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그렉 보웬이 주먹 도끼를 발견한 것 만큼이나 의미 있는 사건은 1995년 경기도의 모 중학교 과학교사 임헌영씨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물거미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사는 연천 전곡의 한 마을(은대리)에서였다. 당시 물거미는 전차 바퀴 자국에 만들어진 얕은 물웅덩이에서 발견되었다. 학철부어(?轍?魚)란 말이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 있는 붕어란 뜻이다.

 

아주 위급한 경우 또는 몹시 고단하고 옹색한 상황을 비유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당시 물거미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어떨까?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이 물거미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올해 개체수가 늘었다는 말을 들었다. 용암 분출, 점토층 형성에 의한 습지 조성이 빚어낸 역진화 등으로 인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이 생명체를 친견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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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 안전거리와 디테일이 행복한 삶의 열쇠다
장샤오헝 지음, 정은지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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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든다. 사적인 일을 묻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자신이 마치 관리자라도 된 듯 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완곡하게 선택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말하기 전에 자신이 하려는 말이 “진실인가?”, “선의에서 나오는 것인가?”, “과연 필요한 일인가?”란 점을 스스로 물어야 하리라. 이에 대해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의 저자는 어떻게 말하는가.

 

그는 분수를 아는 사람은 보통 경청을 통해 좋은 인연을 얻는다고 말한다. 경청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내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간단하게 핵심만 짚어 주는 정도로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판은 어떤가. 그것의 핵심은 소통하고 인도하고 함께 발전하는 데 있다.(29 페이지) 강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도리에 맞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으로 분수를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역지사지하며 합리적인 제안을 한다.(30 페이지) 사람 사이에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관계는 디테일에 달려 있다. 한 사람이 미움을 받거나 인기를 얻는 것은 대부분 사소한 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들 때문임을 잊지 말자.

 

저자는 우리는 관용과 방임 사이에서 분명하게 선을 긋고 엄격하지만 아량이 있으며 관대하지만 격식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58 페이지) 매사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저자는 “일리가 있으면 몰아붙여도 될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자신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길을 터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70 페이지)

 

원칙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옳고 그름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웃어넘기는 것이 필요하다. 사소한 원한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주려 하면 그저 상대방과 같은 수준이 될 뿐이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자랑과 잘난 척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라.

 

분수를 아는 사람은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비록 자신의 성과와 명성이 뛰어나도 일부러 어려운 점을 찾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라. 그러면 상대는 지금 힘든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을 것이다. 배움이 많지 않은 사람 앞에서 지식을 뽐낸다고 한들 재능이 보이기보다 천박하고 무지해 보일 것이다.

 

상대방이 금기시하는 것을 기억하라. 관계 맺기는 낚시하듯 느긋하게 하라.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 동료의 요구가 정말 기이하거나 너무 심하다면 상대방에게 문제를 완곡하게 지적해서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좋다. 동료를 자주 도와주지 말라.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은 앞길을 막는 행동이다. 리더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독립적 개체로 존중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을 기억하자. 포기해야 할 때는 과감히 하자. 많이 쏟아부을수록 포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된 것을 알고도 그 자리를 악착 같이 사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관계든 따지려 들지 말라. 끊임없이 계산하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스스로 삼가는 것은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스피노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최대의 교만이나 최대의 낙담은 스스로에 대한 최대의 무지다.”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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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라도 가서 모셔와야 할 책(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모든 것의 기원')을 알게 되었다. 문제의식이 적절한 데다가 압쇄암(mylonite)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책이어서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 지구 내부에 대해 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현무암과 화강암의 관계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훤히란 말은 ‘앞이 탁 트여 매우 넓고 시원스럽게’, ‘무슨 일의 조리나 속내가 뚜렷하게’를 뜻하니 내 막막함 또는 답답함을 없애줄 좋은 책을 표현할 만하다.(압쇄암은 단층이나 습곡 작용으로 부서져 광물이 가루가 되거나 길게 늘어난 상태에서 굳은 변성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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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생명사 -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항상 패자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장수철 감수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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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억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언제나 패자(敗者)였고 멸종된 것은 강자(强者)였다는 주장을 하는 책이다.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일본의 농학박사이자 식물학자다. 지난 2019년 출간된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을 사려다가 말았었다. 그러다가 올해 6월 나온 ‘패자의 생명사’의 제목에 이끌려 구입했다.

