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첫 문장 -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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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는 시간이 누군가 물을 엎지르듯 의미도 없이 한꺼번에 소진되는 듯한 요즘, 새벽에 산행을 하고, 씻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여 얼쩡거리다 보면 뭘 했는지 기억에도 없는데, 이미 엎질러진 하루는 어둠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4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가 우리의 기억력에도 점화하여 최근에 생성된 기억 파일만 까맣게 태워버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를 보내는 건 무척이나 긴 느낌인데 일주일, 열흘, 한 달 등 뭉텅이로 잘려나가는 시간들은 어찌나 빠르게 소진되는지... 그렇게 보면 한 사람의 생애는 얼마나 짧게 마감하는가.


교정의 달인으로 인정받는 김정선이 교정교열자가 아닌 작가로서 펴낸 에세이 <소설의 첫 문장: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는 요즘처럼 멍하고 정신없을 때 읽기 좋은 책이다. '이십 대 후반부터 오십 대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까지 줄곧 남의 글을 손보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작가는 '소설의 첫 문장을 통해 내 글쓰기의 첫 문장으로, 내 삶의 첫 문장까지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는 듯했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의 독서라는 게 일천하기 짝이 없어서 첫 문장을 거론할 만한 소설의 권수도 몇 권 되지 않을뿐더러 자신이 읽은 소설의 첫 문장을 기억한다는 것도 믿기 힘든 사실, 작가가 되살린 여러 소설의 첫 문장을 통하여 내가 읽었던 몇몇 소설을 겨우 확인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 공감하려면 '내 삶'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어 내려면 '내 문장'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문장'은 바로 '내 삶'을 표현한 것이어야 하고, 이게 바로 글쓰기와 글 읽기의 시작점 아니겠는가. 규칙과 기술을 익히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문장을 읽거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저런 기법을 익힌다고 해서 내 손끝에서 나만의 문장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글이 첫눈에 말끔하게 해독되는 것도 아니듯이."  (p.10 '머리말' 중에서)


책은 1장 '다시 보는 첫 문장', 2장 '다시 쓰는 첫 문장', 3장 '다시 사는 첫 문장', 4장 '다시 읽는 첫 문장'의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을 읽는 독자는 굳이 순서에 따라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작가는 어차피 자신이 뽑은 소설의 첫 문장을 내세워 소설에 대한 느낌이나 자신의 경험을 그 문장과 함께 잘 버무리고 뒤섞어 감칠맛 도는 책으로 엮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장을 펼치더라도 내용과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각각의 장에 따라 선정한 책은 나름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로 시작하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나는 곧 죽을 것이다.'로 시작하는 요 네스뵈의 소설에 대해 작가는 인간 개개인의 특별함이 죽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생각을 옮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특별한 삶 때문이라기보다 특별한 죽음 때문인 듯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걸 인식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내 특별함이 언제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끝장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살아가는 존재. 진정한 특별함은 바로 그런 것임을 깨닫는 존재. 그러니 당신과 내가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이렇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p.147)


