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올 사랑 - 디스토피아 시대의 열 가지 사랑 이야기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정혜윤 PD의 책을 읽을 때면 번번이 '어렵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인문학적 소양이 얕은 탓이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혹시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건 그 이유를 남들에게 드러냄으로써 내 얄팍한 지식이 탄로날까 봐 몹시 저어하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나는 정혜윤 PD의 책이 새로 출간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읽는 것이다. 하나는 정혜윤 PD의 지적 소양이 깊은 것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정혜윤 PD의 문체에 익숙해진 데서 오는 편안함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후자의 이유 때문에 잘 이해도 하지 못하는 책을 꾸역꾸역 읽게 되는지도 모른다.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을 썼던 흑사병 시대를 포함해 어느 시대든 최고의 글에는 글 속의 누군가가 가치 있는 변화를 원한다.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사실은 나쁘기도 하지만 좋기도 하다. 상상해본 적 없는 거대한 단절의 시기인 지금, 이 균열 속에서 좋은 무엇인가가 나와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리석음은 꽃피고 나쁜 일은 벌어진다."  (p.23 '서문' 중에서)

 

그렇다. 코로나 정국이 길게 이어지면서 작가가 떠올렸던 건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었고, 그 암울했던 시기에 쓰인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었다. 작가는 서문에서 '나는 이 디스토피아 시대에 유토피아적 열정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고 쓰고 있다. 2020년의 우리는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국경은 폐쇄되어 자국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빠졌으며, 작게는 각자의 집에 갇힌 채 고립된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 사이에 우리는 57일간의 유례없는 긴 장마를 겪었고, 지구 곳곳에서 초대형 산불과 폭염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러한 '변화'에 앞서 작가는 우리가 잃은 것, 슬픔과 고통, 죽음 등에 대해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럴 때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 단절을 뚫고 창조적인 사랑의 단어들, 새로운 사랑의 이야기들이 나와야 한다. 슬픔에서 행복이 발효되도록 해야 한다. 비극을 겪은 후에는 비극적이지 않은 결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토비와 젭의 사랑 이야기다."  (p.163)

 

책은 서문에 이어 첫째 날, '미래인지 감수성', 둘째 날, '무엇을 할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 셋째 날, '그녀는 그녀 삶의 예언자가 되었다', 넷째 날, '당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파악해보라고 제안한다', 다섯째 날, '왜 상처의 말을 들어야 하나요?', 여섯째 날, '거울 깨기', 일곱째 날, '다른 누구도 더는 건드리지 말라', 여덟째 날, '이봐, 주위를 좀 보라니까!', 아홉째 날, '사랑하는 00과 함께 살기', 열째 날, '오늘의 가장 좋은 시도와 내일의 가장 좋은 시도 사이에서'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이 많은 이야기들 속에 우리가 몰랐던 코로나 시대의 여러 모습들과 그럼에도 우리가 이 단절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읽어야 할 책들을 제시한다.

 

"종자를 지킨 바빌로프와 동료들은 굶어 죽었지만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 종자들에서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먹는 많은 음식이 나왔다. 이들의 이야기는 꼭 크리스마스 때 듣는 성인들의 이야기 같다. 성 바빌로프의 날. 자신의 생존 말고 다른 것을 중요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나를 매료시킨다."  (p.277)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미셸 우엘벡의 <세로토닌>, 찰스 부코스키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작은 우주들>, 슬라보예 지젝의 <팬데믹 패닉>,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등의 책을 관심도서 목록에 추가하면서 언제 읽을지도 모르는 내일을 허술하게 약속한다.

 

코로나로 인한 분열과 격리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는 한 뼘쯤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 자신과의 관계는 두 배, 아니 어쩌면 수십 배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늦은 밤 깊게 우려낸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빈 거리를 비추는 하릴없는 가로등 불빛을 응시하면서, 저 공간을 채웠던 수많은 발길과 식지 않는 체온들을 생각하며 부질없는 욕심들을 덜어냈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꾸역꾸역 욱여넣었던 마음속 허섭스레기들을 걷어내면 그 밑바닥에선 새살처럼 사랑이 돋아날까. 꼬마전구를 환하게 밝힌 듯 벚꽃이 만개한 계절. 나는 여전히 정혜윤 PD를 부러워하며 그녀가 쓴 책 한 권을 또 어렵게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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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풀리자 운동을 하겠다고 아침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개중에는 겨우내 보이지 않던 낯익은 사람도 있고, 숫제 처음 보는 얼굴도 더러 보인다. 도시 근처에 산이 존재한다는 건 얼마나 큰 복인가. 그러나 어느 도시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산의 크기는 매년 쪼그라들어 급기야 산이라고 명명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언덕으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도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산은 거대한 콘크리트 바다에 둘러싸인 작은 섬처럼 변해버렸다. 이 또한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고 없겠지만 말이다.

