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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라 - 징비록
정종숙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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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숙 작가의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는 개인 회고록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132)된 서애(西厓) 류성룡의 징비록을 분석한 책이다. 전쟁 후 일본의 끈질긴 요구에 국교를 재개할 때 개방한 부산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당시 동아시아를 열광시킨 베스트셀러가 된 징비록(懲毖錄)은 그 만큼 임진왜란을 정확하게 묘사한 책으로 반대파의 탄핵으로 파면당했다가 회복되어 임금의 두 번의 부름을 받았으나 뿌리치고 정치의 중심이 아닌 전쟁의 전모를 담고자 한 류성룡의 집념이 만든 역작이다.


징비란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훗날의 환란이 없도록 조심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징비록에는 류성룡이,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보낸 통신사 일행 중 김성일(유일하게 일본의 침략 기세를 느끼지 못했다고 보고한)을 따로 만나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재차 묻는 장면이 나온다. 김성일은 황윤길의 말이 너무 강경해 잘못하면 온 나라가 동요(動搖)될까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라 답했다. 김성일은 일본의 침략을 대비하지 못하게 된 책임자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당시 선조(宣祖)는 여러 사람이 보고한 전쟁 가능성론을 듣지 않고 유일한 의견 즉 전쟁이 일어날 기세를 느끼지 못했다는 김성일의 의견을 수용한 뒤 전쟁이 일어나자 김성일을 희생양으로 지목했다. 선조는 무능한 만큼 간교했다. 기축옥사(정여립鄭汝立의 모반으로 서인에 의해 동인 1000여명이 고문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때 정철에게 전권을 주어 모진 고문으로 동인의 핵심 세력을 제거하게 한 것이다.


정철은 세자 책봉 문제를 건의한 것이 빌미가 되어 삭탈관직되고 유배당했다. 관동별곡, 사미인곡등 걸작들을 남겼지만 피를 묻힌 손이었다. 정철은 임진왜란이 나자 선조의 부름을 받고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뒤 모함을 받는다. 이에 정철은 강화로 들어가 살다가 굶어죽는다. 선조는 파천(播遷: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하는 일을 이르던 말)에 반대한 류성룡을 유도대장에 임명해 한양 사수를 지시했다. 소심한 복수였다.


전쟁이 나자 어명을 받고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薦擧)한 사람이 류성룡이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된 것은 일곱 품계를 뛰어넘는 초고속 승진이었다. 당연히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천거였다. 선조는 이순신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빗발치는 상소를 윤허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당시의 주력 전함(戰艦)인 판옥선(板屋船)이 전투 요원이 노출되는 위험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판옥선에 뚜껑을 덮고 옆을 막은 것이 거북선이다.


군함 건조 역시 류성룡의 절대적 지지와 후원 덕에 가능했다. 놀라운 것은 조선 수군의 대응이었다. 조선 수군은 일본 함대가 새까맣게 몰려오는 것을 보고도 출정하지 않았다. 대포 한 방 쏘지 않고 상륙을 허락한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의 대한민국 재난 구조 시스템을 연상하게 하는 상황이라는 말을 한다. 당시 조선의 수뇌부는 일본을 너무 몰랐다. 수군을 폐지하자는 말도 있었을 정도이다. 전쟁 발발 230일만에 수도를 적에게 넘겨주었다.


