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좋아하세요... - 미술관장 이명옥이 매주 배달하는 한 편의 시와 그림
이명옥 지음 / 이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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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읽는다'거나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시'는 저 멀리로 사라져버린다. '시'는 단순히 우리의 눈을 통하여 적당히 '스며들' 뿐이고 서서히 '중독되는' 것이기에 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시어를 보는 순간 우리는 뇌를 통하여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을 통하여 젖어들거나 숨을 쉬듯 세포 깊숙이 스며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설명할 수 없다.

 

단순히 단어와 단어의 결합인 듯 보이는 것은 '시'가 아니다. 시의 첫 행을 읽는 순간,멀고도 먼 과거의 어느 한 시절로 회귀하거나 고향 마을 어드메쯤을 배회하거나 동화 속 꿈길을 걷게 되는 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시'의 마법이다. 그러므로 '시'는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되었다가 눈 내리는 고요가 되었다가 산골 소녀의 맑은 노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를 어떻게 '이것이다' 하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미술관장 이명옥의 <시를 좋아하세요...>를 읽다가 그 옛날 내가 좋아하던 시집을 밤새 뒤적였었다. 윤동주, 정지용, 한용운,서정주, 김수영, 김남조, 기형도, 이성복, 프랑시스 잠, 로버트 프로스트... 세월이 한참 흘러 주름이 깊게 진 옛동무를 만난 듯 책에서는 구수한 곰팡내가 풍겨왔다.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시'를 잊은 채, '시'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것인가. '시'를 잊은 채 얼마나 많은 아픔을 위로받지 못하였던가.

 

"시 배달을 하는 동안 '시는 펜디멘토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나 자신도 몰랐던 나의 진짜 얼굴, 차마 말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감정들, 깊숙이 숨겨버린 그리운 기억들을 새롭게 끄집어내어, 그것을 다시 보고 느끼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p.6)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사비나 미술관의 관장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림 큐레이션'에서 더 나아가, '시 큐레이션'을 융합했다. 저자는 지인 중 한 사람에게 매주 한 편의 시를 배달하고 감상평을 주고받으면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떨 때 기뻐하고 괴로워하는지, 삶의 고민이 무엇인지, 위로받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랑하는 시와 그에 대한 감상평과 그에 알맞은 그림의 콜라보인 셈이다. 1장 '시가 처음일지도 모를 당신에게', 2장 '사랑, 시' 3장 '오직 나에게만' 4장 '삶에게, 죽음으로부터' 5장 '시를 더 좋아하게 된 당신에게' 마지막 장 '아주 특별한 두 사람에게'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에게도,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제겐 좋은 책과 평범한 책을 가르는 기준이밑줄긋기를 했느냐 아니냐로 결정되거든요. 저는 책을 읽다가 저와 생각이 같거나 공감하는 구절이 나오면 곧바로 밑줄긋기를 합니다. 제가 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부족해 포기한 문장을 책 속에서 발견했을 때도 역시 밑줄을 긋습니다. 밑줄긋기하고 싶은 책을 발견할 때의 제 기쁨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섞여 있어요.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것을 글에 완벽하게 담아내는 재능을 가진 이에 대한 찬사와 제 부족함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지요." (P.272)

 

이 책에 실린 28편의 시만 보더라도 시에 대한 저자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사실 시의 소개와 더불어 자신의 감상을 덧붙인 책은 많지만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만의 독특한 감상이나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획일적인 감상은 자칫 식상한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주목했던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저자는 비록 글에 대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는 있지만 미술을 전공한 분이 시에 대한 이해력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는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체감되는 것이기에 아무리 서툰 글솜씨라고 해도 그 깊이가 느껴지게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중독된 시 한 편은 다른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어 그렇게 스며드는 법이다. 그러므로 시는 아름다운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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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풀리고 베란다로 쏟아지는 햇살이 어찌나 좋던지요. 휴일을 맞아 한껏 게으름을 피웠던 나는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아무도 깨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죠. 그 바람에 아침운동도 걸렀고 깔깔한 입안을 찬물로 겨우 헹군 후 이른 점심을 겨우 먹었습니다. 거실을 반쯤 점령한 햇볕. 소파에 앉아 꼬박꼬박 졸던 나는 급기야 거실 한켠에 자리를 펴고 누워 필요도 없는 낮잠을 늘어지게 잤던 것입니다. 눈을 뜨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겨울 햇살.

