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는 소프라노의 고음처럼 차고 건조했다. 잠이 덜 깬 나를 질책이라도 하려는 듯 걸음을 뗄 때마다 찬 공기는 중무장한 나의 운동복 틈새를 비집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달빛이 밝았다. 불투명의 달빛을 배경으로 쭉쭉 뻗은 나무 그림자가 마치 멍키바의 간격처럼 등산로를 규칙적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숲은 고요했다. 날씨 탓인지 산을 오르는 등산객의 발길도, 산짐승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발밑에 밟히는 낙엽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던 <걷기 예찬>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 그는 책에서 "자신의 몸을 땅과 수직으로 꼿꼿하게 세우고 걷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비로소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으며, 인간과 우주의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기 시작하였다."고 썼다. 나는 이따금 그의 책에 나오는 다른 멋진 문구를 생각하곤 한다.

 

달빛은 여전히 밝았다.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앗던 지난 며칠, 나는 황사 마스크를 쓴 채 답답한 산길을 걸었었다. 그래서인지 밝은 달빛이 지나친 호사로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때로는 분에 넘치는 호사보다 익숙한 가난이 더 편안한 법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발걸음을 앞으로 밀어내는 것은 그 무시무시한 괴로움의 씨앗이 아니라 자기변신, 자기 버림의 요구,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길과 몸을 한덩어리로 만드는 연금술을 발견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여기서 인간과 길은 행복하고도 까다로운 혼례를 올리며 하나가 된다."

 

낮이 되어도 기온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춥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2015년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오늘, 비로소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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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위로받지 않을 권리
최상진 지음 / 문학의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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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시 한 편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로 시작되는 조병화 시인의 시 "해마다 봄이 되면"입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봄처럼 부지런하라, 꿈을 지녀라, 새로워라, 당부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시인의 당부가 싫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나 어느새 어른이 된 나는 지금의 '어린 벗들'에게 시인처럼 당부의 말을 하지 못합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한없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껏 이 시를 기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인의 삶이 진실했었기 때문에, 거짓으로 살지 않은 한 사람의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됩니다. 진실의 힘은 깊고 오래 가는 법이니까요.

 

"지난날을 개념 없이 살아온 비청춘들이여,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지나간 세월이야 그렇다 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청춘들은 어찌하랴. 세상은 그저 그렇고 그러니 그냥저냥 권력에 순치돼 살라고 청춘들에게 권할 것인가. 나는 강자 너는 약자, 나는 강남 너는 강북, 나는 부자 너는 빈자로 정해져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한국식 카스트를 평생 안고 살아가라고 말해줄 것인가. 이제 다시 정의다. 정의는 이겨야 한다. 정의 편에 섰으면 정의가 이길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청춘들이 정의의 편에 설 수 있도록 올곧은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p.131)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최상진 교수의 <청춘, 위로받지 않을 권리>를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때로는 심란한 기분을 가라앉히려 시작한 독서가 오히려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다들 학부형이 된 친구들을 동창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참회의 말을 한 바가지씩 쏟아내고 돌아서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마저도 그만두었지만 말입니다. 내 자신이 떳떳해져서 그런 게 아닙니다. 뻔뻔스럽게 사는 것에 익숙해지면 마음에도 없는 참회의 말이 되려 부끄러워지는 까닭입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갖가지 비리 의혹에 휩싸였던 여당의 한 후보는 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예비경선에서 이렇게 말했었지요."나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나를 왜 경선에서 떨어뜨리려고 합니까? 본선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 그가 그렇게 원하던 대통령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시절에도, 퇴임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결코 다정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살았다고 역설하는 그의 강변은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작은 손바닥도 되지 못하는 듯합니다.

 

저자는 책에서 청춘을 향한 무한 응원을 보내고는 있지만 날카로운 질타와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반려기계'를 끼고 사는 '조로(早老)의 청춘'에 대한 우려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오늘을 허깨비처럼 살아가는 허수아비 청춘을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청춘을 올바로 자라게 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참회와 반성의 글도 함께 말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청춘을 청춘답게 하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청춘이 속한 사회적 기반과 문화적 토양이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빈약한 토양과 거친 날씨에서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청춘을 나무라고 잘못을 지적하여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기에는 이제 대한민국의 문화적 토양이나 제도의 기반이 턱없이 부족해졌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웃을 돌보고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정의는 사라지고 오직 돈과 권력의 먹이사슬만 존재하는 신자유주의 문화가, 부모의 권력을 대대로 승계하려는 '한국식 카스트' 제도가 수십 년 지속되어 온 까닭에 희망에 찬 청춘이 발 붙이고 살기에는 부적합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따금 개념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고치면 되지 않느냐구요. 그러나 그것은 한 나라의 문화와 제도는 쌓이고 축적되는 것이지 손바닥 뒤집 듯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일 뿐입니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 놓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청춘은 그 무엇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의 덩어리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들을 가능성의 덩어리로 만드는 것도 그 사회의 기성세대가 할 몫이고, 바람처럼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것도 기성세대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청춘은 한 사회의 미래인 동시에 암울한 현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나무라기에는 대한민국은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되어집니다.

