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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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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에 그닥 어렵지는 않지만 왜 하는지도 모르는 채 꾸역꾸역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만 해도 그렇다. 어떤 대가가 주어지는 일도 아니고, 가령 내가 쓴 어떤 글을 읽었던 누군가가 감동하여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얘기도 들려오지 않는데 나는 지치지도 않고 몇 년째 블로그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과연 인내심이 특출한 사람이었던가? 천만에 말씀이다. 나는 그렇게 강한 인내심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딱히 기억할 만한 중요한 것을 기록하는 건 아니다. 읽었던 책의 좋았던 문장을 가려내어 언뜻 떠오른 내 생각과 함께 기록하는 게 고작이고, 이따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시답잖은 내 과거를 들춰내는 게 전부이다. 더러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얼마를 줄 터이니 서포터즈가 되어달라는 쪽지가 오기도 하지만 소심한 나는 '혹시 이러다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서 단 한 번도 가타부타 대응한 적이 없다.

 

소설가 한창훈의 산문집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다가 문득 궁금했었다. 나는 왜 쓰는지. 작가는 원고료 때문에 쓴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고도 했다. 또는 '왜 쓰는가'하는 질문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어서 대답하기 부끄럽고 쪽팔리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독자가 제목에서 기대하는 그런 게 아니다. 예컨대 작가의 창작론이나, 작가론 등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시시콜콜 말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 한창훈이 걸어온 삶의 단면, 그가 태어난 거문도와 여수와 광주와 부산, 대전을 거치며 만났던 사람들, 소설가로 등단하여 교류했던 문인들, 그가 읽었거나 썼던 책에 대하여 작가는 진솔하게 쓰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왜 사는가?' 묻는 독자들에 대한 그의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상금이 없었다면 신춘문예 응모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응모가 끝나면 후배는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나는 계속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 겨울철엔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택한 곳은 지방 신문사였다. 응모하고 나서 기다리고 있었고 머지않아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담담했다.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들, 짐작하지 못했던 것들이 돌발적으로 엄습해오는 미래만 무거웠다." (p.173)

 

책에 소개한 작가의 일과는 단순했다. '새벽 기상,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하기, 담배 피우면서 그냥 있기, 원고 쓰기, 낚거나 뜯어온 것으로 국 끓여 밥 먹기, 책 읽기, 산책이나 생계형 낚시하기,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 듣고 있기'(p.109) 소설가보다는 어부를 직업으로 선택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한다. 책에서 그가 밝힌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시바를 매고 고기를 낚던 그의 손에서 짙푸른 감동을 길어올릴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에둘러 말하지 않아도 그가 쓴 소설은 그가 속했던 삶의 현장에 대한 정밀한 기사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 해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마디 내뱉어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 근친 혐오, 그 배경 속에서 쓰고 있다." (p.108)

 

책에서 작가는 유용주 시인, 고 이문구 선생, 송기원 시인, 고 박영근 시인, 이흔복 시인, 박남준 시인, 이정록 시인, 안현미 시인 등 작가와 교류가 있었던 문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그들 중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버들치 시인으로 소개되었던 박남준 시인과 안현미 시인에 대한 소개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그의 넋두리와도 같은 이 책을 끝내 다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삶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한 사람이 결국 소설가로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작은 깨달음들, 그것을 나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내 일인 양 아팠다.

 

"상상보다 앞서 나간 현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없다면, 그런 모습이 없다면 자본의 확대재생산 속도를 늦춰줄, 도시와 비도시의 균형을 맞춰줄, 사람이란 그렇게 독하고 모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쓰기 시작했다. 섬의 딸들이 어떤 식으로 위기를 넘겼는지, 어떤 형식으로 지리적 천형과 운명의 굴레를 이겨냈는지, 숨은 마음과 유쾌한 말을 적어나갔다. 죽음과 삶이 한 쾌에 엮여 있는 것. 울음과 웃음이 한 장소 같은 시간대에 뒤범벅되는 것.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 웃음소리 돋아났다면 그 인생도 괜찮은 인생 아니겠는가." (p.294)

 

