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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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작가의 신작 발표 기간이 긴 까닭에 일부러 천천히 읽거나 반복하여 다시 읽게 된다. 말하자면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거나 읽었던 책을 꾸역꾸역 되새김질하면서 오직 작가의 다음 작품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식이다. 세상에 작가라고는 해당 도서의 저자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목을 길게 늘이고 오매불망 기다리다 보면 이따금 잊기도 하고, 다른 작가의 작품에 빠져 외면을 하게도 되지만 막상 신간이 나오는 순간 또다시 오랜 기다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에게 테드 창은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출간되었던 게 벌써 17년 전 일이다. SF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팬층을 거느리게 된 작가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여러 상을 휩쓸곤 하지만 정작 그가 세상에 내놓는 작품의 수는 상당히 제한적인 까닭에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늘 기다림의 연속인 것이다. 작가의 수상 경력을 보더라도 최연소 네뷸러상을 포함해 네뷸러상 4번, 휴고상 4번, 로커스상 4번을 받았다. 다른 작가들은 한 번도 받지 못한 상을 수 차례 받았다는 사실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기술 저술가로 일한다는 사실도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 사이에서는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때로는 그의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도,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평도, 그리고 '역시 테드 창'이라는 평도 다 그의 몫이자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테드 창의 신작 소설집 <숨>에는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8편의 단편이 실렸던 걸 감안하면 적은 숫자도 아니지만 왠지 아쉬운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작품 역시 나는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는 있지만 줄어드는 쪽수를 보면서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책을 읽는 속도를 일부러 천천히 늦춰보기도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하여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을 한 편씩 리뷰를 쓰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른 것이다.

 

소설집 <숨>의 첫 번째 단편소설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다. <천일야화>와 같은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바그다드 출신의 상인 후와드 이븐 압바스가 자신의 거래처 사람들에게 선물할 은쟁반을 사기 위해 세공사들의 거리에 있는 어느 가게에 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목이 좋은 자리에 새로 들어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바샤라트. 그가 보여주는 신기한 물건들 중 하나가 원형 고리 모양의 타임머신이었다.

 

"바샤라트는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현실의 피막에는 나무에 난 벌레구멍 같은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 구멍을 찾아내면, 유리 직공이 녹은 유리 덩어리를 잡아끌어 목이 긴 파이프로 바꾸듯이, 그 구멍을 넓혀 길게 끌어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한쪽 부리의 시간을 마치 물처럼 흐르게 하고, 반대쪽 부리에서는 그것을 시럽처럼 걸쭉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바샤라트의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도 엇습니다. 저는 그저 이렇게 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로 경이로운 것을 만들어내셨군요."" (p.17~p.18)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바샤라트는 압바스에게 '세월의 문'을 보여주고 문의 양쪽이 이십 년의 세월로 분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믿지 못하는 압바스에게 세월의 문을 통과하여 미래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밧줄 직공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하산이 이십 년 후 유명한 거상이 된 자신을 만났던 이야기와 아지브라는 젊은 직조공이 이십 년 후 자신이 많은 금화를 모았음에도 쓰지는 않고 옹색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금화가 든 궤를 훔쳐 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와 하산과 결혼하여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라니야가 젊은 시절의 하산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후 압바스는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후회하며 젊은 시절의 자신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한다. 바샤라트는 자신의 아들이 운영하는 카이로의 가게에 과거로 갈 수 있는 '세월의 문'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압바스를 소개하는 편지를 써준다. 압바스는 과연 어떤 경이로운 여정을 걷게 될까?

 

"이제 저에겐 카이로에 있는 '세월의 문'으로 되돌아갈 노자조차 없지만, 저는 저 자신이 상상 못할 행운을 맛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고, 알라가 어떤 방식의 구제를 허락하시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대교주님이 묻기로 결정하신다면, 저는 미래에 관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기꺼이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제가 가진 가장 값진 지식은 이것입니다.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p.58)

 

SF작가로서의 테드 창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 스타일에 무한히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우리 삶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소설 하나하나가 마치 각각의 철학적 주제를 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에서 연유한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회개와 속죄와 용서가 있을 뿐이라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압바스의 고백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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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이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취한 조치가 생각할수록 졸렬하다는 느낌은 든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대공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던 경제 위기를 운 좋게도 반전시킬 수 있었던 건 한국전쟁의 발발이 아니던가. "한국전쟁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다."라고 했던 전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의 말에서 보듯이 일본과 우리는 다만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가까웠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도 일본이 입은 큰 피해에 대해 손뼉 치며 잘 됐다고 하기는커녕 그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인 양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정말 운이 좋게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며 반겼던 아소 다로는 현재 일본의 부총리 겸 재무상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기조는 지금까지 전혀 변한 게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친일파의 후손들은 일본을 상국으로 생각하고 저자세로 나가는 식민지적 태도를 전혀 변화시키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국회 대정부질문 상임위 안에서 자유당의 정 모 의원은 '일본이 그런 식으로 보복을 하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치킨게임을 하느냐?'는 둥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둥 따지는 걸 보면 마치 그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일본의 대변인인 양 떠드는 모양새가 아닌가.

