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몸을 앞질러 갈 때가 더러 있습니다. 성격이나 습관이라기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이랄까 아니면 강제적인 이끌림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지금처럼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의 어느 휴일, 지난해 10월이나 11월의 어느 날처럼 한껏 빈둥대며 몸이 원하는 만큼의 게으름을 피워 본들 하늘이 무너지거나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가정의 재정이 오늘 갑자기 파탄날 일도 아닌데, 나는 서둘러 일어나 의관을 정제한 후 책상 앞에 앉아 차분히 신년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고 맙니다. 불현듯 말입니다. 이런 일상을 원했던 것도 아니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빠져드는 것입니다. 삶이란 결국 어떤 일을 내가 하루 더 먼저 끝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하루 더 일찍 생을 마감한다면 결코 나아질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산책을 하다가 문득 아파트 화단의 조경수들을 보았습니다. 푸르르던 잎을 모두 떨구고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듯했습니다. 성마른 성격의 우리네처럼 어떻게든 이 계절만 견디면 좀 더 활동하기 좋은 다른 계절이 오겠지,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니라 자연은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입니다. 춥거나 더운 계절을 견디는 게 아니라 그저 담담히 흘려보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다른 계절과 다르지 않게 말입니다. 올해는 동장군을 핑계로 해돋이를 보기 위한 여행을 가지 않았습니다. 2025년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에도 나는 특별한 약속도 없이 조용히 귀가하여 특별한 의미도 두지 않은 채 일찍 잠들었던 것입니다. 여느 날처럼 말입니다.


제프 다이어의 에세이 <그러나 아름다운>을 읽고 있습니다. 글에도 박자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자신이 쓰는 글에 어울리는 특별한 박자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서 재즈를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작가는 마치 재즈 리듬처럼 문장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물건들이 탈색되고 있었다. 심지어 바깥 간판에도 창백한 초록빛 기운만이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이 점점 흰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큰 눈송이가 인도 위에 내렸고 나뭇가지를 뒤덮었으며 주차된 자동차들을 흰 담요처럼 덮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이라고는 없었고 그 누구도 다니지 않았으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도시가 이처럼, 한 세기에 단 한 번 잠이 든 그 시간처럼,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전화벨도 울리지 않았고 켜 있는 텔레비전도, 다니는 자동차도 없었다."  (p.54~p.55 '빌리 홀리데이의 또 다른 별명' 중에서)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한 해를 시작하려 합니다. 흐르는 시간을, 흘러가는 모습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려 합니다. 견뎌야 할 일이 있으면 견디고, 즐길 일이 있으면 즐기면서 말입니다. 화단의 조경수처럼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하게 그렇게 살아보려 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쎄인트 2026-01-03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내일 일은 난 모른다. 오늘을 살자. 욕심내지 말자. 버리고 갈 것만 생각하자.” 바뀐 다이어리 첫 장에 제가 써놓은 글귀입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무탈평안’ 하셔요~

꼼쥐 2026-01-04 16:45   좋아요 2 | URL
댓글 감사합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는 박경리 여사의 묘소 길목 푯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쎄인트 님의 삶도 그렇게 홀가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세 익숙해지겠지만 새해는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다. 날짜를 말하거나 쓸 때에도 '2025'라는 이미 지나간 숫자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앞으로도 한동안 나는 '2026'이라는 숫자와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고 가는 한 해가 그러하듯 계절의 변화 역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잠시 금세 여름이 오고 그렇게 끝없이 더위에 헐떡이다 보면 가을인 듯싶다가 이내 겨울이 찾아오곤 한다. 너무나 긴 여름과 미처 계절을 감각할 새도 없이 흘러가버리는 여타의 계절들. 나는 이처럼 이상한 계절의 변화가 무척이나 낯설기만 하다. 이런 감각을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된 것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코로나라는 낯선 이름이 전 세계를 점령했던 2020년 초의 코로나 팬데믹 시기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으로부터 멀어지자 깨닫게 되는 사실들. 우리의 시야를 가장 흐리게 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존재하는 인간 이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오후, 시퍼런 냉기가 뚝뚝 흐르는 한파를 뚫고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그리고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을 마저 읽었다.


