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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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등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예전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고 느낄 것이다.  학생의 봉사활동 기록이며 수상기록뿐만 아니라 독서기록에 이르기까지 학생의 일 년 생활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품행이 방정하고 학급의 모범이 되며'로 시작되는 두어 줄짜리 학적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이따금 나의 인생 기록부를 매년 작성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고등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담임선생님처럼 말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자신의 운명에 이끌려가는 한 인간의 비극을 가감없이 다루고 있다.  "부끄럼 많은 인생을 보냈습니다."로 시작되는 주인공 '오바 요조'의 수기는 소심하고 겁 많았던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의 궤적을 그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아기 때부터 스물일곱 살로 죽기 전까지 한 인간의 심리적 궤적을 좇은 이 소설은 자신의 생각을 사회에 외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쪽으로 이끌어갔던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삶이기도 했다.

 

오래전의 블로그 포스팅에서 나는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중독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좋아하는 대상에 끌리는 현상을 중독이라 이해한다.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라고.  나는 중독현상에 대해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겁을 먹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중독 현상은 피할 수 없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도 그랬다.  인간에 대한 요조의 공포는 끔찍한 것이었다.

 

"인간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삶"이라는 것 밖에 내가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 어쨋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돼. 나는 무(無)야. 바람이야. 텅 비어있어." (p.19)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p.27)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요조는 그 인간 세계에 스스로 동화되기 위해 ‘익살꾼’을 자처해 가며 노력하지만 번번이 좌절한다.  중학교 시절 타인을 즐겁게 하기 위한 그의 익살이 일부러 지어낸 것, 즉 허위라는 사실이 친구 다케이치에 의해 밝혀지던 날 요조는 충격을 받는다.  도쿄의 고등학교로 진학했을 때 요조는 호리키와 교제한다.  그를 통하여 요조는 술과 여자를 알게 되고 그와 함께 방탕한 생활을 영위한다.  우연히 알게 된 사기범의 아내 쓰네코와 동거를 시작하고 결국에는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여자만 죽고 그는 살아서 구속되었지만 기소 유예로 풀려난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62p)

 

술과 여자를 전전하던 그는 결국 마약에 중독되고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듭된 동반 자살 기도에서 여자만 죽고 혼자 살아남은 요조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본가로부터도 절연을 당한다. 그는 외딴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이해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인간 세상과 사회 질서의 허위성, 잔혹성을 정면으로 다룬 <인간 실격>은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쓰고 순수한 것, 더럽혀지지 않은 것에 꿈을 의탁하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돼가는 패배의 기록이다.

 

그러나 내가 읽은 <인간 실격>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주인공 요조가 현실도피의 일환으로 중독에 빠져드는 과정으로 읽혔다.  말하자면 요조는 허위에 가득찬 인간들과 제정신으로는 한시도 같이 살 수 없었던 까닭에 어려서는 익살로 자신을 숨기고,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술과 여자에, 최종적으로는 마약에, 그마저도 어려워지자 자살기도로 이어졌던 것이다.  결국 익살과 술,여자, 마약, 자살은 그 형태와 대상만 바뀌었을 뿐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모습에는 변함이 없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 저는 그렇게 반미치광이처럼 원하던 모르핀을 실로 자연스럽게 거절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같은' 요시코의 무지에 감동한 것일까요.  저는 그 순간 이미 중독자가 아니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p.130)

 

자기 안으로 한없이 침잠해 결국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없애버린 오바 요조는 비록 패배자이긴 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정직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소설의 구성은 ‘나’라는 화자가 서술하는 서문과 후기,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 요조가 쓴 세 개의 수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은 요조의 수기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수기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씌어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p.134)

 

