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뭣할까. 처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처신을 잘 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안하무인의 개망나니를 찾는 게 훨씬 빠를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알게 된다고. 정말 그럴까? 오히려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이 해야 할 도리 또는 도의를 제대로 갖추어 지키지 못할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상하를 구분하고,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가려 하며, 격식을 갖춘 행동을 몸에 익히는 것은 젊은이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것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질서의 차원일 뿐 유교사회에서 강조하던 공경의 문제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지역사회가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었다. 엄연히 참가비가 있는 대회이니 만큼 내가 자발적으로 참가할 리는 만무했었다. 오히려 내게 돈을 쥐어주면서 제발 참가해달라고 사정을 해도 나가지 않을 판인데 돈까지 내가면서 고생을 사서 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그랬던 게 일이 틀어지느라고 그랬는지 어쩔 수 없이 참가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암튼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꼴로 5킬로미터 단축 마라톤에 참가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5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그것도 간신히 말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했던 체력장의 오래 달리기 이후 그렇게 긴 거리를 정식으로 달려본 건 처음이지 싶었다. 올해 초에 담배를 끊은 덕분인지 호흡이 심하게 가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1킬로미터도 채 뛰지 않았는데 종아리 근육이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아침 산행을 했으니 다리 근육은 크게 약해지지 않았으려니 생각해왔는데 의외였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오기로 조금 더 뛰니까 그제야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나는 암튼 내 자신의 체력에 대해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제 제 몸 하나 운신도 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요즘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려 노력한다. 하루에 적어도 2시간 이상은 걸어야겠다 결심했다. 처신을 잘한다는 건 운신을 잘하는 데서 비롯된다. 운신도 못하는 처지에 이른 사람이 처신인들 제대로 할 리 없다.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국회의원들의 막말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곧 죽을 몸이 되어,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에게 처신을 잘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정화를 반대하고 검인정제를 옹호하는 이들이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을 대비해 미리 교육을 시키려는 것 아니냐”고 한 어처구니없는 말도, 야당을 '화적떼'라고 폄훼하는 말도 다 운신도 못하는 노인네들의 안타까운 신음일 뿐이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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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마음
이토 히로미 지음, 나지윤 옮김 / 책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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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방에서 개나 고양이가 함께 지내는 것이 요즘에는 그닥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그것은 놀랍고도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을에서 누가 애완견을 안고 다니는 모습만 눈에 띄어도 노인들은 하나같이 '망칙스럽게 개새끼를 어찌...' 하면서 혀를 끌끌 차거나 내일 곧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낙담한 표정으로 '말세야. 말세'를 외치곤 했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그랬던 게 엊그제 일처럼 선명한데 요즘에는 애완견이니 반려견이니 하면서 제 자식 대하듯 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괜히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어디 개뿐인가. 고양이며, 닭이며, 돼지까지도 애완동물로 받아들여지더니 요즘에는 뱀과 거미 등 예전에는 기겁을 하며 피하던 동물들까지 애완동물로 대접을 받는다. 물론 이런 풍조가 새로운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예컨대 길거리에 버려진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들,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에 의한 동물학대 등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추세이니 말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던 여인들이 한 아이가 던진 벽돌에 맞아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부상을 당하지 않았던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도, 그렇다고 적극적인 반대의 마음도 없는 나로서는 애완동물로 인하여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서도 개를 키웠던 적이 두어 번 있었던 것 같다. 애완용으로 길렀던 것은 물론 아니고 키워서 팔면 약간의 돈을 손에 쥘 수 있겠다고 판단한 어머니의 결심이 크게 작용했었다. 장에서 사 온 잡종견은 마당 한귀퉁이에 매어진 채 우리가 주는 밥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거나 낯선 사람을 보고 컹컹 짖거나 할 뿐 사람들과의 특별한 교감은 없었다. 그러나 이따금 목줄이라도 풀어 놓은 날이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우리 형제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기도 했고, 어두운 산길을 걸어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어머니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기도 했었다. 오랫동안 정이 들었던 개가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도는 이름도 모르는 개장수에게 팔려가고 나면 우리집은 한동안 적적함에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일본의 여성 문학가 이토 히로미가 쓴 <개의 마음>은 개를 키우지 않는 나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준 책이다. 작가가 일본을 떠나 타국 생활을 시작했던 초창기부터 1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의 가족과 동고동락했던 애완견 '다케'의 마지막 2년을 기록한 책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록인 셈이다.

