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오기와라 히로시의 데뷔작이자 제 10회 소설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1956년생인데 1997년에 데뷔를 했으니 꽤나 늦게 데뷔한 셈이다.

근데 이게 데뷔작 맞아?
하는 감탄이 나오는 소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읽는 내내 키득키득, 쿡쿡, 우와하하핫 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억지로 웃기는 것도 아니요, 블랙 유머도 아니다.
지극히 순수한 웃음을 준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은 이제껏 <네 번째 빙하기>와 <벽장 속의 치요>을 읽은 게 다이지만, 읽을때 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적절한 타이밍에 주는 웃음. 그게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이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는 일본 도호쿠에 있는 시골중의 시골, 속된 말로 깡촌 우시아나라는 마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곳의 인구는 총 300명, 주요 농산물은 당근, 박고지 그리고 오로로콩.
이렇다 보니 마을 청년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마을은 점점 몰락해간다.

그래서 마을 청년들이 하나로 뭉쳤다.
오직 하나의 목표, 우시아나를 부흥시키기 위해.

마을 청년회 회장인 신이치는 그래도 이 시골 마을에서는 도쿄물 먹은 엘리트다.
그리하여 신이치와 사토루는 도쿄로 가서 광고회사를 알아보다가 파산 직전의 유니버설 광고대행사에 수주를 하게된다.

유니버셜 광고대행사의 이시이, 스기야마, 무라사키는 우시아나 마을로 향해 그곳의 컨셉을 잡으려 하지만.... 이건 완전 맨땅에 헤딩하기다. 광고 아이템으로 쓸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

그리하여, 우시아나호에 우시아나사우루스를 출현시키기로 하는데.....

사실 우리나라도 정말 시골이 많다. 그러한 곳의 대부분은 우시아나 마을처럼 낙후되어 있고, 인구는 점점 줄며, 특히 젊은 층은 대부분 대도시로 나가버리는 형편이다. 사실 관광자원조차 없어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마을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우시아나 마을을 보며 그 마을을 기사회생시키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이게 사기가 아닌 사기가 되고 일본 전역에 큰 파동이 일고... 한때 공룡의 후예가 나타났다고 해서 몰려 오던 관광객도 그 사건의 진실을 보고는 발을 딱 끊어 버린다.

이런 일은 곳곳에서 수도 없이 일어난다.
매스컴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사람들, 그런 모습에 쓴웃음이 난다.
하지만, 우시아나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은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도호쿠 지방의 사투리로 표기되어서 그런지 우리말 번역은 충청도 사투리처럼 해놓았다. 충청도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 역시 처음엔 갸우뚱하면서 읽었지만, 익숙해지니 술술 읽혔다. 일본 사람들도 알아듣기 힘들다는 우시아나 방언. 우리 나라로 치면 제주 방언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 웃음을 주는 건 사건만이 아니다. 등장 인물도 굉장히 특색 있는데, 내게 제일 웃음을 많이 준 건 역시 광고 대행사의 무라사키였다. 오타쿠 기질이 가득한 그의 행동, 그리고 그의 언사, 그리고 그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땐 난 웃음이 그냥 터졌다. 왠지 옆에만 있어도 즐거워질 것 같은 사람이 무라사키였다.

그리고 이 소설의 각 장은 광고 카피라이터를 직업으로 삼았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감각을 보여준다. 그것은 광고 캠페인 제작 프로세스에 따른 제목으로 이 제목과 내용을 연관시켜 보면 그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도시와 시골. 그 대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우리는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자연의 고마움을 잊고 산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해관계로만 얽혀있는 경우도 많고.
적절한 풍자와 재치있는 유머로 잔잔한 웃음을 주는 이 소설은 우리가 당연시 여기면서 잊고 살아갔던 것에 대한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 소설의 속편 <사이좋은 비둘기파>은 또 어떤 식의 재치있는 웃음을 던져줄지에 대한 기대감을 품으며 이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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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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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츠 이치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제 6회 점프소설 논픽션 대상 수상작으로 17살이란 나이에 쓴 그의 데뷔작이다.
<너밖에 들리지 않아>라는 작품은 나와 오츠 이치의 첫만남이었고, 그후에 읽은 <ZOO>는 나를 경악시켰다. <너밖에 들리지 않아>는 오츠 이치의 퓨어계 소설이고, <ZOO>는 그의 다크계 소설이라 같은 사람이 쓴 것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굳이 말하자면 다크와 퓨어가 적절히 섞여 있는 소설이다. 공포스럽고 잔인하기만 한게 아니라 그 저변에는 숨겨진 슬픔과 아픔이 공존하기 때문에이다.
이 소설집에는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외 유코라는 작품이 있는데, 두 작품 다 마지막 반전이 나를 경악시켰다. 

