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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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여기는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녀는 고갯짓으로 거리를 가리켰다.
"바깥은 좀 정신이 없잖아요. 사람이 지나다니고,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불빛이 번쩍거리지만, 서점 안은 아주 조용해요.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여기만 다른 시간대인 듯해요. 그 점을 고객들이 알아야 해요. 이 서점에 들어오는 건 하나의 신기한 경험이라는 걸요."               p.171

 

스웨덴에 사는 샬로테는 지금 난생 처음 런던에 도착한 참이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모가 런던의 오래된 서점을 물려 주었기 때문이다. 남편인 알렉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는 일에 파묻혀 지냈던 그녀는 여전히 외로웠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삶을 살고 있었다. 런던에 오긴 했지만 변호사가 상속받은 재산을 직접 와서 봐야 한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서점을 운영할 생각도, 런던에서 살 생각도 전혀 없었다. 8년 전 남편과 같이 설립한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수익이 충분했고,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바깥에서 잠깐 건물만 보고 가려던 그녀는 서점의 외관을 보고는 눈길을 떼지 못한다. 바닥을 열었더니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가 나온 것처럼, 이 오래된 서점이 마법의 힘으로 그녀를 끌어당긴 것이다.

 

샬로테는 서점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 마르티니크와 시간제로 일하는 직원 샘, 그리고 이웃에 사는 소설가 윌리엄과 사라가 생전에 돌봤던 고양이 테니슨을 만나게 된다. 서점의 2층에 있는 사라 이모의 집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지만, 집 안은 사방에 널려 있는 물건들과 쌓여 있는 거대한 책 더미들로 난장판이었다. 타고난 정리꾼으로 청소를 무척 좋아했던 샬로테조차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그곳에서 그녀는 점차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샬로테는 왜 이모가 이토록 오래된 건물을 자신에게 남겼는지, 왜 엄마는 이모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지 궁금했지만, 그 대답을 들려줄 사람은 이제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이모가 살던 집에서 그녀는 의문투성이였던 엄마와 이모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씩 단서를 찾게 되고, 비밀에 다가가게 된다.

 

 

 

"템스 강변에 있는 리버사이드 서점은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고풍스러운 매력을 간직한 곳이다. 천장까지 뻗은 서가와 사다리, 소박한 가구가 어우러진 공간에는 세기말의 마법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최근에는 스웨덴식 '피카'를 제공하는 카페를 같이 운영하고 있으며, 전문가적 기량을 갖춘 직원들이 방문하는 손님을 책 세상으로 즐거이 안내하고 있다. 서점의 새 주인 샬로테 뤼드베리 씨에 따르면, 이런 낭독회는 앞으로 필수적인 서점 행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이 서점이 지역사회에 능동적인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사우스뱅크 지역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런던에서 가장 친절한 서점에 한번 들러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p.532

 

이야기는 서점을 물려 받게 된 현재의 샬로테와 1982년 이모와 엄마, 두 자매가 영국에 처음 왔던 그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자신의 사업을 운영해 온 샬로테였기에 변호사로부터 받은 서류들을 검토하며 서점이 거의 파산직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운영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매출이 나지 않았고, 직원 급여를 주고 신규 서적을 구매하기에 충분한 이익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거의 망한 거나 다름없는 사업장을 다시 살린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보였다. 대체 사라 이모는 어떻게 먹고 산 거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서점은 살릴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샬로테는 점점 이 서점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고, 사람들과도 가까워진다. 과연 샬로테는 위기에 처한 서점을 구해낼 수 있을까. 엄마와 이모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설레임을 안겨 준다. 완두콩 색으로 칠한 오래된 계단 난간, 계속 새로 천을 씌워 긴 세월 동안 사용해온 해진 소파, 녹색 대리석 장식 선반이 달린 낡은 벽난로, 한 세기도 전에 직접 손으로 짠 짙은 색 나무 서가, 고집불통 늙은 고양이,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환상적인 템스강 풍경... 이 작은 서점에 들어서면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는 표현에서부터 페이지 속으로 훅 빠져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독서 애호가들에게 더 없이 완벽한 장소, 아늑하고, 따스하고, 편안한 곳이지만,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현실에서도 대부분의 작은 서점들이 운영난에 허덕이고,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의 후반부에 벌어지는 약간은 비현실적이고 꿈같은 상황이 뭉클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현실의 작은 서점들이 부디 힘을 내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고 말이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작은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기적을 이뤄내는 과정이 너무도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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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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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세라피마의 등줄기에 오싹하게 차가운 기운이 내달렸다. 이리나가 말을 걸어 모아 온 소녀는 전부 고아들이다. 아무리 비슷한 처지의 아이가 많은 시절이라곤 해도 이게 우연일 리 없다. 죽어도 슬퍼할 자가 아무도 없는 고아를 저격병으로 키운다는 발상. 즉,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사병死兵'을 키우겠다는 발상 아닌가. 세라피마는 머릿속에 떠오른 잔혹한 발상에 '설마 그럴 리가' 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이리나에게서는 그런 인상을 씻어줄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싸울 것인가, 죽을 것인가. 이리나의 가치 기준은 오로지 그것이다.                 p.84