 

이 책은 단순히 패자(敗者) 이야기를 한 책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관된 지질, 기후, 생태 등을 큰 틀에서 흥미롭게 언급한 책이다. 물론 중심은 생명이다. 큰 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은 다섯 번의 멸종을 이야기한다. 다섯 번의 멸종이란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 등에 일어난 멸종을 말한다.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수수께끼다. DNA 유전 암호에 따라 단백질 합성이 이루어지는데 단백질 합성에는 단백질 효소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풀기 어려운 과제다.(8 페이지) 생물은 DNA를 저장할 핵이 없는 원핵세포에서 핵이 있는 진핵생물로 진화했다.(19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독자적인 DNA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독자적인 원핵생물이었으나 다른 세포 안에서 공생 관계를 유지하다가 세포 소기관이 되었다.(19 페이지)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는 동물 세포와 식물 세포 모두에 존재하는 반면 엽록체는 식물 세포에만 존재한다.(24 페이지) 식물과 동물은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먼 친척이다. 공통 조상을 가졌다고 해도 동물과 식물은 겉모습이나 삶의 방식이 너무 다르다.(45 페이지)

 

우리의 조상인 단세포 생물은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인 세균을 끌어들여 공생하기 시작했다.(45 페이지) 미토콘드리아와 공생을 시작한 어떤 단세포 생물이 엽록체의 조상인 생물을 끌어들여 공생을 하게 되었다. 엽록체도 미토콘드리아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DNA를 가진 독립적인 생물이다. 이것이 식물의 조상이다. 미토콘드리아와 공생을 시작할 무렵 동물의 조상과 식물의 조상은 같은 생물이었다.

 

하지만 엽록체와 공생하게 되면서 식물의 조상은 우리 동물의 조상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동물은 움직이면서 돌아다니지만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 식물 세포는 확실한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세포벽을 만들었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세균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세포벽은 방어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동물 세포에는 벽이 없지만 식물 세포에는 벽이 있다.

 

균류는 진화 과정에서 엽록체를 가지지 못한 채 식물 세포와 이별한 생물 중 세포벽을 가진 존재다. 고대 지구에는 산소라는 물질이 없었다. 당시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였다. 그런데 27억년전에 갑자기 산소라는 맹독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이를 대산화(大酸化) 사건 또는 산소 대폭발 사건이라 부른다. 이 사건은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라는 세균의 출현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산소 농도가 상승함에 따라 지구상의 생물이 멸종한 사건을 산소 홀로코스트라 칭한다. 산소는 독성이 있는 대신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평화롭게 지내던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산소로 가득 찬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산소로 가득 찬 지구상의 생물은 산소라는 맹독을 내뿜는 식물의 조상인 괴물과 그 산소를 이용하는 동물의 조상인 괴물로 양분되었으며 이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57 페이지)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들어 낸 산소는 바다 속에 녹아 있던 철이온과 반응해 산화철을 만들었다. 산화철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지각 변동이 일어나자 산화철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철광상이 후에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득한 시간이 흐른 후 인류가 출현했다. 인류는 철광상에서 철을 얻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철을 사용해서 농기구를 만들어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켰고 철을 사용해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켰다. 이 모든 것이 시아노박테리아 때문이다.(58 페이지) 산소가 자외선을 만나면 오존이 된다. 오존은 자외선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바다속에 있던 시아노박테리아는 식물의 조상과 공생하여 식물이 되어 지상으로 진출했다.(59 페이지) 7억년전 눈덩이 지구(스노볼 어스)가 끝난 후 지구에 번성했던 다세포 생물을 에디아카라 생물군이라 한다. 스노볼 어스 직후 갑자기 다세포 생물이 출현했다. 얼어붙은 지구에서 생명은 극히 한정된 장소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겨우 살아남은 집단에서 여러 가지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집단 속으로 널리 퍼진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숨을 죽이고 있는 작은 집단 속에 다양한 유전적 변이가 축적되었을 것이다. 생명은 최초의 스노볼 어스 이후 진핵생물이 되었고 두 번째 스노볼 어스로 다세포 생물로 진화했다.(87 페이지) 스노볼 어스로 폐쇄된 환경에 있었던 생물들은 작은 집단 속에서 유전적 변이의 다양성을 축적해 갔다.