아홉살 소녀가 본 자신의 죽음,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이 단편의 화자는 아홉살난 소녀 사쓰키이다. 사쓰키는 같은 반 친구 야요이에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야요이의 오빠 켄은 야요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사쓰키의 사체를 유기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오빠 켄을 좋아하는 사쓰키에 대한 질투와 원망으로 어이없이 사쓰키를 죽음이란 곳으로 내몬 야요이. 그리고 사쓰키의 죽음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사체유기를 즐기는 듯한 켄.

아홉살, 열한살의 어린아이들이 저지른 짓, 그리고 그들이 사쓰키의 사체를 유기하기 위해 4일동안 머리를 짜내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도와주기까지 하는 한 인물이다. 어린 소년들의 실종 사고와 관련되어 있는 그 인물이 마지막에 드러나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난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소설은 보통 범인이 화자가 되거나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되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이미 죽은 소녀가 화자가 된다. 아홉살 소녀의 관점에서 바라본 자신의 죽음, 그리고 야요이와 켄이 자신의 사체를 유기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감정,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보이는 감정들은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답게 천진난만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욱더 가슴 아프다.

특히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카고메 카고메 놀이를 하는 모습은 공포감보다는 오히려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함정에 빠진다, 유코 

이 소설은 도리고에家에서 일하는 하녀 키요네와 그 집의 사람들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일을 그리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키요네가 보는 것이 진실인 것 같기도 하고 마사요시가 보는 것이 진실이기도 하다. 그런 의문은 맨마지막에서 일거에 해소되며, 그 반전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잘못된 믿음과 판단의 근거,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이고 진실이라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엄청난 사건.

무섭고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움이 많이 느껴지던 작품이다.

데뷔작의 풋풋함을 느끼는 동시에 오츠 이치의 천재성을 동시에 느끼다

열일곱살이란 나이에 데뷔. 그러다 보니 문장의 흐름이나 전체 스토리의 흐름, 그리고 세부 묘사라든지 하는 것이 좀 매끄럽지 못한 면이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데뷔작이란 사실을, 그리고 그것도 17살이란 나이를 감안한다면 이런 상상력으로 이런 충격적인 작품을 써낸 작가가 다시 보일 것이다.

독특한 스토리와 설정, 그리고 반전.
공포와 안타까움의 절묘한 결합.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딱 두개의 작품만을 읽은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작가로 착각하게 만든 오츠 이치.
그의 작품은 호러 혹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또다른 지평을 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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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민음사 모던 클래식 5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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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이 책말고도 한 권이 더 있다. 민음사에서 처음으로 나왔던 그 책을 여전히 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또다시 새로운 책으로 구매한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중 키친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벌써 몇 번을 읽고, 좋아하는 구절에는 포스트 잇을 붙여 놓고, 가끔 한번씩 그 부분만을 뒤적여 보기도 한다.

다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또다시 난 요시모토 바나나가 만들어 놓은 세상으로 푹 빠져 들어갔다. 그녀만의 감각적인 표현들, 그리고 그녀의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독특한 인물들, 그리고 비일상적이면서 일상적인 일들의 세상 속으로.

이 작품집 속에는 총 3편의 단편소설이 등장한다.
키친과 만월은 연작소설이며, 달빛 그림자는 하나의 완전한 단편이다.

상실과 회복, 그리고 새로운 희망과 사랑, 키친과 만월

미카게는 어릴적 부모를 동시에 잃고 조부모밑에서 커왔다. 할아버지도 그 중간에 돌아가시고 이젠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그런 그녀의 앞에 유이치란 청년이 나타났고, 미카게는 유이치와 그의 어머니(실은 아버지) 에리코씨와 함께 살게 된다.

유이치의 집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게 되는 미카게. 그러나 그후 미카게가 그 집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에리코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미카게도 유이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미카게는 부모님도 조부모님을 유이치는 어머니와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던 에리코씨를 잃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싫든 좋든 이별을 하게 마련이지만, 미카게와 유이치의 경우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이별을 하게 된 경우다. 자신의 언덕이자 자신을 품어주던 바다같은 존재를 상실했을때, 그 슬픔은 얼마나 크고, 그 상처는 얼마나 깊을까.

하지만 미카게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는 유이치와 에리코씨가 미카게의 슬픔과 상처를 메워주었고, 유이치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인 에리코씨가 죽었을때는 미카게가 유이치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순간,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따뜻해지고, 등에 진 짐은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서로를 보듬고 쓰다듬어 주며 서로의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두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했다.