당시 조선의 방어체계는 제승방략(制勝方略)이었다. 유사시에 각 고을의 수령이 군사를 이끌고 자신의 고을을 떠나 약속된 방어 지역으로 집결하고 중앙에서 임명된 순번사, 방어사, 도원수 등이 도착하면 그 휘하에 예속되어 지휘를 받는 체제를 말한다. 그런데 류성룡은 이 체제가 지휘관이 적군보다 늦게 도착하면 싸우기도 전에 붕괴될 위험성이 있는 문제적 체제였기에 진관체제로 바꿀 것을 주장했다. 물론 반대에 부딪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류성룡은 전쟁 초기 도망치기 급급했던 조정의 모습을 숨김없이 기록했다. 백성들의 원망과 질책도 빼놓지 않았다. 저자는 선조가 전란 극복 과정에서 국왕으로서 전혀 모범을 보이지 않은 것을 임진왜란의 또 다른 비극이라 말한다. ()나라에서는 아무리 왜적(倭賊)이 강하다 해도 그렇게 빨리 치고 올라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조선이 일본과 손을 잡고 요동을 넘보려 한다는 말이 나돌기까지 했다. 선조가 진짜인지 의심하기도 했다.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 다니기 바빴던 임금이기에 가짜 왕으로 의심받은 것, 그리고 일본군의 조롱과 협박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한때 수군을 폐지하려 했던 조정을 구한 것은 이순신의 수군이었다. 이순신은 한산해전에서 학익진 전술을 구사해 대승을 거두었다.(한산대첩) 류성룡은 한산해전의 승리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썼다.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143 페이지) 근세일본국민사란 책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은 한산해전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썼다.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한 조선 사람들을 부왜(附倭)라 한다. 부왜는 전국 곳곳에 있었다. 적극적으로 간첩 활동을 한 자로부터 단순 부역자들에 이르기까지... 전쟁 초기 임금이 도성을 버리면서 문제의 싹이 튼 것이라 할 수 있다.(172 페이지)


행주대첩의 권율과 6진 개척의 김종서가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듯 류성룡 역시 문관으로 3도도체찰사(都體察使: 일본군이 남하하는 지역을 담당하는 총사령관) 역을 수행했다.(여담이지만 권율은 행주대첩을 자신의 최고 전공으로 생각하지 않고 웅치 - 이치 전투를 자랑스러워 했다. 한민족 4대 대첩은 살수, 귀주, 행주, 한산 대첩이다. 웅치熊峙는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과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이치梨峙는 전라도 진산군과 고산현 경계의 고개이다.)


()의 참전으로 전쟁을 새로운 계기를 맞는다. 우리는 그제나 이제나 작전 지휘권이 없는 나라이다. 명의 장군 이여송은 탄핵을 받았다. 그가 참획했다고 주장한 일본군 머리의 절반이 조선 사람의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명의 원조를 받아 전쟁을 치르는 입장이기에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이여송이 행주에서 참패한 이래 사기가 꺾일대로 꺾인 일본군의 퇴로를 열어준 것이다. 병력 손실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온건파였던 류성룡도 이 부분에서만은 강경했다. 류성룡은 명의 황제를 상징하는 기패(旗牌)에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명군과 일본군의 합의 내용을 전하는 기패였다. 합의 내용에는 철수하는 일본군을 공격하면 참형에 처할 것이라는 조항도 있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참배를 거부한 것은 합의 내용을 승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그렇게 강화를 반대하면서 왜 당신네 국왕은 도성도 버리고 도망쳤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일본은 한양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철수하게 되자 진주성을 함락시킨 후 주민 6만을 몰살시켰다. 일본은 아예 남해안 각지에 성을 쌓고 들어앉아 장기 주둔 상태에 들어갔다. 전쟁 후 조선 최초의 직업군인인 훈련도감(訓練都監)이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은 류성룡의 제안으로 창설된 특수부대이다. 1594년 봄 류성룡은 선조에게 조총 제작 기술을 개발하자고 요청했다. 대구 광역시 달성군의 녹동서원에 임진왜란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총이 보관되어 있다. 당시 조선군으로 투항한 일본 장수 김충선(일본명 사가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만든 것이었다.


