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 essay
강원구 지음 / 별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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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은 노트에서 저의 지난 과거를 띄엄띄엄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이가 빈 징검다리처럼 시간의 단절을 문득문득 깨닫게 하지만 그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영영 이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저으기 안심하는 까닭에 남의 일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과거의 기억에 꼭뒤를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애초부터 사라지게 됩니다.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이죠, 그리고 과거의 어느 시점에 적어 놓은 해묵은 기록을 타인의 삶인 양 읽을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행복한 일입니다.

 

오래된 노트에서 오늘 제가 발견한 글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과거가 있고

그 과거를 기억하는 한

당신은 내내 부끄러울 것입니다."

 

따로 부연된 설명은 없었습니다. 기분 좋은 사유란 그런 데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쓴 글을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비하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내가 이런 글을 왜 썼을까?' 오래도록 생각한다고 해서 아주 짧은 순간에 저간의 흐름을 떠올리고 그때의 정황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느니 오히려 그 문장이 갖는 의미 너머의 다른 어떤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그런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제 오래된 친구에게 위의 인용구를 읽어주고 어떤 의미일 것 같느냐,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여자에 대한 저주의 말이 아닐까, 하는 대답이 날아왔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생각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니까요. 저는 그 친구의 생각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친구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의 과거에 대한 평가는 미숙하고 철없다 여기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는 내내 부끄러워 할 것이라고.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 비하면 언제나 어린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금보다 아주 많이, 혹은 단 하루, 단 한 시간 전의 나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나에 비하면 젊고, 어리숙하고,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강원구의 에세이집 《S》를 읽었던 오늘 아침에 제 노트의 글귀 하나를 들고 생각에 잠겼던 것도 다 이런 인연이지 싶습니다 . 저는 사실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서울의 조용한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평범하게 사는 파워 블로거이자 작가라고 소개되었기에 '그렇구나' 생각할 뿐입니다. 5년 만에 두번째 책을 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람, 사랑, 삶, 식구, 시간에 대해 그때그때 적어 두었던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엮어낸 듯합니다. 그것은 마치 제 노트에 적어 두었던 생경한 문장처럼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합니다.

 

"한편 인생을 무책임하게 사는 것 같지만 뒤집어보면 인생은 책임지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나에게 '어차피'는 '기왕에 결정했다면'의 의미가 강하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뒤로 돌아가기보단 일단은 직진이다. 이젠 직진을 보완할 다른 것을 찾으면 그뿐이다. 어차피,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니던가." (p.213)

 

작가도 지금쯤 사람들 시선이 없는 어느 방에 홀로 앉아 책으로 나온 자신의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읽는 내내 부끄러워 하면서 말이지요. 작가에게 이 글은 5년 전, 혹은 1년 전 어느 날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적어 두었던,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작가에게서 나온 글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지금의 내가 늙어가는 것에 비례하여 자신의 과거를 한없이 젊어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삶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많은 것들이 봄날의 새싹처럼 올망졸망 돋아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늦은 시작이 있을 뿐, 그 자체로 늦은 경우는 없다. 혹시 나잇값이란 핑계로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건 아닌지. 서른이 넘으면서 청춘이 끝났다는 생각에 슬퍼하기도 했고 마흔이 넘으면서 왠지 모를 두려움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난 지금의 내가 참 좋다." (p.251)

 