빈자리는 결국 또다른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고, 상처는 그렇게 치유되어 가는 게 아닐까.

절망의 끝에 보이는 한가닥 희망, 달빛 그림자

세편의 단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역시 달빛 그림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내가 읽을때 마다 콧끝이 찡해지고, 결국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게 만든다.

고등학교때부터 곱게곱게 쌓아왔던 4년간의 사랑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사츠키는 히토시가 죽은 후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매일 조깅을 한다.
한편 히토시의 동생 히라기는 형과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잃어 버린후 여자친구의 유품인 세라복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 이별을 한다.
그러나 그 이별이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오고, 이별의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이별을 맞이 해야한다면 그 슬픔은 오죽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자의든 타의든 헤어지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이란 것에 기인해서 생기는 이별이라면 그건 정말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의 상처와 슬픔을 줄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라라라는 한 여성을 통해 사츠키는 히토시와의 작별인사를 완전히 끝낼수 있었다. 강과 다리를 사이에 둔 두사람.
마치 삶과 죽음이란 세상으로 양분된 듯한 그 강의 양쪽에서 마지막으로 히토시는 사츠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달빛 그림자의 시기적 배경은 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히토시를 잃은 사츠키와 형과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히라기는 그들의 죽음자체가 끝나지 않는 겨울로 들어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저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인사로 남은 사람들은 다시 삶을 향해 한발을 내디딘다.

일상속의 비일상적인 이야기, 그리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없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다보면 특이한 등장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키친과 만월에서는 남자였던 에리코씨가 아내의 사후 유이치를 키우면서 여자로 살아가며, 달빛 그림자에 등장하는 우라라는 영매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고 소설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가는 것은 소설 자체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죽음이란 것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미카게, 유이치, 사츠키, 히라기, 그리고 우라라까지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힘닫는 데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혼자서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는 힘들다.

누군가와의 새로운 관계, 그리고 먼저 떠나 보낸 사람들과 관련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들은 서서히 상처에서 회복되기 시작한다.

세상에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없다.
그 기간이 그리고 그 치유방법을 사람마다 다 다를지라도... 죽을 것 만큼 힘든 일도 절대로 나을 것 같지 않던 상처도 어느새 새살이 돋고 아물어 간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비록 교훈을 주는 책이라거나 인생의 지침을 마련해주는 책은 아닐지 몰라도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따뜻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게 바로 바나나 효과가 아닐까.

기억에 남는 한구절>
"지금이 가장 힘들 때예요. 죽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마 더 이상은 힘들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의 한계는 변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또 감기 걸려서, 지금처럼 아플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본인만 건강하면 평생, 없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겨워서 넌더리가 날 수도 있겠지만, 이까짓쯤 하고 생각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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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의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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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는 1915년 1~2월에 걸쳐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그의 수필을 묶어서 간행한 것이다.
이제껏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와 <도련님>, 딱 두권을 읽은 나로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 어떻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다. 두 권의 책에 대한 느낌은 참 달랐고, 각각의 책에 대해 다른 감상과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그의 수필집을 처음 대했을때의 느낌이란 참 남달랐다. 소설속에서 보이는 나쓰메 소세키의 이미지는 소설을 통해 투영되어 어떤 이미지에 가려있었지만, 수필은 나쓰메 소세키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유리문 안에서>는 작가가 만년을 보내던 서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글을 쓴 1년후 사망했다. 그렇기에 왠지 작가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표현들이 많이 눈에 띄기도 했다.
유리문은 자신의 서재와 세상을 가로막고 있는 한쪽 면이다. 유리문 안의 좁은 공간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와 1910년대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어지러운 일본 국내외 정세는 참으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 마치 유리문안쪽은 조용조용하게 또한 느릿느릿하게 가는 시계가 있다면 유리문 밖은 정신없이 어지러이 돌아가는 시계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기 1년전인 1867년에 태어났고, 이 수필은 다이쇼 시대에 쓰여졌다. 메이지 시대라고 하면 일본의 개국과 함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시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이쇼시대는 메이지 유신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일본 근대화의 물살이 일본을 크게 변화시키던 시기이기도 하다. 쌀파동문제라든지 간토 대지진이 일어나던 시기이지만, 간토 대지진은 나쓰메 소세키 사후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쌀값 파동문제만이 이 책에 언급되어 있다.
게다가 이 수필이 쓰여지던 시기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니 일본 국내외적으로 굉장히 어수선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자신의 현재 생활을 그리고 있는 부분과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생활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현재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과 관련한 이야기들이라든지 자신의 투병 생활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더 흥미로운건 작가 자신의 과거사이다. 현재에서 가까운 과거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점점 더 먼 과거로 결국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태어나자 마자 고물상에 수양아들로 보내지게 되었다가 누나가 데리고 온 사연, 다시 시오바라가의 양자로 갔다가 양부모에게 문제가 생겨 생가로 돌아오게 된 사연까지 저자가 이전까지 굳이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사까지 나온다.

