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가깝게 지내는 친구 한 명이 있다. 그의 야구 사랑이 어찌나 크고 열정적이던지 야구 경기가 시작되는 봄서부터 가을까지 응원팀을 따라 전국을 돌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가장이 빠진 그의 식당은 온전히 아내의 부담으로 지워졌고, 아이들을 돌보며 식당 운영까지 도맡아야 하는 그의 아내는 잠시도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따금 지나는 길에 들러 보면 바빠서 겨우 눈인사만 건넬 뿐 도무지 짬을 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친구는 아내의 무던한 성격 덕분에 꿋꿋하게 응원을 다니곤 했는데 오죽하면 친구들이 원정 응원은 좀 심한 게 아니냐고 질책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그렇게 야구라면 죽고 못 살던 친구가 최근에는 야구와 완전히 담을 쌓고 지내는 게 아닌가. 물론 그 사실을 제일 반긴 사람은 그의 아내가 되겠지만 친구들 역시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그의 아내 앞에서는 괜스레 죄인 된 느낌을 받곤 하던 게 일거에 사라졌으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완전히 변한 게 아닐지도 모르니 조금 더 두고 보자는 다른 친구들의 제안도 있고 해서 꾸준히 지켜보았던 바 야구장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애들도 커가는데 유일한 낙이었던 야구마저 손을 끊었으니 얼마나 허전할까 싶어 어제는 친구들 몇몇이 모여 점심을 같이 먹었다. 말하자면 위로 점심이라고나 할까.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식당을 들어서는 친구에게 다들 위로의 말을 한마디씩 던지는데 친구는 이렇다 저렇다 대꾸도 없이 빈 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허겁지겁 달려드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깨작거리며 겨우 젓가락질을 하는 친구에게 "너 야구 끊으니까 제수씨가 맛있는 걸 많이 해줬나보다. 음식을 앞에 두고 그렇게 깨작거리는 걸 보니." 하고 농을 던져도 특별히 대꾸가 없었다. 식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친구는 갑자기 자신이 응원하던 팀에 대한 디스를 시작했다. 그가 오래전부터 응원하던 팀은 한화 이글스였는데 야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들도 한화의 성적이 리그 최하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친구는 우리나라 야구도 성적이 안 나오는 팀은 2부 리그로 강등을 하는 게 옳다며 그런 아마추어 수준의 실력으로 관중들의 돈을 받고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한껏 열을 올렸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바쁜 일이 있다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바빴다. 친구는 롯데와 한화는 2부 리그도 모자라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못을 박았다. 야구 문외한인 우리들은 그저 그러려니 입을 닫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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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7-25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화...답답하긴해요ㅠ

꼼쥐 2019-07-26 12:01   좋아요 0 | URL
친구의 말에 의하면 타자가 삼진을 당하고도 씩씩 웃거나 투수가 홈런을 맞고도 웃는 등 한화의 선수들은 열정과 오기가 없는 듯하다고 하더군요. 그게 제일 화가 난다고.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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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매번 감사와 칭찬의 말로 되갚아지는 건 아니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서, 또는 남들이 모르는 다른 목적이 있어서 하는 행동으로 오해받을 때도 더러 있고, 그보다 더 큰 루머나 험담 수준의 말을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동기의 순수성이나 열성을 의심받게 되는 것인데 오해를 받는 당사자는 속마음을 까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 되고 만다. 사람 사는 곳이니 그만한 오해는 참고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더 큰 오해를 살지라도 억울한 건 낱낱이 드러내고 풀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러한 판단이 쉽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임솔아의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는 표제작을 포함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단연 표제작인 '눈과 사람과 눈사람'인데, 소설에 등장하는 나와 영혜, 지원, 민조, 규미는 우연한 기회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오해와 불신을 받게 된다. 그 시작은 이랬다. 재작년 가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나래씨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읽고 다른 사람들처럼 공감 버튼을 누르고 '연대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기곤 했는데, 어느 날 자신이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호소와 함께 누구라도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는 나래씨의 요청 글에 죄책감을 느낀 사람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몇몇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고소 위협을 받는 사람도 있었고,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연대에도 자격이 있겠지요. 우리에겐 그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봤어요. 나래씨는 성폭력 피해자였고 앞장서서 싸워왔어요. 나래씨는 피해자들의 싸움에 우리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고통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고통마저 약탈해서 정의로운 척하는 족속을 보듯이 우리를 본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 그런 사람들일까요?" (p.183)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에 동참하면서부터 진천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게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지원은 산책을 할 겨를이 없어졌고, 영혜는 십 년 넘게 키워온 화분들을 죽였고, 규미는 삼 개월 동안 이삿짐을 풀지 못했고, 아토피를 앓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민조는 아이가 불안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 중 한 명이 자살 시도를 했을 때 영혜가 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카드로 결제했을 때 인터넷에서는 영혜가 으스대며 카드를 내밀었다는 둥 거액을 쉽게 결제하는 모습에서 없는 자의 소외감을 느꼈다는 둥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는 일도 있는 자들이 차지한다는 둥 여러 안 좋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그 모든 피해를 속절없이 견딜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받은 피해를 속속들이 밝히면 그것을 빌미로 성폭력 가해자들의 공격이 이어질 수도 있는 까닭에.

