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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프로이트도 놓친 꿈에 관한 15가지 진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무의식은 억압된 욕망이라는 프로이트의 명제를 반박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 있다. 프로이트 정도 되는 대가의 학설을 반박하려면 그 대상을 능가하는 내공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생물물리학 박사가 된 슈테판 클라인이 당사자이다. 저자는 꿈은 우리 의식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자 삶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무의식을 이야기하는 끝에 꿈을 언급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꿈꾸는 동안 능력이 확장되고 뇌가 변화한다. 우리 뇌는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우리가 잠들었을 때 뇌의 에너지 소비 총량은 겨우 10 퍼센트 줄어든다.) 한편 뇌파 패턴의 다양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수면이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잠을 자면서 무엇인가를 체험하는 것은 뇌의 타고난 기능에 따른 결과이다. 꿈은 가장 내밀한 체험에 속한다. 우리는 꿈의 대부분을 놓친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수면 중인 뇌의 화학적 조성이 장기 기억 수용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깨어나기 직전의 꿈을 기억한다. 저자는 꿈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수면 중 체험 자체, 그에 대한 기억, 신체적 과정 등.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정신분석가들은 기억을 해석했고 신경생물학자들은 뇌를 측정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중시하는 것은 꿈 당사자의 직접적 경험이다. 저자는 시상(視床)을 말한다. 척수와 이어진 뇌간 위에 올라탄 기관으로 호두 속살을 닮았다.


시상의 영어인 Thalamus는 안쪽 방, 침실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PGO()가 있다. 뇌간에서 발생해서 시상의 중계소에 갔다가 후두엽으로 흘러가는 뇌파이다. 이 파는 후두엽에 도달하는 동안 주위의 뇌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여러 기억이 축적된 곳에 자극이 가해지면 그것이 꿈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아리타 히데호. 선과 뇌50, 51 페이지) 저자도 PGO파를 이야기한다.(PPons 즉 뇌교/腦橋이고, GGeniculatum 즉 시상에서 시각의 중계 부위, OOccipital 즉 후두엽을 의미한다.)


(REM: rapid eyeball movement) 단계에서 뇌파의 파장이 짧아질 때 뇌간에서 대뇌를 향해 상승하는 특별한 유형의 전기 자극을 저자는 PGO파라 정의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 자극은 대뇌를 깨어 있을 때와 유사한 상태로 만드는데 시각피질의 일부와 수의(隨意)운동 담당 구역, 그리고 눈 주변 근육을 담당하는 구역이 활성화됨으로써 우리는 꿈을 꾸면서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스스로 달리고 기어오르고 날아간다고 믿는다. 꿈을 켜는 뇌간의 스위치는 몸에는 정반대의 역할(근육 마비 시킴)을 한다.(67 페이지.)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 이야기를 하자. 볼 수 없는 것은 자신을 사물에게서 멀어지게 했고 들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을 사람에게서 멀어지게 했다고 말한 헬렌 켈러는 꿈 속에서 진주 한 알을 유심히 관찰한 경험을 말한 바 있다. 헬렌 켈러는 꿈 속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들을 들었(다고 한). 1902년 출판된 자서전에서 헬렌 켈러는 자신의 정신이 잠의 장막을 관통하여 생애의 첫 시기에서 유래한 섬광을 보는 것이 아닐까, 란 자문을 했다.


저자는 꿈속에서 보거나 듣는 것은 명백히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만 그것이 회상일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하며 헬렌 켈러의 자전적인 글은 이 해석을 반박한다고 결론짓는다. 헬렌 켈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험이 있었다. 포르투갈의 수면의학자들이 선천성 시각 장애인 남녀 10명을 실험실에서 재우면서 거듭 깨워 그들이 무엇을 체험했는지 물은 결과 거의 모든 사례에서 그들이 꿈속 광경을 묘사했다.