류성룡은 징비록의 끝을 이순신의 이야기로 장식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전쟁도 끝이 났다. 선조는 종전과 함께 전란 극복에 기여한 공신들을 선정했다. 104명이 선정되었는데 직접 싸워 공을 세운 선무공신(宣武功臣)18명에 불과했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李舜臣), 권율(權慄) 18명의 무신(武臣)에게 내린 훈공(勳功)을 말한다. 어이없는 것은 호성공신 86명은 선조가 피난갈 때 호위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선조는 우리 장수들은 간혹 명군의 뒤를 쫓아다니다가 요행히 잔적(殘賊)의 머리를 얻었을 뿐이라고 폄하했다. 선조는 전란 극복의 공을 명군에게 돌림으로써 이순신 같은 전쟁 영웅의 공을 상대적으로 축소시켰다. 선조에게 백성들이 따르고 존경한 이순신은 위협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선조는 곽재우, 조현, 고경명 등 의병장들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선조가 명군을 절대적으로 평가한 것은 피난만 다닌 무능한 왕이 아니라 명군을 불러 전란을 극복한 구국의 왕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명으로부터 재조지은(再造之恩: 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을 입었다는 점을 강조한 탓에 그 논리에 갇혀 조선은 명청 교체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조선이 명을 섬겨야 할 나라가 인식했기에 막을 수 없었던 참변이었다. 저자는 역사는 기억하는대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류성룡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병산서원(屛山書院: 경북 안동)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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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면역요법이 답이다
신광순 외 장덕한방병원 면역암센터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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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은 유방 조직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남자에게도 생기지만 여자에게 많은 것은 남자의 경우 유방 도관(duct)이 여자에 비해 덜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고 암 성장에 관계되는 여성 호르몬이 여자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유방암은 여성에게 빈발(頻發)하는 암 2위이지만 1위인 갑상선암에 비해 문제적이다. 갑상선암은 예후가 양호하고, 유방은 여성 및 모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양호하다는 것은 전이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유방암은 재발률이 높다. 수술 후 5년 이래 재발 확률이 21%에 달한다고 한다. 재발 환자의 비율은 50%를 상회한다. 흔하지는 않겠지만 본문에 의하면 네 차례 재발한 경우도 있다. 서양의학이 유방암(만이 아니겠지만)을 치료하는 방법은 수술, 항암제 투여 등이다. 장덕한방병원 면역암 센터에서 지은 유방암 면역요법이 답이다는 서양의학의 고통스럽고, 재발을 막기 어려운 암 치료법 끝에 근본적인 면역치료법을 통해 새 전기를 맞은 유방암 환우들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면역요법이라는 근본적인 암 치료법은 현재 암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큰 희망으로 여겨질 것이고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참고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수술, 항암제 투여 등으로도 낫지 않아 막다른 길에서 면역 요법을 만난 사람들의 사연은 극적이다. 체온을 올려주는 쑥뜸, 약침, 비타민 요법, 미슬토(겨우살이) 주사, 체질을 고려한 발효 면역 한약 등이 면역요법의 주요 아이템들이다.


면역계는 다양한 면역 세포가 상부상조하면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신비한 세계이다.(마쓰오 가즈히로 지음 내 몸을 지키는 면역의 과학9 페이지) 면역(免疫)이란 우리 몸에 침투한 세균 및 바이러스 등이 더 이상 활개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활동을 말한다. ()DNA의 변화로 일어나는 병으로 이 변화로 인해 단백질도 변하게 된다. 암은 우리 몸 안의 이물(異物)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몸은 자신과 흡사한 이식 장기(臟器)는 신경질적으로 배제하는데 암에 대해서는 매우 관용적이라는 점이다.


암에 대한 면역은 존재하지만 T 세포의 면역기능이 저하된 면역부전 환자의 경우 암 발생률이 매우 높다.(타다 토미오 지음 면역의 의미론참고) B 세포는 골수(Bone Marrow)에서 자라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T 세포는 골수에서 태어난 뒤 흉선(Thymus)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뒤 혈액 속으로 들어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방병원에서 암을 치료하는 데 축난 몸을 면역요법으로 회복시키면 암과 싸우기가 한결 수월해진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본문에 나오는 한 환우의 말이다. 면역요법은 정지(整地) 작업이고 기초를 강화하는 작업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면역요법은 호르몬 치료의 대안이다. 물론 면역력은 한 번 좋아져도 꾸준한 관리가 수반되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약해질 수 있다.


