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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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얼마 전 열렸던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 <스트라이킹 랜드> 예매하면 책도 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영화는 못 봤지만 책은 읽어보게 되었다. 영화제에 참석해 보면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환경 관련 도서도 많이 추천받는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관객심사단을 했던 적이 있다. 그전에도 관객으로 여러 번 참여했는데 직접 환경 관련 영화를 보면서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었다. 그때 심사했던 영화 <펀치볼>이 관객심사상과 우수상 2관왕을 받으면서 더욱 뿌듯했던 기억이다. 꾸준히 자연과 생태, 기후변화와 탄소발자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중 좋은 책을 읽게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친구가 있다. 수박을 먹고 껍데기를 햇볕에 말린 적이 있는데 그때 그걸 먹으로 왔던 거 같다. 완전한 도심에 살지만 새벽에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음이 적은 새벽녘에는 녀석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그때 유심히 관찰하던 새가 있었는데 머리가 스포츠형이었다. "이 녀석 좀 터프하고 까칠해 보이네"라고 생각했는데 요리조리 찾아보니 도심 속 아파트 숲에 살아가고 있는 친구였다.

책 속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다. 손으로 그린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감과 그림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가 잘 몰랐던 자연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면서 스토리텔링과 역사도 알 수 있다.

아카시아꽃은 원래 아까시나무였다는 것, 저자처럼 물건을 오래 쓰는 것도 공감했다. 나도 파우치 귀퉁이가 헤졌고 심지어 찢어져서 바꾸었는데 지금도 낡은 상태다. 최근엔 아파트에 무작위로 가지치기하는 것이 영 맘에 안 들었다. 주민 동의는 얻고 하는 걸까? 너무 잘라놔서 가여워 보이기도 했고, 어떤 나무는 주차공간을 만든다고 아예 베어버렸다. 책을 읽어보니 나뭇가지는 25% 이상 가지치기하면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못해 굶주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참 고마운 책.



몇 년 전부터 구매욕과 소비욕이 줄어들었다. 이게 다 환경영화제 탓이기도 한데 먹을 만큼 먹고 쓰레기 만들지 않고 음식 주문도 그에 맞게 한다.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고 찢어져서 못 입을 때까지 입다가 어쩔 수 없이 버린 옷과 가방에 뿌듯함을 느낀다. 대량생산과 과소비 시대 자고 일어나면 새 물건이 척하고 생기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집에 안 쓰는 물건이 많은 것도 스트레스라 주변에 나눠주고 팔고 버렸다.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에 소유욕을 줄이기 힘들었지만 여전히 애쓰고 있는 중이다.


영화 <기적>은 우리나라 최초 민자역인 양원역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유일한 발이 되어 준 간이역이 사라지는 것은 고속도로 발달에 있다. 기차는 기후 위기 시대 탄소중립 대안으로 각광받는 수단이라 여행을 다닐 때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저자는 간이역이 지방 소멸을 막을 좋은 대안이라 제시하고 도시 포화 상태와 교통체증을 이야기한다.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를 보면 미니멀리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재미와 의미 모두 찾는 영화니 시간 되면 보기를 추천한다. 저자님이 영화를 참 좋아하시네 또 생각하는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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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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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를 기억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소격효과'. '낯설게 하기'혹은 '제4의 벽 깨기', '소외 효과' 등으로 불리는 이론을 만든 사람이다. 연극에서 주로 사용되는 효과로 극의 몰입을 방해하여, 관객이 스스로 질문들 던지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게끔 한다. 영화에서 가끔 카메라에 말을 거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 브레히트를 떠올린다.


독일의 극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시인이기도 했다니. 역시 글쟁이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쓴다는 데 공감하게 되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 당시 위생병으로 복무, 이후 연극과 창작의 길을 떠났다. 히틀러 정권 시절 14년 동안 망명 후 1949년 동독에서 정착해 활동했고 1956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2,300편이 넘는 시를 남겼다.