그들의 보고에서 시각적 꿈의 빈도는 비장애인의 보고와 똑같았다. 피실험자들이 시각 장애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그 전문 평가자들은 비장애인의 보고와 장애인의 보고를 구별하지 못했다. 실험자들은 선천성 시각 장애인들이 자기기만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도 제시했다.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 역시 꿈속에서 광경을 본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뇌파가 관측되었다. 시각 장애인들이 꿈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인 그들이 그린 이미지는 당연히 기억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었다. 수면 중에는 눈 뿐 아니라 1차 시각피질도 작동을 멈춘다. 그러나 콜라주를 제작하고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연합영역들은 계속 작동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꿈속에서 본다고 믿는다. 회상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시각 장애인에게 시각 지각과 시각적 회상이 없어도 지식만을 원천으로 표상이 발생할 수 있다. 시각 장애인이 촉각이나 타인의 설명을 통해 지식을 얻으면 연합구역들이 이를 일종의 내면적 그림으로 번역한다.


영국의 인지심리학자 크리스 프리스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 지각은 현실에 부합하는 환상이라는 말을 했다. 콜롬비아의 뇌과학자 로돌프 지나스는 깨어 있음이란 감각이 정한 틀 안에서 작동하는 꿈 같은 상태일 따름이라는 말을 했다.(96 페이지) 꿈은 깨어 있는 삶의 왜곡된 반영이 아니라 뇌가 감각의 연속적인 점화에서 벗어나자마자 어떤 표상을 산출하는지 보여준다.(97 페이지) 저자는 기억을 최소한의 연출 지침만 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배우들이 공연 때마다 새롭게 창작하는 즉흥극에 비유한다.(106 페이지)


저자는 실제로 뇌에는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기억을 모아서 보관하는 필름이나 하드 디스크와 같은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별적인 감각 인상, 감정, 생각은 그것이 발생한 장소에 붙들린다는 것이다. 기억은 관계망의 형태로 조직된다. 기억이 우리에게 유용한 것은 오직 의미에 따라 정리되기 때문이다.(107 페이지) 프로이트와 앨런 홉슨 등 꿈 연구자들은 꿈을 광기의 일종으로 보았다. 물론 저자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꿈 속에서 논리적 사고가 행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잠잘 때 전전두엽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전전두엽은 계획하고 감독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꿈속 자아는 기본 입자로 분해된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이 통념 만큼 그렇게 탄탄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은 당황스러운 한편 해방의 체험이기도 하다.(133 페이지)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고요한 사건은 외면한 채 렘수면에만 집중해왔다.


꿈은 렘수면시에만 꾸는 것도 아니고 비논리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숙면 중에 의식이 규칙적으로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한다고 추측한다.(140 페이지) 꿈은 기억과 능력을 변화시키고 때로 성격까지 변화시킨다. 의식은 깨어 있음의 부속품이 아니다. 저자는 프로이트와 달리 무의식적 충동은 자동적인 행동 습관이지 억압된 감정이 아니라 말한다.(166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낮 동안에 자기 감정의 참된 기원을 모르는 채 생활(173 페이지)하고, 감정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일어날 수 있다(175 페이지)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진정한 꿈의 주체(꿈을 꾸게 하는 주체)는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이다.(179 페이지) 꿈꾸는 뇌는 모든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그에 어울리는 각각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는 교묘한 이야기꾼과 비슷하다.(183 페이지) 꿈을 설명하는 열쇠는 현재(라는 말)이다. 꿈 시험의 배후에는 억압된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숨어 있지 않다. 현재의 불안이 자신과 어울리는 기억을 불러낼 뿐이다.(183 페이지) 저자는 프로이트의 꿈 해석은 반박할 길도 없고 증명할 길도 없다고 말한다.(201 페이지)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잠든 뇌는 낮의 뇌와 다른 길을 가고 다른 법칙을 따른다.(201 페이지) 저자는 기억은 감정과 결합되어 있을 때만 우리의 결정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229 페이지) 숙면이 없으면 우리는 너무 적은 정보를 보유하게 될 것이며 렘수면이 없으면 정보가 아무 관련 없이 나열되어 가치가 없을 것이다.(230 페이지) 저자는 괴로운 체험에서 벗어나려면 기괴한 꿈들이 필수적이라 말한다.(24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악몽은 영혼이 건강을 회복하는 중임을 알려준다.