면역계는 다양한 면역 세포가 상부상조하는 체계라는 말을 했지만 항암요법은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함으로써 정상적인 세포나 몸을 초토화시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는 유방암은 조기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하면 생존율이 거의 100%에 육박한다고 말한다. 유방암은 가족력, 여성호르몬, 생활습관, 유방암의 과거력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병하는 병이다.


초경(初經)이 이르거나 폐경(閉經)이 늦은 경우 즉 여성 호르몬에 오래 노출되는 경우, 독신 또는 평생 임신을 하지 않는 경우(임신을 하면 에스트로겐이 감소한다.), 폐경 증세로 호르몬 대체 요법을 5년 이상 장기간 받은 여성, 비만한 여성, 음주. 흡연 여성 등이 유방암 발병 확률이 높다. 본문에 수록된 유방암 증상과 검사, 체질에 따른 치료, 병기(病期)에 대한 상세한 기술(記述)은 전문성을 입증한다.


수술보다 수술 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 방사선 치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면역요법과 현대의학의 치료가 병행될 때 치료 효과가 크다.) 여성 호르몬은 양면적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건강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유방암 발병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암의 발생과 치유의 중심에 면역력이 있다. 면역요법은 항암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은 줄인다. 면역력을 강화해주는 물질은 한방, 양방이 다르지만 굳이 가릴 필요는 없다. 검증된 것이라면.


식사도 중요하다. 재발과 전이를 막는 차원에서. 적절한 운동과 면역력은 비례한다. 항암 치료 부작용 때문에 줄어드는 근육을 되돌리는 근육 운동도 중요하다. 그래야 암과 싸울 수 있다. 유산소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수많은 외국 참고 서적들이 눈길을 끈다. 유방암 환우의 가족이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 유방암 면역요법이 답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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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 수국
김정수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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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산이 된 온양(溫陽)에서 태어나 성장 후 결혼해 남양주(南楊州)의 시댁으로 들어가 살게 된 김정수 작가(수필가). 이 분은 자신의 생을 온통 빛과 볕을 향해 있었던 향일성 식물 같은 삶으로 소개한다. 저자는 남양주를 ‘남쪽의 빛 고을’로 풀이한다. 물론 남양주의 양은 볕 양(陽)이 아닌 버드나무 양(楊)이다. 양(楊: 버드나무) 자체에는 빛이나 볕을 의미하는 바가 없지만 양수(陽樹)로 통하는 것을 감안하면 할 수 있는 연결이라 할 수 있다.


양수는 하루에 3에서 5시간 직사광선을 받아야 하는 나무이다. 버드나무는 극(極)양수라고 한다. 양수는 그늘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이고, 음수(陰樹)는 그늘을 잘 견디는 나무이다. 이 분의 수필집 ‘청색 수국’은 여행을 많이 하고 삶의 현장에서 깨달음을 얻어내는 데 능한 60 중반의 여성 작가의 섬세한 일상성을 풍족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수필은 essay와 miscellany로 나눌 수 있다. 흔히 essay를 중(重)수필, miscellany를 경(輕)수필이라 칭하는데 나는 essay는 사색을 위주로 하는 관념적인 수필, miscellany는 체험을 위주로 하는 실제적인 글로 나누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miscellany에 속하는 ‘청색 수국’의 특징은 그야말로 일상에서 소재들을 취한 책으로 서평, 영화평, 여행기 등과 거리를 갖는다. 이 책의 특징은 쉽고 잔잔한 감동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짧은 글들이 대종(大宗)을 이룬다는 점도 특징이다.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힘을 빼고 편하게 쓴 수수한 분위기의 글들이 읽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글이라 해서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입천출(深入賤出: 깊이 공부하고 쉽게 설명하는 것)이란 말이 알게 하듯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참고로 나는 심입천출보다 심찬이시(深撰易施)라고 부른다. 撰은 지을 찬, 施는 베풀 시이다. 깊이 생각하고(짓고) 가려내 쉽게 (베)풀어보인다는 의미이다.