 

" '조용히 해'로 길들여진 청춘은 패배주의와 보신주의에 익숙해지고 청춘답지 못한 청춘으로 성장한다. 창의력이 있을 리 만무다. 다만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창의력을 발휘할 뿐이다. 눈치만 늘어나고 심하면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권력의 그늘에서 기생하고 그 권력을 계승하고 훗날 더 큰 소리로 '조용히 해'를 외치는 사람이 된다." (p.184)

 

저자는 청춘들에게 '신경질을 내라고', '왜 당신들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느냐고, 너나 잘하시라고' 말하라 합니다. 위로가 넘쳐나는 대한민국 사회에 거짓 위로인들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거짓 애국자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에 거짓 선동가인들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청춘은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입체의 홀로그램이어야 합니다. 세상 어는 곳에도 없는 독자적인 색이어야 합니다. 저는 비록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한심한 넋두리를 늘어놓는 비청춘의 한 사람이지만 내 말은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그냥 흘려버리는 바람인 듯 여겨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기성세대가 하는 모든 말들을 거부할 권리가 청춘 모두에게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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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들어 다시 생각할 때 '아, 내 생각이 틀렷었구나.' 깨닫고 바로잡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누구나 그 정도의 실수는 있게 마련이니까 그깟 것들이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왠지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넘어가면 크나큰 죄를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개운치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도덕관념이 투철한 성인군자라고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물론 그럴 리도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도 그런 듯합니다. 예컨대 함께 어울릴 때는 잘 몰랐었는데 헤어져 이제는 영영 못 만날 것 같은 느낌이 오면 그제서야 그 사람이 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한번쯤 오해했던 말이나 상대방은 몇 날 며칠 신중하게 생각하고 어렵게 꺼냈을 듯한 말을 나는 참으로 건성건성 듣고 흘려보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도 됩니다.

 

최근에 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떤 책이나 글을 읽고 내가 잘못 해석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던 저의 불찰이 원인이겠지요.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제가 잘못 이해했다면 그것 역시 잘 듣고 그 이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저의 타성이나 게으름이 원인일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타성이나 게으름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나날들이 있지만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듯이, 누군가 내게 자신이 전에 했던 완전히 똑같은 말을 그때와 똑같은 환경에서 되풀이했을 리 만무한데 저는 언제나 비슷비슷한 말로, 대충 그렇고 그런 말로 지레짐작하고 건성건성 들었던 것입니다.

 

조금쯤 변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언제나 비슷한 일정 속에 비슷한 일과를 보내는 탓에 한 십 년쯤 이런 생활을 하고 문득 뒤돌아 보면 마치 십 년이 단 하루였던 듯 기억나는 게 거의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자청하여 제 삶을 단축시키면서 살아온 것이지요. 앞으로도 십 년을 하루인 듯 살다 보면 문득 죽음이 코앞에 놓인 시간을 맞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것은 삶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길고 짧고는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기억의 총량과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오래 사는 비결은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꾸준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방법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익숙하다고 느끼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 그 열정이 저의 게으름을 몰아내고 제 삶을 조금쯤 늘여놓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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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
존 프리먼 지음, 최민우.김사과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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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적당한 시점에 맞춰 그저 아는 양,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본 것인 양 짐짓 자신을 속이고 감추면서 상대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몇 마디 동조의 말을 한 적이 있는지요? 부끄럽게도 저는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닐 때 읽었음직한 책의 경우에는 대체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도 있고, 요약본을 읽었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강의 줄거리를 귀동냥으로 들었던 책도 있을 터인데 그마저도 구분을 할 수 없으니 그냥 고개나 끄덕일 밖에요. 물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제 처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한 수 배움을 청하는 게 백 번 천 번 옳을 터인데 항상 그놈의 자존심이 문제입니다. 책 한두 권 더 읽었다고 으스댈 일도 아니면서 늘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성이 깨끗하지 못한 탓이겠지요.그런 날이면 괜히 우울하고 기분도 좋지 않습니다.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을 읽으면서 제 얄팍한 지식이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이 책은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 계간지「그랜타(granta)」의 편집장인 저자가 전 세계의 이름 있는 작가 중 자신이 인터뷰한 70명의 소설가를 선별하여 작가의 인터뷰 내용과 함께 소개한 책입니다. 이들 가운데 7명이 노벨문학상, 8명이 퓰리처상(미국), 9명이 내셔널북어워드(미국), 7명이 부커상(영국), 12명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미국)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들 작가 중 삼분의 일도 채 알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그마저도 작품은 읽어보지도 못하였고 어쩌다 한번쯤 작가의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듯한 작가들까지 모두 포함시켰는데도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쓰고 나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느낌도 드는군요.