뇌는 수면 중에 감정과 장면 기억을 구분해서 처리한다.(247 페이지) 꿈꾸는 동안 특정 사건과 결부된 분노, 공포, 슬픔이 소거될 수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열심히 깨어 있음과 꿈 사이의 세계를 연구하고 작품에 반영한 인물이다. 놀랍게도 그는 한 차례도 자신의 꿈을 해석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의 시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로 떠오른 시대였다. 카프카가 해석을 거부한 것은 사건이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데 비해 해석은 그 직접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꿈은 그 자체로 영혼의 언어이므로 심리학적 번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저자에 의하면 꿈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가장 큰 선물은 꿈 그 자체이다.(310 페이지)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꿈은 인간의 상상력이 이룬 성취이다. 꿈은 최고의 회화나 영화,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더 큰 흥분을 일으킨다. 당신이 꾸는 꿈,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311 페이지) 슈테판 클라인의 책은 홀로그램, (), 예지몽 등에 대한 고찰로 나아가게 한다. 시간나는 대로 읽고 참고할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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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비밀 - 문예중앙산문선
송재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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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을 정통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문단의 흐름 같은 것이 있는 듯 하다. 작년 가을 구입한 '검은색이란 시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시인의 풍경의 비밀이란 산문집을 구입한 지 거의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더욱 최근 읽은 허만하 시인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란 산문집이 좋아 나는 그런 기대감으로 풍경의 비밀에 기대를 걸게 된다.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에 시론(詩論)이 충분히 담겼듯 풍경의 비밀도 시론이 잘 정리되어 있어 기대에 부응한다.


시인은 자코메티의 조각을 본 결과를 악기가 필요할 때란 시로 남겼다. 저자는 방이 없다는 것을 사유의 공간이 좁아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방이 없던 당시 자신의 글이 미문에만 머물렀었다고 말한다.(저자는 자신이 자주 미문의 함정에 빠졌던 것은 김현을 그릇 배운 탓 즉 김현의 겉멋만을 따왔기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른 죽음을 소재로 소래 바다는이란 시를 썼음을 밝히며 시의 중요 부분들을 해설한다.


저자가 열세살이던 때 그의 아버지는 서른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커다란 상처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지상 밖 어디선가 새 살림을 꾸려가실 그분에게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손(不遜)한 의문인지 모르지만 시인의 아버지가 더 오래 사셨다면 부자관계는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단언할 수 없지만 박완서 선생의 따뜻함을 상찬하는 글을 보아서는 저자가 오이디푸스적 반감을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억압이었다는 말을 통해서, 그리고 좋은 시는 긴장과 불평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자신의 시는 불평일 뿐이라는 말을 통해 시인이 어느 정도의 오이디푸스적 반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세계의 미묘하고 얼룩진 부분에 대한 얄팍한 증오의 포용력밖에 지니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런 미학의식이 자신의 긴장의 시학을 만들었다고 한다.(170 페이지)


