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백시나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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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연작시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20수 중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유배지에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정약용의 마음을 시에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支離長夏因朱炎(지리장하인주염) 汁汁焦衫背汗沾(즙즙초삼배한점)

灑落風來山雨急(쇄락풍래산우급) 一時巖壑掛氷簾(일시암학괘빙렴)
不亦快哉(불역쾌재)

 

지리한 긴 여름날 폭염에 시달려서

등줄기 땀에 젖어 베적삼이 척척한데

상쾌한 바람 건듯 불어 산비가 쏟더니만

한꺼번에 벼랑 위에 얼음발이 걸렸구나.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마음을 비우는 지혜' 중에서, 정민)

 

시라는 게 묘한 구석이 있어서 반복해서 읽다 보면 한 폭의 그림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름다운 곡조의 노래가 되기도 한다. 행복한 순간으로 '뿅' 하고 순간이동을 한다고나 할까. 시에는 그런 힘이 있다. 예컨대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읽어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샤갈의 유명한 그림 '나와 마을'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할지라도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고 꿈 속에서 보았던 어느 마을이 떠오르는 것이다. '쥐똥만한 겨울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피는 풍경' 말이다.

 

오늘 아침 집에서 백석의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들고 나왔다. 한 손에 시집을 그러쥔다는 건 가을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뜻이다.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내게는 그렇다. 말하자면 나는 사계절 중 가을에 주로 시를 읽는다는 얘기가 된다. 아침에 집을 나서려는데 옷깃을 파고 드는 소슬한 바람에 불현듯 백석의 시가 생각났던 것이다.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생략)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 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생략)

 

평론가 김현은 백석의 시를 기려 '한국 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평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석의 시는 그가 쓴 다른 어떤 시들을 읽어보아도 시에서 그려지는 다양한 풍경과 이미지들이 저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가 쓴 언어는 마치 붓의 터치인 양, 짤그랑거리는 소리의 재현인 양 읽혀진다. 그런 까닭에 나 같이 시에는 문외한인 사람도 시 한 수에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샤갈이 그린 행복한 풍경 속에 온전히 머물렀던 것처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이 시를 읽으면 나도 따라 거나하게 취하여 아름다운 나타샤를 그리워하고, 그리움에 술기운이 깊어지고, 어느 순간 눈길을 뚫고 달려 온 이국의 소녀가 내 귀에 대고 고조곤히 이야기할 것만 같다. '에잇,더러운 세상' 나타샤와 나는 흰 당나귀 등에 올라 앉아 세상을 향해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붓고는 순백의 눈이 쌓인 마을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눈이 내린 마을에는 어쩌면 행복을 그리는 화가 샤갈도, 샤갈을 노래한 시인 김춘수도 먼저 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을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편의 시를 읽는 동안에는, 백석의 시집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한 이 가을에도 소복소복 흰 눈이 내리고 방울소리 울리며 꿈길을 향해 걸어가는 당나귀 발자욱 소리가 자박자박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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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제쳐두었던 지진에 대한 공포를 다시 일깨운 건 어젯밤 8시 33분의 여진이었다. 따로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지만 8시 33분이라는 시각은 최근에 발생한 지진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듯 보였다. 저녁 밥상을 물린 후 느긋하게 쉬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그 시간에 지진은 마치 장난기라도 발동한 듯 '흠, 다들 아무것도 모른 채 널부러져 있군. 심심한데 어디 한 번 사람들이나 놀래켜줘 볼까.' 하고 잊을 만하면 한번씩 지축을 흔들어놓는 것이다. 그때마다 무방비로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집을 뛰쳐나갔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이거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냐?'하는 표정으로 화풀이 대상을 찾곤 하였다.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지진이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이라도 한마디 던질 리 만무하지만 말이다.

