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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 탐험대 콘티키 ㅣ 위대한 도전 2
김정홍 지음, 양지훈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6년 3월
평점 :
과감하달까, 과격하달까. "뗏목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으므로, 아무리 비슷한 유물이 있고 인종적으로 유사하더라도 선주민들이 이 섬에서 저 대륙으로 이주해 왔다는 논리는 옳을 수 없다."는 말에, "건너보이면 될 거 아냐! XX!" 라고 말해버리는 무시무시한 '학자'의 이야기이다. 헨리 존스 주니어(통칭 인디아나 존스)의 직업이 역사학 '교수'라는 사실이 납득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유럽. 역시 툼 레이더(틀려).
하지만 이 책은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모험소설에 가깝다. 아니, 그냥 모험소설이다. 물론 탐험(?)을 방해하는 사악한 악당 같은 것은 안 나오지만, 일엽편주 뗏목 하나(일엽편주라는 말이 이토록 어울리는 배도 드무리라)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을 모험 아니면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내전중인 페루 산골짝까지 들어가 목재를 채취하는 것부터가 마음만 먹으면 책 한 권은 써낼 모험이며, 악의 축으로 이름높은 펜타건(미 국방성)에서의 투쟁, 카누를 타고 입국해 뗏목을 타고 출국하겠다는 동료들, 마치 전기톱같은 이빨을 가진 상어들을 맨손으로(!) 낚시하는 즐거움, 우리가 아는 그 녀석이 아닌 돌고래(대체 왜 돌고래인거야?), 마치 신하처럼 그들을 따라다니던 파일럿 피시, 모두의 친구가 된 게, 처음이자 마지막 희생자가 되어버린 앵무새, 그 누구도 본 적 없는(잠자던 동물학자를 깨워서 보여주었더니 "아니야, 이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아."하고 도로 자 버렸다나 뭐라나) 살아있는 화석, 회중전등 수준의 출력으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이어진 무전, 거기서부터 다시 지구 반바퀴를 돌아 국왕에게 보내진 생일 축전, 모포와 냄비로 만들어진 얼음덩어리, 명주 그물로 채취한 플랑크톤들의 군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가 올려다보는 빛이 으깨어져 쏟아지는 수면,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신기한 이야기들의 연속은 그 어떤 픽션보다도 흥미로운 모험이었다. 꼭 노틸러스를 타고 바다 밑을 2만 마일 기어다녀야 모험인 것만은 아닌 법이다. 작중에 흐른 말마따나 숲을 질주한 단거리 선수가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이 당연하지만 잠시 숨을 죽이고 나무등걸에 앉아 있으면 수많은 숨소리가 들려오듯이, 거대한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것보다 작은 뗏목이 바람과 물결에 흘러갈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조금 숨을 돌릴 때 더욱 흥미로운 모험극이 되지 않을까?
이 '모험소설'을 한바탕 즐기고 난 며칠 뒤에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이 모험을 통해 "뗏목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는 주장을 깨트렸을 뿐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이 태평양의 군도에서 이주해 온 것이라는 학설의 증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어이없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과정에 취해 목적을 잊어버린" 꼴이다만…
이 모험은 그럴 가치가 있었다. 세상이 꼭 목적대로 돌아갈 필요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