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산에 오를라치면 그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하는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순간순간 변하고 잇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싸리나무와 찔레나무가 엊그제 좁쌀만 한 새순을 틔웠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대궁을 가릴 정도의 초록 물결이 감싸고 있고, 지난 월요일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진달래는 꽃이 벌어 만개한 모습입니다. 도무지 멈춤이 없는 봄날입니다. 출판계도 이제 기지개를 켜려는지 풍성한 신간 서적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굳이 장르를 가를 필요는 없을지 모르겠으나 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은 어쩌면 에세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 '김영하' 하면 이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인사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가 되었지만 그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들고 나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는 기존의 대한민국 문단에서 슬쩍 비껴나간 반항아쯤으로 보였습니다. 최근에 나는 그의 에세이 <보다>를 읽으면서 원숙해진 작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는 어쩌면 '김영하, 괜찮은 작가지.'라고 슬쩍 운을 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으로 유명해진 정여울 작가가 유명세 때문인지 신인 작가로 오해하는 분들이 더러 있더군요. 저는 사실 정여울 작가의 문학과 지식에 대한 깊은 내공(?)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던 듯싶습니다. <마음의 서재>를 먼저 읽었는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먼저 읽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정여울 작가는(신인 작가가 아닌)오래 지나도 지겹지 않을 친한 친구 같은 작가입니다.

 

 

 

 

 

 

여행 서적 중에는 의외로 깊은 사색이 돋보이는 괜찮은 에세이집이 많다는 걸 아시는지. 여행자가 갖는 특수성 때문인지 지극히 감성적인, 별반 가치도 없는 순간순간의 주관적 느낌을 피력한 책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열정을 갖고 뒤져보면 꽤 쓸 만한 책이 더러 있습니다. 물론 잘만 찾는다면 말입니다. 잘한 선택이란 무엇보다 사람을 글의 중심에 놓은 책을 고르는 것입니다.

 

 

 

 

 

 

 

 

 

내가 늘 곁에 두고 이따금 꺼내 읽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가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마치 무한한 우주와 깊은 영혼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동화의 세계를 무작정 거니는 듯한 느낌도 들구요.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지겨운 느낌이 들었던 적은 없습니다. 생텍쥐페리는 그런 작가죠. 가볍게 말하는 듯하지만 생각할수록 음미할 만한, 쉽게 말하는 듯하지만 상대방을 깊이 배려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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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초여름처럼 따뜻했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제 오늘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지요. 그럼에도 아침에 산을 찾는 사람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나는 것 같더군요. 어제 아침에 산을 올랐을 때는 운동기구가 있는 능선에서 다른 날처럼 운동을 하면서도 기분이 영 언짢았답니다. 물론 휴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겠지요. 저는 일요일에는 산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운동기구 주변에는 음료수 용기를 비롯하여 화장지 등 버려진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습니다.

 

과히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주워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 많은 쓰레기를 손에 들고 내려올 수가 없겠더군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비닐 봉지 한 장을 챙겨서 올라갔습니다. 쓰레기를 담기 위함이었죠. 근처에서 주운 나뭇가지 두 개를 젓가락처럼 사용하여 쓰레기들을 봉지에 담았습니다. 그 바람에 오늘 운동 시간은 평상시보다 많이 늦어졌었죠. 아파트 쓰레기 수거함에서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나니 더 늦어졌구요. 그래도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어쩌면 제게는 그 꼴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결벽증이 있을 수도 있겠고, 남들보다 오지랖이 넓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게 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등산로가 아닌 샛길 여기저기로 다녀서 산을 훼손하는가 하면 자신이 가져온 쓰레기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내팽겨치고, 때로는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도 있고, 함부로 나무를 꺾는 사람도 보이더군요. 이런 모든 행동을 '자유'라고 주장하고 싶겠지요? 혹시 그런 말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밑천까지 내보이려는 건 아닌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을 갑자기 폐지하고 도피성 외유를 떠났던 어느 도지사는 부인을 동반한 채 한인 사업가와 골프를 치다가 들켰다지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그분도 과거에는 골프치는 공무원들을 부단히도 씹었더군요. 그러나 이제 와서 자신의 행동은 어떻게 변명하려는지...그럴 돈이 있으면 아꼈다가 학생들 급식비에나 썼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인간 말종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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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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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의 책은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심한 경우에는 '(書)'자만 보여도, 어떨 때는 '독(讀)'자만 보여도 게걸스럽게 달려들곤 한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게다가 치료법도 없으니 평생 달고 살아야 할 불치병이 아닐 수 없다. 내 주변에서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담배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 스스로 끊을 수 있는 의지가 없으니 그런 환경이라도 만들어진다면 좋겠다는 뜻일 게다. 나야 이제 담배는 끊었으니 그 말은 할 수 없고 '책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외쳐야 할까 모르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으로 끌어들인 책을 미처 다 읽지도 못하고 책장에 꽂는 경우가 다반사, 나중에는 읽지 않은 책만 모아도 수십 권에 이를 때가 있다. '구입한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다시는 책을 사지 않겠다' 결심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책에서 읽었던 권장도서나 누군가의 권유가 있을라치면 좀전에 했던 굳은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 당장 그 책을 사야 한다는 생각만 남는다. 팔랑귀도 그런 팔랑귀가 없다. 본디 책이란 게 물건이 없어 못 사는 경우가 드문 법인데 시간을 다투어 사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받는 이유가 뭔지 당최 알 길이 없다.

