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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 삶이 이야기가 되는 365일 글쓰기 수업
수전 티베르기앵 지음, 김성훈 옮김 / 책세상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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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티베르기앵은 쉰 살이 되어서야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분이다. 그녀는 글쓰기는 결국 습관이라 말한다. 우리는 지속적인 독서와 성찰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은 쉰 살에 처음 글쓰기 워크숍에 참가해 역시 예순에 처음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에이미 클램피트를 만나 하게 된 15년 동안의 교육 경험에서 12개의 강의를 선별한 책이다. 저자는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꺠'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기존 작품의 어깨를 딛고 글쓰기의 세계에 들어온다는 말을 한다.(뉴턴은 자신이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섰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12개의 강의는 각각 다른 영역의 글쓰기들로 채워졌다. 첫 순서는 가장 자연스런 글쓰기인 일기 쓰기이다. 그 밖에 퍼스널 에세이 쓰기, 오피니언 에세이 쓰기와 여행 에세이 쓰기, 단편소설과 초단편 소설 쓰기, 꿈을 글로 옮기기, 시적 산문과 산문시 쓰기 등이 있고 눈길을 끄는 것은 상상의 연금술이란 챕터이다. 저자는 카를 구스타프 융 센터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명심할 것은 저자가 쉰 살 이전에도 다양한 글과 기사, 일기 등을 썼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런 글들과 작가로서 쓰는 글은 어떻게 다른가?


저자는 자신이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자신 안의 우물이 신선한 창조성으로 가득 차올랐다고 말한다, 연금술이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상상의 연금술은 더욱 깊숙한 글쓰기의 세계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 글을 잘 쓰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일기 쓰기는 훌륭한 연습 거리가 된다. 물론 매일 거르지 않고 쓸 필요는 없다. 일기 쓰기에서 중요한 점은 거침 없이 써내려가는 것이다. 쓰고 나서 고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에세이는 몽테뉴로부터 시작되었다. 귀족 출신의 은퇴한 변호사였던 그는 바쁘게 살기 위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소재도 형식도 가리지 않았다.


당연히 에세이도 다듬기와 묵혀두었다가 고쳐 쓰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에세이를 퍼스널 에세이와 오피니언 에세이로 나눈다. 오피니언 에세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바꾸어 놓는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 관해서라면 여행 에세이도 독자들로부터 비슷한 기대를 받는 장르이다. 소설 쓰기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저자는 일기는 논픽션 뿐 아니라 픽션을 위해서도 모판 역할을 한다고 귀띔한다. 문장에서 주어와 동사가 필수이듯 소설에서는 등장 인물과 행동이 필수적이다. 소설이 매력의 대상인 것은 그것이 독자의 마음 속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생생한 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단편 소설 공부를 할 때 헤밍웨이와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을 분해해 작동 방식을 이해하려 했음을 밝힌다.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꿈을 글로 옮기기'이다. 꿈은 "완전히 새로운 내면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꿈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이 풍부한 이야기거리임은 부정할 수 없다. 시적 산문과 산문시 쓰기편에서 저자는 시적 산문이란 말은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그 둘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라고 설명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9장 ‘상상의 연금술‘이다.


