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이야기
신경숙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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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냉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휴일 아침, 앞동의 어느 집이 이사를 한다. 주차장 한켠에는 이삿짐 센타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화물차 한 대가 서 있고 사다리차에 실려 내려오는 이삿짐을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앳된 젊은이들 서넛이 분주하게 싣고 있다. 익숙함과의 결별은 언제나 나른한 피곤을 몰고온다. 지금 과거의 익숙함으로부터 탈출하는 저 집의 사람들은 미래의 어느 순간을 찾아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아마도 한동안 흔들릴 것이다. 산다는 건 흔들리는 순간순간을 오롯이 견디는 일일 것이다.

 

나는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휴일 오전의 익숙하지 않은 풍경으로 인해 한동안 상념에 빠져들었다. 소란스럽던 이삿짐차가 사라지고 아파트에는 다시 겨울 한낮의 고요가 찾아들었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신경숙의 소설 <J 이야기>로 시선을 돌렸다. 표절 의혹이 불거졌던 몇 달 전,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은 채 자숙을 다짐했던 작가의 근황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한때는 한국 문학을 대표하던 작가의 대응치고는 옹색하기 그지없는 결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어젯밤 도서관에 들렀을 때, 표지가 다 닳아 나달거리는 그녀의 소설 <J 이야기>를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J 이야기>는 양귀자의 인물소설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작가가 이제 막 등단했던 초기부터 <풍금이 있던 자리>를 출간하기 전까지 신문, 잡지, 사보 등에 썼던 글들을 J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전면수정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이 책에는 44편의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다. 책장을 누르면 울컥울컥 슬픔이 배어날 것만 같은 작가 특유의 문체는 이 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화려한 수식어가 없는 가볍고 단아한 문체는 아마추어가 쓴 습작노트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녀를 J라 지칭해놓고 재구성해보는 동안 저도 모르게 여러 번 웃었어요. 이삿짐을 싸다가 사진첩을 펼쳐놓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어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진짜 사진첩을 뒤적여보기도 했습니다. 영양결핍에 걸린 사람처럼 글쓰기나 인간관계에 허기가 졌던 청춘 시절을 이렇게나마 건너올 수 잇었던 것은 방금 헤어지고 귀가해 날이 밝도록 전화질을 하며 마음을 소통시킬 수 잇었던 친구들이 있어서였을 겁니다." (p.270)

 

'J는 나이기도 하고 당신이기도 할 거'라고 작가는 책머리에 썼다. 사람들 속에 묻혀 있어도 늘 사람이 그리웠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의 그늘에서 한 발 물러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절의 작가는 퍽이나 푸르렀을 것이다. 세월에 흔들리며 멀미를 할 때마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편하지 않은 느낌을, 백태가 낀 듯 선명하지 않은 관계를 웩웩 토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제 사람이 있는 그 자리의 풍경을 겉에서 그리지 않는다.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전화통만 바라보고 있던 J는, 저만큼서 자기를 부르는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는 딸아이는 탁자 위의 화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 화병에 꽂힌 꽃 이름이 뭐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깟 꽃이름은 알아서 뭐 할 거니? 그 말이 새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J는 겨우 참았다." (p.229)

 

한낮이 되어도 추위는 풀리지 않았다. 겨울 추위가 코끝에 걸려 대롱거리는 동안 나는 잠깐 동안 까무룩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삿짐 사다리차의 요란한 기계음이 윙윙 떠도는 듯하다. 서둘러 떠나던 이삿짐차와 그 뒤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딸의 팔을 잡아 끌 듯 낚아채어 승용차에 태우고는 부릉 떠나버린 이름도 모르는 여인. 그 자리에는 이제 아련한 잔상만 남아 나뭇잎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더이상 사람 풍경을 그리지 않는 작가와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나와 과거로부터 또는 익숙함으로부터 탈출을 서두르던 어느 여인. 우수가 지났는데도  사람 풍경은 여전히 차갑고 쓸쓸하다. 메마른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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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부모가 된 사람들이 흔히 겪는 오류 중 하나는 자신의 아이에 대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이가 어렸을 때 잠자고 놀고 먹고 하는 일체의 모든 행동을 자신과 함께 하기 때문인데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그렇게 생각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또래집단에 속했을 때 아이의 모습이나 친하지 않은 외부 사람들에 대한 아이의 반응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이 가졌던 오래된 생각을 아주 오래도록 바꾸지 않는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자식에게도 "설마 내가 너를 모를까" 하고 운을 떼면서 예나 지금이나 자신은 자식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곤 한다.

