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올시다! 4
니시모리 히로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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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적인 사무라이의 이미지를 구현한 존재다. 올곧게 걸으며, 더할나위없이 똑바로 사람을 바라보고, 순수하게 동료를 믿는다. 악의보다는 호의로 타인을 대하지만 신의를 배신한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사회에 가장 도움이 되고 필요한 구성원이며, 동시에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멸종생물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인 도시로가 전통 복장을 벗고 평상복을 입은 후에도 눈에 확 뜨이는 이상한 놈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인간이 무리지어 살아가는 생물인 이상 어떤 상대방이 사회, 작게는 자기 자신에게 안전하고 유익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은 이미 본능의 영역이며, 그렇게 생각한다면 도시로가 단 며칠만에 마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10년을 여기서 살아온 우리보다 마을 사람들과 친숙하다.") 순식간에 전교생의 시대감각을 망가트려 놓은 것은 ('아무리 그래도 요즘 세상에서 그 정도로 이렇게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는 건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더해 도시로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도시로가 집착하는, 요즘 세상에서 더없이 바보스러워 보이는 '승부'라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 이 '승부'는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는 의식이다. 승부에 거짓을 말한 '사오토메'(웃음)를 쓰레기라 부르고 뒤에서 기습한 오오타를 비겁자라 매도하는 도시로의 모습은 부정이나 반론조차 할 수 없도록 단정적이고 확고하다. 그러면서도 승부한 상대에게 던지는 화두는("즐거웠네. 또 승부하세."), 저토록 강하고 올곧아 너무나 부럽지만 차마 흉내낼 수조차 없는 존재가 자신을 '승부할 가치가 있는 상대'로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소위 불량배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격임이 분명하다. 인간은 명예를 먹고 살아가는 생물 아니던가. 그것을 바라보던 전교생이 모조리 물들어버리는 것도 책을 읽는 독자들이 도시로에게 빠져드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이 두 가지가 '도시로 매직'의 정체다.
하지만 도시로는 주인공으로서의 가치는 낮은 편이다.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로는 '완성' 되어있다. 그의 마음 속에 의혹은 없으며, 망설임도 없다. "나의 친구들이 나를 언제 어디서라도 보고 있네." 라고 말하며 자신이 믿는 의를 행할 뿐(이런 놈들이 조금만 어긋나면 얼마나 위험한지는 히틀러 총통 각하와 그 똘마니 도당들이 몸으로 증명해 보였지만 어차피 개그만화니 깊게 생각하지는 말도록 하자). 망설임도 혼란도 없는데다 강하기까지 한 존재는 겉보기에는 시원시원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너무 막나가버리기 때문에 동경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감정이입이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겐스케의 존재는 특기할 법하다. 작고 연약하며 망설이는 존재. 도시로처럼 굳건하게(혹은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길을 걷지는 못하지만 망설이고 머뭇거리면서도 비틀거리면서나마 "나도 알 건 알아. 여기선 물러나는 게 이득이란 거.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길 - '남자로서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는 존재다. 이는 독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면서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로서 '주인공'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도시로는 겐스케를 주군이라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는 독자들마저 그것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도시로 같은 반푼이가 겐스케를 만난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로의 말마따나, "주군은 우리보다 시야가 넓어. 우리는 믿고 기다리면 되네." 진짜 주인공은 겐스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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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니아 전기 10-18권 박스 세트
카야타 스나코 지음, 오키 마미야 그림, 김소형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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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타 스나코는 개성적이다. 작가에 따라서 작품군에 특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혀 세계관이 다른 [키리하라가의 사람들], [스칼렛 위저드], [델피니아 전기] 모두 캐릭터성의 구현에 있어 지독하리만큼 자신의 개성을 유지한다. "나는 이런 여자가, 이런 남자가, 이런 사람이 좋아. 인기가 있건 없건 다른 사람은 만들기 싫어!" 라고 외치는 느낌이랄까. [델피니아 전기]는 그런 캐릭터들의 총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18권이나 되는 양을 총동원해서 '멋있는' 캐릭터를 그려내는 그 막무가내는 결과적으로 정통 판타지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으로 남았다. 리와 월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물론이고 적국의 왕과 신하들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강하다'. 힘이 아니라, 정신이 강하다. 주변에서 무어라 말하건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지워진 짐을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어깨에 걸머지고 오만하게 걸음을 내디딘다. 심지어는 '스스로 죽을 용기조차 없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라티나조차도 역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 나젝크 예외. 이놈은 밉지도 않다(비참하군…).
