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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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보다는 과정이 궁금해지는 소설이 더러 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말을 미리 보고 싶지 않은 까닭일 수도 있다. 그런 소설일수록 소설의 서사는 매우 느리게 전개된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어떤 특별한 사건 사고도 없이 지루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독자로서는 다소 불만일 수도 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독자가 예측하는 뻔한 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야기의 흐름에 인위적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듯한 전개와 구성. 작가는 실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 소설 어디에도 일부러 꾸민 듯한, 작위적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단박에 작가의 팬이 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가 컸다.


"학교 교육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공부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실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학교는 인간 형성을 목적하는 곳이라는 듯이 운영되는 것도, 다루기 편한 인간을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일 터다. 교과서에 쓰여 있는 일 따위, 하룻밤이면 뒤집힌다. 게다가 대학 입시를 위해서 입시학원에 다니고,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저주가 걸린 것일까 불쌍해진다."  (p.50)


대학 입시와 서열로 얼룩진 남자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가오루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며 학교 밖 청소년이 되고 만다. 결국 그의 아버지 고이치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서 재즈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가오루의 작은할아버지 가네사다에게 가오루를 맡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는 가네사다 씨는 2차 세계대전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종전 후 귀환한 귀환병이다. 그러나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였지만 가족은 물론 가까운 이웃들조차 그를 '빨갱이' 또는 '공산주의자'라며 색안경을 끼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그는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리하마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재즈 카페 '오부브'에는 함께 일하는 직원 오카다가 있다. 가오루가 머무는 여름 동안 오카다 씨와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게 된 가오루.


"복원하고 거절당했을 때부터 가네사다는 친척이라는 것에 대해 거듭거듭 생각했다. 오 년 지나고, 십 년 지나고, 이십 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친척이란 커다란 바다에 나타난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조류나 바람에 뒤틀리는, 수동적으로 태어난 우연의 주름 같은,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계도는 종으로뿐 아니라 횡으로도 확대되어 간다. 그 확대는 세로 방향이든 가로 방향이든 바로 안개 속에 뒤섞여서 더듬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더듬어가지 못하는 그 앞으로 가서 모든 선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너나 나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눈앞의 친척들과 결별해도 바다를 떠돌며 살아간다는 의미에서는 같다, 가네사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p.100)


작가는 주인공이 겪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불안이 일상이 된 주인공의 상태를 곧이곧대로 보여줄 뿐이다. 학교 생활에서부터,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던 가오루의 집에서부터, 그렇게 이어지던 불안은 가네사다의 재즈 카페 '오부브'로까지 이어졌다. 처음 접하는 어설픈 공간이었지만 가오루는 잔잔한 재즈 선율 속에서 외국어에 능한 작은할아버지와 요리 솜씨가 좋은 직원 '오카다' 등 비록 그를 보살피는 어른들이지만 누구 한 사람 강요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는 언제나 가오루를 믿고 지지하는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혼자라고 느낄 때야. 자기가 어딘가 막다른 곳에 몰렸다든가, 소외되었다든가, 집단을 원망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무리해서라도 집단에 남든지, 집단에서 나가는 편이 좋아. 그리고 정면으로 불평을 말하면 돼. 욕지거리를 해도 돼. 누군가는 그 욕지거리를 듣고 있어. 집단에서 나오고 나서 집단을 원망하기 시작하면 상처입는 것은 자신이야."  (p.202~p.203)