 

하나뿐인 아들을 보면서 나는 이따금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 아들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라거나 '이건 내가 생각했던 아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걸'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몸으로 움직이는 걸 그닥 즐기지 않는 아들을 데리고 아파트 농구장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는데 내 예상을 깨고 아들은 너무도 쉽게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리 배웠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제는 아내가 6학년 담임이었던 김OO 선생님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졸업식 다음날 아내는 학교로부터 10만원의 장학금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담임 선생님께 문자로 보낸 모양인데 그에 대한 선생님의 문자 메시지 답변은 이러했다.

 

"어머니 문자 감사드려요. 오늘은 정말 정신없이 보냈고 아이들도 다 재우고 나니 이제야 여유가 생겼네요. 부족한 게 많은데 인사를 받자니 부끄럽네요. OO이... 잊지 못할 제자가 될 것 같아요. 좀 더 살갑게 다가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 OO이에게 이 말 전해주세요. 제가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은근히 의지할 수 있었던 학생이었다고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김OO 드림."

 

늘 철부지 어린 아이인 줄만 알았었는데 학교에서는 제법 의젓한 학생이었나 보다. 앞에 나서는 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아들이 학급 부회장을 했던 것도 의외의 일이었지만... 자신의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을 알아간다는 건 매번 놀라운 경험이다. 선생님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아들의 다른 모습을 하나 더 발견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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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자란다 ㅡ라니까...요!^^

꼼쥐 2016-02-21 14:1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마냥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우민(愚民)ngs01 2016-02-20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죠 꼼쥐님 부모님도 꼼쥐님하고 같으셨을 듯 합니다.

꼼쥐 2016-02-21 14:15   좋아요 1 | URL
아마 그러셨겠죠.
아이를 통해 한 인간을 천천히 알아가는 느낌입니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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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든지 싸움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입니다. 그게 말싸움이든 주먹다짐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지요. 싸움이란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안 볼 사람이라면 몰라도(설사 그런 사이라고 하더라도 싸웠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게 마련이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보아야만 하는 관계라면 싸움은 더더욱 피해야만 합니다. 예컨대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싸움이 벌어졌다면 가능한 한 빨리 사과를 하는 게 상책이지요. 그러나 일단 저질러진 싸움은 두 사람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앙금을 남기게 마련인 듯합니다. 서로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했다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옛말은 그닥 신빙성이 없는 말인 듯 들립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며칠 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말싸움을 한 탓에 하루하루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요. 연휴 다음주라는 특성도 한몫 했겠지만 말입니다. 혼자 잇는 시간에 말싸움을 하게 된 경과를 차분하게 되짚어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그저 한 번 웃고 지나갈 일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요. 도시에서 산다는 건 마음의 칼끝을 날카롭게 벼린 사람들이 호시탐탐 적을 찾아 헤매는 전쟁터와 같은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요. 불편한 것 투성이인 여행지에서는 마치 다들 배려와 관용의 화신인 양 행동하게 되니 말입니다. 살아 있는 관음보살이라고 해도 믿을 판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들도 일단 도시의 일상으로 되돌아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곤 합니다. 여행지에서의 모습은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게 되지요.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 거리의 변하지 않는 풍경 속에는 이 도시 사람들의 변하지 않은 마음도 남아 있을 것이다. 단지 이제 이방인의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이 도시로 돌아왔나 보다." (p.392)

 

저는 이따금 여행과 일상의 중간쯤에서 평생을 살 수는 없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이사하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말이지요. 그가 쓴 에세이 <먼 북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던 것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작가가 너무도 부러웠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루키처럼은 아닐지라도 여행작가 김남희의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는 저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작가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을 비롯하여, 스리랑카, 태국의 치앙마이, 라오스 루앙프라방 등의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현지인처럼 슬렁슬렁 200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때의 순간을 마치 일기처럼 기록한 '생활여행자' 김남희의 일상입니다.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산다는 것은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일의 은유 같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몰입해본 사람은 안다. 그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발리에서 시간은 넘치도록 충분하다. 선물처럼 공짜로 주어졌다. 이 시간을 잃어버린 내 육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삼고 싶다." (p.98)

 

제가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글은 몇 글자 되지도 않고 총천연색의 사진이 '나는 이런 곳도 다녀왔노라' 한껏 자랑하는 듯한 여타의 여행기와는 달리 작가는 현지에서 살면서 자신이 느꼈던 심정을 책에 소박하게 담았기 때문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말이겠지만 '인간중심적'이라는 말은 제게 한때 선명한 인상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없던 정도 갑자기 생겨나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정이 철철 흘러넘칠 것처럼 느껴졌었지요. 그러던 것이 어느 날 '만약 이 말이 자연의 입장에서 쓰여진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예전의 느낌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오만한,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말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살고 잇는 이 행성의 아름다움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다양한 생명의 공존을 첫 번째로 댈 것이다. 그 무수한 생명체들은 이제 '멸종위기종'이라는 말이 무감각하게 들릴 정도로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루에 한 종의 생명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멸종위기종'이 되지 못해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저 돌고래들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p.118)