연금술이란 단어는 변함없이 신비롭게 들린다. 연금술이 뜻하는 것은 자신의 꿈, 기억, 환경 속에서 생생한 이미지를 찾아 그것을 글로 연결하는 것이다. 11장은 고쳐쓰기이다. 마크 트웨인은 올바른 단어와 거의 올바른 단어의 차이는 번개와 반딧불의 차이와 같다는 말을 했다. 트웨인의 말은 괜찮은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의 적(敵)이란 말(’한글 세대를 위한 불교‘ 94 페이지)을 생각하게 한다. 이 말은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의 말이다. 고쳐쓰기는 장르에 관계 없이 모든 글쓰기에 적용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저절로 유려하게 글이 써지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라 말했다. ’집으로 향하는 글쓰기’란 마지막 장은 눈길을 끈다. 존재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 그 중심에서 자신의 진정한 집을 찾는 것에 대한 장이다. 신비, 영감, 창조성에 훈련과 성찰을 더할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책은 실제적 도움을 주는 유려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하나의 책에 너무 많은 장르의 글을 담은 것은 아쉽다. 저자가 어떤 책들을 읽었고 문학 외의 장르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상술되지 않은 점과 함께 아쉬움으로 지적되어야 옳다. 물론 열정이 넘치는 저자가 정성을 다해 쓴 진실한 책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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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일 - 자정의 시작
임근희 지음 / 정오와자정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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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겨 결혼을 했지만 아내가 외국 출장을 간 사이 사고로 아이를 잃은 뒤 이혼하게 된 정신과 의사 임지훈.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환자들의 약을 스스로 처방해 먹는다. 판사 김은경. 그는 청각 기관들 스스로 변이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병을 앓는 딸로 인해 고통 받는다. 김승훈은 오랜 기간 기억치료제를 연구 개발해 왔다.... ‘그들의 일 자정의 시작’에는 기억과 정신 등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다수 등장한다...


기억 치료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기에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이 ‘그들의 일 자정의 시작’이다. 장르를 가르자면 이 책은 SF에 해당한다. 작가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경우 실제 어떤 일이 생기며, 인간이 그 목적을 수치화해 설정한 최대값에 이르게 된 상태를 유토피아라 할 수 있을까, 란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억은 특별하고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은 트라우마가 된다. 우리는 아직 뇌의 신비를 다 풀지 못했다. 아니 풀지 못한 부분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난감한 것은 소설에서 제기된 것처럼 기억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이 그 즐거움에 빠져 더 나은 상태를 갈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는 점이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지? 작가는 공들인 많은 문장들을 선보이며 장장 460여 페이지의 소설을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기억 치료라는 소재는 특별히 주의를 끌 만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읽는 내내 흥미를 가질 수 있던 것은 작가의 지력(知力) 때문이라 해도 좋다. 물론 책을 전반적으로 평하라면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공학을 전공한 작가의 책이기에 인간을 기계나 물적 대상 등으로 다루는 설정이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책의 장점은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흥미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차원이지만 컴퓨터 관련 책들과 뇌 관련 책들, 그리고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책들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을 소설에 담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구성은 친절하다. 미래라 했지만 나는 가령 혈액 검사로 간단하게 암을 진단하는 등 첨단 의술에 기대를 거는 한편 그런 첨단화, 고도의 집중화가 뇌나 정신 부분과 관련될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우려하게 된다. 문장이 예쁘거나 멋이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시리즈로 이어진다니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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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 서울성곽길 따라 6백 년 역사 속으로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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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394년 이성계가 조선의 수도로 한양을 정한 지 622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은 중국 중심권 안에 머물렀던 유교 국가였다. 조선, 하면 생각나는 것은 당쟁, 남녀차별적인 유교 문화, 장구한 왕조의 역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곽길도 나름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양 도성 걸어서 한 바퀴’는 오십을 목전에 둔 어느 날 한양 도성길 순례에 나선 역사 체험가 유영호의 탐험 및 탐사(探史)의 노고가 깃든 책이다.


한양 정도(定都), 그리고 주산(主山) 설정 자체가 유교 또는 풍수지리, 불교 등의 이념 대립이 낳은 결과이다. 한양도성은 현존 도성들 중 세계 최장 기간(514년: 1396 - 1910년)에 걸쳐 도성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 문헌인 ‘석명(釋名)’에 궁(宮)은 궁(穹)이란 글이 있다. 담 위로 높이 솟은 집이라는 의미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우리는 한양 도성길은 일제(日帝)가 남긴 흔적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왜(倭)에서 일본까지 엮인 우리의 역사는 친일과 민주인사의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역사적 유물 및 건축물 등과 관계된 인물들을 호명해 그 배경과 변천사(變遷史)를 밝히고 우리의 현재 의미와 연결짓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그렇기에 야사(野史)를 많이 참고한 것이 눈에 띈다.


