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시작하고 인간이 마무리한다

AI로 대체될 거란 직업 '기자'. 기자가 없어진다고 호들갑 떨었던 지난 1년 동안 솔직히 한 건 없다. 그렇게 따지만 자주 만나는 통역사, 작가, 블로거, 배우, 감독 등등 다 없어질 거란 소리인데 그때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까.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한 게 몇 달 되었다. 어떤 거래처에서 AI로 기사를 쓸 수 있냐고 했고,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배우면 다 적응하지 않겠냐고 답변했다. 결국 하던 걸 하기로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이번 기회에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건 맞다.
2025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제98회(2026)부터 AI 적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AI 사용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인간이 창의성의 중심인지를 판단했다는 거다. 작년 배우의 외국어(헝가리어) 억양과 발음 때문에 일부 AI를 쓴 <브루탈리스트>가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2023년 미국은 AI 도입으로 밥줄이 끊어질 걸 염려한 배우, 감독, 작가 등이 무기한 파업에 이르기도 했다.
《스토리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이거였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질문을 던지는 건 인간의 몫이라는 것. AI는 답을 줄 수는 있지만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기술장벽(기술+비용)은 낮아졌기에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중요해졌다. AI로 답을 요구하는 시대를 끝났고 대화를 설계할 줄 알아야 한다. 창작자의 마무리는(최종결정)는 언제나 인간이란 거다.
AI에서 무턱대고 "재미있는 시나리오 써줘"라고 할 게 아니라 생각의 사슬에 따라 한 고리씩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AI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의 의도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 일을 '프롬프팅'이라고 한다. 프롬트핑의 본질 이해를 위해 '휴릭스 프롬프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직관은 AI가 이해하도록 번역하는 것을 뜻하는데, 글쓰기와 유사하며 글 잘 쓰는 사람이 유리하다.
휴릭스 프롬프팅에 관한 자세한 예시는 책 속에 들어 있으니 읽어보길 바라며, 필자는 간단한 소개 정도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구체적이고 명징한 단어와 기호를 쓸 때 구체적인 답안이 나온다. 예를 들면 애매한 동사를 사용한다거나, 맥락 없는 요청, 너무 긴 문장은 지양하는 게 좋다. 또한 클로드에서 생성한 대본을 챗지피티나 제미나이에게 검토 요청하고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한다. 인간 전문가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놀라웠던 게 있다. 현재 영화 업계를 잘 알고 있었다. 예로 드는 사례는 구닥다리가 아니라. 현재 영화, 엔터 업계의 화두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나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백영옥 소설 원작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를 예로 들어 프롬프팅하는 데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임선애 감독의 영화는 아직 못 봤지만 소설을 읽어봤던 게 생각나서 '이렇게 시나리오를 고치면 어땠을까' 싶어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2026년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 최대 AI 영화제 대상이 9분짜리 단편 <LILY>였는데 <중간계> 이후 기획 투자한 <코드: G 주목의 시작>도 예를 든다. 두 작품을 비교하며 기술에 집착하지 말고 스토리텔링에 신경 쓰라며 재미와 제목 설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던 중 업계 가장 큰 화두인 AI 창작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일단 추천사 때문이었다. 류승완 감독의 아내이기도 한 제작사 외유내강의 대표 강혜정과 소설가 차무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일단 읽어보기로 했다. 드라마 <모두가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업계를 다루고 있어 드라마 배경과 캐릭터 설정에 깊은 이해가 동시에 진행되리라 기대였다.
또한 2025년 11월 글로벌 영상 플랫폼 카프윙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이 AI슬롭(Slop, 음식물 쓰레기) 소비 국가 1위로 선정되었다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2026년 1월 22일 대한민국은 이재명 정부에 의해 세계 최초로 AI 기본법을 시행한 국가가 되었다. AI 창작물에는 반드시 AI 마크를 달아야 한다는 법안이다. 한국은 AI 제작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콘텐츠의 맥락과 의도, 사회적 악영향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한계다. 법적 외형을 규제할 수 있으나 콘텐츠의 양질은 규제하기 어렵다.
1991년 스필버그 감독의 요청으로 <쥬라기 공원>의 공룡 스톱 모션 연출을 맡았던 '필 티펫'은 수개월 동안 스톱 모션으로 구현한 공룡 움직임이 CG로 몇 분 만에 대체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톱 모션 특수효과를 담당했던 그는 30년 동안 갈고닦은 기술로 업계를 평정했지만 CG의 등장으로 퇴물이 되어 버렸다. 업적이 한순간에 부정되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두 기술을 결합한 시스템을 완성하는 혁신을 거듭했다.
이후 CG 특수효과 회사 티펫 스튜디오를 서립해 <스타쉽 트루퍼즈>, <트와일라잇> 시리즈, 만달로니안 등 VFX를 담당했다. 혼자만의 작업도 놓치지 않았다. 30년에 걸쳐 완성한 스톱 모션 100% 영화 <매드 갓>을 2021년 내놓았다. 그가 남긴 유산은 35년의 세월이 흘러 '페펫티어'라는 기술로 발전시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로키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멸종한 게 아닌 변화를 택한 그가 남긴 유산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따라서 내 직업이, 내 기술이, 혹은 내가 멸종한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빠르게 변하는 기술에 당신의 기술을 접목한다면 또 다른 업을 창출할 수 있는 거다. 저자는 업계 종사자인 만큼 콘텐츠 산업의 변화도 빠르게 분석했다. 샘 알트만은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으로 '높은 주체성', '아이디어 생성 능력', '회복 탄력성',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적응력'을 들었다.
첫째, 숏폼의 폭발적 성장으로 틱톡, 쇼츠, 릴스 등 60초 안에 사용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와이프(패싱) 당하기 일쑤인데 2024년 이후 중국 숏폼의 성장으로 짧고 강렬한 콘텐츠의 성장이 대세다.
둘째, 제작 비용과 시간의 압박은 시작되었다. 팬데믹 때만 해도 무언가가 나와 주는 게 집에서 맞는 행복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너무 많아 따라가기 벅차다. 이처럼 OTT는 포화 상태이다. 드라마 제작에 3-4 년 걸렸던 옛날은 가고 3개월 만에 기획부터 제작까지 뚝딱이다. 넷플릭스, 디즈니도 주간 추천 뉴스레터를 수시로 보내고 있는 것만 봐도 이를 증명한다.
셋째, 창작자 간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예전에는 방송국 PD, 출판 편집자, 영화 기획자 등 게이트 키퍼가 있었지만 현재는 경계가 무너졌다. 다이렉트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 AI가 해결책인지 위협인지는 사용자의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는 소리다.
따라서 이 책은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에 종사하는 수많은 창작자를 위한 가이드다. 드라마와 시리즈, 영화의 시나리오 구조와 에피소드 설계부터 AI로 세분화해볼 다양한 사례를 예시, 저작권과 율리적 책임도 논한다. AI로 만든 장단편 영화를 본 필자로서는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물론 오늘의 AI가 내일의 AI가 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실에서 매일 업데이트하고 공부해야 하지만 티끌만 한 개념은 짚고 넘어갔으니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