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설렘과 달달한 느낌을 준다. 그런 까닭에 첫눈, 첫사랑, 첫 키스 등 처음을 상징하는 이런 낱말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야릇한 흥분을 일으키곤 한다. 매일 아침 산에 오르는 나는 매년 이맘때쯤에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첫밤(栗)을 줍는 일이다. 산의 능선에 밤 농장이 있고 그 주변 산으로 퍼진 밤나무 덕에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연례행사처럼 등산로에 떨어진 밤을 줍곤 한다. 전날 밤에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면 등산로는 떨어진 밤과 도토리로 가득하고, 욕심 많은 사람들은 발길을 멈춘 채 밤을 줍는 재미에 빠져드는 것이다.

 

 

올해도 나는 어김없이 첫밤을 주워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해에 난 밤 중 오직 한 개의 알밤을 주워 올뿐이다. 먹기 위해 줍는 것은 아니다. 여름 한철을 인내하고 비로소 새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게 된 한 톨의 밤알을 보면서 이따금씩 생명의 위대함을 느껴보기 위함이다. 내가 주워 온 알밤은 나를 가르치는 게 제 소임인 양 책상 위에 놓인 채로 이따금 나의 시선이 머물 때마다 나의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살아라' 당부하는 것이다.

 

등산로에 떨어진 밤송이는 지난주부터 보았었지만 온전히 내 차지가 되기까지 한 주가 더 걸린 셈이다. 유난히 길고 더웠던 여름, 그래도 여전히 밤은 여물고, 생명의 끈은 끊어지지 않은 채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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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리더는 어떻게 변화를 이끄는가 - 무기력에 빠진 조직에 과감히 메스를 댈 7가지 용기
기무라 나오노리 지음, 이정환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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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알 수 없지만 과거 한때 친동기간처럼 가깝게 지내던 형님 한 분이 있다. 대전 둔산동 지역의 어느 허름한 건물 지하에 창고 겸 사무실을 두고 대전을 비롯한 인근 도시의 몇몇 백화점 및 대형 마트의 코너를 분양받아 인테리어 소품을 주로 팔았던 그는 장사가 잘 될 때는 꽤나 쏠쏠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지만 내가 그를 알게 된 무렵에는 이익은커녕 나날이 늘어만 가는 빚 걱정에 하루도 얼굴 펼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직원들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정이 어려울수록 더 자주 농담을 하거나 직원들의 시시껄렁한 농담에도 더 크게 웃어주곤 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나와 마주할 때면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며 스스럼없이 신세 한탄을 하곤 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자금을 조달할 길 없었던 그는 자신이 발행한 가계수표를 결국 사채업자를 통해 깡을 하기에 이르렀고 종국에는 부도를 내고 말았다. 어느 해 가을, 추석을 며칠 앞둔 시점에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채권자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피 생활을 하던 때였다. 회사의 물품이며 차량은 모두 채권자들이 가압류를 한 상태였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아주 오래된 승용차 한 대를 직접 운전하여 내 앞에 나타났다. 그에게는 이미 수배령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수척해진 얼굴 위에 옅은 미소를 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동안 잘 지냈냐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서울까지 운전 좀 부탁한다며 자동차 키를 내게 넘겼다. 명절을 쇠기 위해 부모님이 계신 서울로 가야 했던 나는 서툰 운전 솜씨로 핸들을 잡았고 그는 이미 결심이 선 듯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신대방동에 사는 그의 부모님 댁에 차를 주차하고 돌아서려는데 저녁을 먹고 가라며 굳이 손을 잡아끌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헤어진 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일본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로 인정받고 있는 기무라 나오노리의 저서 <최고의 리더는 어떻게 변화를 이끄는가>를 읽는 내내 그분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작은 회사의 사장으로서 그도 직원들을 하나로 모아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었는데...

