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2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5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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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전자기학의 가우스, 만유인력의 뉴턴, 수학의 라이프니치 등과 함께 삼천만(희망사항) 공학도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대마왕이다. 공학도로서 경험상 하는 말인데, 이 아저씨가 등장한 부분부터 양자물리학이 두 배로 어려워진단 말이다(혹자는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이 후손들에게 지옥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사나이' 라고도 한다). 그런 대마왕의 자서전인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읽어보고나니 얄미움은 더더욱 심해진다. 나는 생고생해서 '외우고' 있는 공식들을 이 아저씨는 콧노래 부르며 '만들어' 냈다는 거냐! 이런 인간차별이라니! 사해평등주의에 어긋난다! 혁명! 차별철폐! 나에게도 저런 두뇌를 줘!(눈물)
그건 무리겠지만, 이 아저씨처럼 즐겁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모범적인 공무원이자 유쾌한 동료, 실력있는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던 스위스 특허청의 어느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직장 옮긴다고 사표 내길래 어디로 가느냐 묻자 대학 교수로 스카웃됐습니다 그랬다던가(아인슈타인) 하는 이야기들은 흔하고 흔하지만서도, 리처드 파인만의 인생은 부러울만큼 유쾌하고 즐겁게 보인다. 취미삼아 익혀버린 금고따기에 얽힌 사건들, 여자들과 이야기해보기 위해 가르쳐야 할 사람들은 제껴놓고 스페인어 공부를 포르투갈어로 바꿔버렸다나 하는 이야기, 난데없이 드러머가 되어버렸던 경험, 정작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물리학자의 이야기는 없이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리처드 파인만'이오." 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였달까. 이게 현실인지 거짓말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든 위대한 업적으로 가득한 위인전이나 자서전(쓰면서 스스로 쪽팔리지 않았을까?)이야 많고 많지만 이렇게 '거짓말같이' 유쾌한 이야기로 채워넣은 자서전은 처음이다. 그래봐야 대마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만. 따라서 우리 재판부 전원은(한 명도 전원은 전원) 이런 멋진 이야기를 접하게 해 준 공으로 형량을 3년 줄여주도록 판결한다.
근데 사형에서 3년 줄이면 뭐가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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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4 동원예비군 5 - 새로운 나라 새로운 희망, 완결
오승환 지음 / 로크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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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국건국사]를 필두로 하여 통신소설계에는 시간이동 국력강화 소설이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 [1254년 동원예비군]도 바로 그런 축으로서, 미리 준비한 절대다수의 시간이동이 아닌 소수 인원의 우연적인 도약이며 머릿속에 든 지식 외에는 믿을 것이 없다는 점에서 정통파(?)라 할 수 있겠다.
제목 그대로 다수의 예비군들이 1254년, 몽골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멸망 직전에 몰린 고려에 떨어진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왜 하필 1254년이야! 50년만 일찍 왔어도 아직 황룡사도 남아 있고 인구도 250만에 가깝잖아! 이 전력 가지고 역사상 현대 미국 이상의 초강대국이랑 어떻게 싸우냐고!" 하는 주인공 세한의 절규에 드러나듯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약한 자, 고통받는 자, 지켜야 할 자들을 남겨두고 도망치지 않기 때문에."
이렇듯이 [가을왕]에서부터 오승환님의 작품에는 뚜렷한 기본 기조가 드러나 있다. '보통 사람에 대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따고, 그저 월급이 괜찮아서 한국 국회의원 비서로 일해오던, 조상의 나라에 대해 별 관심 없던 엘리트 캐리어우먼이 함께 날아온 예비군들의 능력과 의지를 면담하면서 남긴 단 한 마디의 감상으로 잘 드러난다. "보석 같은 사람들이야." 객관적으로 보아 이 나라는 정치와 외교에는 젬병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단 50년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의 강대국을 일궈낸 이 나라의 저력은 저토록 보석 같은 사람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해 왔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문맥문맥마다 절절히 배어 있다.
그저 평범한 현대인들에 대한 믿음, 그저 단순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 예정된 역사에 따르면 고려를 대신해 세워질 이 신생 '대한민국'은 향후 700년에 걸쳐 5만 배에 달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한다고 한다. 그 기적의 가장 큰 힘은 사람에 대한 믿음, 국가와 국민은 기업인을 믿고 공정한 자유경쟁의 장과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기업인들은 "이 장사 한두 해 해 먹고 말 것 아니잖소?"라는 말로 국가와 국민의 믿음에 부응했다. 가장 평범하고 기초적이면서도 잘 지켜지지 못하는, 그런 '믿음'이 살아 넘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건 그런데 동원예비군들이 믿을 유일한 구석인 지식이란 게 엄청난 거라서, 500명이 7일간 창고에 처박혀 있는대로 머리를 쥐어짜내 보니 750년 뒤의 거의 모든 것이 굴러나오더라는 무시무시한 모습은 작중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의 위대한 주입식 교육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그 중 아주 사소한 지식의 파편과 고려인들의 기술이 조합된 결과는 '13세기'에 '81mm 전장식 대포'를 탑재한 '500톤급' 전열함. 밀리터리에 조예가 없는 사람은 잘 이해 못하겠지만 현대로 따지면 거의 항공모함급이다.
