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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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얘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마냥 철부지 어린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피부로 체감하는 순간 말이다. 그렇게 아이와 부모는 차이를 좁혀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물론 다른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자유학기제 덕분인지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 무작정 놀기만 하는 듯했고, 이를 지켜보는 아내와 나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놀아제끼면서도 하나 다행인 점은 어떤 책이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아내도 말했었지만 우리집에서 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들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었다. 그러나 나도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한민국의 부모 중 한 사람인지라 내심 '저렇게 놀아도 되나?'하는 근심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랬던 아들이 지난 주말에 아내에게 털어놓았던 말은 꽤나 진지했고, 아무 생각도 없는 어린애라는 편견을 나와 아내의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아들의 말인즉슨 이랬다. 같은 반 친구 중에 수업이 끝난 평일 오후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PC방에 가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PC방에서 쓰는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PC방에 가는 횟수를 줄이고 싶어도 습관이 되어 그게 쉽지 않다고 하소연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그 친구의 고민을 들은 후에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친구가 지켜야 할 하루하루의 일과표를 꼼꼼히 작성해주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 일과표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PC방에 가는 횟수도 줄이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아들은 말했다. 그 친구가 일과표를 얼마나 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이래라 저래라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부모의 말과 친구에게서 듣는 조언은 분명 그 친구에게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었을 터였다. 그 아이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방치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들과 나누었던 그날의 대화는 그 친구의 인생을 반전시킬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며칠 전 다 읽은 조정래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2>에도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맡고 있는 이소정 선생님은 자신의 반 학생 중 한솔비가 며칠째 결석을 하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한다. 솔비의 오빠가 가출을 해서 엄마는 아들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솔비 또한 집에 꼼짝 말고 있으라는 엄마의 말 때문에 밥도 굶은 채 학교도 가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이소정 선생님은 먹을 것을 사 들고 솔비의 집을 찾는다. 중학교 2학년인 솔비의 오빠는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공부만을 고집하는 엄마의 지나친 교육열에 반발하여 결국 집을 나갔다고 했다. 솔비의 오빠 한동유는 자신이 존경하던 유명 만화가를 찾아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떠돌다가 이소정 선생님의 설득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풀꽃도 꽃이다2>에는 1권과는 달리 아이들의 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최은숙은 알바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나중에 장사를 하고 싶어 하고, 대장간을 하는 같은 반 친구 아버지를 본 후 대장장이가 되고 싶어 하는 최윤섭,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대안학교로 전학을 온 원누리, 원명준 남매, 집안이 가난하여 학원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하겠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해가며 공부를 하는 신석우 학생 등 다양한 모습이 전개된다.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p.90)

 

소설은 대한민국 과외1번지로 통하는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을 그리면서 끝을 맺는다. 어찌보면 달리 대안이 없다는 서글픈 결말인지도 모른다. 대학입시와 취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경쟁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그 이전의 모든 교육은 동력을 잃는다. 수저 계급론으로 대변되는 불공정 경쟁의 만연은 대한민국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자 국가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자녀의 대학이 결정되는 사회, '노력'이 곧 '노오력'으로 변질되는 사회에서 교육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교육이 단지 일부 계층의 교양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날이 차다. 공정한 경쟁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교육의 미래는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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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쌀쌀했던 날씨는 다소 누그러져 포근했다. 끄물끄물 어두웠던 하늘은 오후가 되자 희끄무레 개었고 변덕스런 바람이 종일 불었다. 바람에 낙엽이 지고 있다. 가을바람에 몸을 맡긴 낙엽이 보도 위를 뒹군다. 시간은 정지된 화면을 쉴 새 없이 덧칠하며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의 수고로는 어림도 없을 일들을 시간은 척척 해내는 것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풍경 속에 예전에 읽었던 시가 한 수 떠오른다.

 

물끄러미

           -나태주

 

흰 구름이 자꾸만

키를 높여가는

하늘 아래

 

염소 한 마리 고삐 매여

풀을 뜯고 있는

풀밭 위에

 

살그머니 다가가

몸을 눕혀본다

마음도 눕혀본다

 

나는 흰 구름을 바라보는데

염소는 풀을 뜯다 말고

나를 바라본다

 

물끄러미

서로.