"나는 어렸을 때, 나중에 크면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쓰겠노라 생각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사랑 이야기를 쓰겠노라 생각했다. 멋지고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나중에 이제 그런 이야기는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고전 소설들의 핵심을 이루는 결혼 이야기 말이다.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이상 매력적인 줄거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마지막에 결혼에 골인한다고 해서 만사형통이 될 수는 없었다. 간음이 반드시 파멸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었고, 간통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었으며,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아를 해하는 열쇠도 아니었다. 문학은 그런 것들에 종지부를 찍었다."  (p.174)


소설의 화자는 맨해튼에 사는 소설가이다. 동창인 릴리의 죽음으로 인해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여러 명의 동창생들. 그리고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화자는 동창 친구 바이올렛의 지인인 아이리스 부부의 부탁으로 반려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게 된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아이리스 부부는 팬데믹 봉쇄령으로 발이 묶이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앵무새를 돌보기로 했던 한 대학생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만삭의 아이리스는 캘리포아에서 떠날 수 없었고, 급하게 '유레카'를 떠맡게 된 화자. 모든 관계가 차단된 시기에 '유레카'를 돌보는 일은 화자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아무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p.104~p.105)


화자는 뉴욕에 자원봉사를 온 한 의사가 거처를 구하지 못해 난처해하자 자신의 아파트를 내어주고 자신은 유레카가 있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돌연 사라졌던 대학생 '베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아오면서 화자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화자는 '베치'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던 까닭에 그와의 마주침을 최대한 피한 채 생활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탄 괴한과 마주친 화자는 그의 조롱과 위협으로 인해 외출조차 어려워지고 만다. 모든 게 순조롭지 않다고 여겼던 그 순간부터 '베치'와의 관계에 조금씩 숨통이 트인다. '베치' 역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나누고, 화자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네 통이나 사오는 등 서툰 방식으로 가슴을 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두렵긴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난 진짜로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간절히 원하는 건. 내가 실제로 가질 수 있는 것들 중에는요.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시간이 너무 많은 게 두려워요. 이렇게 모든 게, 모든 사람들이 엉망진창이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p.273)


<취약함(The Vulnerables)>이라는 원제를 갖는 이 소설은 팬데믹이라는 불확실한 시기에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취약함을 스스로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가치관을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몸을 도사림으로써 타인과의 깊은 관계 설정에 실패하기도 하고, 타인의 약점을 빌미 삼아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관계 맺기에 실패하기도 한다. 다정함이란 결국 나와 너의 '취약함'을 서로 애틋하게 여기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견고함은 상대방의 강인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가엾게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방 안에 갇힌 앵무새를 함께 돌보면서 발견하게 된 모든 존재의 취약함. 어쩌면 우리는 그 낮은 곳으로부터 관계를 맺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2026년의 첫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나는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출근을 했고, 가급적 외출을 삼간 채 하루를 보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이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조금씩 기온이 오르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사다난했던 2025년도 이제 오늘과 내일 단 이틀이 남았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세밑 무렵이면 언제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개중에는 꼭 필요한 고민들도 있을 테고, '굳이 지금?' 하는 의문이 절로 드는 생뚱맞은 생각들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밀린 숙제를 하듯 미뤄두었던 생각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버릴 건 버리고, 해결할 건 해결하기 위해 헝클어진 생각들을 정리합니다. 이런 시간이 닥칠 때마다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를 앞에 두고 곰곰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번 생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거창하게 역사적 소명이나 책무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하여 어떤 확고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남은 삶을 계속하여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삶을 살아갈 이유나 명분 같은 것이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내가 이번 생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아주 먼 과거에 이미 주어졌었거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먼 미래에 주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이번 생에서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영영 풀지 못한 채 그것을 다음 생으로 미루고야 말겠구나 하는 낭패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의 저변에는 현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인간은 코앞에 닥친 문제만 겨우겨우 해결하느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를 조망하고 해결하는 일은 손도 댈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말하자면 대다수의 인간은 현실에 매몰된, 어쩌면 현실을 현실로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시간 열외자의 입장으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계획할 수 없는 까닭에 내가 참여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암흑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40세 정신과 영수증>이 떠오릅니다. '정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이 40여 년간 모아 온 영수증과 그 뒷면에 적어 내려간 삶의 기록입니다. 정신 작가는 23세부터 매일매일 영수증을 모아 왔다고 합니다. 그 사이 모은 영수증은 2만 5천 장-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20대를 보내던 정신 작가는 어느덧 40대가 되었습니다. 30대엔 단 한 사람을 만나 단단한 일상을 꾸릴 것 같았지만 40대의 인생도 여전히 막막하고 흐릿하기만 합니다.