비가 예보되어 있는 오늘,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고 한여름인 양 무덥다.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보며 불기운에 데인 양 아프지 않은 사람은 농부가 되지 못한다. 철썩이는 파도를 보며 망망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부가 되지 못한다. 결국 소설을 쓰는 작가는 세상의 모든 삶을 아파해야 한다. 소설가의 숙명은 아파하는 모든 인생에 경배하는 일이다. 어쩌면 직접 세상을 사는 본인보다 지켜보는 소설가가 더 아파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독자는 소설을 통해 한줌 위로를 받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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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11 12:52   좋아요 0 | URL
하릴없이 초록 그늘 아래에 서 있다 꼼쥐님의 글을 읽고,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유레카를 왜치며 성큼 성큼 계단으로 올라왔습니다. :)
왜 쓰는가?에서 출발한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
유대인들이 말하는 삶의 정수 - 일상을 특별한 날로 만들고, 평범한 것을 멋진 것으로 만드는것과 같이 생산적이고 밝은 하지만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 까지 복잡하게 생각하기전에,
˝인생은 아름다워서˝라고 간단히 말해버리고 싶어서 그렇게 계단을 성큼 성큼 올라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상금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 중독된 것처럼 매번 내 글을 확인하며 읽고 펑펑 울거나 배를 잡고 웃지 않아도,
그냥 예쁜 꽃을 보면 ˝예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글을 쓰가고 사는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을 보고 ˝책 참 좋다˝를 조금 더 길게 쓰는 것처럼요.
그리고 어디에가면 더 예쁜 꽃이 있는지, 언제 예쁜 꽃이 피는지를 알아가는 것처럼, 지식과 지혜를 탐구하는 것 같습니다.
독자와 목적는 그 다음인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꼼쥐 2015-06-12 13:04   좋아요 0 | URL
때로는 블로그에 부담감을 느낄 때도 더러 있어요. 그래서 블로그를 닫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죠. 그럼에도 이렇게 유지하는 까닭이 뭔지 손에 딱 잡히지는 않아요. 말씀처럼 `예쁘다`는 말을 조금 더 길게 늘여 쓰면서 그 기분을 더 오래 느껴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글쓰기를 말하다 - 폴오스터와의 대화
폴 오스터 지음,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심혜경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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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도 네팔에서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만 이처럼 큰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나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예컨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하는 구태의연한 장탄식이 아니라 인류가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이나 믿음, 또는 진리가 얼마나 덧없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강한 지진에 의해 우리의 지지기반이 진동을 하는 것처럼 그로 인해 우리의 지적 기반도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밟고 지나다니는 길은 절대 꺼질 리가 없다는 믿음, 우리가 사는 공간은 언제까지나 부서져내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내 곁을 지키는 가족은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 살 것이라는 믿음 등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믿음 체계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입니다.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인류의 사고와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우리네 삶도 획기적으로 바뀐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통틀어 인간의 생활은 그닥 변한 게 없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똑같을 뿐이지요. 지진이나 화산 등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커다란 자연재해를 한번씩 겪을 때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동안 진리인 양 믿어 왔던 모든 것들이 순간에도 기댈 수 없는 가변적인 것들일 뿐이고 세상의 모든 일들 또한 온통 우연의 결합체인 양 믿게 합니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그의 인터뷰 모음집 <글쓰기를 말하다>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견해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병에 걸리고, 죽고, 사랑합니다. 고통을 받고, 슬픔을 겪습니다. 화도 냅니다. 고대 로마든 오늘날의 미국이든 인간의 삶에서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지요. 나는 통신기술이나 라디오, 휴대폰, 비행기, 지금의 컴퓨터 기술 등으로 인간이 바뀌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p.298)

 

폴 오스터의 인터뷰 모음집 <글쓰기를 말하다>는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독자라면 글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적어도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강의는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의 인생관, 그의 철학, 글쓰기에 대한 그의 견해, 자신이 쓴 여러 작품과 관여했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 등 작가는 인터뷰어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질문에 대해 인터뷰이의 입장에서 답변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작가로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어린 시절, 작가로서 출발하기 위한 경제적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던 시절, 번역일과 시인으로 살았던 위기의 순간 등 오스터가 25년 동안 여러 잡지와 한 인터뷰에는 그의 문학관과 창작 과정, 작업 방식 등 글쓰기에 관련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의 개인사도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그 인터뷰에서 당신은 글쓰기를 "인생을 어리석게 사는 확실한 방법이며, 스스로를 일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고 아무도 원치 않는 것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p.224~p.225)