좁게는 도읍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넓게는 성곽 및 그 안의 공간을 가리키는 한양도성(都城)은 18여 km의 둘레길이다. 한양도성 순례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사람이라면 꼭 해야 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처음 서울 성곽을 따라 걸으며 인구 1천만의 대도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과 숲이 있었나 싶을 만큼 놀라웠다는 말을 한다.


한양 도성, 하면 나는 먼저 부암동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자신이 사는 부암동 집을 "광화문이 지척이면서도 조용하고 호젓하며 공기가 맑다.“고 표현한 한 언론인으로 인해서이다. 수도로서의 위상과 지위를 지켜오던 한양 도성은 한말 외세에 의한 강제적 근대화와 일제강점으로 인해 훼손되기 시작했다.


1988년 전차 개통으로 인해, 그리고 1907년 숭례문 아래로는 비좁아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를 제시한 일본 왕세자 요시히토 사건 등으로 인한 수난을 당하게 된 한양 도성은 1925년 이후 성벽에 인접해 집을 지은 민간에 의해서도 훼손이 가속화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한양 도성과 이웃한 역사적 건물들에 대한 정보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낸 사건 이야기가 함께 비중 있게 전달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친일 쪽에 섰던 자들과 반일 애국지사들로 양분된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알려진 것과 다른 부분도 담고 있어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저자의 치밀한 역사 고증을 신뢰한다. 확실한 근거 제시와 분명한 논리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명한 역사관은 조선 초기 있었던 불교와 유교 정확하게는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대립 이상으로 흥미를 끈다.


왕위를 놓고 벌인 골육상쟁 및 부자의 갈등, 권력의 격랑에 휘말린 임금과 왕비(王妃)의 애틋한 사연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사연들 중 단연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사연이다.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세자가 아닌 국왕과 혼인한 왕비이다. 고려 의종때 희종법사가 창건한 숭인동 청룡사에 우화루(雨花樓)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 밤을 지새운 곳으로 영원히 이별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영리정(永離停)으로도 불렸다.


인상적인 것은 오행(五行) 즉 상생상극 관계로 엮인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에 맞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란 미덕을 건물에 적용해 도성 동서남북의 문 이름을 각각 흥인(仁)지문, 돈의(義)문, 숭례(禮)문, 숙정(正)문 등으로 설정하고 중앙에 보신(信)각을 둔 것이다. 북문에 지(智)가 아닌 정(正)이란 이름이 붙은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숙종때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도록 축성한 홍지(智)문이 숙정문을 대신했다는 말이 있고, 숙정문이 소지(智)문이었다는 말이 있다.


‘한양 도성 걸어서 한바퀴’는 숱한 사연과 배경 지식을 실어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빛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역사적 유적과 건물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로 수렴한다는 점이다. 도성에 대한 지식은 사람들이 만나 이루어낸 사건에 대한 지식 곧 역사에 대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어떤 관념적 주제를 논리적이거나 실증적으로 입증한 역사 보고서가 아니라 설명한다.