작가도 어쩌면 과거에 썼던 자신의 글귀에 한 줄 설명도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에 답답해하거나 그 글을 썼을 때의 상황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못내 아쉬워 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의 작가와 지금의 작가는 누가 뭐래도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몸도, 생각도, 소유한 경험도 모두 다른 새 사람이지요. 작가의 글을 처음 읽는 독자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생각이 달라지는 것도 이상할 게 없겠지요. 이 글을 썼던 과거의 작가는 되려 지금의 작가에게 묻고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라도 더 산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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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시간을 향해 터덜터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자 자신의 의지나 열정이 포함되지 않은 기계적인 서사일 뿐이다. 반면에 가을은 짧고 가파른 언덕인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내포된 자발적 서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먼 훗날 자신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는 것은 길고 길었던 여름의 기억이 아니라 짧았던 가을의 추억일 확률이 높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찌 보내고 있는지 이따금 생각해 볼 필요는 분명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시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소비 패턴을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무임승차의 에스컬레이터에 무심코 올라 탄 채 흐르는 시간을 무작정 지켜보는 방법과 각각의 시간 속에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거나 생각 속에 시간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쓰면서 보내는 방법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이상하리만치 졸려서 잠을 떨쳐버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가을철에는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한 시간 남짓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가을의 시간은 조각에 알맞은 장미무늬목과 같다.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시간 속에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 뭐 없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또 몇십 분이 흘렀다. 아까워라. 결국 내가 선택한 책은 이상한 조합이 되고 말았다.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에쿠니 가오리의 <울지 않는 아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정말지 수녀의 <바보 마음>.

 

나도 왜 이런 조합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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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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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하기에 앞서 선무당 같은 나의 예언 한마디를 먼저 말할까 합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에게 복채를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정도면 저로서는 과분한 선심을 쓰는 셈이지만 뭐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돌린다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직업이 정말 무당이나 예언가라고 단정짓지는 말아주세요. 물론 제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자리 펴시지요' 하는 말을 종종 듣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단지 제가 말한 예언의 정확도에서 기인한 것일 뿐,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직업을 버리고 그쪽으로 완전히 전업하라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사설이 길다구요? 성질도 급하시긴... 암튼 제가 하는 예언은 이런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치 및 경제 체제가 유지되는 한 주요 선진국 및 그를 추종하는 신흥 개발도상국 대부분의 국가에서 앞으로는 극좌파의 정치 지도자가 득세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수 우파로 지칭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완전히 실패했고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부의 쏠림 현상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우편향의 진보 세력, 중도 좌파에게서는 희망이 없는가? 일반 대중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들의 모호한 정체성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이고, 그들에게서 대안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미 영국이나 미국의 정치판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스페인 지방선거에서도 좌파 정당연합 포데모스 후보들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시장 자리를 차지한 바 있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던 듯합니다. '설마~'하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영국 노동당에서 만년 비주류였던 제러미 코빈이 당권을 거머쥐고 미국에서는 좌파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내년 대선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치고올라오자 사람들의 생각은 '설마'에서 '어쩌면'으로 빠르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빈부격차와 분배의 불공정성에 맞선 ‘99%’의 반란, 허울뿐인 진보에 대한 반란이 좌파 바람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앞으론 반드시 고려하겠다. 나는 <불새>를 좀 더 오랫동안 흥얼거리게 될 것 같다. "내 안에 내 몸 안에" 있는 '붉은 공포'를 깊이 직면해야겠다." (p.197)

 

사실 이 책은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음악, 역사, 철학 등 우리가 사유하는, 혹은 사유할 필요가 있는 인문학적 생각의 '거리'들을 작가가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모아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변혁의 시점에서 과연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이며,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곧 닥칠 미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설마 없겠지요. 작가는 책의 머리말에서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중립을 지키기만 하면 적어도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공부의 필요성은 거기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이책에 실린 글들과 선택된 주제들은 2002년 대선 이후로, 한국 사회가 내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했던 작은 결과물이다." (p.6)

 

저는 이 책을 읽는 데 근 한 달이 걸렸던 듯합니다. 370여 쪽의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말입니다. 제가 이 한 권의 책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잡아 먹은 까닭은 작가가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도서관 서가에서 간간이 꺼내 읽느라 그리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많은 책을 모두 정독 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작가가 인용했던 일부분, 그곳을 중심으로 앞뒤쪽 어림하여 이십여 쪽 정도를 읽었을 뿐입니다.