 

이렇게 축적된 변이가 다세포 생물의 급격한 진화를 이끌어 에디아카라 생물군을 낳았다. 이후 캄브리아 폭발로 이어져 새로운 생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번성했던 에디아카라 생물군도 캄브리아기가 시작되자 멸종했다. 이유는 불명이다.(94 페이지) 캄브리아 폭발로 새로운 생물이 출현한 것은 생물 세계에서 포식이 시작됨에 따라 야기된 것으로 짐작된다. 캄브리아 폭발 시기에는 다른 생물을 먹이로 삼는 포식자가 출현했다.

 

이로 인해 공격하는 자와 방어하는 자의 군비경쟁이 시작되었다. ‘눈(eye)’의 출현이 군비경쟁을 치열하게 했다. 땅 위라는 신천지를 얻은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였을까. 이들의 조상은 바다에서 생존 경쟁에서 패하여 기수역(汽水域)으로 진출한 물고기들이었다. 싸움에서 계속해서 패배한 물고기는 결국 강 상류를 서식지로 삼았다.

 

강을 서식지로 삼은 물고기들 중에서 작은 물고기는 민첩하게 헤엄치는 실력을 키웠다. 반면 빨리 헤엄칠 수 없는 느린 대형 어류는 물이 얕은 곳으로 쫓겨났다. 강 상류로 쫓겨난 물고기가 결국 땅 위로 상륙해서 양서류가 되었다. 이 양서류는 파충류와 공룡, 조류, 포유류의 조상이 되었다.(108 페이지)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뒤 그들은 줄곧 바다속에서 살았다.

 

5억년전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맨틀 대류가 일어나 거대한 대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다에서 살던 생명은 이 광활한 개척지를 목표로 삼았다. 펼쳐진 대지에 최초로 진출한 것이 식물이다. 지금의 육상 식물의 조상은 조류(藻類)의 일종인 녹조류다. 광합성을 하는 녹조류에게 빛을 마음껏 쬘 수 있는 육지는 매력적인 환경이었다.

 

다만 육지는 생물에게 유해한 자외선이 쏟아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식물 스스로의 작용으로 개선되었다. 바닷속에 있는 식물들이 방출하는 산소로 인해 상공에 점차 오존층이 만들어졌다. 고생대 실루리아기인 4억 7천만년전 식물이 상륙했고 데본기인 3억 6천만년전 양서류의 조상인 어류가 상륙했으니 식물이 1억년 이상 빨리 상륙한 것이다.(117 페이지)

 

최초로 상륙한 식물은 이끼식물을 닮은 식물이었다. 이끼는 몸의 표면으로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한다. 이는 물속의 녹조류와 같다. 이끼는 따라서 몸 주변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물가에서만 자랄 수 있었다. 그 후 육상생활에 적합하도록 더욱 진화한 것이 양치식물이다. 양치식물은 줄기를 발달시켰다. 물속에서는 몸을 지탱해주는 구조가 필요 없었지만 육지에서는 몸을 지탱하기 위한 튼튼한 줄기가 필요했다.(117 페이지)

 

양치식물은 건조한 환경을 견딜 수 있도록 체내 수분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표피를 발달시켰다. 표피를 발달시키면 수분이 체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수분을 흡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양치식물은 수분을 흡수하기 위한 뿌리와, 뿌리로 흡수한 수분을 몸속으로 전달하기 위한 통로 역할을 하는 헛물관을 발달시켰다. 관다발을 발달시켜 몸속에 물을 효율적으로 운반함으로써 양치식물은 가지를 무성하게 만들 수 있었다.

