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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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결혼.여름>은 어쩌면 요즘처럼 여름이 무르익는 계절에 읽기 좋은 책일지도 모른다. 알제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성장한 카뮈가 아직 무명작가이던 시기에 쓰인 이 에세이집은 청년 카뮈의 사유가 담긴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지만 당시의 카뮈는 여러 도시를 직접 여행하는 동안 육체가 감각하는 이 세계를 인식하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삶에 대한 은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고백하는 글들을 여러 편 남김으로써 부조리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렇다, 나는 현존한다. 지금 이 순간 놀라운 건, 내가 더 이상 더 멀리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종신형으로 갇힌 사람처럼 - 그에겐 모든 것이 현재다. 또한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것이며 다른 모든 날도 마찬가지이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의 현존을 인식한다는 것은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영혼의 상태를 드러내는 풍경이 있다면 더없이 천박할 것이다. 해서 나는 이 지역 곳곳에 걸쳐, 내 것인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에게 공통된 죽음의 맛과도 같은 이 지역의 무언가를 뒤따랐다. 이제는 그림자가 사선으로 드리운 돌기둥들 사이로 불안한 기운이 마치 상처 입은 새처럼 대기에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에 깃든 이 불모의 명징성. 불안은 산 자들의 가슴에서 싹튼다. 하지만 고요가 이 살아있는 가슴을 뒤덮으리라. 이것이 내 통찰의 전부다. 해가 점차 기울어가고 소음과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잿가루에 덮여 잦아듦에 따라 스스로에게 배제된 나는, 내 안에서 '아니야'라고 말하는 저 느릿한 힘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p.34)


꽤나 힘든 삶을 살았던 카뮈는 그의 곁에 늘 '죽음'을 두고 살았던 듯하다. '명징한 의식을 끝까지 간직하여, 넘쳐나는 내 모든 질투와 공포와 함께 나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다.'고 썼던 카뮈는 1960년 결국 자동차 사고로 그의 삶을 마감함으로써 그의 최후에 대한 바람마저 이루지 못했지만, 결국 죽을 운명인데 왜 태어났으며, 왜 살아가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어떤 사람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낙천주의자로 살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넘쳐나는 질투'를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카뮈는 어쩌면 알제의 여름처럼 그의 행복을 젊은 나이에 모두 소진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처럼 그의 삶은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불태우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진실'만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보에 찬동하기 위한 이성도 그 어떤 역사 철학도 믿지 않지만, 적어도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면서 부단히 발전해 왔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조건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보다 더 잘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순을 안고 있지만 모순을 거부해야 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응당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의 임무란 자유로운 영혼들의 끝없는 불안을 가라앉힐 몇 가지 처방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야 하고, 너무도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를 꿈꿀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며,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초인적인 과제다. 하지만 인간이 완수하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을 초인적인 과제라 일컫는 것이고, 그뿐이다."  (p.118)


카뮈의 글에 매료되는 까닭은 그의 글이 때로는 선동적이고, 때로는 진지하며, 때로는 철학적이고, 아주 가끔 시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의 희로애락을 조율하듯 그가 쓰는 한 편의 에세이 안에서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을 적절히 배합하고 있는 것이다. 배를 타고 긴 여행길에 나선 어느 여행자의 감성으로 우리는 깊은 시름을 밤바다에 던져버릴 수도 있고, 쏟아질 듯 빛나는 뭇별에 탄성을 쏟아낼 수도 있다. 대문호의 글에는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현학적인 문장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카뮈의 에세이집 <결혼. 여름>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가볍게 무너지고 만다. 그의 글은 너무나 감각적이고, 그럼에도 그의 글은 끝에 도달할 수도 없는 깊은 철학적 사유를 제공한다.