 

"국가를 사유화한 지도자에겐 당연하게도 후광과도 같은 카리스마가 생기기 마련인데, 거기에는 동의 구조와는 다른, 메시아의 재림과 같은 종교성이 대중을 압도하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영적인 지도자와 대중만 남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질서는 모조리 공동화(空洞化)되어 버린다." (p.370)

 

사회의 변혁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전조를 눈치채는 사람도 적을 뿐더러 확실히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데서 우리의 불행은 시작됩니다. 자살자가 급증하고 묻지마 범죄가 만연했건만 그 시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경제학자는 아주 적었습니다. 그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적었구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세계를 휩쓴 월가 점령과 ‘분노하라’ 같은 대중시위가 오늘날 기성 정치권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반발일 뿐이라고 애써 자위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행은 언제나 급작스러웠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대전의 발발을 그 전날에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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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피폐하고 황량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똑같은 일상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면 기대감에 들떠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이 하나, 둘 사라지고, 가슴 한켠으로는 마른 먼지처럼 팍팍한 느낌만 쌓이게 된다. 그럴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여행의 권유도, 음악회나 영화 관람의 부추김도 졸음에 겨운 나른한 오후에 의해 밀려나고 '세상에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코웃음과 함께 익숙한 권태 속으로 빠져든다.

 

어제는 아내가 외박을 했다. 대학을 두 번이나 다녔던 아내는 두 번째 대학의 나이 어린 동기생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에 몹시 들떠 있는 목소리였다. 대학 시절, 가족과 떨어져 지방에서 홀로 지냈던 아내는 그 시절에 사귄 동기생들과 매우 각별하게 지냈던 듯하다. 다들 결혼을 하고, 각자의 삶에 얽매어 전화와 문자로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우연처럼 만났으니 오죽이나 반가웠으랴.

 

나는 어제, 윤기가 도는 아내의 전화 목소리에 길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 반복되는 일상에 아내도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짠했다. 좋다는 곳 어디를 가더라도, 맛있다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그 누구를 만나도 그저 덤덤할 뿐 이렇다 할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나로서는 아내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는 건 아니었으나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벗어날 수 없는 무게는 가슴에 와 닿았다.

 

봄부터 이어진 가뭄은 단풍이 물든 이 가을에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기는 나날이 건조해지고 대기중에는 미세먼지의 농도만 높아지고 있다. 날씨도, 내 마음도 풀리지 않는 '건조주의보'는 여전히 계속되는 셈이다. 대지를 적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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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 - 착한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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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나 물어봅시다. 모르는 사람(혹은 얼굴만 아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가장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저는 착한(?) 방법과 악한 방법 두 가지를 권해주곤 합니다. 그게 뭔고 하면 말이죠, 같은 취미를 가짐으로써 공통의 관심사를 만드는 것, 그리고 지금 여기에 없는 제3자에 대한 험담을 마음껏 하는 것 두 가지입니다.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쯤은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험담이나 뒷담화는 어떨까요? 은근히 스릴 있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게다가 험담에 동참한 사람들만의 끈끈한 우정(?)은 또 어떻구요?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구요? 불행하게도 저는 그렇게 착한 사람은 못 됩니다. 오히려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는 말을 신주처럼 믿는 편입니다. 뭐 어떻습니까, 그 당사자가 들으라고 하는 말도 아닌데요. 오히려 대화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같은 범죄(험담)를 저질렀다는 공범의식이 그들간의 결속력으로 이어져 소통을 훤할하게 해준다면 험담은 해볼 만한 일이지 않나요?