어떤 독자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소설의 첫 문장은 특별하다.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주요 관심이 첫 문장에 집약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가 역시 첫 문장에 대한 고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첫 문장이 소설의 재미와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다시 첫 문장으로 관심이 쏠리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유명세를 타게 된 첫 문장의 경위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의 첫 문장을 어떤 특별한 것으로 기억하게 마련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로 시작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특별함으로 인해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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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기간의 변덕스러운 기온 변동 탓인지 아니면 에어컨 밑에서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지난 며칠 냉방병에 시달렸다. 몸이 으슬으슬 춥고,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약간의 근육통도 있고, 기침과 가래도 조금 있었다. 물론 활동을 못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어서 사람을 만나는 일도 가급적 삼갔었다. 그러다 어제는 가까운 유원지의 음식점에서 지인과의 점심 약속이 있었던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차를 운전하여 약속 장소로 향했었다. 비구름이 사라진 하늘은 더없이 맑아 보였고, 쨍한 날씨의 무더위가 차의 유리창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차도 한 잔 마신 후 다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바깥 풍경이 비가 내린 듯 달라져 있었다.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인은 깜짝 놀라, "이런, 차 유리창을 내려놨었는데 물바다가 되지나 않았을지 모르겠네." 하면서 걱정을 했다.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 그분은 담배 냄새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수시로 자동차 창문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나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요즘처럼 극한의 무더위가 펼쳐질 때는 차 안의 기온을 낮추기 위해 일부러 자동차 창문을 살짝 내려놓기도 하지 않던가. 아무튼 그분은 과하게 내려놓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어서 긴급한 약속이 있었던 나는 그분의 차 상태도 확인하지 못한 채 급하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녁 무렵, 낮에 있었던 그 일이 걱정이 되어 그분께 전화를 드렸다. 차는 괜찮았느냐고 내가 묻자, 의자에 빗물이 조금 고이기는 했지만 식당에서 빌린 걸레로 급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2014년 1월부터 금연을 지켜오고 있는 나는 흡연자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때로는 '그럴 거면 그냥 끊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오늘 아침 산행길에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채 산행에 나선 어느 여성분 옆을 지나는데 땀 냄새에 섞인 담배 냄새가 어찌나 심하던지 지나치고 난 후에도 다시 뒤돌아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정말 오랜 시간을 담배의 노예로 살았었다. 하루에 한 갑에서 한 갑 반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골초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 삶에서 담배를 끊는다는 건 실현 불가능한 일로 치부했었다. 약국에서 약사로 근무하던 아내가 어느 날 담배를 끊으라며 금연 패치를 가져왔었고, 나는 패치를 붙인 채 담배를 피우곤 했으니까 말이다.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패치를 붙인 채 흡연을 하면 오히려 건강에 더 해롭다면서 그 일 이후 금연 얘기는 쏙 들어가고 말았다.


그랬던 내가 담뱃값이 대폭 인상되었던 2014년 '나도 한번 끊어볼까.' 하고 장난처럼 시작한 게 지금까지 금연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아까운 것도 아까운 것이지만 그렇게 담배를 좋아하던 내가 다시 담배를 피운다면 이제 죽을 때까지 절대로 담배를 끊지 못하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내 가슴 한편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금연은 어느 날 갑자기 장난처럼 시작하는 게 좋은 듯하다. 점심을 같이 했던 나의 지인도 소나기로 인한 낭패가 금연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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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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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식이 상식과 비상식의 넓은 영역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정상과 비정상의 드넓은 영역 그 어디쯤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의 영역을 지나치게 고집하다 보면 나를 제외한 그 어떤 사람도 상식적이거나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자아가 성숙하기도 전에 새가 뜬 눈으로 보았던 세상과 세상 사람들의 삶이 모두 비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한때의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삶의 기준이 구름과 먹구름 사이의 경계만큼이나 모호하다는 걸 이해할 나이가 되면 완벽한 듯 보였던 나의 삶도 실수투성이의 순간순간들로 이루어졌을 뿐 삶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음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남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됨으로써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애처로워하는 것만큼 나를 제외한 타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영국 작가 크리스 휘타커가 쓴 <나의 작은 무법자>를 읽는 동안 나는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사이의 갈등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와 같은 혼란은 책을 다 읽고 며칠이 지난 시점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책의 원제는 <We begin at the end>인데 역자는 왜 <나의 작은 무법자>를 책의 제목으로 삼았을까? 하는 의문으로부터 작가는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 책을 집필했을까? 하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으로 인해 나는 정작 책을 읽는 데 투자한 시간보다 책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야 말았다. 500쪽이 훌쩍 넘는 비교적 두꺼운 책이지만 작가는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너무 서둘러 끝을 맺으려 했던 게 아닌가? 하는 나름의 주관적인 판단도 여러 질문들과 함께 뒤섞였다. 그리고 읽게 된 작가의 결문. '나오며 - 한국독자들에게'로 시작하는 네 쪽의 글 속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다.


