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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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 쓰인 소설 한 권이 웬만한 철학 서적 몇 권의 의미를 전달할 때가 있고, 몇 권의 과학 서적에 담길 만한 미래의 변화상을 한 권의 소설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예컨대 한 권의 과학 서적이나 철학서가 여러 권의 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모두 줄 수 있다는 것. 흔치는 않지만 그와 같은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잘 쓰인 한 편의 시가 웬만한 소설 몇 권에 담길 만한 감동을 한꺼번에 전달해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장르를 고집하며 편협한 독서로 일관한다는 것은 때론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신예작가 미아키 스가루가 쓴<너의 이야기>는 감동과 의미, 미래에 대한 성찰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물론 젊은 작가들이 늘 그렇듯, 지나치게 의욕이 앞서 소설 전체에서 작위적인 느낌이 살짝 묻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통 코스를 밟지 않고 개인 웹사이트 등에 올린 자신의 창작글이 인기를 끌면서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이력으로 볼 때 소설의 몰입도나 완성도 면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보일 수 있다는 건 꽤나 놀라운 일이다. 일본 발매 이틀 만에 4쇄를 돌파하고 제40회 오시카와 문학 신인상 최종 후보작에도 올랐다는 <너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 <너의 이야기>를 통해 이와 같은 예측에서 한 발 더 들어간다. 삶에서 획득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의 총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확고부동한 논리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예컨대 개인이 실제 삶에서 취득한 진짜 기억을 지우고 누군가에게 의뢰한 가짜 기억을 자신의 뇌에 이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작가의 상상은 그와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소설에는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두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아마가이 치히로와 나쓰나기 도카. 가족으로부터의 사랑도, 친구 간의 우정도 도통 받아본 적 없는 치히로는 대학생이 된 지금도 대인관계에 대한 지독한 콤플렉스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만나는 사람이라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선배가 유일했던 치히로는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을 지워버리는 게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서도 차라리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특정 시기의 기억을 지워주는 프로그램인 '레테'를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진한다. 그러나 배달 착오였는지 치히로가 '레테'인 줄 알고 먹었던 것은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는 '그린그린'이었다. 그 바람에 치히로에게는 어릴 적 소꿉친구로 만나 청소년기까지 이어졌던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심어졌다.

 

"처음부터 가질 수 없다고 여긴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건, 한없이 미련이 남는다. 나는 의억을 통해 행복과 불행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 그 차이 하나가 천국과 지옥을 가른다." (p.164)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를 하던 치히로는 여름 축제가 열리고 있는 산사의 많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의억(가짜 기억) 속의 그녀인 나쓰나기 도카인 듯한 여인을 먼 거리에서 보게 된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녀가 '의억'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의자)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치히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행복한 꿈을 꾸던 치히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치히로는 어느 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꿈 속의 연인 '도카'를 현실에서 맞닥뜨린다.

 

자신의 기억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치히로는 도카를 현실의 여자 친구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도카는 치히로를 위해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같이 음악을 들으면서 치히로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 이쯤 되면 책을 읽는 독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도카의 정체는 뭘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도카의 호의를 매정하게 거부하였지만 치히로 역시 도카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의억을 이용하여 사기를 친다거나 사이비 종교를 권유한다거나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태풍이 치던 어느 여름 날, 도카에게 지독한 천식이 있다는 걸 의억을 통해 알고 있었던 치히로는 혹시 기압이 떨어진 이때에 도카가 예전처럼 쓰러진 게 아닐까 걱정이 된 나머지 도카의 집 현관문을 다급하게 두들긴다.

 

"문득 나는 이 사람을 잃으려 하고 있다.라고 남 일처럼 생각했다. 그 사실이 내게 무얼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파악할 수 없다. 세계의 종말이 내게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슬픔은 지나치게 거대해 불가능하다고는 말 못해도 내 잣대로 잴 수 없는 건 분명하다." (p.338)

 

치히로는 결국 자신의 방에 도카의 출입을 허락한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음악을 듣고, 같이 추억을 공유하면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리고 도카의 한 줄 일기가 매일매일 기록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카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카가 사라진다.

