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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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투루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 중 하나는 누군가의 단점을 나의 노력만으로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착각에 자주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비단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커다란 실수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십 년 결혼 생활을 이어 온 부부 사이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착각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사랑으로 혹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신을 향한 자신의 기도를 통하여 상대방의 단점을 쉽게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상대방의 단점을 능히 가리고도 남을 만한 다른 장점이 상대방에게 존재하거나 그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켰거나 그를 소유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데서 비롯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그와 같은 판단에 도달할 만큼 자기 객관화의 면모가 뚜렷한 사람은 흔치 않을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지사지의 태도는 숫제 경험조차 해 본 적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은 가장 이기적인 동물일지도 모른다.


"전시회를 본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아클로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바람과 이웃집의 금속 풍경 소리가 들어와 방을 가로질렀다. 사빈은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테스코까지 걸어가서 장을 봐 온 다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타임 줄기를 넣고 구운 닭고기와 마늘, 주키니 호박이었다. 이 여자는 요리를 할 줄 알았다. 카헐은 지금도 그것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설거짓감이 너무 많이 나와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화가 났는데, 그가 전부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그녀가 밤새 불려야 한다고 말했던 오븐용 그릇만은 예외로, 그가 월요일에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싱크대에 그대로 있었다."  (p.21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


클레어 키건의 소설집 <너무 늦은 시간>에는 표제작인 '너무 늦은 시간'과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남극' 등 단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얇은 책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내용 또한 가볍고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너무 늦은 시간'에서 주인공인 카헐은 어느 회의장에서 만난 사빈과 사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인색한 데다가 남성 우월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한 카헐은 자신의 집으로 짐을 옮긴 사빈과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러 번 충돌한다. 사빈은 카헐의 직장 동료인 신시아를 통해 카헐의 행동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확인한다. 사빈은 카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지만 카헐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들이 다만 아일랜드 남자들의 관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대학 시절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남동생이 어머니가 자신의 접시를 들고 식탁에 앉으려 할 때, 의자를 홱 빼버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바닥에 넘어졌던 것은 물론 접시가 깨지고 접시에 담겼던 음식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남자들 세 사람이 크게 웃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카헐은 마음 한구석으로 아버지가 다른 남자였다면,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았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 못된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어져서 옆으로 누웠지만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난 후에야 잠이 왔고, 그는 어느새 잠의 위안과 새로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p.44~p.45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


한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뵐 하우스'라는 작가 레지던스에서 집필 작업을 하려던 여성 주인공이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다. 독문학 교수라고 소개한 남자는 집을 둘러보겠다며 무례하게 부탁한다. 글을 써야 할 귀중한 시간에 주인공은 마지못해 응한 남자의 방문이 영 못마땅하지만 준비한 케이크를 대접한다. 남자는 이를 게걸스럽게 먹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오히려 주인공을 타박하기에 이른다.


"얼마나 끔찍한 남자인지! 정말 끔찍하고 불행한 남자야. 그녀가 문을 잠그며 생각했다. 정신이 나갔나? 게다가 얼마나 수고를 들였는지 생각하면...... 그녀는 케이크를 보면서 창밖으로, 그의 뒤에다가 던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케이크를 냉장고 깊숙이 넣고 와인을 한 잔 따랐다."  (p.77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중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로 시작하는 '남극'은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기는 여자의 경험을 다룬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말을 준비하여 놀라게 한다.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은 대략 10년씩의 시차를 두고 쓰였다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는 비슷하고, 주제 역시 일관되게 흐른다. 2022년에 발표된 '너무 늦은 시간'과 2007년에 발표된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1999년에 출간된 '남극'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작가의 생각과 문학적 표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로 보이지만, 특이하게도 클레어 키건은 시간의 추이에 다른 변화를 보여주기보다 하나의 주제를 각각 다른 소재로 선보이는 3인 3색의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데이트 폭력과 남녀 간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클레어 키건은 이 책에서 결혼 전의 두 남녀의 갈등과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를 제삼자적 관점에서 보게 되는 여자와 경험해보지 못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압축적인 이야기로 담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텔 살인 사건도 그렇지만 남녀 간의 관계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단점이 아주 작게 보이거나 쉽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잘못된 믿음이었음을 곧바로 알게 된다. 그럼에도 문제가 지속되는 까닭은 인간의 적응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위중한 폭력 앞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인간은 그 상황에 적응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클레어 키건은 각각의 상황을 여성의 입장에서 쓰고 있지만 비단 이것이 어느 한 편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남녀 간의 교제를 법으로 금할 수도 없고... 사랑에 이르는 길은 너무도 가깝고 사랑에서 벗어나는 길은 너무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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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자신의 노력에 비해 과도한 칭찬을 받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오늘 새벽 산행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풀리면서 산을 찾는 등산객이 늘어난 탓에 등산로에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이 겨울에 비해 배는 증가한 듯합니다. 어차피 빈 손으로 내려올 바에는 쓰레기라도 주워서 내려오는 게 환경에도 좋고, 기분도 좋고 여러 모로 나쁠 게 없으니 나는 꽤나 오래전부터 등산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자고 생각했었고, 아침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면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들려 있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작은 골판지 박스며, 페트병이며, 사탕 껍질이며, 사용한 화장지 등을 두 손에 나눠 들고 내려오는데 오늘 처음 본 아저씨 한 분이 나를 향해 과도한 칭찬을 쏟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하시다는 둥 너무나 좋은 일을 하신다는 둥 온갖 칭찬을 늘어놓는 바람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하여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줍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느냐며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 대한 성토를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스로 그분을 진정시키고 산을 내려오는데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나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온종일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요?