 

"다케. 태어난 지 13년 된 저먼 셰퍼드. 인간의 나이로 56세. 개 수명으로 따지면 애저녁에 저세상으로 떠났을 나이. 내가 두 딸을 데리고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지 15년이 지났다. 처음 미국에 첫발을 내딛고 1년 반 후에 다케를 만났으니, 이국 생활의 대부분을 다케와 동고동락한 셈이다." (p.12)

 

전남편과 이혼한 후 작가는 두 딸을 데리고 미국에 정착했다고 한다. 개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유대계 남자와 재혼을 하고 막내딸 도메가 태어나고 파피용 견종인 '니코'와 앵무새 '삐짱'이 한 가족으로 살게 된다. '다케'가 죽기 전, 일본 구마모토에서 홀로 사시던 그녀의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그녀는 미국과 일본을 수시로 오가야 했다. 당시 89세의 늙은 몸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애견 '루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루이'를 온전히 돌볼 수 없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허망하게 떠난 후 늙고 병든 '루이'는 그녀의 책임으로 남는다.

 

그녀가 집을 비웠던 많은 날들 중 '다케'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케'의 안락사를 권하지만 그녀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다. 힘들어 하는 '다케'를 이끌고 산책을 나가고, '다케'의 용변을 치우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다케'의 모습에서 그녀는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한다.

 

"아버지가 죽기 전 몇 년간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맛집 탐방 프로그램이나 음식 광고를 보면서 "저거 맛있겠다" 하고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는 걸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구마모토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타코야키나 야키소바, 이것저것 싸구려 주전부리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앞으로 더 살고 싶다는 갈망을 보여주는 유일한 반증이었다. 매번 맛도 없는 건조음식에 통조림을 섞어주면서, 나는 부디 개에게는 그런 갈망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다케가 꽁치 머리나 쇠고기 뼈다귀, 접시에 묻은 케이크 재료를 제발 떠올리지 않기를." (p.193)

 

개와 함께 같은 방에서 뒹굴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작가의 심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군말 없이 개의 수발을 들 자신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오롯이 가족의 일원으로 대하면서 울고 웃었던 2년여의 기록이 나와 같은 독자에게도 새삼 뭉클한 감동으로 전해졌던 이유는 명확했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개나 사람에게 다를 게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내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다케와 함께한 마지막 2년 동안, 나는 삶과 죽음의 민낯과 마주했다. 다케를 보내고 내 삶은 딱히 달라진 게 없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상념도 아스라이 사라지고 늘 그렇듯 밥과 산책으로 이루어진 일상이 반복된다. 촉촉한 혀와 살랑거리는 꼬리,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는 선량한 눈망울이 내 곁에 있다. 니코와 루이가 몸을 기대온다. 무겁고 귀찮다는 생각도 잠시,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에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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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보도에는 새로 생긴 물웅덩이와 그 위를 덮은 낙엽들이 이 즈음의 중첩된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컨대 스산한 바람이 부는 오늘과 흐린 가을 하늘에 그려지는 옛추억의 풍경이 번갈아가며 펼쳐지는 것입니다. 비에 젖은 비둘기떼가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갑니다. 순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오후에는 비도 그치고 색이 바랜 희미한 해가 무표정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힘없이 주물렀습니다. 의무를 다하려는 듯 말이지요. 어떤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안톤 루빈슈타인의 '멜로디 F장조'를 들었습니다. 성글게 짜여진 하루의 시간들이 피아노 선율을 따라 가볍게 흔들립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 속의 긴 그리움처럼 가없는 세상으로 나를 데려갈 듯했습니다.

 

계절은 오늘을 축으로 빙글 돌아 겨울 쪽으로 향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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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비가 조금 내렸다. 색이 변한 나뭇잎이 후두둑 떨어지고 보도에는 이내 가벼운 우울이 서너 겹 깔렸다. 우산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보도 위의 싱거운 우울을 밟고 지나쳐간다. 휴일이 주는 둔탁한 질감 때문인지 사람들은 낮고 어둡고 농도가 짙은 우울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허무맹랑하지만 겉보기에 화사한, 그늘이 없는 기대는 휴일 오전에 그들이 갖는 보편적인 느낌이리라.

