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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도덕을 말하다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6 Vol.6 스켑틱 SKEPTIC 6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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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PTIC vol 6’에서 눈에 띄는 기획은 ‘음양오행과 사주‘ 특집이다. 두 편의 글이 실렸는데 하나는 ’음양오행이라는 거대한 농담’이고, 다른 하나는 ‘역법이 달라지면 운명도 달라지나’이다. 앞의 글은 10여년에 걸쳐 사주, 풍수, 주역을 공부한 이지형이란 분의 글로 필자는 ‘강호인문학’, ‘사주 이야기’,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 등을 쓴 저술가이다. 두 번째 글인 ‘역법이 달라지면 운명도 달라지나’는 필자가 천문학 박사이기에 역법의 허술한 면모를 비판하는 것을 놀랍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10년간 사주, 풍수, 주역을 공부한 분의 글은 무게감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안상현이란 분의 글과 이지형이란 분의 글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자의성(恣意性)이란 단어이다. 자의성이란 일정한 원칙이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함을 의미한다. 가령 “왜 주역의 15번째 지산겸 괘(卦)가 겸손을 뜻하는 겸의 괘여야 하며, 이 괘의 5번째 효(爻)에 관한 해설이 침범하는 게 이롭다는 것은 복종하지 않는 지역을 징벌한다는 뜻이 되어야 하는지 음양적 근거 따위는 없다.”는 글(이지형), “역주는 자의적일 수 밖에 없다.”(안상현) 등의 글을 보라.


안상현 교수는 납일(臘日)을 예로 든다. 납일은 동지(冬至) 후 셋째 미(未)가 들어간 날이다. 그런데 왜 미로 했는가는 자의적이다. 조선은 동방에 있으므로 목(木)이고 오행상 목은 십이지의 미(未)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납일은 반드시 12월에 들어 있어야 하기에 두 번째 미일이나 네 번째 미일을 납일로 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의성이란 말을 우리는 어디서 의미 있게 만나는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글을 통해 만난다.


가령 체온이 일정한 척추동물인 날짐승을 새(bird)라 부르는 데에는 필연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자의성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런 날짐승을 새가 아닌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사주, 주역 등에 관한 필자(이지형)의 개인적 느낌 또는 사고의 변화를 반영한 글이 포함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점이다.


평생 주역을 공부했지만 점을 치는 용도로 주역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 다산 선생의 경우도 점을 친 것으로 볼 만한 사례가 있었다. 관건은 점을 친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주역을 철학으로 활용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가를 묻고 싶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익히는 데에 굳이 주역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이 든다.


그런 차원의 진리는 주역 외의 것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주역은 공부할 가치가 있다. 나의 경우 주역은 글감의 소재이다. 시경(詩經), 서경(書經)과 함께 3경(經)에 드는 주역은 동아시아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사유 체계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전과학 시대의 담론도 때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학과 함께 참고하고 의미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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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인문학의 대화 - 철학사적 조망
황수영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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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철학은 참 지식 즉 에피스테메(episteme)와 억견(臆見: doxa)의 구분이다. 에피스테메는 엄밀한 근거로부터 얻은 지식을 말하고 억견은 그럴 듯한 의견들을 말한다.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과의 관계이다. 중요 부분이었던 자연학이 빠져 나간 것을 계기로 철학은 자연세계를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 아닌 자연을 인식하는 인간의 정신을 탐구하는 학문이 되었다. 나는 철학을 과학의 종합으로 보는 프랑스적 전통을 바람직하게 본다. 아니 편하다고 해야 할까?