어떻든 miscellany이기에 당연히 체험 특히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표제작인 ‘청색 수국’을 보자. 저자는 수국은 음지를 더 좋아하는 식물이라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수국은 토질에 따라 흰색, 보라색, 붉은색, 청색 등으로 피어난다고 한다.(106 페이지) ‘청색 수국’은 아파트 앞 화단에 버려진 수국을 데려다 정성으로 키워 청색 수국을 피워낸 저자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이다.


저자는 청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신비와 동경을 상징하는 노발리스의 ‘푸른 꽃‘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 역시 청색을 좋아한다, 보라색이 신비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청색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신비와 동경은 깨지기 마련인지 저자가 애지중지 키우고 애틋하게 대하던 그 꽃이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고 말았다. 저자는 그를 무정한 사람이라 표현한다.


수국을 볕이 드는 곳으로 옮겨주어 문제의 그 사람의 눈에 띈 것이 발단이 된 그 사건을 저자는 볕으로 향하는 자신의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일이라 표현한다. 이 글을 읽고 생각한 시가 있다. 배현순 시인의 ’봄‘이란 시이다. ”여린 연둣빛 봄/ 아장아장 새순 움트려 왔다가/ 호르르 가 버리는구나// 내 탓이구나/ 내가 너무 귀찮게 했구나/ 꽃이 만개했다고 속절없이/ 재잘 거렸구나//


형형색색 고운 빛에 취해/ 만지지 말라는 것을/ 그만, 손대고 말았구나/ 여리고 민감한 네게 거친 호흡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으니/ 꽃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붉은 눈물/ 바라보기 가슴이 에는구나// 미처 몰랐다/ 나로 인해“ 서른 막바지에 이르러 곧 마흔살이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저자는 그 허망함을 달래기 위해 문학 강의를 들으러 가서 만난 문단의 선배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나는 육십대에 수필을 쓰기 시작했어. 지금 제비꽃 나이잖아. 앞으로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어. 그러니 어서 글 써.“ 어렵게 등단한 뒤 20년간이나 글을 쓰지 않은 저자는 이 말에 힘을 얻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필의 힘은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으리라. 저자는 쓰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 한다. ”절망은 견디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때로는 쓸쓸한 가슴을 정화시켜주는 청량제가 되어주기도 하는 모양.“이라고 말하는 저자. ”나에게도 언젠가 꽃이 활짝 피어나는 봄이 오리라. 아직도 믿고 있다.“는 저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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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라는 환상 - 문명화의 의례와 권력의 공간 경성대문화총서 43
캐롤 던컨 지음, 김용규 옮김 / 경성대학교출판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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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가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은 의례(儀禮)적 구조에 초점을 맞추어 미술관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미술관이란 미술 갤러리(art gallery)와 박물관(museum)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미국의 방식에 따른 것이다. 이 책에서 의례란 특별한 목적에 따라 섬세하게 구획되고 설계된 방식을 말한다. 이는 정치(적 의도)와 무관한 듯 보이는 미술관이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 그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보스턴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등 미국의 미술관들이 보인 차이점을 부르주아적 문화양식과 귀족적 문화양식이 서로 분명한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던 담론 속에서 설명한다. 루브르 박물관은 궁전을 개조해 만든 공공미술관의 대표적 사례이다. 저자에 의하면 프랑스의 공공미술관 즉 루브르 박물관에서 관람자들은 미술관이라는 형식 속에 구현된 국가 그 자체와 마주친다.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절대주의의 종말을 상징한다. 프랑스의 부르주아는 절대 왕정을 전복시키고 역사의 주체로 등장했다. 루브르의 전례를 따라 유럽 전역에서 일련의 국립 갤러리들이 설립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이 창립됨으로써 국민적 소장품에 대한 영국민들의 소망이 강화되었다. 영국의 부르주아는 왕과 귀족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영국 의회는 처음에 내셔널 갤러리를 설립하는데 거부감을 가졌다. 내셔널 갤러리를 설립할 경우 군주에게 해방자의 면모를 제공할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1824년 결국 영국에서 내셔널 갤러리가 설립되었다. 영국이 정치 발전을 통해 보편적 가치 아래 통합된 하나의 국민을 상징할 수 있는 최상의 기념물이 갖는 이점들을 깨달았을 때 내셔널 갤러리는 비로소 루브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공공 미술관은 도덕적, 정신적 계몽을 찾아 입장하는 가장 이상적인 차원에서 자기개선적이고 자율적이며 정치적 힘을 가진 남성적 개인의 정체성을 연기하고 의례적으로 수용할 것을 촉구한다.