집단에 속한 개인은 언제나 집단의 단단한 벽과 마주할 때 또는 집단 구성원과의 갈등이 심화될 때 어찌할 줄 모른 채 우왕좌왕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비단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온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집단 속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잃어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지만 자신이 집단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아졌거나 숫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집단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존재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거품>의 주인공인 가오루처럼 말이다. '나'라는 존재도 이 시대를 구성하는 개체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순수 개인으로서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 국가 폭력 앞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그날의 제주 시민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만개한 벚꽃은 저리 밝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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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계절의 변화가 어찌나 빠르던지 변해가는 산의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하기는커녕 어, 하는 사이에 벌써 꽃이 피고, 새순이 돋고, 새벽어둠을 뚫고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가 하나둘 늘어가는 것을 채 헤아리지도 못한 채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듯합니다. 봄의 정취를 미처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등산로에서 새초롬히 핀 진달래를 보았습니다. 겨울을 벗어난 날은 며칠 되지도 않은 듯한데 양지쪽에 앉았을 때의 느낌은 겨울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듯 여겨져 다가올 여름이 새삼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입구 공터에는 최근 누군가 어설프게 만든 닭장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그곳에 풀어놓은 수탉 한 마리가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곤 합니다. 도시 한가운데서 듣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꽤나 생경하게 들립니다. 나를 여기에 이렇게 가둬두는 건 부당하다고 말하려는 듯 수탉의 울음소리는 무척이나 거칠고 우렁찹니다. 나는 오늘도 자유를 갈구하는 듯한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에 올랐었습니다. 인간의 식량조달을 위해 닭을 키운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자유마저 빼앗을 권리가 있는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했던 박선영의 에세이 <그저 하루치의 낙담>에는 18세기 낭만주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늙은 선원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 너무 놀라고쓸쓸해진 채/그는 집으로 돌아갔다./이튿날 아침 일어났을 때/그는 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가는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A sadder and a wiser man, 깨달음이란 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더 현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슬픈 사람이며, 그것이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슬픔의 수집가가 되려던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삶을 잘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다."  (p.106)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슬픔은 가장 낮은 등급의 감정인 까닭에 슬픈 노래를 듣거나 슬픈 이야기를 듣거나 슬픈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를 감상할 때 우리는 한없이 안온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기쁨보다는 슬픔으로 구성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들었던 수탉의 울음소리가 온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도 나 역시 오늘 하루를 슬픔 속에서 온전히 머물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고 노래했던 김영랑 시인이 떠오릅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어울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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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콘치타 데그레고리오 지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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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끝없이 획득하고, 유형.무형의 자산을 무한정으로 늘려간다고 생각한다.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시계, 멋진 승용차, 넓은 주택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하는 어떤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성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거나 숫제 헤어지게 된다. 내가 태어났던 고향집, 사랑하던 애완견, 젊은 시절 한때 사랑했던 연인, 통통한 볼살이 귀여웠던 아이 등 시간의 경과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비단 존재하는 어떤 사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블로그에 '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묻어난다'라고 썼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상실과 공허, 속절없는 안타까움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을 쓴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독은 침묵과 닮았어.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어렵게 느껴지지. 이상하고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풀로 붙인 듯 서로 이어져 모두 똑같아 보이거든. 그러다 조금씩 쉬워져.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할 수 없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지. 혼자라면, 다른 사람들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 말하는 일조차 할 수 있어. 어차피 아무도 혼내거나 뭐라고 할 수 없거든. 단지 들키지 않고 보이지 않게, 조용히, 천천히만 하면 돼. 누군가 다가와서 "뭐 하고 있었어?"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면 그만이야. 아무것도."  (p.40 '고독')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가 글을 쓰고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그림을 그린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 대상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의 의미와 향수를 음미한다. 그것은 어쩌면 상실을 상실로 기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동시에 상실에 대한 해묵은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싶다.


"사라진 사람들과 사물들은 머릿속을 가득, 거의 꽉 채운 채로 떠나질 않아요.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는 너무나 이상한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종의 노동 같아요. 이 노동은 밤낮으로 이어져요. 다른 사람들은 그 피곤함을 볼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어요. 괜히 말하면 이런 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곧 지나갈 거야, 시간이 약이야, 생각하지 마, 나가자.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죠. 누텔라 바른 빵 먹을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나가자, 나가야 해."  (p.10 '프롤로그' 중에서)