 

"정체성의 존립 근거가 기억의 일관성이라 한다면, 나는 매일매일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해 겨울로 접어들며 나는 나 자신을 의뢰인과 의억 사이에 설치된 여과 장치와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단련에 따른 사적 감정의 소멸과 다른 점은, 나라는 인간이 글자 그대로 소멸함에 따라 나타나는 부차적인 현상에 불과했다는 점일 것이다." (p.282)

 

이제 2부에서는 도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천식으로 인해 암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도카가 우연한 기회에 의억기공사가 되어 그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자신이 신형 알츠하이머병(Alzheimer Disease: AD)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휩싸인다. 자신이 죽더라도 누구 한 사람 슬퍼하거나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나 비참하게만 여겨졌던 도카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한 남자의 이력서를 우연히 보게 된다. 유년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했던 치히로의 이력서였다. 도카는 의억기공사로서의 규정도 어긴 채 자신이 현실에서 치히로의 진짜 연인이 되고자 한다. 그 기억을 안고 평온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클리닉에서 내 앞으로 의뢰인의 '이력서'를 보내준다. '이력서'에 담겨 있는 정보는 최면 상태에서 추출된 것으로 거짓은 없다. 나는 '이력서'를 읽어보고 의뢰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가공의 과거를 작성한다. '편집업자'와 몇 차례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세세한 수정을 거친 후 의억을 최종 완성본으로 정리해 클리닉에 제출한다. 이러한 일련의 공정은 대략 1개월 안에 끝난다." (p.236~p.237)

 

소설의 후반부에는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치히로가 병원에 입원하여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도카를 찾아간다. 치히로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던 도카의 입장에서 이제 정반대의 입장에 놓이게 된 치히로는 도카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휴학한 채 매일매일 도카를 찾아간다. 도카는 자신이 앓고 있는 신형 AD에 내성이 있다고 알려진 의억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다. 그녀가 의억마저 잃으면 그녀의 삶은 끝나는 것이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수록 도카는 가짜가 아닌 진실된 마음을 치히로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치히로는 자신의 의억에도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도카에게 들려준다. 이야기는 그렇게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단순히 SF적 요소를 지닌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던 이야기는 치히로의 이야기에서 많은 궁금증을 유발한 채 도카의 이야기로 이어짐으로써 마치 미스터리 소설처럼 읽힌다. 내가 대개의 일본 소설에서 늘 감탄하는 대목은 독자들이 감동할 만한 포인트를 작가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스미노 요루가 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그렇고 이 책 <너의 이야기>에서도 작가는 감동의 실마리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조금도 노출시키지 않고 끝까지 숨기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한꺼번에 폭발시킴으로써 감동의 크기를 배가시킨다.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문학은 필요하다.'고 했던 데이비드 실즈의 말처럼 먼 훗날 지금보다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뇌 속에 각자에게 필요한 기억을 이식할 수 있는 날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 기억들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거나 만들어진 기억이 삶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는 것처럼 기억만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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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떠오른 기억은 100% 신뢰하는 편이다. 여기서 '불현듯' 또는 '뜬금없이'가 내 기억에 대한 믿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오랜 시간 고생 고생해서 억지로 떠올린 기억에 대해서는 그닥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적어도 기억 속에 등장하는 다른 누군가와 교차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의 기억력에 대한 신뢰는 오직 '문득' 일어난 기억에 대해서만 한정된다. 그런 경향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오래전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고 하더라도 그 시각에 추억을 공유할 만한 사람이 곁에 없거나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추억을 공유하려 했다가 되레 퉁박만 받은 채 전화가 끊겨버렸다면 그 또한 서글프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교차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그리움의 정점을 찍게 된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어도 더 이상 질문을 받아 줄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나는 왜 궁금한 걸 미리미리 질문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 더해질수록 그리움은 커진다. 사랑의 크기는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걸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가까운 지인을 만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한 질문이라도 궁금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물어보는 게 나중에 후회를 덜 남기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해 준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궁금한 게 있어도 그 질문을 내일로 미루곤 한다. 내일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종종 잊은 채.

 

흐렸던 하늘은 오후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따가운 햇살이 열기를 더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 밀려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고 있다.