 

나는 오늘도 책과 관련된 책을 읽고 말았다. 제목은 <책이 좀 많습니다>. 책이 좋아서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헌책방 주인이 되었다는 저자의 얘기를 읽으며 혀를 '끌끌' 찼다. '뭐 묻은 돼지가 뭐 묻은 돼지 나무라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반쯤 읽은 후에야 비로소 나는 전에도 이 책의 저자인 윤성근 작가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음을 기억해냈다. 책의 제목은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책의 제목에도 보란 듯이 '책'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다. 헌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니 책을 좋아하고, 책에 대한 안목이 남다른 사람일 터, 이 책 <책이 좀 많습니다>에도 저자가 만났던 애서가들이 여럿 등장한다.

 

"헌책방에서 일을 하면서 평범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애서가들이 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유명인들 못지않은 거대한 서재를 가진 사람부터 책 없이는 못 사는 자타 공인 '책 바보'까지. 수의사, 번역가, 대학생, 회사원, 교사, 백수 등.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거나 책 많이 읽은 것 가지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자기가 있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p.8 '프롤로그' 중에서)

 

집에 물이 새면 살림은 제쳐두고 젖은 책을 다림질한다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 허섭 씨를 비롯하여 공장 한켠에 컨테이너 서재를 두고 있는 프리랜서 윤성일 씨,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번역가 이경아 씨, 사회학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색하려는 대학생 김바름 씨 등 우리 주변의 애서가 23인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고 있다. 애서가이자 장서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무지막지하게 책을 읽는 사람만 골라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 책에 빠져드는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직업적 이해득실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문학은 유용하다기보다 무용한 것이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거예요. 이를테면 '책 읽기'는 먹고 사는 문제에 관련된 다른 일이 생기면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나죠. 그렇지만 바로 이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문학은 무용하다,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인다는 점을요. 출발점은 분명히 허세와 허영이에요. 정작 세계 문학을 쓴 위대한 작가들도 허세와 허영이 없었다면 작품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쓰는 과정에서 뭔가 다른 가치를 창조했죠. 우리도 읽는 과정에서 뭔가 다른 걸 얻게 되고요. 아니, 뭔가를 '얻는다'는 표현보다는 우리 존재 자체가 '변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죠." (p.329)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인터뷰이의 근황을 소개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산다는 건 매번 달라지는 어떤 것을 수용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일 년 전의 나와 일 년 후의 나는 분명 다를 것이다. 나는 이따금 과거에 읽었던 어떤 책을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그때는 이 재미없는 책에 어쩌면 그렇게 홀딱 빠질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사람도, 책도 변하는 건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책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직도 내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책을 끊었습니다'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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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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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수필 '광야를 달리는 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끔찍했던 '세월호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김훈의 문장을 생각하곤 한다. 특히나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를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컥컥 목이 메인다. 무시로 찾아드는 슬픔에 이따금 나는 그 문장을 혼잣말로 되내이다가 찔끔 눈물을 보였고, 누가 볼세라 서둘러 눈물을 훔치곤 했었다. 그러나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세월호 참사의 슬픈 기억은 아주 오래된 옛일처럼 잊혀져간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13명의 육성기록을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으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저는 앞으로도 오래 살려구요.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건우 아빠, 나는 아흔살 백살까지 살 거야. 내가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라고 했더니 "아흔살? 너무 많지 않아"라고 해요." (p.42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내가 어렸을 때, 놀러간 친구네 집의 안방에서 친구들과 법석을 떨며 놀다 보면 아랫목 이불 속에 묻혀 있던 밥주발이 나동그라지곤 했다. 친구는 혹여라도 어머니께 들켜 불벼락이 떨어질세라 흩어진 밥알을 주워담으며 황급히 수습했었다.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의 한겨울. 삼시 세끼 식구들에게 더운밥을 먹이고 싶어 하던 어머니 마음은 아랫목에 깔린 솜이불처럼 따사로웠다. 나는 이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부모 마음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295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에 대하여 우리는 아는 게 없다.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부의 무능을 비판할라치면 반드시 뒤따르는 옹호 논리가 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가 사고를 냈느냐는 질문. 이런 세살배기 어린애와 같은 논리로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겠다는 발상을 하는 놈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분노한다. 끝내 가라앉지 않는 분노. 2014년 4월 16일 수요일의 그날, 금요일에 돌아올 아이들을 기다려야 할 부모들은 따순 밥 한그릇 준비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보냈다.