 

가지가 무성해지면 잎이 많이 달려서 광합성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양치식물은 거대하고 복잡한 몸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118 페이지) 최초의 식물이 육지에 진출했을 때 흙은 없었다. 단지 모래와 돌로 이루어진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생물 사체 같은 것이 분해되어 흙이 되었다. 유기물이 풍화한 암석과 섞여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영양분을 함유한 흙이 되었다. 양치식물은 흙을 기반으로 서식지를 넓혀갔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뿌리를 가지게 되었다. 양치식물이 물가에서 분포를 넓혀가자 당시까지 물가에서 살았던 양서류는 공룡의 조상인 파충류로 진화했다.(123 페이지) 양치식물이 번성하게 되자 육상에는 풍부한 생태계가 구축되었다. 양치식물이 진화하면서 분포를 넓혀 식물의 양과 종류가 늘어나자 식물을 먹이로 삼는 다양한 파충류도 종류가 늘어났고 초식 파충류를 먹이로 삼는 육식 파충류도 발달했다.

 

양치식물은 육상으로 진출했으나 수정(受精)을 해서 자손을 남겨야 했기 때문에 물가를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양치식물은 포자로 이동한다. 포자가 발아해서 전엽체가 형성된다. 전엽체 위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지고 정자가 물속을 헤엄쳐 난자에 도달해서 수정한다. 정자가 헤엄쳐서 난자에 도달하는 것은 생명이 바다에서 탄생했음을 알게 하는 단서다. 지상에 진출한 양치식물도 정자가 헤엄칠 물이 필요했기에 습지에서만 자랐다.

 

양치식물이 이루지 못한 건조 지역 진출을 이룬 것이 겉씨식물이다. 겉씨식물이 출현한 것은 5억년전인 고생대 페름기다. 양치식물이 건조한 지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은 씨앗을 발명했기 때문이다.(125 페이지) 씨앗은 바람의 도움을 받아 물이 있는 장소까지 도달할 수 있다. 포자는 종자식물의 꽃가루에 해당한다. 꽃가루는 정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세포를 만든다.

 

정세포는 정자와 비슷하지만 헤엄치는 편모를 가지고 있지 않아 정세포라 불린다. 꽃가루는 밑씨와 만나 종자를 만든다. 종자가 될 밑씨에 꽃가루가 닿으면 꽃가루관이라는 관이 암술 속으로 뻗쳐진다. 정세포가 꽃가루관을 타고 내려가 밑씨 안의 난세포와 수정한다. 이런 방법에는 물이 필요하지 않다. 이런 까닭에 종자식물은 물이 없는 건조지대로 분포를 넓혀갔다.

 

양치식물은 한 번(포자로) 이동하지만 종자식물은 두 번(꽃가루와 씨앗으로) 이동한다. 양치식물의 포자에는 암수 구별이 없지만 꽃가루는 번식할 때 수컷 역할을 한다. 꽃가루가 멀리 이동함으로써 더 다양한 개체와 교배함으로써 다양한 자손을 남겼고 진화의 속도도 가속화할 수 있었다. 겉씨식물이 진화하게 되자 다양한 공룡이 탄생했다. 빠른 속도로 진화를 이룬 겉씨식물은 초식 공룡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공룡도 거대화되었다. 겉씨식물과 공룡이 거대화 경쟁을 하면서 거대한 겉씨식물로 이루어진 숲과 거대한 공룡을 주인공으로 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127 페이지)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빅 파이브라 한다. 네 번째 대멸종인 트라이아스기 멸종은 거대 초대륙 판게아가 분열해 땅속에서 대량으로 토출(吐出)된 이산화탄소와 메탄으로 인해 지구 온도가 상승한 결과다.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이산화탄소가 대기를 가득 채워 산소 농도가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저산소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키운 파충류가 번성하면서 공룡으로 진화했다. 6500만년전인 백악기에 다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났다.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 반도 앞바다에 운석이 충돌해 공룡이 대거 사라졌다. 당시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생물이 있다. 생존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공룡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제한된 곳에서 살던 패자들이란 점이다.