"설렁탕을 한 그릇 먹고/성당에 찾아가/감사기도를 하는데/눈이 시렸다//나의 아빠가/눈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엄마의 남편도 아니었던 것 같고/나의 아빠도 아니었던 것 같은/그의 삶에 눈이 시렸다// 2017년 9월 8일 오후 1시 48분/설렁탕/13.00$/GAMMEEOK"  (p.80)


내가 이번 생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아주 먼 과거에 주어졌지만 무심했던 내가 까맣게 잊었거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먼 미래에 주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코앞에 닥친 크고 작은 문제를 처리하느라 현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2025년 한 해에 풀어야 했던 숙제도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단 이틀을 남겨둔 2025년의 세밑입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레이스 2025-12-30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럴땐, 1주일, 한달, 일년이란 단위로 시간이 주어지는게 유익하단 생각이 드네요.

꼼쥐 2026-01-02 16:14   좋아요 1 | URL
보이지 않는 시간에 공간성을 부여함으로써 인간은 시간의 경과를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인간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서곡 2026-01-01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꼼쥐 2026-01-02 16:14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서곡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힐 2026-01-02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5년,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 했습니다.
2026년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열심히 읽겠습니다. ^^

꼼쥐 2026-01-03 07:09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 역시 마힐 님의 글을 읽으며 지난 2025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아름다운 글과 함께 하시길~~
 
말하기가 두려운 날엔 - 흔들리던 날들의 스피치, 나를 다시 세운 목소리의 기록
신유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시작하면 나를 꼰대 취급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웅변대회가 자주 열렸다. 그래서인지 학교 근처 상가에서는 웅변 학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주산 학원이나 서예 학원도 많았지만 말이다. 웅변대회는 주로 행정구역상 작은 단위에서 시작하여 큰 범위로 나아가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읍 단위에서 수상한 학생이 군 단위에 진출하고, 군 단위에서 수상한 학생이 도 단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전국 단위에 진출하여 실력을 겨루는 방식이었다. 물론 주제는 그때마다 달라지곤 했으나, '반공'을 주제로 한 웅변대회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만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소심한 학생이었다. 오늘 학습할 부분을 읽어보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혹여라도 나를 향하지나 않을까 나는 늘 노심초사하였고, 지목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는 언제나 선생님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어쩌다 지목을 받는 날이면 그리 길지도 않은 교과서 문장을 읽는 동안 목소리는 물론 몸 전체가 덜덜 떨렸고, 손에는 땀이 흥건하게 고였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선생님과 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긴장과 불안 속에서 보내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학교에 가는 일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몸의 위생상태를 점검하는 용의검사나 손톱검사 등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을 일들이 공부 외에도 꽤나 많았고, 선생님의 권위가 하느님만큼 높았던 시기였던 까닭에 체벌은 언제나 일상적인 일이었다.


"스피치는 교감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의 소통이다. 면접장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선택을 받고 프레젠테이션 발표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울려야 한다. 말은 진심과 진정성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진정성은 참된, 거짓 없는 진실된 마음이다. 스피치를 하는 상황이니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두려움을 떨치고 스피치를 하면 쉽고 재미있다."  (p.9 '프롤로그' 중에서)


