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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자유가 필요해 - 낭랑 오십 해직 기자 미친 척 남미로 떠나다
우장균 지음 / 북플래닛(BookPlanet)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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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의 시 가운데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찾아 헤매던 프랑스의 처녀가 몸과 마음이 모두 자유롭기 위해 등짐을 지고 떠나 사상에서도,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공부에서도, 친구에게서도 벗어나려고 끝까지 혼자 헤매다가 완전한 자유를 가슴에 넘치게 안은 채 완전무결한 자유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겨울의 어느 들판에서 얼어 죽었다는 ‘자유주의자’란 시가 있다.


‘남자도 자유가 필요해’를 보며 마종기 시인의 시를 생각하는 것은 자유에는 댓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흔이 넘어 해직 기자가 된 뒤 후배와 함께 30일간의 남미 배낭여행을 다녀온 저자가 풀어놓은 자유에 대한 묵직한 단상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우리나라의 대척점에 가까운 곳을 여행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이자 자유(무엇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이지만 더 어렵고 중요한 것은 정념이나 충동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아내는 전화로 해직 소식을 전하자 “아....그랬구나“란 말을 했다고 한다. 마루야마 겐지의 첫 작품인 ‘여름의 흐름’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내와는 너무 다른 반응이다. 이 작품은 사형집행 일을 하는 남자가 아내에게 이제 그 끔찍한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아내가 ”당신은 잘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는 소설이다. 소름 끼치는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행도 나름이다. 나는 저자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한 여행도 용감한 결정이었지만 직장을 그만 두고 얼마 되지 않는 전재산을 털어 세계 일주를 한 젊은이의 여행에 비해서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것이었으리라. 물론 저자의 말대로 남미 배낭 여행은 해직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여행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자유‘를 말하다 해직된 뒤 갖게 된 자유로운 여행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목차를 통해 알 수 있듯 저자가 거친 코스는 1. 에콰도르 키토, 2. 볼리비아 우유니, 3. 페루 나스카, 4. 칠레 산티아고, 5. 칠레 발파라이소, 6. 페루 마추픽추, 7. 페루 카하마르카. 8. 볼리비아 티티카카. 9. 볼리비아 라 이구에라 등이다. 적도(赤道)를 뜻하는 에콰도르에서 저자 일행은 (측량 잘못으로 진짜 적도로 잘못 알려진 곳이 아닌 말 그대로의) 진짜 적도를 찾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는 암스트롱이 달에서 본 아름답게 빛나던 하얀 점이 바로 우유니 소금 사막이라는 말을 한다.


여행기는 목차를 편성하기에 용이하다, 그리고 여행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노하우가 담기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자신의 옛날을 회상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밖에 없다. 가령 저자는 여행지에서 만난 6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의 기이한 여행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저자가 당연히 남미 역사에 대해 상식 이상의 정보들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갔거나 다녀와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공부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남미는 우리와 거리가 멀지만 공감할 면도 가지고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으로부터의 식민 경험이 우리의 일제 식민지 경험과 겹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볼리비아에서라면 내륙국임에도 해군이 있는 볼리비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칠레와의 전쟁에서 영토를 잃고 내륙국이 된 볼리비아는 티티카카 호수(제주도 면적의 4.5배)에서 해군 훈련을 한다. 바다를 면한 땅을 회복할 때를 대비한 훈련이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결국 사람 이야기이다. 저자의 책을 보며 그런 점을 새삼 느낀다. 저자는 우유니 사막에서 척박한 사막에 적응하느라 털이 짧아졌지만 세계 최고의 품질이 된 비쿠냐(사슴류의 동물)를 보고 엘리엇의 ’황무지‘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저자는 문정희 시인이 말랑하고 구수하고 정겹지만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 화려한 뷔페상의 콩떡 같다고 말한 나이인 오십에 남미 여행을 감행한 것이다.


저자는 두고 두고 남는 것은 글이란 말로 글쓰기의 치유 효과까지 언급한다. 칠레에서는 네루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파랄에서 태어나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를 사랑했던 네루다. 저자는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유럽 세력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이기고 그들의 땅을 강탈하는 결정적 계기“로 삼은 카하마르카 전투를 이야기한다. 안데스 고원지대에 있는 페루의 카하마르카(Cajamarca)는 1532년 잉카의 8만 대군이 스페인 용병에게 패한 역사의 현장이다.