 

"험담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갖습니다. 의사소통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험담하는 자리에 함께 함으로써 결속력을 다질 수 있습니다. 험담을 공유하면서 서로 마음을 터놓은 사이라는 동지애가 싹트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험담의 효능입니다." (p.51)

 

모처럼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좋은 책이라는 게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니 함부로 믿지는 마세요. 이를테면 저는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좋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책이 갖는 심오한 지식이나 뛰어난 문장 구사력이 판단기준이 되지 못했던 것은 저로서도 유감입니다만 저자도 딱히 그것을 염두에 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뜩이나 서로 대면하지도 않은 채 문자를 통한 대화에만 익숙해진, 직접적인 만남을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얼마 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계적인 예의나 귀에 거슬리는 경어의 남용을 여러 번 경험했을 듯합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인간 관계의 불편함을 양산한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짚어 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저자는 아부와 험담의 필요성이라던가, 기능화되지 않은 사람들과의 사교적인 만남과 그 자리에서 취해야 할 행동으로 건방져질 것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경어의 본질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이란 결코 평등하지 않으며 똑같은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니, 이 말을 듣고 놀라지는 않았나요? 물론 저 같은 사람을 비롯해서 인간은 누구나 법적.공적으로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등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주관을 통해서 본다면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큰 편차를 갖고 있습니다. 아니, 인간은 평등하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분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마음씨가 아름답고, 자신은 착하다고 생각하는 분은 이 책의 독자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p.118)

 

저자의 생각은 때로는 우리의 상식과 어긋나기도 하고 일견 도발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하면 '과연, 그렇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나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사람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괜히 아무것도 없으면서 소싯적 얘기나 꺼내어 폼잡고 거들먹거리는 노친네의 쓸데없는 충고를 듣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이 책 한권을 읽는 게 백 배는 유익할 거라 생각합니다.

 

"높은 지위나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건방짐뿐입니다. 물론 건방진 젊은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은이의 에너지나 격식을 깨뜨리는 대범함이 거추장스러운, 다시 말해 정신력이 쇠퇴해 버린 사람입니다. 정신력이 쇠퇴한 사람은 상대해 봤자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머지않아 지금의 지위나 힘을 잃어버릴 것이며,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의견이나 제안을 들어 주는 유연성과 활력이 부족해질 것입니다. 특단의 배려를 해서 상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백 넘치는 건방짐을 받아들일 만한 도량이 있는지 알아본다는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대하면 됩니다. 물론 예의는 갖추어야겠죠." (p.166)

 

당연한 현상이겠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직접적인 대화는 갈수록 뜸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족이나 친척과 같은 허물없는 관계에서조차 대화하는 게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명절만 해도 그렇지 않나요?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제 할 일만 할 뿐 여럿이 모여 대화를 하려는 모습은 찾기 어렵습니다. 적당히 나이가 든 사람들만 옹기종기 모여 술잔을 기울이면서 밀린 얘기에 열을 올리곤 하지요. 이제는 조금씩 귀도 들리지 않는지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말입니다.

 

'대화'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저자의 생각은 가끔 대화와 관련된 삶 전체로 확대되기도 합니다. 죽을 때까지 특정한 사회에 몸담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은 '대화'가 곧 '삶'인 까닭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속한 사회 분위기가 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분위기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컨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스통을 들고 설치는 할배들이 넘쳐나는 사회라면 그 사회의 젊은이들이 대화를 즐길 리 만무하겠지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듯이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나 교통 기관과 정보망이 정비되는 것과 사회나 인간이 진보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편리함이나 정비를 가치관이라고 본다면 분명히 발전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다채로움과 생활의 풍요로움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퇴보이고 상실일지 모릅니다. 현대인의 진보에 대한 맹신은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눈속임, 일시적인 위안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p.221)

 

어쩌다 보니 말이 주저리주저리 늘어졌습니다. 이러다가는 책의 전체를 인용하려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해도 뭔가 모자라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기대감도 없이 우연히 집어든 책이 의외로 맘에 쏙 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쁜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맘에도 들고 유익한 책을 어쩌다 우연처럼 만난다면 그것 또한 책을 읽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자 보상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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