 

무방비의 사람들을 놀래키는 건 비단 지진뿐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북한이, 때로는 일본이, 때로는 미국이 '서프라이즈~~!!'하면서 느끼한 표정으로 국민들의 심기를 긁어놓기는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가끔일 뿐이고, 우리나라 정치권은 시도 때도 없이 '서프라이즈'를 연출하는 통에 당하는 국민들은 이제 식상하다 못해 지겨운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어제 반기문 띄우기에 나선 정부 여당의 뜬금없는 행동만 하더라도 정치인들의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서프라이즈'의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0여 년을 지하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정부 여당은 저승에 있던 사람을 불러내어 이승의 사람을 다스리는 게 어떻겠느냐 묻고 있는 셈이다. 이 나라에 아무리 인재가 없기로서니 명계에 있던 사람을 국가 지도자로 삼자는 발상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서프라이즈' 차원에서 웃자고 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센스가 없어서야 어디...

 

이제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서프라이즈 퍼포먼스'는 제발 그만 보았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지진으로 인한 '서프라이즈'에 지쳐가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식상한 '서프라이즈'를 보면서 웃어줄 여력은 없기 때문이다. 한·일간의 위안부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불가역적'이라는 생뚱맞은 단어를 들고 나왔던 외교부의 애교도 이제는 지겨운 것이다. 이 좋은 계절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정치인들의 '서프라이즈'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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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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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후유증은 비단 육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어서 어수선했던 긴 연휴를 보내고 나면 육체의 휴식과 더불어 정신의 안정을 갈구하게 된다. 예고도 없이 불쑥 끼어들었던 어떤 상념들이 머릿속의 여러 공간을 가득 채운 까닭에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명절이 지나고 나면 세 살배기 꼬마들이 저질러 놓은 난장판의 집안을 정리하듯, 나는 내 머릿속의 상념과 어질러진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여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류하고 잊어야 할 것과 오래도록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을 따로 간추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말하자면 그것은 머릿속 대청소인 셈인데, 방청소에 빗자루와 걸레가 필요한 것처럼 머릿속 청소에도 도구가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흩어진 생각을 갈무리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돕는 데에는 인문학 서적만 한 게 없다는 한결같은 생각을 나는 지금껏 신줏단지처럼 믿어왔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살피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내가 이번 명절에 선택한 책이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동시에 다독가로도 널리 알려진 장석주 작가의 글은 공들여 빗어 넘긴 여인네 머릿결처럼 단아하고 정갈하였다. 사계절 동안 책을 읽고 자신이 읽었던 책과 함께 빚어낸 사색의 향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깊이 빠져들게 한다. 혹여 다치거나 상처받았을지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조용히 위무하는 듯도 하였다.

 

"대개의 삶이란 결핍이고 누추함 자체인데, 그 결핍을 채우고 누추함을 벗으려는 욕망 때문에 책을 읽는다. 이때 욕망은 나로서 동일성을 유지하고 존속하려는 본성과 더 나은 '나'로 충만해지려는 열망의 합이다. 앎, 지적인 발견, 창조적 생각들의 발현을 위해 책을 읽을 때, 책은 숨은 욕망들을 비춰주고 성찰적 사유로 이끈다. 어떤 책들은 살아 있는 기쁨과 행복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책을 읽는 일은 지복이다." (p.451)

 

'글쎄, 그럴까?' 하는 의문은 책의 어느 문장에나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사유라기보다 건강검진에서 간과하고 빼놓은 영혼의 검진을 다시 하는 듯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하나 묻고 대답한다. 작가가 읽었던 책은 문학, 철학, 미술, 영화, 건축, 여행, 종교, 경제, 야구, 축구 등 분야가 너무나 다양하여 내 어설픈 지식의 발걸음으로는 감히 따라갈 엄두를 내기 어렵지만 나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음을 떼고 그때마다 "휴우!" 하고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억척스러운 현실은 인간을 얼마나 메마르고 혼탁하게 하는지...

 

"깨어 있는 것은 불면을 앓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싼 밤이다. 그 밤에 불면을 앓는 사람들은 벌거숭이가 되어 표류한다. 움직이지도 않은 채 어디론가 흘러가는데, 흘러가면서 존재의 에너지를 방전시킨다. 마침내 불면은 우리의 의식을 거의 찢어놓는다. 불면이 남기는 것은 육체라는 고독의 응고, 그 속에 깃든 정신의 피폐함이다." (p.153)

 

작가는 책에서 130여 권의 책을 읽고 300권에 이르는 책을 언급한다. 작가에게 책은 그야말로 사유의 통로인 동시에 삶의 귀착점인 셈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책은 어수선한 생각들을 거듬거듬 주워 모으는 도구이자 흐느적거리는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는 지주대로서의 역할만 겨우 할 뿐 우리가 사는 세상 너머의 세상, 말하자면 고차원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출입증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내가 작가를 부러워하는 까닭도 그래서이다.