 

과거의 대멸종은 화산 폭발이나 운석 충돌 등 물리적 현상으로 인해 발생했다. 하지만 여섯 번째 대멸종은 생명체인 인류에 의해 시작되었다.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기 전부터 공룡은 식물 진화로 인해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겉씨식물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쥐라기 숲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꽃이 없었다. 쥐라기부터 중생대 말기 백악기에 걸쳐 꽃이라는 기관을 발달시킨 속씨식물이 출현했다.

 

속씨식물은 속도를 무기로 번성해갔다. 밑씨가 씨방에 싸이게 된 것은 혁신적인 사건이다. 밑씨는 씨방 속에 싸여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수정 속도도 빨라졌다. 씨방이 없는 겉씨식물은 꽃가루가 암술에 도착한 후 1년을 기다려야 수정이 완료되지만 씨방이 있는 속씨식물은 꽃가루가 암술에 도착한 후 24시간 이내에 수정이 완료된다.(143 페이지) 진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속씨식물은 아름다운 꽃을 가지게 되었다.

 

식물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곤충을 불러들여 꽃가루받이를 시키기 위해서다. 겉씨식물은 풍매화(風媒花)다. 꽃을 아름답게 장식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꽃잎을 장식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많은 꽃가루를 만드는 것이 낫다. 바람에 꽃가루 받이를 맡기면 수꽃에서 암꽃으로 꽃가루가 도착할 확률이 낮다. 겉씨식물에서 진화한 속씨식물도 처음에는 풍매화였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게 되었다.

 

식물은 곤충의 먹이로 줄 달콤한 꿀도 준비하고 좋은 향기를 풍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곤충을 불러들였다. 식물은 초식 공룡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다양한 궁리를 했을 것이다. 알칼로이드라는 독성 화학물질을 몸에 지닌 것이 대표적인 예다. 소화 불량 또는 중독으로 공룡에게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속씨식물은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로 나뉜다.

 

식물이 풀로 진화했다는 것은 외떡잎식물로 진화했다는 의미다. 오늘날에도 외떡잎식물은 모두 풀이다. 외떡잎식물이 된 것은 불필요한 것은 모두 버리고 복잡한 구조를 단순화한 것이다. 속씨식물은 극적인 진화과정에서 열매도 발달시켰다. 공생하기 위해서였다. 씨방을 먹은 포유류가 씨방 속 씨앗을 체외로 배설해서 결과적으로 씨앗이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열매를 먹고 씨앗을 옮겨준 최초의 동물은 포유류였다. 포유류는 이빨이 있어 씨앗을 부술 우려가 있다. 조류는 이빨도 없고 하늘을 날기에 이동 거리도 길어 식물에게는 최적의 파트너다. 식물은 씨앗이 성숙해지기 전에 먹이가 되지 않도록 덜 익은 열매는 잎처럼 녹색으로 만들어 눈에 띄지 않게 했다. 쓴맛으로도 열매를 지켰다. 식물은 곤충을 이용하게 되었다.

 

곤충을 위해 달콤한 꿀을 준비한 것이다. 얄미운 적이었던 곤충을 교묘하게 동료로 만든 것이다. 꽃도 열매도 백악기에 발달했다. 새도 곤충도 꽃가루나 열매를 먹으려고 꽃으로 접근한 것이지만 식물은 그들을 파트너로 만들었다. 운석이 지구를 폭격한 후 공룡이 멸종했고 지구 기후가 한랭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위에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나뭇잎을 떨구는 것이다.

 

식물에게 잎은 광합성을 위해 필수적인 기관이다. 하지만 잎을 통해 수분이 증발한다. 운석 충돌로 발생한 대량의 먼지가 대기권으로 올라가 햇빛을 차단하자 식물의 광합성 활동이 감소했다. 기온이 내려가면 물기나 영양분을 흡수하는 뿌리의 기능이 둔화되어 물의 양이 부족해진다. 광합성 능력은 저하되고 잎의 증산 작용으로 귀중한 수분은 낭비되는 상황이라면 잎은 짐이 된다. 그래서 잎을 떨어트리게 되었다.