 

홀로 외로웠거나 한동안 어둠 속에서 울분을 삭였을 사람들은 오늘 광화문광장으로 모인다고 했다. 누구에게는 하릴없는 넋두리일 수도 있는 그 외침은 그저 핑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외로웠던거다. 힘 있는 자들의 오만과 독선을 더이상 참아낼 수 없었기에 우리는 서로의 더운 입김을 시린 가슴에 더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쯤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로의 시선 위에 적선하듯 자신의 온기를 나누고 있을 터였다.

 

꼼꼼히 살피지 못한 잘못은 있었지만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그래서 자신도 피해자인 양 발표햇던 대국민 담화문은 그저 대국민 사기극에 지나지 않은 듯했다. 용기 있는 정치인이라면 어떤 불리한 조건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비겁하고 부끄러운 정치인의 모습을 2016년의 가을에 보고 있는 셈이다. 가을이 가고 곧 겨울이 오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시련의 계절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추위를 서로에게 향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이겨내야 한다. 물끄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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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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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만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만큼 온 국민의 관심을 꾸준히 받는 사안도 드물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제도는 수시로 바뀌어 왔던 게 사실이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제도의 문제점은 꾸준히 지적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쏟아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웃기는 노릇이지요? 대한민국에 교육 전문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그 오랜 시간 동안 개선을 해왔는데 어느 곳 하나 표가 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을 위한 개선이 아니라 특정인을 위한 '개악'만 해왔는지도 모르지만.

 

최근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최모 여인의 딸 정모 양의 문제만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입시제도나 대학의 교칙까지 손을 본 듯한 모양새이니 그동안 왜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이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는지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나 또한 중학생 아들을 둔 대한민국 학부모 중 한 사람이다 보니 '교육'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관심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하여 조정래 작가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가 출간되었을 때 그 즉시 사서 읽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겨우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지금으로선 2권 중 제1권을 겨우 읽었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아직 2권을 마저 읽지 못한 처지에 이 책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는 건 좀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굳이 말한다면 '실망스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설 형식을 빌린 '대한민국 교육 실태 보고서' 또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실사례집'쯤으로 읽혔습니다. 예컨대 학부모와 선생님들의 공부지상주의로 인해 발생되는 청소년 자살 문제, 학교 내에서의 흡연, 왕따(또는 은따), 폭력 문제, 교권의 추락, 맹목적인 영어몰입교육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교육의 실상이나 사례를 단순히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설은 주인공 강교민의 학교에서 모의고사 성적을 복도에 게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교직 생활 15년차인 우리의 주인공 강교민은 '차별교육'에 반대하여 교장실로 직행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고등학교 동창인 유현우로부터의 상담 신청입니다. 중학교 3학년인 그의 아들이 공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제보였죠. 대기업 직원인 유현우는 일에 치여 바쁘고 그의 아내는 아들 지원이의 공부를 닥달하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엄마로 그려집니다.

 

강교민은 친구인 유현우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공부보다는 독서를 좋아하는 지원이를 다독이기도 합니다. 유현우의 아내 김희경은 지원의 누나를 이화여대에 합격시킨 후 지원이는 반드시 서울대에 합격시켜 판,검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러나 외우는 걸 싫어하는 지원이는 자신의 능력이 엄마의 바람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계획합니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강교민은 김희경을 설득하여 지원이를 공부 압박이 덜한 대안학교로 보냅니다.

 

