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생활의 가장 큰 로망은 역시 미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여학생과 나란히 걷기만 해도 징계를 받던 시대였으니 대학생이 되기 전에 이성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종례시간에 반 아이들의 가방을 조사하기도 했었죠. 어느 때였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제 친구 중 한 명은 가방에 무심코 넣어두었던 연애편지가 발각되어 일주일 동안 반성문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이성에 대한 열망이 가장 왕성한 시기의 아이들을 그렇게 가두어 둔 덕분에 그나마 대학 문턱을 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남녀교제 자체를 철저히 막아놓았던 걸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랬으니 아이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미팅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고, 맘만 먹으면 주말마다 미팅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를 잔뜩 품고 나갔던 미팅은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오기 일쑤였고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열기는 시들헤져만 갔습니다. 그때 속담처럼 성행하던 말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혹시나' 했던 일들이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명분으로 국정화를 고집하는 정부와 그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정말로 떳떳하다면 집필진의 이름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집필진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떳떳한 일을 하는 거라면 정부가 비공개 원칙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자진하여 밝히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정부는 내년 3월 원고 초안이 나올 때까지 집필진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인 셈이죠. 익명으로 댓글을 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인터넷 실명제를 운운하던 작자들이 이제는 그 중요한 역사 교과서를 쓰는 것에도 익명으로 하자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역사 교과서가 인터넷 댓글만도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입니다. 부끄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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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마음 - 정말지 수녀의
정말지 글.그림 / 쌤앤파커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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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무슨 재미로 사느냐?' 는 것이다. 내 생각이 궁금해서 묻는 질문일 수도 있고 대답이 필요 없는 그들 나름의 단순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지만. 암튼 나는 좋든 싫든 그런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그저 멀뚱히 쳐다보게 된다. 나의 이런 행동은 더 이상 그런 질문은 받고 싶지 않다는 시위일 수도 있고, 마땅한 대답을 생각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내가 마치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 출신이라도 되는 양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계는 로고스와 질료로 되어 있다'고 외쳐야 하는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당장 파토스(pathos)를 멈추라'고 그륻을 설득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물론 그들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 입 다물라!'가 되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묻는 이유는 명확했다(내 생각에는 단순한 것이지만). 술은 체질적으로 먹지 못하고, 올해 초부터 담배도 끊었고, 그렇다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노래방을 찾을 리도 만무하고, 주말부부로 살면서 모르는 여인과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니 그들 눈에는 내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인간으로 비칠 밖에. 그들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 역시 그들처럼 말했지 싶기도 하고 심하게는 '재수없는 놈'이라고 칭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틈만 나면 책이나 읽어대니 더더욱...

 

<바보 마음>을 쓴 정말지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영혼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함몰되지 않도록,

그리하여 오롯이 '지금 여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남의 시선이나 외부의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자기 마음의 소리에 더 집중해야 할 일입니다." (p.53)

 

마음이 온통 어지러운 날에는 회초리 삼아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다. 도시에 묶여 살면서 야마오 산세이처럼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논할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버리고 '무소유'를 주장할 것도 아니기에 어찌 됐든 마음을 다스리고 가라앉혀서 나름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녀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어주는 '바보 마음''이라고 하신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자꾸 옆길로 새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사는 재미라... 사는 재미가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언뜻언뜻 생각하면서.

 

"사는 것은 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넘어집니다.

이 넘어짐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어서는 것이지

넘어지는 횟수에 있지 않습니다." (p.229)

 

내가 생각해도 나란 인간, 정말 재미없게 산다.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하고, 꼬박꼬박 밥 챙겨 먹고, 술도, 담배도, 도박도, 연애도, 게임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바른생활 사나이'가 따로 없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라고 내게 묻는다면 조리있게 대답할 자신은 없다. 어떤 목적을 생각하여 스스로를 옥죄고 절제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게 편할 뿐이다.

 

"촛불의 역할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지요.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면 누군가는 길을 찾고,

누군가는 글을 읽고,

누군가는 일상의 일을 하겠지요.

그렇게 내가 쓰이고 닳아 없어짐으로써

누군가의 삶에 빛을 던져주는 일.