오늘날 철학은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지만 지혜를 사랑하는 정신, 반성과 비판 정신 등을 공통 요소라 할 수 있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같은 존재에 관한 물음은 철학 고유의 것이다. 동양에서 인문학과 철학은 분리되기보다 연속선상에서 다루어졌다. 반명 서양 가령 플라톤에게 철학은 참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되었던 데 비해 인문학적 영역에 속하는 것들은 가변적 인식 세계를 대상으로 한, 진리의 불완전한 모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철학과 인문학은 밀접한 상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철학은 믿었던 장남(자연과학)에 버림받고 차남(사회과학)에게도 멸시받으며, 애초에 무시했던 딸(인문학)에게 얹혀 사는 형국이 된 것“이란 저자의 말은 그래서 시의적이다. ‘주역(周易)’의 비괘(賁卦: 64 괘 중 스물 두 번째 괘)에 ”천문을 살펴 계절의 변화를 알아내고, 인문을 살펴 천하의 변화를 이룬다“(관평천문觀平天文 이찰시변以察時變, 관평인문觀平人文 이화성천하以化成天下)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인문의 어원이다.


인문학은 인간현상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움, 인간적인 것 등의 이념으로 인간적 사실을 대하고 판단한다. 가치판단을 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비판정신이 결여된 인간다움을 비판적으로 본다. 인문학은 인간이 대상이자 주체인 학문이다. 과거 내가 큰 관심을 기울였던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는 인간이 역사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를 해체하고 인간이 가진 타자성, 무의식, 감성과 욕망의 영역에 눈을 돌리는 학문이다.(42 페이지)


문화는 자연과 대립적인 개념이다. 자연과학의 성립에도 문화적 요소가 있다. 자연과학은 과학자 집단이 근거한 기존의 학문 풍토 즉 언어, 학문하는 방식, 세계관 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그 학문풍토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서의 자연과학을 대상으로 삼되 그것이 형성된 배경, 성립조건, 철학적 전제 등을 문제 삼는다. 사회과학이 일정한 객관적 법칙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인문학은 객관적 사실의 탐구가 아니라 그 객관적 사실과 인간의 관계에 따른 의미를 찾는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대한 공자는 인문학의 대표 사례라 할 만하다. 인문학의 위기는 사실상 과학이 될 수 없는 인문학에 과학의 특성을 요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인문학은 효율성이나 엄밀성 면에서 과학에 뒤질 수 밖에 없다. 나도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내가 즐겨 읽는)의 경우 엄밀한 뇌과학의 결여로 인해 객관적 학문이라 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인문학은 실증적이고 과학적이기보다 비판적 이성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계의 통일적 이해에 도움이 되는 독자적 방법이어야 할 것이라 말한다.(46 페이지) 인문학은 순수하다. 순수하다는 것은 대상을 설명하고 이해할 때 인간적 이해관계나 감정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는 것, 초자연적 지배자와 같은 비합리적 원인을 거부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이 말을 생각하며 이성(理性)에 대해 숙고해보자. 이성은 외적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신의 고유한 능력인 논리적 추론이나 직관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60 페이지)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주장했다, 이데아는 그 자체로 존재하며 일체의 경험적 지식들의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다. 칸트는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수학적 인식의 모델로 이성의 절대성을 주장한 합리론에서 지식의 형식적 측면을, 감각적 경험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인식자료로 보는 경험론에서는 지식의 내용(재료)적 측면을 취하여 이들을 토대로 종합적 판단을 구성했다.


칸트에 있어 인식은 감각을 토대로 형성되지만 감각은 그것만으로는 어떤 질서도 없는 무규정적인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주관 속에 있는 선험적 감성형식에 의해 비로소 경험으로 성립한다. 또한 감성의 표상들은 지성의 선험적 형식들에 의해 개념화될 때만 인식의 대상으로 성립한다.(89 페이지) 중요한 것은 인간의 초월적 주관 속에 선험적으로 있는 감성과 지성이라는 두 형식이다.


칸트에게서 지성과 이성은 구분된다. 지성이란 데까르트의 절대적 이성의 개념에서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측면을 말하고, 이성은 지성에 의해 사유된 것들을 종합적으로 통일하는 능력을 말한다. 저자는 인본주의적이란 말을 인간에 관한 문제들을 과학적 방법으로는 다룰 수 없다고 주장하며 독자적인 이론과 방법을 제시하는 모든 흐름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다.(107 페이지)


해석학(解釋學)의 출발점은 심리적 기술이 아니라 개인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행동하는 데서 나오는 직접적 체험이다.(112 페이지) 직접적 체험이란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반성적 내용 즉 사유된 것이 아니라 반성 이전의 삶과 행동 그 자체이며 시간 속에서 일회적으로 일어나는 개별적 경험으로서 인간의 삶에서 일차적으로 주어진 것을 말한다. 후썰은 선입견에 물든 모든 입장을 배제하고 직접적으로 명증한 의식 안으로 들어가서 순수한 사태 그 자체를 직관할 것을 주장했다.