암울한 시대에

암울한 시대에

노래가 있으랴?

암울한 시대에 대한

노래가 있으리

책은 그중 몇 편을 꼽아. 그가 시대와 역사에 침묵할 수 없어 쓰라린 마음으로 펜을 잡은 고뇌가 서려있다. 수많은 시 중 절반 이상이 사후에 빛을 보았다고 한다. 뒤에 번역가 해설 부분이 너무 잘 되있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공진호 번역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는 인간의 욕망은 선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 정글의 법칙이 문제라 말했다. 기존 사회 질서가 전복되어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며 끊임없이 부조리를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도 공산당에 입당하지는 않았고, 성경을 품에 안고 놓지 않았다. 인간을 향한 마음은 종교를 떠나 예수와 동일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소외된 사람들을 시 소재로 삼으면서 인류애와 사명감을 잃지 않으려 했다.

시에 안 좋은 시대

물론 안다. 행복한 사람만이

인기 있다는 걸.

그런 사람의 목소리는

듣기 좋다.

얼굴은 밝다.

뜰에 있는 주접든 나무가

안 좋은 토양을 암시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주접들었다고 놀린다

그럴 만도 하다.

해협의 초록색 배들과 펄럭이는 돛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고 많은 사물 중 하필이면

어부의 찢긴 그물만 보인다.

나는 어찌하여

구부정하게 걷는 마흔 살의

마을 아낙네 이야기만 하는가?

처녀의 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따뜻하거늘.

내가 운율이 맞는 노래를 쓴다면

마치 들떠 떠드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마음속에 서로 다투는 것이 둘 있으니, 그것은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과

페인트공이 연설하는 소름 돋는 광경이다.

하지만 후자만이

나를 책상으로 가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인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은 이 시구에서 따왔다. 여기서 페인트공은 히틀러를 뜻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전원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적인 상황(토양)이 좋지 못해 주접든 나무(브레히트)가 생겼다고 했다. 얼굴은 시를 암시하고 토양 탓이라도 사람들이 그럴 만도 하다고 했지만. 찢긴 그물을 통해 자연을 찬미하는 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를 말한다.


시의 시는 대부분 구연을 감안해서 썼다고 한다. 그것을 가리켜 'Gestisch'라고 한다. 제스처. 시가 극에서 활용된 탓인지 읽다 보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오르는데, 바로 연극이나 영화의 대본으로 확장해도 괜찮겠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브레히트와 연이었던 여인이 참 많기도 하더라, 사랑도 시대를 고민했던 것처럼, 치열하게 했던 것일까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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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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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는 영화 <말 없는 소녀>의 원작이다. 영화 보기 전 긴 단편 소설인 원작을 읽어봤다. 책도 영화도 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시, 단편이 주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손에서 탄생했다. 100P가 채 안 되는 소설은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안에서 자란 소녀가 먼 친척 집에 며칠 머물게 되는 이야기다.

1981년 여름,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가족은 다섯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중 위로 둘 언니와 밑에 남동생, 곧 태어날 남동생 사이에 끼인 셋째 소녀는 킨셀라 부부네 집에 맡겨진다. 소녀의 집은 가난해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늘 피곤에 지친 엄마 곁에서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들은 말이 없다. 남들 눈에는 조용하고 조숙한 아이로 보일 거다. 손도 많이 가지 않으니까 키우기 쉽겠다지만, 주눅 든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거친 아빠는 부유하지만 자식이 없는 노부부 집에 며칠 소녀를 부탁한다. 처음으로 남의 집에 가보는 소녀는 따뜻한 환대를 경험한다. 첫날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시트에 실례를 한 소녀를 나무라지 않고 축축한 매트리스 때문이라고 자신을 탓하는 성정을 가졌다.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구두도 길들여주며,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시키며 시간을 재주는 자상한 '존 아저씨'는 무심하고 거친 아버지와는 달랐다. 책 읽는 법, 대답하는 법, 따스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는 포근한 '에드나 아주머니'. 집에 있던 남자아이 옷만 입다가 시내에서 예쁜 옷을 사주던 날 우연히 장례식에 갔다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비밀스러운 부부는 어릴 적 개를 따라 거름 구덩에서 빠져 죽은 아들이 이었고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던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딱한 사정을 동정하면서도 멋대로 안줏거리로 삼아 부부와 소녀에게 상처를 준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P28


