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자기 주장이 강하거나 똑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 참 야무지다' 라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경향은 여자에게 특히 더 심하다. 더이상 반박할 말이 없어 그(또는 그녀)의 똑똑함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 말에는 사뭇 가시가 돋곤 한다. 아니라고 해도 목소리 톤이나 얼굴 표정에서 금세 드러난다. 다들 알지 않나. '그래, 너 잘났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 똑똑한 사람은 살아남기도 어렵고, 남들과 적당히 융화하며 산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우리 사회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산업사회 초창기에 횡행하던 편법에 의한 성취, 불법적인 부의 축적 등 불법과 편법에 의한 공정성의 상실이 가장 크겠지만 유교적 계급의식도 한몫하지 않나 싶다. 그로 인해 어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에 대한 비아냥, 불신, 반목 등 부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가 하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내면에도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이 바른말을 하면 '네가 뭘 알아' 내지는 '감히 내 앞에서...'와 같은 식의 반응을 보이는 선민의식을 갖게 되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보수세력의 공격도 이러한 유교적 선민의식에 바탕을 두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폐단을 없애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경제적 이익을 편취하기 위한 불법이나 탈법은 여전히 성행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은 산업사회의 초창기보다 훨씬 높아졌다. 예컨대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비서관의 취직을 돕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 모습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흙수저 논란을 불러온 이러한 불법행위는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더욱 힘을 얻을 게 뻔하다.

 

대한민국에서 젊은 인재는(그것도 고급 인재는 더더욱) 살기 어렵다. 젊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는 이유는 비단 취직을 하지 못해서가 아닌 듯하다. 날씨도 추운데 이런 가슴 시린 이야기를 하게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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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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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오해에서 비롯되는 일이지만 이따금 대필을 부탁받는 경우가 있다. 틈만 나면 열심히 책을 읽는 덕에 남들 보기에 나는 글도 잘 쓰는 사람이려니 하는 선입견을 여러 사람의 머리에 각인시켜 놓았나 보다.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갖게 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본의가 아니었다는 말과 함께...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이러이러한 주제로 짧은 글 하나 써줄 수 있겠나?'하는 말이나 그와 비슷한 부탁을 자주 듣는 까닭에 그에 대한 변명이나 완곡한 거절의 표현을 한두 마디쯤 늘 준비하고 다닌다. 이를테면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신 것은 감사하나 저는 사실 글을 쓸 줄 모릅니다.'로 시작하여 이차저차한 이유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내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재주도 없는 놈이 덥석 떠안았다가 뒷감당도 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것보다야 낫지 싶어서 글을 대신 쓰는 일만큼은 철저히 거절한다.

 

그러나 거절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떠안는 일도 더러 있다.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며 썼음직한 글을 내게 들고와서는 적당히 고쳐달라고 막무가내로 떠맡기는 경우이다. 그들의 부탁은 대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니 나보다는 낫겠지'하는 식으로 선제공격을 함과 동시에 내가 무르춤하며 거절의 말을 내비칠라면 '엉성해도 괜찮으니 고쳐만 주게' 일침을 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게 억지로 맡은 일을 처리하자면 나 또한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 한다. 그야말로 사서 하는 고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도 한가하고 여유가 있을 때면 그럭저럭 할 만하지만 남의 돈을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마음 놓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말이지... 아무튼 나는 그렇게 맡은 일을 한껏 뒤로 미루다가 이 일 저 일이 한꺼번에 닥치는 바람에 부랴부랴 서두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늘 한결같다. '아,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매번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글쓰기 관련 서적을 읽을 생각은 도통 하지 않았다. 이 무슨 똥배짱인지 모르겠다. 그와 같은 책을 읽는다고 없는 재주가 갑자기 튀어나올 리 만무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글쓰기에 관한 상식 일변도의 그렇고 그런 내용일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컸기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쓴 <서민적 글쓰기>를 읽게 된 것은 지인의 권유에 등 떠밀리다시피 한 일이었다. 모 인터넷 서점의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로서는 책을 읽기도 전에 약간의 열등의식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시절 저자의 글쓰기 경험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의외로 술술 읽혔다.