 

"뭔가를 보는 눈이 어떤 계기로 하루 만에 확 바뀌는 때가 가끔 있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자주 그러면 무척 피곤할 테죠). 잊어버렸을 때쯤 문득 찾아온다. 긍정적으로 바뀌는 때가 있는가 하면 부정적으로 바뀌는 때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긍정적인 변화가 훨씬 바람직하지만……" (장수 고양이의 비밀' 중 '하루 만에 확 바뀌는 일도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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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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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문직 여성들이 오히려 결혼보다는 비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에는 전문직 여성과의 결혼을 남성 측에서 먼저 꺼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똑똑하면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전문직에 진출하려는 여성 숫자도 손에 꼽을 정도로 현저히 적었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전문직에 진출한 여성들도 많은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적응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전문직 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사회적 편견 탓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여학생들의 선호 학과는 대개 유아교육과나 식품영양학과 등 육아나 요리와 관련되는 학과가 주였다. 말하자면 현모양처를 꿈꾸는 여성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전문직뿐만 아니라 교직에 진출한 여성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를테면 나이 50이 넘었는데 교장 진급도 하지 못한 채 평교사 신분으로 꾸역꾸역 출근하는 여교사들에 대한 편견은 대단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출근한다는 둥 아들이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빚을 졌다는 둥 확인도 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고 그런 뒷담화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그런 까닭에 집안에 이렇다 할 우환이 없는데도 쉰 살이 되기 전에 서둘러 사직서를 제출하는 여교사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일본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야마 리카의 신작 <나이 듦의 심리학>을 읽는 독자라면 여성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비혼의 전문직 여성으로 살아왔고, 구체적으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생각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처럼 싱글로 사는 여성들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정년과 연애와 나이 듦과 주거와 건강과 자아 찾기와 심지어 패션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독신으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곁들여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지 묻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과학과 의료기술이 진보한다고 한들 예순은 예순이다. 에순이 열아홉이 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예순 살이니 저건 못 해'라든가, '이제 예순 살이니 이건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뭔가 시작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그만두고 싶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시작하다'와 '그만두다'는 완전히 반대말이지만, 어떤 것을 택하든 그걸 결정할 권리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이 사실은 나이 때문에 달라지는 게 아니다." (p.237~p.238)

 

그렇다면 이 책의 독자는 싱글의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남성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순탄치 않은 여성들의 삶에 대해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구별을 떠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남성과 여성을 무 자르듯 극명하게 편가름 하는 그런 책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반면 이렇게 해라, 강한 어조로 지시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살아보니 이렇더라 그러니 저렇게 사는 게 좀 더 나아 보인다는 식의 부드러운 조언일 뿐이다.

 

"아무리 나이 따위 상관없다고 생각해도, 남자와의 관계 문제에서는 아주 조금 나이를 의식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책임감 없는 남자에게 휘둘려 상처받거나 시간과 돈을 헛되이 써버리기에는 자신의 소중한 현재가 너무 아까우니 말이다." (p.157)

 

저자는 지금 80대의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고 썼다. 함께 사는 건 아니고 저자는 도쿄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홋카이도에서 살고 있는데 '어머니 돌봄 문제는 어떻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고 쓰고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자식이 시골에 사는 부모님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만 태우는 현실. 저자는 부모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책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관해 고민하라고 조언한다.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훌륭한 일'도 아니다.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p.44)

 

세월에 의한 관성의 힘은 꽤나 오랫동안 그 힘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과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여성 차별의 문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법적으로 어느 정도 정비되었다고 할지라도 세월의 관성에 의한 여파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성들의 머릿속 생각마저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싱글로 살아간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주변 환경과 마주쳐야 한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할까. 그보다는 외면한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정답일지 모른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남자나 여자나 나이가 든다는 건 주변보다는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해도 된다는 사회로부터의 암묵적인 허락이자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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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중계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축구 중계를 보게 되었다. 한국과 에콰도르가 맞붙었던 U-20 월드컵 준결승전 경기 말이다. 새벽 3시 30분부터 경기가 시작되었지만 웬일인지 나는 중계방송을 꼭 보겠노라 작정한 것도 아닌데 일찍부터 잠이 깨고 말았다. 대략 3시를 전후하여 잠에서 깬 듯한데 억지로 다시 자려고 하니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한 번 달아난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새벽에 할 일이라곤 5시 30분에 운동을 나가는 것밖에 딱히 정해진 게 없으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축구 마니아도 아닌 내가 신새벽에 홀로 일어나 축구 중계를 보는 풍경은 그닥 아름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일단 중계에 빠져들다 보니 축구 경기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쫄깃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하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긴 경기는 언제나 재미있다고 느끼게 마련이지만 말이다. 어떤 종목이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경기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경기가 아닐까.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전.후반 본경기로 끝이 났지만, 시간은 내가 매일 운동을 나가는 5시 30분 직전이었고, 부족한 잠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은 '그냥 잠이나 자자' 하는 유혹의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러나 1시간쯤 더 잔다고 해도 피곤이 풀릴 것 같지도 않고, 막상 자려고 누우면 쉽게 잠이 들 것 같지도 않아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운동에 나섰었다.