"이 글은 지극히 광범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극도로 사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복수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들여다보는 범죄소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죠. 그것은 첫사랑, 자기희생, 선악의 개념과 그 중간의 회색지대에 관한 책입니다. 하루하루 분투하며 살아가는 여자아이와 과거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경찰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실수에 관한 이야기, 다시 일어나서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p.571)


그러나 이 기나긴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짧은 설명만으로는 이 소설에 대한 의미 부여를 명쾌하게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 서두의 첫 문단에 기록한 내용이다. 특별할 것도 없지만 소설의 두 축인 40대의 워크 서장과 열세 살 소녀 더치스 중 어느 쪽의 시각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이 소설은 지극히 복잡할 수도, 지극히 단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의 역자인 김해온 작가는 결국 더치스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이해하겠다는 선언으로서 <나의 작은 무법자>를 책의 제목으로 정한 것으로 보였다. 아직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더치스의 입장에서 세상은 온통 비상식과 비정상의 틀로 짜인 듯 보였을 테고 구성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더치스의 기준에서 벗어난 비정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 위험한 세상에서 더치스 자신과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연약한 남동생 로빈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짜 놓은 기준과 틀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그야말로 '무법자'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가 뒤로 돌자 더치스가 작은 몸으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더치스는 파편의 삐죽삐죽한 쪽을 높이 들어 그의 목을 조준했다. "난 무법자 더치스 데이 래들리다. 네놈은 바에 들락거리는 겁쟁이 놈팡이고. 내가 네놈 목을 깔끔하게 날려주마." 더치스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동생의 외침을 들었다. 스타는 딸의 손목을 잡고 딸이 유리 조각을 떨어뜨릴 때까지 흔들었다. 다른 남자들이 와서 그들 사이에 끼어 소동을 가라앉혔다. 공짜술이 한 바퀴 돌았다."  (p.70)


술과 약에 취한 채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팁을 받아 생계를 이어가는 더치스의 엄마 스타 래들리는 얼굴이 예쁘장한 싱글맘이라는 이유로 주변 남자들의 유혹의 대상이 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케이프 헤이븐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서장 워크는 스타의 오랜 친구이다. 동갑내기인 그들은 십대 시절 스타와 빈센트 킹, 워크와 마사가 짝을 지어 어울렸었고, 빈센트 킹이 스타의 동생인 시시 래들리를 차로 치어 죽게 함으로써 그들은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30년의 형기를 마친 빈센트가 고향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가 자신의 집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되는데... 사건 현장에 있었던 빈센트는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그의 결백을 확신하는 워크 서장은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주장하지만, 빈센트는 십대 시절 워크의 연인이었던 마사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변호사로 지명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결국 워크는 마사를 찾아가게 되고, 졸지에 엄마를 잃은 더치스와 로빈은 몬태나에서 농장을 하는 할아버지 핼에게 보내진다. 그러나 디키 다크의 소유였던 케이프 헤이븐의 술집에 불을 질렀던 더치스로부터 화재 영상을 받아 보험료를 청구하려던 다크는 더치스를 쫓게 되고, 자신들을 돌보지 않았던 할아버지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었던 더치스는 언제나 핼과 대치하지만 결국 핼의 진심을 알게 된 그로부터 총 쏘는 법과 말 타는 법을 배우게 된다. 평온한 날이 이어질 것 같던 몬태나의 삶에 균열을 깬 것은 다크의 등장과 핼의 사망이었다. 더치스와 로빈은 위탁 가정을 찾게 되지만 복수를 결심한 더치스는 케이프 헤이븐으로 향하는데...


