 캐서린 솔로몬이 연구하고 있는 노에틱사이언스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마음이 물체에 물리적 현상을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본문에서는 그 수준이 이미 상당한 단계에 이른 것으로 나오고, 말라크는 이 연구 자료와 캐서린 솔로몬을 전부 파괴하려 하지만, 캐서린 솔로몬은 극적인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캐서린 솔로몬이 물리학과 철학의 절묘한 결합이라 생각하는 노에틱사이언스는 사실상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동양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긍정적 기와 부정적 기가 물리적 힘을 가질수도 있다는 이론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것은 책을 참고 하시길)

댄 브라운의 끝도 보이지 않는 지식의 깊이, 스토리의 탄탄함, 그리고 숨이 가빠올 정도의 속도감, 이 모든 것의 뒤에 감춰진 음모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며, 향후의 전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준 로스트 심벌 1. 
2권이 나올때까지의 기대감과 더불어, 얼른 2권을 읽고 싶은데 2권은 도대체 언제 나올까에 대한 초조감이 지금의 나를 둘러싸고 있다.


덧> 책이 예상보다 일찍 나왔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교정의 오류가 약간 눈에 띄었다.

34P 다섯번째줄 : 솔로몬씨가 교수님이 1순위로 꼽은 후보입니다.
교수님은 솔로몬씨가 라든지 교수님이 솔로몬씨가 라고 하는 표현이 우리말 어법에 좀더 가깝다던지 문장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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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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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는 잘해요>는 내가 처음으로 접하는 이기호 작가의 소설이다.
독특한 제목과 책 표지는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책 제목과 겉표지에서 보이는 저 이미지는 어떤 것을 의미할까하고 무척이나 궁금해하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내 손에 들어온 <사과는 잘해요>

소설을 읽는 내내 한숨이 쉬어졌다.
문장이 어렵다거나 읽기 어렵다거나 한 이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문장은 짤막짤막하고 어휘는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자인 나와 시봉이라는 청년이다.
이 두사람은 복지원에서 함께 지냈다.
시봉은 부모님의 사망으로, 나는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다.

나와 시봉은 복지원에서 주는 약을 먹고, 양말을 포장하며, 복지사 두명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산다.
맞는 이유에 대해서는 시봉도 나도 모른다.
복지사들은 왜 맞는지, 너희의 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와 시봉은 그때부터 자신들의 죄를 찾아내고, 그것을 사과하고, 끊임없이 맞는다.

약과 구타.
그것은 두 복자사의 차림새와도 일치한다.
하얀 의사가운을 입은 복지사와 군화를 신은 복지사.
그들은 약물로 정신을 구속하고, 구타라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몸을 구속한다.
그리고 시봉과 나는 그것에 서서히 길들여지게 된다.
반항을 해볼 생각도 못한채.
그러면서 나와 시봉은 어느새 그들과 동화하는 이미지를 쌓게 된다.
나와 시봉은 복지원의 기둥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봉과 나는 복지원에서 나와 타인의 사과를 대신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죄를 찾고, 죄를 고백하라고 말한다.
물론 시봉과 나가 그것을 잘못이라고 인식하지는 못한다.
약물과 폭력에 길들여져 어느 것이 선인지, 악인지 더이상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 둘은 죄를 지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 혹은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죄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어 버린다.

시봉과 나는 약물과 폭력으로 인해 정신적인 미성숙을 가진 존재일 뿐더러,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무조건 죄와 사과라는 공통 분모만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약과 폭력에 길드려진 그들은 결국 다시 약을 구하기 위해 복지원으로 향하고, 다시 약을 입에 넣었을때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의 앞에 수감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복지사 두 명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반전된다. 시봉과 나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나타난 그들은 시봉과 나를 납치해서 죽은 원생들이 묻힌 산속으로 끌고 간다. 그곳에서 나는 시봉과 결별을 하게 된다.

나의 분신이며, 함께 폭력을 당해왔던 나와 시봉의 결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회에 나와서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나와 시봉은 정신적 미성숙이란 틀을 벗어던지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것이 시봉과 나가 결별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시봉은 나의 분신이자 과거이다. 과거와의 결별을 쓰라리지만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것이 이러한 형태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 인간이라는 개체로서 성숙하기 위해 아버지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필요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나의 정신적 성장을 멈추게 한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맞물려 나는 비로소 한 개체로서의 인간, 성숙한 인간에 한걸음 다가가게 된다.

또 하나, 시봉의 동생 시연은 사랑이라는 구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가 시연을 업고 병원을 나서는 것은 미래로의 한발짝을 떼어놓게 되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 미성숙 상태였던 나가 갑자기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역할은 불가능하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라는 마지막 페이지의 문장으로 미루어 보아, 나의 앞에 펼쳐진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아니 그 전에 나가 한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언급을 피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무수히 많은 죄가 저질러지고 있다. 그것 중에는 범죄도 있을 것이지만, 오히려 사람의 양심에 위배되는 그런 죄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죄에 배치하는 개념이 사과가 아니었을까.
복지원이라는 작은 사회속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육체적 폭력은 크게 보면 우리 사회 전체를 비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현대인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는 현대 사회.
우리는 어느새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길들여져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벼운 문체와 쉬이 읽히는 문장속에 담겨진 묵직한 메세지.
우리 현대인들은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헤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기호 작가님의 친필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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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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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고보의 1964년 作, 원제는 他人の顔