”들판에서 어린 양떼“가 죽듯 잉카인들이 도륙된 이 전투 이후 카하마르카는 스페인 도시가 되었다. 스페인에 의해 잉카의 흔적이 지워져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광장 주변 최고 명당 자리에 잉카의 궁전 대신 천주교 성당이 세워진 것은 아타우알파(Atahuallpa: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에게 성경을 들이대며 기독교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고 스페인 군대의 정복활동을 지원했던 교회에 대한 예우일 것이라고.(225 페이지)


역사와 무관한 곳이 없겠지만 남미야말로 역사적 무게를 짊어진 곳이 아닌지? 그러나 무게라고 하기에 카하마르카 전투는 너무 어이 없다. 8만 대군이 용병 168명에게 당한 전투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것도 무게라면 무게이다. 잉카 문명은 문자, 철기, 바퀴, 화약이 없는 문명이었다. 라 이구에라는 스페인어로 무화과나무라는 뜻이다. 49년 전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볼리바아 군이 나무에서 무화과 열매를 따듯 체 게바라를 손아귀에 넣은 곳이다. 잉카의 카하마르카 전투 만큼 가슴 아픈 사건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1928 - 1967)는 볼리비아를 남미 해방의 교두보로 삼았지만 실패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의학박사였던 게바라는 쿠바 재무장관, 쿠바 국립은행 총재, 쿠바 라카바이나 요새 사령관 등을 지냈다. 게바라에게 조국은 아르헨티나만이 아니었다. 게바라는 돈이 없다고 차별받지 않는 나라, 유색인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조국으로 꿈꾸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나오듯 게바라는 넉 달 동안 남미를 여행하며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에게 수탈당하는 인디오와 메스티소의 삶을 목격했다.(281, 282 페이지)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늘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는 말을 남겼다. 게바라는 미국의 지령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재판도 받지 않고 처형되었다. 미국은 국제 여론을 우려해 볼리비아 정부에 게바라가 교전 중 사망했다고 발표하라고 종용했다. 저자는 ’지식인의 종말‘의 저자 레지 드브레(1940 - )가 게릴라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CIA의 고문에 못 이겨 체 게바라 체포에 결정적인 제보를 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추문이 있음을 전한다.


레지 브드레는 나도 읽은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드브레는 스물 다섯에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철학 교수가 된 뒤 체 게바라를 만나러 볼리비아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저자는 자유와 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기본 조건이라 말한다. 가장의 책무를 짊어진 아버지, 아빠에게도 자유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 때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고딕의 록 음악 ’슬픈 역사 이야기’도 아니고 호이징하의 ‘호모 루덴스’이다. 미처 읽지 못한 이 책을 ‘남자도 자유가 필요해’를 계기로 읽으려 한다. 자유라기보다 유희의 의미를 강조한 책이지만 말이다. 여행이 아닌 다른 경로로 얻는 자유 아닌 유희를 만나 활용하는 법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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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으로서의 편집자 (양장) - 현대 독일 프로테스탄티즘과 출판의 역사
후카이 토모아키 지음, 홍이표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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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하이데거(1889 - 1976)란 이름으로부터 우리가 연상하는 것은 무엇일까? 난해한 사상과 나치와의 연관성 등이지만 그가 유고(遺稿)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은 생각하기 어렵다. 유고 정책이란 자신의 작품이나 저작이 후세에 어떤 취급과 평가를 받을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작성하고 편집하는 모든 행위 전략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는 저자 - 독자라는 2자 관계 틀에서 저자 - 편집자 - 독자라는 3자 관계 틀로 전환된 현대의 출판 환경을 말하기 위해 일본의 철학자 후카이 토모아키(1964 - )가 예시한 사례이다.


하이데거가 그렇듯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1886 - 1965) 역시 유고 정책의 시행자였다. 1950년대 망명지 미국에서 독일 출신의 무명 신학자 틸리히의 성공에 한 몫을 한 데에는 편집 역할을 한 번역자가 있었다. 틸리히는 어떤 내용은 넣고 어떤 내용은 뺄지, 제목은 어떻게 지을 것이며 구성은 어떻게 할지 등을 면밀히 구상한 편집자의 도움으로 독일과는 사정이 다른 미국 독자들을 상대로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편집 전략에 따라 틸리히가 쓴 논문의 일부는 완전히 새로운 신작 논문으로 작성되기도 했다. 틸리히는 애덤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는 틸리히에 의해 ‘나 이상으로 나의 사상을 잘 아는 사람’이라 불린 사람이다.