10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얇디얇은 이 책을 나는 몇 날 며칠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작가가 호명했던 그 이름들을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흥얼거리게 되었다. 마르코, 카르멘, 알리체, 니달, 루카, 아리아......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여러 이름들을 마치 자신의 짐보따리인 양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새롭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우리는 잊어야 할 낡은 이름들을 하늘에 훨훨 날려 보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도 당신은 그곳에서 더 잘 지내고 있겠죠. 꼭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당신은 그날 밤 나에게 말했으니까요. 우리가 다른 삶에서, 우리가 개구리와 나비인 곳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며 슬퍼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 말을 하던 당신은 눈길을 떨구었어요."  (p.104 '에필로그' 중에서)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귀여운 거짓말로 친구들을 속여먹곤 했었는데 지금은 가짜 뉴스가 온 세계를 잠식하다 보니 만우절에 하던 거짓말조차 범죄가 되고 말았다. 사라지는 것들이 비단 어떤 공간이나 존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과거에 유행하던 풍습이나 의식도 시대가 변하자 금세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리움처럼 추억만 남았다. 애틋함의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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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개나리를 비롯한 여러 봄꽃이 피어나는 것은 물론 버드나무 가지에도 연녹색 물이 들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나들다 보니 과거에는 차례대로 피던 봄꽃이 최근에는 한꺼번에 우르르 피었다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산수유가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고 나면 제 순서에 맞춰 차례로 개나리, 목련, 매화, 벚꽃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입니다. 지구온난화 탓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갑자기 여러 꽃들이 한꺼번에 피고 지다 보니 왠지 정신이 없고 계절을 즐길 만한 여유도 차츰 사라지는 게 아닌지 조금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어제는 아들의 군대 생활에서 쓰던 짐을 옮기느라 아침 일찍 운전을 하여 군부대에 갔었습니다. 아들을 둔 부모의 난제, 이를테면 대학 입시, 병역, 취업, 결혼 등 시기에 따라 마주쳐야 할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인 '병역'을 무사히 해결한 듯합니다. 내일이면 전역을 하는 아들은 공군으로 입대하여 21개월의 결코 짧지 않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듯합니다. 전역에 앞서 외출을 나온 아들의 양손 가득 들린 짐을 받아 차에 싣는 감회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묘하기만 했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인데'라거나 '요즘 군대를 어디 군대라고 말할 수 있나?' 하면서 군 생활의 노고를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사실 혈기왕성한 그 시기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18개월이나 21개월은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들의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도 그러할 테고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소담출판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어느 초봄의 밤, 나는 우리가 점령한 농가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맥 빠진 바람이 변덕스레 방향을 바꾸며 불어왔다. 플랑드르의 높은 하늘에는 구름이 군대처럼 몰려다닌다. 그 구름 뒤 어딘가에 달이 빛나겠지. 하루 종일 나는 불안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걱정이 나를 괴롭혔다. 어두운 초소에서 경비를 서며 나는 간절하게 지금까지 살면서 품었던 형상들을, 에바 부인을, 데미안을 생각했다. 미루나무에 기대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구름의 전쟁터를 올려다보았다. 한밤중 하늘에서 움찔대는 별의 빛이 점점 커다란 그림, 솟아오르는 그림의 연속을 연출했다. 나는 맥박이 이상할 정도로 희박해졌음에서, 그동안 비바람에 시달리며 무뎌진 피부에서,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에서 어떤 인도자가 나를 굽어보고 있음을 느꼈다."  (p.266)


내일 전역을 하는 아들은 4월 9일부터 5월 14일까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모든 게 불안하고 의문투성이인 요즘이지만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 개개인의 특별한 경험들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나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체득한 경험이야말로 인공지능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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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3-3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회가 새로우시겠습니다. 대학 들어갈 때부터 종종 아드님 이야기를 쓰셨던 기억이 나는데 어느덧 군대 전역이군요. 제 아이는 코로나 한창일때 군 복무를 해서 입소식도, 전역식도 참석 못해보고 온라인으로만 구경했답니다. 이제 어른이네요.

꼼쥐 2026-04-01 12:25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신병훈련소 입소식과 퇴소식을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제 할 일을 제 스스로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오후즈음 2026-03-3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아드님 고등학교 졸업하는 얘길 본것같은데 벌써 군대도 전역하시네요. 멋진 곳들 많이 보시고 즐거운것들 만끽하시길 바랄게요. 축하드립니다~^^

꼼쥐 2026-04-01 12: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중동 전쟁이다 뭐다 해서 어수선한 이 시국에 굳이 나가야 하나 싶다가도 지난해 말부터 여행을 계획했고 그걸 이제 실현하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겠더군요. 지금 아니면 시간도 없을 듯하고 말이죠.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최정애 옮김 / 비트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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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관람이 웬만한 영화 관람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 작품에 조예가 깊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전시실에 놓인 작품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멎게 만드는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에 빠져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두 점의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작가가 내게 건네는 수많은 말과 생각들을 내가 미처 주워 담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시공간을 잊은 채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주변 관람객의 소곤거림도, 자리를 뜨는 여러 관람객의 발소리도, 이따금 들리는 안내 방송도 전혀 들리지 않고,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어릴 적 술래에게 '얼음'이라고 외쳤던 그 순간처럼.