카야타 스나코가 '자신의 의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그것을 갖지 못한 파로트 일족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 강인함, 그 전투력, 능력, 지식, 재능, 임무를 수행하는 기력, 심지어는 명령을 수행하겠다는 '의지'까지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은 '스스로의 길'을 걷지 못하기에 파로트 일족에 대한 평가는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살아있는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면, 한두 명 뽑아서 소개할까 했는데 골라낼 수가 없을 정도다. 하나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없다. 그 정도로 강력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가지고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것만도 굉장하며, 무엇보다 만담이 엄청 재미있다! 번역상 문제인지 원래 그런 건지 문체 자체는 조금 흐트러지는 느낌이지만(특히 전투 묘사가 심하다) 리와 월이, 발로와 나시아스가, 이븐과 질이, 셰라에 루퍼스까지 모여 떠들어대는 모습은 진정으로 놓치기 아깝다. 남편의 상처를 핥고 팔을 무는 '알콩달콩한' 분위기에서 시녀 보고 '너도 낄래?' 같은 소리나 하는 어느나라 왕비님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독자들은 신경 끄고 자기들끼리 놀아나는 캐릭터들. 조금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끝을 맺으며 이 멋진 캐릭터들과 몽땅 작별해버리게 된 것이 정말 아쉽다.

근데, 국가 대 국가 대규모 전쟁씬보다 부부싸움이 더 박력있는 건 좀 문제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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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노트 Death Note 1~5 세트
오바 츠구미 지음, 오바타 다케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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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한 방 먹었다. 이 만화는 추리물이 아니라 대전물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바둑 만화였던 [고스트 바둑왕]이 후반에서는 결국 바둑을 매개체로 한 히카루와 아키라의 대전물 혹은 무협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 하다.
추리물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나중에 독자들에게서 '이건 불공평하잖아!' 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가이드라인 같은 것인데, 몇 가지만 들자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독자가 모르는 것을 탐정이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 '아무런 복선 없이 비밀통로나 장치가 등장해서는 안된다' 등등으로 이어진다. 그게 아니라도 애초에 추리물이란 독자가 탐정이 되어 범인과 두뇌싸움을 즐기기 위한 것, 따라서 '작가와' 두뇌싸움을 즐겨야 하는 [데스노트]는 절대 추리물이 아니다. 오컬트 판타지다! 아울러 악당이 주인공인 피카레스크 로망. 그렇다면 [데스노트]의 줄거리 요약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천재소년 라이토가 작전을 개시했다가 지력, 정치력, 자금력, 보안유지, 군사력 등에서 막강하게 강력한 세계의 왕 L과 정면출돌해 오컬트의 힘으로 간신히 버텨내는 이야기]가 되어야 정상이다!(단언) 그런 면에서 본다면 라이토의 매력은 깔끔한 외모에 더해 사람 죽이는 것쯤은 우습게 여기는 정신구조에서 오는 불균형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렬한 매력을 느끼는 '미형 악역'의 극단형이랄까. 이런 식으로 작가의 편애를 받는 캐릭터라면 과격함은 행동력으로, 소심함은 신중함으로, 잔인함은 결단력으로 비치게 마련이다.