저자는 몇 개월의 용맹정진을 통해 재능없음을 깨닫고 막 문학을 포기하려는 자신에게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 날아든 것은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긴장이야말로 시학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평정한 상태에서는 시가 고이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진술에는 생각의 여지가 많다. 흔히 시()는 말씀 언()과 절 사()의 결합으로 칭해진다. 절제된 언어, 수행자의 평정한 언어를 의미하는 것이 시이다. 이제 시란 절제된 평정의 언어라는 고래(古來)의 정의를 버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긴장은 시를 말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임에도 긴장의 미학으로 시를 분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저자는 좋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은 서로 반대되는 세력들의 밀고당김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앨런 데이트의 말을 인용한다. 저자는 바슐라르를 통해 책읽기의 게으름, 삶의 게으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이란 발효에 필요한 시간을 의미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읽기는 늘 주마간산이고 생각이란 것을 정연하게 적을 수 없는 바 시론(詩論)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고 덧붙인다. 당연하지만 풍경의 비밀을 통해 우리는 시인이 얼마나 자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송재학 시인만의 일은 아니다. 풍경의 비밀이란 제목을 한 그의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시란 나에게 어떤 운명을 준비하는가란 이름을 가진 시론이다. 충실히 읽는다 해도 그의 시집들을 이해하는데 직절(直截)한 도움이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시와 조금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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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허만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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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 시인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는 아득한 시의 길을 조용히 생각하겠다는, 창조적 정신의 불씨를 지키는 새로운 사색이 필요하다는, 시의 결을 가지는 문체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등의 말로 치열한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인의 근황을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시를 존재와 언어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으로 정의한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저자는 시인을 그렇게 섬세한 감각을 가진 낙타에 비유한다.


저자는 풍경은 체험과 무관하지 않기에 길을 떠나면 자신의 내면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시인을 삶의 풍경을 가장 멀리 보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낙타는 섬세한 동물이고 사막을 건너는 강인한 동물이다. 시인 저자도 시를, 그리고 산문을 건져올리기 위해 길을 가고 또 간다. 저자는 하나의 풍경이 나의 체험이 되고 나의 체험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일순(一瞬)을 말한다.


시인이 울주군 서생면에 속한 진하(鎭下)라는 해변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나는 내 서생 시절을 떠올린다. 서생면 신암리, 간절곶에서 가까운 그 바다. 동해남부선이 지나는 마을. 그곳에서의 시간들을 추억하는 나... 견자(見者)의 그 랭보,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말테의 수기’의 릴케.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우상의 황혼’의 니체 등을 이야기하며 시인은 본다는 것의 남다름을 이야기한다.


시인에게 그런 새롭고 독창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낙타는 십리 밖 냄새를 맡는다’는 기행 산문집이기도 하다. 로마 기행에서 시인은 릴케의 ‘로마의 분수’라는 시를 떠올린다. 그리고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서는 수직성이란 평면에 굴복하지 않고 일어서는 실존이란 말을 한 메를로 퐁티를 생각한다. 시인은 릴케가 본 세잔보다 메를로 퐁티가 읽은 세잔에 더 끌린다고 말한다. 시인은 메를로 퐁티의 릴케 읽기는 피나는 사색의 결과로 본다.


시인은 꽃이 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씨가 꽃을 위해 있다는 존 러스킨의 말에서 단서를 얻어 시인이 언어라는 그릇을 빌려 어떤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시인의 표현을 빌려서 스스로를 전개한다는 표현을 한다. 시인은 시를 우리의 논리의 손가락 사이를 새어나가는 모래에 비유한다. 시인은 지구는 푸르다고 말한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말과 그 이전에 상상력으로 지구를 푸른 것으로 본 폴 엘뤼아르라는 시인의 말을 소개한다.


상상력은 중요하다. 시인 역시 상상력으로 미술품들을 바라본다. 시인은 시에서 산문적 의미만을 찾지 말 것을 말한다. 시인이 즐겨 이야기하는 철학자가 메를로 퐁티라면 주안점을 두어 이야기하는 시인은 릴케이다. 시인에 의하면 파스칼이 우주가 침묵을 속성으로 한다고 보았던 데 비해 릴케는 세계가 침묵이 아닌 노래라 생각했다. 시인은 언어의 본질은 현실 인식의 도구가 아닌 아름다움과 에로스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데리다의 인식에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흐의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에 나오는 불꽃이, 시인은 빛의 유용한 원천이 아니라 빛을 남에게 베풀고 자신은 고독하다고 한 바슐라르의 논의와 아름답게 호응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인은 시론에 강하다. 시인에 의하면 자신은 시란 무엇인가란 물음보다 자신은 시의 근거를 어디에 두는가란 물음을 선호한다고 한다. 시 창작이란 수많은 시론들을 생각한 뒤에라야 효과적이고 매끄러울 수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시인을 보며 하게 된다. 시인은 자신의 시의 근거를 죽음을 향한 생의 일회성에 두고 싶다고 말한다.