"달이 솟았다. 달은 우선 해수면을 어렴풋이 비추고는 더 높이 올라가 부드러운 물 위에 글을 쓴다. 마침내 중천에 이른 달이 바다의 통로 전체를 환히 비추며, 하늘에 흐드러진 은하수가 배의 움직임과 더불어 캄캄한 대양 속의 우리를 향해 무한히 흘러내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요란한 빛과 알코올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절히 불렀던 충실한 밤, 신선한 밤이다."  (p.182)


카뮈의 에세이집 <결혼.여름>을 읽는 독자들이 책에 밑줄을 긋고, 책을 읽은 느낌을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 가까운 이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하는 등 지금 막 출간한 책인 양 각별한 애정을 쏟는 까닭은 그의 생각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시대를 관통하여 현대인인 우리에게 전달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라,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뮈 자신이 나의 생각은 이렇다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그가 지녔던 삶의 철학을 배우고 각자의 삶에서 실천하고 싶은 욕구가 불끈 솟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불운일 뿐이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라고 썼던 카뮈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 모두는 이 불행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썼던 노희경 작가의 에세이도 떠오른다. 우리는 점점 한여름의 무더위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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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느긋하고 고즈넉한 풍경입니다. 거실 창문을 닫고 약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은 탓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상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끌어들인다면 지금의 뽀송한 공기 속으로 습하고 텁텁한 알갱이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어 이 기분을 단박에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여름에 내리는 비는 습기와 텁텁한 느낌을 대기 중에 과도하게 주입함으로써 비 내리는 풍경으로부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은 사라지고 원인도 알 수 없는 짜증만 한껏 포집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쾌지수라는 건 아마도 그런 것일 테지요. 낯섦이 주는 상쾌함과 신선함은 온데간데없고 괜한 짜증만 차오르는 것 말입니다.


3월 말에 군을 제대한 아들은 1달 이상의 긴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꽤나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곧 있을 복학을 준비하면서도 말이죠. 얼마 전에는 에어컨 청소와 커튼 세탁을 하더니 요즘은 곧 있을 사진 전시회 준비에 열심이기도 하고, 같은 과 친구와 함께 전공 분야의 공모전도 준비하는 듯합니다. 나는 아들에게 이따금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단지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하지 말거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설령 내가 나중에 늙고 병들어 네가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올지라도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이라는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곤 합니다.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의 인생을 방해하거나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 게 나의 지론입니다. 그로 인해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을지라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너의 인생이라고.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종종 나타나지만 그때마다 한 번쯤 '이게 과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보영 작가의 소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이 소설은 애초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메일을 받은 데서 소설 집필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메일의 내용인즉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할 예정인데, 남편과 아내 모두 팬이니 프러포즈용 소설을 써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프러포즈를 하면서 낭독할 용도로요.' 소설은 그리하여 열다섯 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얇고 단순한 구조일 수도 있는 이 소설이 편지라는 특수한 전달 도구를 만나 꽤나 큰 시너지를 창출하는 듯합니다.


"나는 나이를 먹었어. 하루에 하루씩, 한 달에 한 달씩, 한 해에 한 살씩, 시간을 몸에 쌓으며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10년 전보다 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어. 몇백 년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어. 내일은 하루만큼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내년에는 또 한 해만큼 그렇게 될 거야." (p.87)