 

흔한 말로 '차별'과 '다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생활의 편리함만을 따진다면 우리나라는 작가가 여행한 그 어느 곳보다도 뛰어날 것이기에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는 못 느끼겠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당연한 듯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먼 곳을 찾아갑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는 여행에 관한 글도 좋다. 여행을 떠나 길 위에서 읽는 여행에 관한 글도 좋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막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그때 읽는 여행에 관한 글이다. 내 몸에 마지막 도시의 바람 냄새가 남아 있고, 미처 풀지 못한 짐이 한쪽에 쌓여 있고, 배낭에는 먼 도시의 이름을 단 비행기 짐표가 붙어 있고, 돌아왔다는 것조차 알리지 않아 전화는 울리지 않고, 내가 이곳도 아니고 저곳도 아닌, 떠나온 곳과 돌아온 곳 사이에 서 있는 듯한 그런 순간에 읽는 글들." (p.253)

 

오늘은 24절기 중 두 번째 절기인 우수(雨水)라는군요. 따뜻한 남족 나라에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에도 곧 날씨가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겠지요. 눈이 녹아 비가 되는 이 즈음이면 말이지요. 남과 북은 여전히 쌩쌩 찬바람이 불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 더욱더 부채질을 해대겠지만 계절은 여전히 시기에 맞춰 찾아오려나 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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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어제 졸업을 했다. '벌써 졸업인가' 싶기도 하고 '많이 컸구나' 대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떨어져 지내는 탓에 크고 작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여간 큰 게 아니었기에 지난 설 연휴 동안 나는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겠노라' 철석같이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나는 화요일 밤에 부랴부랴 전화를 하게 되었다. 전화를 받은 아들에게 나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몇 번이나 했던지...

 

아들의 졸업식에는 아내와 장인 장모님이 참석했었나 보다. 졸업식이 끝나고 한정식집에서 다 함께 외식을 한 모양인데 아들은 기분이 좋았던지 내가 어제 저녁 전화를 했을 때 사뭇 들뜬 목소리였다. 나도 속물 근성이 다분한 여느 아빠와 다르지 않아서 아들에게 넌지시 물었었다. 어떤 상을 받았느냐고 말이다. 다른 학교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들의 말로는 '1인1상'이란 게 있어서 누구나 하나씩의 상을 기본적으로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한 반에 3명씩 선정하여 졸업식 전에 상을 수여했다고도 했다. 자랑질로 들리겠지만 아들은 그 자리에서 경기도지사상을 받았다고 했다.

 

흐뭇한 마음에 당연히 부상도 있었겠거니 생각하여 상품이 뭐였느냐 물었더니 달랑 상장만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원상을 비록하여 그곳에서 상을 받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단다. 나는 아들에게 "야, 그거 너무했네. 하다못해 문화상품권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했더니 문화상품권을 받은 학생은 딱 한 명 있었다고 했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상품이 꽤 많았었다. 주로 문구류나 사전, 장학금이 다였지만 그걸 받아든 아이들은 얼마나 뿌듯해 했던지... 6년 개근상, 6년 정근상, 1년 개근상,우등상 등을 교장 선생님과 그 지역의 유지로 초대된 사람들에 의해 학생들에게 수여되었다. 그 당시에는 졸업장을 담는 둥근 원통 케이스가 있었는데 상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그 케이스와 꽃다발을 눈에 띄게 들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곤 했었다. 나는 그때 노트 여러 권과 영어사전, 한자사전, 장학금 등을 부상으로 받았던 것 같다.

 

좀 살만해진 요즘은 아이들도 부상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올해 초였던가. 아들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을 받았을 때도 부상은 USB메모리가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만 해도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상장만 받는다는 게 왠지 섭섭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뭐라도 좀 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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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8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드님 졸업식 축하드립니다!

꼼쥐 2016-02-19 15:1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아들이 축하를 받아야 하는데 제가 축하를 받는 기분이군요. ㅎ

[그장소] 2016-02-18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아드님~졸업 축하드려요~^^

꼼쥐 2016-02-19 15: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6-02-18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견한 아들이네요. 축하합니다. 우리 땐 국어사전인 경우가 많았지요. 도서상품권이라도 부상으로 줬으면 더 좋았을 거 같습니다ㅎㅎ

꼼쥐 2016-02-19 15:13   좋아요 2 | URL
오늘 학교에서 스쿨뱅킹통장으로 장학금 10만원을 보내줬다고 하더군요. 부상의 차원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딩 2016-02-18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꼼쥐 2016-02-19 15: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우민(愚民)ngs01 2016-02-18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이래저래 생색들만 내고 지 돈 쓰기를 싫어하지요. 옛날에는 그래도 동네 유지쯤 되면 체면치레라도
자신의 돈을 썼는데 도지사상이면 판공비도 많을텐데 판공비 뜻도 모르고 지 주머니 채우기 바쁜 것은 아닌지...
있는 것들이 베풀어야 살기가 나아지는데 안타깝네요!