한데 여기서 생각해볼만한 점이 있다. 라이토가 이런 꽃미남이 아니라 배나오고 얼굴삭고 안경쓰고 우울하고 암울한, 즉 '추한' 왕따나 악당이고 L은 지금같은 폐인이 아니라 정의감과 자부심에 빛나는 주인공급 히어로였다면 과연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뭐긴 뭐야 '세계정복을 노리는 악의 대마왕 라이토를 무찌르는 정의의 용사 L' 스토리로 가는거지. 이러한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데스노트]는 라이토와 L이라는 두 명의 강렬한 캐릭터를 상정한 뒤 서로의 대결을 즐기는, 캐릭터성이 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라이토와 L 두 사람의 외적, 내적인 차이점과 공통점이다. [고스트 바둑왕]을 그리며 잔뜩 물이 오른 그림체로 완성된 깔끔한, 온실속의 우등생으로 보이는 라이토의 외모 밑에 감추어진 '악'의 기운(아주 가끔 보이는 '썩은 미소'로 대표된다)-빛과 어둠의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불안정한 매력은 동시에 '세상을 등진 천재'를 상징하면서도 그 안에 정의감과 자부심을 한껏 담아 행동 하나하나로 내보이는 L의 어둠과 빛의 불균형과 대비되어 더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어둠으로 인해 빛이 밝아지고 빛으로 인해 어둠이 깊어가듯이 이 두 사람의 내면과 외면은 자기 자신 안에서 서로 대비되는 것과 동시에 외모 면에서 서로 대비되고, 내적 측면에서 서로 대비된다. 단순히 예쁜 캐릭터, 사악한 캐릭터, 정의로운 캐릭터가 아니라 이런 함축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캐릭터를 설계해낸 작가의 실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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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쿠루쿠 Lucu Lucu 4
요시토 아사리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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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역할 바꾸기는 개그를 위해서건 뭔가 진지한 것을 논하기 위해서건 결코 드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루쿠루쿠] 만큼 과격한 작품은 드물었다. 지옥이 만원이라 어쩔 수 없이 세상을 정화시키러 온 악마라… '알려진 바와는 달리 원래 이랬다'가 아니라 '그게 맞지만 어쩔 수 없이' 라는 설정은 악마들이 냉혹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던지기에 적합한 배경을 만들어 준다. 가족이란 가장 가까운 타인, 서로 원하지 않는다면 피가 이어져 봤자 별 볼일 없다는 악마들의 첫 마디는 가족 해체가 일반화된 현대에 있어 결코 흘려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라고 말해봐야 결국은 개그물. 그런데 바로 그 개그가 만만치 않다.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보아둘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개그의 주축을 이루는 천사들(전격계 중시!)이 주로 광신적 일원주의 사상에 의해 웃음거리가 된다면 인간들은 번뇌에 가득하다 못해 번뇌를 초월해버린 너무나 '평범한' 사고방식(보면 안다)에 의해, 그리고 악마들은 입바른 소리 하다가 공주님에게 박살나는 순간에 의해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마계의 공주님 루쿠하가 있다. 강대한 마력과 끝없는 권력과 화학실험 수준의 요리 실력(먼산)을 자랑하는 루쿠하는 정말이지 놓치기 아까운 캐릭터다. 3등신 정도로 그려진 그림체는 다른 캐릭터들에 있어서는 '대강대강' 이지만 루쿠하에 한해서만 '깔끔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한데, 이 만화가 아저씨도 만만찮게 그 쪽 계열인 듯.