이런 부분을 보면서 왠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괜시리 짠해지기도 했었다.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때 과거를 돌아보곤 하니까.

그러다 보니 메이지 시대에서 다이쇼 시대를 거치는 일본의 변화상이라든지, 자신의 성장 과정, 형제들 이야기 등등 우리가 몰랐던 나쓰메 소세키의 삶의 이야기가 뚝뚝 묻어 나온다. 소설로 접한 그의 이미지와 수필로 접한 그의 이미지에서 받은 느낌이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수필에 나오는 고양이 이야기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겹쳐 보이고, 그가 잠시 했던 교사 생활은 <도련님>의 소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주인공이 나쓰메 자신을 모델로 썼다고도 한다.

수필은 소설과는 달리 꾸밈이 없다.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수필을 난 참 좋아한다. 특히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수필을 좋아하는데, 그건 소설속에서 살짝살짝 드러나는 작가의 이미지와 수필에서 드러내는 작가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필을 접함으로써 그 작가에게 한층 더 가까이 가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일본 근대화의 격동기에 살았던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작품, 그리고 그의 가치관이나 그가 좋아했던 문화 생활, 일본 사회의 변화 모습등을 시종일관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낸 <유리문 안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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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 하인리히에서 깨진 유리창까지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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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이라.
제목부터 무척 끌리는 책이다.
사실 우리는 머피의 법칙이니 샐리의 법칙이니 하는 말을 우스갯소리에 섞어서 자주 쓴다. 그러나 그것도 엄밀히 따지자면 이 책에 나오는 한가지 종류의 법칙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법칙들은 역사, 신화, 종교, 인문학, 사회학, 과학, 정치학, 경제학 등등을 막론하고 다양하게 소개된다.
우리가 자주 들어 보았던 법칙들도 상당수 소개되어 있고, 생소한 법칙도 있지만 그에 관련한 여러 가지 예도 많다. 
왠지 법칙이라는 말에서 생각되는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나 즐겁게 여러가지 분야의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의 흥망성쇠와 관련한 법칙, 문명의 발달 과정과 관련한 법칙,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법칙, 심지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동화에서 인용한 법칙이나 피그말리온 효과같은 신화에서 나온 법칙까지 정말 다양한 법칙에 대한 지식이 빼곡히 담겨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인요한 법칙은 도도새의 법칙이나, 붉은 여왕의 법칙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틀림 없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영화 다빈치 코드에 등장했던 피보나치의 수열이나 영화 세렌디피티의 제목이기도 했던 세렌디피티의 법칙, 영화 나비효과의 제목이자 실제로 존재하는 법칙인 나비 효과는 다시금 영화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해주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 외에도 멘델의 유전 법칙이나 다윈의 진화이론과 관련한 적자생존의 법칙, 뉴튼의 관성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등 여러 가지 과학 분야와 관련된 법칙도 있고, 마지노선의 법칙이나 토사구팽의 법칙은 역사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외에도 사회학적 관점으로 연결되는 법칙도 있으며 경제학과 관련된 법칙도 많이 들어 있다. 사실 과학이나 수학, 경제학과 관련된 법칙에서는 숫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 좀 어질어질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조차도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각 법칙을 설명하면서 설명 자체로 끝난게 아니라 여러가지 실례를 들어 설명한 부분은 각 법칙을 이해하는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책 제목에서도 언급되지만 워낙 다양한 법칙들이 등장하다 보니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이지만, 읽다가 내가 아는 법칙이 나올때 짜릿함을 느낄 수도 있다. 혹은 알고 있던 법칙이라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좋다. 자신이 관심있었던 법칙을 먼저 펼치고 읽어도 좋다.
어느새 관심있던 분야뿐만 아니라 책 전체를 다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테니.

법칙이란 표현이 들어가있지만 딱딱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말랑말랑하게 잘 가공해서 읽는 사람이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책이 바로 이것이다. 뭐.. 소화 흡수는 자신이 알아서 잘 해야겠지만. 
비록 경제학과 관련된 법칙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다른 분야와 관련된 법칙도 상당수 있으므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세상속에 수없이 많은 법칙이 존재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세상의 법칙들이 눈에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대감과 책을 읽은 후의 충족감을 가슴에 안고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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