 

"부하 직원에게 호감을 얻는 리더와, 두렵지만 존경받는 리더는 전혀 다르다.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일시적으로 호감을 얻을 순 있을지 몰라도, 상하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이 사라져 중요한 순간에 채찍을 휘두르거나 쓴소리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거리감을 두면 신뢰가 쌓이지 않아서 부하 직원을 손발처럼 마음껏 운용할 수 없으니 그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p.82)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리더에게 요구되는 논리적 사고력이나 재무 및 회계 지식 등과 같은 '브라이트사이드 스킬Brightside Skill'이 아니라 조직원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며, 강한 관성에 이끌리는 사업의 방향을 비틀고 변화를 주기 위한,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기술, 즉 '다크사이드 스킬Darkside Skill'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 '흔들리지 않는 리더를 만드는 7가지 다크사이드 스킬', 2부 '결정적 순간에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의 승부수', 3부 '무기력한 조직에 메스를 들이댈 리더의 용기'를 통하여 리더로서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역설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가치관에 균열이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과 단 둘이서 치열하게 대치하는 고독의 시간이 없으면, 바쁜 일상의 흐름에 휩쓸려 궤도가 무너져도 방향을 고치기는커녕 문제를 인식할 수도 없게 된다." (p.163)

 

저자가 말하는 7가지 다크사이드 스킬은 '위기를 숨기지 말고, 눈치 보지 않는 직원을 뽑고, 언제든 손발이 되어줄 아군을 포섭하고, 미움받을지언정 뜻을 굽히지 않고, 번뇌가 아닌 욕망에 빠지며, 시험대 위에서 도망치지 않고, 철저히 이용하고 기꺼이 이용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 환경과 끊임없는 기술 혁신 속에서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고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성과를 내고 살아남는 기업은 조직원 전체의 끝없는 혁신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직의 변화를 이끄는 '중간관리자급 리더'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생사는 그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알던 그분은 직원들과 같은 자리에서 식사도 하지 않았다. 욕을 먹더라도 사장은 권위가 있어야 하고 책임도 홀로 지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에게 부족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그도 외부 환경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고, 직원들을 채찍질하기만 했을 뿐 어려울 때 아군이 되어줄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생명체인 조직원을 리더가 원하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리더에 대한 조직원의 믿음과 존경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친근함과 존경심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그것이 리더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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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값싼 위로 한마디가 자네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혹여라도 마음 섭섭했다면 미안하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고 한들 대신할 수 없는 일들이 하도 많아서, 누군가 홀로 지고 일어서야 하는 짐을 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두 눈 질끈 감고 돌아서 맥없이 가슴만 치는 경우가 많았다네. 위로라도 한마디 던져주지 그랬어,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타박 아닌 타박도 여러 번 들었다네. 그러나 위로도 중독이 된다는 사실이 내가 그리 하지 못하는 까닭이라네. 물 한 모금 삼키는 것도 힘에 부칠 때에는, 그렇게나 힘이 들 때에는 값싼 위로일지언정 아주 쉽게 중독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네. 위로가 주는 안온함이 다시 일어설 힘마저 앗아가 버리곤 하지.

 

해가 많이 짧아졌다네. 오늘도 나는 새벽 어둑한 산길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네. 잔뜩 흐린 하늘과 도통 밝아지지 않는 내 마음이 합쳐져 매일 다니던 길도 낯설기만 했지 뭔가. 급기야 후둑후둑 빗소리가 들렸다네. 나는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걷다가 산을 다 내려올 즈음에서야 알았다네. 지금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마음은 슬픔처럼 어둡기만 하다네. 이화인 시인의 시집 <묵언 한 수저>를 읽다 보니 이런 시가 눈에 띄어 적어보았네.