 

1942년 2월, 초목이 움트는 향기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장작 패는 소리가 들리는 소소한 활기로 가득한 작은 농촌 마을. 이바노프스카야는 주민 수가 고작 마흔에 불과한 마을이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열여섯 소녀 세라피마는 단발식 소총을 거머쥐고 사슴을 사냥하는 중이다. 그녀는 고등교육 과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가을이 되면 모스크바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전쟁 중이었지만 마을이 위치가 중계 지점이었기에, 사람들은 멀리서 울리는 포성을 들으면서도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와 사냥을 마치고 마을로 향했을 때 그 모든 평화가 사라지고 만다. 마을을 급습한 독일군에 의해 엄마와 마을 사람들 전부가 사살되고, 뒤늦게 나타난 붉은 군대 덕분에 세라피마만 겨우 목숨을 건진다. 저격병 출신의 지휘관 아리나는 세라피마에게 '싸우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질문을 건네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녀는 저격병이 되어 복수를 꿈꾸게 된다.

 

세라피마는 이리나가 교관으로 있는 여성 저격병 훈련학교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녀들과 만난다. 모두 적에 의해 가족을 잃었고, 고향을 잃었고, 이리나가 제시한 싸움과 죽음의 선택지 사이에서 싸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혹독하고,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점차 어엿한 저격병으로 거듭나게 된다. 매일 욕설을 듣고 철두철미한 훈련을 주입 받다 보니 적에 대한 결의만이 단단해졌고, 이탈할 생각할 여유 조차 전혀 없었다. 그 속에서 소녀들은 뜨거운 전우애를 나누며, 서로를 의지하고 마음을 다진다. 그리고 같은 소대가 될 학생들과 동료들, 능욕당하고 살해당하는 여성들이 더 이상 없도록 그들을 지키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세라피마가 소속된 저격소대는 드디어 임무를 받고 스탈린그라드라는 도시로 향한다. 그곳은 소련 병사의 평균 생존시간이 24시간에, 7초마다 한 명의 독일 병사가 죽어나간다는 격전지였다. 세라피마는 저격병으로서 전쟁의 끔찍함을 어떻게 이겨내고, 겪어 낼 것인가. 저격병이 되기로 결의했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까.

 

 

 

나는 붉은 군대 병사다. 나는 나치에게 복수하기 위해 싸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대답해라.
저는 여성을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그래, 나는 여성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야나는 모르는 독일인 소년을 지켜냈다.
여성을 지키기 위해 싸워라, 세라피마 동지. 망설이지 말고 적을 죽여라.
하지만 나는 너처럼은 되지 않아. 너처럼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아.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사람의 도리를 행할 거야.              p.497

 

지금 일본 문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신인 아이사카 토마의 데뷔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땅에서 80년 전에 벌어졌던 독소전쟁을 소재로 하는 전쟁소설이자 반전소설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3개월 전에 출간되었다. 아마추어로 소설을 쓰던 작가가 현실에서 벌어질 참혹한 전쟁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로 인해 시의성 있게 주목받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의 전쟁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쟁은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 속 풍경들을 산산이 부순다. 공원에서 순진무구하게 노는 아이들, 아무런 격식 없이 다정하게 웃는 연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도시 전체가 불타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 그대로 죽어서 절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폐허에 둘러싸여 꿈도 희망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전쟁의 참상이다.