그저 물리적 시간대와 공간대를 따라 도성 길을 순례하며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기록한 순수 기행문이라는 소개가 눈길을 끈다. 그렇기에 시대적 배경면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역사를 수필(隨筆)처럼 자유로운 필치로 그려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달빛 따라 걷는 한양 도성길 걷기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저자의 책은 그 낭만적이고 역사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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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유정은 지음 / 리베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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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교수의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사임당 평전'은 예술가로서의 사임당을 조명한 책이다. 이 점은 물론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현모양처가 아닌 여성 군자적 면모에 초점을 두고 사임당(1504 - 1551)을 조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잘 알다시피 현모양처란 개념은 18세기 무렵 서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하의 근대 가족이 생기면서 비롯되었다. 더욱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개념은 일제에 의해 여성은 참전할 군인을 공급하는 존재로 왜곡, 선전되었다. 조선의 현모양처 어머니들이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저자는 시, 서, 화에 두루 능했다는 말로 사임당을 설명하는 세태에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더한다. 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는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확실히 정착되지 않은 시기였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대등한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 '주자가례'와 '소학'의 보급과 성리학의 지배이념화로 여성들은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임당이 살아간 시대는 네 번의 사화(士禍)가 일어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역사를 배우는 근본 의미들 중 하나를 생각해보자. 가령 조선 전기와 중기, 후기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여성이 처한 환경의 변화, 성리학적이고 가부장적인 편협한 질서의 고착화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변천은 생각하지 않고 조선 그것도 17 세기 이후에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지배 이념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임당(師任堂)은 당호이다. 인선(仁善)이란 이름을 가졌다는 기록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옛 중국의 문왕이라는 훌륭한 임금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이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태임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


율곡이 말한 것처럼 사임당은 포도와 풀벌레를 그리는 데 절묘한 솜씨룰 보였다. 조선이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아니었지만 가부장적인 시대였던 것은 사실이다.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여성이었다. 아내의 생각과 재능까지 모두 존중한 이원수도 존경할 만하다. 송시열을 필두로 한 노론계의 학자들은 사임당을 상찬했는데 그것은 율곡을 성현으로 만들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상당히 의도적이고 불순한 동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장지연의 '여자독본'은 달랐다. 사임당을 구한말 여성들이 본받아야 할 어머니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물론 사임당은 조선의 군국의 어머니상으로 선전되기도 했다. 사임당은 육영수 여사에 투영되어 전 국민의 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임당을 가장 적확하게 규정하는 말은 스승 같은 어머니, 간언하는 아내, 여자 군자, 시, 서, 화에 두루 능한 예술가란 말이리라.


사임당은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수양한 다음 남을 가르침을 이르는 말)과 법성현(法聖賢: 성현을 본받아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성장했을 것이며 스스로 솔선해 자녀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또한 아들, 딸을 차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임당에게는 율곡 말고도 작은 사임당으로 불린 매창(梅窓: 1529 - 1592)이란 딸도 있었다.(매창은 16세기 유희경의 정인이었던 매창과 동명 이인이다. 사임당은 7남매를 두었다.)


셋째 아들 율곡은 퇴계와 쌍벽을 이룬 조선 최고의 학자이다. 넷째 아들 우(瑀)는 거문고, 글씨, 시, 그림 등 네 가지에 뛰어나 사절(四節)로 불렸다. 사임당은 시로써 지극한 효성을 드러냈다. 시는 꾸며낼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저자는 공자가 말한 유교 미의식을 설명한다. 회사후소(繪事後素)가 그것이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만든 뒤에 한다는 의미이다.


사람도 아름다운 자질을 갖춘 후에야 꾸밈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미적 형식보다 내면의 인격적 충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가 사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의 강조점 중 하나로 외양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미가 서로 잘 어울림을 뜻하는 문질빈빈(文質彬彬)과 함께 생각해 볼 부분이다. 사임당은 세심하고 정감 어린 정서, 사랑의 인품을 바탕으로 한 보기 드문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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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의 선택 (양장) - 우리 시대 인문학 최고의 마에스트로 박이문 인문학 전집 1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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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문학자이자 철학자, 시인인 박이문(1930 - ) 교수를 알게 된 것은 ‘다시 찾은 빠리 수첩’을 통해서이다. 나는 이 책에 들어 있는 ‘빠리여, 안녕!’이라는 글을 시간 날 때마다 펼쳐본다. 이 글을 그렇게 펼쳐보는 것은 “늙은 열등생”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저자에게서 강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경에서의 모 대학생활 중 학병을 피해 다니던 큰 형이 가져다 놓은 문학서적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입문했고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프랑스 유학을 결행한 뒤 난해하기에 말라르메를 전공한 사연, 그리고 철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 등 ‘하나만의 선택’을 통해 접하는 내용들은 말 그대로 지적 거인이 걸은 큰 발자취이다.