 

"나는 양식을 구하듯 책을 구해다 읽고 문장 몇 줄씩을 끼적이며. 음악, 바다, 지평성, 아삭하는 소리로 씹히는 사과들, 이빨 아래 물컹하게 으깨지는 붉은 토마토들, 풍부한 즙이 턱 밑으로 흘러내리는 오렌지들, 고요히 대지를 두드리는 봄비, 해마다 돌아오는 여름의 눈부심, 신록이 주는 기쁨과 위안, 내 안의 단단한 얼음마저 녹이는 사랑하는 이들의 미소들 속에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수액과 꿀을 구하며 '고독의 상상계' 속에 한참 더 머물 참이다." (p.348~p.349)

 

우리가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까닭은 모름지기 자신이 가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일 터, 살면서 가장 소원해야 할 일은 언제든 자신이 가는 길을 훤히 내다보는 일일 것이다. 명절에 듣는 가슴 아픈 소식들, 이를테면 '안골 살던 김아무개가 죽었다더라.', '샘말 살던 오아무개가 아프다더라'하는 말에도 마음이 심란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미망과 고뇌 속에서 헤매고 있음이다. 마음 속에서 불면의 등불 하나 밝히지 못한 까닭이다. 소원을 빌기 전에 마음 속 사유의 밭을 먼저 일굴 일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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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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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문의 답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뉴스가 되느냐 덜 되느냐. 그뿐이죠."    (p.131)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유부남인 어느 유명 감독과 여배우와의 스캔들 말이다. 그게 어떤 계기로 프라임 뉴스에 올랐고 세간에 화제가 되었는지 나는 도대체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뉴스를 본 사람들은 마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도 되는 양 만나는 사람들마다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일은 뉴스의 중심에 섰던 당사자들에겐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일 뿐이고,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말이다. 다만 그들이 일반인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사건이 있기 전부터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들의 행위가 옳았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며칠씩이나 TV 뉴스에 오르내릴 만큼 중대한 범죄였던가? 하는 데에는 머리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뉴스거리가 차고 넘쳐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우리의 관심을 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사건은 모름지기 따로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것은 사건의 중대성보다는 관심의 지속성이나 SNS를 통한 파급력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은 위와 같은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소설이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도 우리들처럼 뉴스에 몰입하고, 이슈에 열광한다면서 "냄비근성은 비단 한국인만의 얘기도 아니고 그냥 본능적인 우리 모습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다만 그녀는 "뉴스를 소비하거나 이슈에 휩쓸리면서도 개개인이 그것을 의식했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물론 사건은 늘 일어나지만, 이 주기라는 것은 사회를 뒤흔들 만한 '이슈'가 됨을 말한다. 이슈가 되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신문에 실려야 한다. 일주일 내내 신문 1면을 차지할 수 있다면 명예의 전당에 들어야 한다. 50일 이상 그것이 지속된다면 타임캡슐에 넣을 만한데, 아직까지 그런 사건은 없었다."    (p.201~p.202)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 '노시보'이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지금은 부동산회사에서 전화로 땅을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전화 상대와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그는 이슈가 될 만한 뉴스를 끝없이 검색하고 소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2의 달'이 출현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두 번째 달에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였고, 모든 이슈는 달에 집중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달'이 출현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나 여러 사건 또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중력을 거부하는 '무중력자'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 것도 '제2의 달'의 출현과 무관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잠시 세 번째, 네 번째 달이 일정한 주기로 생겨나면서 그동안 급속도로 퍼지던 '무중력 열풍'은 빠른 속도로 식어만 갔다. 이와 같은 달의 '번식'은 세상 사람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던 게 사실이어서 고시공부를 하던 '시보'의 형이 요리사를 꿈꾸게 되고, 전업주부였던 '시보'의 엄마는 달을 구경하러 간다며 가출을 하였고, 집안일에는 일체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아버지도 점차 가출하기 전의 엄마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뿐만 아니었다. 돈 버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직 소설가를 꿈꾸며 게으른 생활을 이어오던 '시보'의 친구 '구보'도 어느 날 대학 선배와 함께 창업을 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과 우주 관련 사업에 집중했고, 가출을 했다 돌아온 '시보'의 엄마 또한 우주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한 미용실을 차리기에 이르렀다. '시보'네 회사도 달나라 납골당을 분양하면서 이슈에 편승했다. 그러나 보름을 주기로 달이 늘어나자 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익숙함에서 오는 권태로 빠르게 변해갔다.