아들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김희경은 동창인 최미혜에게 사정 얘기를 합니다. 이대에 합격한 김희경의 딸 때문에 기가 눌려 있었던 최미혜는 지원과 같은 학년인 자신의 딸 신예슬을 생각합니다. 지금껏 군말 없이 자신의 말을 잘 따르기는 했지만 이제는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키 때문인지 왠지 주눅이 들고, 혹시 자신의 눈을 피해 딴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합니다.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유명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로 신예슬은 빡빡했던 수학 과외로부터 풀려납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한편 강교민은 같은 교직에 있는 사촌 여동생 이소정의 도움 요청을 받고 그녀의 반 학부형을 대신 만나기도 합니다. 강교민의 반에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니는 배동기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땀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던 배동기는 일진의 괴롭힘을 참지 못하여 언젠가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싸움 기술을 갈고 닦습니다. 어느 날 일진 두 명을 쓰러트린 배동기는 결국 자퇴를 하게 됩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 사건의 충격의 강도도 매스컴들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매스컴들이 총동원되어 교육의 위기, 사회의 위기, 국가의 위기로까지 확대해 가며 숨이 가빴다. 그렇게 분위기가 고조되자 집권 세력에서는 정권의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급조해 낸 것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였다. 그 종합 대책의 핵심은 경찰력까지 동원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폭력을 더욱 강한 폭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 발상이었다." (p.360)

 

책에는 기간제 여교사에게 행해지는 중3 남학생의 성희롱 장면과 원어민 교사를 흠모하여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임신까지 하는 여대생과 이를 즐기는 원어민 교사들의 적나라한 멸시 발언도 등장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일 수도 있고, 설마 그 정도까지야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는 장면입니다. 1권은 그렇게 원어민 교사 포먼의 애를 임신한 남온유와 강제로 한국을 떠나게 된 원어민 교사의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오늘도 뉴스에는 온통 Sunsiri 아줌마 얘기 뿐입니다. 이제는 그녀의 조카와 유명 연예기획사로 뉴스의 초점이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욕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이 너무도 허술했고, 그녀에게 동조해서 개인의 영달을 꾀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욕심이 뒤엉켜 허술한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지금의 모습을 연출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육제도에 목매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다 먹고 사는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발상은 이제 일부 계층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건 1박 2일의 모토이기도 했지요. "나만 아니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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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맹하고 어이없는 해명이겠습니다만 요즘 저는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데에도 도통 집중을 할 수 없는 까닭이 모두 어수선한 시국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낮에 외국인 친구 한 명을 만나 점심을 먹는데 아니나 다를까 불쑥 Sunsiri 아줌마 애기를 꺼내는 바람에 낯이 뜨거워서 그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그 친구 얘기인 즉슨 어떻게 민간인 한 명에 의해, 그것도 막돼먹은 아줌마 한 사람 때문에 나라 전체가 좌지우지 될 정도로 국가 시스템이 형편없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고, 아무리 대한민국의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낮은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멍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저는 다만 '어쩌다보니...(Well, in the meantime...)'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 닥쳤을 때 제가 항상 되내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말이지요. 단순하지만 저는 그 말을 속으로 몇 번 되내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심감을 얻곤 합니다. 적어도 힘들어 보이는 어떤 일을 피하지는 않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일도 어찌어찌 하다 보면 반드시 끝이 보이곤 한다는 것을 지난 경험이 사실로 증명해주었습니다. 예컨대 뜨거운 여름 날 집안 대청소를 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지요. 그래서 질질 시간만 끌고 미루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두 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럴 때에도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쉬더라도 일단 시작하고 중간에 쉬자.' 하고 맘을 먹곤 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요? 그렇더군요. 일을 일단 시작하면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에 힘든 것도 참고 일에 매달리게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암튼.

 

대한민국 전체가 뒤숭숭한 요즘입니다. Sunsiri 아줌마도 귀국을 했고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조사를 받고는 있습니다만 하나를 들추면 또 다른 일이 딸려나오는 바람에 '도대체 끝이 어딘가? 끝이 있기는 한건가?' 의심이 들고, 그때마다 국민들 전체의 어깨는 한 뼘씩 축축 쳐지는 듯합니다. 국가의 동력이란 무릇 그런 것이지요.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가 있으면 국민들도 덩달아 힘이 나는 법이고, 제 잇속만 차리고자 몸을 움츠리고 국민들의 눈을 속이려는 지도자가 있다면 국민들도 따라서 사분오열 되는 건 시간 문제이겠지요.