고등학생의 생활기록부처럼 저마다의 인생기록부를 받아볼 수 없는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삶의 행로에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는다 할지라도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판단되면 과감하게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용기.  운명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그것일지 모른다.  용기 하나만 있으면 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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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인간 실격>이라는 소설이 있다. 제목처럼 꽤나 충격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나는 아마도 대학시절쯤에 이 책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별 감흥도 없이 이 책을 읽었다. '아,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는 정도로 가벼이 읽었었고, 그때 나는 인간에 대한 신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시기였으니만큼 <인간 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가 느꼈던 인간에 대한 지극한 공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며칠 전 그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 자리를 오르내리는 한 사람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그의 행위에 동조하는, 김영오 씨의 단식과 단식 중단을 조롱하는 많은 글들이 트위터에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참으로 썩은 내가 풍기는 '인간 결격자'들의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혹자는 이들을 두고 인간성이나 도덕성이 결여된, 말하자면 잘못된 인성의 소유자쯤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된 판단이다. 인성의 결여는 그들도 한 사람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적어도 <인간 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는 인간의 실체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인간의 허위와 기만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 실격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은 오바 요조보다 못한, '인간 실격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결격자'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자들일 뿐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조차 없는, 인간의 자격 조건이 결여된 '인간 결격자'라는 말이다. 그들의 행위는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본인 스스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그것을 마치 자신의 신념인 양 떠벌리고 있는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그들에게 어울릴지 모른다. 세상을 모르는, 인간에 대해 무지한, 도덕심이나 배려심은 눈곱만치도 없는 하룻강아지는 자신의 방종조차 신념이라고 우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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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락시아 - 정현진 사진집
정현진 지음 / 파랑새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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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억지가 있겠지만 사진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본다기보다는 오히려 읽는 것에 가깝다. 사진을 읽는다? 얼핏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느껴지지만 시간을 두고 찬찬히 곱씹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할 것이다. 나는 사진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상하곤 한다. 그날 날씨는 어땠을까, 구름은 많았나? 바람은? 주변에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지? 조금 추웠을까? 주변 도로에는 개미가 몇 마리쯤 이동하고 있지나 않았을까? 갑작스런 카메라 렌즈에 놀란 어린 새가 푸드득 날아가지는 않았을까?

 

별의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 장의 사진을 놓고 웬만한 책 한 권 읽는 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진을 그리 한다는 건 아니다. 예컨데 여행 책자에 실린 선명하고 화려한 사진은 오히려 섬뜩한 기분마저 들곤 한다. 아무런 상상을 할 수 없는, 이 세상의 풍경에서 한쪽 귀퉁이를 도려낸 듯한 평면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의 사진은 오랫동안 보고싶은 기분이 영 들지 않는 것이다.

 

사진가 정현진의 사진집 <아타락시아>를 나는 정말 공을 들여 보았다. 아니, 읽었다. 내 방식대로, 말하자면 피사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피사체를 둘러싼 배경 스토리, 한 컷의 사진에 담기지 않은 그 순간의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소소한 것들, 영속하는 시간의 경과에서 무한히 정들었던 대상 속에 작가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으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 중에는 '후지와라 신야'가 있다. 여행작가이기도 한 그의 사진에는 '상상 금지'의 팻말이 붙은 여느 여행작가의 사진처럼 선명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사진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고, 다가갈 수 없는 그리움이, 아련한 향수가, 그리고 시간의 경과와 삶의 무상함이 담겨 있다. 내게 무슨 심미안이 있어서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니다. 예술적인 방면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다만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내가 정현진의 사진집 <아타락시아>를 보고 리뷰를 남기게 된 계기는 그의 사진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형상', '사유', '동심', '사랑', '행로', '장면' 등으로 소제목을 달아 분류된 그의 사진집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사는 평면의 일상에서 시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한계 저편의 세계로 공간이동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된다.

모래 위에 남겨진 피서객들의 발자국에서, 도로의 갈라진 틈새에서, 겨울을 견디는 나목에서, 사선으로 흩날리는 빗줄기에서,어느 음식점의 물컵에서, 때로는 나뭇잎 위의 이슬에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상상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사진마다 촬영 동기가 몇 줄의 짧은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어떤 철학적 사유나 현학적 글귀를 써 넣음으로써 독자의 상상을 방해하는 일은 결코 없다. 그저 단순하고 깔끔하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작은 것에 대한 관심과 무한한 상상력, 지워지지 않은 동심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진은 적어도 수십 명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정현진의 사진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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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볼일이 있어 차를 몰고 외출했을 때의 일이다. 막 은행 주차장에 들어서려는데 때마침 볼일을 마치고 나가려는 차량 한 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차량 두 대가 비껴가기에는 턱없이 좁은 출입구인지라 나는 어쩔 수 없이 후진을 했다. 그렇게 후진을 하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내 뒤를 가로막았다. 택시 기사는 전혀 비켜줄 마음이 없었던지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택시 뒤에 또 다른 차량이 바싹 다가서는 게 아닌가.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고 만 셈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내 앞의 차량이 후진하는 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나는 앞 차량의 운전자에게 내가 더 이상 후진을 할 수 없노라는 의사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차량은 전혀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한동안 지루한 대치가 이어졌고 가운데 끼인 나는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더 가관이었던 것은 앞 차의 조수석에 동승한 나이 지긋한 노인의 행동이었다. 인상을 험악하게 하고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서로 문을 닫고 있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보아서는 욕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욱하고 치미는 게 있어 그 자리에 차를 정차시키고 나가 따지려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앞 차의 운전자가 후진을 했다.

 

주차장의 출입구를 지나서야 차량 두 대가 간신히 비껴갈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나는 치밀어오른 분을 삭일 수 없었다. 딴에는 노인을 대접한다는 마음에 주차장 진입을 미루고 정차했을 뿐 아니라 후진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도리어 욕을 먹기까지 하다니... 나는 상대방 노인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육두문자를 날렸다. 물론 듣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그 차는 내 옆을 천천히 비껴갔고 나도 무사히(?) 차를 주차시킬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분은 풀리지 않았다.