 

나는 겨울 햇살의 유혹에 이끌려 밖으로 나섰습니다. 자신의 두 발로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가장 원시적인 이동수단인 걷기를 나는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먼 훗날 언젠가 나 또한 제 발로 걸을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오겠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나는 원없이 맘껏 걷고 싶은 것이죠. 찬 기운이 어지간히 사라진 적당한 바람과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마을 뒷산의 산길을 한 시간 남짓 걸었나 봅니다. 가벼운 산행에서 돌아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산길을 걷는 내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말은 '후안무치(厚顔無恥)'였습니다. 왜인지 알 수 없습니다. '두터울 후(厚)'에 '얼굴 안(顔)' 그리고 '없을 무(無)'에 '부끄러울 치(恥)로 이루어진 사자성어. 사전에는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름'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물론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말이죠.

 

오늘 나는 '후안무치'에 더하여 '후흑학(厚黑學)'에 대하며 말하고자 합니다. 아시는 분도 물론 있겠지요. 청조 말 이종오(李宗吾)에 의해 지어진 이 책을 나는 몇 년 전 신동준에 의해 번역 출간된 책으로 처음 접하였습니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신동준의 '후흑학'은 꽤나 두껍고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이종오가 말하는 '후흑'은 두꺼운 얼굴(면후·面厚)과 시커먼 속마음(심흑·心黑)의 합성어로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적절히 계략과 술수를 부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요지입니다. 오늘날 '후흑'은 대체로 뻔뻔함 또는 음흉함으로 해석되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한비자의 제왕학에 이어 중국의 현대판 제왕학으로 추앙받고 있는 '후흑학'은 중국판 마키아벨리즘으로도 불립니다. 권모술수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후흑학'을 단순히 음흉, 뻔뻔함을 위주로 하는 처세술쯤으로 이해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후흑의 궁극적인 목적은 뛰어난 후흑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후흑구국(厚黑救國)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통치학은 어떤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 정부의 통치학은 알 듯합니다. 성형강국 대한민국의 대통령답게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성형을 통하여 면후(面厚:얼굴을 두껍게 함)에 힘써왔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심흑(心黑:시커먼 속마음)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학문이 아니라 몸을 통하여 후흑학을 완성했다 하겠습니다. 그것이 필러든, 보톡스든, 혹은 실 리프팅 시술이든 얼굴에 이물질을 투입함으로써 얼굴이 조금씩 두꺼워지는 건 확실하겠지요. 물론 얼굴을 두껍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뻔뻔함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통령은 후흑학을 통달하여 이제는 후안무치의 경지에 이른 듯합니다. 한국판 후흑학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종오의 후흑학이 후흑구국(厚黑救國)에 그 목적이 있었던 반면 대통령은 후흑구순실(厚黑救順實)에 목적을 두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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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뭐라고 - 거침없는 작가의 천방지축 아들 관찰기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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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부모답게 변해간다는 건 우리는 아이로 인해 끝없이 배우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아이를 위한 모든 걸 준비하고 갖춘, 그와 같은 완벽한 부모는 존재하지 않겠지요. 혹시 있을라나요? 나도 여느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이를 키움에 있어 어리숙하고 미성숙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둥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세월은 무참히도 흘러 아이는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부모의 간섭을 귀찮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노 요코의 <자식이 뭐라고>는 지난 시절의 나와 마냥 의존적이었던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입니다. 포동한 볼이 발그레해서 잠이 든 그 시절의 아들을 곁에서 지켜 보며 혹시나 깰까 손등으로 조심조심 아들의 볼을 매만지던 나는 불규칙한 수면 시간으로 몸은 비록 힘들었지만 얼마나 행복에 겨워 했던 것일까요. 아이가 커서 제발 잠이라도 제 시간에 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하루가 마치 일 년인 양 길게만 느껴졌던 그 때가 이만큼 지나고 보니 어찌나 짧고 안타까운 시간이었는지요.

 

"책 읽어줘."

"벌써 두 권 읽어줬잖니."

"제발, 한 권만 더."

"안 돼, 이제 목소리가 안 나오는걸."

"나오고 있는데."

"책 읽기용 목소리는 이제 안 나와."

"보통 목소리는 나와?"

"응, 보통 목소리는 다른 데 담아뒀거든."

"그럼 옛날이야기용 목소리는?"

"옛날이야기용 목소리는 아까 써버렸어."

"그럼 보통 이야기라면?"

"으음, 그럼 진짜진짜 보통 이야기야.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짧은 이야기란다." (p.29)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장면이 훤하게 그려지지요? 사노 요코도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작가는 아들 히로세 겐의 유치원 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의 기억할 만한 모습들을 사진이 아닌 글로 써서 남겨두었습니다. 아들 몰래 틈틈이 기록한 이 육아서는 숨기는 것 없이 솔직 발랄한 사노 요코의 인생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녀만의 아들 관찰기입니다. 아직 미혼이거나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엄마로서의 사노 요코의 마음이 가슴 뭉클하게 전해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겐은 여학생 한 명을 함께 좋아한다는 이유로 서로 질투하기는커녕 다른 남자 아이 두 명과 절친동맹을 맺기도 하고 여학생이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자 겐과 친구는 방학을 이용하여 여학생의 집에 놀러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시하다며 여학생을 다들 포기해버립니다. 중학생이 된 겐은 여전히 절친동맹의 남학생 둘과 어울립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아이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습니다. 그 아이는 상주가 되어 앉아 았습니다.