그 일을 하고 싶고

그 소명으로, 그 '죽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p.263)

 

내일이면 벌써 금요일, 일주일이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낮에 또 누군가가 '주말에 뭐하세요?' 내게 물었었다. 나는 그때 우물우물 자신없는 목소리로 '글쎄, 책이나 한 권 읽을지...' 했었다. 내 기준은 그들의 잣대에서 번번이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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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학 -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
플랜투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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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까지 어둠은 좀체 벗겨지지 않았다. 언제였던가. 오늘처럼 운동을 하고 내려오는데 아파트 단지의 곧게 뻗은 스카이라인 위로 덩그러니 떠 있는 보름달을 보았었다. 아침이 훤히 밝아오는 그 시각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달이 그려내는 둥근 원은 약간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운 광경이었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가 생각났었고 그래서 더 으스스한 기분에 빠져 들었었다. 바보 같은 짓이지만 혹시 몰라서 다른 하나의 달이 더 뜨지는 않았는지 한참을 찾아보기도 하고 말이다. 오늘 아침에는 그런 달은 보지 못했지만 비에 젖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나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랐는지 고양이는 숲으로 곧장 달아났지만.

 

하루의 시작치고는 꽤나 재미있는 출발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든다는 건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이미 '아는 것'의 범주에 무차별적으로 던져질 준비를 하게 되거나 이따금 새롭다 느껴지는 어떤 것들도 내 시선을 그저 잠깐 사로잡다가 이내 '아는 것'의 범주로 내던져진다. 하루는 무수히 많은 날들 중 하나일 뿐 다름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은 사라진 지 오래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야말로 개벽을 하듯 '죽음'의 추상성이 현실적인 무엇으로 구체화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토록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1℃ 인문학』을 통하여 네이버 블로그 'Better'를 알게 되었다.'1년 8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국내외를 넘나들며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공유해온, 꿈 많고 순수한 네 명의 청춘'(이승준, 한소라, 여상윤, 김현지)이 깊은 울림을 주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파함으로써 온라인과 SNS를 뜨겁게 달구었었나 보다. 그들 네 명의 젊은이들이 펴낸 이 책 『1℃ 인문학』은 1. 아이디어(IDEA), 2.사랑(LOVE), 3.용기(COURAGE), 4.사람(PEOPLE), 5.사회(SOCIETY)의 다섯 가지 주제를 나누고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10개의 에피소드와 인터뷰를 싣고 있다.

 

그렇게 모인 50개의 에피소드는 대개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귀로 이루어져 있어 하나를 읽는 데 30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이 책의 부제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이 말해주는 것처럼 되내어 생각할수록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서울 맹학교'를 졸업하는 여덟 명의 졸업생이 받은 특별한 졸업 앨범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앨범이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학생들의 모습을 스캔하고, 그 이미지를 토대로 졸업앨범이 제작되었다.

 

"추억이란 지나간 시간의 기억으로, 항상 좇을 수밖에 없는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억의 감각에 우연히 닿으면 언제 잊었냐는 듯 어느새 그 시간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추억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시간이 많이 흘러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살더라도 지금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감각'을 선물 받았기 때문 아닐까요?" (p.102)

 

소록도의 한센인을 위해 공연을 한 가왕 조용필의 이야기, 유기견들의 마지막 표정을 그림으로 남기는 마크 바론의 이야기, 두 눈을 잃고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며 살고 있는 고양이 허니비 이야기, 삶 자체가 혁명이었던 화가 프리다 칼로 이야기, 이웃을 위해 계산할 돈을 미리 내는 미리내가게 등 우리 이웃, 동시대의 사람들이 사는 지구촌 시민의 특별한 삶을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추위에 얼어붙은 우리의 몸을 녹이는 건 난로도 히터도 아닌 두 손을 맞잡은 순간의 따뜻함이 아닐까요?" (p.408~p409)

 