‘낙타는 십리 밖 냄새를 맡는다’는 저자가 시, 서, 화, 도자기 등의 예술에 고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 하는 책이다. 시인은 그림은 시가 그렇듯 수수께끼의 심연이라 설명한다. 릴케는 세잔의 그림에서 사물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을 요구하는 긴 인내를 배웠다고 한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것을 알아볼 지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메를로 퐁티의 릴케 읽기는 피나는 사색의 결과라는 말을 음미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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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철은 옮김 / 동아시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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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매크로가 아닌 마이크로적인 사상가였다. 변화(생성)를 생각했지만 바꿈(혁명)을 생각하지 않은 사상가가 들뢰즈였다. 문제는 들뢰즈에게서 정치적인 면모를 발견하(려)는 많은 사상가들이 있다는 점이다. 혹시 가타리에게서 읽은 바를 들뢰즈에게서 읽은 것으로 생각하는 결과는 아닐까? 고쿠분 고이치로에 의하면 들뢰즈가 특정 사상가들에 대해 서술한 내용들은 그들의 사상이지 들뢰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들뢰즈의 사상으로 읽힌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들뢰즈에게 문제가 된 것은 자유간접화법이다. 이는 가령 “그것은 틀렸다” 같은 문장을 인용부 없이 그대로 문장 속에 쓰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틀렸다는 문장이 마치 들뢰즈가 인용한 사상가의 것이 아닌 들뢰즈의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직접 화법이 ‘그는 말했다. “틀렸다.”라고‘라면 간접 화법은 ’그는 그것은 틀렸다고 말했다.‘이고 자유 간접 화법은 ’그것은 틀렸다‘이다.


들뢰즈에게 철학연구는 대상이 되는 철학자가 그것이라고는 의식하지 않고 직면하고 있던, 또는 다 말할 수 없었던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 그것을 열어젖히고 그 문제가 위치하게 되는 사유의 이미지를 명백하게 하는 것인 바 자유간접화법의 다용(多用)은 이 사유의 이미지에 도달하기 위해 도입한 방법이다.(사유의 이미지는 철학자가 스스로 사유한 것을 말로 분석해낼 때 암묵적 전제를 폭로하기 위한 도구이다.)


자유간접화법적 구상에서는 논하는 측과 논해지는 측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논하는 자에게 고유한 사상이 거기서부터 생기는 것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이다. 그것에 의해 비로소 개념은 창조된다. 합리론은 주체를 전제한다. 경험론은 주제 그 자체의 발생을 묻는다. 들뢰즈의 철학적 시도는 초월론 철학의 가능성을 계승함과 동시에 그것이 잃어버린 발생의 질문을 경험론 철학에 의해 보충하는 것으로서 그려낼 수 있다.(58 페이지)