 

"겐의 엄마는 가끔 장례식에 가면 상주 자리에 앉아 있는 중년의 장남을 볼 때가 있는데, 열세 살짜리 우와야만큼 당당한 장남은 본 기억이 없었다. 겐과 욧짱은 나란히 조심스레 우와야 앞으로 걸어가서 필사적으로 분향했다." (p.79)

 

절친동맹의 세 아이, 겐과 욧짱 그리고 우와야는 다니는 학교도 서로 다르고, 성격이나 취향도 달랐지만 방학이면 어김없이 어울려 놀고 여자 친구가 있는 겐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몰래 술도 마시면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 갑니다. 완전한 성인이 된 아들을 보며 엄마 사노 요코는 이제 어렸을 적의 아들을 떠올립니다.

 

"뭐든 마음껏 해보렴. 어린 시절을 충분히 아이답게 보낸다면 그걸로 좋다. 슬픈 일도 기쁜일도 남을 원망하는 일도 짓궂은 일도 실컷 해보기를.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사랑하는 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타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p.115)

 

겐은 엄마의 글에 '과장과 허풍이 섞여 있다'고 평합니다. 자신에 대한 글이 사노 요코의 여러 책에 등장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겠지요. 그러나 사노 요코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아들에 의해 출간된 이 책은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그토록 싫어했던 아들 겐의 후회가 묻어나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생전의 사노 요코를 추억하며 아들이 잘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보내는 히로세 겐의 감사 편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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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소쿠리를 휘돌아 나가는 바람의 기다림처럼 밖은 온통 바람의 서성임뿐입니다. 콘크리트 일색의 회색 도시에 무람없는 바람만 겅중겅중 뛰놀던 그런 하루였던 것입니다. 입춘도 지난 이맘때면 찬 바람이 물색없이 기승을 부리고 봄을 기다리는 우리는 목을 더 길게 늘인 채 날씨만 탓하곤 하지요. 오늘 불었던 바람은 어쩌면 봄의 전령인 양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오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새삼 오늘처럼 가볍고 신선했으니 말이지요.

 

심술궂은 날씨만큼이나 대한민국의 국정시계 역시 안갯속입니다. 의심할 것도 없이 탄핵은 당연히 인용될 것이라던 처음의 전망에서 이제는 뒤로 한 발 물러서서 '어쩌면 기각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 때문인지 국정농단의 주체세력과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점점 더 힘이 실리는 듯합니다. 헌재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를 어떻게든 지연시키려는 청와대의 행보도 노골화되었고, 자신감에 찬 그들은 오히려 뻔뻔해지려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지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행태입니다.

 

조류독감이 조금 잠잠해졌나 싶자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려나 봅니다. 이래저래 물가 불안 요인만 늘어나는가 봅니다. 그런데도 권한대행은 대권놀음이나 즐기고 있으니 나라 꼬라지가 참으로 우습게 되어갑니다. 엊그제였나요? 최순실 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조성민 전 더블루K 대표가 최씨를 강도높게 비판했던 게 말이지요. 그는 재판정에서 최씨를 향해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고 모두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잘못을 시인하고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고 말했다지요. 그 말은 어쩌면 최씨가 아닌 청와대를 향해 던지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도 불고 날이 찹니다. 이렇게 궂은 날씨에 마음마저 스산해지는 걸 보니 으슬으슬 몸살이 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오라는 봄은 아주 먼 곳에서 아직 느린 발걸음도 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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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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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광지역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것은 중학교 2학년을 거의 다 마친 그해 겨울방학이었다. 아버지의 지나친 음주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뛸 듯이 기뻤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여동생과 어머니를 남겨둔 채 나만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가슴 한 구석을 묵직하게 짓눌렀었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6년에 중학교 2년을 더해 도합 8년의 시간을 나는 강원도의 탄광 지역에서 보낸 셈이었다. 석탄 산업이 번성하던 당시의 탄광지역은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그렇게 친분도 없이 모인 사람들은 사택이라는 주거지에 둥지를 틀었다. 석면을 함유하고 있는 회색 슬레이트 지붕과 엉성하게 쌓아 올린 시멘트 벽돌집은 검은 탄가루와 함께 탄광 지역을 대표하는 흔한 풍경이었다. 무채색의 우중충한 공간이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탄광 지역의 모습이었다.