 

책은 독자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마도 저자의 경험을 줄기차게 언급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소심한 성격과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자신의 책을 몇 권 출간했으나 모두 말아먹었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더 혹독하게 글쓰기 연습을 했음을 고백한다.

 

"짬날 때마다 책을 읽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소재가 생각날 때마다 글을 쓰다 보니 한 달도 안 돼 노트를 바꿔야 할 정도였다. 노트가 한 권 두 권 쌓여갈 때마다 글쓰기 실력도 나날이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그맘때 "내가 나중에 유명작가가 되면 글쓰기 연습한 이 노트들도 값어치가 올라가겠지?" 하는 상상을 즐겨하곤 했다. 그런 생활을 7년쯤 하자 학교에 있는 내 캐비닛은 다 쓴 노트로 가득 찼다." (p.126)

 

내가 특히 관심을 두고 읽었던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쯤에 실려 있는 '서평은 어떻게 쓰는가'였다. 나도 이따금 책을 읽은 후 나의 블로그에 서평이랍시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글을 가끔 남기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어떤 체계가 있는 글쓰기보다는 내 나름대로의 막무가내식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지만 기회가 되면 깔끔하고 멋진 글을 한두 편쯤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그것은 책으로 내고 못 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작은 갈망인 셈이다. 칼럼과 서평을 위주로 글을 써왔던 저자는 서평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선 편하게 쓰고, 스포일러를 조심하고, 자기주장과 책 인용을 구별하고, 모르는 이야기는 쓰지 말고, 지나친 권장은 피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저자와 조금 다르다. 글쓰기 실력이 연습을 통해 극복되고 향상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끌리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연습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소설과 같은 장문(長文)이 아닌 서평이나 일기 형식의 단문(短文)을 위주로 쓰는 일반 블로거의 입장에서 '기-승-전-결'의 구성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그리 오래 연습하지 않아도 충분히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자가 없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2% 부족한 셈이다. 그것은 바로 필자의 경험이다.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지 않은 글은 아무리 잘 쓴 글일지라도 재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낱글자의 배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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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11 2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며칠전에 꼼쥐님 서재를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써주시는 글이 무척 재미있어서 틈나는대로 읽고 있어요...!
막문단을 읽으니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와서 댓글 남겨요.
 

이 달 20일이면 아들의 열세 번째 생일, 우리나라 나이로는 이제 열네 살이 된다. 곧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지만 내 눈에 아들은 여전히 어리게만 보인다. 생일 선물로 아들이 원하는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을 둔 덕분에 생일 선물을 고르느라 골머리를 앓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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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남들과 다른, 달라도 너무나 달라 거부감마저 드는 사고방식의 사람들을 볼 때면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들은 대개 무슨무슨 부대나 무슨 전후회와 같이 군대 용어가 들어간 단체를 만들곤 하는데 그래서일까 그들의 사고방식은 때로 일반인의 상식에서 한참이나 멀어진, 도드라진 것이 되곤 한다.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자면 일반 세포와는 확연히 다른 암세포를 떠올리게 된다. 암세포는 우리의 몸 속에서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여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도 그와 유사한 모습을 띠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위화감과 적대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조직원 간의 상호 결속력을 다지고 외부인과 적대의식을 높임으로써 조직원 개개인의 투쟁의지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 용서하자.", "위안부 할머니들이 희생해달라."

 

-본인의 딸이나 어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였어도 횽서할 수 있나?

"일본이 용서를 구하는데 용서를 해야지 어쩌겠나."