발생을 묻지 않는 초월론 철학은 최종적인 곳에서 변화의 조건에 관한 질문을 봉인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발생을 묻는 것은 변화를 묻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변화의 조건을 묻는 것이다. 들뢰즈의 철학은 초월론적 경험론(발생의 관점에 주목하여 경험론에 의거하면서 초월론 철학을 재정의하는 시도)이다. 이는 초월론 철학과 경험론 철학을 종합하는 것이고 발생을 묻는 초월론 철학을 구상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합리론은 주체를 전제하기에 발생을 묻지 않게 된다.(경험론은 주체를 구성된 것으로 파악한다.) 칸트류의 초월론 철학은 자아나 초월적인 통각(統覺)을 상정하고 있기에 비판받았다. 자아가 있어서 외계의 것을 대상화하는 작용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화 작용에 의해 비로소 자아가 발생한다.(64 페이지) 들뢰즈에게 초월론적인 것은 사건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특이성이라 부른다.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의 영향을 받았다. 아니 매료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건의 개념에 의해 개체의 발생과 세계의 발생을 그려 보인 라이프니츠에게.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은 모든 것이 주어로부터 연역되는 고정적인 세계가 아니라 모든 것의 주어(주체)가 동사(사건) 작용의 흔적으로서 있고 사건이 도래하는 그 도래 자체가 집약되어 세계를 이루는 유동적인 세계이다. 하지만 들뢰즈는 최종적으로 라이프니츠에 대해 이론(異論)을 드러냈다. 라이프니츠가 본 세계는 가능한 최선의 세계였기 때문으로 들뢰즈에게 라이프니츠는 호교론자였다.


들뢰즈는 무인도(無人島)의 형상에 의거하면서 타자가 없기 때문에 자아도 없는 역설적인 상태를 그려보였다.(75 페이지) 칸트가 자아를 상정하고 있었다면 프로이트는 자아의 발생을 그린다.(78 페이지) 들뢰즈에게 사유하는 것은 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것이었다. 들뢰즈는 습관은 경험에 후속하지만 경험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다는 말을 했다. 들뢰즈가 말하는 것은 차이와 반복이다. 습관은 그러한 하나하나가 교환불가능, 치환불가능한 경험의 반복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 즉 차이를 훔쳐내는 것으로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하이데거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얻지만 그와 별개로 다른 관점을 형성한다. 들뢰즈를 통해 우리는 위화감이나 의문을 느끼게 하는 기존 질문과의 만남이야말로 새로운 개념 창조의 기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들뢰즈의 사유의 강제성(어떤 사건에 접함으로써 사유를 하게 되는 사태)을 말하며 이를 망각함으로써 철학은 주체나 의식 등을 전제한 것이 아닌가, 란 말을 한다. 들뢰즈는 사건만을 초월론적인 요소로 인정한다.


물론 들뢰즈는 조우하는 것은 발견하는 것이고 포획하는 것이며 훔치는 것이란 말을 했다. 사유는 그것을 강제하는 기호와의 만남에 의해 발동하지만 기호는 해독되어야 한다. 습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하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으로부터는 무엇도 배울 수 없으며 우리에게 유일한 교사는 ’나와 함께 하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저자는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제기할 수 없는 사람은 거짓 문제의 주위를 계속 맴돌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거짓 문제를 피하는 기술을 배우고 문제를 적절하게 제기하는 것은 빼어난 사회적, 비평적 실천이다. 들뢰즈는 ’시네마 2‘에서 운동 이미지와 시간 이미지를 구별한 뒤 ’운동 이미지로부터 시간 이미지로‘라는 흐름을 기초로 파악하면서 주체성을 재정의한다. 시간 이미지는 영화의 등장 인물이 자신이 놓인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저자는 들뢰즈가 자기 철학의 한계(비정치적)를 타파하기 위해 거의 도박이라고 불러도 좋을 실천 즉 펠릭스 가타리와의 협동 작업에 뛰어들었을 것이라 말한다.


당시 가타리는 구조를 대신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그것을 달성하려고 하고 있었다. 구조가 일반성의 차원에 속한다면 기계는 반복의 차원에 속한다. 반복되는 것은 하나하나가 다른 것이다. 완전히 동일한 사태가 반복되는 일은 없다. 가타리는 일반성의 차원을 구조에, 반복성의 차원을 기계에 분배했다. 기계는 나아가 시간, 사건의 관점에서도 특징지어진다. 구조주의는 감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현실도,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상상도 아닌 세 번째 수준 즉 상징적 수준을 다룬다.