 

슬픔의 안

             이화인

 

그대 슬플 때에는

견디기 힘든 슬픔에 잠길 때에는

슬픔의 안을 들여다보라

슬픔에도 기쁨이 있나니

기차가 어둔 길 터널을 지나면

눈부신 햇살이 내리듯이

젖은 낙엽 위로

소슬한 갈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그대 슬픔의 늪에 빠질 때에도

그 슬픔 저편에는

맑은 샘이 흐르나니

희망의 꽃들이 피어 있나니

그대 하회탈의 웃음을 보라

고달픔으로 얼룩진 삶을 이어 온

눈물 젖은 웃음

슬픔이 바랜 뒤에야 우러나오는

하회탈 웃음을 보라

헤어나기 힘든 슬픔 저편에도

희망의 샘물이 흐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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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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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을 수용하는 방식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다르겠지만 비판에 대한 개인의 반응과 수용하는 방식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좌우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가벼운 비판에도 펄펄 뛰며 화를 내는 방식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보는 방식 등 비판에 대한 개인의 반응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유아기에 자신의 수용 방식을 어떻게 학습하고, 성인이 된 후에 비판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

 

김중혁 작가의 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표제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는 알코올중독자인 규호와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정윤이 등장한다. 소설 속 규호 역시 타인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세계에서 뱅뱅 맴을 도는, 폐쇄적인 성격의 전형처럼 읽힌다. 정윤을 다시 만난 규호는 자신이 정윤과 연인 관계에 있었을 때, 자신이 알코올중독자 모임에 나갔었던 사실을 아느냐고 정윤에게 묻는다. 그때는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는 줄 알았던 정윤이 안다고 대답하자 규호는 알아줘서 고맙네 하며 비꼬는 투로 말한다.  그들은 여전히 술을 마신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간다.

 

"야, 이규호. 너 그때 정말 지긋지긋하게 지긋지긋했던 거 알지? 알지. 내가 다 죄인이지. 전부 내 잘못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대. 나는 그때 네가 날 안아주길 바랬는데, 네 등만 봤다고. 등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고."    (p.96)

 

지그소 퍼즐 맞추기를 즐기던 규호는 알코올중독자 모임에서 지그소로 불렸다. 오랜만에 정윤을 불러낸 규호는 알코올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피존씨 얘길 들려준다. 동대문 근처에서 큰옷 가게를 했다는 그는 이혼 후에는 매일 저녁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위스키를 한 병씩 마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살려달라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여자를 구하러 뛰어나가려는데 문득 규호가 선물한 지그소 퍼즐이 눈에 띄었고, 퍼즐을 다 맞추면 술을 끊자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단다.

 

"저 자신이 너무 지긋지긋했습니다. 저는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창문을 꼭 걸어 잠급니다. 술에 취해서 저도 모르게 뛰어내릴까봐서요. 제가 비집고 나갈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창문인데도 매번 창문을 잠갔습니다. 비겁한 제가 부끄러웠고, 소심한 제가 창피했습니다. 술을 정말 끊고 싶었습니다."    (p.111~p.112)

 

피존씨의 얘기를 하면서도 규호는 점점 더 많은 술을 마신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정윤은 술 좀 그만 마시라고 권하지만 규호는 멈출 줄을 모른다. 생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는 규호를 보며 정윤은 화를 내지만 규호는 가겠다는 정윤을 달래어 다시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규호가 피존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도중 옆자리의 손님들과 싸움이 붙어 결국 파출소에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던 얘기를 들려준다.

 

"경찰관님, 고통 같은 것은 말입니다. 절대 얼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십니까? 그게 다 어디 붙는지 아십니까? 알코올에 달라붙어서 말입니다, 살에도 붙고, 조각조각 나서 뇌에도 붙고, 또 내보내려고 해도 손톱 발톱 그렇게 안 보이는데 숨어살면서요, 조용히 있다가 중요한 순간이 되면요, 제 뒤통수를 후려치고요, 그러는 겁니다."    (p.117)

 

피존의 얘기를 하염없이 들려주던 규호는 며칠 전에 알코올중독자 모임으로부터 피존이 죽었다는 소식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한다. 원룸 탁자에 엎어져서 죽어 있었고, 탁자 위에는 위스키 두 병과 거의 다 맞춘 퍼즐이 있었다고. 피존씨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얘기할 사람이 정윤이밖에 없었다고. 규호는 다시 술을 주문했고 정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뜨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여기에 왜 맺히는지 압니까? 이것은 온도 차이 때문입니다. 나는 차가운데, 바깥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바깥은 하나도 아프질 않아서, 그래서 이렇게 맺히는 겁니다."    (p.117)