직접적 의식이 명증한 것은 외적 지각이 언제나 음영과 함께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의식 안에서는 대상이 전체성 속에서 남김 없이 파악되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이나 과학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들의 근본 전제를 문제삼고 이를 생성의 형이상학으로 대체한 베르그손을 빼놓을 수 없다. 베르그손의 형이상학은 고정적이고 부동하는 본질의 세계에서 의미를 찾는 전통 형이상학이 아닌 운동과 변화, 생명과 시간을 전면에 내세우는 형이상학이다.


고전역학은 운동과 변화를 위치이동으로 간주하고 수학적 법칙으로 파악하는데 그것은 시간의 질적인 측면을 사상(捨象)하는 데서 성립한다. 의식 상태의 지속은 현재의 고유성에 과거 전체가 함께 어우러져 생성되는 새로움 자체이며 표면상의 자기동일성에도 불구하고 심층에서는 개별성, 특이성, 고유한 차이들을 간직하고 있다.(125 페이지) 베르그손 이래 그의 영감(靈感)을 취하는 프랑스 철학은 문학, 예술 및 여타 학문적 활동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학문간의 위계를 허무는데 이는 철학과 인문학이 분리된 고전적 학문풍토에서는 볼 수 없는 인문주의적 학풍의 등장을 예고한다.(126 페이지)


베르그손에서 경험은 좁은 의미의 감각 경험이 아니라 의식의 총체적 체험이며 사실의 직관이라는 그의 철학적 이상과 맞물려 과학과 철학을 매개한다. 베르그손은 물리적 환원주의를 거부하지만 인간의 독자성을 강조하기보다 존재자들의 다양성과 차이들을 긍정하고 개별 학문들의 독자적 존립 가능성을 시사한다.(134 페이지) 해석학, 현상학,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의 인본주의적 입장은 주체의 역할을 너무 강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 목적, 역사, 윤리 등의 인간적 가치들에 치중한다.(135 페이지)


구조주의는 계몽주의나, 헤겔, 마르크스의 역사관에서처럼 하나의 보편적 이념에 의해 역사가 인과적이고 일직선적인 흐름으로 진행된다고 보지 않는다. 구조주의는 이성적 주체와 동일성의 원리를 포기하고 각 문화현상이 갖는 독특한 구조에서 출발하여 각각의 특이성이 다른 것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탐구한다. 물론 구조주의는 인류가 가진 보편적 사고구조를 부인하지 않는다. 구조주의는 요소들간의 관계들의 체계를 조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철학과 인문학의 형성기에 있었던 대립은, 철학이 자연과학에서 나타나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이념을 공유한 반면 인문학은 인간과 사회의 가변적인 모습에 관심을 두었던 데서 유래한다.(161 페이지) 인문학적 탐구는 어떤 방향을 취하건 간에 철학적 입장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없다. 현재 철학은 인문학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오늘날 철학을 인문학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것은 보편화된 경향이다. 물론 철학과 인문학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과 긴장이 엄존한다.(164 페이지)