미국의 경우 부르주아 입장에서 타도할 절대 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공공미술관은 엘리트들에게 명확한 계급적 경계를 제공하는 동시에 계급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 금융 자본가 J. P 모건 등의 기증자 기념 미술관이 주류를 이루었다. 미국의 공공미술관은 미국 금융 자본주의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그것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욕구를 이해한 실력가들에게 기념관으로 작용했다.


그럼 다른 나라들에서 미술관은 어떤 위상을 보이는가? 저자는 현대 미술관의 의례적 각본이 정확히 남성 지향적인 신화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을 비롯한 다른 미술관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현대미술의 역사는 명백하면서 동시에 은밀한 방식으로 남성들을 특권화하기 위해 구축된 구성물이다.


현대 미술관들에 전시되는 그림의 상당수는 여성을 모델로 한 것들이다. 물론 여성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대상으로 그려지고 남성은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저자가 말했듯 광고(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에 의해 구축된 세계와 현대 미술관 내부에서 구성된 세계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미술관의 공간은 한번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임을 선언한다.


다음의 문장을 보자. 물론 모든 것은 관람자가 이들 작품들을 의례적 인공품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그들이 작품, 작품의 표면과 구도와 상징, 그리고 예술적 선택의 다른 형식을 통해 예술가의 정신적, 형식적 투쟁과 동일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224 페이지) 이 문장은 미술관을 싸워볼 만한 공간으로 선언하는 저자의 의도에 잘 들어맞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억압되었다기보다 미학적인 것 속에 숨겨진 도덕적인 것(222 페이지)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이다. 미술관이 의례 공간인 것은 관람객을 특정 이데올로기를 연기하고 그 정체성을 수용하게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고 환상의 공간인 것은 그런 의도를 감추기 때문이다. 던컨의 책은 셀린 들라보의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과 조경진의 예술은 어떻게 거짓이자 진실인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등을 읽고 싶게 한다. 이슈를 던져주는 좋은 책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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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은 남자 - 말 못 한 상처와 숨겨둔 본심에 관한 심리학
선안남 지음 / 시공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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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남 심리 상담사의 책을 접하며 우리 사회야말로 심리학이 필요한 사회라는 생각을 했다. 남자도 여자에 못지 않게 고민과 어려움이 말 못할 정도로 크다는 생각도 함께. 저자가 남자에 대해 서술한 내용들을 보며 나는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는 차이를 통해 설명하는 방식은 도리어 그 차이를 강조하게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기도 하다는 말을 했다. 저자가 언급한 보편성의 그물망에 묶이지 못하는 개개인의 특수한 경험들은 분명 있다.