빌헬름 제정기에서 바이마르 시기에 걸친 독일의 신학사상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선보인 저자는 사상이 더 이상 일부 지적 서클의 독점물이 아니게 되었을 때 저자 - 독자라는 공고한 틀이 깨지고 양자 사이에 새로운 지성의 프로모터로서의 편집자가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편집자가 사상가인 경우도 있다. 저자는 비틀스를 발견하고 세상에 내놓(아 성공 가도에 올려놓)은 프로듀서 브라이언 엡스타인(1934 - 1967)을 예로 든다. 저자는 비틀스를 엡스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밴드라고까지 언급한다.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저자의 맥락에서 (분야는 다르지만) 엡스타인은 현대의 출판 시장에 종사하는 편집자들의 선례이자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했듯 지금처럼 모든 것이 시장 거래되는 상황에서 출판사나 편집사의 프로듀싱 없이 그 사상을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독일어로 출판사를 페어라크(Verlag)라 하고 편집자를 페어라거(verlager)라 하는데 페어라거는 단순한 편집자가 아니라 한 상품의 종합 코디네이터였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저자는 사상의 상품화가 운명처럼 되어버린 사회에서 편집자나 출판사가 사상가 및 저자와 대치(對峙)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市場)과도 대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편집자를 대신하는 시장 또는 대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편집자’가 새롭게 사상의 편집과정을 지배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누가 편집자인가를 묻는다. 흥미로운 것은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저자 막스 베버(1864 - 1920)의 경우이다. 저자는 베버가 오이겐 디더리히스(Eugen Diederichs: 1867 - 1930) 같은 카리스마적인 지식의 프로듀서를 동경한 한편 그 존재를 두려워 했다고 말한다.(베버가 두려워 한 것은 디더리히스의 인맥과 정치적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디더리히스는 헤르만 헤세(1877 - 1962)의 데뷔에도 관여한 인물로 “출판이라는 수단을 통해 기존의 사상이나 제도를 파괴하고 새로운 지식(학문)의 틀을 만들고자” 한 출판인이었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디더리히스를 표현주의적 편집자였다고까지 말한다.(디더리히스는 독자 앙케트 엽서를 역사상 최초로 삽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표현주의는 본질을 표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기존의 형식이나 형태를 파괴하려고 한 회화(繪畫)의 한 유파이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학문은 자기 성찰과 사실적 연관의 인식에 따라 전문적으로 영위되는 직업이며, 구원의 양식과 계시를 주는 선견자나 예언자의 시혜(施惠)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미리 인식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디더리히스는 문학(헤르만 헤세), 신학(프리드리히 고가르텐, 칼 바르트 등)이나 종교 뿐 아니라 정신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편집자의 역할을 강조하며 도스토예프스키나 칸트의 저작들을 새롭고 젊은 감각의 최근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하여 이전과 같이 고생하지 않고서도 잘 읽을 수 있게 된 것과, 아침 러시아워 때 열차 안에서 현실을 잊고 꿈속에 있는 듯 멋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새롭게 만들어진 지식(지성)의 산물을 상품으로서 소비하기 쉽도록 보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지식은 신이 내려준 은사(恩賜)이므로 팔 수 없다.“는 중세의 격언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사상은 저자에 힘입어 로고스화하지만, 현대에는 한층 더 편집자에 힘입어 사회화한다고 말한다. 현대는 출판이 교회나 국가의 통제 안에 있었거나 단순한 제본 수준이었던 때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대이다. 저자는 해석자로서의 독자는 저자의 사상과 편집자의 사상이라는 두 사상체계를 하나의 세트로 전달받게 되지만 이것을 식별하기 위한 노력이 분명히 무의식 속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편집인들의 정치적 색에 대해 언급한다. 공산주의와 결별해 있던 (붉은 괴벨스라 불렸던) 빌리 뮌첸베르크(1889 - 1940), 나치즘의 선전 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 - 9145), 중립성을 기본 편집 방향으로 설정했던 로볼트 부자(父子)...‘일러스트 노동자 신문’의 편집인 등으로 활약했던 뮌첸베르크는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자유로웠다. 이를 통해 그의 편집자로서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운동가로서의 그의 유연한 관점은 편집인으로서 일할 수 있었던 동인(動因)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선전(宣傳)과 편집(編輯)을 구별한 사람이었다.