 

떡갈나무, 녹나무 등은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나무를 상록수(常綠樹)라고도 하고 조엽수(照葉樹)라고도 한다. 잎의 표면에 광택이 나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큐티쿨라(cuticula; 각피; 殼皮)라는 왁스층으로 두껍게 코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큐티쿨라가 수분 증발을 막아준다. 니치(niche)라는 말이 있다. 생태 지위(서식지), 틈새시장, 벽감(壁龕) 등을 의미한다. 생태학에서는 당연히 서식지를 의미한다.

 

니치는 단순히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장소라고 해도 먹이가 다르면 니치를 나눌 수 있다. 사는 계절이 달라도 니치를 나눌 수 있다. 장소와 먹이를 변화시켜 공존하는 것을 서식지 격리라고 한다. 하나의 니치에는 하나의 종만이 살 수 있기에 넘버원이 아닌 것들을 다 사라져야 하지만 자연계에는 많은 생물이 존재한다. 니치를 확보한 생물종이 현재의 니치 주변에서 새 니치를 찾는 것을 니치 시프트라고 한다.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하늘을 난 생물종은 곤충이다. 고생대에 거대 곤충이 활약한 것은 산소 농도 때문이다. 석탄기에는 식물이 말라도 그것을 분해하는 균류가 별로 없었다. 이렇게 해서 수목이 화석화된 것이 석탄이다. 지층에 석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석탄기(the Carboniferous period)라 한다. 균류가 활발하게 움직이자 식물을 분해하면서 산소를 소비해 산소 농도가 저하되었다.

 

저산소 시대에 적응해 번성한 생물이 공룡이다. 기낭(氣囊)을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폐의 앞뒤에 붙어 있는 기낭은 공기를 비축하고 내보내는 펌프 같은 역할을 한다. 공룡 중에서 날개를 진화시켜 능숙하게 비행한 것이 조류다. 익룡에게 하늘을 빼앗긴 조류들이 힘으로 지배하는 경쟁에 참여하지 않고 익룡과 니치를 나누기 위해 소형화되었다. 그 결과 새의 종류가 증가했다.

 

새는 기낭을 가지고 있어서 높은 하늘까지 날 수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물의 진화과정은 수수께끼다. 곤충도, 새도, 박쥐도, 어떤 생물도 어떤 진화과정을 거쳐 날개를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날아다닐 수 있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텐데 중간 단계의 생물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다.(199 페이지)

 

“새는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날려고 하고, 황소는 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받고자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리라.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황소는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뿔을 갖게 되었고, 새는 먼저 날기를 원하였기에 날개를 갖게 되었고 그래서 날았다.”는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포유류 중 수관(樹冠)을 니치로 삼은 것이 원숭이다. 포유류 중에서 유일하게 붉은 색을 볼 수 있는 동물이 원숭이다. 과일을 먹기 위해 잘 익는 과일 색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아니면 붉은 색을 볼 수 있어서 과일을 먹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 조상들은 새와 마찬가지로 잘 익은 붉은 과일을 인식하고 과일을 먹이로 삼게 되었다.(205 페이지) 볏과 식물은 초식 동물이 먹기 힘들게 하기 위해 규소로 뻣뻣한 잎을 만들었다.

 

규소는 유리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하는 단단한 물질이다. 규소는 흙 속에 다량으로 녹아 있어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볏과 식물의 출현으로 먹이를 먹지 못하게 된 초식 동물들은 대부분 멸종한 것으로 추측된다. 볏과 식물은 먹이로 적합하지 않다. 이에 소, 말 등의 초식동물이 생각해낸 것이 여러 개의 위를 갖는 것이다.

 

소의 경우 첫 번째 위는 용적이 커서 먹은 풀을 저장할 수 있다. 미생물이 작용하여 풀을 분해해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발효조이기도 하다. 두 번째 위는 반추(反芻) 위다. 세 번째 위는 첫 번째 위와 두 번째 위로 먹이를 되돌려보내거나 네 번째 위로 먹이를 내보내는 등 먹는 양을 조절하는 곳이다. 네 번째 위는 위액을 분비해 먹이를 소화시킨다. 영양가가 거의 없는 볏과 식물만 먹는 것치고는 소나 말의 몸집이 크다. 발달한 내장을 가지기 위해 용적이 큰 몸이 필요했다.