 

"난무하는 달의 이미지 속에서 나는 종종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에는 모든 지구인들이 하나의 달을 바라봤을 텐데. 지금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달이 다르며, 동쪽과 서쪽의 달이 다르고, 위층과 아래층의 달이 다르다."    (p.229)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현대인이 겪는 여러 증후군들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력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종편에 출연하는 쇼 닥터를 숙주 삼아 있지도 않은 여러 질병들을 우리는 오직 상상 속에서 그것들을 만들어 내고, 사실 관계를 규명할 것도 없이 여러 뉴스에서 퍼날라지는 동안 별 필요도 없는 약들을 처방받아 이유도 모른 채 복용하는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 가상을 구현하는 증강현실의 '포켓몬 고'처럼 우리는 어쩌면 있지도 않은 가상을 현실에서 쫓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소설 속의 분화된 달이 우주 쓰레기로 밝혀지는 것처럼 우리가 앓는 여러 증후군들도 언젠가 일상의 흔한 일들로 말해질 날이 결국 오고야 말 것이다. 이슈는 출처의 사실 규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슈화 시키는 사람들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국정원의 직원이 사실도 아닌 기사를 끝없이 리트윗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대선 후보자로 나선 누군가가 또 하나의 달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조금 허황된 말이지만 일단 믿고 보자는 식의 무뇌아는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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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그야말로 결과를 알고 있는 자작극인 셈이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제 스스로 걸려드는 웃지 못할 일도 겪게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는 감쪽같이 속는 것이다. 그러다 이따금 지진이나 홍수, 폭설이나 가뭄 등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겪고 나면 '아, 내가 바보처럼 또 속고 말았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열에 아홉은 그마저도 깨닫지 못하지만 말이다.

 

어제 경주에서 있었던 강력한 지진은 그곳으로부터 꽤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강한 진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첫 지진이 있었던 시각에는 밖에 있었던 탓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집 안에서 맞았던 두 번째 지진의 충격은 가히 사람들을 놀래키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것이어서 아파트 전체가 휘청 하는 느낌이 들었고,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공포는 생각보다 더 심했었다. 나는 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데 진동이 느껴졌던 그 순간 '대피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그마저도 귀찮아 TV를 켜고 금세 자리에 앉고 말았다.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과 아내에게 잠시 통화를 했고, 허둥대며 지진 소식을 전하기에 바쁜 방송 관계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평온한 듯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멀쩡한 몸으로 일어나 여느 날처럼 아침 운동을 나갔고, 먼 산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 소리에 '혹시 지진 때문에?'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고,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 몇 알을 주워 부지런한 청설모 커플에게 던져주었다.

 

추석이 내일 모레, 바빠 보이는 사람은 오직 정치인들뿐이고 귀성을 준비하는 사람들 얼굴에는 왠지 모를 피곤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면 지진에서 얻은 깊은 깨달음의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 일과를 묵묵히 해내고 있다. 내일부터 이어지는 추석 연휴와 생각지도 못했던 지진의 공포. 오늘 만났던 사람들마다 지진과 추석의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게 있었다. 이 모든 게 허방을 짚는 일일지언정 한가위 명절은 행복하게 맞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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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9-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꼼쥐 2016-09-15 08:14   좋아요 0 | URL
초딩 님도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 가족 친지분들과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