"우리는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삶에서 벗어난다. 그때 우리는 시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어떤 지속을 느끼지만, 곧바로 한층 더 불투명해진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조차 실은 무심하다. 들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시골길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은 살해될 수 있다. 그러니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두려운 일은 아니다. 진정 두려운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안에서 모두가 어느 정도 길을 잃고 있는 이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세상의 빛> 중에서)


크리스티앙 보뱅의 지적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 길을 잃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엊그제 시작한 듯한 2026년도 벌써 두 달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다가오는 3월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시시각각 길을 잃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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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 하나코는 없다 The Last of Hanak'o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3
최윤 지음,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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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등산로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등산로뿐만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안개에 점령당한 듯했다. 어제 내린 습설이 밤새 낮아진 기온에 서릿발처럼 얼어붙어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낮에는 기온이 꽤 오르겠는걸'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안개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는 최윤 작가의 소설이 떠올랐지만 끝내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다. 알듯 알듯 하면서도 결국 포기하게 되는 순간의 답답함이란... 이런 경험이 전에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닌데 때로는 입에 붙었던 책의 제목마저 어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게 될 때, '나의 기억력도 이제 옛날 같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깊은 한숨과 함께.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자마자 책의 제목부터 확인했다. 그래, 맞아. <하나코는 없다>였지. 왜 그게 떠오르지 않았을까.


"폭풍이 이는 날에는 수로의 난간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하라. 그리고 안개, 특히 겨울 안개에 조심하라...... 그리고 미로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을 두려워할수록 길을 잃으리라."  (p.8)


하나코는 별명이었다. 코가 예뻐서 붙여진 별명.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모임의 어느 한 사람이 하나코에게 전화를 걸면 그녀는 혼자 또는 늘 똑같은 여자 친구 한 명을 대동하고 흔쾌히 나와주었다. 그런데 '공기나 혹은 적당한 온기처럼 늘 그들 곁에 있던 하나코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자주 어울렸으면서도 그들이 하나코의 신상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하나코가 살고 있다는 이탈리아로의 출장에 자원한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그는 안개처럼 모호한 하나코의 실체를 되살리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파탄시킨 '그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지금도 역시 떠올리기 싫다는 듯 자꾸만 머뭇거린다.


"그 자신을 포함해 무리들 중의 누구도 하나코에게 자신들의 결혼 날짜를 알리지 않았다. 딴 친구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로서는 그저 단순한 부주의였다. 물론 그는 청첩장을 준비하던 때만 해도 그녀에게 보낼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분주한 일정에 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p.62)


남자들의 모임에 홍일점으로 참여했던 하나코. 그녀는 어쩌면 그들 무리 개개인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일종의 어장 관리 차원에서, 모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어떤 장신구처럼 이용한 듯 여겨진다. 유쾌하지 않은, 어쩌면 회피하고 싶은 기억을 안고 그는 하나코와의 전화 통화에 성공한다. 서울이 아닌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그는 갑자기 힘이 조금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보러 기차를 타고, 그녀가 말해 준 이름의 거리를 찾아 헤매고,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고, 그녀의 책상 옆에 앉아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그녀의 생활공간으로 초대되고, 이 나라에서 하듯이 집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고 환담을 할 엄두가 나지를 않는 것이다."  (p.74)