 

소녀상에 침을 뱉은 놈들이나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들이나 일제시대의 식민지 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들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터, 일본으로 추방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추방하고 싶다. 대다수 국민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장맛비가 내렸던 하루, 휴가 때 1박 2일 대마도 여행을 생각했었다는 후배에게 차라리 국내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이렇듯 작은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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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세계의 어느 나라든 삼권분립이 법으로 보장되지 않은 나라는 많지 않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법부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재판에 임한다는 건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러다 보니 사법부의 판결은 늘 권력을 가진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일반 국민의 질타를 따갑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와 같은 추세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암암리에 도왔던 세력 중 하나는 언론이 아닐까 싶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언론에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일반 대중으로부터의 질타를 피해갈 수 있었던 까닭에 양승태와 같은 사법부의 고위 간부들조차 목을 꼿꼿이 펴고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관행처럼 짬짜미가 이루어지다 보니 현 정부가 원칙을 내세워 바로잡으려는 곳곳마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심지어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핵심소재 수출규제를 들고 나온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오히려 원칙을 지킨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작자들이 도처에 있는 것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있는 강민구는 "양승태 사법부에서 강제징용 사건 선고를 서두르지 않은 것은 판결 이외에 외교적·정책적 방법으로 배상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박근혜 정부에 벌어준 측면이 다분하다”며 “그런데 지금은 대표적 사법농단 적폐로 몰리면서 대법원장 등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라고 비판하면서 양승태를 옹호하고, 일본보다는 우리 정부에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의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현직 판사로 있는 작자가.

 

강민구는 2016년 부산지법원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에게 13차례에 걸쳐 자신의 삼성전자 홍보 활동 내역을 알리거나 인사를 청탁하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인물로 자신의 지난 모습을 생각하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텐데 뻔뻔하게도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니... 그의 문자메시지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장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이마트 장을 보는데 삼성페이가 정책상 막혀 있다 합니다. 뿌리가 같았던 이마트가 이러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강민구 배상." (2016.12)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부패한 무리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상 나라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유당의 대표인 황교안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말하길,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해외 이주자 수가 문재인 정권 2년 만에 약 5배나 늘어나 금융위기 후 최대라고 한다”며 “안타까운 일”이라고 썼다는데 떠난 사람들 상당수가 강민구와 같은 부패한 작자들이거나 광화문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겠다며 땡깡을 부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 그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오히려 희망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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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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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소설 <레몬>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떤 룰처럼 존재해왔던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비교적 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 세상에 대해 순수한 믿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구나 아름답다는 이유로, 남들처럼 영악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쉽게 정복되거나 사회로부터 강제 퇴출되는 이러한 현실이 과연 정당한 것이냐고 작가는 묻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해언을 통해서 말이다. 월드컵 열기가 전국을 강타하던 2002년 여름, 당시 열아홉 살이던 해언이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같은 반 친구였던 상희의 눈에 비친 해언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그렇지만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순진한 소녀였다. 사인은 두부 손상에 의한 죽음. 그러나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17년이 흘렀다.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에요,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 저쪽,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든 초라하든, 한 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단호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 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언은 책을 읽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p.179)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던 아빠가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해언은 '무심하고 냉담하고 말도 없고 웃지 않는' 아이로 성장했다.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소파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는다는 이유로 엄마로부터 여러 번의 지적과 꾸지람을 받으면서도 해언은 자신을 지키는 것에 무심한 아이였다. 그런 해언을 곁에서 지켰던 건 동생 다언이었다. 여섯 살부터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고 언니의 옷차림을 신경 쓰는 등 해언에게는 마치 언니인 듯한 동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서울로 이사를 온 상희의 눈에 비친 해언은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지닌 친구였고, 해언과 상희가 고3이었을을 때 같은 학교에 입학한 다언은 언니처럼 예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데다 매사에 싹싹하고 야무졌으며 무엇보다 전교에서 제일 자주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였다. 상희와 같이 문예반 활동을 하던 다언을 대학 교정에서 우연히 만났다. 성형수술을 하여 모든 게 어색하게 변한 비쩍 마른 다언을.