 

그래도 끝은 있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가 자신의 모든 잘못을 시인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가장 빠른 해법이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선 그마저도 쉽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분노와 수치심은 더욱 커질 테구요. 돌이켜보면 Sunsiri Family에게 우리의 지도자는 얼마나 좋은 먹잇감이었겠습니까. 세상 물정이라곤 아는 게 없는, 세 살배기만도 못한 여인에게 크나큰 권력이 쥐어졌다는 걸 아는 순간 그 권력의 칼을 자신이 대신 휘두르면 세상 겁날 게 없겠다 생각했겠지요. 그렇게 광란의 칼춤이 시작되었던 것이구요. 2016년이 저물어 가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호는 좌초되기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입니다만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겠지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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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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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별도 없이 성급하게 왔던 계절이 또 서둘러 떠나려 하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아쉬움만 가득 남겨 놓은 채 말이다. 아쉬움은 늘 준비되지 않은 게으른 자의 몫으로만 남는다. 아파트 주변을 붉게 물들였던 벚나무잎은 그제 내린 비가 힘에 겨웠는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흩날렸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옛말도 있다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잔뜩 옹송그린 자세로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바람으로 가늠하던 가을의 결이 어느새 칼날처럼 매서워졌다. 시간의 흐름을 가을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계절도 없는 듯하다. 서서히 단풍이 드는 나뭇잎에서, 날카로워지는 바람결에서,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듯 보도 위를 힘없이 뒹구는 낙엽의 무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온몸으로 느끼지 않던가. 당나라의 명필가 구양순이 쓴 '추성부'(秋聲賦)에는 이런 소절이 있다. '바람의 결은 외로움에서 그리움의 톤으로 돌아눕고 그 기척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건 귀뚜라미와 잠자리. 귀뚜라미는 더듬이로, 잠자리는 대나무의 속청 같은 날개로 그 그리움의 감도를 때론 진하게 때론 옅게 조율한다.' 얼마나 멋진 문장인지...

 

앉아만 있어도 괜히 감상적으로 변하는 건 계절의 탓도 있으려니와 며칠 전에 읽었던 <숨결이 바람될 때>가 생각나서이기도 했다.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어린 딸과 아내를 남겨둔 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의 회고록인 이 책은 가을의 속절없는 애상처럼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 할 일은 명백해진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p.193)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인 폴은 레지던트 마지막 해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치료 후 기적적으로 복귀하여 얼마 남지 않았던 7년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지만 결국 그는 죽었다. 신경외과 전문의도, 추앙받는 교수도, 유능한 과학자도 그는 되지 못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22개월 만에 그는 세상과 이별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고자 고군분투했던 그의 노력은 이 한 권의 책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p.105)

 

폐암 판정을 받은 후 폴과 그의 아내 루시는 인공수정을 통하여 임신을 했다.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대신 남겨진 삶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리라 결심한 것이다. 보조침대에 누워 루시의 출산과정을 지켜보고 갓 태어난 딸을 힘겹게 안아보았던 폴은 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듯하다. 그가 연명치료를 거부한 채 죽음을 선택하던 날 그의 딸은 태어난 지 겨우 8개월이 된 아기였다. 아빠로서, 한 생명의 보호자로서 그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앗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아쉬움 속에 눈을 감았을까. 그가 어린 딸에게 남긴 메시지를 옮겨본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p.234)

 

화학요법으로 쇠약해져가는 몸과 가물거리는 의식을 부여잡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에는 22개월은 결코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미완성의 작품일 수도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 그의 아내 루시도 말하고 있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였을 것이다. 루시는 폴이 암과 사투를 벌이던 그 기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비록 지난 몇 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때로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였다." (p.256~p.257)

 

폴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내 루시는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다고 고백한다. 모든 사람이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죽음을 예약하기 전에는 그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다. '바람의 결이 외로움에서 그리움의 톤으로 돌아눕는' 이 계절이 오면 나 또한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물드는 단풍잎새에도, 마른 바람결에도, 푸르게 높이를 더하는 하늘가에도 내 슬픔의 물기가 촉촉히 젖어드는 것만 같다. 사랑을 하는 것도,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것도 어쩌면 내가 떠난 후에 그리움의 무게를 더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결국 한 사람이 살다 간 삶의 가치는 그리움의 무게에 지나지 않음이다. 날이 차다. 그럴수록 그리움은 깊어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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