저자는 문제들은 곳곳에서 서로 관통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핵심적인 빛나는 지점들을 찾아내기란 진실로 쉽지 않은 일이라 말한다.(220 페이지) 문제들이 곳곳에서 서로 관통하고 있는데 어떤 핵심적인 빛나는 지점들을 찾아내기란 진실로 쉽지 않은 일이라 했다면 좋았을 문장이다. 저자는 인문학의 역량은 자유로운 유희에 있지 않을까?란 말을 한다.(221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남는 것은 역사이고 역사는 우리에게 인내와 관용을 가르쳐준다. ”철학적 진지함도 이 역사 속에서는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22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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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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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헌학 박사 배철현 교수 님의 ‘심연’은 찾음(모색)에 대한 지혜를 주는 책이다. 가령 저자는 열정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라 정의한다. 이 열정이 내면 가장 깊숙한 곳 즉 심연으로 가는 지표이다. 깨어 있음도 찾음의 차원에서 논의된다. 나의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란 존재가 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인간이기를 그치고 자신을 깊이 응시하며 새롭고도 놀라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선 조앤 롤링(‘해리 포터’작가)도 저자의 문제의식에 잘 들어맞는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 결정적 순간이 진실에 가깝게 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천재란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이 있음을 믿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찾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일생 동안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리멘(limen) 아래에서(sub) 자신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 속에서 최선의 것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인 천재는 숭고(崇高: sublimation)하다. 천재가 되려면 우선 명상적이고 성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심연’이 말하는 천재란 독창적인 사람, 지혜와 영감으로 빛나는 사람이다. 극장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시어터(theatre)는 무대에서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고민하는 자신을 관조(觀照)하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는 비상식적으로 느껴지는 사례가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있었다.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의 일가친척을 죽인 적인 크세르크세스와 함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관조적인 삶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나는 이 부분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근거가 불충분하다.)


저자는 유대 지식인이 창조하다를 뜻하는 바라(bara)라는 히브리 단어로 ‘창세기’ 1장을 서술한 것을 설명하며 오늘날 그 의미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핵심을 찾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지적한다.(창조란 무에서 유를 낳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핵심을 찾아가는 것이다.) 1세기의 수사학자인 롱기누스에 의해 처음 언급된 숭고(崇高)는 독자들을 이성의 경계를 넘어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곳으로 인도하는 수사학적인 힘’이다. 이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서 인간의 감성과 연결된 반응으로 바뀌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대한 경험에서 발견되는 개념으로. 경외, 두려움, 공포에 대한 반응인 숭고. 숭고함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어느 순간 내가 없어져 무아 상태로 진입하고 오히려 그 대상이 나를 관찰하는 것을 이른다. 저자는 ‘반가사유상’ 앞에서 그것이 자신의 부산함을 관찰하는 듯 했다는 말을 한다. 저자가 말했듯 사유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를 인간이 극복해야 할 관습과 관행, 습관과 편견 등을 상징하는 존재로 본다.(167 페이지) 박상륭 작가가 ‘죽음의 한 연구’에서 외눈을 편견으로 설명한 것을 연상하게 하는 해석이다.


저자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새롭게 해석한다. 물론 두 갈래 길이 모두 좋아 보였다고 말한 시인에게서 단서를 얻은 것이기에 새로운 해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즉 시인은 어떤 것이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자기기만적으로 찬양하고 위안을 얻은 것이다. 프로스트의 시와도 통하는 내용이 진부함이란 말의 풀이이다. 서양인들에게 진부함이란 산 정상에 오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친 나머지 중턱에서 머뭇거리는 상태를 뜻한다.