 

위에 인용한 인터뷰어의 질문만 보더라도 작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작가로 유명한 폴 오스터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오렌지 주스 한 잔, 홍차 한 잔을 마시며 45분간 뉴욕타임스를 읽고는 집 인근 작업실로 가서 6시간 정도 글을 쓰고 특별한 가족 행사가 없는 한 일요일에도 글쓰기를 계속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쉼 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래서인지 작가는 누구에게도 글쓰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이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신중하게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돈 한 푼 만져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하는 취향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모든 작가들이 조금씩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처입은 영혼의 소유자, 글쓰기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거든요."    (p.399)

 

작가는 요즘에도 여전히 모눈종이 공책에 글을 쓰고, 더는 손 볼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고쳐 쓰고, 마지막에는 타자기로 원고를 정리한다고 합니다. 그는 "펜은 (컴퓨터 키보드보다) 훨씬 더 원시적인 도구"라면서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공책에 한 땀 한 땀 새겨 넣는 기분이 든다. 내게 글쓰기란 늘 그런 손맛을 느끼는 일이며 육체적인 경험"이라고 소개하면서 글쓰기를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작가가 된다는 것은 노력의 산물이 아닌 운명적인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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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09 14:02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정말 멋지게 소개해주셨네요 :)
반어법적 표현이 그의 창작 활동을 더욱 범접할 수 없는 활동으로 보이게하는 것 같습니다.

꼼쥐 2015-06-11 12:39   좋아요 1 | URL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에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아무튼 이 책은 작가가 했던 많은 인터뷰 중에 중복되지 않도록 가려 뽑은 것을 책으로 엮었나 봅니다. 재미있었어요.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보다-말하다-읽다'의 삼부작으로 기획된 김영하 산문집 중 그 두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책의 제목에서 감지되는 것처럼 1995년 등단 후 작가가 가진 인터뷰나 대담에서 했던 방대한 발언들을 모으고 새롭게 편집해 산문집으로 낸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요즘 들어 인터뷰집을 많이 읽게 된다. 작가의 이전 작품인 '보다'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탓에 이 책을 그냥 건너뛰기는 어려웠다. 이 책에 대한 이웃 블로거들의 호평이 이어졌지만 나는 어지간히 뜸을 들인 셈이다.

 

나의 독서 취향으로 판단할 때 나는 김영하의 팬이라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사람 괜찮은 걸.'생각하게 된 이유는 그의 생각이나 글이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적당히 건져 올린 허섭스레기들로 책의 지면을 성의없이 채우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때로는 그냥 적당히 넘어가도 될 일에 거품을 물고 달려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개성이라고 친다면 작가는 꽤나 매력이 있는 인물이다. 물론 오프라인에서 친구로 지내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친구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가 그냥 책을 읽게 내버려 두라, 인간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 고 했다는 거예요. 동감이에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둠이에요. 친구를 만나서 낄낄거리며 웃고 떠들면서 세월을 보내면 당시에는 그 어둠이 사라진 것 같지만 실은 그냥 빚으로 남는 거예요. 나중에 언젠가는 그 빚을 갚아야 해요."    (p.39~p.40)

 

시각이나 관점이 독특한 사람과 만나 일정 시간 대화를 하다 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과는 다른, 몸 전체로 느껴지는 변화의 감지, 잘 느낄 수는 없다 할지라도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 이후로 나는 크게 변했구나 생각되어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김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내 생각과 다르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듯하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뭐든지 같아지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김영하와 같은 사람도 어느 한군데 몸담고 진득하니 지냈으면 하등 다를 것 없는 사람이 되었겠지만 그는 나이가 웬만큼 든 지금도 남들과 다르다. 좀체로 같아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이다. 작가가 되길 천만다행이다. 만일 그가 어떤 조직에 속하여서도 지금처럼 꼿꼿하게 다른 모습으로 살았더라면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 십상이었으리라. 물론 본인은 그마저도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제가 겪은 가장 깊은 소통은 동료 작가와의 만남에서 경험한 적도 없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경험한 적도 없어요. 고요히 혼자 집에서 읽은 책의 내용과 거기 나오는 인물들, 그러니까 책 자체와 소통했던 순간이었어요. 영화는 두 시간이라 너무 짧아요. 뭘 깊이 소통했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가장 깊은 수준의 소통은 소설을 통해서 얻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즉 소설을 통해서 획득한 타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실제의 인간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p.172)