꼼쥐 2016-02-19 15:16   좋아요 1 | URL
저는 초등학교(저희 때는 국민학교였지만) 졸업합 때 라이온스 클럽에서 장학금을 받았었는데 그때는 졸업식에 참석하는 유지분이 몇 명이냐에 따라 상을 받는 인원도 달라졌던 것 같아요. 대개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독무대였지만.

우민(愚民)ngs01 2016-02-19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국민학교 세대입니다. 1인1상은 그런 점에서 좋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찾아보면 잘 하는 것이 하나쯤 있으니까요!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죠.
 
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지음 / 박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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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약점이나 치부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이유도 없이 괜히 화가 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 숨김 없이 내보이는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데 정작 그것을 읽는 내가 마치 내 일인 양 화가 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하고 묻겠지만 사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약점을 적당히 가리고 살짝 내비치거나 조금만 힌트를 준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굳이 시시콜콜 다 까발려서 자신의 이미지만 깎아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작가와 친밀하다거나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독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다.

 

최근에 알게 된 김현진 작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육체 탐구 생활>은 그녀가 쓴 책 중 내가 읽은 두 번째 작품에 불과하지만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해 작가의 문학적 재능이 덜 부각된다거나 작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독자가 있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드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솔직함이라는 게 때로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거니와 젊은 사람의 치기 어린 반항, 또는 세상을 향한 삐딱한 시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작가 자신이 떠안아야 하는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화내야 할 때 화낼 줄 모르고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모르는 불균형한 어른이 되면서 내 영혼은 몸에서 달아나는 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모멸과 슬픔에 맞서 싸우지 않고 천장 어디쯤에서 남처럼 자기 몸을 쳐다보면서,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다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불로 지지듯 들고 일어나 어제 일처럼 쿠킹호일 구기듯 마음을 구겨버리면 술을 찾아 사고를 저지르고 후회한 게 지난 10년이었다." (p.83)

 

이 책에는 그닥 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작가의 지난 삶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책은 50대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녹즙 배달을 하던 시기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서둘러 화장하고 유골함이 엄마와 함께 대구로 향할 때 자신은 집에 남았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엄마는 유골 일부를 청국장통에 남겨두고 가셨는데 작가는 자신이 마련한 예쁜 통에 유골을 옮겨 담고 빈 통을 헹구는데 물 위에 뜨는 유골을 차마 하수구에 버릴 수 없어서 물과 함께 마셨다고 한다. 역시 도발적이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육체를 제공한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육체가 걸어온 길을 더듬는다.

 

생활에 지쳐 자학하듯 살았던 이야기며, 사랑으로부터 늘 피하고 도망치기만 했던 지난 날이며, 그 과정에서 만났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길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비해 그녀가 들려 주는 이야기는 50년대 피란민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파란만장하기만 하다.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로 피폐하다. 30대 아가씨의 삶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냉정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중의 일부는 작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없는 발톱을 일부러 드러낸 채 악다구니를 썼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연애 경험담(2.사랑이라는 '불완전'명사)과 새벽에 녹즙을 돌리며 낮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3.파란만장 미스김)와 그녀가 참가했던 농성장과 가슴 아픈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그런 점이었다. 우리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 모델을 보고 성욕을 느끼거나 섹시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파란만장한 개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쓴 작가의 글이 그것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끔찍하다고 느껴진다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 자명한 일. 그것은 작가의 재능과는 하등 무관한 일일 터였다.

 

"까마득한 옛날, 고등학교 그만두면 모두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가출하고 담배 피고 신나 불고 그런 애들이 된다고 다들 생각할 무렵 교장과 싸우고 싸우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운 것부터 시작해서 왜 그렇게 사느냐 하고 잔소리 들을 일이 서른 먹을 때까지 참 많고도 많았다. 삐딱한 글도 많이 썼고, 팔리지도 않는 삐딱한 책들도 많이 썼고, 부르는 데가 있으면 가서 삐뚤어진 이야기를 잔뜩 해댔다. 물론 이건 피곤한 짓이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관심병이라 한다면 그 또한 맞는 이야기다." (p.277~p.278)

 

어린 시절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면 과도할수록 가난이나 삶의 고통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궁리하기보다 고통에 견디는 법을 먼저 익힌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하지만 고통이 더 이상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는 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뻔한 생각을 했더랬다. 작가의 지난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 말이다. 작가가 리영희 선생님의 병문안을 갔던 이야기를 이 책의 끝에 실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육체 탐구를 마치고 영혼의 탐구를 새로이 시작했는지도... 아무튼 그녀의 앞날에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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