서서히 비가 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의무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에 매달리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는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던 한 사람으로서 후회가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반 여건만 허락한다면 굳이 그런 의무감으로 자신의 삶을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슴 뛰는 일만 하면서 살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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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시리즈 82
박수영 지음 / 제철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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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주는 첫 감각은 언제나 지난밤에 먹은 야식으로 인한 팅팅 불은 부기와 한껏 둔한 감각이 주는 답답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푸석푸석한 감각에 어느 정도의 매끈한 생명력이 도는 데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밤새 멈춰 있던 기계에 윤활유를 치는 시간이랄까. 그러나 그 시간은 늘 비슷하거나 한결같은 짬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세월이 갈수록 지체되거나 늦어진다. 말하자면 내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그 짧은 시간의 답답함을 나는 수십 년 동안 줄곧 지켜보면서 하루하루의 내 삶을 연명해 왔다. 하루를 살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그 시간, 어쩌면 내 몸의 중심추를 맞추는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무리 없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벽은 익숙한 곳에서만 귀한 시간인 걸까. 집에선 새벽이 끝나가는 게 늘 아쉽기만 했는데. 물론 그건 새벽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아침을 기다릴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아침이 온들 오늘도 가난하기밖에 더 하겠나, 빚밖에 더 늘겠나, 그런 생각만 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오사카의 퀴퀴한 숙소에 누워 아침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니. 여행용 가난이 오사카까지 따라온 게 분명했다."  (p.53)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아파트 인근의 산에 올라 몸을 풀고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게 그 일차적인 목적이다. 말하자면 나는 비싼 생명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되지 않는 탓에 매일매일의 규칙적인 운동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는 동안 내 몸을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관리하려는 게 나의 바람이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새벽은 늘 그런 바람과 목적으로 채워진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 씻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서두른다. 변하지 않는 나의 새벽 루틴은 마치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로봇의 움직임처럼 단조롭고 칙칙할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말이다. 그러나 매일매일이 조금씩 달라지는 숲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누구보다도 먼저 계절을 감지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자부심은 내게 있어 크나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박수영 작가의 에세이 <아무튼 새벽>을 읽으면서 나는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들의 기분도, 하는 일도, 목적도, 그 시간에 깨어 있는 이유도 각자가 다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했다.


"새벽인데도 기온은 떨어질 기미가 없고 습한 기운까지 가득 차서 두 걸음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였다. 그런 날이면 더 많은 쓰레기가 길 위에 버려지는 것 같다. 카페 앞에 버려진 일회용 커피 컵 안에는 대부분 얼음이 녹아 탁해진 물과 담배꽁초, 휴지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컵들이 모여 있는 벤치를 쓰레기통으로 인식했고 환경공무관은 새벽마다 쓰레기통을 벤치로 되돌려놓기 위해 그 속에 든 오물들을 일일이 건져냈다. 바닥을 더럽히는 사람들은 바닥 닦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건 웨딩홀에서 배운 뼈아픈 진실이었다."  (p.129)


영화배우가 꿈이었던 작가는 학교에 지각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새벽까지 영화를 보고, 일기를 쓰고, 새벽 어스름에 자신의 비밀을 숨기던 소녀였다. 이십대가 된 작가는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언니와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학창 시절과는 다른 느낌의 새벽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아빠를 보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그 새벽에 녹아 있었다. 이렇듯 작가에게  새벽은 자신의 감정이나 비밀을 마음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기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새벽은 '잠들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잠들 수 없는 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새벽을 사는 다른 생명체를 돌아보게 된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챙기고, 아픈 고양이 후디를 돌보고, 새벽 배송 기사와 환경공무관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새벽은 작가에게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감각된다.


"후디를 구조한 뒤에도 새벽이 되면 바깥으로 나갔다. 화단 안쪽이나 건물 틈새에 설치해둔 급식소를 들키지 않으려면 새벽의 도움이 절실했다.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의 유일한 단점은 들고 나는 모습이 오히려 눈에 잘 띈다는 것이라 인적이 없는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앞에서 누군가 담배를 태우거나 전화 통화라도 하고 있다면 그날의 계획은 실수로 건드린 도미노처럼 몽땅 쓰러져버린다. 그러니까 새벽 순찰은 도미노 블록을 일일이 본드로 붙이는 작업인 셈이다. 후디가 가르쳐준 다소 번거롭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새벽을 이용하는 것."  (p.99~p.100)