 

'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 중 소련만이 그 많은 여군을 전투병으로 동원하였는가'라는 의문을 오래 전부터 가졌던 작가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쟁을 그린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 속 여성들은 저격병으로 교육받으면서, 전장에 나가 싸우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지. 바로 그 점이 여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과의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핑계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상황이 닥쳐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을 지키며 어긋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한해 전쟁으로 24만 명이 죽어나가는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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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망치는 말 아이를 구하는 말 - 1만 명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범죄심리학자가 전하는
데구치 야스유키 지음, 김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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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 애 잘 되라고 한 말이죠." 비행청소년 보호자들에게 이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자식 교육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학대한 적도 없고, 부족하지 않게 먹여 살리려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아이를 위해서, 내 아이 잘되라고 잔소리 좀 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부모가 참 많았습니다. 그들은 경찰로부터 자녀의 범죄 사실을 들었음에도 충격받은 표정으로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어"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렇다면 잘 되라고 한 부모의 행동과 말이 왜 아이의 비행과 범죄로 이어지는 걸까요?         p.18

 

지극히 평범한 중학교 2학년인 와타루는 지금까지 특별히 무시당하거나 따돌림 당하는 일 없이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그의 고민은 자기주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부모님이 말버릇처럼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 기분을 살피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의견을 말하기 전에도 눈치를 보았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습 절도범인 미쓰야와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 그와 함께 장난처럼 대형 서점에서 책을 훔치기 시작한다. 이후 버릇처럼 절도 행위가 이어지게 되는데, 부모의 말을 잘 듣던 온순한 중학생을 이렇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부모의 생선가게 일을 도우며 자랐던 유카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항하고, 곧바로 식품회사에 취직한다. 그런데 회사 공금을 횡령하다 3년째 회계 감사에서 범행이 발각당하게 되는데, 남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의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의대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코우지는 3D 프린터로 만든 총으로 부모를 공격하고,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삼남매의 장녀가 어느 날부터 원조교제를 시작해 결국 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밖에 없는 손녀 교육에 온 정성을 다한 할머니의 사랑을 받던 손녀가 대학생이 되어 노인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유도해 500만 엔이라는 거액의 사기를 치는 등 이 책에는 별다른 문제 행동이 없던 아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부는 재구성되었지만, 모두 실제 비행 사례들이다. 

 

 

 

아무리 훌륭한 부모라도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육아죠. 사는 일이 바빠 여유가 없으면 "빨리 좀 해!" 재촉하게 되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하며 아이에게 감정을 폭발하는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실수하고 실패도 하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부모가 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부모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기분 나쁜 말투로 쏘아붙였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에게 솔직히 사과하세요... 부모와 아이 모두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p.229

 

자식의 범죄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착한 아이가 도대체 왜?', '보기만 해도 부러울 만큼 이상적인 가족이었는데...'라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의 비행 행동에 이르는 심리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1만 명이 넘는 범죄자와 비행청소년의 심리를 분석해온 범죄심리학자이자 아동심리학 교수이다. 그는 폭력이나 방임, 빈곤 등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이 비행과 연관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문제 행동 기저에 ‘부모가 던진 말 한마디’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정한 말이 아이의 개성을 파괴하거나, 걱정의 말이 아이의 공감능력을 방해하는 등 부모가 옳다고 믿는 것이 반드시 아이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부모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을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심결에 던진 말 한마디가 아이의 미래를 잘못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부모들이 알게 된다면, 더 늦지 않게 아이와의 신뢰관계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정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육아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의 단단한 신뢰관계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평범한 아이가 비행을 저지르게 된 실제 사례를 분석해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어긋나게 된 결정적인 말, 즉 ‘아이를 망치는 말’에 대해서 알려준다. 아이의 마음과 행동이 궁금한 부모부터 사춘기가 시작되며 아이와 소통이 막막해진 부모 모두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잘되라고 한 부모의 행동과 말이 왜 아이의 비행과 범죄로 이어지는 것인지,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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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오쿠다 히로미 지음, 박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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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 불필요한 인간관계는 늙음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50대부터 하나씩 내려놓으면 편해질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회인으로서 생활하는 것도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녀들은 부모 품을 떠나 독립하니 지켜야 하는 것들이 점점 적어지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제껏 무리해서 만나야만 했던 사람도 줄어들겠죠.
나키무라 : 그래요. 나이를 들수록 생활을 위해,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참을 일이 점점 줄어들지요...                p.83~84