얼만 전에도 나는 대전에서 열린 앤디 워홀 전시회를 다녀왔다.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회의 기획도 재미있었지만, 인쇄물로만 보았던 앤디 워홀의 작품을 실물로 직접 보게 되는 감흥은 왠지 모르게 신나고 반가웠었다. 앤디 워홀 전시회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면 그 직후 읽기 시작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쓴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는 나의 가슴을 가볍게 짓눌렀다. 나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 이따금 책을 손에서 놓고 베란다로 나가 깊은숨을 내쉬곤 해야만 했다. 그것은 어쩌면 안젤름 키퍼에 대한 나의 지식이 지나치게 빈곤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안젤름 키퍼'는 늘 그런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은 우리 시대의 어떤 예술가의 이름보다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극히 기념비적이며, 시간으로 가득 차 있고, 역사로 무겁게 짓눌려 있으며, 사적인 것, 하찮은 것, 개인적인 것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p.13)


어떤 예술이든 작가와 관객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작품은 생소한 두 사람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어떤 작가는 때로 작품 속에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사적인 어떤 것을 일절 담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의 개인적인 성향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독자나 관객에 대한 배려나 예의 차원이라고 해야 할까. 2023년 국내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국내 첫 전시회에 나는 가지 못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의 전시회 소식도 듣지 못했다. 당시에 나의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를 읽는 동안 나는 온라인에 떠도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그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도 찾아봤다.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우리가 약간의 수고를 감수하면서 굳이 전시회를 찾는 까닭은 실물을 직접 보는 것과 영상이나 화면을 통하여 보는 것은 실로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무와 숲에 대한 집착은 1960년대 말부터 줄곧 지속되어 왔다. 그는 숲과 함께 육십 년을 보냈다. 나는 그가 그린 숲이 신화의 숲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형제의 동화 속에서 헨젤과 그레텔과 빨간 모자가 돌아다니던 숲, 게르만족이 로마인들과 싸워서 이겼던 숲, 나치가 '독일적인 것'을 연출하는 데 이용했던 숲, 그리고 절멸 수용소들이 위치했던 숲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키퍼 자신의 숲이라는, 그가 할아버지와 삼촌, 숙모, 사촌들과 어울려 살았던 곳의 숲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p.73)


20세기 후반 신표현주의 미술운동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한 그이지만 안젤름 키퍼는 사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법학도였다. 1966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가 1970년 뒤셀도르프에서 요제프 보이스의 제자가 되면서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우선 거대한 작품의 크기에 압도된다. 고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그이지만 키퍼는 짚, 납, 도료, 재, 점토 등을 이용하여 캔버스 위에 텍스처를 강조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한다.


"존재하는 것의 내면에 다가가 비밀을 밝히려는 예술 속에서 그 심연은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압도한다. 아마도 다른 어떤 이의 그림에서보다 고흐의 그림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고흐에게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줄 몰랐기에 붓질 하나하나마다 사투를 벌여야 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회화라는 예술을 바닥부터 다시 발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림과의 투쟁 자체가 가시화되는데, 키퍼는 그 투쟁을 예술의 핵심이자 모든 것의 기원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것은 곧 보는 자와 존재하는 것 사이의 투쟁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포착될 수 없고, 그 비밀에는 결코 닿을 수 없기에,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실패작이다. 예술은 오직 원래의 통찰력이나 비전의 일부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예술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항상 그 비전을 거스르기에 비전은 결코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형태로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행위에는 언제나 파괴가 동반된다."  (p.170)


우리가 궁극적으로 예술작품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권태에서 벗어날 다른 대체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와 같은 육체적인 방식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권태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육체가 20대의 젊음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결국 예술작품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존재하는, 그러면서도 끝없이 유동하는 이 삶의 본질에 결코 닿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은 채 끝없이 탐구할 뿐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패전국 독일의 폐허에서 태어난 안젤름 키퍼는 나치 시대를 다룬 작품을 종종 선보이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나고 자랐던 독일의 숲과 강이 그에게 심어준 그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안젤름 키퍼와의 유대를 통하여 안젤름 키퍼 자신과 그의 작품에 대한 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키퍼의 그림에 빠져드는 것처럼 작가의 표현과 통찰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다. 어느새 3월도 다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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