오늘도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쓰레기장을 정리하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파트 후문의 이면도로를 건너 산에 올랐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청설모 한 마리가 등산로에서 무언가 주워 먹다가 그 모습을 내게 들킨 듯 잰걸음으로 후다닥 자리를 뜨고, 어제 잠깐 내린 소나기 탓인지 등산로에 떨어진 밤꽃이 어지러웠다. 새벽 풍경은 이렇듯 매일매일이 다르다. 작가와는 다르게 단지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새벽 시간을 보내고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새벽은 다른 기억으로 채워질 터, 내가 보았던 오늘의 새벽은 서둘러 일터로 향하는 어느 트럭 기사의 모습과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부지런한 일꾼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어딘가 모르게 분주하고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6월, 아무튼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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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정치판에 뛰어들고픈 야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달리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격언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지금처럼 딱 들어맞았던 적이 있을까 싶다. 사실 우리나라의 보수 정당은 개개인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할 뿐 신념이나 가치관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이익만 된다면 웬만한 일로 분열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보 정당의 경우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이 일어나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신념이나 가치관 혹은 도덕성의 기준에 따라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치적 약자의 입장에 있을 때, 더욱 강하게 뭉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보수 정당은 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였을 때, 나눌 수 있는 돈과 권력이 많지 않은 까닭에 특별한 정치적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리멸렬하거나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성향으로 볼 때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공히 그들이 자체적으로 분열할 공산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 놓여 있다고 할 것이다.


최근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의 내부 움직임을 보면 그런 양상이 명확해진다. 그들의 자체적인 분열을 획책하고 유도한 것이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쪽의 계략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중대한 이권이 걸린 검찰과 언론의 움직임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민주당 내에서 당권에 도전하는 신흥세력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한 졸렬한 계획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대해진 민주당의 분열을 획책하기 위한 적정한 시점과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유도했던 어둠의 세력이 의도한 바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사실 행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명실공히 여당으로서의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거대 권력을 잡았던 선례가 없다. 그런 까닭에 정당 구성원이나 지지자들 대부분은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그런 안일한 생각이 당내의 권력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위기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장밋빛 미래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의 민주당을 분열로 이끄는 것은 너무도 쉬워 보인다.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확실한 차기 대선주자나 명망 있는 정치비평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확실하게 그들의 의사를 전파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나 단체만 제거한다면 민주당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비열한 방법이라고 하겠지만 언제나 이인자인 누군가 또는 그 아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누군가를 부추겨서 '일인자인 아무개만 제거하면 당신이 곧바로 일인자가 되는 거야'라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구슬리거나 약간의 돈과 권력으로 그들을 유혹한다면 만년 이인자인 그들을 너무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 1위로 부상했던 조국을 제거하였고, 진보진영의 잔잔바리 유튜버들로 하여금 빅 스피커인 김어준과 최욱을 공격하게 하여 매불쇼가 휴방을 결정하도록 종용하였고, 가장 영향력 있는 유시민 작가를 공격함으로써 노무현 재단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였다. 이런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여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처음에는 청년재단 이사장인 오 씨의 개인적인 일탈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잔잔바리 유튜버들의 동시다발적인 공격과 그것으로 인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실망과 배신감 또는 치욕 등의 감정은 봉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하고 말았다. 30년 이상 민주당을 지지하고 언제나 그들에게 표를 몰아주었던 나도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내가 반대 진영의 국민의힘을 지지할 리는 없지만 민주당은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 게 사실이다. 그들 역시 국민의힘과 하나 다를 게 없음을 이번 사태를 통하여 확인했다. 민주당 당원은 아니었지만 내 주변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오던 사람들 역시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통령 지지율이나 민주당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된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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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살이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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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깊은 사유와 철학적 고뇌가 담긴 문장 또는 문학적 은유나 통찰을 담은 문장은 대중의 지지와 선택을 받기 어렵다. 소수의 선호층만 존재할 뿐 대중으로부터의 폭넓은 인기는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그러므로 좋은 책일수록 읽는 사람이 적고, 대중으로부터의 관심은 멀어진다. 이와 같은 역설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까닭에 작가의 체력을 소진하는 측면이 있다. 현대인의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책을 쓴다는 것은 작가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런 까닭에 독자가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과 안목이 필요하다.