…몽골이 불쌍할 따름입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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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 - 군사 역사편
스티븐 앰브로스 외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연구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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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만약은 없다- 는 말은 이제는 진부하다. 가정을 해 봐야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바꾸려고 하는 인간들도 있기는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완벽하며 또한 드라마틱한 창작물'인 현실의 역사에 간섭하고 가정하고 진행시킨다는 것은 비록 널리 퍼지지는 못했지만 매력적인 지적 유희의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역사학적인 발상 뿐만 아니라 사회학, 공학, 인류학, 인류가 쌓아올린 거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고 수없이 많은 가정을 상정해 가장 합리적인 전개를 뽑아냄으로써 그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법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저 이야기꾼의 재주가 아닌 인류의 지혜를 총동원한 지적 유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최근 유행하는 대체역사물의 대부분은 역사의 이름을 덧씌운 판타지로 상상력 내지는 망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체역사를 즐기기는 쉽지 않은데, 시선을 조금 과거로 돌리려보니 이런 작품이 있었다!
아무래도 서양 역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조금 낯설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단 한 가지에만 변화를 주고' '가장 합리적인 역사의 진행을 따른다'는 대체역사의 규칙을 확실히 지킨 새로운 역사들의 집합이기에, 대체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길잡이가 될 듯도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예수' 였다. 본디오 빌라도(실존인물임)가 유대 랍비들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로마 법 그대로 집행하였더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을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30세 이후 단 몇 년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 분이 수십 년을 더 살며 인류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더라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해지지 않았을까? 사실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치고 신의 것을 신에게 바쳐라'는 말은 '세금 잘 내고 헌금도 잘 내라' 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로마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두 손 들어 환영하였으리라는 가능성은 충분하다!("다른 민족들도 이런 스승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역대 교황들이 대대로 '황제의 것도 신에게' 라고 말했던 사실 역시 특기할 만하다.
역사에 가정은 유의미하다. 재미있거든. 그치만 대체역사라면 대체역사라고 말을 해 달라. 진짜 역사인 척 하면 곤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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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대한민국 4 - 제2부 융희황제편
박대성 지음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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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설명도 없이 21세기의 남북한 전체가 1904년에 떨어져 버린다! 그리고 시작되는 싹쓸이.
대체역사물의 전문가들에게는 남한이고 북한이고 6개월 안에 연료 부족과 식량 부족으로 파탄나며 간신히 살아남는다 해도 고도로 발달된 21세기적 산업구조와 7천만의 인구를 부양할 수 없으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부분은 '피고름을 짜내는 노력으로' 라는 한 마디로 해결해 버렸다(먼산). (다시) 시작되는 싹쓸이.
그러기 때문에 좋게 말해 역사판타지, 조금 과격하게는 정신적 수음이라고까지 불리는 장르이지만, [”低? 같은 불쏘시개와는 달리 그 장르 내에서는 상당한 가능성과 가치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앞뒤없는 무적최강 판쓸이로 나서버리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한국인들이 갑자기 세계 최강국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하는 의문점을 제시하고 꽤나 진지하게 그 의문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뭐, 결론이야 뻔하지만. (또) 시작되는 싹쓸이.
그리고 무엇보다, 속이 시원하다. 일반적으로 어떤 나라가 국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포함하여 모든 면에서 '수명이 다해가는' 것처럼 약화되기 때문으로, 대부분의 대체역사가 정말 국력을 강화시키고 싶다면 '농사부터 잘 지어야' 하는, 심지어는 '애부터 낳고 봐야' 하는 상황까지도 있는데 자그마치 7천만 인구를 가진 대한민국이라면 그 부분은 가뿐하게 패스(21세기에도 인구 7천만 이상인 나라는 드물다…). 이제 문제가 되는 건 거꾸로 '이 머릿수를 어떻게 먹여살리는가' 인 만큼 힘은 남아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즐기면 그만. (결국) 시작되는 싹쓸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강대국이면서도 동서남북으로 세계 1, 2, 3, 4위의 초강대국 4개가 올망졸망 모여있는 위치조건 때문에 쪽도 못 쓰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에 비분강개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결국은 '판타지' 소설인 역사판타지 계열에서는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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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
이형근 지음 / 미토스북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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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게 삼국지보다 100년 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장비의 장팔사모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중국에서 한족이라면 90%이상 황실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아는가? 유비가 황숙인 건 전혀 신기한 게 아니다. 한족이고 유씨였다는 게 신기한 거지. 제갈공명의 부인인 황월영 여사가 당시 기준으로 추녀였다면 지금 기준으로는 초미녀일 수 있다는 사실은? 삼국지 정사에 조자룡이 거의 안 나온다는 사실은? 나관중이 조자룡과 동향이라는 사실은!?(중요! 매우 수상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읽고 흥미를 느꼈더라면, 이 [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를 볼 자격이 있다. 갖가지 미사여구와 돌려말하기와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 미화되거나 격하된 사실들을 행간에서 찾아내 현대적인 개념으로 재구성해 내놓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영웅호걸로만 보아오고 난세의 간웅이라거나 악당이라거나 바보(…어이)로만 보아왔던 역사상의 인물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이점이다. 비슷한 용도로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비본 삼국지]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 양이 많아서 손대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다르게 보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남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할 때, 이 책은 무척이나 어울리는 연습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너무 두껍고 양만 많은 삼국지는 손댈 엄두가 안 나지만 읽어보고는 싶은 당신, 당신에게도 이 책은 어울린다. 세계고전걸작전집 60권짜리를 읽는 대신 한시간만에 논술대비 핵심요약본으로 끝내는 꼴이지만 뭐 어떠랴, 안 읽는 것보다 낫지. 아니, 한정된 시간에 많은 양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더욱 가치가 높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사 속의 인물들을 현대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이 옳은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책은 삼국지를 '다르게' 보았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책을 '다르게' 읽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바르게' 읽는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재미없는 책 따윈 불쏘시개나 돼 버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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