세월이 가면 갈수록 삭막하고 각박해지는 세상에 우리의 가슴마저 차갑게 식어버린다면 우리는 어쩌면 삶의 의지마저 꺾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너와 나의 체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99퍼센트의 부정에 맞서 싸우는 1퍼센트의 긍정은 감동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승산이 있는 것이다. 당신과 내가 감동하지 않으면 1퍼센트의 긍정은 다만 1퍼센트의 힘으로 사그라들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혹은 이 책을 쓴 네 명의 젊은이는 서로를 향해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감동하라! 그러면 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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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남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해!'라는 말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너무도 흔해빠져서 그 가치마저 사라진 듯한 그 말을 무에 생각할 게 있다고 그렇게 오래 생각했느냐 하겠지만 나는 그래서 더 오래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대충 생각한 게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아주 열심히,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정말 열과 성을 다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 나란 놈, 내가 생각해도 참 유별나고 별난 놈이다. 그냥 '사랑해!'라고 말하나 보다 생각하면 그만인데 그걸 한사코 끄집어 내어 뒤집어도 보고, 나누어도 보고, 말하는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여 정량화를 하고 싶으니 말이다. 시쳇말로 "노답!!"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것 하나를 알게 되었다. 진행형의 구분이 애매한 우리말에서 '사랑하다'는 진행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한 시점에 정지된 상태로 읽는다는 걸 알고 조금 놀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사랑은 연속적인 시계열의 진행이지 한 순간에 들었던 심리 상태만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말이다. 예컨대 나는 '지금' 널 무지무지 사랑하지만 조금 지난 '다음 순간'에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그 강도가 때에 따라 점층적이거나 점강적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의 그 순간의 마음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 또는 책의 주인공이 그 말을 하는 순간의 심리로만 읽는다는 것은 진행형으로 읽었을 때와 상당한 의미 차이가 난다. 지금껏 나만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동안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저 사람이 지금 나를 사랑하는구나'쯤으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감정은 결코 순간적으로 들었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혹시라도 나처럼 '사랑해'라는 말을 순간적인 심리 상태로 받아들였던 분이 있다면 의식적으로나마 진행형으로 생각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만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다. 삶을 사랑의 과정으로 볼 때 사랑이 순간적이라면 그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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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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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의 글에서는 언제나 마른 먼지내가 난다. 도무지 헐거운 부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정이 내 가슴께를 콕콕 찌른다. 나는 이따금 밭은 기침을 하며 책을 내려 놓는다. 내 게으른 호흡으로는 작가의 철두철미를 차마 감당하지 못하는 까닭이며, 그의 기름기 없는 문체에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권의 책을 편히 읽도록 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가슴으로 다시 쓰라 명령하는 것만 같다.

 

나는 작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다. '어렵게 쓴 시는 독자도 그만큼 어렵게 읽어야 한다.'고 햇던 대학 친구의 말을 나는 몇 번이나 곱씹고 되내었다. 지난한 독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이 힘겨움이 막 입대한 훈련병의 모습으로 화하여 쉬고 읽기를 반복하게 한다. 훈련병 시절에는 어머니의 시큼한 땀냄새가 그렇게 그리웠었지. 그러나 김훈의 글에선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려야만 했다.

 

"지금은 한식날 아버지 무덤에 가서도 나는 울지 않는다. 내 여동생들도 이제는 다들 늙어서 울지 않는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4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p.33~p.34)

 

나의 할머니는 6.25 동란에 할아버지를 여의고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었다. 그 기구한 운명에 지지 않으려는 듯 할머니는 언제나 꼿꼿하셨다. 이따금 할머니 방에서 잠을 잔 날이면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 흐트러짐 없이 앉아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먼저 보곤 하였다. 할머니는 종지에 떠온 찬물을 머리에 찍어 바르시며 숱이 많지 않은 머리카락을 팽팽히 당겨 말아쥐고는 언제나 그렇듯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았다. 그것은 어린 손자에게조차 당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당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이자 성스러운 기도였다.

 

나는 위의 인용문을 이 책 <라면을 끓이며>에서 처음 보았던 게 아니고 28인의 소설가가 쓴 <내 영혼이 한뼘 더 자라던 날>에서 먼저 읽었었다. 나는 그때 작가가 말하는 '풍화의 슬픔'을 내 가슴께에 한 자 한 자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마치 살을 도려내는 고통인 양 깊은 울음을 울음 울게 했다. 이 책은 실상 바쁜 식사를 마치고 하루의 밥벌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지만 나는 예전에 출간된 그의 저서에서 받았던 오래된 슬픔과 이 책에서 처음 읽는 새로운 슬픔이 마구 뒤섞이는 바람에 하루의 정해진 끼니를 이따금 건너 뛰어야만 했다.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정합성만으로는 세월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진상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이 사태를 개관화해서 3인칭 타자의 자리로 몰아가는 방식으로는 이 비극을 우리들 안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숫자를 합산해서 사태의 규모와 중요성을 획정하는 계량적 합리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p.175~p.176)

 

현재는 언제나 간절함이 배어 있다. 그러므로 간절함이 없는 현재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세월에 밀려 과거로 변한 지금은 그 간절함 밖의 간절함이었던 듯 덧없고 쓸쓸하기만 하다. 머리가 희끗해진 작가의 글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읽게 될지 알지 못한다.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지금 읽는 이것과 서먹해진 과거의 저것만 있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작가가 말한 '풍화의 슬픔'이 오래도록 아프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p.4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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