 

오전에 나도 모르게 잠깐 졸았다. 바깥공기는 조금 탁하고, 가볍고 날카로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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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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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체에서 하나의 연령대를 콕 짚어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나는 왠지 40대를 생각할 때마다 시골집 마당에 놓인 고무대야를 떠올리게 된다. 건조한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너른 마당 한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인 고무대야는 주변 풍경에 적절히 녹아들지 못한 채 쓸쓸함만 더한다. 아마도 나는 40대를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절반을 돌아 반환점에 이른 40대는 30대의 연장선에 놓인 자연스러운 연령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별개의 연령대를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왠지 어색하고 툭 불거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나는 인생의 40대를 꽤나 불안한 연령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어느 연령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비교 불가의 독특함이 있기에 40대는 그저 인생의 한 과정으로 여겨지지만은 않는 것이다. 김해남, 박종석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쓴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으며 나는 내내 40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두 명의 저자 역시 인생의 고비를 넘기는 불안한 연령대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우울은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 중의 하나다.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등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우울은 인생을 살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좌절에 직면했을 때 이를 내적으로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우울은 고통스럽지만 정상적인 우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우울감도 사라진다." (p.5 'Prologue'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의 감기와도 같다는 우울의 다양한 얼굴들을 설명하고 있다. 우울증, 조울증, 상실과 애도, 공황장애, 우울성 인격, 번아웃 증후군, 만성피로 증후군, 허언증, 현실 부정, 강박증, 불안장애, 무기력감, 자해, 화병, 섭식장애, 성공 후 우울증, 외로움 등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의 상처와 그 진단 방법을 설명함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공황장애를 흔히 '짐작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큰 공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섭다고 생각하면 더 무서운 것이 된다. 그러니 오히려 내가 어르고 달래며 잘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물론 발작이 온 그 순간에 호흡이나 자기 암시 등을 차분히 행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공황장애로 힘들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죽음이나 공포,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괜찮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믿음이다." (P.61)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빠르게 치료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치료를 끝까지 미루는 탓에 정신 질환으로 인한 범죄나 자살 등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극단적 선택을 뉴스로 읽을라치면 나는 마치 나 자신의 일인 양 마음이 무거워진다. '따지고 보면 사는 게 별것도 아닌데 죽을 만큼 힘들었던 건 도대체 무엇인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네. 제대로 난 길을 몰랐기 때문이라네."라는 단테의 시 구절처럼 우울은 길을 잃은 상태와 비슷하다. 이런 무기력한 상태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과 고통에 짓눌려 헤매고 있을 때, 우선은 그 어두운 안개 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하다." (p.163)

 

우리는 이따금 주변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마주칠 때 마치 자신이 전문가라도 되는 양 당사자의 의지 운운하면서 질환의 원인이 오직 당사자의 책임인 것처럼 의지박약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우울증은 가뜩이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좌절, 절망으로 아파하는 병인데 곁에서 치료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환자는 그야말로 물러날 곳이 없는 천 길 벼랑에 서는 꼴이 되고 만다. 예컨대 '우울증에는 밖에 나가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게 좋다.'는 식의 조언은 정말 도움은커녕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p.258)

 

우리가 주변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하는 이를 잘 돌봐야 하는 이유는 당사자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목적도 있지만 정신질환은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에게도 쉽게 전염된다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선정한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열 가지 중에서 네 번째'를 차지한다는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희망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울과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작은 희망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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