괴벨스는 당시 사람들이 언론과 출판이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해 알려주는 것보다는 매력적인 말과 문장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해주기를 바란다는 점을 강하게 느꼈다. 괴벨스는 이미 일어난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모습을 그려보이는 평론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것을 날조나 유언비어가 아닌 비전 제시라 생각했다. 괴벨스는 편집자의 정체성과 정치가의 정체성 사이에서 어떤 모순도 느끼지 않았다.


에른스트 로볼트(1887 - 1960)는 프란츠 카프카의 재능을 간파하여 출판을 추진했고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세상에 내놓은 편집자였다. 로볼트는 시대를 완벽하게 읽은 편집자였다. 그는 지나친 자유는 대중에게 오히려 불안과 불투명성을 느끼게 해 사회를 급격히 보수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저자는 말한다. 로볼트의 입장은 무정치성이 아니었다고. 로볼트는 책은 시대의 조류 속에 될 수 있는 한 격렬히 비집고 들어가 우에서 좌에 이르는 여러 이데올로기의 물결이 반달 모양으로 그려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출판사가 단순 직업의 인쇄소와 같지 않은 것은 거기에 편집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는 저자가 쓰려고 하는 사상만이 아니라 사상으로서의 편집자로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입장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4장)에서 시장에서 잘 팔리는 책을 만들기 급급한 편집인에 대해 다룬다. 시장(市場)이 마치 편집자와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편집자는 사상의 프로모터임과 동시에 출판이라는 산업에 속해 있는 한 시장원리와 관련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그러나 시장이 역사의 산물이며 사상은 시장에서 소비되긴 하지만 시장을 상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상과 시장, 사상과 대중의 관계를 생각할 때 여전히 유효한 것은 폴 틸리히와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론이다. 틸리히는 대중을 세 유형으로 나누었다. 기계적, 역동적, 유기적 대중이 그것이다. 기계적 대중은 정치적 지배자에게는 단지 조작의 대상일 뿐이다. 역동적 대중은 기계적 대중을 파기해 온 대중이다. 양 유형의 대중은 변증법적이다.


가세트는 대중이란 스스로를 특별한 이유로 평가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모두와 같을 것이라 느낌으로써 주변인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막연하게 타인과 자신이 동일하다고 느끼면서 오히려 기분 좋은 상태가 되는 그런 사람들이 거의 전부란 말을 했다. 가세트가 ‘대중의 반역’에서 주장한 바는 대중은 무지하지도 않고 미련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가세트는 대중의 특징을 익명성, 무명성 등으로 보았다.


저자는 출판사가 경제나 정치라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의 편집자에게 지배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한다.(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떠올려도 될지?) 지난 번 출판 편집인을 위한 강의에서 내가 들은 바를 거칠게 요약하면 출판은 철저히 독자의 입장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강사가 강의했는데 한 분은 표절을 한 누구 누구 작가를 거론하며 그가 책을 내도 여전해 팔릴 것을 예언(?)했다. 고뇌에 시기를 넘기고 운운하며 다시 독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이야기이다.


”시장이라는 이름의 검열“(앙드레 시프린의 표현)이 문제이다. 2009년 일본에서는 미국 동화 작가 아론 셰퍼드의 경험담이 ‘이제 출판사는 필요 없다’는 책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지난 번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들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출판사가 저자로부터 돈(제작비)을 받고 출판을 해주는 시스템(의 도입)이다.


저자는 저자가 편집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장에 접근하는 시스템은 대중이라는 익명의 편집자에게 지배당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우려한다. 우리의 흐름은 너무 흥미 위주로 흐르고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한 문화강의는 깊이보다 넓이를 고려해 한 두 시간에 세계 수십 개 나라를 거론하고 있다.