 

"4월 16일 이후 우리는 모두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낸 시간을 살아가게 되었다. 슬픔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슬픔을 잊기 위해 그 시간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며. 그 말들이 비수가 되어 다시 하나의 시간을 슬픔에 가둔다." (p.342)

 

그날 우리 가슴에 달았던 노란 리본에는 기다림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물거품처럼 흩어지고 그리움은 국화꽃처럼 시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되고 가동을 시작했지만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바닷속 어둠에 갇혀 있다. 누군가를 잊는 것도, 누군가로부터 잊혀지는 것도 저 나름의 권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식의 죽음을 제 가슴에조차 묻지 못하는 희생자 부모의 마음을 생각할 때 그날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죄인인 양 오그라든 가슴을 끝내 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저 불운한 일이라고, 이제는 큰아이를 잘 보듬어야 할 때라고도 여겼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수현이 아버지는 그렇게 넘어갈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이가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었는데, 그걸 숙명으로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견디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도무지 아버지가 할 일이 아니었다." (p.207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씨)

 

지난 9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 후 첫 공식회의를 열었던 날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한국 주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고통 앞에 중립 없다'는 말을 남기며 세월호의 아픔을 보듬었던 교황.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먼 이국땅의 교황에게 어떤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가. 뜨거운 시간을 홀로 식혀온 찬밥 한 덩이처럼 4월 16일의 아침에 걸려 미래를 향해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우리의 시간. 거짓과 부정의 발걸음은 저 멀리 성큼성큼 거침 없는데 진실의 발걸음은 어찌 그리 더디기만 한 것인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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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한 독일 메르켈 총리의 거침없는 말과 행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2005년 총리 취임 후 10년 동안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여성 지도자로서 주목받았다기보다 뚝심있고 올곧은 행보를 보여줌으로써 세계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내 기억으로도 2013년 그녀는 독일 총리로서는 최초로 다하우 나치 강제 수용소를 찾아 고개를 숙였고, 올해 1월에도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연설에서 "나치의 만행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 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여성 총리로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지도자의 전형으로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일 일본 아사히신문 주최 '베를린 일독 센터' 강연회 차 일본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는 전범국가로서 반성과 참회로 일관해도 용서를 받기 어려운 마당에 망언과 그릇된 야심을 드러냄으로써 동북아 국가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도 '역사를 직시하라'며 일침을 가했다. 이와 같은 메르켈 총리의 행보에 대하여 독일의 한 신문은 "메르켈 총리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영토와 과거사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을 것"이라며 "그는 일본에서 이 문제를 아주 노련하게 해결했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언론도 호평 일색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는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는 메르켈 총리를 보면서 같은 여성 지도자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독일 국민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면에는 무능한 지도자의 표본으로 비춰지는 여성을 자국의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다는 자괴감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도 느긋하기만 하더니 주한 미국대사의 부상 소식을 해외에서 듣고는 귀국과 동시에 병원으로 내달렸으니...

 

김기종의 만행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그야말로 미친 X이다. 어떤 말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 범죄를 저지른 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범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보다 더한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면수심의 인간들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때마다 대통령이 달려나가 사과할 것인가.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슬람국가(IS)의 참수 동영상에 어김없이 등장해 서양인 인질들을 무참히 살해한 장본인이 쿠웨이트계 영국인 2세인 엠와지라고 하여 영국 총리가 미국에 사죄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IS에 가담한 한국인 10대 김모 군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미국에 잘못을 빌어야 옳은가. 자국민의 잘못으로 인해 동맹국인 미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으니 말이다.

 

리퍼트 대사의 피습 직후 정치권의 대응은 가관도 그런 가관이 아니었다. 마치 신파를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한 정신병자의 범죄를 두고 '한미 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확대 해석하는가 하면 종북 세력에 의한 조직적인 '테러'로 보는 듯했다. 미국은 일관되게 테러라는 용어 대신 공격이나 폭력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에 대한 과잉충성을 드러내는 듯한 이런 행태는 정치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 대사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당시 대사의 쾌유를 비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도들의 부채춤 공연과 공화당 신동욱 총재(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의 ‘석고대죄 단식’ 등은 신파를 넘어 저질 코미디로 비춰진다. 마치 김정은 앞에서 충성맹세를 하는 북한 주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에 대하여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신도 과도하다는 지적을 하는 걸 보면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진다.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복종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독립 국가의 지도자라면 당연히 국민들의 자존심도 생각해야 했었다. 국익과 나라의 자존심을 팽개치고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과잉 애정공세를 펼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이번 사태를 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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