라캉이 말하는 아버지의 금지가 실제 아버지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며 아버지가 안 된다고 말한다고 생각되는 것도 아닌 구조 속에서의 역할 즉 의미를 지니는 자로서 존재한다는 시각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안 된다고 말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구조 내의 한 항이 아버지라 불리는 것이다. 구조의 상징적 요소는 모두 위치에 의해 의미와 역할이 결정된다. 들뢰즈는 주변항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되는 어떤 항의 가치를 도출하는 작업을 미분(微分)이라 불렀다.


들뢰즈는 시니피앙(법, 규칙)과 시니피에(그 적용 대상) 사이의 불균형 - 필연적임 - 이야말로 사회변혁의 동인으로 보았다. 들뢰즈는 억압하기에 반복한다는 프로이트의 견해와 달리 반복하기에 억압한다는 말을 했다. 이는 억압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원억압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반복이 억압을 낳는 것이라면 최초의 억압을 상정할 필요가 없다. 이 원억압(기원적 억압)은 관측된 것이 아니라 결과로부터 역으로 상정된 것이다.(들뢰즈의 두 주장 즉 타자가 있기에 자아가 성립한다는 것, 결과로부터 역으로 상정된 원억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신에 대해서도 유효有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원억압에 대한 의문은 신경증과 정신병의 구별에 기반을 두는 정신분석상의 태도에 변경을 요구한다. 라캉에 의하면 신경증이 원억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정신병은 원억압이 실패한 것이다. 원억압이 실패했다는 의미는 시니피앙 연쇄가 미약하다는 의미이다. 정신병 환자에게는 세계가 거대한 무의미 즉 수수께끼로서 나타난다. 신경증은 의미의 과잉이다. 정상인은 가벼운 신경증 환자이다. 원억압의 정상적 작동을 의심하는 것을 분열분석이라 한다. 들뢰즈, 가타리는 분열분석은 정신분석과 같이 신경증화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증화한다는 말을 했다.


들뢰즈, 가타리는 원억압의 가설을 제거함에 의해 욕망을 팔루스의 결여로 설명하는 구조주의적 관점으로부터의 탈각을 꾀했다. 분열분석의 목표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억제를 욕망하는가를 명백하게 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예속을 바라는 심리를 해명하는 것이다. ’안티 오이디푸스‘가 프로이트 라캉적 정신분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그것을 마르크스적 정치경제학과 접속하여 욕망 일원론의 철학의 원리를 구축한 저작인 데 비해 ’천개의 고원‘은 그 원리에 기반을 두어 권력 장치의 분석을 실로 다양한 테마 아래서 수행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다음 저서로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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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지식탐험 링크 - 흩어진 지식을 모아 사고의 폭을 넓히다
<EBS 융합형 지식탐험 링크> 제작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EBS 지식 탐험 링크는 지식을 활용해 통찰 넘치는 혜안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이 기획을 따르면 당연히 많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잘 활용하는 것이 장려된다. 음식, , 영웅, 속도, 기억 등 13 가지 주제어들을 택한 뒤 각각의 개념들을 다섯 가지 시각으로 연결(링크)하고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내는 방식을 시연해 보이는 ‘‘EBS 지식 탐험 링크Intro(흥미로운 이야기거리), Link(지식의 확장), Map(지식의 도식화), Outro(새로운 결론), Must question(여러 질문들에 대한 독자의 생각 정리) 등의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이 방식은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내는 방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책을 집필하는 데 유용한 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파트인 편을 보자. 무한대의 책이 보관되어 있는 상상의 바벨도서관이 작은 제목으로 정해졌고, 천국을 도서관과 같은 곳이라 상상한 보르헤스의 말이 인용되었고, 분서, 책이 타고 사람도 탄다는 작은 제목 아래에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태울 것이다.란 하이네의 말이 인용되었다.