인기를 얻고 있는 책들은 재미와 간결함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칸트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읽기 쉬운 문체로 재번역하는 것과, 다이제스트판으로 소화하기 편하게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저자는 우리의 삶 속에서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시프린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끝맺는다. 공감한다. 책이 소중하다는 것은 모든 책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중요한 책들을 골라내야 하는 전제하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독서 습관이 경박해진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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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 만들어진 신의 기원에 관하여
이영진 지음 / 홍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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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을 만나면 불가피하게 나는 다니엘 파울 슈레버 생각을 하게 된다.(슈레버는 치매, 신경증, 편집증 등을 앓았던 20 세기 초 독일의 판사로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의 저자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광선을 발하는 거대한 신경망을 통해 자신을 파괴하려던 신과 소통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육체가 여자로 변신하는 환상 등을 고백한 사람인 다니엘 파울 슈레버. 그의 원형이라 할 스베덴보리를 이야기하며 칸트는 그런 소리를 헛소리로 치부하면 중요한 문제를 간과한다는 비난을 받고, 진지하게 반박하면 비웃음을 면하지 못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했지만 내 피난처는 스피노자의 사상 즉 신 즉 자연이다.


스피노자의 신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본원성이라는 어거스틴과 아퀴나스의 신, 이성(理性)이라는 데카르트의 신, 관념이라는 칸트의 신, 합리성이라는 헤겔의 신, 진화라는 다윈의 신, 물질이라는 마르크스의 신, 허무라는 니체의 신, 무의식이라는 프로이트의 신, 존재와 현상이라는 하이데거의 신, 구조라는 소쉬르의 신, 욕망이라는 라캉의 신, 해체라는 데리다의 신 등을 이야기한 이영진 목사의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는 참고 자료로 삼을 만하다. 부제는 ‘만들어진 신의 기원에 관하여‘이다. 저자는 작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향하는 미문(美門) 교회를 설립, 목회를 병행하며 책을 쓰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스베덴보리의 이름을 내가 처음 들은 것은 2009년이다. 칸트(1724 - 1824)보다 한 세대 앞섰던 스베덴보리(1688 - 1772)는 스웨덴의 과학자 출신의 영성 신학자로 칸트는 수백 km 떨어진 곳의 화재 상황을 화면을 보듯 중계한 스베덴보리의 능력에 매료되어 그를 영혼을 보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시령자(視靈者)로 인정하지만 후에 스베덴보리의 능력을 부정한다. 순수이성은 신, 영혼 등을 파악할 수 없지만 실천이성적 관점에서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본 칸트. 열린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스베덴보리라는 아포리아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는 해당 사상가의 사상 중간 중간에 관련 영화 이야기를 넣은 구성이 돋보인다. 중요한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거스틴이 플라톤을 재구성했던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를 신학으로 재구성한 인물”이라는 구절(29 페이지) 등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플라톤: 연역적: 어거스틴적이라는 공식과, 아리스토텔레스: 귀납적: 아퀴나스적이라는 공식을 얻게 된다. 앞서 스베덴보리 이야기를 했지만 칸트는 “경험의 대상이 되지 않는 영역에서 출몰하는 판단과 행위를 회의론자들이 부정의 형식에 대입한 것과 달리 적극 수용하여 변증했“다.(61 페이지)


칸트는 쾌감이란 이성 없는 동물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며 선(善)은 모든 이성적 존재자 일반에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아름다움은 동물적이면서도 이성적 존재자에게 즉 이성적 존재자이면서 동물적 존재자인 인간에게 적용된다고 보았다.(’판단력 비판‘) 칸트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두려움으로 정의했다. 이 두려움이란 자연을 만났을 때의 감관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을 통해 놀라고, 그 놀라움을 타고 들어온 미적 쾌감을 통해 비로소 즐거움에 이른다.(73 페이지) 저자가 헤겔의 합리성을 설명하는 데 든 영화는 톰 후퍼 감독의 ’레 미제라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장 발장인데 발장은 성(姓)이고 장은 이름이다.


마르크스의 신 즉 물질은 다소 논쟁적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칼 마르크스에게 종교란 아편이다. 그것은 그가 보기에 관념으로 이루어진 착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메시아는 관념이 아니다. 철저한 인성 즉 물적 토대에 기인한다. 이것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라 하였다.“(129 페이지) 저자가 말하는 확실한 물적 토대에 기인한 것은 십자가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그리스도교를 관념적이라 말하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물적 토대에 기인한 십자가를 못 보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관념적 해결책을 구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니체를 이야기하며 저자가 거론한 것 즉 ”근대 이성주의 과학은 그리스도교적인 도덕은 존재하지도 않는 초월적 가치 위에 성립“(141 페이지)되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를 관념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니체는 허무주의 시대에 신뢰할 만한 가치기준을 잃고 주춤거리는 소극적 허무주의와 달리 적극적 허무 즉 영원회귀를 할 것을 주문했다. 그 과정을 통해 초인이 되는 것이다.(관념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는 ”종교는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과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은 우상을 제거하는 의미로 발(發)해진 말이지만 프로이트의 ”의심“은 그들과 달리 자기 우상을 제거하는 공적(功績)이 있다고 말한다.(159 페이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나는 의식할 때(노에시스) 의식된다.“(노에마)는 현상학의 명제와 다르다. 하이데거는 우리는 (플라톤의 생각과 달리) 천상에서 하계(下界)로 내던져졌기 때문에 불안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자의와 상관없이 내던져졌다는 의식으로 인한) 불안감을 통해 존재한다고 보았다.(174 페이지. 피투성: 被投性)