 

단칸방의 좁디좁은 공간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복작거리는 틈바구니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했다. 탄광촌의 학교는 아이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북적거리던 탄광 지역은 한순간에 유령 도시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갔고 빈집들은 늘어만 갔다. 적어도 그곳에 폐광지역의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명목으로 카지노 시설이 들어서기 전까지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의 도시였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무코다 이발소>를 읽으면서 감회가 남달랐던 까닭은 나의 유년기가 소설의 배경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오쿠다 히데오가 그의 작품 '공중그네'나 '남쪽으로 튀어'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유쾌발랄한 문체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위트와 유머는 이 책에서 보여지지 않지만 작가는 쉽고 사실적인 문체로 마치 쇠락해가는 한 마을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그리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에너지 정책이 석유로 전환된 데다 외국에서 싸게 들어오는 석탄 탓에 경쟁력을 잃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야스히코의 소년 시절은 고스란히 그 쇠퇴기와 겹쳤다. 탄광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덩달아 반 아이들도 전학을 갔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통폐합이 잇달았다. 타계책으로 영화제를 유치하고 레저 시설을 조성하는 등 관광산업에 힘을 쏟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p.12)

 

이야기는 일본 북쪽의 홋카이도 산간 지방 도와자와면에서 시작된다. 올해 쉰세 살의 평범한 이발사 야스히코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후 부부 둘이서 25년째 무코다 이발소를 꾸려오고 있다. 그에게는 도쿄에서 의류 회사에 다니는 맏딸 미나와 삿포로에서 대학을 마치고 그곳에서 취직을 한 아들 가즈마사가 있다. 취직을 한 지 1년 남짓한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며 귀향을 선포하는 바람에 야스히코의 고민은 깊어진다. 젊은 사람은 모두 도시로 떠나는 마당에 거꾸로 귀향을 하겠다는 아들의 결정이 영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는 쇠락해가는 고향 마을의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 둘 풀어놓는다. 고향을 떠난 사람과 고향을 지키는 사람 사이의 현실적인 장벽과 거리감, 부모 세대의 노인들만 남은 고향 마을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뻔히 보면서도 부모를 곁에서 모실 수 없는 자식들의 죄의식, 객지를 떠돌다 상처를 입고 귀향한 고향 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 등 우리도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작가는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나도 도시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도마자와는 프라이버시나 개인의 삶이 없는 곳이니까 말이야. 다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보니 뭘 해도 다 알려지고. 게다가 한 번 잘못하면 평생 얘깃거리가 되고. 그러나 숙명이다 여기고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이스케, 농사 그만둘 건가? 그럴 수 없겠지. 도마자와를 떠날 건가? 그럴 수 없겠지. 그럼 훌훌 털어버리자고. 모두가 한 연못 안에서 똑같은 물을 먹고 살고 있어. 그게 도마자와야." (P.164)

 

늦은 나이에 중국인 신부를 맞은 다이스케가 마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야스히코의 친구인 세가와가 한 말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시골의 작은 마을일수록 개인의 비밀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것이 이웃 간의 훈훈한 정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것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왕래가 잦은 시골 마을의 풍경은 도시의 익명성에 젖은 도시내기들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문제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도시로 나간 자식들의 좋지 않은 소식은 지울 수 없는 큰 흉이 될 수도 있다. 소설에서도 히로오카의 아들 슈헤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범죄를 저지르고 지병수배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동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는 슈헤이에게 했던 말을 아버지 야스히코에게 전한다.

 

"우리가 슈헤이 선배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아직 살 인생이 많이 남았으니까 차라리 도마자와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그야 뭐 삿포로나 도쿄 같은 도시에 살면 주위에서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이 살기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친해지거나 여자를 사귀게 되면 피치 못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데, 숨기는 일이 있으면 사람과의 교제를 피하게 될 테고, 또 괴로울 테니까 ……. 그렇다면 차라리 다들 얼굴을 아는 도마자와에 돌아와서 지내는 편이 마음 편하지 않겠느냐고요. 과거를 알아도, 그래도 동네 사람들끼리는 친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형기를 마치면 죗값을 치른 거니까, 우리는 받아들일 거예요." (P.312)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강원도의 작은 탄광 마을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껏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카지노 시설과 스키장 조성으로 마을은 오래전에 관광지로 변했지만 말이다. 개중에는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를 운영하거나 유흥점을 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순수했던 어릴 적 모습을 찾아내지 못한다. 세월이 바꿔놓은 풍경은 쓸쓸하기만 하다. 놀러 오면 술 한 잔 거하게 사겠다는 그들의 제안이 그닥 반갑지 않은 것은 나도 또한 세월의 변주에 쉼 없이 변했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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