 

텔레비전을 틀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좌편향', '올바른' 등 뉴스에는 그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의미도 없이 흩어졌다. 교과서의 소비 주체인 학생들의 의견은 도외시 한 채 자기네들 멋대로 결정하고, 멋대로 뜯어고치면서 그것이 옳다고 믿는 돌대가리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소름이 돋는다. 그들도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이 다할 테고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 시간의 어둠과 우울은 가을 휴일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꺼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오늘자 조간신문을 잘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혹은 텔레비전 아침 뉴스를 잘 이해하거나. 그러나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목적이 따로 있는 듯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대한민국의 과거가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보다 화려했으니 현재에 대한 불만이 더러 있더라도 참고 견디었으면 좋겠다는 뜻일 게다. 즉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다. 어디서 많이 듣던 문장이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문장도 아마 그것일 게다. "가만히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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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art 일센티 아트 - 1cm 더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일상을 예술처럼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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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좋을 때다."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아직은 어린 티가 줄줄 흐르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을 향해 "좋을 때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걸 볼라치면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 놈이나 그 놈이나 비슷한 또래로만 보이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인생에 있어서 안 좋은 때란 과연 없는 것일까? 얼핏 생각하면 "그 걸 말이라고 해?" 따질 만도 하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 제 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다 보면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들이 훨씬 많은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 보면 '그 때가 좋았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듯싶기 때문이다.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덕담 삼아 이런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어떤 일의 결과가 아쉽고 후회된다면 그건 시간에 맡기면 돼. 장담하건대 미래의 언젠가는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 생각할 날이 반드시 올 거야."라고 말이다. 가까운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과거는 언제나 좋은 날들로 변해갈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면 누구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자신의 삶은 오롯이 과거만 남게 되고, 그 모든 과거는 '그 때가 좋았지' 로 명명된 충만한 날들로 변해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삶의 개수보다 다양한 날들이 존재한다./그러니 별일 없는 조용한 날들에게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자.//시끄러운 클럽 음악이 아닌/내 목소리를 듣는 차분한 금요일,/소수의 소중한 사람만이 모인 생일,/따뜻한 찌개와 가족이 있는 크리스마스,/원 없이 뒹굴거린 주말-/두근거리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별일 없는 조용한 날들로부터//또한 온전히 살아 있음을/느낄 수 있다." (p.300~p.301)

 

김은주 작가의 《1cm art》를 읽었다.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잘 읽지 않는다. 통일성이 없고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여, 《1cm 첫 번째 이야기》나 《1cm+》가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을 때에도 대형서점의 한쪽 귀퉁이에 서서 대충 훑어보았을 뿐 이 책을 사서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은 그닥 들지 않았다. 오히려 《1cm》시리즈에 열광하는 젊은 사람들이 이상하게만 보였었다. 생각해보면 SNS의 짧은 문장에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데 아날로그에 익숙한 나의 관점에서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은 아닌가 슬쩍 미안해진다.

 

책의 곳곳에는 다양하고 기발한 아트 미션(art mission)이 등장한다. 독자 자신이 스스로 쓰거나, 그리거나, 접거나, 사진 찍는 미션인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누군가에게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거나 고마움을 표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낭만적인 고백에는 영 젬병인 나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할 뿐더러 '귀차니즘'만 한 움큼 손에 쥐었다.

 

"이제 이 책의 도움 없이 일상에서 당신만의 ART를 만들어 가 보세요. 주어진 미션이 아닌 스스로, '특별하게'가 아닌 일상적으로, 매일의 즐거움, 찾고 싶었던 의미,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작은 변화들을 만나 보세요. 그럼으로써 일상을 재발견해 보세요." (p.187)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들이 점차 따뜻함을 더해갈 것이다. 어쩌면 성긴 여름의 틈바구니를 조밀한 그리움으로 채우게 되는 계절이 가을인지도 모른다. 날이 갈수록 아침 기온은 조금씩 내려가겠지만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가슴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따뜻해진 가슴으로 우리는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틈에서 곁불을 쬐듯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가슴도 따뜻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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