피바다를 걸레질해 닦아내고, 실패한 달걀부침을 증거인멸하고, 끓어넘치는 냄비를 들고 우왕좌왕하며, 슈크림에 푹 빠져 양산해버리는 행동 하나하나가 끝도 없이 귀엽지만, 그 중에서도 굉장한 것은 (가칭) '춤추는 루쿠하'랄까…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 직접 보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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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탐험 - 쥘 베른 컬렉션 08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6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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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묘한 징크스가 있다. 전질 중에 한 권을 무작위로 뽑아 읽었더니 그게 무척 재미있어서 그 전질을 몽땅 구매하고 보면 처음 뽑아본 한 권이 최고였다는 묘한(치명적인?) 녀석이다. 그 징크스가 발동해 버렸다. [지구에서 달까지]가 그토록 사람을 빨아들였던 데 비해, [달나라 탐험]은 전반적으로 2% 부족한 느낌이다. 2% 부족한 게 198%쯤 되니 별 문제는 없지만.
쥘 베른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과학소설임과 동시에 소년소설이며 모험소설이다. 그런 면에서 [달나라 탐험]은 모험소설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약하다. 주특기의 절반을 봉쇄당한 꼴이니 2% 부족한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전편 [지구에서 달까지]가 다른 천체까지 떠나는 방법을 논파하였다면 그 후속작인 [달나라 탐험]은 비극으로 끝나버린 전편을 수습하기 위해(소년소녀 모험소설에서 주인공들을 저 꼴로 만들어버리고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스페이스 오페라 버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학소설을 쓰기 위해 발버둥친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지구 속 여행]이나 [해저 2만리]와 같이 쥘 베른은 사람이 직접 가 본 적 없는 곳을 여행할지라도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이론을 설명하며 판타지스러운 이야기 전개를 극도로 자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달나라 탐험]에서도 그런 경향, 혹은 지론을 지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깊게 보인다. 정말로 포탄이 달에 명중하는 순간 역추진 대포를 발사해 착륙한 뒤 '공기와 물이 남아있는' 저지대에서 기술과 작물을 퍼트리고 프랑스와 미국의 깃발을 꽂는 스토리로 갔다가는 정말 겉잡을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러고보니 이건 정말로 뮨히하우젠 남작([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군.
그런 면에서 달을 한 바퀴 돌아(이것만 해도 충분히 판타지스럽지만) 지구로 돌아오는 이 짧으면서도 긴 여정은 조금씩 다가오는 달에 대한 신비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어 쥘 베른이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타협 아니었을까. 그의 상상력을 120% 발휘하여 더듬어갔을 것이 분명한 포탄 속에서의 우주 여행에서도 주목할만한 부분은 많이 있다. 물론 이 부분에 한해서만은 과학적으로 볼 때 '딴지를 걸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 할 지 망설여지는' 수준이지만, 그것은 19세기의 지식인이었던 쥘 베른의 인간적인 한계인 부분이고, 그 한계 속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것이야말로 [달나라 탐험]이 충분히 갖지 못한 모험소설의 분위기를 부족하게나마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중력 공역에서의 '두 미국인과 한 프랑스인의 승천' 이라거나 산소 과다 상태에서의 난장판 파티 등은 모험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단순히 포탄에 실려서 날아가는, 굳이 말하자면 중간 여정 부분이니까) 책 속에서도 단순히 무미건조한 정보의 전달이 아닌 '실제로 겪어 보이는 듯한 (공상과학소설 최대의 장점이 아니던가!)' 우주 여행과 달 관측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무리가 없다.
그리고 저 쾌적한 우주 여행을 바라보며 100년 뒤 달로 간 아폴로 우주선의 파일럿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100년 전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고급 호텔 수준으로 꾸며놓은 '객차' 에 앉아 덜 익어서 피가 불그레한 스테이크와 날것보다 더 싱싱한 야채 샐러드, 최고급 꼬냑, 러시아 황제가 선물한 홍차를 즐기며 달로 날아가고 있을 때 아폴로의 승무원들은 숨쉬기도 어려울만큼 좁은 깡통에 갇혀 무미무취한 치약형 고농축 영양소 덩어리를 뱃속에 쟁여넣으며(먹는 게 아니다!) 달을 향해 처박혀지고 있었다. 아직도 쥘 베른의 상상을 구현하기엔 멀었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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