그는 하나코와의 통화에서 모임 멤버였던 J나 P도 그저 전화만 하고 방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임의 어느 누구도 하나코와 사적으로는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도 역시 하나코를 만나지 않은 채 로마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그는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어느 날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에서 외국 바이어들에게 보낸 홍보 잡지에 실린 하나코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된다. 하나코를 만나지 않고 출장에서 발길을 돌렸던 그는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이삼 년 한 후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모임 멤버와 하나코와 그녀의 친구가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낙동강 근처의 어느 식당으로 놀러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하나코와 윽박지르듯 노래를 강요하는 그들 무리가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날 이후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졌었다.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도시. 이제 기차는 불빛이 점점 드물어지는 인적 없는 어두운 풍경 속을 달리고 있었다. 아래 좌석의 승객들도 등받이를 올려 침대를 만드느라 부산하다가 언제부터인가 갑작스러운 침묵이 왔다. 복도의 소음도 점점 더 줄어들고 기차는 짙은 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여전히 세 개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p.82)


스가 아쓰코가 쓴 <밀라노, 안개의 풍경>도 떠오른다. 안개, 하면 습관적으로 떠오르던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언젠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제목이 뭐였더라, 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 한 대목을 옮겨 본다.


"저녁 무렵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안개가 자욱이 깔리곤 한다. 창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고, 끝내 굵은 줄기까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가로등 밑을 생물처럼 달려가는 안개를 본 적도 있다. 그런 날에는 몇 번이고 창으로 달려가 짙은 안개 너머를 내다본다."


낮에는 기온이 제법 올랐었다. 산책을 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날씨. 늦은 점심을 먹었던 나는 사무실 근처의 공원을 천천히 걸었고, 봄 햇살에 눈이 녹는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모이를 찾는 비둘기떼가 이리저리 날아 올랐다 다시 내려앉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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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나는 새롭게 맞는 날들이 특별한 감정의 소모가 없는 무던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픈 또는 지나치게 화가 나는, 예컨대 평소에 비해 과도한 감정적 소모조차 견디기 힘든 나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쇠약해지는 기력 탓에 극심한 감정의 소모에 필요한 에너지를 미처 충당하지 못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을 소모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인지 과학적으로 검증한 바는 없지만 말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가는, 이를테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내세우지 않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남들에게 까칠하게 대하지 않는 수더분한 성격의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내게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라면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창밖에는 한겨울에도 자주 보지 못하던 눈이 하얗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살았던 세세한 흔적들도 저 눈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그 기억들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욕심조차 한낱 부질없는 꿈임을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살았던 흔적 역시 초봄에 내리는 저 눈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쉽게 녹아 사라질 수만 있다면 저승으로 향하는 발길이 조금 가볍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의 소설 <기차의 꿈>을 읽고 있습니다. 100여 쪽 남짓의 얇은 소설이지만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인 듯합니다. 이 책에 대한 '추천의 글'을 쓴 정여울 작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소설에는 삶이라는 거대한 파노라마가, 인간의 부조리와 상실과 치유와 극복의 모든 서사가 담겨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누군가 내 귓가에 집요하게 무언가 간절한 사연을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위대한 사랑과 희망의 목소리를.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상실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시작되고, 지속되고, 항상 우리 마음속에서 끝내 살아남을, 위대한 희망과 사랑의 이야기를."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차량들이 줄을 지어 달려갑니다. 이렇게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우리는 잊고 있었던 어느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끝없이 불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행복했던 감정들을 야금야금 소모합니다. 격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기진한 듯 나른한 피곤이 몰려옵니다. 여전히 눈은 그치지 않고 눈꺼풀의 무게만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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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02-25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눈오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눈꽃들을 보면서 즐거웠는데, 그 여운을 꼼쥐님 글에서 다시 느껴봅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꼼쥐 2026-02-25 16:59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하루 사이에 날씨가 급변해서 웬만한 눈은 다 녹아버린 듯합니다. 날씨가 어찌나 좋던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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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남은 삶도 규칙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삶이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깨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나는 것은 아니야.'인 것처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앞만 보고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주어진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삶이란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이어짐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작업이기도 하고, 그와 같은 관계를 나 역시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일지라도 가족에게 발생한 끔찍한 사고를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로 인하여 나의 삶이 180도 달라질 수 있음을 어찌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국제 탐사보도 특파원인 아잠 아흐메드가 쓴 르포르타주 <두려움이란 말 따위>가 출간되었다. 무너진 공권력과 이 틈을 비집고 성장한 마약 카르텔이 멕시코 지역사회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범죄 르포르타주 <두려움이란 말 따위>는 마약 카르텔 조직에 의해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범인을 직접 추적해야 했던 미리암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州) 산페르난도 지역에 살고 있던 미리암 로드리게스와 루이스 살리나스 부부에게는 큰딸 아잘리아와 아들 루이스 엑토르, 막내딸 카렌을 둔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고질적인 외도와 그 반작용으로 대학생이었던 카렌이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2년 전이었던 2014년 1월, 플로리스트를 비롯한 세타스 일당이 카렌을 납치했다. 미리암은 애걸복걸하며 세타스의 모든 지시에 따랐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몸값까지 지불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카렌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정부 당국에서는 탄원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고 형식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등 미리암을 외면했다."  (p.12)