피터 위어의 영화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은 스튜디오라는 갇힌 공간에서 탈출하고 뛰쳐나와야만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 내에서 이미 불안감을 통해 자신을 내던져진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존재가 된 것이다. 하이데거는 사물의 존재는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파악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세계 속에서 갖는 지위 즉 세계의 총체적인 도구적 연관 속에서 탈은폐되는 순간 저절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소쉬르의 신 구조에서 저자는 랑그와 파롤을 이야기한다. 오순절에 방언(方言)이 터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늘의 언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교도의 악령의 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전하며 이는 방언이라는 시니피앙이 지닌 시니피에를 오독한 데 따른 결과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이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그것을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으로 유비(類比)한 것이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대두된 남근을 생물학적 성의 기관이 아닌 일종의 기표로 제시했다.(211 페이지) 이는 남근이 남성성에게는 아버지 되기이며 여성성에게는 이성의 선망이라고만 정의되는 한계에 대한 보충이다.


라캉은 성적 결합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욕망에 관한 문제의 답에 착안한 것이다. 라캉은 주체는 결핍이고 욕망은 환유적이라는 명제를 도출했다.(환유는 그것이 지닌 속성과 밀접한 다른 관계를 지닌 것을 빌려 나타내는 수사학 방법이다. 은유란 어떤 사물의 표현을 빌려 그 의미를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다.) 마지막 장은 데리다의 신 해체이다. 이 챕터에 인용되는 영화는 ’시네마 천국‘이다.


데리다의 해체는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특별한 것은 언어에 대한 해체이다. 그의 에크리튀르는 글씨, 필적 등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단어이지만 데리다는 활자로 된 문자로서의 글씨라기보다 흔적과 자국의 의미로 채용했다. 에크리튀르는 원저자가 처했던 상황을 보존하고 있는 개념으로 저자가 사라지면 문맥도 사라지겠지만 데리다는 오히려 그렇기에 그것은 반복된 읽기의 가능성으로 열린다고 보았다. 데리다는 반복 가능성을 지닌 (문자적) 에크리튀르야말로 우월한 언어라고 역설했다. 데리다가 음성언어에 반하는 언어로서 제시한 에크리튀르는 해석학상의 궁극적 언어인 소리로서 언어의 기능을 연상시킨다.(23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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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 스케치북
존 버거 글.그림, 김현우.진태원 옮김 / 열화당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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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닉네임인 ‘벤투의 스케치북’은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의 ‘벤투의 스케치북(Bento's Sketchbook)‘에서 따온 이름이다. 벤투는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약칭이다. 벤투는 스피노자의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바루흐 스피노자라 불리기도 하는데 스피노자는 유대교로부터 파문(破門: herem)당한 뒤 이름을 히브리어 바루흐에서 라틴어 베네딕투스(벤투)로 바꾼다. 스피노자에 대한 회고에 의하면 스피노자는 드로잉을 즐겼고 스케치북을 들고 다녔다. 그러나 그림은 발견되지 않았다.


‘벤투의 스케치북’은 스피노자의 드로잉이 있는 스케치북을 발견하는 상상을 한 존 버거의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원래 네덜란드인들은 모두 타고난 화가“(나카노 교코 지음 ‘미술관 옆에서 읽은 인상주의’ 55 페이지)라는 말이 있다. 특히 17 세기 황금시대에는 시민계급이 미술 수집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17 세기(1632 - 1677)를 살았던 철학자이다. 얀 페르메르, 헤라르트 다우 등이 스피노자와 동시대 화가들이다. ‘그랑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의 화가 조르주 쇠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에서 시가 보인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오직 과학이 보일 뿐이라는 말을 했다.