진부함과 대비되는 참신한 삶은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삶이다. 저자는 우리는 종종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나와 상관없는 과거의 성인이나 철학자들이 남긴 이야기에 의지해 찾으려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내가 가야 할 길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심연’은 자신을 찾는 방법에 대한 책, 스스로 설 수 있는, 그리하여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책이다. 빛나는 잠언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그러나 결단을 촉구하는 무거운 책이다. 종교와 신앙의 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 저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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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 7대 조선 가마 편 일본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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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님의 ’일본 도자기 여행‘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도자기 전쟁‘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갈피갈피 일본의 도자기 명소를 찍은 화려한 사진들이 맛을 더한다. 저자가 논문이나 다큐멘터리 형식의 책을 쓰는 것을 넘어 엄청난 노력과 시간, 비용을 들이면서 방대한 도판을 곁들인 것은 그 노력이 우리 도자 산업에 대한 국민적 애정과 질책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도자기 전쟁‘이란 등식을 긍정한다. 일본은 조선을 침공하면 도공들을 생포해 올 것을 각 장수들에게 명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바탕에 도자기가 있다는 것, 일본 도자기가 한국에서 건너갔다는 사실에 자만심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면 우리 도자 산업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것 등이다. 왜란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만든 일본의 도자기들은 유럽으로 수출되어 막대한 부를 낳았고 이는 메이지 유신이 추진될 수 있는 자본이 되었다. 이 자본을 바탕으로 일본은 대한제국을 합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도자기의 운명이다. 메이지 유신 성공의 기반이 되었지만 후에 전국의 번을 현으로 바꾸는 폐번치현(廃藩置県) 정책이 펼쳐짐에 따라 다이묘(だいみょう: 10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일본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며 권력을 누렸던 영주)들이 영지를 반환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이 운영하던 전국의 관요(官窯: 어용 가마)들이 폐쇄된 것이다. 팔산(八山: 일본어로는 핫산)이란 이름이 있다. 경북 고령군 운수면 팔산리에 살다가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인 팔산은 1601~1602년 무렵 후쿠오카의 다카도리산 서쪽에 가마를 열어 일본 도자기의 시초가 되었다.


관요 폐쇄로 인해 벌어진 9대 팔산과 10대 팔산의 갈등은 한국 도자기의 역사, 그리고 예술의 위상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 살아남기 위해 가마에 불을 지피고 민간에서 쓰이는 자기라도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10대 팔산(아들), 대대로 현상물용 명기를 만들어 온 자부심으로 살아 왔기에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9대 팔산(아버지)... 9대 팔산은 뜻을 거스른 아들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유명(幽明)을 달리 했다. 작품전을 준비하던 10대 팔산은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60세에 숨을 거둔다.


1973년 서울 신세계 백화점에서 다카코리 세이잔 여사의 작품전이 열렸다. 초대 팔산 입장으로는 11대 후손 팔산인 세이잔 여사의 몸을 빌려 하게 된 375년 만의 귀국인 셈이다. 여사는 주최측이 제공한 비행기를 마다하고 부산행 배를 이용했다. 초대 팔산이 붙잡혀 온 길을 따라 감으로써 그 영혼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어서였다. 책의 부제는 ’규슈의 7대 조선 가마‘이다. 가라쓰(당진唐津)를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공의 전진기지였던 곳이다. 가라쓰의 원래 이름은 한진(韓津)이었다. 고대 가야 사람들이 처음 이곳과 교류하면서 한민족의 나룻터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본 도자기에 끼친 조선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가마는 사쓰마야키 가마이다. 정유재란 때 납치된 조선 사기장들에 의해 도자기의 요람이 된 곳이다. 심수관(沈壽官)을 빼놓을 수 없다. 사쓰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한 인물이 심수관이다. 심수관은 왜란 때 일본에 납치되어 간 조선인 도공 심당길의 후손이다. 심수관은 심수관가 15대를 총칭하는 말이다. 일본어로 아시데 가쿠(あして かく)라는 말이 있다. 발로 쓰라는 말이다. ’일본 도자기 여행‘은 그런 말을 붙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귀한 책이다. 아니 단지 열심히 발품을 팔아 낯선 일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수많은 사진을 찍고 글감을 건져올린 노고는 빛난다.


저자는 훗날 자신이 죽어 한 줌 흙이 되었을 때 어느 사기장이 그 흙으로 하나의 찻사발을 만들 수도 있을지니 그것이 바로 억겁의 인연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 도자기 여행‘이 자랑스러운 것은 메이지 유신과 관련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리타 및 사가 현이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밝힌 것이라 말한다. 그간 우리 학계는 아리타의 출발이 이삼평공(公)이었다는 사실 또는 일본의 본격적 도자 문화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사기장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아리타와 도자기가 한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도공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李參平)은 일본 아리타(有田), 이마리(伊萬里) 도자기의 비조(鼻祖)로 꼽힌다. 저자는 아리타 및 규슈 도자기의 의미는 조선 출신 사기장에 대한 연구만으로 종결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 일본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그래서 그것이 현대 일본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등의 총체적 관계를 모두 풀어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 역시 물꼬를 튼 저자의 연구가 후속 연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는 점에서 저자와 생각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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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98
호안 푸니에트 미로 지음, 이경자 옮김 / 시공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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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Joan Miro: 1893 - 1983)는 개인적 이름을 버림으로써 일반적 보편성을 얻는 과정을 통해 침묵 속에 숨어있는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 공백 사이에서의 형태, 익명성 안에서의 자기 자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개관 기념으로 Joan Miro, the parade of obsessions' 전을 개최한 경기도 미술관의 미로 도록(圖錄)에 인용된 미로의 말이다.