 

주택가 근처에서 숲과 자연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잃었다. 비단 '아름다움'만 잃은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감정들, 예컨대 연민이나 공감, 배려, 여유, 기쁨 등을 함께 잃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로부터 새로운 감정들을 학습한다. 이기심, 욕심, 시기, 질투, 배척... 시나브로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고 '괴물'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최근 보도된 뉴스에서 나는 '괴물'의 전형을 목도했다. 검사장 출신의 국민의힘 국회의원인 유모 씨가 당사자였다. 그는 파주의 한 병원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범인에게 범죄 은닉을 교사하고 자신이 제시한 방법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며 자신했다. 살인을 저지른 자를 경찰서로 끌고 가야 마땅할 텐데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리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더구나 그는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던 검사 출신이 아니었던가. 돈과 빽이 있으면 살인도 감출 수 있다는 발상이 그가 내세우던 공정과 정의였던가. 의사 면허도 없는 무자격자 원장과 의료 기구를 파는 영업사원이 한 명도 아닌 두 명씩이나 잇따라 살해했는데... 가해자가 아닌 유가족의 입장에서 그는 단 한 번이라도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뉴스에서는 그것마저 살인이 아닌 수술이라고 했다. 그러나 의사면허도 없는 일반인인 내가 우리집이 아닌 병원에서 사람을 죽이면 수술이고, 집이나 야외에서 저지르면 살인이라는 논리는 과연 합당한가.

 

보도가 나간 후에도 국민의힘이나 해당 국회의원은 이렇다 할 의견 표명이나 사과 한마디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살인범에게 범죄 은닉을 교사하고 국회의원입네 폼을 잡는 그가 뻔뻔스럽기 그지없음에도 우리 사회는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먼 나라에 사는 아시아인이 희생된 것에 크게 분노하였던 것처럼 돈과 권력으로 살인도 감출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그들을 향해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힘없는 사람들의 목숨도 중요하다!"라고.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우리는 '아름다움'을 잃고 급기야 유모 의원과 같은 괴물만 길러내고 있다. 이것이 공정과 정의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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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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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쓰는 글의 문체에 스미게 하는 직업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인 신경숙을 사랑했던 게 아니라 신경숙이라는 문체를 사랑해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경숙이라는 문체는 등단 이전부터, 내가 비로소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접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존재했지만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문체였는지도 모른다. 하여 나는 <겨울 우화>로부터 비롯된 신경숙 읽기에 빠져들었고, <외딴방>이나 <리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네 슬픔아>, <모르는 여인들> 등 시간의 순서를 도외시한 채 신경숙이라는 문체에 탐닉했었다.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로 이어지던 신경숙 읽기는 그해 불거진 표절 의혹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긴 휴지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문체인 신경숙은 재생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신경숙 읽기를 멈추었던 수많은 독자 중 한 명인 나로서는 작가의 삶이 지속되는 한 이른 복귀를 고대할 수밖에 없었고, 2015년 세상으로부터 불현듯 사라졌던 작가는 6년이라는 긴 침묵을 깨고 2021년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통해 세상에 복귀했다. 신경숙 읽기에 목말랐던 나는 작가의 복귀가 무척이나 반가웠고 <아버지에게 갔었어> 역시 단숨에 읽어버렸다. 기꺼운 마음으로.

 

"어떤 사실들은 때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라 시간이 흘러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끝내 사실일까? 싶은 의문과 회의가 든다. 어떻게 그런 일이? 싶어서 사실이 우연이나 조작에 의한 것처럼 보이고 어떤 형식에 맞추기 위해 도식을 끌어온 것처럼 여겨지며 상상에 의한 허구가 오히려 사실처럼 느껴진다."  (p.103)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여동생을 따라나서자 J시의 오래된 집에는 아버지 홀로 남게 되었다.'로 시작되는 길고 긴 서사는 신경숙이라는 문체로 인해 진한 슬픔을 동반한 채 아프게 이어진다. 몇 년 전 딸을 잃은 '나'는 엄마가 없는 고향집에 돌아온 후 비로소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대면한다. 전염병으로 두 명의 형을 잃고 얼떨결에 종손이자 장남이 된 아버지, 혹시나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마저 전염병으로 잃게 될까 노심초사했던 조부모의 걱정으로 인해 학교마저 다닐 수 없었던 아버지, 이른 나이에 부모를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 그리고 온몸으로 겪어냈던 70년의 한국현대사가 주름살처럼 깊게 파여 수면장애로 드러나고 있는 안타까운 삶.