저자의 책에 언급된 남자들은 내면을 억압하고 선택적으로 함구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나는 사회화가 덜 되어서인지 내 감정 표현하기를 즐기고 장점 못지 않게 약점을 털어놓는 데도 어려움이나 거리낌이 없다. 물론 고백도 나름이어서 기술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듣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표현을 신중히 하고 마음을 다듬는다. 물론 그런 나도 알파걸 앞에 주눅드는 베타보이에 가깝다.


우리 시대는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이다. 이런 현상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다. 고도의 잠재력을 가진 여성들이 여성상과 남성상이 급격히 변하는 시대를 맞아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 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는 잘난 여성 대 못난 남성의 구도로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마음을 가부장적인 관념적 틀에 의존해서 말하기보다는 그 틀에서 벗어나 진짜 내 심정과 욕구를 이야기해야 한다.”(45 페이지)고. 저자는 남자들이 진정 독립하지 못하는 것은 충분한 의존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 말한다. ‘혼자 있고 싶은 남자’라는 제목을 보고 남자에 대해서만 저자의 진단과 처방이 내려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저자는 여자에 대해서도 가짜 독립이 아닌 진짜 독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독립은 경제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남녀 관계에서 여리고 의존적인 면을 보일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독립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결혼을 앞둔 여자가 메리지 블루(marriage)를 느낀다면 남자는 콜드 피트(cold feet)를 느낀다. 전자는 결혼 후에 펼쳐질 육아와 가사노동, 시집살이에 대한 심란함을 반영한다. 이는 과연 이 남자가 평생 나를 보살펴줄 괜찮은 남자인가, 과연 결혼이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란 의혹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후자는 결혼 전 압박감을 느낀 남자가 위기의식을 갖게 된 나머지 차가워진 발을 느끼며 내면 깊은 곳의 “도망쳐“란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하는 사람들 중 하나로 프로이트가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정신분석에 주로 의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릴 적 경험하는 사랑 결핍은 커서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결국 남녀관계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굳이 정신분석이 아니어도 어릴 적의 경험이 성인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프로이트에서의 무의식을 소꿉놀이 같은 것으로 보고 사회, 우주 차원의 스케일이 큰 무의식을 이야기한 들뢰즈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의 성향을 설명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여성은 관계를, 남성은 성취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남성은 성취성을 획득하면 관계성도 확보하지만 여성은 성취성과 관계성이 반드시 함께 하지 않는다. 공부를 많이 한 남자가 결혼을 못할까봐 걱정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공부를 많이 한 여자가 결혼 시기를 놓칠까봐 걱정하는 경우는 많다.


여성들은 성취성과 관계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95 페이지) 남성들은 취업에 실패하면 연애, 결혼, 출산 등등에 줄줄이 실패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시달린다. 저자에 의하면 남자들은 게임에 몰입함으로써, 여자들은 드라마에 몰입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성취로부터의 좌절감을 견디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며 현실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100 페이지)


그렇다면 게임도 드라마도 즐기지 않는 나는 무엇일까? 더구나 나는 스포츠는 좋아하지만 격투기나 혈투가 난무하는 영화를 즐기지도 않는다. 앞서 언급한 ‘사회화가 덜 되어서인지’란 말을 떠올리는데 저자는 그런 과격한 운동과 혈투가 난무하는 영화를 보며 남자가 되어 가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저자는 여자와 남자에게 공히 성취와 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는 남자는 리플리 증후군(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을 보이기 십상이다. 같은 선상에서 나에게는 허세와 과장이 없(어서 좋)다는 옛 선배의 평가가 생각난다. 자신이 너무 특별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 하고,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자기희생을 불사한다.(129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타인의 기대에 대한 건강한 균형 감각을 갖는 것, 그리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것 등이다.