Link 1에서는 금서(禁書), Link 2에서는 왕들의 금서, 조선왕조실록, Link 3에서는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Link 4에서는 삶의 진실을 파고드는 문학의 힘, Link 5에서는 사람이 책이 되는 휴먼 라이브러리가 소개되었다. 이어 Map으로 다섯 가지의 링크를 그림으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Outro에서는 진화를 뜻하는 evolution이 책을 펼치는 일을 가리켰다는 사실을 제시한 바탕 위에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진화할 수도 퇴화할 수도 있다는 말을 더한다.


Must question에서는 우리는 왜 도서관에 갈까요?, 좋은 책, 나쁜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금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은 어떻게 지식의 혁명과 사상의 전파를 이끌었을까요?, 종이책은 정말 사라질까요?등의 질문이 제시되었다. 첫 번째 질문(우리는 왜 도서관에 갈까요?)에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도서관은 인류가 쌓은 지식이 망라된 곳이라는 답을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발간된 모든 책이 보관될 수는 없다.


두 번째 질문(좋은 책, 나쁜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요?)에는 이런 답을 할 수 있다. 기존의 지식을 새로 쓰게 하는, 그리하여 더 참된 지식을 받아들이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참된 인식은 자기부정의 연속(인간의 얼굴209 페이지)이라는 말을 참고할 만하다. 세 번째 질문(금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은 다소 생각이 필요하다. 금서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을 확장하고 인식을 새롭게 하고, 틀에 박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상식을 깨트리는 책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네 번째 질문(책은 어떻게 지식의 혁명과 사상의 전파를 이끌었을까요?)은 인쇄술과 관련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충분히 답하려면 상당한 분량의 논술이 필요하다. 짧게 인쇄술 발달로 책의 대량 발간 및 유통이 가능해졌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다섯 번째 질문(종이책은 정말 사라질까요?)에 대해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종이책의 질감을 느끼려는 사람들의 존재, 휴대하기 좋은 편리성에 대한 선호, 책을 쌓아 두었을 때의 시각적 효과 등을 무시할 수 없다. 밑줄을 치고 메모하고 접을 수도 있는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책이 선보이는 구성 방식을 따라 각각 주제를 하나씩 선정해 Intro, Link, Map, Outro, Must Question 등을 설정해 보자. 어떤 주제를 선택하면 좋을까? 사랑이라면 어떨까? 사랑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처음에 배치하고 Link1. 사랑의 소중함, 2, 세기적 사랑들, 3, 철학자들의 사랑론, 4, 정신분석에서 보는 사랑, 5, 사랑의 의의 등을 설정한 뒤 Map을 거쳐 Outro에서 퇴색한 사랑의 현실을 고발한다.


Must Question에서 1, 사랑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2, 사랑은 왜 설레는가? 3, 사랑은 왜 아픈가? 4, 동성애는 왜 문제시되는가? 5, 인공지능(AI) 시대에 사랑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등을 설정한다. 사이토 다카시식으로 말하면 Must Question은 발문(跋文: 독해를 요구하는 구체적 질문)에 해당한다. 다카시는 글 잘 쓰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에서 글을 못 쓰는 사람은 전체를 구성하고 틀을 짜는 대신 무조건 글을 쓴다는 말을 했다.


구성을 먼저 짜고 글을 쓰는 것은 중요하다. 아울러 덧붙일 것은 전체적 구성을 미리 생각하며 글을 쓴다고 해서 모든 참고 자료를 미리 읽고서 글을 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 그때 필요한 부분을 찾아 참고하면 될 것이란 말이다.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필요한 책도 달라질 것이다. 대세는 융합(融合)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공부 자체보다 지식들을 연계해 하나의 틀을 짜는 것이 더 중요하다. EBS 지식 탐험 링크는 틈나는 대로 정독할 책이다. 독해를 요구하는 구체적 질문들을 생각해두는 독서생활을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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