 

"언니는 자기 신체의 아름다움을 우연히 해변에서 주운 예쁘장한 자갈 정도로 취급했다. 사람들에게 내보였을 때 유리한 점이 많다는 건 알았기에 때로 그것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외모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몰랐다. 진주와 자갈의 차이를 모르는 어린애처럼 언니는 무심하고 무욕했다." (p.78)

 

소설은 당시 사건을 한순간도 잊지 못하는 다언의 상상 속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한만우를 담당 형사가 취조하는 장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만우는 신정준이 운전하던 차에 동승한 해언을 목격했던 인물. 그러나 그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동승했던 윤태림이 있었다. 상희와 같은 반이었던 윤태림은 해언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위태로운 예쁨'을 지닌 인물이었다. 운전에만 몰두했던 한만우는 윤태림으로부터 목격 장면을 전해들었고 형사에게 그대로 증언했다. 반면 해언을 자신의 차에 태웠던 신정준은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고 사건은 그렇게 미제로 남았다. 그러나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엄마와 나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엄마는 다니던 숍을 그만두었고 나는 학교를 휴학했다. 우리는 며칠씩 잠만 자거나 며칠씩 잠을 못 잤다. 먹는 것을 잊었고 씻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떻게든 위로 기어올라가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오랫동안 우물 같은 축축한 어둠 속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p.72)

 

사건의 용의자였던 한만우와 신정준도 학교를 떠났다. 신정준은 유학길에 올랐고, 한만우는 학교를 자퇴한 후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다 군에 입대한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채 살해되었던 해언. 해언을 잃고 상실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다언은 어느 날 배가 고파 삶은 달걀을 먹다가 계란의 노른자를 보면서 주요 용의자였던 한만우를 찾아갈 결심을 한다. 군에서 앓게 된 골육종으로 의가사 제대를 한 한만우와 난쟁이 병을 앓고 있는 한만우의 여동생. 그리고 한만우의 여동생이 만들어준 계란프라이에서 보았던 애틋한 노란빛. 다언은 한만우로부터 들었던 당시의 상황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데...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상에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또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죽음을 외면하거나 전혀 모르는 채 사는 까닭에, 또는 세상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게 돌아간다는 이유로 우리는 종종 죽음의 무게를 과소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죽은 자가 살았던 시공간의 영역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조금 뒤틀리고, 때로는 미세한 틈을 만들고, 산 자로 하여금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살게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조그맣게 속살거리거나 장난을 쳤다. 그러다보면 웃음소리가 높아지거나 고함을 지르게도 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웃음과 고함의 파문은 널리 퍼져나가는 대신 그대로 응결되어버렸다. 웃거나 고함을 치던 아이가 소리를 뚝 그치는 순간 기분 나쁜 정적이 교실 전체에 무겁게 드리웠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죄의식에 사로잡혔고 교실은 진공관처럼 조용해졌다. 이상한 우울과 불쾌가 우리의 미간을 둔중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p.57)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로 시작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문득 떠오르는 오후. 작가 권여선은 자신의 소설 <레몬>을 통해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약자를 극단적인 죽음으로 내모는 작금의 현실 또한 작가의 눈에는 결코 정당하게 보이지 않았을 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단지 세상에 대해 무력하거나 순진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놀잇감이 되고, 종국에는 세상으로부터 축출되거나 격리된다는 건 부당하지 않은가, 작가는 다언의 입을 통해 항의하고 있다. 그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게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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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를 달구었던 깜짝 이벤트는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느껴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제안에 의해 촉발된 남.북.미 3국 정상의 만남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깊지만 교착상태에 놓여 있던 북미 협상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어찌 보면 즉흥적이면서도 쇼맨십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 정세파악을 잘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저돌적 실천의지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퍼포먼스가 아니었던가.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은 그 장면을 보고 다들 가슴이 뭉클했을 듯싶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일부 극우세력이 존재하긴 했었지만 말이다. 어느 나라건 아베와 같은 또라이들은 늘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장마가 소강상태인지라 여름 더위가 그대로 느껴진다. 높아진 습도와 열기를 더하는 7월의 햇살. 지난해에 비해 장마가 늦어진 탓에 열대야와 찜통 더위의 습격은 조금 짧아질 거라는 기대와 가능성은 있지만 여름 더위는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공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공포는 언제든 되살아나는 것처럼, 그리고 삶의 공포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요즘 읽고 있는 권여선의 소설 <레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어쩌다 보니 삶과 죽음에 관련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정말 어쩌다 보니.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권여선의 <레몬>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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