 

-OO부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

"대꾸할 가치도 없다. 당연히 나와는 반대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잇다. 그것까지 내가 침해할 필요는 없다. 비난하라면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의 올바른 가치를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위안부(성노예가 옳지만)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생각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내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피해자였어도 용서한다'는 말은 얼마나 해괴한가. 진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인격적으로 완벽한 성인이거나 정신병자일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독일만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당하기는커녕 미국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반성을 하고 위안부 피해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까. 개인이든 국가든 절실함이 없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을 옹호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있다. 그들은 성인 아니면 정신병자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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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0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밀양 ㅡ생각도 나고 ㅡ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용서라는 걸 해 보려고 찾아간 곳에서 그는 신의 자식이 되어 스스로 용서를 받았다면서 다른이의 용서는 필요 없다 ㅡ하죠.
다른 또 하나 ㅡ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ㅡ에서 였는데..사람이 사람에게 구해야 할건 용서가 아닌 위로라고ㅡ도 해요.
앞에선 살인자가 ㅡ뒤에선 ㅡ방관자가ㅡ 두 예는 저 글과 어쩌면 상 관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이 걸 거예요. 사람들은 사과하고 위로하고 애도하는데에 참 인색하다는 것..
개인도 그런데 좀 더 가진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거나 하다못해 권력이라도 가지거나 하면 그 고개는 더 뻣뻣해져서 수그러들줄 모르고 진정한 위로와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돈보다 더 많은 것을 할수있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있단 걸 인정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진다고 생각하죠. 국격이 그로인해 낮아지는 걸까 ㅡ인정하고 안하고 ㅡ이미 지불하고만 돈은 그들이 죄를 가졌단 걸 인정한건데 ㅡ적든 크든 ㅡ이해 안가는 정치놀음이고 언론이고 그러네요. 거기에 누가 당사자 아닌 사람들이 받아주라 마라 하는지 ㅡ가만있는 것도 미안한데 ㅡ
우리는 서로 위로 해야하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꼼쥐 2016-01-07 12:59   좋아요 1 | URL
피해 당사자나 그들의 가족도 아닌 제3자가 용서를 해라 말아라, 희생을 해라 말아라 하는 꼴이나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호자찬을 하는 꼴이나 정말 가관이더군요. 이건 뭐 나라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국민도 아닙니다. 언제부터 나라 꼬라지가 이렇게 되었는지...

[그장소] 2016-01-07 16:44   좋아요 0 | URL
ㅎㅎ그러네요..언제부터 ㅡ깜깜 하죠~휴~^^;;;
정신 바짝 차려야겠죠.지금 ..
 
그림과 문장들 - 뜯어 쓰는 아트북
허윤선 지음 / 루비박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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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봉천동 산 00번지'의 주소로 기억되는 낡은 단독주택 2층에서 국민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자취를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까지는 남부순환로의 버스 정류장으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였고 우리는 그 길을 매일 걸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당시에 나는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을 준비중에 있었고,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치과기공소에서 일을 배우는 친구와 과외를 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는 다른 친구 한 명이 있었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자마자 나타나는 방이 우리가 살던 방이었고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주인집 할아버지가 혼자 사용하는 큰방과 그 방에 딸린 부엌이 있었다. 우리 방에는 따로 마련된 부엌이 없었으므로 출출하여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이면 언제나 등산용 버너에 불을 붙여 그 위에 물을 가득 담은 양은냄비를 올려 라면을 끓이곤 했었다. 라면이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치과기공소에 다니던 친구는 이따금 낡은 기타 반주에 맞춰 유행가 한 곡조를 구성지게 부르곤 하였다. 그때 우리는 너무나 가난했고, 젊음이라는 낭만의 옷자락으로도 다 감출 수 없었던 가난의 추레함이 언뜻언뜻 남들 눈에 띄곤 했었다.