저자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관심을 받지 않아도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사랑받지 못했어도 사랑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것을,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두 특별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정의한다.(137 페이지) 그런데 이는 사랑을 받아본 경험 없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기란 어렵다(83 페이지)는 저자의 다른 말과 상충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했어도 사랑을 주는 것이라 말하지 않고 사랑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것이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 말한다. ”실제보다 과장하는 것은 억지스럽고 축소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162 페이지) 남자들도 반추 사고 때문에 힘들어 한다. 반추 사고란 관계에 대한 과거지향적 되새김질을 뜻한다. 내가 왜 이랬을까? 이러 저러 해서 그런 것일까? 등을 생각하며 후회하고 걱정하는 것으로 이 덫에 빠진 남자들은 자신의 내면과의 전쟁은 물론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는 외적 전쟁에 시달린다.


이 덫에서 빠져 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을 멈추고 행동하는 것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수다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물론 남자에게 허용된 수다의 수치는 낮다. 남자들도 섬세하고 민감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표현할 언어와 기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내 이야기를 즐겨 하지만 주로 여자분들에게 그랬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되새김질은 관계를 더 잘하고 싶고 관계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반성과 성찰, 타인에 대한 배려와 타인을 향한 민감성으로 드러난다. 남자가 민감성을 발휘해주고 부드러운 친밀감과 공감력을 가져주길 원한다면 남자들에 대해 갖고 있던 이중 잣대를 내려놓아야 한다.(191, 192 페이지) 앞에서 들뢰즈 이야기를 했지만 심리학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심리 상태를 해명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왠지 공허해진다. 물론 사회 차원보다 개인이 변하는 데에 초점을 두는 학문이라 보면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다. 저자가 말했듯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회문화적 압력과 태도, 과거에 경험한 감정 인식 및 표현 방식에 좌우된다.(198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남자도 여자처럼 상처에 민감하고 섬세한 존재들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말을 보라 ”모든 남자는 남자이기 이전에 아이였다.“(215 페이지) 이 말은 가부장제는 여자만 억압하고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필연적으로 부여하는 남자다움이라는 압력으로 작용해 오히려 남자들에게 더 큰 상처로 작용하는 반면 그것을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가 남자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진단(218 페이지)과 공명한다. 또한 ”부성(父性) 역시 처음부터 저절로 샘솟는 것이 아니라는 말(253 페이지)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남자들을 너무 남자다움이라는 틀에 가두지 말 것을 주문한다.(222 페이지) 이는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말이다. 부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내가 집중한 부분은 아이와 한 몸이었다가 마음으로 다시금 연결되는 어머니와 달리 처음에 아버지들은 아이를 그저 낯설고 여린 존재로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 말을 접하고 내가 생각한 것은 사람의 감정과 정서는 많은 부분 생물학적 조건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물론 사회구조적인 면에서 아버지(남자)들은 어머니(여자)에 비해 자녀들과 가까워지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나는 남자들도 가부장제 하에서 고통받는다는 저자의 지적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남자들에게 반성적 자기성찰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분노조절장애를 대표적 남성적 심리질환으로, 화병을 대표적인 여성적 심리질환으로 정의한다.(277 페이지) 분노 표출에서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닌 힘의 위계 관계이다.


분노한다는 것은 자기의 경계선이 침범당했다는 신호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분노의 기능을 남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안의 분노를 감지하는 데에 너무 서툴다.(279 페이지) 저자는 화(火)란 마음 어딘가가 불편하고 아프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282 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강도와 방법으로 화를 표현(표출이 아닌)하는 것은 어렵다. 화내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저자의 글에서 장점으로 받아들일 부분은 이해심이다. 개저씨에 대해서도 저자는 사회경제적 맥락을 짚어 이해하는 마음을 보인다. 공감한다. 저자는 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것을 주문한다. 사회가 매듭을 풀 수 없으니 개인이 결단하라는 의미이다. 아니 사회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고립에서 연결로‘라는 의미 심장한,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을 마지막으로 저자의 책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심리학 책을 정독해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읽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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