저자를 형성한 여러 책들 중 가장 근원적인 것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 담긴 실존주의를 해설한 일본어 번역서이다. 이 책은 지적 혼돈과 정서적 허무주의에서 헤매던 저자에게 빛이자 구원으로 다가왔다. 데리다와의 특별한 인연(데리다는 저자보다 생일이 몇 달 늦은 동갑이지만 저자의 학문적 길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었다.)은 상당한 관심을 끈다. 저자는 스승을 존경하지만 스승의 언어철학을 비판하는 논문을 쓴 자신의 행보에 대해 진리에 관한 문제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라는 이유를 달았다.


시인이자 불문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가 시에 대해 한 말이 특별히 내 주의를 끈다. “아무리 서정적 시라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러할 때에 비로소 논리를 초월한 시적 가치를 체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글이다. 저자는 자크 네세르라는 한 교수의 강의를 통해 엉성하기만 하고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난해한 시작품까지도 황홀할 만큼 투명하고 시원스러운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55 페이지) 그는 빈말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인, 그리고 한 시를 분석하고 설명해주곤 했다고 한다.(189 페이지)


저자는 어떤 철학자도 그대로 추종하지 않으며 수많은 철학자들로부터 무한한 지적 통찰력과 지혜를 배우며, 특정 종교를 믿지 않지만 자신을 누구 못지않은 종교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저자는 양이 얼마 안 되는 정독(精讀)의 중요함을 강조한다.(130 페이지) 저자는 감수성과 지성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는 아무리 서정적인 시라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저자의 앞선 견해와 공명한다. 저자는 시에 심취하고 문학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믿고 예술에 깊이 끌린 이유는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심미적인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도덕적인 차원의 이유 때문이라 말한다.(175 페이지)


저자가 사르트르에게 깊은 영향을 받고 매력을 느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한편 저자는 그가 부러운 존재에서 미움의 대상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오직 한가하고 피와 고통을 느껴보지 않은 머리 좋은 학자들의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싶었다는 것이다.(178 페이지) 저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점, 생각하는 방식과 글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 계획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저자는 가설일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직관으로 얻은 비전이 뚜렷할 때 그 가설을 입증하는 것은 노력과 시간, 인내심과 끈기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런 입증의 논지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잘 구성하며, 어떻게 쉽게 쓰느냐이다.(206 페이지) 저자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저자의 지적 이력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지적 세계가 너무 좁고 어두웠었다는 그의 표현은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어느 정도씩은 경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저자는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허약한 상태였으니 어려움이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철학자에게서 종교가, 예술가, 사상가, 시인을 기대하던 저자는 개념과 논리의 세공 기술자로만 보인 분석철학에 회의를 품었다. 물론 에이어의 ‘언어 논리 진리’를 읽고 분석철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분석철학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281 페이지) 시 분석에 분석철학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중학교 시절부터 시인이 되려 한 분이다.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긴 여정을 거친 지적 거인의 면모가 총체적으로 담긴 책이 ‘하나만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앞서 발표한 책들을 모아놓은 것이어서 긴장감이 떨어진다. 저자의 여러 책들 중 ‘현상학과 분석철학’을 다시 읽고 싶다. ‘언어철학, 그리고 시와 과학’이란 부제를 가진 ‘인식과 실존’(인문학 전집 5권)을 정독할 필요를 느낀다. 아울러 시 전집인 ‘울림의 공백’(인문학 전집 10권)에 특별히 관심이 간다. 건필을 바라는 마음을 저자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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