 

"아버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자 등을 기대고 있는 현관문이 차갑게 느껴지고 생각지도 못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나는 날이 밝자마자 어젯밤 아버지가 편지를 태우던 헛간으로 가보았다. 검은 재가 수북했다. 무슨 편지를 태운 것인지. 나는 발로 잿더미를 헤집어보다가 주저앉았다."  (p.238)

 

시조창처럼 유장한 가락의 신경숙이라는 문체는 소설 읽기가 못내 힘에 겨웠던 내게 와서 매 문장 마침표를 지나칠 때마다 툭툭 끊겨 뒤뚱거렸다. 한국전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작품 속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에게 오버랩되어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희미해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국군과 인민군의 혼재 속에 한국전쟁을 겪었고, 돈을 벌기 위해 갔던 서울에서 4·19 혁명의 현장을 목격했으며, 여섯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키웠던 소의 값이 폭락하자 소를 타고 소몰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버지로부터 풀려나온 한 올 한 올의 한국 근현대사는 자식들과 주변 인물들의 증언 혹은 편지를 통해 리얼리티를 더한다. 이에 더하여 중동 건설 노동자로 이주했던 '큰오빠'의 삶과 이를 기억하는 조카 등 아버지를 둘러싼 다른 가족들의 삶을 통해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아버지 말을 받아적다가 움찔했다. 내가 어떤 일에 마음이 옹졸해져서 쓰기를 주저했던 말들이 메마른 아버지 입에서 풍부하게 느릿느릿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내게는 황송한 내 자식들, 이라고도 했으나 나는 차마 그말은 적지 못했다. 무릎 위의 노트북이 자꾸 미끄러지려고 해 나는 노트북을 아버지 침대에 올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 자판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더 하고 싶은지 방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p.415)

 

소설 속에서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글쓰기를 아버지를 통해 이어간다. 그것은 아버지를 통해 깨닫게 된 시간의 흐름과 나이 듦에 대한 통찰이며, 약하디 약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며, 뻗대고 저항한다고 해도 끝내 순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다. 아버지는 단지 자식들을 키우고 보듬어주던, 언제까지고 '나'의 보호자로만 살아가는 관계 속의 존재만은 아니고, 그 모든 관계 속에서도 고통과 슬픔을 감내하는 개별적인 한 인간이었음을 소설 속의 '나'는 말하고 있다. 아버지에게도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이, 삶을 지탱하는 절절한 위로가 순간순간 필요했음을 소설 속의 '나'를 통해 문득 깨닫게 된다. 끊김 없이 유장하게 이어지는 신경숙이라는 문체가 내게 와서 돌부리에 걸린 듯 휘청거리며 툭툭 끊겼던 까닭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가슴 한켠에 옹색한 모습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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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에 친구가 존재한다는 건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엄마의 심정처럼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편들어 줄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를 퇴근길에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이 친구의 사정이 여간 딱한 게 아니었다. 코로나 정국에 사정이 좋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위례 신도시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에 LH 투기 사건이 터지면서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푸석하고 핼쑥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국토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사정상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에도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는 그 뿌리가 깊다. 그렇다면 이전 정부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많은 재산을 축적한 대부분의 부호들이 개발지에 대한 고급 정보와 투기에 가까운 공격적인 부동산 매입을 통해 재산을 형성해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지금과 같은 전국 규모의 대대적인 단속을 단 한 번도 실행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전 국민이 재산의 90% 이상을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마당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GDP에서 건설업의 비중이 15~20%로 OECD 국가의 평균에 비해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사정상 GDP를 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이 공적자금을 통한 SOC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빚내서 집 사라'고 한 데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해충돌방지법'의 통과를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국회의원인 자신들조차 그 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법을 제정하여 어느 하나가 좋아지면 좋았던 다른 하나가 나빠지는 건 피할 수 없다. 예컨대 '김영란법'이 그러했고, 증권거래법이 그러했다. '김영란법'이 통과될 때만 하더라도 얼마나 말이 많았던가. 오죽하면 누더기법이라고 했겠나. 주가를 조작하는 소위 '작전 세력'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증권거래법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작전 세력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대대적인 단속의 칼을 빼들지 않는 까닭은 단순한 엄포나 소문만으로도 주가가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주식투자자들이 마치 이익단체처럼 정부의 정책에 저항할 수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 기반한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공정해지는 건 좋은데 그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는 꼴은 정부로서도 달갑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어지간한 부패는 눈감아주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지금은 크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합동수사본부의 가시적인 성과가 발표되고 투기자에 대한 처벌이 시작되면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겪고 나면 그와 같은 단속이 언제 또 재개될지 모르는 까닭에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전에 비해 꺼려하거나 매우 조심스러워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대적인 부동산 투기 단속을 통해 일반 국민의 재산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냐, 아니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질끈 눈을 감을 것이냐. 현 정부는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않았던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그 바람에 공인중개사인 친구는 개점휴업 상태의 어려운 시절을 감내하고 있고...