 

'늙음'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의료기술의 발달로 고령화 사회가 되자, '100세 시대'라는 말로 미리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노년기는 한참 일할 때와는 다른 고민과 심신의 변화가 찾아오게 마련이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우리 몸의 시스템은 40대 이후로 확연하게 달라진다고 하던데, 주위를 둘러보면 40대가 되면서 확실히 체력이며, 건강이 달라진 걸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40대가 되면 성호르몬과 신체활동량이 줄어들면서 근육 및 근력이 저하되고 생체 효소의 활성도 떨어짐에 따라 다양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는데.. 이는 50대, 60대가 되어가면서 점점더 가속화 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좀더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에너지 넘치게 삶을 대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한해 한해 지나며 책임감도, 스트레스도 누적되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지니 말이다. 그러니 나 자신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금 더 현명하게 나이 드는 것의 즐거움을 배우고, 그로인해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해 배울 필요도 있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두 저자가 나이를 먹으면서 늘어나는 삶의 경험,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인 연륜을 고스란히 대화에 담아내고 있어 40대 이후의 독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나카무라 : 그렇지요.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것만큼은 피하는 것이 좋답니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마음껏 해보면 좋겠어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요. 보통 우리는 동조 현상에 휘둘리기도 하는데요. 조금이라도 주위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면 '괴짜'라고 부르기도 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말해요. 사회 분위기상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게 더 좋지 않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해요.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간다면 평균수명보다 짧은 생을 맞이하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을 거예요.               p.145~146

 

이 책은 90대의 정신과 전문의와 50대 정신과 전문의가 만나서 '어떻게 나이 든 삶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담고 있다. 나카무라 쓰네코는 90세까지 풀타임으로 진료 업무를 계속 했고, 이제 92세로 은퇴하고 평온한 여생을 보내는 중이다. 오쿠다 히로미는 원래 내과 전문의였으나 2000년에 나카무라 쓰네코 선생님을 만나 정신건강의학과로 전과했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두 사람은 일적으로도 삶적으로도 선배이자 후배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관계라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 속 질문과 조언이 더없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중년과 노년의 변곡점에 서 있는 오쿠다 히로미가 중장년층을 대신해, 90대의 삶도 적극적으로 꾸려가고 있는 나카무라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의견을 구한다. 두 사람 사이에 무려 40여 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있지만,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른 것을 뛰어 넘어 공감되고 교차되는 부분들도 많아서 더욱 훌륭한 대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요즘은 나이와 상관없이 정정하게 계속 일을 하고, 활동을 해내는 노년들이 많은 편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 싶으면서도, 어느 순간 아직 남아 있는 인생이 더 길구나 새삼 느껴진다.  그렇다면 긴 인생,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노화, 고독, 관계, 죽음 등 누구나 노년을 앞두고 고민하게 되는 부분들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이든다는 것의 의미,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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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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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연에는 미묘한 자력(磁力)이 있다고 믿었다. 오래전부터 가졌던 믿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그 자력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고, 그 방향은 그가 걸어온 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 그토록 단순하게 펼쳐진 부처스 크로싱에서 지낸 단 며칠 동안, 자연이 가진 강박적인 충동의 힘은 너무나도 강해서 그의 의지, 습관, 생각에 충격을 주기 충분하다는 걸 느꼈다... 아직 그 강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그 강이 그의 본능이 추구해 왔던 자연과 자유를 그 자신과 갈라놓는 광대한 경계선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60~61