 

작가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문학이나 소설에 대한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작가만의 '책 고르는 기준'이나 '독서에 다시 흥미를 붙이는 간단한 방법' 등의 가벼운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의 소설 창작 과정, 글쓰기의 즐거움, 비관적 현실주의자로서의 자세 등 어쩌면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진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TV, 신문, 잡지에서 했던 말도 수록됐지만 멀리 해외에서 했던 강연 내용들은 새롭다. 육체의 근육뿐만 아니라 감성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말도 재밌었다.

 

"백 명의 독자가 있다면 백 개의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 백 개의 세계는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읽은 책이 다르고, 설령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그것에 대한 기억과 감상이 다릅니다. 자기 것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대에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 고유한 나, 누구에게도 털리지 않는 내면을 가진 나를 만들고 지키는 것으로서의 독서.  그렇게 단단하고 고유한 내면을 가진 존재들, 자기 세계를 가진 이들이 타인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세계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입니다."    (p.181)

 

작가의 바람과는 반대로 이 세상은 홀로 설 수 없는 인간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스스로 서는 것조차 위태로운 반거들충이들의 집합소인 듯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지탱해 줄 다른 동조자를 찾느라 여념이 없는 것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비단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사회 전체에 만연한 유행병처럼 네 편, 내 편으로 갈려 서로를 헐뜯고 비방한다. 본인 스스로 생각하고 독립적으로 설 수 있는 인간, 누구의 도움이나 동조자의 조력 없이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점점 귀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김영하의 <말하다>를 읽는 모든 독자는 자신을 향해 스스로 묻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독립적인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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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비를 만났다. 가늘고 성긴 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반가웠던지 한껏 들떠 보이는 청설모가 자신의 잰 발로 이쪽 우듬지에서 저쪽 우듬지로 거침없이 건너뛰는 게 보였다. '저러다 혹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나무는 아스라이 높았다. 가벼운 비가 밤꽃 냄새를 진하게 우려내었던지 산에는 온통 비릿한 밤꽃 냄새로 가득했다.

 

산을 얼추 다 내려왔을 때 등산로 한가운데 엎디어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산에서 고양이와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크림색의 고양이는 어떤 무늬의 색깔도, 특징도 없이 그저 평범하였다. 다만 오랫동안 바깥 생활을 한 탓인지 몸은 땟국에 절어 꾀죄죄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소리도 없이 자리를 피했다. 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 걸어가는 녀석을 자세히 보니 출산이 임박한 듯 배가 불룩했다. 고양이는 내가 산을 벗어나기도 전에 숲으로 사라졌다.

 

비는 오지 않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둡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습습한 기운과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들뜬 기분이 메르스의 공포를 조금쯤 누그러뜨리는 듯하다.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거의 없는 작은 식당들이 유난히 썰렁해 보인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화를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복지부 직원들이라 복지부동의 습관이 몸에 배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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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0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하게 현충일을 잊고 있던 현충일 전날 읽고 갑니다. :)