평범한 주부에 지나지 않았던 미리암은 현실을 직시한 후 딸을 납치한 자들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추적에 나선 지 2년 만에 추적 명단 속 6명은 교도소에 수감됐고, 4명은 세타스의 거점을 습격한 해병대에 사살됐다. 이 모든 과정에 미리암이 관여했다. '아마추어 수사관'으로 활약했던 것은 물론 딸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한 DNA 검사 역시 그녀의 몫으로 남았다. 딸의 복수를 위한 집요한 추적 과정에서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카렌의 유골을 수습하고 납치범을 잡아 법정에 세우면 그 위험한 범죄 조직에 맞서는 행위를 그만두겠다던 미리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권력의 부패와 범죄조직과의 유착으로 인해 자신과 같은 납치 피해자 가족은 수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였고, 그들의 고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종 피해자 가족들은 굴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경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못지않게 불확실함에 시달린다. 상실감이라는 유령과 살며 가족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고문당한다. 희망은 자식이나 남편, 동생, 사촌의 유해라도 찾겠다는 열정이 되기도 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p.208)


4년간 관련 인물을 수백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고 2만 쪽이 넘는 사건 파일과 재판 기록을 입수해 사건을 재구성했던 저자의 노력 때문인지 범죄 현장을 취재한 논픽션이라는 느낌보다는 범죄 스릴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멕시코 혁명 이후 탄생한 '걸프 카르텔'이라는 마약 범죄조직의 역사·지역적 배경을 다루면서 걸프 카르텔 조직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 범죄조직 '세타스 카르텔'을 다루고 있다. 세타스는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인 산페르난도를 중심으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범죄를 수시로 저질렀고, 이들을 두려워한 마을 주민들 역시 그들을 신고하거나 증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직 딸의 복수를 위해 나섰던 미리암은 실종 피해자 가족 모임을 이끌면서 범죄조직에 맞서 싸웠다. 자신의 안위를 등한시한 채 말이다.


"죽음과 시신 훼손이 일상이 된 곳에서는 당국의 무능함과 냉담함과 무관심도 일상이 된다. 너무 지친 피해자 가족들은 더 이상 당국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그 사실이 폭력으로 엉망이 된 상황을 수습할 책임이 있는 자들을 더욱 둔감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악순환이었다."  (p.318)


한 국가의 치안은 오직 그 나라의 공권력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성숙과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이 그 나라의 치안과 질서 수준을 결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공권력은 시민의 감시나 재촉이 없다면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처럼 범죄조직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범죄는 활개를 치고 이에 맞서야 할 공권력은 더욱 움츠려들게 마련인 것이다.


길었던 겨울도 끝이 보이고 있다. 친위 쿠데타라는 가장 무시무시한 악의 카르텔을 맨몸으로 막아냈던 우리 국민의 용기는 세계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자행되었던 내란과 이를 극복했던 경험이 우리에게 맨몸으로 저항할 용기를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까닭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국민의 용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용기는 우리 국민 전체의 높은 시민의식에서 비롯된다. 보이는 것은 언젠가 닳아 없어질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국민 각자의 시민의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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