 

오늘은 금요일. 친구가 어렵다는데 개발지구에 땅이라도 한 필지 사주면 좋겠지만 그럴 주제가 못되니... 위로 전화라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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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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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추억을 한 권의 책으로 읽는다는 건 푸근한 안개 속에서 온종일 헤매는 일이다. 길은 있으되 보이지 않으며, 시간은 안개 속에 뒤엉켜 뒤죽박죽 흩어지지만, 왔던 길을 고샅고샅 되짚어 볼 필요도, 또는 시간의 순서에 맞춰 읽었던 추억들을 가지런히 나열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저 께느른한 오후를 적당히 즐기며 안개처럼 몽롱해질 뿐이다. 그렇게 한나절 즐기기에는 스가 아쓰코의 산문집 <밀라노, 안개의 풍경>이 제격이다. 1929년생인 작가가 해외여행조차 원활하지 않았던 1960년대 패전국 일본을 뒤로하고 유학길에 올라 십삼 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했던 경험을 담담히 풀어낸 이 책은 이방인의 눈에 비친 오래전 이탈리아의 풍경을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놓는다.


"저녁 무렵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안개가 자욱이 깔리곤 한다. 창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고, 끝내 굵은 줄기까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가로등 밑을 생물처럼 달려가는 안개를 본 적도 있다. 그런 날에는 몇 번이고 창으로 달려가 짙은 안개 너머를 내다본다."  (p.10)


예순이 넘은 나이에 첫 작품을 발표하고 팔 년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다섯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다는 스가 아쓰코의 첫 에세이인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그녀가 이탈리아에서 보냈던 십삼 년간의 시간 동안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을 동양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문학도로서 보고, 만나고, 겪었던 모든 것들이 단아한 문체에 실려 독자들의 가슴에 안개처럼 스민다.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인 코르시아 서점의 일원으로 청춘의 한 자락을 보내며, 낯선 땅에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과 교류했던 스가 아쓰코. 교회 당국의 탄압과 내부 분열로 코르시아 서점이 문을 닫고, 서점 동료이자 남편이었던 페피노와의 결혼생활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오 년 만에 막을 내렸지만, 십삼 년간의 밀라노 생활은 귀국 후의 작가에게 풍성한 문학적 자양분을 제공한 듯하다.


"무스타키 대신 레너드 코언을 건네주던 가티, 남편을 잃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던 나에게 수면제를 먹을 게 아니라 상실의 시간을 인간답고 성실하게 슬퍼하며 살아야 한다고 엄하게 꾸짖던 가티는 이제 거기 없었다. 그의 한없는 밝음에, 더는 나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 가티의 모습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p.111)


절제되고 과하지 않은 감정으로 자신의 청춘 시절을 밀도 있게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글로 쓰이지 않았던 긴 시간의 침묵이 작가의 내부에서 이미 완성된 어떤 것으로 서서히 재현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침묵으로 완성한 옛 기억의 엘레지. 전통과 구습에 얽매인 고국에서의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고 1960년대의 이른 시절에 유학과 국제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감행했던 작가의 이야기는 21세기를 사는 작금의 젊은이들에게도 공감과 동경의 마음을 품게 한다.


"그러나 환상의 시간은 언젠가 어쩔 수 없이 현실로 회귀한다. 터무니없는 꿈을 현실과 맞바꾸며 살아온 베네치아는 어느새 소리 없이 다가온 멸망이라는 운명의 무게를 느끼고 문득 진심 어린 한숨을 토해낸다. 언젠가 호텔방 머리맡에서 들었던 은밀한 물소리도 그런 순간에 나온 베네치아의 혼잣말이었는지 모른다."  (p.207)


슬몃 다가온 봄이 어느새 온 마을을 감싸는 농무처럼 흐드러진 봄을 예고하고 있다. 산수유꽃이, 도로변의 개나리가, 봄햇살을 받은 목련이 온통 봄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소설 '무진기행'을 읽으면 때로 골짜기마다 수액처럼 피어오르는 는개의 축축한 감촉이 살아나는 것처럼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읽으면 남편을 잃고 밀라노의 안개 속에서 절망과 슬픔의 시간을 보냈을 스가 아쓰코의 청춘 시절이 그리움처럼 밀려올 것만 같다. 우리는 다만 누군가에게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봄이 추억과 그리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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