 

대학생인 윌 앤드루스는 자연주의에 빠져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가진 돈을 모아 서부로 향한다. 그리고 캔자스 산골 마을 부처스 크로싱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하고 평원으로 나가면 신세 망친다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연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냥하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삶에서 친숙했던 모든 것 아래 잠재되어 있는 그것, 세상의 원천을 찾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사냥꾼인 밀러를 찾아가 서부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하고, 그에게 들소 사냥에 대해서 듣게 된다.

 

마침 밀러는 작은 규모로 사냥대를 꾸릴 생각이었기에, 앤드루스는 가진 1400달러 중 거의 반인 600달러를 그에게 투자하기로 한다. 그들은 로키산맥에 숨겨져 있다는 들소 떼의 은신처를 습격해 한몫 크게 잡아 보기로 한다. 마을을 떠나기 전 만났던 창녀 프랜신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돌아오겠죠. 하지만 그때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젊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졌겠죠." 라고. 어쩌면 그녀의 이 말은 앤드루스를 기다리고 있을 내일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이러한 조언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들은 긴 여정을 시작하고, 들소 사냥은 앤드루스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경험을 그에게 선사한다. 겨우 조금 전만 해도 당당하고 고귀하며 생명의 위엄으로 가득했던 존재가 속절없이 가죽이 완전히 벗겨진 채 죽은 고깃덩이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그는 자기 안에 있던 무언가가 파괴되는 걸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가파른 산이 사방을 에워싼 넓고 굽은 고원에서 수 개월을 보내면서 그는 점점 시간 감각을 상실하고, 인간성을 잃어간다.

 

 

 

"젊은 사람들은." 맥도널드는 업신여기듯 말했다. "찾아낼 무언가가 있다고 늘 생각하지... 글쎄, 그런 건 없어." 맥도널드가 말했다. "자네는 거짓 속에서 태어나고, 보살펴지고, 젖을 떼지. 학교에서는 더 멋진 거짓을 배우고. 인생 전부를 거짓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깨닫지. 인생에는 자네 자신, 그리고 자네가 할 수 있었던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네는 그 일을 하지 않았어. 거짓이 자네한테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제야 자네는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 그 비밀을 아는 건 자네뿐이니까.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어. 이미 너무 늙었거든."              p.306

 

<스토너>라는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던 작가 존 윌리엄스의 마지막 미번역작이 출간되었다. 존 윌리엄스는 일평생 단 네 편의 소설만 발표했는데, 데뷔작인 <오직 밤뿐인>부터 <부처스 크로싱>, <스토너>, <아우구스투스>까지 모두 국내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번에 나온 <부처스 크로싱>은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를 쓰기 5년 전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택하고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는데, 기존에 만났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 어떤 이야기와도 달랐기 때문이다. 잔혹한 들소 사냥, 대자연 속에서의 험난한 야생 생활, 지옥과도 같은 산속의 겨울을 버텨내고 다시 부처스 크로싱으로 돌아왔을 때 보스턴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던 대학생 앤드루스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부처스 크로싱'은 존 윌리엄스가 만든 가상의 산골 마을이다. 하지만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전반에 걸친 자연에 대한 그림같은 묘사는 우리를 1870년대 캔자스 서부로 데려간다. 2,3000마리나 되는 들소가 이동하는 장면은 페이지로 읽어도 장관이었다. 빽빽하게 자란 소나무 아래, 검은 얼룩이 계곡 위를 움직이는 풍경이라니, 얼룩 전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도에 움직이는 거대한 바다처럼 흔들리는 것이다. 들소가 나타나기 바로 전 광경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땅의 고요와 정적, 완전한 평온같은 시간이었기에 이 대비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잔혹하지만 우아하고, 고요함 속에서도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느끼게 해주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긴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스토너>의 감동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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