 

"나는 진짜 이야기꾼이란 쓸 수 있어서가 아니라 써야만 하기 때문에 쓴다고 믿는다. 그들은 세계에 대해 말하고자 하고, 이때 오직 이야기로만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이 책에 수록할 인터뷰들을 선택해야 했을 때, 나는 절박한 필요라는 감각을 느꼈던 작가들을, 그와 동시에 중요하고 아름다우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썼던 작가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p.30)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가 중 제가 알던 작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토니 모리슨, 조너선 사프란 포어, 무라카미 하루키, 귄터 그라스, 할레드 호세이니, 도리스 레싱, 폴 오스터, 가즈오 이시구로, 올리버 색스, 모옌, 존 업다이크, 이언 매큐언, 살만 루시디, 오르한 파묵 등입니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제가 적어도 한 권 이상을 읽어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고 지금도 기억하는 이름들입니다. 정말 형편없지요? 그나마 어디선가 들은 듯하고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자신할 수 없는 작가까지 포함하면 조금 더 되겠지만, 그렇게 한들 제 보잘 것 없는 지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낯선 이름의 작가와 그들이 했던 인터뷰를 읽는다는 건 꽤나 따분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간간이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인터뷰를 읽을라치면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속죄>를 쓴 이언 매큐언의 인터뷰처럼 말이지요.

 

"제 생각에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를 확실히 인식한다면 타인에게 잔인하게 굴 수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잔인성이라는 건 상상력의 실패로, 공감의 실패로 볼 수 있다는 거죠. 다시 소설이라는 형식의 문제로 돌아와보면, 저는 소설이 우리에게 타인의 마음을 느끼는 감각을 부여하는 데는 최고의 형식이라고 봅니다." (p.421)

 

작품에 대한 비평으로서가 아닌, 작품의 탄생 배경이나 작품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작가로부터 직접 듣거나 읽는 것은 기분 좋은 경험일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처럼 세계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소설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부럽고 샘이 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600쪽에 가까운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는 건 쉽지 않을 듯합니다. 비교적 관심이 덜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작가는 건성건성 넘어간다고 한들 뭐 어떻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하여 맘에 드는 새로운 작가를 한 명 더 알게 되고 그의 작품을 읽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힘들게 읽은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벌써 한 주를 마감하는 토요일에 와 있군요.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가 중 한국 소설가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섭섭하기는 하지만 결국 한 나라의 독서 수준이 그 나라의 작가 수준을 대변한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나라 국민들 각자는 분발하여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할 줄 압니다. 혹시 압니까? 누군가 핑곗김에 권하는 책을 읽고 크게 감동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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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자선단체인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AF)은 해마다 '세계기부지수(WGI : World Giving Index)'를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모른다구요? 제 생각이지만 처음으로 들어보셨다는 분도 꽤 있을 것입니다. 이 단체에서 발표하는 기부지수는 한 나라의 국민이 1년간 자선단체에 기부한 금액, 자원봉사단체에서 활동한 시간, 낯선 사람을 도운 횟수 등 3개 항목을 평가해 100점 만점 기준으로 매겨지는데 2015년에는 66점을 받은 미얀마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하더군요. 놀라운 것은 전 국민의 92%가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네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몇 위쯤 될까요? 2013년에는 45위였던 것이 2014년에는 60위, 올해는 조사대상 세계 145개국 중 64위로 점점 추락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기부지수는 100점 만점에 35점으로 기부에 참여했다는 응답은 34%, 봉사에 참여했다는 응답은 21%, 모르는 사람을 도왔다는 응답은 50%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도 대단하다구요?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GDO 규모로 따져봐도 세계 10위 수준인 대한민국이 남을 돕는 데는 이렇게 인색할 수가 있는가 말입니다.

 

어제 뉴스에서는 관악구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20대 여성이 숨진 지 보름 만에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프리랜서 언어치료사였던 그녀는 월세도 제대로 못 낼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는군요.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6,70대의 노인이 죽었다고 해도 마음이 아팠을 텐데 이제 겨우 20대의 꽃다운 나이 아닙니까. 게다가 관악구 신림동에서 19살의 서울대생이 세상을 비관하는 유서를 SNS에 남기고 자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별 관심도 없을 듯한 내용의 글을 이렇게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인정이 이렇게 각박해지고 기부 금액으로 봐도 세계 최저가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세제혜택이나 기부금 사용의 불투명성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이 기부를 꺼리는 가장 큰 원인은 대한민국이 돈 없이 살기에는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위험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돈에 관한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위험국가인 셈이지요. 국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요. 그것은 복지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런 까닭에 어느 부모라도 돈이 생기면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부터 하지 남을 돕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단 한번만 실수를 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주변 곳곳에서 보는데, 게다가 가족이 아니면 그 누구도 나를 돌보지 않는데 나부터라도 돈이 생기면 꽁꽁 쟁여둘 생각부터 하지 누구를 돕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국민 누구나 '내가 어렵게 되더라도 국가나 이웃이 나를 돌봐줄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으면 기부문화는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면 언제든 잘 살 수 있다는 원칙이 살아있고, 그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기부문화가 활성화 될 수도 있겠지요. 국민 의식의 저변에 가장 기본적인 그 두 가지가 없는데 기부인들 가능하겠습니까.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보다는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확신, 원칙이 살아있는 나라, 편법과 비리가 발 붙일 수 없는 나라를 만들면 기부는 자연스레 늘어날 것입니다. 금수저, 흙수저 논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민낯이며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절망 속으로 인도하는 가장 큰 아젠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허구는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명제. 그게 슬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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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9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9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