"어쩌면 빈센트는 교도소 생활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냥 자신이 너무 미워서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사형당하는 쪽이 낫다고 여기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의문이 너무 많았다. 그는 자신이 진실과는 다른 색을 칠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뼛속 깊이 느꼈다. 빈센트 킹은 죄가 없었다. 그리고 워크는 그걸 우연에 맡기지 않을 작정이었다. 더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멀리까지 왔고, 자기 영혼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대도 끝까지 갈 작정이었다."  (p.466~p.467)


소설은 개연성을 확보한 채 물 흐르듯 이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본 나만의 판단일지도 모른다. 더치스도, 로빈도 그들만의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어느 정도 어른들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할 테지만 세월이 흘러 그들 역시 한 사람의 인격과 자아를 갖춘 성인이 되었을 때 어린 시절 그들과 연관되었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판단과 이해는 세상의 보편적인 기준을 향해 수렴할지 아니면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작은 무법자들이 세상의 악과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그것이 곧 그들의 판단 기준이 되지 않도록 보살피고 도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그것이 곧 소설을 읽는 근본 이유로 이어질 수 있기를 <나의 작은 무법자>를 읽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 마지않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핼이나 워크처럼 혹은 돌리처럼, 이름은 서로 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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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가 내린 다음날의 산행은 꽤나 즐거운 경험입니다. 빗물에 토사가 쓸려 내려가 여기저기 패인 등산로며 약해진 지반으로 인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들, 잎이 무성한 참나무나 밤나무에서 떨어진 잔가지와 알이 여물지 않은 채 떨어진 밤송이들, 출처도 알 수 없는 고목의 삭정이들과 어디선가 밀려온 낙엽 및 여러 부산물들이 쌓여 마치 인적이 끊긴 정글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에 씻긴 공기는 맑고 산새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또렷합니다. 등산로를 따라 채 스미지 않은 빗물이 작은 내를 이루어 흐르기도 합니다. 나는 등산로에 떨어진 참나무 잔가지를 주워 내 몸에 달려드는 모기를 쫓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나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오늘 아침 산행에 나섰을 때도 그와 같았습니다. 비는 내리지 않았고, 산행을 마치고 내려올 즈음에는 반짝 해가 비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사이에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한동안 비는 내리지 않고 뜨겁기만 했던 날씨가 지속된 것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슈테판 셰퍼의 소설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은 가볍게 산책을 하며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입니다. 책의 두께도 산책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얇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문체 역시 그러합니다. 적당히 걷고 오래된 벤치라도 보이면 잠깐 앉아 땀을 식히면서 몇 쪽을 읽고, 지루하면 다시 일어나 조금 더 걷고, 작은 나무 등걸이나 벤치가 보이면 다시 또 앉아 책을 읽고...


"내가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음 생에서는 실수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더는 완벽해지려 하지 않고, 더 느긋하게 지낼 것이다.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정신 나간 상태로, 많은 일을 심각하지 않게 여길 것이다. 그다지 건강하게만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많은 해넘이를 바라보고, 산에 더 많이 오르고, 강을 더 자주 헤엄칠 것이다. 나는 매 순간을 낭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똑똑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물론 즐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순간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 삶이 오로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아직 모른다면 지금 이 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나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다닐 것이다. 생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이들과 더 많이 놀 것이다. 하지만 보라...... 나는 이제 85세고,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죽기 얼마 전에 쓴 이 글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 생각이자 중심 문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역시 소설의 앞부분에 이 문장을 인용 배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 주의 끝을 알리는 금요일이고, 여전히 하늘은 어둡고, 비가 오락가락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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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5-07-1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오로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꼼쥐 2025-07-19 13:38   좋아요 1 | URL
우리는 그런 사실을 때때로 잊고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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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결단이 없다면 삶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되짚어볼 때, 나의 용기 없음에 나는 이따금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남들처럼 작은 용기라도 있었더라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상상에 하염없이 빠져들기도 한다. 그랬다. 나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무작정 견디고 버티는 데에는 미련하리만큼 특화된 인간이었다. 반면에 나는 익숙했던 환경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지독히도 겁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사흘이 멀다 하고 벌어지는 아버지의 폭력을 묵묵히 견뎠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가난과 악조건 속에서도 이른바 '모범생'이라는 칭호를 결코 잃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용기 없음'으로 인해 나는 그 어려웠던 시절에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 나는 속내를 모르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내가 이룬 성취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의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내가 이룬 성취가 '대단하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어가는 그들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과거 나의 '용기 없음'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마 그들에게 말은 못 하였지만.