 

소설에는 새해 첫날을 낀 연휴 동안 지원이 사는 진천으로 여행을 가는 내용이 그려진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민조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나와 영혜, 규미 그리고 지원은 각자의 노트북을 통해 영상 채팅을 한다. 나래씨의 블로그에 올라온 입장문은 연대하는 사람들로부터 피해자가 착취당하고 이용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입장문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나와 영혜, 지원, 규미, 지원이었다. 그들이 모인 목적은 이 일에 대해 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모으다보면 글로 정리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일수록 항상 그 현장에는 자기 밥그릇을 채우려는 은밀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재래시장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떠나가는 정치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조금씩 마음을 보태는 사람부터 현장에 상주하며 함께 싸우는 연대자, 그리고 피해 당사자까지, 이 모든 이들이 백 퍼센트 순결하지 않은 경우를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p.194~p.195)

 

우리는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난민이나 성폭력 피해자 연대에서... 그런 오해와 불신, 갈등과 법적 다툼에 의해 연대는 깨지게 마련이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만 남는다.

 

"한 사람이 뭉친 눈에 다른 사람이 뭉친 눈을 더했다. 쪼그려앉아 눈덩이를 굴렸다. 두 손으로 눈덩이를 토닥이고 다시 굴렸다. 넷이서 눈덩이를 들어올렸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덩이 위에 우리가 만든 눈덩이를 올려놓았다. 영혜가 눈밭에서 솔방울을 찾아왔다. 지원은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나와 규미는 돌멩이를 찾아왔다. 이목구비를 만들고 두 팔을 만들었다." (p.199)

 

소설의 마지막엔 네 주인공이 눈사람을 만드는 장면이 그려진다. 약한 사람들의 연대는 결국 흩어진 눈송이를 모으고 손으로 다진 작은 눈덩이를 굴려 더 큰 눈덩이를 만들어 눈사람으로 세우는 일과 같다는 것을 일깨운다. 약한 자들의 바람막이가 되기 위한 연대가 오히려 서로 간의 불신과 반목 속에서 쉽게 깨지는 경험이 반복되면 될수록 연대의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는 이치를 작가는 독자에게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연대와 지지를 결코 철회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연대의 DNA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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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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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기본적으로 이상하거나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작가 자신이 남들과 다른 이상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도 있고, 특별한 삶을 살았거나 지금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열심히 만나거나, 찾아내거나 또는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으면서 그들의 삶을 기록할 수도 있겠다. 작가로서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면 자연과 주변 환경에 대한 남들과 다른 독특한 시선이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 연예인이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우리가 자주 읽는 문학 작품은 대개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편적이거나 평범한 삶은 문학의 객체로서 흥행 가치가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건 우리의 삶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있는 대부분을 그들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어느 것 하나가 특별하다거나 이상할 뿐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건 모든 걸 아우른 채 보너스처럼 하나가 더 첨가된 것일 뿐 보편의 부재는 전혀 아니다. 결국 문학가가 된다는 건 평범 너머의 다른 하나를 취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남들 다 하는 건 뭐든 빼놓지 않고 겪어봤음은 물론 웬만한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했던 일도 무엇 하나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비로소 문학가로서의 자격을 갖춘 셈이 된다.

 

"어릴 때도 잡지에 심리테스트, 성격테스트만 나오면 질문들 옆에 빈 네모칸에 체크를 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요즘도 소셜미디어 친구들이 올린 테스트 결과가 뉴스피드에 줄줄이 올라오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손가락이 움찔거린다. 좋아하는 색깔로 내 성격을 알려주고, 몇 가지 질문에 답만 하면 좌뇌형인지 우뇌형인지 알 수 있고, 내게 맞는 남자친구 유형을 알 수 있고, 내가 살 만한 세계도시를 골라준다니!" (p.27)

 

문소영의 에세이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작가의 특별한 이력과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는 산문집이다. 자신을 한없이 게으른 인간이라 말하면서도 나름 완벽주의 성향 탓에 괴롭다는 작가는 '미술 작품에서, 또 영화, 웹툰, 광고, 길거리 디자인을 비롯한 모든 시각 문화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그리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다는 특이한 이력도 문학가로서의 자격에 신뢰를 더한다.