일치의 어려움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런데 존 버거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이끌어 가는 어딘가, 또는 그 무언가에 대한 인식을 자신과 벤투가 공유했다는 말을 한다. 버거는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다.(15, 17, 20 페이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을 구체화하기 위해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행위자 자신들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작용은 굳건함과 연결시키고 다른 이들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작용은 관대함과 연결시킨 스피노자를 소개한다.


이 부분은 ‘에티카’ 3부, 정리 59의 주석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이 주석 마지막 부분에 우리는 외부 원인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휘둘리고 출구도 모른 채, 운명도 모른 채 동요(動搖)한다는 글이 있다. 스피노자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능가하는 외부의 무한한 힘으로 인해 정념(情念)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저자는 ”운명에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을까. 운명에 종종 기하학 단위 같은 규칙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표현할 명사는 없다. 드로잉 한 점이 명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확신이 없다“고 말한다.(71 페이지)


스피노자는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실재들과 결합할수록 그 이미지는 더 자주 생생해진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저항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은 저항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모욕적이고 너무 왜소해지고 죽은 것처럼 되기 때문“이라고. "저항은 영(零)으로, 강요된 침묵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전 세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숨어 있는 본질을 강조하는 서사를 지닌 이야기, 다른 하나는 드러난 것을 강조하는 서사를 지닌 이야기이다.


스피노자는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기쁨에서 생겨나는 욕망이 슬픔에서 생겨나는 욕망보다 더 강하다는 말을 했다.(‘에티카’ 4부, 정리 18) 저자는 “모터사이클을 타러 오셨나요, 벤투? 모터사이클과, 당신이 깎은 렌즈가 들어간 망원경을 직접 비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몇몇 공통점이 있지요. 둘 다 목적지를 잘 찾아야 하고, 둘 다 거리를 줄여 주고, 둘 다 관심의 터널이 되며, 속도감을 줍니다.”라고 말한다.(117 페이지) 저자는 오랜 세월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과 드로잉을 하는 것 사이의 어떤 평행관계에 매혹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라봄으로써 더 가까이 가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습관적으로 혼란에 빠지며 그것을 마주함으로써 종종 어떤 분명함을 얻기도 한다고 말한다. 스피노자가 그 방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세 가지 형태의 지식에 대해 서술했다. 소문과 인상에만 근거하여 전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제 멋대로의 지식, 적절한 개념을 활용하며 사물의 성질에 집중하는 지식,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는, 그리하여 신에게 이르는 지식. 저자는 드로잉을 무언가를 지향하는 실천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드로잉을 무언가를 꼼꼼히 살피는 형식으로 정의하며 그림을 그리는 본능적인 충동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욕구, 점을 찍으려는 욕구, 사물들과 자신을 어딘가에 위치시키려는 욕구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146 페이지) 저자는 드로잉을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그때만의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며 매번 드로잉은 예측할 수 없는 그때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드로잉은 비슷한 상상력의 작동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157 페이지) 스피노자는 자신이 최상의 철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참된 철학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말을 했다. 스피노자가 행했고 존 버거가 정성들여 서술한 ’그림‘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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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카페에서 읽는 인상주의 - 모네의 빛에서 고흐의 어둠으로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이봄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빅뱅, 바로크 등의 말이 조롱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듯 인상주의도 조롱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이 그림은 대체 뭘 그린 걸까? 벽지라도 이 그림보다는 낫겠다. 필시 이 그림에는 인상이 듬뿍 담겨 있으리라...”처럼. 이 그림이란 모네의 ‘인상, 해돋이’이고 그런 혹평을 받게 된 것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려다 보니 붓질이 빠르고 거친 데다가 간혹 칠하다 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상이란 말은 인상비평 등의 말을 통해 만날 수 있는데 이는 물론 부정적이다.