 

체질상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나는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는 비판 아닌 비판, 충고 아닌 충고를 무수히 많이 듣고 또 들었던 터라 어떻게 하면 술을 잘 마실 수 있을까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술을 마셔대는 사람들과 술을 마실 수 없음에도 억지로 술을 마시려드는 나 같은 사람들 역시 사회의 비판을 수용하는 방식이 처음부터 잘못된 게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세상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비판을 수용하는 방식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지만 꼭 떡이 생겨서가 아니라 타인의 비판이나 충고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는 필요한 듯하다. 그래야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는다. '마마보이'나 '와이프보이'가 될 것까지야 없겠지만 타인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만 매몰되는 것 역시 위험한 게 아닐까. 소설 속 규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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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어서야 잦아들었다. 어제는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탁하고 후텁지근한 도시의 하늘 위로 둥근 무지개가 떴었다. 비는 그렇게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아침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낮에는 반짝하고 해가 나더니 저녁부터 내린 비로 인해 한껏 습도가 높아진 탓인지 방안 공기는 텁텁하고 끈적끈적했다. 그 상태로는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동네 산책을 나섰다. 잔뜩 흐린 하늘, 비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그쳐 있었다.

 

산책에서 돌아와 무심결에 확인한 1층 우편함에는 두툼한 황색 봉투 하나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화인 시인의 시집이었다. 당신의 시를 인용했던 내 블로그의 글을 읽으셨던 시인은 자신의 시집을 보내주시겠노라 연락했었다. 그게 며칠 전의 일이었는데 이렇게 친필 서명이 들어간 시집을 받고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리고 왠지 미안해졌다.

 

나는 8년 전쯤에 다음과 같은 글을 블로그에 올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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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는 시를 읽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시인들은 뉘라 지목할 것도 없이 잘 팔리지도 않는 시집보다는 여행서나 산문집을 낸다. 그렇다고 우리 주변에서 시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세간에 잘 알려진 류시화, 안도현, 신경림 등 몇몇 유명 시인들만 근근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신통치 않은지 앞다퉈 책의 정가를 낮추고 있다. 그 외에 시집이라고 눈에 띄는 목록은 수험생들을 위한, 시험 대비용으로 출판된 명시 모음집이 대부분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순수 독자의 입장에서 시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서글프다.

 

시인의 속내를 낱낱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시가 전하는 그 울림만으로 설레던 시대가 있었다. 맘에 쏙 드는 시구를 연애편지에 인용하며, 자신이 쓴 것인 양 얼굴을 붉히던 그리움이 있었다. 술 동무를 옆에 두고, 노래 삼아 시를 읊조리던 젊음이 있었다. 우리는 시를 잃고, 사랑을 잃고, 그 속에 숨겨진 설레임, 그리움, 그리고 젊음의 낭만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시를 모르고 어찌 문학을 논하랴. 시를 모른 채 어찌 사랑을 노래할 것이며, 순수의 아름다움을 어찌 볼 수 있으랴. 시를 제쳐 두고 주옥같은 언어의 향연을 어찌 즐길 수 있으랴. 시는 문학의 태동이자, 끊이지 않는 북소리이다. 시는 언어가 아닌 몸짓이며, 아픔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이다. 시는 논리를 따라 흐르는 나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흐르는 작은 흔들림이다.

 

시를 읽지 않는 사회!

그 각박한 현실을 사는 우리는 무엇에서 위로받을 것이며,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그 통로를 무엇에 의지하여 찾을 것인지.... 시를 쓰지 못하는 문학가는 한낱 글쟁이에 불과하며, 그 글을 읽는 우리는 영혼을 잃은 로봇에 불과하다. 사랑은, 설레임은, 그리움은, 낭만은 언어가 아닌 시에 숨겨진 떨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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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위와 같은 글을 썼던 8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시집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나부터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의 체온이 느껴지는 시집을 펼쳐 들고 나는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밤새 비가 서럽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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