 

"생각해 보면 비교적 일찍부터 주변에서 예기치 않은 죽음을 여러 번 봐왔다. 대학교 때 동기 두 명이 각각 교통사고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고, 교수님 한 분도 심장마비로 요절했다. 그때 그분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적었다는 걸, 그리고 그땐 내가 어른인 줄 알았는데 지금 대학생들을 보니 병아리들로 보인다는 걸 떠올리면, 채 다 피지도 못하고 가지에서 떨어진 그들의 젊음에 새삼 가슴이 서늘하고 아릿해진다. 몇 년 전에는 신문사 선배 두 분이 두 주 간격으로 각각 불의의 사고와 지병으로 별세해 모두들 혼이 반쯤 나갔던 일도 있다." (P.277)

 

작가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동안 읽고 보아 왔던 책, 영화, 그림, 사진, 도자기 등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버무려서 자신만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40여 편의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1부 '게으르게', 2부 '불편하게', 3부'엉뚱하게', 4부 '자유롭게', 5부 '광대하게', 6부 '행복하게'라는 부제도 재미있다. 출산율 최하위 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싱글 여성으로서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해법이 불편하기도 하고, '계속 끄적거리라'는 프랭크 매코트의 명언이 무기력하게 게으른 자신에게는 서늘하고 무거운 충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행복 경쟁'을 하다 보면 '왜 행복해야 하나?'라는 질문까지 나오게 된다는 작가.

 

문소영 작가의 에세이는 자유분방한 작가의 성격이나 본성대로 살고 싶어 하는 작가의 꿈이 글에서 묻어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가의 꿈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 이를테면 관습이나 주변 환경에서 오는 장애물 등에 대한 작가 자신의 불편한 심기들도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들 각자의 현실이 그리 녹녹지 않으며, 매번 그런 현실에 대해 툴툴거리면서도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마음속 구호를 힘차게 외치면서 말이다.

 

오늘 보았던 어느 신문의 기사에는 '밥 한 번 편하게 먹자'라는 문구로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동에게는 식사 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어느 파스타 가게의 훈훈한 소식과 함께 그의 선행이 SNS를 비롯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선한 영향력에 동참하고자 하는 식당, 극장, 카페, 학원 등 다양한 업종의 업체가 결식아동에게 식사나 음료를 제공하고 공연 할인이나 무료 수강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연락해왔다는 소식이 실렸었다. 우리가 읽는 신문이 매일 이런 기사들로 넘쳐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끔찍한 사건 사고에 진저리를 치다가도 이따금 읽게 되는 이와 같은 따뜻한 소식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구나' 하고 느끼는 게 아닐까. 문소영의 에세이와 우연히 읽은 어느 신문 기사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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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끄물끄물합니다. 높아진 습도 탓인지 한여름 무더위가 몸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풍 다나스가 한반도를 관통하지 않고 해상에서 소멸했다는 것일 테지요. 이런 우중충한 날씨에도 모 정당의 정신 나간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설치했나 봅니다. 시민들의 원성과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그들이라고 못 들을 리 만무할 텐데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거리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연예인 같으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낮에 지인 몇 명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대화는 역시 아베의 경제 전쟁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주였습니다. 그중에는 4월에 예약했던 일본 여행을 최근에 취소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일본 제품은 가급적 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만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 여건 하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역시 타격을 받지 않을까 다들 우려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방 후 우리 스스로 청산하지 못했던 친일 잔재를 아베로 인해 조금씩 청산하고 있다는 것과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애국심'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면서 새로이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거기 모였던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게다가 친일파의 후손들 역시 자신들이 취해야 할 스탠스가 애매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일본과 아베를 옹호하자니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내쳐질 것 같고, 일본에 대해 욕을 하자니 자신의 선조를 욕하는 것 같아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주변에서는 어차피 한 번은 터질 일이 터졌다고들 말합니다.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가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는 거죠. 그게 지금이라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경제는 조금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총선에서는 친일파의 후손이나 '토착 왜구'로 지칭되는 지일파를 뽑지는 않을 테고, 대일 의존도가 높았던 부품 소재 산업에 대한 자생력도 높아짐으로써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거라는 전망입니다. 우리 민족은 언제나 위기를 통해 단합하고 그 단결된 힘으로 국가를 발전시켜 왔으니까 말이죠.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비가 개고 'KBO 리그 올스타전'이 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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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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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점심을 먹고 잠깐 누웠던 게 까무룩 낮잠으로 이어졌던가 보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제5호 태풍 다나스에 대한 뉴스 특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릴 시간도 아닌데 밖은 여전히 어둡고 간간이 빗방울의 떨어지고 있었다. 태풍 다나스는 결국 육지에 상륙도 하지 못한 채 열대저압부로 약화되었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던 김진명의 소설 <직지 1>를 마저 읽었다.