내 삶에 반전이 찾아온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에는 전교 어린이회장을 학생들이 투표를 통하여 선출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지명하는 구조였고, 전교 어린이회장에 지명되는 학생은 당연히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다. 모든 게 성적순으로 이루어지던, 말하자면 철저하게 권위와 서열이 지켜지던 비민주적인 사회였다. 소심하지만 그럭저럭 성적은 좋았던 나는 운이 좋게도(?) 전교 어린이회장으로 지명되었고, 매주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진행되던 아침 조례 행사에서 전체 학생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것도 마이크도 없이 말이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각종 웅변대회에 학교를 대표하여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역할도 함께 부여받았다. 대중 앞에 나서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사시나무 떨듯 긴장하던 모습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신유아 아나운서의 신작 <말하기가 두려운 날엔>을 읽으면서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말하기는 결국 경험에서 비롯되는, 훈련을 통한 하나의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스피치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눈치는 보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된다. 삶은 내가 끌고 가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기준대로 사람들의 평가대로 남들이 어떻게 나를 볼까 하는 생각으로 살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다. 나로 살아야 한다."  (p.147)


SBS 공채 개그맨 출신 아나운서로 SBS와 KBS에서 리포터로 활약했고, 기상캐스터로도 활약했던 저자는 현재 U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운영하며 말하기 지도에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신유아 아나운서의 신작 <말하기 두려운 날엔>의 목차를 살펴보면 이 책의 실용성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제1장 '세상의 모든 스피치는 내가 만든다', 제2장 '스피치를 잘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제3장 '스피치를 잘하면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 제4장 '스피치를 잘하면 대우가 달라진다', 제5장 '스피치를 잘하면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의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적으로 스피치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과거의 당신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힘없이 얘기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부터 당신은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당신의 말이 굉장히 빨라 사람들이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는 당신의 말에 대한 나쁜 습관을 고쳐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자. 멋지게 스피치 실력을 키워 과거의 당신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p.252 '에필로그' 중에서)


온라인상의 간접대화가 늘고 오프라인에서의 직접 대화나 음성 통화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지만, 말하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인류가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대화를 이어가는 한 말하기의 중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나는 요즘 말끝을 흐리는 것은 물론 말을 하는 내내 쑥스러움에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의 젊은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소음이 심한 장소에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을 끝까지 또박또박 말한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원활한 소통이란 정확한 의사전달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이 뭔 말을 하였는지 알 수 없는데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툼한 당신의 인생서에서 한쪽 모서리에 삼각형으로 접힌 몇몇 페이지를 들춰 읽으면 당신 인생의 전반을 짐작할 수 있을까요? 세세하게는 아니지만 대충이라도 말이지요. '삶은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것, 우리가 이야기하기 위해 기억하는 것'이라고 남미 출신의 어느 작가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삶에 대한 그의 표현이 더없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불끈 저항하고픈 마음이 들곤 합니다. 우리들 각자가 쓴 인생서에서 누군가에게 말해주기 위해 접어 둔 몇몇 페이지가 겨우 우리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자 우리의 삶을 비하하는 듯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어제오늘 볼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습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으로는 겨울은 언제나 이와 같은 극한의 추위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 세수를 한 젖은 손으로 방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으면 손에 쩍쩍 달라붙는 일은 다반사, 방의 아랫목에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앉아 '후' 하고 입김을 내뿜으면 공기 중으로 하얀 입김이 멀리까지 뻗어가곤 했습니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겨울은 늦게는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테지요. 낮이 되자 기온은 조금 올라 냉랭했던 바람결이 조금 부드러워진 듯 느껴집니다. 성탄절 당일에 휴가를 나온 아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만 뜨면 밖으로만 나돌고 있습니다. 나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을 읽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에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는 화자의 일상이 조금 지루하리만치 이어지는 이 소설은 묘한 매력으로 책을 손에서 떼어내지 못하게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해낼 자신이 잇는 몇 가지 안 되는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p.104~p.105)


시그리드 누네즈의 문체는 무심한 듯 건조한 문장을 이어가면서 때로는 독자를 무시하는 양 불친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작가는 자신의 소설 곳곳에 독자들이 각자의 삶에서 깊이 생각해볼 거리를 툭툭 던져 놓음으로써, 우리는 지금 지루하게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소설 속으로 소풍을 떠난 어린아이가 작가가 숨겨 놓은 삶의 비밀을 찾아 이곳저곳을 뒤져보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고 있는 듯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나절의 보물찾기 놀이에 심취하는 것은 물론 책을 덮은 후에도 긴 여운으로 인해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