 

음악과 미술 등 예술 방면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나는 악보도 없이 능숙하게 기타 코드를 옮겨 잡던 친구의 연주 실력에 늘 감탄하곤 했었다. 낮에는 캔제품 대리점에서 배달을 하고 밤에는 과외를 하느라 늘 바빴던 나는 다람쥐 쳇바퀴의 일상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고 그때마다 친구가 불러주던 유행가 한 자락은 내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하여 나는 밤이 늦어서야 퇴근하는 친구의 귀가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 일쑤였고, 가끔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만취하여 돌아온 친구에게 노래 한 곡을 청할라치면 그는 차마 싫다고 뿌리치지 못하고 가사마저 뒤죽박죽인 노래를 목소리를 죽여가며 조용조용 들려주곤 하였다.

 

버스를 타면 지척이었던 신림동에 부모님과 여동생이 살고 있었음에도 굳이 집을 뛰쳐 나와 월세와 생활비를 부담하며 그 방에서 같이 살기를 청했을 때 친구들은 누구 하나 내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것은 나로 인해 월세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 것에 대한 경제적 이득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은 친구들도 익히 아는 바였고, 그것은 젊은 혈기의 내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도록 하는 지뢰와 같은 것이었다. 코딱지만 한 작은 방에 장정 셋이 잠을 잔다는 게 영 마뜩치 않았을 텐데 친구들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내가 과외비를 받고 술과 안주를 사서 들어갔던 날, 나는 저간의 사정을 겨우 말하며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었다. 그때였었나 보다. 치과기공소에 다니던 친구는 내게 속에 있는 울분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도대체 어떤 감정이든 누를 수 없을 만치 솟아나면 그때마다 글을 쓰는 게 어떠냐며 노트 한 권을 내밀었었다.

 

나는 도무지 운율에도 맞지 않는 시를, 도대체 시인지 산문인지 형식도 없는 글을 그가 준 노트에 옮겨 적었고, 이따금 친구는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올려진 그 노트를 자신이 봐도 되느냐 내게 묻곤 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비루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친한 친구에게 보이는 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노트를 들고 외출하지 않는 한 그것은 결국 언제까지고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될 수는 없을 터, 나는 그래도 좋다 승낙하고 말았다.

 

장마가 시작되던 어느 여름날이었나 보다. 친구는 내가 쓴 시에 리듬과 곡조를 붙여 자신의 낡은 기타 반주에 맞춰 흥얼거리고 있었다. 때로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낙서하듯 끄적거리기도 하면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더니 내게 들어보라며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려주었다. 아, 그때의 느낌이란... 친구가 부르는 노래는 시를 쓸 때 나의 감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내 시를 읽고 느꼈던 친구의 감정이 그대로 밴 것이었지만 그런 경험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허윤선 작가의 <그림과 문장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장르가 다른 두 분야의 예술 작품이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 되었을 때의 벅찬 감동은 그 시절에 내가 느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그림을 볼 때면 책이 떠올랐다. 그림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책들, 인생의 비밀을 속삭여주던 말들. 가장 외로운 순간 기댈 수 있었던 행간들. 이 책은 그림 앞에서 떠올린 문장이다. 나는 다만 그림의 말을 들었고, 책으로 답했을 뿐이다. 내가 사랑한 모든 책들이, 대신 답을 해주었다. 100점의 그림과 100점의 문장들.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은 아이들의 흥겨운 모습에선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이 떠올랐고, 붉게, 아주 붉게 타오르는 꽃 그림에서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백이, 수줍은 연인들의 모습 뒤에는 몇 번이나 의미를 고민했던 보토 슈트라우스의 문장이 들렸다." (p.4 ~ p.5)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학창시절의 시화전에서 보았던 친구의 시와 그림, 교과서에 실린 어느 시인의 시에 곡조를 붙여 불렀던 노래, 산에서 구한 나뭇등걸에 인두로 새긴 한 구절의 경구, 그 어느 것 하나 감동으로 되살아나지 않았을까. 예술은 결국 당신의 삶 속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문이다. 그것이 과거로 향하든 미래로 향하든 시간을 자유로이 왕래하는 그 길은 예술을 통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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