 

소설의 시작이 어떠해야 한다고 따로 정해놓은 규정은 없지만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도입부는 늘 존재하게 마련이어서 <직지>의 도입부 역시 강렬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사회부 기자 기연이 잔혹한 살인 현장을 취재하는 장면. 나도 모르게 나는 최근에 있었던 고유정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떠올렸었다. 비위가 약한 나는 소설의 묘사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메슥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책상 옆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뼈 부스러기며 내장 조각에 이어 흉곽이 함몰돼버린 시신이 망막에 잡히는 순간'과 같은 문장을 읽어 내려간다는 것은 차라리 고역이었다.

 

창과 같은 길고 날카로운 흉기에 의해 심장이 관통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피살자는 고려대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형우 교수. 누구에게 원한을 살 만한 직업도, 성품도 아닌 그는 유학을 떠난 아들 하나와 살해 당시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가족의 전부였다. 일류급의 전문 살해범이 개입한 듯한 살해 현장에는 족적을 포함한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았고 감식에 참여했던 베테랑 형사마저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을 염려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기연이 이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까닭은 피살자의 귀가 잘린 것과 살해 후 목에 남겨진 송곳니와 입술 자국이었다. 드라큘라가 피를 빤 듯한 흔적. 기연은 차량의 내비게이션에 남은 행선지를 토대로 전형우 교수가 청주에 있는 서원대학교를 다녀온 것을 발견하고 전 교수가 접촉했던 사람을 추적한다.

 

기연은 처음에 서원대학교의 김정진 교수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김정진 교수는 '직지' 알리기 운동을 펼치는 인물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뿌리가 '직지'라 확신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캐고 있는 인물이었다. 14세기 금속활자를 가진 동방의 어느 나라 왕에게 보냈다는 교황의 편지와 바티칸 비밀수장고 내부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로마대학교 출신인 전 교수가 연구 조사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김정진 교수를 통해 전해 듣게 된다. 기연은 전 교수의 죽음이 '직지'와 연관된 많은 비밀과 그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여러 사람의 계획에 의해 자행된 철저히 계산된 범죄임을 직감하고 그녀가 독일에서 유학 당시 밀라노 신학대학에서 공부하였던 연세대학의 최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 교수는 라틴어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최 교수의 도움을 통하여 기연은 전 교수를 살해한 범인이 외국인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 교수의 서재를 샅샅이 뒤진 기연은 전 교수의 메모에서 '스트라스부르의 피셔 교수와 아비뇽의 카레나'를 찾아낸다. 그리고 김정진 교수와 함께 유럽으로 향하게 되는데...

 

"피셔 교수는 연구의 성과를 알려주었을 테지만 어느 순간 전 교수가 절대 알아선 안 될 비밀에 다가선 걸 발견하고는 크게 놀랐을 거요. 그래서 혼비백산해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고, 그 누군가가 한국에 암살자를 보냈을 거요. 여기까지가 큰 줄기에서 본 전 교수 사건이오." (p.235)

 

그러나 피셔 교수를 만났던 기연은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 채 귀국한다. 그리고 다시 최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기연의 도움 요청에 한달음에 달려와준 최 교수는 세 시간여의 작업 끝에 전형우 교수가 로마대학교에서 서지학을 공부하던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통해 그와 가까웠던 인물인 파블리오 인데르노를 찾아낸다. 바티칸 수장고 관리신부인 그는 교황청에서 발간하는 일간 신문의 독자 문의도 받고 있다. 그를 발견함으로써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1권은 그렇게 막을 내린 채 2권으로 이어진다.

 

일정한 시간에 매일 반복되는 일들도 여의치 않은 환경에 의해 그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종일 흐리고 어둑어둑한 날, 시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그런 날에 한번 빠져들면 빠져나오는 것조차 힘든 추리소설을 붙잡고 읽는다는 건 까무룩 낮잠에 빠져드는 일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일. 나는 그런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위험한 책 읽기에 몰입했다.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간 듯하다. 귀중한 주말 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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