꼼쥐 2015-06-06 07: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지음, 고은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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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병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서, 누군가와 함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데서,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통로가 막혀있다는 데서 오는 '마음의 병'이 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따금 하게 됩니다. 나만이 겪은 특별한 경험이 어떤 보편성 속에 뭉뚱그려 합쳐짐으로써 나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로 변질되고 이 사회에서 '나'란 존재는 사회를 이루는 보통의 인간일 뿐인 듯 느껴지는 것이죠.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인간, 누구 하나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는 느낌은 왠지 서글퍼지는군요. 우리가 흔히 '인간 소외'라고 하는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은 특히 유교 문화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개성의 상실이란 것도 그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겠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감는 새>를 읽어보셨는지요. 그 책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죽어서 이 세상을 뜨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온다 간다 한마디 말도 없이 말입니다. 어쩌면 작가가 이 책을 발표했던 1990년대 중반의 일본 사회에서 소설 속 주인공이 겪었던 그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먼 나라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통계에서 보아 아는 것처럼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도 매년 늦어지고 있지만, 어렵게 결혼에 성공한 커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는 건수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처럼 어제까지만 해도 잘 있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죠. 정말이지 소설처럼 말입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일본을 대표하는 분석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의 대담집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는 여느 대담집보다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이틀간에 걸쳐 진행된 두 사람의 진지한 대화는 특정한 주제를 미리 정하지 않고 시도된 까닭인지 시종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대화가 오갑니다. 개성과 보편성, 개인적 삶과 사회 참여, 소설의 본질, 일본 사회 속의 폭력성, 결혼 생활 등등에 이르기까지 현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와 내면에 잠재한 고뇌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습니다. 이 대담이 성사될 당시 하루키는 그의 소설 <태엽감는 새>를 막 출간했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은 그 당시 고베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으로 전 일본이 집단적 우울증에 걸려 있었던 상태였고 말이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으로서 '이야기'는 참으로 중요하다. 현대는 그런 이야기를 일반인에게도 통하는 것으로서 제시할 수 없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각자는 각자의 책임하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우리 두 사람은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그래도 각자의 개성에 의한 차이를 반영해 가면서 마음껏 대화를 계속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대화에서 얻은 점이 많았다." (p.151)

 

이 대담이 성사되었던 1995년 당시의 일본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전 국민이 슬픔 속에 빠져 있는 것도, 높은 실업률로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가는 것도,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힘든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하는 것도 다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 이미지를 배경으로 <태엽감는 새>가 탄생했다면, 그 소설을 탈고한 작가와 독자의 입장에서 그 소설을 읽은 심리학자의 대담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작금의 우리 현실을 이해하게 하는 좋은 책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괴로워하기 위해서 결혼한다"라는 가와이 선생님의 정의는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면 모두 난처해지지만 말입니다. 저 자신은 결혼하고 나서 오랫동안 막연하게 결혼 생활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서로 메워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벌써 결혼한 지 25년이 되었지만),조금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오히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마구 들추어내는 - 큰소리로 말하거나 말을 안 하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 과정의 연속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p.70)

 

두 지성인의 대화 치고는 너무 솔직한가요? 나는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 작가의 어떤 치기(稚氣)나 장난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때로 그의 수필에서 농담으로 일관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길게 이어지는 대화는 시종 진지하고 솔직했습니다. 그런 진지함이 독자들에게 강한 압박이나 어떤 부담감을 안겨 주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중하도록 했죠. 이따금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공감하기도 했구요.

 

"현대의 일반적 풍조는 무라카미 씨가 쓴 것과는 완전히 반대여서, "가능한 한 빠른 대응, 많은 정보의 획득, 대량 생산"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이 인간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우리는 그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일반적 풍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한다는 데서 의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심리요법가의 일과 작가의 일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p.103)

 

사는 게 순전히 장난 같고, 가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진지하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때로 삶 앞에 진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내내 농담만 주고받다 헤어지는 커플은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는 없는 것처럼 늘 농담 같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삶은 남는 게 없습니다.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노동절, 누군가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그 특별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는 그런 사람 곁에서 하루쯤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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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05 14:59   좋아요 0 | URL
요즘은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고 있답니다. 초기 작품인데도 아직 안 읽었더라구요 ^^
하루키 그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좋은 눈과 별세계에서 (특별히 본인만) 받은 것 같은 뇌로 평범한 일상과 사람의 것들 관찰하고 묘사해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된 묘사와 함께 인간에 대한 근원/심층적인 것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
좋은 소개 감사드립니다~

꼼쥐 2015-06-05 13:29   좋아요 0 | URL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더랬습니다. 독자들 중에는 이따금 하루키의 책을 폄훼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문학에 대한, 또는 소설에 대한 그의 주관은 옳은 듯해요. 현실로부터 한발 비껴선 듯한 그의 소설적 공간으로 인해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현실의 시름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지요. 그것만으로도 그는 작가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것도 하루키만의 능력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