 

은행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는 도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을까 생각했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누군가 내 마음을 제멋대로 조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에 매달린 인형이 조종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의 추(錘)는 한시도 고요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괜스레 슬프거나, 이유도 없이 들뜨거나, 대상도 없이 분개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기뻐하는 등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 쪽으로 깊이 기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는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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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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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부터 말해두자. 짬짬이 책을 읽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작가가 보기에)나는 과연 괜찮은 독자인가, 하는 의문이 여러번 들었던 것이다. 독서란 결국 책을 매개로 작가와 소통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책읽기, 나 혼자만의 독백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러한 의문에서 비롯된 반성은 어쩌면 뒤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책이 쓰이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알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즉, 책의 제목과는 다르게 좋은 작가가 되려는 목적보다는 좋은 독자가 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책을 읽었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 장난감이나 라디오가 작동하는 원리가 궁금하여 이리저리 뜯어보고 해체함으로써 결국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으로 망가뜨렸던 기억, 그 과정에서 눈으로 볼 수 없던 원리를 스스로 깨우쳤던 기억이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였다.

 

소설보다는 오히려 영화《미저리》《쇼생크탈출》《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원작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스티븐 킹'은 이 책에서 소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자신이 소설가로 성장하게 된 전 과정을 회고록처럼 쓰고 있다. 두 개의 머릿말에 이어 '이력서'라는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난 까닭에 그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상한 베이비시터에게 맡겨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홍역으로 시작된 질병이 귀와 편도선으로 전이되어 초등학교 1학년을 다시 다녀야만 했던 기억, 소설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어머니로부터 25센트 동전 하나씩을 받았던 초등학교 시절, 자신이 쓴 소설을 친구들에게 팔아 9달러를 벌었던 고등학교 시절과 선생님을 풍자했던 글로 처벌을 받았던 경험, 아내 태비사와의 만남, 결혼과 아이들,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창작활동, 첫 장편소설 <캐리>의 성공 이후 미국 최고의 작가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 (p.308)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으로 쓰인 본론에 해당하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어휘력을 증진시키고 올바른 문법을 익히는 것의 중요성과 더불어 작가는 지나친 부사어의 사용과 수동태 문장의 남용에 대하여 경계하라고 말한다. 또한 서술(narration)·묘사(description)·대화(dialogue)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들, 문단의 구성법, 묘사에 있어서 배경 스토리의 사용 등 좋은 글(이 책에서는 주로 좋은 소설을)을 쓰기 위한 방법들을 풍부한 예시와 함께 위트와 재치를 섞어 설명하고 있다.

 

"나는 지금 간단한 두 가지 명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의 중심부에 접근하려 한다. 첫째, 좋은 글을 쓰려면 기본을(어휘력, 문법, 그리고 문체의 요소들을) 잘 익히고 연장통의 세 번째 층에 올바른 연장들을 마련해둬야 한다. 둘째, 형편없는 작가가 제법 괜찮은 작가로 변하기란 불가능하고 또 훌륭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p.172~p.173)

 

훌륭한 작가가 된다는 것은 다분히 선천적인 재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스티븐 킹의 생각은 많이 읽고 많이 써봄으로써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작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하여 깊이 사유하고 삶의 교훈을 깨닫는 일 또한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스티븐 킹은 말한다.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교훈들은 스스로 찾아 익혀야 한다. 이런 교훈을 얻는 것은 서재문을 닫고 있을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물론 창작 교실에서의 토론도 지적인 자극을 주고 흥미진진한 때가 많지만, 글쓰기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하고 곁길로 빠지는 일도 많다는 게 문제다." (p.293)

 

좋은 독자가 되는 길은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만큼이나 험난할지 모른다.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어떤 상징과 교훈을 무시한 채 무작정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분히 자가당착의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있다. 내가 그랬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책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이 일반론이란 듯 떠벌렸다. 나는 간혹 그 과정을 즐겼고, 이따금 우쭐해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인류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삶의 비의를 찾는 일에는 언제나 서툴렀다. 스티븐 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글쓰기(엄밀히 말하자면 소설 쓰기)에 국한된 것이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좋은 글과 형편없는 글을 구분하는 안목을 기르는 방법, 즉 좋은 독자가 되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 - 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 - 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 - 이 부분이 가장 쓸모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 허가증이랄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p.334)

 

글을 통하여 행복해지는 것, 스티븐 킹의 바람은 바로 그것이다. 직접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좋은 글을 읽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것, 그 시간에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글이 갖는 가치와 생명력을 함께 누리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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