왜 강박(强拍) 또는 망상(妄想)일까?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침묵 속의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을 찾는 것은 일본의 유학자 오구라 기조가 말한 제3의 생명을 닮았다. 그가 제시한 제3의 생명이란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귀여운 몸짓, 더운 날 오후에 문득 느끼는 바람의 시원함, 꽃 한 송이가 서 있는 모습의 순진함.. 등이다. 기조가 말한 제1의 생명은 육체적 생명, 생물학적 생명을 말한다.


2의 생명은 비물질적 생명, 종교적 생명 등을 말한다. 미로의 경우 침묵 속에 숨어있는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 공백 사이에서의 형태, 익명성 안에서의 자신을 찾는 것과 강박성, 망상 등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것들을 강박적으로 추구했다고 하면 아귀가 맞는다. 도록에 의하면 미로의 작품은 11,000점 정도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전시회에 선보이는 미로 작품 수는 300점이니 고도로 압축된 비율의 수이다.


미로의 세 번째 손자인 호안 푸니에르 미로, 페르낭 브로델과 함께 일하기도 했던 글로리아 롤리비에르 라올라가 함께 쓴 미로: 추상과 기호의 장인은 미로에게 최초의 양식(糧食)과 색감을 부여한 것으로 카탈루냐와 마요르카 섬의 산을 꼽는다. 학생 시절의 미로는 점토를 반죽하고 축축한 덩어리를 잡아 누르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데생이나 회화에서 갖지 못했던 육체적 즐거움을 만끽했다. 미로 역시 고흐, 세잔, 쇠라의 작품 경향을 답습하다시피 한 시절이 있었다.


1918년 첫 개인전을 연 미로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당시 구매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미로는 동향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 - 1973)에게 늘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미로가 그린 포도나무 밑동은 미로 자신이 카탈루냐 땅에 쏟는 애착을 반영하듯 휘어져 있다. 이는 강박적인 애착의 결과이다. 28세에 연 첫 번째 국제전시회 역시 실패로 끝났다. 모색의 시기에 미로는 시가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회화를 뛰어넘는 곳으로 자신을 인도했다고 말했다.


미로가 기호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을 저자들은 그의 작품에 환상이 깃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한다. 미로는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등과 블로메가(: Rue Blomet) 그룹에 속했었다.(블로메는 프랑스의 지명이다.) 전쟁(스페인 내전: 1936 - 1939)이 미로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전쟁은 미로로 하여금 무의식을 그대로 옮겨놓는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 내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미로와 고흐에게 구두가 갖는 공통의 의미이다. 그것은 가난, 기아, 고통, 비극 등을 상징한다. 미로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같은 참여정신이 담긴 작품을 그리지 않은 것은 서술적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로는 여자, , 새 등을 그리는 데 강박적이었다. 미로가 에드가르 바레즈,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 지미 헨드릭스 등의 음악을 좋아한 것은 이채롭다. 미로는 지미 헨드릭스와 자신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로가 즐겨 읽은 문학작품들은 랭보, 아폴리네르, 로트레아몽 등의 것들이다. 미로는 그림과 시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미로는 청동검을 만들기도 했다. 숭배의 대상인 청동 여성상도 미로의 목록에 포함된다.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리고 있다.는 베르그손의 말이 생각난다. 미로의 추상 세계,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눈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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