소녀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이름 없는 소녀, 다섯 형제 중 셋째. 단식투쟁(영화 <헝거>속 상황) 등 정치적인 상황과 마름 병이 번진 흉작 등 1981년 아일랜드 상황의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다. 하지만 소녀는 먼 친척 집에서 생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조용한 아이'는 결코 흠이 아닌 칭찬임을 알게 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 번 엎지르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의 위험성을 소녀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영화도 그렇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전달되는 정서. 이 암시와 열린 결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상상력을 믿는다는 거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목가적이며 느슨하고 아름답다. 고요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며, 부부는 <빨간 머리 앤>에서의 커스버트 아주머니, 아저씨가 떠올랐다. 마지막에 "아빠"라고 부르는 두 아빠를 향한 소녀의 이중적 마음이 꽤나 먹먹하게 아파왔다. 원제 'foster'는 위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맡겨진 소녀'에서 영화 'The Quiet Girl'로 바꾼 제목도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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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 사피엔스 - 인공지능을 가장 잘 활용하는 신인류의 탄생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4
홍기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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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경제학자가 바라본 인공지능과 챗 GPT(미리 학습된 번역기)에 관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챗 GPT의 탄생 맥락, 사회의 변화 등을 정리했다. 챗 GPT를 응용하고 배우고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을 타깃으로 한다.

경제학자가 AI를 어떻게 알지? 무슨 연관이 있지? 의문스럽다면 지금부터 고정관념을 바꾸는 게 좋겠다. AI는 현대인의 삶 전반에 걸쳐 있으며, 5년에서 10년 주기로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주식이 요동치고 있는 현상을 빗대면 이해하기 쉽다. "이번엔 다르다"라는 말이 나오면 항상 금융 위기가 왔다.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인공지능-알파고-비트코인이 나왔을 때도 그랬다. 특히 '민스키'를 중심으로 하는 AI 연구자들은 비싼 비용과 연구 역량으로 발전 가능성이 낮다고 봤고, '커즈와일' 등 미래학자는 어느 순간 기술 발전에 가속 붙어 결국 모든 기술이 통합되며 시너지를 일으킬 거라 봤다.

결국 금융이든 기술이든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면 처음에는 낙관론이 형성되다가 비합리적인 경제 활동으로 버블이 생기고,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다.

자, 이제는 챗 GPT다. 대화가 가능한 생각하는 AI. 개인에게 맞춰진 정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챗GPT다.

챗GPT를 통해 발전하게 될 키워드는 AI 미래 혹은 챗GPT의 범용성, 시너지, 간접성, 맞춤화, 효율성, 연속성 등이다. 향상된 개인과, 자동화 증가, 자율 시스템의 확장, 자연어 처리의 발전, 머신러닝의 지속적인 성장, 양자 컴퓨팅의 개발이 AI의 잠재력이다.

내 직업마저 뺏어갈 것인지, 도움을 줄 것인지 반신반의다. 저자는 두려워할 필요 없이 필요한 정보를 검색창에 검색하는 행위의 업그레이드라고 말한다. 인간의 언어로 묻고 인간의 언어로 대답해 주기 때문에 개인의 맞춤 AI란 소리다.

저자도 챗GPT의 정보가 과정 되어있으며 미래를 획기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챗 GPT 거대 검색엔진 이상의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한 것이라 전망했다.

예를 들어볼까?