인상주의도 여러 가지여서 하나로 묶을 수 없다. 고흐는 인상주의로 분류하기에는 너무 독창적이었고 세잔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좇다 보면 인간과 사물의 형태가 불명확해진다는 점을 용인하지 못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상(印象)을 시뮬라크르(사건, 이미지, 감성적 언표 등등)에 비유할 만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림을 문학으로부터, 역사로부터, 신화로부터, 주제로부터 떼어내 독립시키려 했다. 인상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데생이 변변치 못함을 지적한다. 화법에 집착하여 주제를 버리다 보니 그림에서 이야기, 나아가 정신성까지 사라져 버려 식상하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근대’를 그렸다. 인상주의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두 가지 기술은 튜브 물감과 사진 기술이다. 튜브 물감 이전 시대인 16세기에 활약했던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90 - 1576)는 워낙 톡특한 붉은 색으로 그림을 그려 그가 사용하는 색은 피를 섞어 만든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인공 염료와 달리 당시의 물감은 금방 굳어 버려 사용할 만큼 매번 새로 준비해야 했다. 공방들마다 제조 기법이 달라 미묘한 색조 차이도 두드러졌던 시대이기도 했고.


J 모 시인의 신간 시집을 “심장의 피를 비커에 받아 가을 햇살로 우려내면 저런 숨 타는 소리가 나올까 싶은 시편들로 빼곡”한 시집으로 표현한 K 시인의 말을 접하며 문득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일화를 떠올려 본다. 사진의 경우도 흥미롭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화가처럼 움직이는 대상을 잡아내려 했지만 손이 흔들려 화면이 흐려지거나 프레임이 흔들려 예상 밖의 영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프랑스 제2 제정기(1852 - 1870)는 인상주의의 여명기와 겹친다. 에밀 졸라는 왕성한 미술평론가이기도 했다. 마네, 세잔, 드가, 모네 등과 친하게 지냈고 대중이 인상주의 회화를 수용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인상주의가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봉오리를 피우고 마침내 커다란 꽃송이를 활짝 피어올린 때는 1870년대 말부터 1900년 사이였다. 산업혁명의 시대, 빛나는 근대화의 시대, 영광스러운 유럽의 시대였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대부분 파리의 거리를 캔버스에 담으려 했다.


거리 이야기가 나왔기에 하는 말이지만 당시에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에 해당하는 기획이 있었다.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 사업의 중요한 목적은 맹렬한 기세로 지방에서 유입되는 빈민(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진)들을 일소하는 것이었다. 빈민을 중심부에서 몰아내려면 땅값을 올려 부자만 살 수 있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는 육체 노동자의 실상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모양새는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한 것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신화, 성경 등의 내용에 주목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것에 육체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일하는 여성은 빈번하지는 않지만 그림 속에 등장했다. 인상주의 화가들 중 로트레크, 고흐 등이 압생트 중독이었다.(20세기 초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되었는데 오늘날 압생트와 전혀 다른 술이다.) 인상주의 화가 가운데 드물게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 - 1895)가 등장한다. 여자는 자유롭게 외출도 할 수 없었던 시대의 화가로 그로 인해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 주변 풍경들만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사소설 외의 것을 쓸 수 없게 강제된 소설가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로트레크가 반 고흐의 그림을 헐뜯는 사람을 때리려고 덤벼들었다는 에피소드와 고흐에게 남프랑스 아를로 가라고 권유했던 사람도 로트레크였다는 이야기도 흥미 거리이다. 고흐는 초기 작품만 보면 이런 그림으로 잘도 화가가 되려고 했구나, 하고 아연해질 실력이었음을 생각하면 악착 같이 밀어붙이면 사람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견본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흐는 자연광을 있는 그대로 붙잡으려 했던 모네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고흐의 색채와 모네의 색채는 너무 다르다.


서양 회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 2차원의 화폭에 3차원 입체를 구현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골똘히 궁리했는데 아예 그것을 문제삼지 않은 우키요에의 경쾌함과 자유로움이 고전의 속박에서 빠져나오려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인상주의와 미국은 깊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롭고 젊은 미국이 프랑스 문화를 사랑(해 그림들을 구매)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새로운 화가들이 한껏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미국의 덕을 보았으면서도 벼락부자라 해서 경멸했다.


인상주의 회화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밝고 화사한 화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좋은 기분 좋은 분위기, 위로를 주고 지식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특성 등을 지녔기 때문이다. 물론 재해(災害) 장면을 보며 그저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 그림을 그리는 것은 독(毒)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그럼에도 아름답다’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독(毒)이자 매력이라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역사적 지식, 문화사적 배경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 그림을 이해하는 데 필수라는 점이다. 그래야 올바른 설득력 있는 감상을 즐길 수 있다. ‘미술관 옆 카페에서 읽는 인상주의’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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