이 책은 내가 아베 고보의 책으로는 처음으로 접하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전까지는 아베 고보라는 작가에 대해 알지도 못한 건 사실이다.
일단 196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란 것과 책 표지의 글을 참고 삼아 찬찬히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나>라는 사람이 노트에 기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실험실 액체 공기의 폭발로 얼굴을 잃어버린 과학자이다. 심한 화상으로 인해 얼굴에 붕대를 감고 다니는 <나>는 얼굴을 잃음으로써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차단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다른 사람들과의 통로를 열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대신할 가면을 만들기로 작정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이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백치나 정신분열증 환자의 표정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통로를 막아둔 채로 있으면 결국에는 통로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35p)

새로운 얼굴을 가진 가면을 쓰고, 나는 철저히 타인이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모습과는 또다른 자신의 모습에 희열을 느낀 나는 아내에게 접근하여 아내를 유혹한다. 의외로 자신의 유혹에 쉽게 넘어온 아내를 질타하기 위해 주인공 나는 세 권의 노트를 작성하는데, 이 노트가 바로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노트에 쓰여진 내용이 나와 나의 아내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내가 의외로 쉽게 유혹에 넘어간 것에 분노한 그.
그러나 그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그는 자신의 안에 있는 타인의 모습만을 보았지, 아내의 마음 속에도 존재하는 타인의 모습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직접 가면을 만들어 그걸 기분에 따라 바꾸면서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그들에게 맞는 얼굴로 상대를 대한다. 천편일률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에게만 있다고 생각한 주인공. 그의 자기 중심적이며 다른 사람의 여러가지 얼굴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결국 아내에게 버림받게 된다. 아내는 너무나도 자기 중심적인 남편에게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내는 처음부터 변함이 없었고, 그의 다른 모습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다. 그런게 사랑이지만, 남편은 자신만을 생각한 나머지 아내의 다른 모습을 추악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 남편에 대한 아내의 마음은 아내가 남기고 떠난 편지에 잘 나타난다.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 가면 벗기기 내기를 하는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가면을 뒤집어 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라고. 가면이 없으면 그것을 벗겨낼 즐거움도 없게 되는 셈이니까요. 알겠습니까, 이 뜻을. (300p)

가면이란 소재를 통한 인간 심리의 어두움과 미묘한 변화를 보여준 타인의 얼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또한 다른 사람들이 가진 타인의 얼굴에 대해 얼마나 인정을 할 수 있을까.

★ 책 뒷부분에 실린 작가와 작품 해설 부분은 아베 고보라는 작가의 삶과 그의 여러가지 작품 활동에 대해 나와 있타인다. 나처럼 아베 고보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훌륭한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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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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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가 사랑한 수식.
언뜻 제목만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나도 첨엔 그랬다.
그리고 읽으면서 점점 당황스러워졌다.
수학공식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난 정직한 문과계통이다.
고등학교시절 문과를 선택하면서 수학은 아예 포기...
수능시험을 볼때도 수리탐구영역은 거의 포기...
대신 언어영역과 외국어 영역을 집중 공략했던 기억이... ^^

그런 내게...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쏟아져 나오는 수학 공식과 수학에 대한 정의는 당혹감 그자체였다.
그러나 읽으면서 숫자에 담긴, 수학공식에 담긴 의미들을 알게 되면서 이 책의 매력에 푹빠져버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4명이다. 그러나 전부 이름이 없다.

등장인물을 우선 살펴보자.
나 : 루트의 엄마이자 박사네 파출부
박사 : 수학박사였으나 1975년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뇌의 기억담당부분을 크게 다쳐 기억은 1975년에서 멈춰 있고, 그 이후의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루트 : 나의 아들. 현재 10세. 초등학생
미망인 : 박사의 형수이자 박사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N

소설의 시점은 1인칭 이고,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식으로 서술되어진다.

자신의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매 80분마다 뼈져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박사.
실제로 80분밖에 자신의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박사는 자기 나름대로 기억하기 위해 온몸에 수없이 많은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새로운 파출부 + 루트(그의 아들) 그리고 그림...
이런 식으로 사람을 기억하고 해야할 일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트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 박사.
꼭 껴안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루트가 말을 걸면 생각중일때도 친절하게 루트의 일을 먼저 보살펴준다.

그리고 루트가 손가락이 다쳤을때 루트를 업고 동네 병원까지 뛰어가기도 하고, 야구장에서 파울볼이 날아왔을때 루트를 감싸 안고 보호하기도 했다. 이런 면면들이 참으로 가슴 따뜻하게 파고드는 부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억장애를 가진 노수학자와 어린 소년은 서로를 이해해가며 친구가 되어간다.
마음의 친구. 나이를 뛰어넘는 진정한 마음의 친구가 된 것이다.

책마지막 부분 즈음 둘이서 풀밭에서 공을 주고 받는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 한 쪽이 따뜻해져왔다. 에나쓰의 야구카드를 소중하게 자신의 목에 걸고 있는 박사와 박사에게 선물로 받은 낡은 글러브를 들고 있는 루트...

작가는 담담한 필체로 서술해나갔지만, 참으로 따뜻한 느낌의 책이었다. 수학이란 이례적인 소재를 소설에 접합시킨 작가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책을 읽고 싶으시다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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