 

패자(敗者)였던 호모 사피엔스는 뇌가 작지만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는 소뇌가 발달했다. 그들은 도구도 이용했다. 네안데르탈인도 도구를 사용했지만 살아가는 힘이 뛰어나 집단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거나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져도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물이 넘버원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넘버원이 살 수 있는 장소를 니치라고 한다. 니치는 그 생물만 존재하는 온리원의 장소다. 모든 생물은 온리원이며 넘버원이다. 지구 어딘가에 니치를 찾을 수 없었던 생물은 멸종했다. 다양성이 중요하다.

 

인간의 뇌는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구별해서 단순화해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것을 단순화해서 평균화하거나 순위를 매겨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뇌의 특성상 비롯되는 편의적인 것일 뿐이다. 세상은 더 다양하고 풍부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의 생존전략 3부작 중 한 권인 ‘속이고 이용하고 동맹을 통해 생존하는 식물들의 놀라운 투쟁기’를 부제로 한 ‘싸우는 식물’을 읽어야겠다. 이 책은 3부작의 첫 권이자 우리가 수동적이고 정적인 것으로만 인식하는 식물의 놀라운 역동성과 치열함을 알 수 있는 책이다. 큰 틀에서 보되 세밀한 부분까지 아우르기, 내가 저자로부터 배운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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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나와 결혼할까? -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응원해
후이 지음, 최인애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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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나와 결혼할까?’는 “많이 배운다고 저절로 품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식에 자기 수양이 더해질 때 비로소 품위가 생긴다.”는 말로 눈길을 끄는 책이다. 저자는 평생 작은 마을에 살았어도 점잖고 예의 바르며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어도 공공장소에서 금연할 줄 아는 사람보다 훨씬 품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평생 반려자를 찾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품위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품위는 지식에 더해진 배려심에서 나오리라. 저자가 말하는 품위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구분선이다. 품위 있는 사람은 반성할 줄 알고 예의를 지킬 줄 알며 쉽게 흥분하지 않고 자기 고집에 매몰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적절하게 행동하고 늘 여유 있고 넉넉하며 마음은 선의와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지인(知人)인 지연이라는 여자에게 “네가 남자라면 너랑 결혼할래?”란 말을 했다. 지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자는 “한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하기로 했다면 어느 정도는 서로 양보해야 해”라고 말했다. 저자는 파격적인 말도 한다. 애정의 세계에서 미냥 상대가 먼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파티에서 누군가 술을 권할 때까지 빈 술잔을 들고 어색하게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나연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마음대로 사랑한 건 나니까 너는 네 마음대로 해“ 저자는 상대를 인정하면 까다롭게 굴 일이 없다고 말한다.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 수준의 적절한 인정은 불필요한 갈등과 다툼을 피할 수 있는 합리적 후퇴이기도 하다.“(90 페이지) 같은 말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한다고 해서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친화력에 대해서도 말한다. ”친화력이 좋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절대적 무기는 아니다. 친화력이라는 무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내가 생각하는 거리와 상대가 생각하는 거리가 일치할 때뿐이다.”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합리적으로 얻을 권리가 있지만 좋은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이 받아도 되며 그들은 그것을 받을 만하다고 말한다.(185, 186 페이지)

 

본문에 한 할머니가 한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걸 봤을 때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고,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그 자리를 떠야 하는 거다. 남의 힘든 꼴을 구경거리 삼거나 더 번거롭게 만드는 것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저자의 글을 통해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인간됨을 가르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됨을 실천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알았다.

 

저자는 전자들은 세상을 티끌만큼도 나아지게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213 페이지) 책의 마지막 파트는 흥미롭다. '어느 여행에서 일어난 일'이란 제목의 글이다. 많은 것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해준 책 '나라면 나와 결혼할까?'를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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