얼마 전 미팅했던 대표님에게 일자리를 잃게 될 푸념을 털어놓으니 즉석에서 문단을 복사해서 챗 GPT 물어보더라. 비슷하지만 오타나 어색한 문장을 바로잡는 정도를 선보이더라. 이로 인해 스트레이트 기사나 정보 전달 글은 챗 GPT 도움받고 인간은 더욱 창의적인 일을 하면 된다며 긍정적으로 말해주었다.

챗지피티에게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해, 창의성과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독서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독후감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 자신만의 감상이나 책을 요약하는 것도 좋다. 그것도 어렵다면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문구를 체크해 보는 거다. 한 번 읽고 휘발되어 버리는 정보 보다, 읽고 생각해서 써보는 세 번의 과정이 뇌에 티끌만 한 자극을 줄 테니까.

우울함이 조금의 긍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결국 아는 것이 힘.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본인의 자리에서 도움받을 것은 받아 발전시키는 되는 거였다. 역시 몰라서 공포가 생기는 거지, 알면 별것도 아니고 대비할 수도 있다.

✔️본 리뷰는 21세기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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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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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는 영화 <말 없는 소녀>의 원작이다. 영화 보기 전 긴 단편 소설인 원작을 읽어봤다. 책도 영화도 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시, 단편이 주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손에서 탄생했다. 100P가 채 안 되는 소설은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안에서 자란 소녀가 먼 친척 집에 며칠 머물게 되는 이야기다.

1981년 여름,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가족은 다섯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중 위로 둘 언니와 밑에 남동생, 곧 태어날 남동생 사이에 끼인 셋째 소녀는 킨셀라 부부네 집에 맡겨진다. 소녀의 집은 가난해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늘 피곤에 지친 엄마 곁에서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들은 말이 없다. 남들 눈에는 조용하고 조숙한 아이로 보일 거다. 손도 많이 가지 않으니까 키우기 쉽겠다지만, 주눅 든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거친 아빠는 부유하지만 자식이 없는 노부부 집에 며칠 소녀를 부탁한다. 처음으로 남의 집에 가보는 소녀는 따뜻한 환대를 경험한다. 첫날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시트에 실례를 한 소녀를 나무라지 않고 축축한 매트리스 때문이라고 자신을 탓하는 성정을 가졌다.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구두도 길들여주며,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시키며 시간을 재주는 자상한 '존 아저씨'는 무심하고 거친 아버지와는 달랐다. 책 읽는 법, 대답하는 법, 따스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는 포근한 '에드나 아주머니'. 집에 있던 남자아이 옷만 입다가 시내에서 예쁜 옷을 사주던 날 우연히 장례식에 갔다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비밀스러운 부부는 어릴 적 개를 따라 거름 구덩에서 빠져 죽은 아들이 이었고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던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딱한 사정을 동정하면서도 멋대로 안줏거리로 삼아 부부와 소녀에게 상처를 준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P28


소녀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이름 없는 소녀, 다섯 형제 중 셋째. 단식투쟁(영화 <헝거>속 상황) 등 정치적인 상황과 마름 병이 번진 흉작 등 1981년 아일랜드 상황의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다. 하지만 소녀는 먼 친척 집에서 생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조용한 아이'는 결코 흠이 아닌 칭찬임을 알게 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 번 엎지르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의 위험성을 소녀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영화도 그렇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전달되는 정서. 이 암시와 열린 결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상상력을 믿는다는 거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목가적이며 느슨하고 아름답다. 고요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며, 부부는 <빨간 머리 앤>에서의 커스버트 아주머니, 아저씨가 떠올랐다. 마지막에 "아빠"라고 부르는 두 아빠를 향한 소녀의 이중적 마음이 꽤나 먹먹하게 아파왔다. 원제 'foster'는 위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맡겨진 소녀'에서 영화 'The Quiet Girl'로 바꾼 제목도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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