"어머니의 재촉에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목을 고정당한 채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어머니를 구한 순간. 미세한 각도로 꾸준히 틀어지고 있던 내 삶에 가속도가 붙은 시점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p.55)


백온유의 소설 <경우 없는 세계>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건 소설의 주인공인 장인수가 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수의 아버지가 자수성가한 기업가이며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것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머니가 취업전선에 나설 필요가 없었던 것도 나와는 크게 다른 환경이었다. 하나 같은 것이 있다면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와 드잡이질을 해 아버지의 코뼈를 부러뜨렸던 인수와는 달리 나는 맥없이 지켜보거나 뜯어말리는 게 전부였다. 더구나 불편한 관계가 내내 이어지자 이를 참지 못하고 가출을 감행했던 인수와는 다르게 나는 이웃의 친구네 집을 방문하거나 아버지를 피해 겉돌 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출을 경험했던 인수는 이제 성인이 되어 노숙 생활을 정리하고 옥탑방에서 홀로 자취를 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 사고를 가장해 돈을 뜯어내는 소년 이호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가 떠오른 인수는 자신의 집으로 이호를 데려온다. 그리고 이호를 보면서 그날의 기억을 되살린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나와 경우, 성연 우리 셋 중 가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이는 다름 아닌 성연이고, 그때가 되면 성연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이 생활을 깔끔하게 청산할 것이라는 확신에 혼자 괴로워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애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환대를 받을 것이고 지금의 모습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번듯해질 거라는 생각으로 숨이 막혔다."  (p.139)


거리를 떠돌던 인수가 제일 처음 만난 친구는 '성연'이었고, 이어서 보육원에서 도망쳐 나온 '경우'도 만나게 된다. 노숙 생활을 전전하던 그들은 가출 청소년들이 드나드는 반지하방 '우리집'에 정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도 모르는 A가 자다가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경찰 조사를 두려워한 아이들은 A의 시체를 유기하기에 이른다. A는 보험 사기를 통해 필요한 돈을 조달하던 아이였고, 죽기 전날 그는 실제 사고를 당하고도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우리집'으로 복귀한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인수는 아이들이 A의 사체를 캐리어에 담아 야산에 묻은 것에 대해 심한 자책을 하게 되고, 사체 유기에 동참했던 경우는 결국 경찰에 자수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우리집'에 모이던 아이들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되고, 인수는 변호사를 선임해 준 아버지의 도움으로 무죄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다시 집을 나온 인수는 자신이 머물던 고시원으로 찾아온 경우를 애써 피하게 되고...


"경우가 고시원을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애가 죽었다는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경우의 죽음을 알린 건 경우를 처음 만났을 때 경우와 함께 다니던 중학생 아이들 중 하나였다. 경우는 소년원을 나온 뒤 그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열다섯 살이었던 아이는 열여덟 살이 되어 있었다."  (p.252)


12년 전에 있었던 혹독한 가출 경험으로부터 인수는 오늘도 환각과 환촉에 시달린다. 한여름에도 살갗을 에는 듯한 추위를 느끼고, 그림자처럼 떠도는 귀신의 무리를 본다. 작가는 인수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가출 청소년의 실상을 낱낱이 알리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조망한다. 그리고 지금은 없는 경우를 소환하여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회상한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언젠가 자신을 보육원에 두고 간 어머니와 함께 살고자 했던 경우가 꿈꾸던 세계. 그 세계는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우가 없는 세계에서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한다. 


백온유 작가에 의해 펼쳐지는 이 소설은 현실과 소설 사이의 작은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가출 청소년의 삶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나의 심정은 내내 불편했다. 어쩔 수 없는 환경도 아닌데 가출을 감행한 인수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음은 물론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불편하고 답답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언짢았다. 나는 이제 그 또래의 아이들로부터 아주 멀리 지나쳐 온 부모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오늘처럼 장맛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날이면 혹시 누군가 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매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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