"전에 마음에 드는 어려운 책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은 북서 해안에 있는 한 섬에서 보낸 사흘 동안을 묘사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한 섬에서 시작했다가 글의 대부분을 다른 섬에서 썼다. 그 책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의 상당 부분은 시로 쓰였다. 책의 주제는 '영원과 시간의 관계' 그리고 고통받는 무고한 사람들에 관한 문제였다. 한때는 그것을 산문으로 펴낼 작정도 했었다. 그러나 산문이 너무 강렬하고 강조되는 바람에 산문으로 묘사하는 세계에 너무 많은 의미가 함축됐다. 그래서 한두 단어를 더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졌다. 나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 작품에 어떻게 매일 한 문장이나 한 문단을 덧붙일 수 있을까? 글의 어조는 격하고 들떠 있었다. 그것이 놓여 있는 방 쪽을 바라볼 때마다 졸렸다."  (p.79~p.80)


애니 딜러드가 쓴 <작가살이>는 글 쓰는 이로서의 작가가 갖게 되는 고뇌와 생활 방식 등 작가의 삶 전반에 대해 쓰고 있다. 글쓰기의 기술과 요령을 다루는 책은 많지만 글을 쓰는 주체인 작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쓴 책은 흔치 않았던 까닭에 애니 딜러드가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꽤나 흥미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글 쓰는 이의 환경과 생활 방식, 글로 쓰이는 대상(사물, 타인, 때로는 자신)과의 교감, 의식의 흐름과 통찰력, 작가로서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열정과 깨달음 등을 매우 솔직하게 들려줌으로써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나 기성 작가들에게 다소나마 힌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가는 세상이 아니라 문학을 공부한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상을 놓칠 수가 없다. 햄버거를 사거나 비행기를 타면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보고한다. 그는 자신이 읽을 책을 주의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그가 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배울 것을 조심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자신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12)


독자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작업이니 체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작가의 체력이 떨어지면 그가 쓰는 글은 그에 비례하여(때로는 그 이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예컨대 젊은 시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시로 씀으로써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김지하 시인도 말년에 이르러서 글을 쓰지 못할 처지에 처하자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고, '철도원 삼대'를 썼던 황석영 작가 역시 그의 작품이 형편없어지자 유튜브에 출연하여 엉뚱한 사설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노화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작가 역시 늙어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글 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자신의 체력을 꾸준히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 작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체력적으로나 시간관리의 측면에서나 다른 작가의 모범이 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실로 존경스럽기만 하다.


"글 쓰는 이는 지붕 너머를 바라보거나 구름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긴 사다리를 오른다. 그는 책을 쓰고 있다. 신발 신은 발이 한 번에 하나씩 둥근 발디딤대를 딛는다. 그는 서두르지도 쉬지도 않는다. 그의 발은 가파른 사다리의 균형을 느낀다. 허벅지의 긴 근육이 사다리의 동요를 막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할 일을 하며 꾸준히 오른다. 끝에 도달하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햇빛이 그에게 쏟아진다. 밝고 광활한 광경에 그는 놀란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아래쪽 풀밭 위에 놓인 사다리의 두발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기겁한다."  (p.39~p.40)


한낮 더위가 한여름의 그것처럼 무섭다. 바야흐로 체력이 중요한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더위에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체력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도래한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늘과 같은 더위에도 지쳐 자신이 할 일을 마저 하지 못한다면 장마 뒤에 찾아오는 무더위에는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작가의 글도 이와 같아서 체력이 떨어진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금세라도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 기운이 없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이 맘에 들어 꾸준히 팬을 자처하던 내가 이제는 도저히 더는 읽을 수 없을 듯하여 포기하게 된 작가도 여럿이다. 하루키도 언젠가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슬픈 현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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